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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나그네의 보잘 것 없는 이야기(단편) 하나를 올려 봅니다.
틈 나실 때 한번 보실 수도 있습니다. 갑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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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의 카르마
정호완(곰나루21)
눈보라 휘날리는 정월 열나흘, 자국눈 내리는 앞마당에 차일을 치고 화순의 초례를 올린다. 어제가 9년 전 일사 후퇴 무렵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말하자면 오늘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아닌가. 아홉 살 어린 나이로 떠돌다가 아랫마을의 홍 초시네 애머슴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화순의 외할아버지 문 생원의 눈에 들어 정신이 혼미한 딸의 남편감인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전전하다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던 중 난리가 터졌다. 물론 할아버지도 아홉 살에 아버지가 돌아갔다. 할아버지가 고종 무렵 통정대부로 나랏일을 걱정하시다가 돌아갔다. 게다가 어린 남동생도 아홉 살에 아버지까지. 무슨 카르마의 장난, 운명의 회오리 앞에서 섭리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올해 열여덟 살 신부 화순은 눈빛에 환한 얼굴이 한 송이 복숭아꽃이었다. 연지와 곤지를 찍고 원삼에 족두리를 한 모습이 마치 가시리의 애잔한 여인 같아 보였다. 일사 후퇴에 가장 큰 언덕이었던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아군의 비행기 사격에 총 맞아 한꺼번에 속절없이 돌아갔다. 울화병에 분노조절 장애 같은 버럭을 일삼고 정신이 혼미해진 얼 나간 어머니와 아홉 살 남동생과 함께 외할아버지 문 생원의 외갓집에 들어가 살아왔다. 어머니는 새로 들어온 외숙모와 툭하면 불화가 일어났다. 언젠가 금융조합에 다니던 외삼촌이 어머니를 고무신으로 등판을 때렸다. 병신 같은 게 속을 썩인다고... . 말하자면 새로 맞아들인 외숙모 편을 든 것이었다. 이에 어린 동생이 울면서 항의하다 두들겨 맞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화순이 어렸을 적 어쩌다 대면의 친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어머니와 줄곧 불화의 나날이었다. 어머니가 모자란다고 아버지에게 빨리 새 장가를 들라고 재촉을 하며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어린 애들 놓아두고 재가했던 할머니가 돌아와 아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무엇인가를 얻어 가려고 며느리를 흠잡고 구박을 해대는 것이다. 시어머니한테 구박을 당한 어머니는 툭 하면 외할머니한테 가서 울며불며 어린애처럼 화를 내면서 못 살겠다고 하소연했음을 보면서 자랐다.
그러다 집안 아주머니의 중매로 안흥면 서기로 일하는 양녕대군 후손의 6대 독자인 이운수와 혼례를 올리게 된 것이다. 화순의 마음으로는 한편으로 골치 아픈 굴레를 빨리 벗어난다는 해방감도 있었다. 그러나 셈도 모르고 무엇이 좋고 나쁜 줄도 모르는, 말하자면 얼간이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놓아두고 도망치는 것 같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조금씩 내리던 눈은 잦아졌으나 길이 미끄러웠다. 초례를 마친 화순은 신랑을 따라서 8톤 짐차를 타고 눈 쌓인 6백 고지의 전재를 굽이굽이 힘겹게 돌아 넘어서 해가 질 무렵 시댁으로 들어갔다. 관솔불로 집안을 밝히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새댁이 들어왔나 궁금해하면서.
