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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자전적에세이 [☆현심이☆]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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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나그네를 위한 연가
[현심이]
안현심 자전에세이 / 주)천년의 시작(2018.12.15)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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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핏줄의 내력
현심이 12 / 핏줄의 내력 20 / 작은싸리재 신화 34 / 젊음, 수틀에 갇히다 40 / 거꾸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46 / 산골 소녀의 편지 52 / 설날 이야기 56 / 사막에서 꽃 피우다 60
제2부 우담바라는 왜 피는가
우담바라는 왜 피는가 68 / 우리글을 갈고닦다 77 / 꿈꾸는 학교와 아이들 83 / 구비문학을 찾아서 87 / 학회의 일꾼으로 97 / 내 죄를 씻을 수 있을까 103 / 눈물은 어떻게 꽃이 되는가 110 / 싱글맘, 그 아픈 시간들 117 / 주인이 되고 싶다 124
제3부 고맙다, 아가야
어머니의 초상 130 / 사랑이었네 140 / 어매의 햇살 145 / 큰언니 150 / 자매 이야기 154 / 삶의 여울목에서 160 / 그 계절의 골짜기 165 / 음악과 춤과 시 171 / 탯줄의 힘 174 / 고맙다, 아가야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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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심이
안현심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면, 봄널 마루에 누워있는 한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아이를 떠올리면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상기되어 온다. 할머니와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가 여럿 있었는데, 왜 그렇게 외로운 모습으로 기억되는지 모르겠다.
병약하여 초등학교 1학년 땐 한 달 동안이나 결석한 적이 있다. 기억 속의 그 모습도 아파서 누워있을 때였던 것 같다.
누워서 아래체 용마루를 바라보면 비눗방울 같은 것이 춤추며 하늘로 오르곤 했다. 허약해서 착시현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아지랑이였는지 모르지만, 덩달아 하늘로 오르는 비눗방울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돌아누우면 흙벽과 마주했는데, 지금도 그 흙냄새를 잊지 못한다. 특유의 향기에 끌려 손톱으로 긁어 먹어보기도 했다.
흙벽과의 사랑, 그리고 아지랑이, 이런 이미지로 시작되는 외로움은 자라는 내내 계속됐다.
넌 참 이상한 아이였어.
꽃을 볼 때마다 피고 지는 이치를 꼬치꼬치 캐물어 곤혹스럽게 하더니 커서는 가지 말라는 길만 골라서 들어갔지. 주제도 모른 태 태평양을 넘고고 터무니없는 꿈만 꾸다가 놀림감이 되곤 했지.
무엇이
너를
외롭게 하더냐?
겨울 강변에서
큰고니 날아간 자리
그리던 아이야
무엇이
너로 하여
꿈꾸게 하였느냐?
-「현심이」전문
아이들과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한 채 늘 따돌림당했다. 공부도 잘하고 바보스럽지도 않았지만 언제나 혼자였다. 이유는 위험한 일에 천방지축으로 덤벼들지 않는 성격 탓이었던 듯하다.
초여름에는 뽕나무에 맛있는 오디가 주렁주렁 열렸다. 뽕나무밭 넓은 이랑엔 곡식이 자라고 있었는데 오디를 따 먹다 보면 곡식을 밟기 일쑤였다.
밭 주인은 학교에 항의했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주의를 시키다가 혓바닥 검사를 하기도 했다. 오디를 먹으면 혓바닥이 시커멓게 물들기 때문이다.
개구쟁이들은 내일 혼날망정 또 뽕밭을 헤맸다. 나는 그게 싫었다. 자연히 그 대열에서 빠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같이 행동하지 않은 비겁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은 심하게 빈정댔고, 마음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아이들 마음이 나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뿐이었다.
등하교 길을 혼자 다녔다. 돌멩이 벗 삼아 냇물을 벗 삼아, 때론 도랑가에 물든 담쟁이 단풍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면서 사유를 키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밑에 가면 과실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경쟁하듯 과실 줍기에 바빴다. 알밤을 옹기 항아리 가득 모아 상당한 돈을 벌어들인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런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는 늘 걱정이었다.
“저 놈의 가시내는 무엇이 될라고 저렇게 욕심이 없을꼬.”
세상 욕심 다 없어도 한가지는 있었다. 가슴에 꼭 품은 소중한 꿈, 그것은 아이들이 생각지도 못할 형이상학적인 세계였다.
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늘 무언가를 썼다. 미지의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며 외로움을 풀었다.
내 속엔 시가 자라고 있었다. 어설프지만 시의 싹이 고개 내밀고 있었다.
고향 시냇가엔 큰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해마다 유월이면 신부의 드레스를 연상시키듯 하얀 꽃이 눈부시게 피었다.
냇가에서 빨래할 때 바람이 불면 하얀 꽃잎이 머리 위에, 옷위에, 빨래 그릇 위에 마구 떨어졌다. 그것이 좋아서 할 일 없이 나가 앉아있기도 했다. 가을이 되면 마른 잎들이 빙글빙글 내려앉아 어디론지 흘러갔다.
가난했지만, 어릴 적 살던 집은 작은 왕국이었다. 열두 살 되던 해 빚잔치로 넘겨주기 전까지는……. 아름드리 밤나무, 살구나무, 배나무가 집을 에워싸고 있어 살구나무집이라 불렸고, 철철이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언젠가 뒤뜰에서 소꿉놀이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마루에 엎디어 섧게 우셨다. 그 울음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설움을 토해 내던 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면 녹색 이파리 사이로 빨강, 파랑, 노란색의 새들이 팔랑거렸다.
