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카 동굴에서의 악마와의 대결
아짠은 나콘 나욕 읍에 있는 사리카 동굴에서 일 년간 머물렀다. 그 동안 그에게 일어났던 외부의 사건들과 내적 향상은 모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동굴 가까이 있는 아마 반 클루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아짠은 마을 사람들에게 산에 있는 동굴로 안내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동굴이 무서운 장소라면서 거기에 머물렀다가 심각한 질병을 얻어 되돌아온 스님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 중 몇몇은 질병으로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고 하였다.
그 곳 사람들은 거대한 악마가 무시무시한 힘으로 동굴을 쟁취하여 점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 악마는 동굴에 거주하려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때로는 혼이 빠질 만큼 겁을 주기도 한다는 것 이였다. 스님들이 겁도 없이 그의 세력 범위 안으로 침입하면 아무리 악마를 부리는 흑마술이 뛰어난 스님일지라도 장난치듯이 손쉽게 격퇴시켜 버린다면서, 마을사람들은 그를 동굴로 안내하길 아주 꺼려했다.
아짠은 그 거대한 악마가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는지를 마을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동굴에서의 첫날밤에 장대한 검은 악마가 나타나 자고 있는 사람에게로 다가오는데 얼굴은 찌그러져 무서운 형상이며 당장이라도 죽일듯한 인상으로 자신이 ‘동굴의 주인이자 지킴이며 유일한 지배자’라고 공표한다는 것이었다. 악마는 어떤 침입자도 허용하지 않아 누구를 막론하고 내쫓았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못하였다. 첫날밤이 지나 동굴에서 빠져나온 몇몇 사람들은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에 거의 미쳐버린 듯한 모습으로 한결같이, 다시는 동굴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고,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자신들의 신비한 힘을 떠벌리며 동굴에 들어갔던 4명의 스님들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그 동굴에는 신비스러운 힘을 지니고 있는 마법의 금속 한 조각이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종종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동굴로 유혹했다고 했다.
아짠은 마을사람들의 이야기에 낙담하지 않고 그 동굴로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당히 맞설 결심했다. 그는 두려움에 억눌리는 대신에 이 기회를 마음챙김을 한층 발전시키고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마을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끔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굴에 한번 가보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너무 무서우면 금방 돌아 올 테니 자신을 그곳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면서 오래 전부터 그 동굴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마을사람들은 아짠의 고집대로 그를 동굴에 데려다 주었다.
동굴에서의 사흘 밤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곳은 너무 고요했고 외부와 차단되었기 때문에 몸과 마음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들리는 건 그 주변을 이따금 돌아다니는 야생동물의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밤, 전에도 탈을 일으켰던 배가 살살 아파 왔다. 이번에는 좀 심각한 듯했다. 때때로 피가 섞인 변을 보았고 음식을 전혀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전에 음식을 잘못 먹었을 때의 증세와는 전혀 달랐다. 그는 이미 4명의 스님들이 그곳에서 죽었다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런 식으로 증세가 악화된다면 바로 자신이 다섯 번째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그를 살펴보기 위하여 들렀을 때, 그는 가까이 있는 나무의 뿌리나 고갱이로 만든 약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 그 약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약에 의존하는게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회의가 들자, 그는 약을 끊고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다르마(法)의 치유법에만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다르마의 힘으로도 이 병을 고칠 수 없다면 동굴에서 죽도록 내버려두자. 나는 도(道, magga), 과(果, phala), 열반(涅槃, nirvāna)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수행이 진척되었다. 그런데 왜 이 정도의 고통으로 약해져야 하는가? 이런 정도의 고통에 패배한다면 몸이 소멸되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나 고통의 파동이 나의 방어선들을 무너뜨려 산산조각 낼 때, 내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그는 다르마에만 기대어 명상을 시작했다. 그러자 삶에 대한 집착은 스러졌고 몸은 자연적인 치유 과정에 들어갔다. 그 때 신심과 전력을 다해 마음챙김과 지혜로써 아직 죽지는 않았으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던 마음을 다시 확실히 챙겼다. 병이 치유될 수 있을지 또는 몸이 부서져 버릴 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꿰뚫어보는 지혜의 눈으로 아픈 감각(受)을 관찰했고, 나머지 4온은 거침없이 동시에 헤체시켰다.