춥고 바람까지 밤이 깊기도 전에 사람들은 돌아가고 여주에서 온 큰 시고모를 비롯한 가족들만이 남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피곤할 테니 먼저 들어가 쉬라고 해서 얼떨결에 마루 건넛방으로 들어간 지 한식 경이나 되었을까. 집안은 온통 야단법석, 엄청난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큰 시고모가 인절미를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떡이 기도에 걸려 바로 기절하여 사망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아닌가. 새댁은 눈앞이 캄캄했다. 어두운 불운의 그림자가 살모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원주서 들어온 첫째 고모부가 세워 둔 8톤 짐차로 새벽같이 큰고모님을 여주 집으로 옮겨 모셨다. 말하자면 혼행차가 영구차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집안이 온통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가난했지만 양녕대군 23대손임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아버지 이 생원은 검고 큰 눈과 눈썹을 연신 떴다 감았다를 되풀이하면서 큰 누님의 왕생극락을 빌기 위하여 반야심경과 나무아미타불을 되뇌이다가 풋잠에 든다. 무슨 마귀할멈 같은 괴상한 기운이 집으로 처들어 오는... .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새신랑 운수는 면사무소로 출근을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혼자서 속앓이를 하면서 밤새 한숨도 쉬지 못한 사람은 시어머니 조씨 일명 좁쌀 부인이었다. 아침 일찍 이 생원은 시어머니와 함께 여주로 장례를 보러 갔다. 시어머니 조씨 부인은 참으로 재수 없는 며느리가 들어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잔칫날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문득 원주서 여상 다니는 딸한테서 갑천 산다는 딸의 친구에게서 새 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얼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 친구는 새 며느리와 같은 동네에서 부모들이 사니까 거의 확실할 사연이다. 좁쌀 부인은 확실한 건수를 잡은 것이다. 부모가 얼간이라면 어느 대에선가 얼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만일에 새 며느리 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얼간이로 태어난다면, 집안에 망조가 드는 것 아닌가. 정말로 불길한 예감이 바람 언덕에 타오르는 불길처럼 솟아올랐다. 트집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이건 분명하게 실패한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남편인 이 생원에게 힘주어 설명한다. 그러니까 새 며느리가 아이를 갖기 전에 이쯤 해서 쫓아냄이 옳다고 하면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변했다. 장례를 보고 돌아온 좁쌀 부인은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좁쌀 부인다운 발상이고 모습이었다. 자신이 치악산 구룡사에 가서 불공을 드려 얻은 6대 독자인데 앞으로 닥쳐올 얼간이 손주들을 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새 며느리 화순에게는 이건 아예 살얼음판 시집살이였다. 어머니의 정신적인 병증이 빌미가 되어 이런 고초를 겪다니. 정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얼간이 병증이 대를 건너서 대물림을 하는 것일까. 천주님, 이 불쌍한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저를 고통의 늪에서 건져 주소서. 이 시련을 넘어가게 하소서. 기도하는 마음을 다잡고 저녁상을 차렸다. 저녁을 마치고 났는데 시아버지가 모두 안방으로 건너오라는 것이다. 먼저 이 생원이 운을 뗐다.
“새아기, 우리가 어디 다녀왔는지 알고 있겠지?”
며느리 화순은 그냥 듣고만 있었다.
“실은 잔칫날 밤 여주 큰 누님이 먹은 인절미가 기도를 막아서 손도 못 써보고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연세도 환갑이 넘으셨으니 다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옆에서 영감님 말을 듣고 있던 시어머니 좁쌀 부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거 무슨 소리요. 지금 재수 없는 새 며느리라 그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 없이 정신 나간 얼간이 어머니 품에서 본데없이 자랐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요. 앞으로 아이를 낳았을 때 정신 나간 얼간이들을 낳지 말라는 그 어떤 보장도 없잖아요. 얼간이는 내 친정 조카 하나로 충분해요. 게다가 불공드려 얻은 6대 독자 아들인데 새 며느리가 천주교인이라니. 참 집안 꼴 잘 돌아가겠수다. 난 이 결혼 정녕코 인정할 수 없어요. 알았어요? 이번 근친 가서 돌아오지 말고 네 갈 길을 찾아서 가고 우리는 다시 올바른 사람을 며느리로 맞아야 할 테니까. 안 그러면 내가 이 집을 나가든지.”
시아버지 이 생원이 이 말을 듣자마자 궁금한 듯 며느리에게 다그쳐 물었다.
