지난 여름 건강을 위해 시작한 필라테스가 맘에 들어서
처음엔 한 주일에 한 번 하다가 그 효과가 느껴지자 두 번으로 늘렸다.
생각 같아선 매일 하고 싶지만
경제적 부담도 그렇고 시간을 그렇게 일정에서 빼기도 쉽지 않아
한 주일에 이틀을 나를 위해 비워 두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 운동에 집중했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며칠 전 필라테스 강사님이 아기를 가졌단다.
결혼 초 유산 경험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인지 강의를 쉬겠다고 했다.
안정기까지 서 너달이 필요하니 난 그 동안 다른 곳을 알아 보거나 쉬어야 한다.
고민 끝에 밤 운동을 열심히 하는 남편을 따라
나이 든 사람에겐 최고라고 하는 걷기를 시작했다.
사실은 요즘 몸 여기저기가 시원치 않다.
몸이 안좋다고 인정하는 순간 나이에 겸손해져서
운동에 게으르던 나를 다시 세울 필요를 받아들였다.
어깨엔 물이 차고
무릎 연골은 찢어지고
허리는 기형이라 근육을 늘려야 하고
눈은 갈수록 도수가 는다.
"여보! 난 생노병사의 병 단계에 완전히 접어 들었어요."
어젯밤도 걸으며 남편에게 고백했다.
남편은 그저 웃었다.
얼마 전 부부동반 골프를 나가며 남편 왈
"친구 부인들이 운동을 아주 잘한대. "
별로 골프연습에 관심없는 내가 혹시 기가 죽을까 예방주사를 놓았다.
"뭐, 연습도 안하면서 잘하길 바라겠어?"
그러면서도 욕심 많은 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아기 보고 살림하고 병원에 붙들려 있는 남편대신 온갖 심부름을 하면서
연습을 못한거니까 점수가 안나와도 괜찮지 뭐 나를 다독였다.
결과는? 내가 넷 중 두 번째 정도 수준이었으니 나쁘진 않다.
못해도 돼 싶었지만 전반엔 내가 젤 잘했으니 잘한 셈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승 상금도 걸리지 않은 취미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않겠어."
하고 난 적당히 못하는 것에 도리어 자부심을 갖는다.
하느님께서 지금 이 시대 이 가족과 더불어 살라고 주신 삶의 기회를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골프라는 운동으로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필라테스대신 시작된 밤 산책도
찢어진 연골 덕분에 빨리 걷지도 못한다.
어제 밤엔 무릎 보호대까지 차고 걸었는데
아픈 왼쪽 무릎탓에 오른쪽 고관절에 힘이 쏠려
중도에 돌아와 누워서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나 주님 덕분에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곁에 머물며 내게 맡겨진 일을 해내고 있다.
그러니 병 단계의 육제적 고통을
치료 병행하며 지혜롭게 견디기로 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은총임을 아니까.
토요일 아침 식전에 아들에게 안겨 손자가 환한 웃음으로 들어온다.
병 단계에 접어든 나이면 손자를 안는 호사를 누린다.
어제 미사는 장례미사였다.
'천주의 성인들이여 오소서!'
하는 성가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미사가 금방 더 거룩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제 저녁 미사에 연도 공지가 떴으니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거였는데
코로나 시기인 요즘 장례식장은
아주 가까운 지인들만 가는 게 상례인지라 건성으로 들었다.
그런데 고인이 내가 선교분과장일 때 세례를 받은 페트라 형님이었다.
미사 도중에 왈칵 눈물이 났다.
나를 보면
"나 세례 받게 해준 젬마자매 너무 좋아."
하고는 등을 두드려주던 페트라 형님!
가족들 중 많은 분이 세례자로 서 있는 것을 보니
형님은 만족스러운 신앙생활을 하셨나 보다.
주님 감사합니다. !
페트라형님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되길 기도했다 .
병 단계 후의 死단계는 주님의 나라로 옮겨감이다.
머잖아 크고 작은 병치레에 지치면 내 차례다.
내 장례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누가 와서 진심으로 내 빈 자리를 느낄까?
빈 자리를 느낀 사람만이 나와 시간을 공유한 사람일 것이다.
신앙인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구원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의 뜻에 따라
부활의 삶으로 옮겨감이니 죽으나 사나 주님나라다.
그러니 일상을 살면서도 주님 만날 준비 삼아
죽음을 기억하고 살 일이다.
마르틴 부버는 '자기비하는 악마의 유혹이고
너는 이상황에서 못 빠져 나와' 하고 속삭인다는데
행여 몸 아프다고 주님께 헛된 기도 올리지말고
'이만큼 아파서 다행이다' 하고 감사기도 바쳐야 한다
되돌아 보면 내 삶은 은총의 연속이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강의를 한 스티브잡스가
인생은 작은 점들의 연속이라고 했다.
내가 산 작은 점 하나, 오늘.
그 날들이 모여서 주님 만날 날을 이어주는 선이 될 것이다.
주님은 사랑인데다 무엇보다 전능하시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곳이 내게 가장 행복한 천국이라고 주님께서 인정하는 것이다.
병 들었든 고통 중이든 내가 치러야 할 마땅한 보속이라 여기며
주님 사랑에 기대어 먼저 간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남은 나는 그분들과 통공을 믿으며
오늘을 주님 뜻에 맞갖게 살아가야 한다.
오늘은 아기 보는 날!
내 손자 안젤로에게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하면
오늘도 사랑점 하나
옹골차게 찍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