그 풍경들을 보며 알 수 없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내면화했다.
해는 늘 매봉산 꼭대기에서 솟아올랐다. 둥근 해가 고개 내밀면 어둠에 잠겨있던 마을이 일시에 빛났다. 아침마다 산 위에서 퍼지던 금빛 햇살은 지금도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내가 첫울음을 터뜨린 것은 깊은 겨울의 햇살 퍼질 무렵, 어머니는 첫국밥을 아침 식사와 더불어 드셨다고 한다.
햇살 퍼질 때 나온 아이는 예언적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짱짱한 햇살은 가시내에게 몹시 불길한 징조였다.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안 된다던 남성중심사회에서 잘난 여자는 남자를 기죽이는 캐릭터에 불과했다.
어머니의 자궁문을 밀고 나온 것은 깊은 겨울의 동틀 무렵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내가 왜 이렇게 실팍허댜. 할머니의 퉁명스런 첫인사가 또렷이 들려왔다. 가시내가 첫울음을 터뜨렸을 때 짱짱한 햇발은 부챗살로 환했다.
인디언들이 지은 내 이름은
용감한 하늘 같은 사나이
저년은 햇살 퍼질 때 낳아서 팔자가 셀 겨. 상서로운 기운은 머슴애에게만 좋이 쓰이고 가시내에게는 금기라고 질투하던 하늘의 남신 문화. 어둠에 존재하기를 강요당하면서도 겨드랑이 깃털을 포기하지 않았다.
콘도르를 숭배하는 내 이름은
용감한 하늘 같은 사나이
-「용감한 하늘」전문
딸애가 뜬금없이 생년월일을 물었다.
“엄마가 인디언이었다면 ‘용감한 하늘 같은 사나이’라고 이름 지어졌을 거야.”
충격이었다. 바리데기 같은 가시내가 웬 사나이? 거기에다 용감한 하늘 같은 사나이라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하늘은 남성을 상징한다. 그런 하늘에 ‘용감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다니……남성 중에서도 용맹한 전사가 아닌가. 음지에 존재하기를 강요당하는 계집애가 어떻게 ‘용감한 하늘 같은 사나이’가 될 수 있을까?
화두는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다. 할머니의 예언적 저주가 공포로 다가올 때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반드시 상서로운 예언으로 바꾸어놓고 말 거야. 여성이라서 안 된다면 남성 같은 여성이 되어야지. 남성보다도 큰 남성이 되어 반드시 꿈을 실현하고 말거야.’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겨드랑이 날갯죽지가 근질거렸다. 능력이 모자란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불합리한 시대의 희생물이 될 수는 없었다.
커서 무엇이 될 거냐고 물을 때마다 시인이 된다고 했다. 열 살 위 언니는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더니 시인이 뭔 줄이나 알고 그러느냐고 놀려댔다.
못나디 못난 것이 황당한 소리를 하니 기막혔을 것이다.
하루는 또래 처녀 총각들을 데리고 와서 또 물었다. 그들이 믿지 않으니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었다.
“너 커서 뭐가 된다고?”
“시인이요. 시를 아주 잘 쓰는 시인이요.”
그들은 일제히 배꼽을 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어릿광대가 된 나는 오히려 그들을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1990년 4월,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새내기 어설픈 시인이었지만 밥을 먹지 않아도 좋았고, 돈이 없어도 좋았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구름 위를 나는 듯했다. 시인이란 관冠이 주어졌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두보杜甫는 ‘필락경풍우 시성읍귀신筆落警風雨 詩成泣鬼神’이라고 했다. 붓을 들면 비바람을 놀라게 하고, 시를 이루면 귀신도 울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귀신도 울게 하는 시, 시를 만난 날부터 버릴 수 없는 목마름이다.⁂
작은 싸리재 신화
안현심
외할아버지 송주한宋柱漢은 전남 고흥군 포도면 양지리에 살다가 외동딸이 일곱 살 때 식솔을 거느리고 고향을 떴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살기 좋은 땅을 알아보고 오겠노라며 집을 나선 지 한 달 만에 돌아와서는 작은외할아버지 가족까지 데리고 들어온 곳이 전북 완주군 운주면 고당면 상산막 작은싸리재였다.
작은싸리재는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경계에 접한 깊은 산골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그곳이 종교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천혜의 요지라고 믿은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남학南學에 심취해 있었다. 남학은 1862년(철종13년)경 이운규(李雲圭,호 蓮潭)가 창시한 종교이다. 조선 말 주천면 대불리 일대에서 발흥하여 성행했다고 한다.
동학이 1860년(철종11년) 4월,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된 것을 보면, 그 무렵 전제 봉건주의 사상을 타파하고자 종교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종교에서는 말세적인 재겁災劫을 없애고 후천선계의 개벽에 참여할 수 있는 인간 개조의 도법으로 오음주(五音呪:음․아․어․이․우)를 외우는 주송呪誦 수련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영가무도詠歌舞蹈이다.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저녁때만 되면 산중 몇 가구가 모여 주술을 외우듯 노래를 부르다가 춤으로 이어지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종교에 의탁해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꿈꾼 외할아버지의 심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던 중 둘째 아들이 의원에게 보일 새도 없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산골 생활에 회의를 느낀 외할아버지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보건너로 이주했다가 주양리 양지마을에 정착했다.