“한 가지 너한테 물어보아야겠다. 친정어머니께서 셈도 모르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 여겼던 화순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대답을 한다. 이제 더는 숨길 것도 없었다. 말문이 안 나와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셈도 한글도 모르시는 건 맞습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것도 맞고요. 일사 후퇴 난리 때 큰이모 집에서 열네 식구가 피난하고 있었습니다. 밤새 중공군이 머물다 간 집으로, 방공호에서 온 가족이 추위에 떨다가 들어갔을 때는 중공군이 밥을 해 먹느라 불을 땐 연기를, 아군 정찰기가 연락하고 난 뒤였습니다. 정찰기의 연락을 받은 전투기가 날아와 기관총 사격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이종사촌 동생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저도 벽을 뚫고 들어온 기관총 알이 제 몸뻬 속으로 들어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15살 난 저와 9살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는 살아남게 되었으나 어머니는 한동안 정신을 잃고 깨어나시질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로 기억력도 없어지시고 분노조절 장애가 와서 걸핏하면 버럭하시고 셈도 못 하시게 되었고요. 듣기로는 어머니가 어리셨을 적 갑작스러운 경기로 우황청심환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 뒤로 외갓집에 얹혀서 지냈고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마음 붙일 데 없는 저는 외로운 나머지 천주교 갑천 공소에 나아가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이 유일한 마음의 위안이요, 안식이었습니다. 친정어머니로 말미암아 제 몸에서 태어날 아이들 때문이라면, 제가 물러날 수도 있습니다. 며칠만 말미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면사무소에서 퇴근해 돌아와 저녁을 하고 난 신랑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릴없이 듣고 있었다. 아버지 이 생원이 아들에게 물었다.
“네 생각을 듣고 싶다. 너의 어머니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어떨까 걱정도 많고 나 또한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뿐만이 아니고 어머니와 종교도 다르고.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단호하게 말을 한다. 방위군 장교로서의 기상으로,
“저는 이번 일로 아내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저를 믿고 결혼을 결심하고, 저 또한 저 사람이 좋아서 한 결혼입니다. 난리 통에 장모님이 병증을 얻은 것이 저 사람의 잘못은 아닐뿐더러 아버지 없고 병든 어머니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결혼한 뒤 다 헤어진다면, 그것은 인륜 도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버지는 늘 저에게 인륜 도덕을 강조하셨잖아요. 썩어도 준치라고 통정대부 장씨 집안의 손녀잖아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좋다고 했잖습니까. 이제 와 이러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저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아니잖아요? 종교가 어머니와 다르다고 함이 갈라질 아무런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저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앞으로 지켜보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에 아내와 함께 갑천에 다녀올까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시어머니 좁쌀 부인은 아주 작심한 듯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체머리를 흔들면서,
“너 아주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어미가 정말 아니라는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들다니. 집안 망하게 생겼구나. 이 어미가 너를 어떻게 낳아서 길렀는데. 부처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나무관세음보살.”
옆에서 듣고만 있던 새 며느리 화순이보다 세 살 아래인 원주에서 여고 다니는 막내 시누이가 어머니를 거든다.
“오빠, 엄마 말이 틀린 게 없잖아요. 오빠와 우리 집안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마침 원주서 막내 시누이와 함께 들어온 큰 시누이는 생각이 달랐다.
“아버지, 당장 여기서 무슨 결론을 내시지 말고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머니 말씀도 옳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 아니겠습니까? 당사자인 동생이 좋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이 집안이 동생 아니면 먹고 살길도 없잖아요? 아버지 광산 하다가 빚진 것을 대를 물려 갚고 있는 판에... .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새 며느리 화순이 고개를 숙이며 울먹이며 듣고만 있다가 조용하게 말문을 연다. 불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 하나 사라지면 그만인데요.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 동안이라도 시간을 주시면 마음 정리하고 나서 이 집을 나가겠습니다. 모든 게 인연 따라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어머니와 인연이 아닌 듯합니다. 정신 나간 얼간이 어머니의 딸이라서 너무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생원이 명령하듯이 말을 한다.
