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구정새해에 신조동기생들의 만사형통을 빕니다. 아래 본문 말미의 교번은 20대 젊음의 기백으로 만세를 부른다는 뜻을 듯을 담았습니다. 아래
대통령탄핵 局面의 不可思議
1. 제9대 육참총장 이형근 대장은 ‘군번 1번의 외길 인생’자서전에서 6.25 남침당시 육군 지휘부에 통적(通敵)분자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6월 24일 밤에 열렸린 육군장교클럽의 댄스파티와 6월 25∼27일의 국군후퇴를 반격, 북진 중으로 허위보도 한 중앙방송 등 8가지를 “6.25전쟁 10대 불가사의”로 열거하면서 "언젠가는 이 의문점에 대한 확증이 제시되어야만 국가백년대계가 보장 된다“는 요지의 말씀을 남기셨으나 그 후에 확증된 연구결과를 저로선 찾지를 못했습니다.
2. 국방부 위촉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중앙위원’(4.3위원)으로 3년여 활동하다가 왜곡된 진상조사 보고서(보고서작성 기획단장: 당시 아름다운 재단 상무이사 박원순)의 채택을 거부하고 결재란에 ‘부동의’ 서명 후 사퇴를 했던 필자는 사퇴 4년 후 한 북한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미 10년이 지났던 1997.5.26일 발행의 노동신문 특집보도(“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렬사‘: google에서 탐색)를 접하게 되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 이 특집보도에는 4.3무장폭동 발발 1년 4개월 전인 1947년 초에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사운 통일혁명 렬사’로 소개되는 성시백이 김일성의 회중금시계를 선물로 받는 장면부터 서울도착 후 전개하는 방대한 규모의 대남공작활동 전모가 소개되는 바, 육군의 ‘사단’ 예하 ‘대대’와 ‘헌병대’, ‘사관학교’, ‘육군정보국’까지 ‘조직선’을 늘려 국군와해공작을 했고 당시 서울에서 활동했던 ‘유엔 임시조선위원단’ 조직의 와해 및 방해공작과 김구 선생에게 자신을 ‘김일성 특사’로 밝히며 1948년 4월의 ‘남북연석회의’ 초청장을 전달하는 내용 등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10년전 노동신문 특집보도”로 google에서 탐색됨)
4.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성시백이 “남한의 각 정당과 산하단체를 정당협의회로 묶는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선전공작’을 하면서 ‘조선중앙일보’와 ‘광명일보’등의 10개 신문사를 경영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김일성으로부터 ‘서울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밀명을 받고 대북무역상으로 활동했기에 북한의 비밀 화폐개혁(47.12)에서 발생된 무한대의 조선 은행권(남북공용)을 선박으로 운반했다고 합니다. 북한전문가는 남쪽의 화폐개혁이 6개월 지연됐던 것으로 알려주었으나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던 중 최근, 한국은행 발권국장 출신의 한 지인에게서 그 날짜가 1950년 8월 22일이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성시백에게 가용했던 무한대의 공작자금이 4.3사건을 비롯해서 그 후의 대한민국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4.3위원 활동 당시에 확인됐던 사실은 5.10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제주도에는 “목포까지 김일성군대가 왔다. 이제 곧 토지의 무상몰수 무산분배다. 친일경찰을 사살하라”는 선전선동이 통했고(48.5.8일자 동아일보) 경찰관 살해 현상금(순경:1만원, 형사:3만원, 총경 100만원, 당시 쌀 한가마니 300원)이 걸려있어 그 자금의 출처가 몹시 궁금했었는데 그 의문과 함께 군번 1번 이형근 장군의 의문점에 대한 확증도 아울러 풀렸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4.3위원 활동당시에만 알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4.3관련 정부차원 사과도 막았다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습니다.