‘보건너’는 운일암반일암 계곡 입구에 위치하며, 현재는 관광지 주차장으로 변모해 있다.
외할아버지는 긴 수염을 지닌 주천면의 마지막 상투쟁이였다. 일제강점기 순사들과 목숨 걸고 싸우며 단발령에 끝내 불복했다고 한다. 풍채가 좋아 무명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나서면, 신선 같은 광채가 눈부실 정도였다.
외할머니는 ‘고흥 유씨’라는 말만 들었을 뿐 이름자는 알아낼 길이 없다. 여성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엄마’‘○○댁’으로 불린 데다, 일어줄 만한 분들이 타계하고 안 계시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천식’을 지병으로 달고 살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서 얼굴을 뵌 적이 없다.
어머니는 3남 1녀 중 외동딸로서 부모 사랑을 독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외삼촌 중에는 초등학교 교감을 지낸 분도 있을 정도로 학문을 중시한 집안이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제외된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정이 많고 자상한 분이었다. 외갓집 동네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집에 가기 싫은 날은 하교 후 외갓집으로 향하곤 했다.
“현심이 왔냐? 어서 오니라, 아가……”
외할아버지는 정감 어린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고, 밥상머리에서 가시를 발라낸 생선 살점을 얹어주셨다.
외할아버지 품에 안겨 잠잘 때면 비릿한 수염 냄새, 살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솜털구름처럼 나를 감싼 후 신비로운 나라로 이끌고 들어갔다. 외할아버지를 상징하는 후각 이미지는 아직도 선명한 색채로 남아있다.
한번은 먹물로 필사된 한지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또박또박 읽었더니 “고놈 참 영리하구나”하며 또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가보라고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 손아래 외삼촌은 우리 초등학교 교감이었지만, 부끄러워 한 번도 다가간 일이 없다. 그분은 유머가 풍부하고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외사촌 결혼식 때였던가. 어머니를 따라 외갓집에 갔는데, 외삼촌이 따라다니며 장난을 걸었다. 나는 마당가에 쪼그려 앉은 채 고개를 수그려 붙이고 낙서만 했다. 뒷짐을 진 외삼촌은 황소처럼 나를 들이받았다.
이리저리 쫓기던 나는 어머니께 말할 새도 없이 뛰쳐나와 집으로 오고 말았다. 외갓집과 우리 집은 냇물을 건너고, 논밭 길을 걸어야 하는 먼 거리에 있었다.
외삼촌은 그렇게 장난을 좋아했다. 자꾸 들이받으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상산막 작은싸리재에서 시집오셨다. 태평봉수대를 올려다보며 나물을 뜯어 나르다가 좋은 집안이니 시집가라는 말만 믿고 얼굴도 모르는 신랑한테 시집을 왔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시집보내기 위해 전주장에 가서 오동나무 이층장을 사 짊어지고 몇 날을 걸어오셨다. 이층장은 오랫동안 어머니의 귀중품으로 윗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작은싸리재에 한번 가보고 싶구나. 집에서 올려다보면 태평봉수대가 훤히 보였느니라.”
앞산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했던가? 나이들수록 어머니는 작은싸리재를 그리워했다.
어머니를 보낸 후 자식은 혼자 길을 나섰다. 어머니 한 올 머리칼이라도 남아있을까. 4륜구동 자동차를 몰고 작은싸리재를 찾아 올라갔다.
주천면 대불리 중리마을 뒷산을 넘어 완주군 운주계곡으로 이어지는 너덜겅 길을 수차례 헤맸지만, 숲만 우거져 있을 뿐 사람 산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반딧불이 낙서하는 냇물을 건너 도적 떼가 출몰한다는 산 고갯길을 어매가 나를 업고 울면서 가요. 죄 모르는 생명이 젖살 오를 때 도깨비처럼 떠도는 지아비를 앓으며 노랗게 외로 꼬여 여위어가던 꽃.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날 매어놓고 흙 범벅으로 호미질하더니, 날선 서릿발 한 자루 품고 밤길을 나섰네요. 아가, 자니? 포대기를 추스를 때마다 등허리 깊이 파고들었을 뿐 칠흑같은 흐느낌 안다 하지 않았지요.
돌덩이처럼 등에 매달려
우물 속 깊은 울음 끝내, 모른다 했지요
-「싸리재 신화」전문 ⁂
우담바라는 왜 피는가
안현심
사십대 중반 늦깎이 대학생으로서 중간고사를 치르러 가는 아침,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차창이 뿌옇다. 밤새워 공부한 탓에 몸이 개운치 않았지만, 시험 보러 가는 내가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얼마나 소망해 온 공부인가? 시험 답안을 깨끗이 써내려고 잉크가 잘 나오는 펜을 아껴두었다가 챙겼다.
꿈에서도 늘 학교에 다녔다. 아이를 업고 공부하다가, 애가 우는 바람에 황망히 뛰쳐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학교 주변을 기웃거렸다. 세월이 흘러도 학문에 대한 목마름은 잠재울 수 없었다.
