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오 (Bartholomew)
사도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공관복음(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4)과 사도행전(1,13)에서 예수님께서 뽑은 열두 사도 명단에 그 이름이 등장하는 것 외에 달리 성경에서 알려진 바가 없다. 히브리 말로 ‘바르’는 아들이란 뜻이다. 그래서 ‘바르톨로메오’는 ‘톨마이’(Tolmai) 또는 ‘탈마이’(Talmai)의 아들이란 뜻이다. 9세기경부터 요한복음에 나오는 갈릴래아 카나 출신의 나타나엘(Nathaniel)과 성 바르톨로메오를 동일 인물로 보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성 나타나엘은 사도 성 필립보(Philippus, 5월 3일)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으로부터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라는 칭찬을 들었다.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교회사”에 의하면 그는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했고 히브리어로 마태오 복음을 저술했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 의하면 성령강림 후 사도들이 세상 곳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성 바르톨로메오는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이란을 거쳐 인도까지 복음을 전하고 그곳 신자들에게 마태오 복음 사본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아시아 중남부의 리카오니아(Lycaonia)를 비롯해 카스피해(Caspian Sea) 남쪽, 오늘날의 이란 북부 지역까지 가서 선교했다는 전승도 있다.
성 바르톨로메오는 사도 성 유다 타대오(Judas Thaddaeus, 10월 28일)와 함께 아르메니아(Armenia)에도 복음을 전했다고 전해지는데, 고대 아르메니아는 이미 4세기에 최초로 복음화가 된 나라였다. 2000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0월 22일)는 아르메니아 복음화 1,700주년을 기념해 방문하기도 했고, 사도 성 바르톨로메오와 성 유다 타대오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성 바르톨로메오는 그 지역 왕의 동생을 개종시켰다는 이유로 왕실의 박해를 받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순교 방법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창에 찔려 순교했다거나 자루에 담겨 바다에 버려졌다는 등 여러 전승이 있으나, 산 채로 살갗을 벗기는 고통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칼과 벗겨진 살가죽이 그의 상징이 되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Sacellum Sixtinum)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심판관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살가죽을 두 팔로 봉헌하는 모습으로 사도 성 바르톨로메오의 모습을 표현했다.
사도 성 바르톨로메오의 유해는 507년경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Anastasius I)가 오늘날 시리아 동부에 있는 고대도시 두라에우로포스(Dura-Europos)로 모셔왔다. 그 후 최종적으로 983년 오토 3세(Otto III) 황제에 의해 로마로 모셔왔고, 테베레강에 있는 섬(이졸라 티베리나)에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을 세워 그곳에 모셨다. 성인의 두개골 일부는 123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로 모셔져 그곳에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이 세워졌다. 그의 축일은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6월 2일에 지내고, 라틴 서방교회에서는 8월 24일에 지낸다. 그는 미장공, 가죽 세공인, 푸줏간, 제본 업자 등의 수호성인이며, 유럽에서는 14명의 ‘구급(救急) 성인’에 포함되어 있다. 특히 신경통을 앓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