“이런저런 의견을 다 들어 보았으니, 가장으로서 내 생각을 말하겠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매듭을 짓는 것이 좋겠다. 이 문제는 여기서 더는 거론하지 말자. 누가 쳐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이러다 집안 거덜이 나게 생겼다. 조상에게 무슨 낯으로 뵐 수 있겠는가. 여보, 우선 이번 주말이라도 시간을 내도록 해서 큰 애 내외를 근친하러 보냅시다. 남의 눈도 있고 사람의 도리상으로 그렇게 해줘요. 정이 없으면 도리로 사는 것이요.”
시어머니 좁쌀 부인은 새 며느리 근친 보내는 일에 관심 없다는 듯이 시무룩할뿐더러 얼핏 밖으로 나가 버린다. 아랫마을 집안의 송씨 아저씨네 집으로 간 것이다. 말수가 적은 신랑이 미안하다며 화순의 손을 잡고 마루 건넌방으로 들어간다.
“여보, 할 말이 없네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하지 말고 내일모레 갑천 다녀옵시다. 내가 오늘 갑천면 철수 처남에게 전화해 놓았어요. 고생스럽더라도 이 시련을 함께 이겨냅시다.”
철수 처남은 화순의 이종사촌 오빠인데 신랑과는 같은 군의 면서기로서 알고 지낸 지가 오래된 사이였다.
화순의 외갓집은 할아버지 슬하에 4녀 1남이 있었다. 막내가 외삼촌이다. 새 사위가 온다니 집안 식구들이며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 거의 스무 명은 되었다. 훤칠한 키에 방위군 장교 출신이라더니 사위 한번 잘 본 것 같다며 화순이 복이 많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린다.(남의 속도 모르고) 화순의 친정 어머니는 딸이 근친 온다는 것도 아는지 모르는지 친정집 어린 조카를 등에 업고 콩 낱가리에 떨어진 콩을 줍는다고 떼수 밭에 가 있었다. 일의 순서와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해가 질 무렵 처가에 들어간 신랑과 신부 화순은 집안 어른들께 큰절을 하였으나 막상 어머니는 보이질 않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외할아버지 문 생원이 화순 어미 곧 장모를 찾는다. 머리를 흔들면서... . 때 마침 아이를 등에 업은 채 화순의 어머니가 대문에 바쁜 걸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디 갔다 이제 오누? 아, 이 사람아, 시집간 딸이 사위와 함께 왔는데. 그래 잘 왔다. 추운데 어서 들어와라.”
화순의 어머니는 아이를 내려놓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앉아서 딸 내외의 큰 절을 받는다. 어머니를 본 순간 화순의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정신이 혼미한 저 어머니의 품에서 내가 태어나 아버지 없이 외갓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살아왔던 날들, 이제 앞으로 겪어야 할 가시밭 시집살이를 생각하니 그저 하염없는 눈물만 흘렀다. 검은 운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사랑방에 차려놓은 술상을 앞에 놓고 화순의 이종사촌 오빠인 철수와 새신랑 운수는 반갑다는 듯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악수를 하고 권커니 자커니 몇 순배를 오고 갔다. 가끔 군청 회의 때 만나기도 했지만, 집안의 처남과 매부 사이로 만나게 된 것은 정말 남다른 만남이요, 인연이었다.
“화순이는 나한테는 친누이나 다름없어요. 내가 매부보다 한 살 아래지만 친척 못된 게 항렬만 높다고 이제부터는 나보고 형이라고 해야 안 되겠나. 아니 그렇소. 잘 부탁해요. 매부님.”
“알겠습니다. 제가 방위군 장교 출신입니다. 의리를 중시합니다.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화순씨를 힘이 미치는 대로 지키겠습니다. 충성... .”