결국 마흔다섯 살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해 신들린 듯 공부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 공부는 일과 병행했으나 대학원이 문제였다. 밤낮없이 바빴던 출판사 일이 공부에 몰두하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사업장을 지키지 않고 학교에만 가있는 사람을 고객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 심사가 진행되던 봄 학기에 밥집에 취직했다. 봄여름엔 출판 일이 미미하다가 가을 겨울에 몰려들기 때문에 틈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것이었다.
6개월 만이라도 벌면 생계유지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교차로’ 신문 구인란을 보고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밥집을 선택했다.
막상 주인을 만나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별일은 없을까’
망설이는 사이 밥집을 지나치고 말았다. 한참을 걷다가 다시 돌아왔다.
쭈뼛거리며 들어서는 나를 주인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일 할 사람 구하시죠?”
“일할라고? 이런 디서 일할 사람 아닌 거 같은디?”
“저……음식은 못 만들지만 허드렛일은 잘할 수 있어요.”
“깨끗허니 생겨서 홀 서빙은 잘하겠구먼?”
써주지 않을까 봐 6개월만 일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출판사를 운영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일하면서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박사과정에 입학할 생각이었다.
이튿날부터 일하라고 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1시간 노동에 월급100만원이었다.
첫 출근하는 날, 일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식당으로 향했다. 발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는데, 마음은 자꾸 뒷걸음질 쳤다. 구름 덩이만 한 설움이 뭉실뭉실 밀려와 주저앉고 싶었다.
넓은 홀 청소를 마치기도 전에 손님이 들이닥쳤다. 많이 파는 날은 점심때만 100인분의 밥상이 드나들었다. 식당으로 오는 손님 외에 배달 수량도 만만치 않았다.
왕복 8차선 도로 맞은편 목공소에서 된장찌개 5인분을 주문했다. 커다란 쟁반에 뚝배기 된장찌개와 반찬을 담아 머리에 이었다. 쟁반이 휘어질 듯 흥청거렸다.
목이 자꾸만 기어들었다. 너무 무거워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았다. 횡단보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뒤에서 매몰차게 밥 쟁반을 채뜨려 갔다.
“이렇게 댕기다가는 밥 굶어 죽기 십상이지.”
주인은 드넓은 도로를 바람같이 달렸다. 터덜터덜 식당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부터는 나도 무단횡단을 감행했다. 1시간 30여 분 동안에 100인분을 팔려면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황사 바람이 몰아치던 날,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 중앙선에서 밥 쟁반을 인 채 흔들리고 있었다. 모래 알갱이가 불어닥쳐 눈을 뜰 수 없었다. 무섭게 질주하는 자동차들 틈에서 초라한 목숨 하나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배달이 끝나면 빈 그릇을 수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밥쟁반을 거둬다가 쌓아놓으면 산더미 같았다.
연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설거지도 찬물로 했다. 고무장갑을 끼면 손놀림이 둔하기 때문에 맨손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손이 성할 데가 없었다. 그릇에 찍히고, 찬물에 드나든 손들이 갈라 터졌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출근한 어느 날, 몹시 배가 고팠다. 설거지는 끝없이 이어지는데, 쓰러질 것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밥 먹고 하면 안 돼요?”
“밥집에서 3시 안에 밥 먹는 거 봤어?”
노동으로 단련되지 않은 팔다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면상처투성이 패잔병 모습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노트북을 열고 학귀논문을 수정․보완하였다.
철 대문 녹슨 살갗에 우담바라가 피어 하늘거린다
함박눈이 벌 떼처럼 붕붕거리는 이천칠 년의 마지막 날
뼈 시린 철심에 뿌리를 박고 은빛 허리 바람에 낭창거린다
삼천 년 만에 단 한 번 피어
상서로운 일을 불러온다는 우담바라
밥 쟁반 머리에 이고 아스팔트 길 건널 때
질주하는 자동차들 틈에서 파들거리던 모습
아픈 손목 어를 새 없이 노동 현장에 몸을 부렸다
서러운 삶의 머리맡에도
우담바라는 피는가
왜
오늘 내 앞에서 흔들리는가
-「우담바라는 왜 피는가」전문
2007년 12월 31일, 철 대문 녹슨 기둥에 거미줄처럼 가는 실이 낭창낭창 빛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좌특 지주에 우담바라가 피어있었다. 삼천 년 만에 피어 상서로운 일을 불러온다는 우담바라가 은빛 허리를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나를 응원하러 왔구나, 하늘도 무심치 않으시지.”
‘천천히 공부하자. 학비가 없으면 돈 벌어가며 느긋하게 공부하자. 좀 늦는다고 누가 탓하겠는가. 연구서를 집필하며 문학과 학문이 어우러지는 경계를 열어나가자. 아픈 삶의 체험은 학문 연구에도 플러스 요인이 되리라.’
날마다 최면을 걸며 무너지려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박사과정에 들어가자마자 장학조교로 발탁되었다. 대학원 업무를 처리하며 공부해야 했지만, 학비 걱정을 덜어주어 행복한 날들이었다. 자식 같은 동료 학생과 조화롭게 일하며 교수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4학기 때는 한국장학재단의 ‘미래한국 100년 인문학 장학금’을 받는 행운을 얻었고, 5학기 때믄 한국연구재단의 ‘국가연구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수료할 때까지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대학로 육교에 올라서니 바람이 분다. 눈물을 닦으며 코 훌쩍이며 가슴이 뭉클 치오른다. 노트북 짊어지고 오르내린 길, 가차가 지날 때마다 하늘을 보면 흰 구름 나실나실 베를 날고, 새 떼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눈물이 나는 건 바람 때문인가
-「짐」전문
학교 근처에 살며 정문 앞 육교를 오르내렸다. 노트북을 짊어지고 아침 일찍 등교하는 모습을 대학 구성원이라면 보지 않은 이가 없다고 했다.
