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 1인 길이 : 10.60미터 너비 : 12.60미터 전고 : 3.50미터 익면 : 21.7제곱미터 공시중량 : 3,795킬로그램 표준중량 : 6,473킬로그램 전비중량 : 7,130킬로그램 동력 : 융커스 유모 004 B-1 터보젯 2기 종횡비 : 7.32 최고속력 : 900 km/h 항속거리 : 1,050 km 상승한도 : 11,450 m 상승률 : 1,200 m/min 추력대중량비 : 0.28 무장 : 30mm MK 108 기관포 4문(A-2a형은 2문) 55 mm R4M 로켓 24기 250kg 폭탄 2기 / 500kg 폭탄 2기(A-2a형 한정) |
[ME-262 슈발베 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이 개발한 제트 전투기/전폭기[1] 이다 '슈발베는 독일어로 제비 라는 의미의다 이 전투기는 사상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 전투기로 융커스 유모 터보젯 엔진을 2기 장비한 이 전투기의 성능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모든 전투기보다도 빨랐으며 조금만 일찍 배치되었더라면 공중전의 전세를 바꾸어 놨을지 모를 전투기의 혁명을 가져온 기체였다]
[ME-262 의 앞모습 영낙없이 샹어의 모습을 닮았다. 슈발베(제비) 보다는 샤크가 더 어울렸을 기체인데..ME-262 는 피스톤엔진 장착 전투기의 한계 (시속 800Km 이상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를 뛰어넘기 위해 제트엔진 장착과 후퇴익기술등 당시 최첨단 전투기 설계기술을 도입한 최초의 기체이디고 하다]
[ME-262는 대전초반인 1941년 첫 비행이 이루어졌으나 장착하기로한 제트엔진의 개발지연으로 2차대전 끝인 1944년 4월에 대서야 배치될수 있었고 무서운 속도와 무장을 가진 기체였으나 배치대수가 너무 적었고 제트엔진의 수명이 짧고 불안전해 실제 운용에는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ME-262 의 기본무장은 기수의 4 기의 30 mm MK 108 cannons (A-2a: two cannons) 과 주익밑에 24 × 55 mm (2.2 in) R4M rockets 을 장착할수 있었다. 그외에 폭격무장타입 기체에는 250~500 킬로그람의 폭탄장착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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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262 들이 장착한 유모사의 제트엔진은 수명이 워낙 짧아 수백시간에 불과했다. 따라서 몇번 비행을 마친후 엔진 교체작업을 해야했기 때문에 피스톤엔진 장착 전투기들이 비해 기체를 비행시킬수 있는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문제점과 기름을 엄청나게 퍼먹는 괴물이라 당시 유류사정이 최악이었던 독일입장에서 마음대로 굴릴 기체는 아니였다 (ME-262 한대가 먹는 기름이 피스톤엔진 기체 4대를 굴릴 양이였다나..) 하지만 시속 900 km/h (559 mph) 가 넘는 스피드와 30밀리 4정의 무장을 한 기체에서 오는 파괴력은 연합군의 모든 전투기를 떨게 할정도로 엄청난 성능차를 보여준 기체가 바로 ME-262 인것이다]
전후 Me262와 미군의 신예 제트 전투기인 F-80 슈팅스타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았던 척 예거는 "기술자들한테 F-80과 Me262의 성능이 거의 동등하다고 말했더니 그들이 기겁했다"고 회상할 정도.
[ME-262 의 조종석 모습 피스톤엔진 장착 전투기들이 속도계와 고도계등 간단한 계기만으로 이루어진데 반해 이때부터 꽤 복잡한 형태의 조종석이 등장하게 되는데 대부분이 엔진에 관계된 계기였다]
[많은이들이 세계최초로 개발된 제트전투기로 ME-262 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1940년도 초반에 독일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은 초기형태의 제트전투기를 띄워연구하고 있었고 이를 꾸준히 개량중에 있었다. ME-262 는 이중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전투기이며 이미 이당시에 영국 역시 글로브마스터( Gloster Meteor) 를 실전배치중에 있었다 (다만 영국공군은 이 기체의 비밀이 세어나가는것을 막기 위해 영국영토안에서만 운용하였다)]
[ME-262 의 등장으로 전투기의 개념은 기존의 피스톤엔진장착 리시프로 전투기에서 제트엔진 장착 전투기로 넘어오게 되는데 ME-262 의 놀라운 성능을 몸소 체감한 미국,영국, 소련은 전후 독일의 전투기 개발기술을 빼돌려 각각의 제트전투기로 개발하게 되는데 이중 미국은 F-86 세이버로 소련은 미그15로 그 완성을 보게되며 이 두기체는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 각자의 제트전투기끼리 세계최초의 제트전투기 공중전을 벌이기에 이른다]
