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을 맡은 일꾼은 잘 가르치고, 성도들의 삶이 온전하도록 돌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도록 지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가르치는 자로서 그 사역을 잘 감당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는 말씀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15절)라고 말씀합니다. 교회공동체의 지도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자여야 합니다. “옳게 분별(分別)”하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오르도토문타”(ὀρθοτομοῦντα)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는 “곧은”(straight)이란 의미의 오르도스(ὀρθός)와 “자르다”(to cut)라는 의미의 “템노”(τέμνω)라는 단어가 합해진 “오르도토메오”(ὀρθοτομέω)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올바르게 자르다”(to cut straight), “올바르게 다루다”(to handle correctly), “올바르게 가르치다”(teach rightly)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그 바른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잘 다룰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가르치고 양육하려면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려야 하고(16절), 거짓 가르침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가르쳐지지 않도록 근절(根絶)해야 하며, 온전하지 못한 가르침이나 주장들에 대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도록 엄격하게 명하도록 권면합니다(14절). 이러한 가르침은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성도들과 공동체를 망하게 할 뿐입니다(14절). 이런 잘못된 가르침은 미혹(迷惑)하는 힘이 커서 마치 악성 종양이 퍼져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교회공동체를 휩쓸어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무너지게 만듭니다(17절). 그 당시에 후메내오(Hymenaeus)와 빌레도(Philetus)라는 사람이 그럴듯한 논리로 성도들을 미혹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17절). 그 당시에 그들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잘못된 생각들 중에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 주장이었습니다(18절). 이러한 주장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를 따르는 것이었는데, 육신의 부활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은 거룩하게 여기되 육신을 무시하여 금욕주의로 빠지게 하거나, 정반대로 쾌락주의에 빠지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신앙에서 오히려 멀어지게 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견고한 터인 교회공동체는 든든하게 서 있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인(印)치신 하나님의 백성(그리스도인들)을 잘 아시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은 잘못된 가르침과 불의에서 떠나도록 성도들을 잘 가르치고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19절).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지 못하게 될 것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큰 집에서 사용되고 있는 그릇들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금그릇과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의 여러 재질로 된 그릇들이 있고, 그 재질에 따라 귀하게 사용되기도 하고, 천하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20절, 21절). 어떤 그릇이든 깨끗해야 주인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22절). 누구와 어울리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과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교회공동체가 중요하고, 나와 친밀한 교제권을 갖는 이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따르는 자들과 어울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리석과 무식한 변론(辯論, Argument)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23절). 옳고 그른 것을 따지려고 논쟁하지만, 그 논쟁을 통해서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다툼만 커지기에 다투기보다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훈계하라고 말씀합니다(24절, 25절). 24절에 나오는 “온유”(溫柔)는 헬라어 원어에는 “에피온”(ἤπιο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이 단어의 원형은 “에포스”(ἔπος)로 “온순(溫順)한”, “온화(溫和)한”, “친절한”, “부드러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be gentle”(KJV), “be kind”(NASB)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가르치되, 온유한 태도를 잃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25절에서도 훈계하되, 온유함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훈계(訓戒)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에서는 “파이듀온타”(παιδεύοντα)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의 원형은 “파이듀오”(παιδεύω)로 “훈련하다”, “양육하다”(discipline), “지도하다”(instructing), “교정(敎正)하다”(correcting)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잡아서 온전하게 만들되, 온유한 태도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목적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진리를 깨닫고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하나님을 따르게 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성도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일꾼들은 이러한 태도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점차 하나님의 진리에서 벗어나 인간의 생각과 편의적인 태도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인간 중심적인 성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양육하여 인도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도들을 잘 돌보고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연구해야 하고, 그 말씀에 따라 부지런히 성도들을 돌봐야 합니다. 저 자신이 그러한 태도로 살아가며, 맡겨진 영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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