조교 업무차 대학원 행정실에 들렀을 때다.
“선생님, 어디 사세요?”
“저기 오거리 근처요…….”
“헌데, 왜 그렇게 일찍 나오세요?”
“……”
자동차로 출근하는 동안, 갓길을 걸어 등교하는 모습을 늘 목격했다고 한다. 나는 어느새 학교의 명물이 되어있었다.
근접 학과 교수가 복도를 지나다가 들여다본다.
“안 선생님,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네, 들어오세요.”
“근데……선생님, 왜 이렇게 일찍 나오세요? 또 청소는 홰 그렇게 해쌓고요.”
“아니……청소 안 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까?”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청소맨이에요. 청소맨……하하하……좌우지간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서 국문과 따라가려면 발 벗고 십 년을 뛰어야 헌다니께?”
박사과정이 요구하는 학점을 2년 만에 이수하고, 수집해 놓은 이론서 읽기에 돌입했다. 꼼짝하지 않고 책만 읽었다. 읽었다기 보다 쳐부쉈다는 말이 적합할 정도로 무섭게 독파해 나갔다. 인용할 부분이 있으면 포스트잇을 붙여 가면서.
읽은 후 표시한 부분들을 타이핑했다. 내용 하단에 저자와 저서면, 출판사, 출판 연도, 쪽수 등을 각주 형식으로 덧붙였다. 9포인트 활자로 작업했으나 그 분량이 150쪽을 넘어갔다.
작업한 내용을 출력하고 제본해 인용 자료집으로 만들었다.
자료집을 옆에 놓고 필요할 때마다 해당 페이지를 컴퓨터에서 찾아 복사했더니 논문 쓰기가 한결 수월했다.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맑았다. 물 만난 고기처럼 신바람이 났다. 밤이 기울면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다가 밤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쓰다가 보면 창이 뿌옇게 밝아왔다.
박사과정 6학기째 논문 심사가 완료되어 수료와 동시에 졸업하는 영광을 안았다.
2011년 2월 11일
한남대학교 학부 졸업생부터 박사 졸업생까지 ‘성지관’에서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박사 졸업생을 대표해 단상으로 올라가 학위를 수여받았다.
내 좌석은 맨 앞 중앙의 1번 석, 의자에 ‘안현심’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나를 향해 카메라 불빛이 쉼 없이 터졌지만 의젓한 표정 한 번 지어주지 못한 채 울기만 했다.
이 좋은 날 왜 우느냐고 2번석 졸업생이 물었다.
고난의 강을 건너온 감동은 자신만이 알 뿐이다. 그날 찍은 사진 속 내 얼굴을 벌겋게 부어있었다.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룬다고 했던가? 참으로 열심히, 옹골찬 꿈을 꾸었다. 백 가지 악조건을 딛고 신념 하나로 달려왔다.
인간의 잠재력은 참으로 무한했다. ⁂
내 죄를 씻을 수 있을까
안현심
인간중심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여타 동식물의 존재는 인간의 생명 유지와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 또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생존을 위한 자양분 섭취는 물론, 몸에 좋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취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익 창출을 위해서라면 무차별 살상도 서슴치 않으며, 그에 따른 죄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른 봄, 지리산 자락을 여행하면서 온몸에 호스를 박고 신음하는 고로쇠나무를 목격하였다. 생명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질 무렵, 사람들은 영악하게도 물관부에 호스를 박아 수액을 도둑질하고 있었다.
잔인함의 극치는 살아있는 곰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 쓸개즙을 마시는 데서도 목격할 수 있다. 안간힘으로 쓸개즙을 생성해 놓으면 흡혈귀처럼 반복적으로 착취해 왔다.
그 맑은 피로
내 죄를 씻을 수 있을까?
겨우내 언 땅 속에서 뿌리를 키우고 안으로 물관부을 담금질한 나무, 인간이라는 흡혈귀가 산 채로 피를 빤다. 목에 구멍을 뚫어 피를 도둑질한다. 제 몸에 좋다면 곰의 쓸개즙도 빼내고, 피눈물 흘리는 청여우 가죽을 벗겨 썩은 몸뚱이를 치장한다.
표범도, 사자도, 호랑이도 먹을 만큼만 사냥하는데 탐욕스러운 식욕, 사냥감이 멸종하는 날까지 먹고 또 먹어야 한다.
고로쇠나무
그 깨끗한 피로 내 죄를 씻을 수 있을까?
-「고로쇠나무, 그 깨끗한」전문
질 좋은 가죽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청여우 가죽을 벗길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죽이 벗겨진 청여우는 피눈물을 흘리며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들보다 좀 힘이 세다고, 머리가 좋다고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최소한의 동정심이나 배려심도 없는 인간들이다.
그러한 광경을 목격한 이후 절대로 모피와 가죽을 취하지 않기로 했다. 생명을 유지한다는 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이지만,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할 것이다.