몸[色, rūpa], 감각[受, vedanā], 인식[想, saññā], 마음의 형성[行, saṅkhāra]은 위빠싸나 수행인 마음챙김과 지혜에 의해 더 깊은 진리를 파헤치는 최상의 시험대에 놓여졌다. 이미 벌어진 싸움은 날이 저물 때부터 한밤중까지 격심하게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 그때까지 확연히 나타났던 쥐어짜는 듯한 고통의 성질과 오온(aggregation)의 본성을 알 수 있었다. 그 결과 마음은 상당한 힘을 얻으면서 그 싸움은 결국 끝이 났다. 병은 완전히 사라졌고 마음은 절대적이며 확고한 한 방향(一念)으로 모아졌다.
바로 그 순간 고통, 질병, 마음의 반응이 사라진 멸(滅)의 상태가 도래했다. 잠시 후 마음의 상태는 덜 깊지만 더 민감해지는 우빠짜라(upacāra) 삼매 단계에 이르자 그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 나왔다. 그때 눈앞에 귀가 10미터 정도나 되는 검은 피부의 거인이 나타났다. 자신의 다리만큼이나 굵은 몽둥이를 든 그 거인은 험악하게 아짠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여기서 떠나지 않는다면 코끼리도 한 방에 때려눕힐 수 있는 이 거대한 몽둥이로 너를 박살내 버리겠다”’
아짠은 그와 텔레파시(정신감응)로 교신하며 물었다.
“왜 그대는 나를 죽이려 하는가? 난 여기서 아무도 해치지 않았는데 왜 그런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하나?”
사신(邪神)이 대답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산을 지킬 권한을 부여받아 왔으며 감히 내게 도전해서 나를 이기려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
아짠이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도 도전하지 않았으며 누군가를 이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에 온 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번뇌에 도전하여 그걸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대가 삼계(欲界· 色界· 無色界)를 자비의 힘으로 감화시키는 붓다의 제자인 나를 해치고자 한다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대가 자랑하는 것처럼 정말로 능수능란한 힘을 소유했다면 세 영역(三界)의 모든 존재들을 지배하는 위대한 법인 카르마(karma. 業)와 다르마(法)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사신이 대답했다. 아짠은 계속해서 물었다.
“붓다는 남을 지배하고 해치려는 욕망을 제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대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사신(邪神)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했다. 아짠은 그가 지닌 힘은 야만적이어서 자신에게 해가 될 뿐임을 지적하며 사신을 훈계하기 시작했다.
“그대의 힘은 자신을 태워 버리는 불과 같은 결과만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는 행위가 바로 그대 자신을 파괴시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정말 몸에 해로운 카르마(karma)인 것이다. 나는 올바른 길(8正道)을 따라가는 한 사람의 스님이다. 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이 길을 가는 것이다. 이건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소망이다. 그대는 지금 자신을 해칠 어떤 사악한 생각도 하지 않는 나를 해치려고 한다. 나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자신의 미혹한 힘에 파괴될 그대가 불쌍하다. 일단 행동을 멈추고 자신이 행하려는 악업의 결과에 대항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존재하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대는 다르마와 카르마의 힘을 벗어나서 이 산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만약 그대가 그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대가 원하는 게 뭐든 내게 가해도 좋다. 그대가 나를 죽이려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죽게 될 테니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 힘에 대한 집착에 현혹된 그대를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건 결국 다 죽게 마련이다.”
계속해서 아짠이 훈계하자 사신은 얼어붙은 듯 꼼짝도 못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패배를 몹시도 두려워하며 수치스러워 했다. 결국 사신은 주문에 걸리듯 아짠의 훈계가 끝날 즈음 몽둥이를 내려놓고 굴복하였다. 그 순간 사신은 보통사람 체격의 점잖고 경건한 풍채를 지닌 사람으로 변하더니 아짠에게 자신의 무례한 행동과 사악한 마음에 대하여 사죄했다.