일사 후퇴 무렵의 이야기며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연을 서슴없이 술김에 늘어놓았다. 방위군 시절에 경주에서 있었던 이야기며 병사 담당을 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찔레꽃 노래를 흥얼거리다 두 사람은 꿈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화순은 아침 일찍 성당에 가서 묵상 기도를 하며 이 시련의 고개를 잘 넘게 해달라고 절절한 소원을 빌었다. 돌아와 보니 큰이모랑 서울서 온 막내 이모가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화순의 어머니는 그릇을 챙기고 형제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 점순은 형제들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 바람에 아버지 없이 자라는 화순과 남동생 화식을 친자식처럼 돌보고 아껴주었다. 큰이모가 화순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시집살이가 매운 당초 고추보다도 맵다고 하는데 너는 괜찮으냐? 신랑은 마음 편하게 해주고.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모들한테 터놓고 이야기 하고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잘 헤쳐 나아가야 한다. 너의 엄마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 하여 너의 친할머니가 너의 집에 오시기만 하면 너의 아버지가 새 장가를 들어야 한다면서 너의 엄마를 구박하던 것을 너도 잘 알지? 돌아가신 너의 외할머니께서 엄마 일로 하여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는지 아니? 힘들기는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 가여운 것. 너만 똑바로 처신하면 괜찮다. 천주님이 지켜주실 것 아닌가. 그렇지. 어서 사랑채에 나가 봐라. 꿀물이라도 타서 가져가 봐라. 어서.”
화순은 시집에서 일어난 일을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만일 시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모들이 아신다면 얼마나 걱정과 근심을 하실까. 가슴 아파하실까. 그것도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형제 일로... . 아무 일도 없고 신랑이 잘해준다고 했을 뿐... . 간밤엔 술에 취해 두 사람이 떡이 되어 정신없이 자다가 겨우 일어난 뒤 화순이 가져온 꿀물을 한 대접씩 들이켰다.
화순이 어머니 생각만 하면 먹구름으로 가슴이 뒤덮인다. 저 어린 남동생이 빨리 자라서 어머니를 잘 모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요일이라 열한 시 미사에 신랑과 함께 가기로 했다.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작은 구리봉 아래 자그마한 공소로 읍내에서 신부가 격주로 와서 미사 집전을 한다. 마침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날이었다. 미사포를 쓴 화순이 찬송을 하고 사제 앞으로 나아가 성찬 전례와 영성체 예식, 그 앞에 시작 예식에서 참회와 자비를 통한 기도를 통하여 화순은 자신의 부족한 마음과 잘못을 뉘우치며 아리고 쓰린 가슴을 흘러내리는 눈물로 씻어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아내의 흘리는 눈물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함께 울었다. 촛불을 밝히고 전등불 아래 미사포를 쓰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이 백설 공주를 보는 듯 황홀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 내가 저 사람의 아픈 마음을,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그렇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자라는 과정에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 일들이 많았을까. 영성체 예배를 마치고 눈 내린 처가로 돌아오는 길은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새신랑 운수의 기분은 고향의 봄이라도 부르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저렇게 순결하고 여린 사람을 아내로 맞은 자신이 행운아라고 여겼다.
이틀이 지났다. 아침을 먹고 나서 방골 외할머니 산소에 들렀다. 잔을 부어놓고 큰절을 올렸다. 화순은 목이 메어 울며 무릎 꿇고 일어날 줄을 모른다. 할머니를 부르며 저 왔다 간다고 ... 할머니의 영혼 같은 검은 다리 솔새들이 숲에서 째째거리며 짧게 운다.
버스를 타러 시간 맞춰 장터로 나가야 한다. 큰 이모님이 새신랑 손을 잡고 간곡한 부탁을 한다.
“화순이는 내 친딸 같은 아일세. 부족한 점이 많이 있더라도 가르치고 도와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기도하겠네. 정말 잘 부탁해요.”
그 옆에 서 있던 화순이 어머니는 바라다볼 뿐... . 조금 있더니,
“그럼 잘 다녀가. 아무것도 줄 게 없어. 이거 외할머니가 나한테 주신 은비녀인데 네가 써라. 나는 필요가 없어.”