바람을 마시고 싶은 어린잎들이 몸속에 갇혀 아우성치나 보다,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난다.
비 묻은 아장사리, 아기 울음소리
시골 사는 친구가 보내온 고로쇠나무액, 대추나무 아래 살그머니 붓는 밤
-「수액을 마시고」전문
시골 사는 친구가 고로쇠나무액 한 통을 보내왔다. 수액은 향기롭고 달콤했다. 하지만, 고로쇠나무 슬픈 눈동자를 각인해 버린 몸은 순순히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기순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고, 기어이 구토하고 말았다. 배 속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자꾸 들렸다. 태어나기도 전에 먹혀 버린 생명들이 아우성치는 소리.
속죄하듯 마당가 대추나무 아래 수액을 부었다. 다른 목숨에게라도 스며들어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바라며.
대전시 오정동, 소 도살장 주변엔 피비린내개 흥건하다. 바람에 설핏설핏 묻어오는 살육의 냄새, 죄 없이 참수된 내 머리통이 눈 부릅뜬 채 내걸려 있고, 맹수들은 게걸스럽게 피를 마신다. 입술이 벌겋게 간을 내어 먹고, 가슴살을 뜯어먹고, 취해 달아오른 얼굴, 핏빛 물든 입술, 생살을 뜯지 못하는 놈은 살아남지 못한다.
소 도살장 옆구리 생고기 전문 식당.
으르렁거리는 맹수들에게 몸을 내어주는
순한 눈망울, 거기에 내가 있다
-「보시報施」전문
오정동 농수산시장 정육 거리로 들어서면 피비린내가 흥건하다. 난도질당한 소, 돼지의 시신이 여기저기 내걸린 채 살육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봉기했다가 억울하게 참수당한 전봉준의 목이 내걸려 있고, 민초들의 못다 한 항변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약육강식의 삶 판에서 인간은 맹수와 다를 바 없다. 인류 문명을 개화시킨 ‘불’을 외면한 채 생간을 내어 먹고, 생살을 찢어 먹은다. 벌겋게 취한 채 피를 즐기는 현장은 사자 무리가 영양을 잡아놓고 잔치를 벌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옛날 농가에서는 소가 한 식구로서 대접받았다. 농가의 일원으로서 큰 몫을 담당한 일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먹히기 위해 길러질 뿐이다. 인간의 입맛이 선호하는 ‘차돌박이’ 부위를 생성시키기 위해 곡물 흡입만을 강요당하고, 하루살이 쫓는 에너지조차도 살찌우는 데 사용되도록 외양간에는 독한 살충제가 뿌려진다.
이들에게 동물답게 살 권리는 어림없는 말이다.
진악산에서 예쁜 아기 나무를 채취해 왔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정성 들여 심었는데도 연녹색으로 팔랑거리던 이파리가 종잇장처럼 화르르 타버리고 말았다. 산에 그대로 둘걸, 옮겨서 죽였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진악산에 올라 이파리 투명한 아가 나무를 보다.
이름도 모르는 살결이 하도 이뻐서 그만 훔치고 말았다.
마당가에 다독여 심고 푸른 날갯짓을 기대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파리가 화르르 타 죽고 말다.
실바람과 햇빛이 살을 섞던 어느 날
죽은 팔뚝 겨드랑이에 솟는 바늘 촉
가랑비에도 녹아버릴 살갗.
물갈이만이 살 길이다.
쇠바람도 견딜 수 있는
짱짱한 이파리가 필요할 뿐이다
환해진 눈으로 들여다보다
작은 잎에 일고지는
하늘의 섭리
-「목숨 세우기」전문
자책감에 시달리던 어느 날, 새잎이 뾰족이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새로 피운 잎은 두껍고 칙칙한 초록색이어서 사랑스럽지 않았다.
이때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여린 잎으로는 오염된 공기를 감당할 수 없느니 생존에 알맞은 잎을 새로 피운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참으로 놀라웠다.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며 생명의 경이로움에 설레는 하루였다.⁂
고맙다, 아가야
안현심
마음고생 몸 고생이 어우러져 병이 났다. 말할 기력조차 없어 다섯 살짜리 딸애에게 나가서 놀라고 했다. 딸애는 붙어 앉아서 울먹이더니 끝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운다.
“엄마, 아프지 마세요. 사랑해요.”
철부지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까? 얼마나 걱정되면 시키지 않는 일까지 하면서 곁을 뜨지 않을까.
엄마만 있으면 두려울 것 없다는 믿음. 아이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였구나. 어리석은 엄마를 하늘같이 믿고 붙어사는 가여운 목숨이었구나.
엄마라는 짐이 몹시 무거웠다. 내가 잘못되면 아이마저 추락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늘 동동거렸다. 내 생각과 행동의 전후에는 언제나 딸애가 존재했다.
몸져누웠는데
딸아이, 볼 비비면서
입술 속 작은 떨림 참고 참더니
끝내 얼굴 묻고 흐느껴 운다
아프지 마세요
사랑해요
풀씨로 날리다가
벼랑 틈에 외로이 뿌리내린 삶의 마디
새순 하나
뜨럽게, 목숨
붙이고 사는구나
-「목숨」전문
나 혼자 였다면 책임감 없이 살았을는지 모른다. 쉽게 행동하고 쉽게 결정하면서 수렁 길을 걸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책임져야 할 목숨이 있었다. 모자란 엄마를 세상 전부인 줄 알고 붙어사는 목숨이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딸에게 날마다 백팔 배를 하라고. ‘스승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천 배를 올리라고.