[ME-262 의 설계에는 당시 최첨단의 항공역학 기술이 모두 동원되었는데 축류식 제트엔진도 그중 하나지만 주익에 후퇴각을 준 후퇴익의 도입은 이후 모든 제트 전투기의 기본 설계가 될 정도로 영향이 엄청났다. 원래 후퇴익은 고속비행중인 기체의 흔들림을 막을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지만 마하1을 넘어서면서 발생하는 진동이나 조종불능을 막는데 매우 유효한 기술이라는점이 밝혀지면서 현재까지 모든 전투기의 주익설계의 기본이 되었다]
[ME-262가 장착한 유모사의 제트엔진은 당시 기술의 한계로 기체내부에 내장하지 못했지만 이후 미국은 이런 독일의 축류식 제트엔진기술을 도입해 소형화함으로서 기체내부에 탑재가 가능했다. 하지만 소련은 영국의 원구형 제트엔진기술을 받아들여 동체를 글림하게 만들 기술이 없었으며 이로인해 기수 부분이 뻥뚤리고 동체가 약간 통통한 시거 모양의 형태를 갖는 기체형태가 되었어야 했다. (미그15~21의 기체설계가 비슷한 이유이다 )]
[ME-262 의 배치중 제1목표는 연합군의 폭격기 요격임무였다. 당시 날이면 날마다 밤낮으로 독일을 두들겨 대는 폭격 때문에 독일군은 폭격기 노이로제에 걸릴지경이였는데 12정의 각종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서로의 사각을 커버해주는 잘 짜여진 박스형태의 배치로 요격하기 까다로운게 바로 미공군의 4발 중폭격기 였다. 사진은 이륙중인 B-17F형의 모습으로 2차대전 독일의 폭격기 부대의 주력기체이다]
[적게는 수십대 많게는 수백대에서 천여대까지 동원된 대대적인 폭격은 독일의 패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하늘의 요새 (Flying Fortress)로 불리는 B-17들의 대대적인 폭격은 독일에 있어 공포의 대상이였는데 새로 배치된 ME-262 들의 임무는 이들 4발 폭격기를 우선 요격하는 임무였다. 기수에 집중된 4문의 30밀리 캐논은 몇발만으로 단단하기로 유명한 프라잉프트리스들을 격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영화 레드테일에 등장하는 352 부대의 임무중 하나가 이런 독일공군기에 대해 아군 폭격기를 보호하는 가드 임무였다]
[ME-262 는 철저하게 미공군의 4발 중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설계되었는데 기수 부분에는 4문의 30 mm MK 108 캐논을 장착하기도 하였지만 때론 50밀리 캐논을 장착한 기체도 있었고 여기에 움직임이 느린 폭격기를 단박에 박살낼수 있는 55 mm (2.2 in) R4M rockets을 장착하기도 하였다. 뭘 맞던지 간에 몇방만 제대로 맞으면 단단하기로 유명한 B-17/24들도 이렇게 두동강이 나기 쉽상이였다]
히틀러: 훌륭하군. 그런데 이 전투기는 그렇게 빠른가? 괴링: 그렇습니다 총통. 연합군 놈들의 그 어떤 전투기보다도 빠르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면 이 전투기에도 폭탄을 실을 수 있나? 괴링: 네, 이론적으로는 1, 2발 정도 탑재할 수 있습니다만... 히틀러: 좋아. 이 전투기에 폭탄을 달아! 처칠 놈한테 폭탄을 먹이는 거야! Me262는 폭격기로 생산한다! |
더욱이 이쯤 되면 연합군의 무자비한 전략폭격 덕분에 사방으로 흩어진 메서슈미트 사의 생산라인에서는 전문공도 기술자도 자원도 연료도 부족했다. 그러니까 대충 구색만 갖춘 허접한 공장에서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풋내기 기술자들에 의해서 조립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제대로 된 시설에서도 그만큼 애를 먹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이쯤되면 제대로 안습이다.
[ME-262 는 문명 당시 독일공군이 내세울 수퍼웨폰중 하나임은 누구나 무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기체의 등장으로 전황을 180도 뒤집기에는 어려므루 무리였다. 일단 생산대수가 적었으며 기체가 불안전하여 운영에 많은 애오사항이 따랐다. 덕욱히 전후 이를 제대로 운영할수 있는 숙련된 파일럿이 적었으며 설령 남아있던 에이스들도 기체 운영중 불안정한 성능으로 기체와 같이 유명을 달리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ME-262 는 이륙과 착륙시에 기체의 속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으며 연합군은 이때를 노려 기지 근처에 매복하고 있다가 급습하여 격추하는 전과를 많이 올렸다 대전말에 등장하는 FW-180 포케불프의 임무중 일부는 이들 급습으로 부터 아군의 ME-262 를 보호하는 임무를 가진 부대 (아군으로 부터 오인공격을 막기위해 배면을 빨갛게 칠하고 스트라이프 무늬를 엏었다)가 따로 존재했었다 ]
[ME-262 들은 대전말까지 꾸준하게 생산되었기 때문에 현재 보관되어 있는 기체는 꽤 많은편이다.]