이모와 외숙모가 챙겨준 엿이랑 다른 몇 가지 시부모에게 갖다 드리라고 석청 꿀이며 말린 밤 등을 갖고 귀로에 올랐다. 차비 하라면서 이모들이 용돈을 건네준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신랑과 함께 다시 눈 덮인 전재를 넘어 찬 바람 몰아치는 안흥 시댁으로 돌아왔다. 시부모들에게 큰 절로 다녀왔다고 인사를 드렸으나 시어머니는 차갑기가 삼척 냉방이었다. 무엇 때문에 돌아왔느냐는 무언의 꾸지람이었다.
그러나 가장 믿는 언덕은 신랑 운수였다. 낮에는 이런저런 일로 미워하는 시어머니와 같이 지내기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밤이면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마냥 미덥고 편안한 순간이 된다.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도 지나 뒷동산에 진달래꽃 피는 봄이 되었다. 언젠가 장날인데 시아버지가 소 족발을 사 왔다.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다. 시아버지 이 생원은 몸소 장작불을 지펴 가면서 곰탕을 만들고 있었다. 한편, 신랑은 시어머니 모르게 아내가 좋아하는 오징어포를 사다 준다. 같은 해 동짓달 보름 무렵 이 생원의 집 문에는 솔가지와 빨간 고추가 달린 금줄이 걸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원주서 들어온 큰 시누이가 너무나 좋아하며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친정 올케 보고 수고했다며 소고기며 미역을 사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시어머니 좁쌀 부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엄마, 손자 보심을 축하드려요. 우리 집의 경사가 났네요. 아이 이름을 뭐라고 지었나요? 아마도 돌아가신 큰고모께서 집안에 선물을 보내신 것 같아요. 이제 마음 푸시고 올케 다독이시고 곱게 봐주세요. 편하게 삽시다.”
좁쌀 부인은 아무 말도 없이 너의 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고갯짓을 한다. 아주 환한 웃음을 띤 이 영감이 잘 왔다면서 손자 이름을 알려준다.
“흙 토 항렬이니까 재한이라고 지었다. 앞으로 너희들이 내가 죽고 없더라도 잘 돌봐 주어라. 우리 집의 대를 이을 큰 대들보이다. 안 그러냐? 아들 하나만 더 낳으면 좋으련만. 남자 형제가 있어야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기가 좋단다. 자랄 때는 서로가 다투더라도 부모가 돌아가고 나면 형제밖에 없지 않겠니.”
그러나 시어머니 좁쌀 부인의 날카롭고 차가운 말씨와 분위기는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몰랐다. 사사건건 아이들 기저귀 빨래까지도 트집을 잡는다. 빨랫줄을 바르게 걸지 않았다고. 참으로 매몰찬 인사였다. 어느 날 저녁인가 신랑 운수가 소주와 오징어포를 사갖고 들어왔다.
“어머니, 오늘은 아버지도 잠시 안보이시니 저하고 소주 어떠세요?” 두 모자가 몇 잔 기울였다. 아들이 어머니의 겨울 내의를 사 온 것이다. 네가 웬일이냐는 얼굴로 내심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좁쌀 부인은 소주를 한두 잔씩 마시고 담배도 종종 피우기를 즐겨 한다. 시아버지 이 생원은 그런 부인의 일상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어머니, 재한이 어떠세요. 이제 한 돌밖에 안 됐는데 말도 조금씩하고 그런대로 괜찮지 않습니까? 어머니,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그동안 어머니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을 용서하세요. 이 못난 자식이 간청드립니다. 애들 엄마도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시고요. 벌써 재한이 동생 보게 될 것입니다.”