6. 성시백이 직접 창간했다고 하는 ‘조선중앙일보’의 4.3사건 당시의 관련기사 몇 개만 타 신문들과 단순비교해도 그의 4.3사건 개입사실이 쉽게 이해되어 잃어버린 국군과 경찰의 명예회복에도 기여한다는 믿음에서 이 특집보도 내용의 공론화를 위해 여러 제목으로 글을 써 왔으나 오늘까지도 관심을 끌지 못했음을 통탄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박대통령 탄핵정국에도 6.25의 10대 불가사의를 능가하는 많은 불가사의 국면을 바라보며 그 배경에도 성시백 2세가 있다는 가능성에도 온 국민들의 관심이 지향되어야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생각에서 또 이 글 쓰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7. 필자는 최근의 다른 글, “대한민국 국가불행 발아의 씨앗”에서 북한의 무상몰수/무상분배 토지개혁(46.3)으로 북한 농민들이 한 때 스탈린/김일성 만세를 불렀으나 그 토지의 집단농장화로 이제는 300만이 굶어 죽고 3대 세습독재가 이어져도 거리의 데모한번 못하는 인권부재/자유부재의 동토에서 살게 된 그 자체를 대한민국 국가불행 발아의 첫 원인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새빨간 거짓을 덮기 위해서는 입을 막는 내부통제가 불가피했기에 북한은 토지몰수가 곧 친일파 지주/관료들의 척결이었음을 강조하며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계속 활용하다 보니 대한민국에서는 정신대 위안부문제가 오늘까지도 거론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대한민국은 토지의 몰수를 안했기에 친일파 숙청도 없었다면서 미군까지도 일본군을 계승한 점령군으로, 대한민국도 미국의 식민지라고 몰아 맥아더장군의 동상철거 운동까지 있었던 것 아닙니까? 김일성의 내각에는 친일파가 등용되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완전히 배제했었고 지주와 소작농을 모두 살린 이승만 박사의 신의 한수, 토지의 유상인수/유상분배는 설명을 생략합니다. 아무튼 북한군의 6.25 남침 시 우리 농민들에겐 각자에게 지켜야 할 개인소유의 토지가 있어 공산당을 물리치는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8. 두 번째 ‘국가불행 발아의 씨앗’은 스탈린만세/김일성 만세를 숨어서 불렀던 사실에 기인하며 공작자금을 숨어서 받고 팔자를 고쳤던 행운아(?)들이 북한이 망하는 날에는 그 신분의 노출로 살 수가 없게 된다는 걱정에서 북한의 세습 독재 권력에 절대충성을 강요받는 종북의 원조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저는 금 번의 대통령탄핵정국을 바라보며 20년 전의 대남공작 찬양 특집보도에 대한 침묵을 제 3의 국가불행 발아의 씨앗으로 강조하고자 합니다. 구국의 태극기 깃발을 들고 서울역과 동대문 여의도 시청 앞으로 향하는 애국시민들의 머릿속에 6.25남침도 88년 KAL기 폭파도 모두 부인하던 북한이 왜 97년 5월 26일의 시점에서는 대남공작을 특별히 인정/ 찬양했을까를 생각하게 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이 바로 5.18사건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제 2차 판결(97.4.17: 전두환 사형, 노태우 무기징역)직후였다는 사실에도 특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9. ‘5.18영상고발(A Bill of Indictment)’과 ‘5.18이 북한작전이었다는 25개 증거들’등의 자료를 접하신 독자들께서는 20년 전의 북한 대남공작 찬양보고가 ‘5.18민주화는 북한 특수부대 작전의 공로’였음을 강조하는 신호탄이었다는 사실에도 무릎을 치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김, 노 두 전직 대통령이 북한이 찬양했던 대남공작의 중단조차 공식요구하지도 않고 각각 찾아가는 정상회담을 추진했겠습니까? 당시의 청와대의 참모나 관계 분야 장관들은 이 특별찬양보도의 존재를 대통령에게 보고는 했을까요? 아니면 보고를 받고도 무시했던 간에 이 침묵은 대한민국에 결정적 재앙을 불러온 최대의 국정논단이었던 것입니다. 6.25 국군포로의 송환요구도 안/못한 채 63명의 미전향장기수를 북송해 주고 46명의 신문방송통신사 사장단 46명을 인솔하여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짐하게 하고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던 주장 등이 망국의 국정농단 아니었습니까? 당시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오늘 현재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박 대통령도 친구하나 잘 못 둔 국정농단의 책임을 저야 하겠지만 탄핵까지는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최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에서 비롯됐던 한 대통령 출마후보자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대북굴종에 쏟아지던 비난의 함성이 최순실 파문으로 사라진 것을 통탄하며 다시 터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10. 성시백으로부터 무한대의 공작자금을 선물로 받았던 종북의 원조는 누구였을까요? 이들이 불가사의한 대통령 탄핵정국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들에게는 박 대통령이 여자 친구하나 잘못 둔 것도 죄로 보이겠지만 보다 큰 죄는 지난 20년 지속해온 평화공존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고 북한정권에 대하여 할 말을 분명하게 하면서 북한의 체제변화까지 시도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젊은이들이 ‘북한 영웅 1호'의 대남공작 찬양보도의 의미를 알고 ‘대한민국 국가불행’을 부르는 발아의 씨앗’ 3가지에 눈을 뜨기만 하면 앞으로의 촛불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임을 확신합니다.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대부분의 국회의원들도 제 정신을 찾고 탄핵결의안의 번복까지도 고심하게 되면서 헌법 재판소도 자랑스러운 자유 대한민국을 위한 현명한 최종 판결을 내려 주리라 확신합니다.