그렇다. 아이는 내 삶을 이끌어준 스승인지도 모른다.
나를 떼너내 버리는 만큼
달은 토실토실 살이 찬다
버리고 버려서 작아진 만큼
나무는 무럭무럭 키가 큰다
내 외로움 베어 먹고
실하게 살이 오르는 아이
나는 마른 꽃대가 된다
가는 대궁 속에 사리를 문
-「아름다운 비례」전문
딸애를 낳고 산모는 미역국 한 그릇을 비우지 못했다. 소고기를 넣어 맛있게 끓여 줘도 한 수저 뜨지 못하자, 어머니의 금심이 깊어갔다.
왜 그렇게 먹지 못하느냐고 묻지만, 딱히 이유를 대기 어려웠다. 어머니를 생각해서 억지로 먹으려 하면 구역질이 솟구쳤다.
산모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이유를 댈 수 없다고 했지만,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명의 탄생조차 반기지 못하게 했으리라.
삶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늘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키워줄 사람도 없는데 출판사 일을 계속할 수 있을는지도 의문이었다.
산모는 노랗게 시들어갔다. 입이 소태같이 썼다. 출산하고 국밥을 잘 먹으면 뿌옇게 살이 오른다는데, 얼굴에 하얀 버짐이 번져갔다.
한 달이 지난 후 아이를 업고 출퇴근했다. 헝겊 기저귀와 분유가 든 가방, 서류 가방을 양어깨에 메고 시내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했다. 버스가 흔들리면 붙잡을 손도 없었다.
사무실 책상에 이불을 펴고 아이를 재웠다. 깨어서 칭얼거리면 포대기를 매어 없었다. 놀아주기느커녕 자라고 보챘다. 아기가 자야만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기를 업고 자장가를 부르는 모습은 이미 폼 나는 사장이 아니었다. 아기의 처지도 말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포근하게 보호받지 못한 채 사무실 책상 위에 누여졌으니 말이다.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더 이상 사무실에서 키우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보다 못한 지인이 돌봐 준다고 했다. 박○○시인이다. 이분은 생활이 넉넉해서 아이나 돌보고 있을 분이 아니지만, 순전히 내 처지를 생각해서 고생을 자처한 것이다.
그 은혜는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내 아이처럼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자라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남겨 준 사람, 내 삶의 물꼬를 터준 은인임에 틀림이 없다.
24개월이 되면서부터는 놀이방에 보냈다.
목을 휘어 감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아이를 봉고차에 밀어 넣은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허둥대다가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기다렸다.
“아가!”
차에서 내리는 아이를 반겼으나, 낯선 얼굴 대하듯 시큰둥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하얀 얼굴이 땟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낯선 환경으로 끌려가 엄마를 영영 잃는 줄 알았을 것이다.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그리운 얼굴이 나타났는데도 반가워하지 못할까.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반응하지 않는 아이를 안고
“아가, 엄마야 엄마.”
거듭 채근하자 꿈에서 깨어난 듯 살며시 목을 끌어안았다.
출근 준비를 하면 헤어져야 한다는 불안감에 발목을 붙잡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봉고차에 밀어 넣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옆 담장에 넝쿨장미가 만발헤 있었다. 장미를 보는 척 뒤돌아서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아이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병원 다니며 겨우 낫게 해놓으면 또 금방 옮았다. 출판사 일을 직파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몇 년만 고생하자 네가 크면 엄마 잘했다고 박수 쳐줄 거지? 엄마도 몹시 고달프구나!’
집에 들어섰더니 껍질을 깎지 않은 채 먹다 남은 사고가 나 뒹굴고, 기다림과 외로움을 대변해 주듯 공책과 색연필이 흩어져 있었다.
아이는 엎드려 잠이 들었다
껍질째 먹다 남은 사과가 비틀어져 뒹굴고
기다리던 시간, 내내 만지작거렸을
공책, 지우개, 연필이 방바닥에 즐비하다
이쁜이가 좋아하는 꽃은 무엇일까요?
장미꽃, 스스로 묻고 대답도 하며
100-37=63
수학문제를 만들어 풀어도 보고
피노키오는 말썽쟁이였어요
부모 말을 안 듣는 나무 인형이었어요.
동화책을 베끼기도 하면서
기다림이 얼마나 속 태우는 건지
얼마나 시린 외로움인가를
속눈썹 깊숙이 사려 안고 잠들었다
-「잠이 들었다」전문
땟국흐르는 눈물, 긴 속눈썹이 이슬방울치 맺힌 채였다. 홀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일에 대한 중압감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어느 위치에 서야 할 지 모르는 것이 직장맘의 현실이다.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엄마가 오겠지.’