좁쌀 부인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두고 보자는 식이다. 잠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이 생원이 거든다. 자칫하면 손이 귀한 집안에 어려움이 닥칠 수 있으니까 당신 생각에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보, 이제 그만 며느리 마음을 편하게 해줍시다. 이제 둘째까지 가졌는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편하게 잘 지내도록 합시다. 겉모습을 보아하니 사내아이를 가진 것 같아. 뭘 더 바라겠소. 날 좀 풀리면 구룡사에 가서 아이들 장래를 위하여 불공이나 드리고 와요. 알았소?”
“아직도 모르지요. 손주들이 잘 자랄지 어떨지를 누가 알겠느냐 이겁니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쏘아붙이듯 모질고 사나운 말을 서슴지 않는다. 한번 미운 며느리는 버선코도 밉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다. 이 생원이 언짢은 표정이다.
“그것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며느리가 우리 집에 와서 대를 이을 아들을 연거푸 낳아준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느냐 이 말이요. 며느리가 당신보다 못한 게 무엇이요? 며느리가 바느질 솜씨 좋아 우리 옷매무시 잘해주고 아이 깨끗하게 잘 다독이고 무엇보다도 제 신랑하고 사이좋게 지내면 되었지. 얼마나 싹싹한데. 글씨도 곱게 쓸 뿐만 아니고 그림도 잘 그리더라고. 노래도 잘하고. 어디에 내 놓아도 얼굴이며 자태가 손색이 없어요. 우리 딸들보다 더 예뻐 보이는데. 아이들 외모에도 교육에도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아. 미안하지만 당신은 한글을 다 못 읽지 않소. 그렇기는 사부인도 마찬가지. 일사 후퇴 그것도 아군의 공격으로 그 자리에서 세 사람의 사망으로 놀란 나머지 얼이 나갔다는데 그게 왜 며느리의 잘못이란 말인가요. 불교나 천주교가 결국은 마음 편하게 살아보자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양녕대군의 23세 손이라고 하지만 며느리는 아버지가 없을 뿐 증조부가 정3품 통정대부 양반집 자손이잖소. 군의 금융조합 이사가 며느리의 집안 오빠잖아요. 외삼촌은 금융조합 서기이고. 운수 일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그러냐.(아들을 보고) 그래서 내가 서둘러 결혼을 허락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요. 돌아가신 여주 누님이 선물로 며느리를 점지해주고 가신 거야.”
이 생원은 부인 조씨를 말로서 설득한 것이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좁쌀 부인이 대꾸를 한다. 자기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영감, 그럼 선택을 해봐요. 나야 아니면 며느리야. 부처님께 큰절하고 믿는 걸 무시하고 미신으로 몰아세우는 천주쟁이 며느리를 인정할 수 없다 이겁니다. 선택을 해요. 내가 이 집에서 나가든지 며느리가 나가든지... .”
이십여 년이란 미움의 강물이 흘렀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으랴. 그 사이 화순이 믿고 의지했던 언덕, 시아버지이자 친아버지 같은 이 생원이 돌아갔다. 남편 운수는 군사혁명 시절 30대 후반 젊은 나이로 면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출세했다고. 부하 직원의 공금 횡령 사건으로 스스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직장에서 물러 나왔다. 꽃이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다는 소신이었다. 들어오는 수입은 없고 교육비와 생활비는 나가야 하고 자칫 길거리에 나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친정 동생은 어떠한가. 그는 군에 갔다 와서 농사를 짓다 몸을 다친 뒤 공부를 다시 해서 우여곡절 끝에 사범대를 나와서 대전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었다. 화순은 보따리 장사를 할 밑천이 없었다. 대전 친정에 가서 올케한테 장사 밑천을 마련해서 동대문 시장에 다니면서 옷을 싸게 사서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팔고 다녔다. 그런데 며칠 만에 다시금 대전 동생을 찾아갔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가게 들렀다가 다니는 중에 종잣돈을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어렵게 남편 모르게 친정 올케가 장사할 종잣돈을 옆집에서 빌려다 준 것이다. 그 돈으로 옷을 싸게 사다가 아는 사람들이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옷가지를 팔아서 얻어지는 얼마 간의 벌이로 먹고 지냈다. 사실상 집안의 가장은 며느리 화순이었다. 화순의 큰 아들 재환은 교대를 나와 정선의 어느 학교에서 근무를 하며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둘째 아들 재승은 농협대를 다니고... .