[하지만 실제로 비행가능한 기체는 얼마 없는데 기체 자체는 독일항복시 압수된 기체가 많았지만 제트엔진인 유모사의 엔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비행가능하게 복원된 기체는 주로 미국제 JE-85 엔진을 장착하여 복원된 기체다 대부분이다]
[ME-262 는 복수에 눈이먼 히틀러에 의해 폭격기로 개발을 요구받았으나 갈란트 같은 선각자들은 이 기체의 성능를 일찌감히 눈치채고 전투기로 개발할것을 지시했다. 뒤늦게 이를 안 히틀러는 노발대발했지만 워낙 전선에서 요구가 강력했으므로 할수없이 전투기로 사용을 허가했다. 하지만 일부 기체중에는 이처럼 250~500킬로 폭탄을 2~1기 장착한 전투폭격기로 사용을 고려하기도 했다]
[착륙중 대파된 ME-262 실제 에어쇼에서 있었던 일로 기체중심이 앞으로 치우친 ME-262 의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전방의 랜딩기어를 앞으로 빼기도 하고 후퇴익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결국 100% 해결해내진 못했고 실제로 전투중 추락보단 이런 사고로 인한 기체손실과 특히 에이스들의 사망이 많은 불완전한 기체가 바로 ME-262 였다]
Postwar variants:
(일본도 제트전투기를 가질뻔 했다!! Nakajima J9Y Kikka 와 Nakajima Ki-201 Karyu 는 같은 동맹군으로 독일의 ME-262A 설계도를 일본으로 넘겨주어 그대로 만들게 했는데 독일과 같은 엔진제작기술이 부족해 2대만 만들어지고 종전을 맞이했다. 설계도를 전달하기위해 U-보트등을 동원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대서양에서 활동하던 U-보트 늑대무리들이 동해근처에 얼씬했다니..)
인류 최초로 음속을 넘었을지도 모르는 전투기이다. 1945년 4월 9일에 전투 도중 한스 뮛케(Hans Guido Mutke)가 전투중 고도 12,000m에서 시속 1,100 km/h 을 기록했다고 보고 했기 때문(해당 고도에서 음속은 1,062 km/h). 링크
단 이 기록은 40도로 강하하고 있던 당시의 속도기 때문에 공식 기록이 될 수 없으며 지금도 논쟁중이다.
[2] 정확히 말하자면 Fw109와의 경쟁 당시의 독일군 관계자들의 제트엔진에 관한 무관심 덕분에 Fw109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였다 또한 초기 제트엔진의 고질적인 문제와 Jumo004 엔진이 Me262에서 더 좋은 성능을 보여주면서 계획이 취소되었다.
[3] 급격하게 러더를 차서 사이드 턴을 걸었을때 엔진이 정지하는 문제는 당시의 축류식 터보젯 엔진 공통의 문제로, 엔진으로 공기가 제대로 흡입되지 못해 엔진이 정지되는 증상이다(이후 J79엔진에 가변 터빈을 채용해서 해결됐다). 엔진수명의 문제는 독일 사정상 레어메탈의 수급이 어려워 고온과 고압에 견뎌야 하는 엔진 각 부품의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4] 이 의견에도 일리는 있는 것이, 당시 연합군도 독일군도 지상지원을 주력으로 하면서 공중전 역시 수행할 수 있는 쌍발 고속 전투폭격기를 활용한다는 개념에 상당히 집착했다. 영국의 모스키토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 다만 독일군은 거기에까지 국력을 나눌 여유가 없음에도 그런 짓을 시도한 것이며, 이는 사실 1943년 당시 독일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던 일이었다. 독일이 전투기 생산을 폭격기 생산보다 중시하게 된 것은 1944년 들어서의 일이었다.
[5] 사실 밀히의 실각은 Me262 생산이 아직 본격화되기 전인 44년 8월의 일이었다. 실각의 이유는 262의 생산보다는 독일 공군의 전투기 조달 효율이 낮고 본토방공전 전략에서 히틀러 및 괴링과 의견 충돌이 심했던 것이 더 크다.
[6] Me262가 전후의 후퇴익기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Me262가 현대 제트 전투기의 원조라는 주장까지는 지나친 과장이다. Me262는 실전배치에 이른 최초의 제트 전투기로만 보는 것이 옳으며, 그나마 영국보다 딱 3개월 빨랐다(성능은 Me262가 더 나았지만, 신뢰성은 영국 쪽이 나았다). 제트엔진의 개발 또한 영국의 프랭크 휘틀이 독일보다 2년 빨랐고, 독일만의 개념이라 할 수도 없었다.
[7] 국내 군사잡지에도 제작과정과 완성후 비행모습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제작과정의 주체는 독일계 미국인이었으며 2차대전당시 독일항공기술관련계통에서 밑바탕을 다진 사람으로 모든 부품을 당시 방식으로 일일이 제작했다고 한다. 다면 항전장비와 엔진(F-5전투기 엔진을 썼는데 F-5전투기 엔진이 크기와 중량이 훨씬 작으면서도 추력은 더 강했기에 무게중심등을 맞추고자 겉에 원 엔진 모양의 커버를 추가했으며 추력도 제한 - 조종간에 제약을 걸었지만 좀더 힘을 써서 조작하면 제한된 추력이상을 낼수 있다고 - 했다.)은 현대제품을 사용했으며 주문제작으로 판매한다고 했다. 완성품으로 나온 기체는 복좌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