11.구정 새해에는 촛불도 태극기 물결도 점차 사라져서 온 나라에 조용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지난 3,4개월 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 국방과 치안유지의 책임을 완벽하게 수행해 온 육해공 해병의 국군장병들과 경찰관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며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제안합니다. 대한민국 경찰만세! 대한민국 국군만세! 자유대한민국 만만세!!
2011번
2017.1.25.
첫댓글 1.오늘날 성시백 2세는 과연 누굴가요?
박지원? 박원순? 문재인? 백락천? ..?
2.그게 누구든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오늘의 상황.
3.먹히면 적화, 태극깃발로 이기면 자유, 평화!
4.인강! 이런 역사와 배경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나라사랑 그 정신!:-안일한 불의의 길 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걷는 모습 존경합니다!
제목은 적절할런지요? 그리고 내용면에서 무리한 표현은 없는지요? 더 추가할 것은 없을런지요?
제 글에 대한 책임은 저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어떤 특정인에게 고발된다면 감옥을 갈 각오를 하고 있으니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주시면 포함을 시킬 것입니다. 성시백 2세는 눈에 다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북가의 내통! 지난 5-10년 간 말이 왔다 갔다 바뀌는 사람들은 우선 의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부분에 강조할 것은 엇을런지요.
태극깃발 물결시위에서 구호로 등장해야 할 추가 내용은 없을 런지요. 12시간을 더 기다리며 보완 보충 후 내일 오후에 대외로 발송할 것입니다. 신조회원님들의
신조회원님들의 많은 조언을 당부합니다. 이곳에 답글이 불편하시면 jajulbo@gmail.com으로 주셔도 좋습니다.
기타 란에 수정 할 부분을 지적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두 사안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인데요,
불사사의를 풀어 내는 열쇠를 지적 한 것이라 생각 됩니다. 좀더 쉽게 표현 할수 있으면 설득력이 더 있을 것입니다.
와장창형! 12개 부분의 상세한 지적, 고맙게 생각하며 반영했습니다.
그 후로도 2회의 수정을 또 했습니다.
이 글의 내용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저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많은 글을 쓰면서 누가 해 주기를 바랬던 것 까지 거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성시백을 소개하려면 또 길어지기 때문에 생략했습니다.
이제 어느 한 두분께서 OK신호만 주시면 외부로 발송할 것입니다.
두가지 사안이란 6.25의 불가사의와 이번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 를 말합니다. 10대 불가사의로 빚어진 6.25전쟁 처럼 이번엔 대통령 탄핵 주변의 불가사의 한 것들을 눈 뜨고 밝혀내 풀어 내 제2의 6.25전쟁을 막아 내야 할 것입니다. 하장춘
대외로 발송해도 무방하지만, 문제는 언론들의 반응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 사장은 거의 모두가 껍데기... 실세들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소속원들... 이놈들이 언론을 좌지우지 하는 가운데, 사설도 올바로 쓸 수가 없는 듯합니다. 1월 24일자 중앙일보 사설에서 "황교안 대행은 대선 후보로 출마해서는 안 된다" 고 못박는 논지를 읽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빨갱이들은 아무나 되고, 황 대행은 안 된다? 난국 수습의 책임만 져라? 이런 어처구니 없는 논지를 보수라고 믿었던 신문
사설에서 읽었습니다. 물론 E-mail로 절독한다고 항의했지요. 이런 세상에 한형,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합니다.
언론은 2003년 당시에도 국방부 2명 경찰위촉 1명, 계 3명의 동반사퇴도 기사화해 주지 않았고 왜곡된 ㅂ고서를 기초로 한 대통령의 정부측 사과만을 보도함으로서 국군과 경찰의 명예는 떨어지고 말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그동안 500여개의 글을 쓰면서 누가 정곡을 찔러 주기를 바랬지만 왜 4.3위원이 되었었냐고 물어주는 사람도 없었씁니다. 제 글에는 사람들이 눈을 돌리기에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을 내 걸고 옛날 이야기를 또 반복한 것입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 -----다들 더 중요한 바쁜일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더 적절한 제목은 없을런지요?