그런데 어느 날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전화가 걸려 왔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큰아들 재한이 교원대 석사 논문 하느라 학교에서 숙직하면서 밤늦게 배가 고파 먹은 찹쌀떡이 기도를 막아 바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화순은 손발이 떨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줄 모르고 허둥대며 사실이 아니기를 기도하며 정선으로 달려갔다. 모든 걸 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시고모가 인절미 떡에 막혀 돌아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무슨 카르마의 장난인가.
평창에서 양호교사로 근무하는 며느리와의 불화로 여러 해 동안 홀로 외롭게 지내다 변을 당한 것이다. 같이 살 거냐 말 거냐 하면서 지나온 세월이 얼마인가. 저희끼리 연애 결혼해 아이 낳고 살았으면 설령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있더라도 그냥저냥 잘 지냈어야 하는데... . 못 된 것 같으니라고. 얼굴만 반반해서 무슨 미스 강릉이라고. 마음이 고와야지. 영안실에는 화순의 며느리가 와 있었다. 주먹으로 두들겨 패 죽여버리고 싶은 미움이 굴뚝 같이 치솟았다. 할 말을 잃고 어안이 벙벙. 죽은 아들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헤어진다고 법원에 가서 도장 찍고 3개월 숙려 기간에서 하루를 남겨두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러니 법적으로는 아들의 아내였다. 따라서 아들이 죽은 뒤 유족에게 지급되는 퇴직금은 며느리가 한 푼도 남김없이 몽땅 가져가 버린 것이다. 손자를 돌본다는 이유를 들어서 시부모에게는 동전 한 잎도 주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라 시댁 대소사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냉혈한이 따로 없었다. 아들이 떠난 지 삼 년도 채 되지 않아 웬 전력회사 다니는 사람과 눈이 맞아서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제 갈 길 찾아간다고 누굴 원망하겠는가.
화순의 남편 운수는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날이면 날마다 소주에 젖어 살다가 몇 해 전 아들 따라서 아주 먼 곳으로 가 버렸다. 천당에라도 갔으면 좋으련만... 집안의 대소사는 농협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휘갑을 하였다. 사실상 둘째가 큰아들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랑 천주교회 아래 밭뙈기도 둘째에게 넘겨주었다. 부전자전인가. 큰아들 재한의 아들이 자라서 교대를 나와 어느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시어머니 좁쌀 부인의 얼간이 출산에 대한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며느리 친정의 동생도 교사였는데 공부하여 박사도 되고 교수가 되었으니 무엇을 더 의심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할 말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세 자리 나이로 접어든다.
어느 날 99세의 시어머니 좁쌀 부인이 아픈 다리를 끌며 작은 목소리로 며느리를 찾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에미야, 미안하다. 내가 너를 평생 싫어하고 미워한 게 모두 내 잘못이었구나. 용... . 아마도 곧 나는 저승길로 가야 할 모양이다. 나를 위해 성호를 그으며 기도해 줄 수 있겠니?”
얼마 만인가. 무섭기만 하고 쌀쌀하기 그지없던 시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용서하라고. 힘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는 절절한 시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시집온 지 60년이 지났는데. 참으로 허망한 미움의 세월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가시밭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며칠 뒤 시어머니 좁쌀 부인의 상엿소리가 소란이 볕 바른 골짜기에 멀리 퍼졌다.숲에서는 솔새가 울고 있었다. 삼우제를 지내고 산을 내려오면서 화순은 마음속으로 자신도 모르는 독백을 한다.
“천주여, 모든 게 죄 많은 제 탓입니다. 이것이 저에게 주신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녁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에 묻혀가고 있었다. 대물림의 카르마와 함께.
첫댓글 소설도 쓰셨군요
대단하군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