“며칠 전에 스님을 본 순간 저는 놀라움과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스님에게서 발산되던 놀라울 만큼 강렬한 빛에 타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제 위협은 가장된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근방에서 전 우두머리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사악한 방법으로 힘을 휘두르는 데에 익숙해져 있어서 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우두머리로서 위엄을 지키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지요. 그러나 스님의 그 빛을 받은 후로는 마음속에서 나쁜 의도가 사라졌습니다. 바라옵건대 제발 오늘 스님께 저질렀던 모든 무례한 행동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죄의 짐을 덜 수 있도록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미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느새 신심이 깊은 신자가 된 사신에게 아짠은 부피나 무게도 없는 비물질의 몸을 인간의 몸처럼 지니고서 어떻게 그 많은 고통을 감당해 왔는지를 물었다.(사신에게는 인간처럼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거나 집을 마련해야 하는 짐도 없다).
“피상적으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고통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란 없습니다. 고통에는 본질의 차이보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이처럼 신비한 주제의 대화는 한참 더 계속되어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다르마에 감명을 받은 사신이 자신을 ‘독실한 불자’로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자신의 실질적 증명 법사이자 은사인 아짠을 따라 삼보(三寶, 佛 ․ 法 ․ 僧)에 귀의하였다. 그는 아짠을 전적으로 지켜줄 것을 약속하며 그곳에서 영원히 머무르기를 진정으로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짠의 수호신으로서, 아짠을 해치는 어떤 것도 절대로 용납치 않으려는 자세였다. 사실 그의 참모습은 거대한 사신이 아니었다. 아짠이 명상 중에 본 그 모습은 그의 모습은 위장에 불과하였다. 사실 그는 그 부근에 사는 데바(rukkhadeva- 직역하면 나무의 천신, 혹은 신장이라는 의미)들의 우두머리로 그 지역(나콘 나욕) 여러 마을의 거대한 산 주변에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자정 가까이 되어서 아짠의 마음은 앗빠나 삼매(완전한 몰입의 定)의 확고한 상태에 빠졌다. 이 상태에서 나오자 사신이었던 새 제자와의 대화는 새벽 4시까지 다시 이어졌다.
대화가 시작되었던 우빠짜라(근접 삼매) 명상 단계에서 나왔을 때는, 수행 초기에 격심했던 병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의 병은 다르마의 치유법으로 완전히 치유된 것이다. 아짠은 동이 틀 때까지 남은 시간 동안 계속 명상을 했다. 아무리 지치고 피곤하여도 다시 힘과 활력을 되찾았기 때문에 잠을 잘 필요는 없었다.
그 무렵 아짠은 정말 많은 것들을 동시에 깨닫고 이해하게 되었다. 첫 째, 다르마의 힘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하여서 그를 올바른 길(八正道)로 인도해 주었다. 둘째, 그의 마음은 집중되어 수 시간 동안 동요 없는 평화의 지복 상태를 유지했다. 그 속에서 그는 그 고귀한 상태에 대한 경이로움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셋째, 그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만성병이 완전히 치유되었다. 넷째, 그의 마음은 의심이 없어진 깨끗한 상태가 되었다. 다섯째, 다음날 아침에 섭취한 식사는 순조롭게 소화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전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번뇌에 대한 대처 방법과 그 방법을 서로 다른 기질과 성향을 지닌 다양한 수행자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관한 많은 지혜들이 떠올랐다.
그 이후 여러 날 동안 평화로운 마음의 그지없이 행복한 상태가 이어졌다. 밤 한두 시경에 아짠은 그 지역 여러 곳으로부터 몰려 온 지상에 사는 데바들의 거대한 무리를 맞았다.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사신 제자가 그들을 이끌고 와 아짠에게 소개했다. 아짠은 방문자가 없을 때는 언제나 명상 수행을 하며 기쁨에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