테니스 운동을 함께 하는 동기의 제안을 받고 제목을 다소 바꾸었씁니다. 이것이 한결 나아보입니다. 더 함축성이 있어서!!
6.25전쟁 공작책은 성시백, 대통령 탄핵 공작책은 누구인가?
6.25 선행공작 책은 북한이 스스로 공개했다고 보아야지요. 우리 측이 침묵을 하고 만 것이지요. 대통령 탄핵에 대해선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라를 구하는 길은 제2의 성시백을 의심하고 최대의 경계를 해야만 하겠기에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어제 월요일 부터 단지내 도로의 국기계양대에 태극기가 걸렸고 아파트 게양대에도 하나 둘 씩 늘어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대통령 탄핵 공작금은 누가 공급을 하는지도 괌심을 가져야 할 텐데 ----동네에는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를 서로 대화 속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답니다.
존경하는 인강!
어제 청계산에서 주신 2차초안(2017.1.23.16;50) 집으로 돌아와 숙독하였습니다.
내용 참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제 수 차례 말씀드린바, 우선 1중대 모임에서 ,이러한 忠貞의 글들을 육사 20기의 이름으로 총동창회나 기타의 매채로 흘러갈 수 있도록 뜻을 모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굳이 지적하라면 소생은 "성시백2세 자결" 간판보다는 *憂國愛民*이 어떨까 해요.
인강, 그 무거운 짐을 혼자 떠맡아 지고 있는것 같아 몹시 안스러워 보여요. 건강 해칠가봐 무엇보다 염려스럽소. 글 본후 느낌을 솔직히 얘기한다면, 좋은 내용에 훌륭한 관점인데, 소재가 쉽지 않은데다 내용도 되돌아 정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경우이오. 아무래도 독자 편에서 쉽게 이해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외람되오나 간단히 얘기한다면, 제목을, "不可思議의 類似性을 생각하다 <6.25 勃發과 오늘의 대통령 彈劾 정국에서>", 구성에서 1번과 2번을 바꾸면 어떠할런지?, 9번 내용에서 '16대 대통령선거' or ‘97년 5월 26일’를 삭제한다면, 쉽게 흐럴것도 같은데? 이젠 짐 내려놓고 좀 쉬시구려.
대가야 형! 고맙습니다. 총동창회 안보논단에도 제안이 있어 12항의 문구를 수정하고 돌아오니 --좋은 충언을 주셨구료.
한밤을 다시자며 더 생각을 해서 아침에 일어나 한 번 더 보완해 볼게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을 이야기 하려니 힘이 들지요. 그래서 1 2 34 번의 번호를 붙이는 방법을 구사한 건데 ------
대가야 형의 뜻을 이해하고 문맥을 한 번 더 정리하여 여덟번째 초안을 반영해 놓았습니다. 이제 대가야 형이 신호를 주시면 Draft를 뗄 것입니다.
대가야 형의 뜻을 읽고 문백을 다시 다듬어 8차안을 올렸씁니다.
12개 항을 11개로 줄이고 끝에는 교번을 붙여 놓았습니다.
생도시절로 돌아간다는 뜻도 포함디겠습니다. 한번 더 읽어 주신 후 싸인을 주시면 이젠 (초안)표지를 떼고 발송을 하렵니다.
인강 ! 수고가 대단히 많습니다~
추가로 종북 극좌파들의 활동과 금전흐름에 대한 공안기관의 적극차단노력촉구를 요망합니다
청암형! 맞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6.25발발 당시에도 북한 화폐개혁에 적시에 대응했더라면 상황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의 종북세혁은 97.5.26이후에 내통관계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하며, 가용한 자금도 다양하게 확보될 것입니다 차단을 잘 못하면 위태로워 지는 것이지요. 어제 총동창회 신년 교례회 모임에서 김 충배 장군이 휴대해 갔던 글을 복사하여 전 참가자들에게 전달케 했던 것은 축복이었고 ---- 그 글을 읽게되면 종북세력내의 금전 흐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살피는 전문가들이 나타나지 않으까요? 어제 함께 다녀 온 것을 다행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구정 마지하시게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