기다리다 잠든 아이에게 엎어져 울었다. 따뜻한 사랑 속에 자라야 할 아이가 물건처럼 실려 다닌다고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
봉고차만 보아도 경기하듯 목을 끌어안는 아이, 봉고차는 엄마로부터 저를 떼어 가는 악마였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이웃 아주머니가 애를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탄 채 오르락내리락하며 공포에 질려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
놀이방 선생이 내려주고 갔으나, 순간 엘리베이터 층수를 잊어버린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가
내 별명은 ‘울배기’이다. 내가 울배기가 된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이 키우는 과정에서 서러움과 미안함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잠 젖은 목숭아빛 얼굴
여유롭게 들여다본 적이 언제이던가
노심초사 걸어온 지평선에
보름달이 훤하다.
여객선 꽁무니에 붐비는 물거품
갈매기 환호하며 엄마를 외우는 작은 입술
아가야 고맙다
스스로 이렇게 자라줘서
-「고맙다」전문
여행비를 제가 부담하겠다면서 S마도 여행을 가자고 앴다.
바쁘다는 핑계로 여행 한번 못 데리고 다녔다. 삶을 꾸리는 데 골몰하느라 여행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삶을 꾸리는 데 골몰하느라 여행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외국도 나가보지 않았고 비행기도 타보지 못했다.
공부하고, 일하고, 문학 활동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2013년, 국문과 학생들 답사 여행 때 행동하자고 해서, 중국을 다녀온 것이 첫 해와 나들이였다. 그런 사정을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사먹는 여유 한 번 부려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니는 무척 좋아했다. 제가 어른인 듯 앞장서서 설명해 주며 신이 났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같이 나가보지 못했으니 이 죗값을 어떻게 받을까.
욕지도에서의 1박 2일, 햇볕은 살을 태울 듯이 뜨거웠지만, 바다도 실컷 보고, 버스 투어도 하고, 고등어 회도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종알거리다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혼자서 많이도 컸구나
미안하다, 아가, 그리고 고맙다.
탱탱한 볼이 터질 듯 반지르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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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발부리에 걸리는 돌멩이가 있다.
차마 버릴 수 없는 얼굴이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으스러지게 안아보자.
기도하는 밤이 쌓이고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들긴다.
산을 넘고 급류를 헤쳐온 한 사람의 노래가
동시대 나그네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2018년 깊은 겨울
안현심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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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넌 참 이상한 이이였어.
꽃을 볼 때마다 피고 지는 이치를 꼬치꼬치 캐물어 곤혹스럽게 하더니 커서는 가지 말라는 길만 골라서 들어갔지. 주제도 모른 채 태평양은 넘보고 터무니없는 꿈만 꾸다가 놀림감이 되곤 했지.
무엇이,
너를
외롭게 하더냐?
겨울 강변에서
큰 고니 날아간 자리
그리던 아이야
무엇이,
너로 하여
꿈꾸게 하였느냐?
― 「현심이」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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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심安賢心 시인∥
∙ 1957년 전북 진안에서 출생했다
∙ 계간『불교문예』로 시인이 되었고,
∙ 월간『유심』으로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 시 집『연꽃무덤』『상강 아침』와 네 권과
∙ 산문집『오월의 편지』『』
∙ 평론집『물푸레나무 주술을 듣다』
∙ 연구서『미당 시의 인물유형 계보』『한국 현대시의 형식과 기법』이 있다
∙ 진안문학상(2011) 풀꽃문학상젊은시인상(2015) 한성기문학상(2015) 대전시평생교육진흥유공상(2018)을 수상하고,
∙ 현재 한남대학교와 대전시민대학에서 글쓰기와 시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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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안현심의 자전에세이『현심이』가 출판사 ㈜천년의시작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안현심은 1957년 전북 진안에서 출생하여 계간 『불교문예』를 통해 시인이 되었고 월간 『유심』을 통해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저서로 시집 『연꽃무덤』『상강 아침』외 네 권이 있고 산문집『오월의 편지』, 평론집 『물푸레나무 주술을 듣다』, 연구서『미당 시의 인물원형 계보』『한국 현대시의 형식과 기법』등이 있다. 안현심 시인은 등단 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문학적 성취를 일구어내었고 이를 통해 진안문학상, 풀꽃문학상젊은시인상, 한성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자전에세이『현심이』는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산을 넘고 급류를 헤쳐온 한 사람의 노래가 동시대 나그네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총 3부의 걸쳐 진행되는데, 제1부는「핏줄의 내력」이라는 소제목 아래 저자의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과 성장기의 체험담을 그리고 있다. 제2부「우담바라는 왜 피는가」는 학문에 대한 열의와 문학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부 「고맙다, 아가야」는 가족의 내력을 소재로 한 일화를 바탕으로 제1부와 제2부를 아우르면서도 삶에 대한 성찰을 보다 심도 있게 그려낸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연대기를 집약적으로 다룬 자전에세이로 읽을 수도 있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게 되면 한 사람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우리 사회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자의 삶에 질문을 갖게끔 하는 추체험의 장이 된다. 이 자전에세이집은 소위 말하는 삶의 그늘진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지만 ‘문학’이라는 햇빛을 통해 어떻게 한 인간이 삶의 그늘을 걷어내는지, 자신이 흘린 눈물이 삶의 밑거름이 되고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는지에 대한 성장기이자 고백록이라 할 수 있다. 기도를 바치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저자의 진실 된 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나그네’들에게 큰 위안이 되리라 기대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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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ve Idea 'Last Exit to Brooklyn' OST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 1949~) / 어떤 사랑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OST> / David Nolan, violin
*출처: 관악산의 추억(http://cafe.daum.net/e8853/MVDb/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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