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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Philadelphia)는 성경 요한계시록 3장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가 있었던 고대 도시입니다. 오늘날에는 터키(튀르키예) 서부의 알라셰히르(Alaşehir)라는 도시가 그 자리입니다.
1. 지리적 위치와 의미
위치: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서부) 루디아(Lydia) 지방에 위치했습니다. 사데(Sardis)에서 동남쪽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고원 지대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이름의 유래: '빌라델비아'는 그리스어로 '필로스(사랑)'와 '아델포스(형제)'의 합성어로 '형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설립 배경: 기원전 2세기경 버가모의 왕 아탈로스 2세가 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인 에우메네스 2세를 매우 존경하고 충성스럽게 사랑했기에 '필라델포스(형제를 사랑하는 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별명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었습니다.
2. '선교의 관문'이었던 도시
빌라델비아는 동부 지역에 헬라(그리스) 문화와 언어를 전파하기 위해 세워진 전략적 문화 전파 기지였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이 교회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도시가 지리적으로 복음을 사방으로 전파하기에 매우 유리한 길목(관문)이었던 역사적 배경과도 일맥상통합니다.
3. 지진의 공포와 "성전의 기둥"
빌라델비아는 지진이 매우 잦은 지역이었습니다. AD 17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된 적이 있고, 그 이후에도 수년 동안 여진이 계속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지진이 나면 도시 밖으로 대피했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교회에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지진 때문에 늘 집 밖으로 도망쳐야 했던 시민들에게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안식처'를 주겠다는 매우 강력한 위로의 메시지였습니다.
4. 칭찬만 받은 교회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책망 없이 오직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대단한 권력이나 부를 가진 교회는 아니었지만 환난과 유혹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과 형제 사랑을 실천했음을 보여줍니다.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7-13)
빌라델비아 교회는 '형제의 사랑'이라는 뜻이죠. 영적인 침체에 빠져서 거의 죽게 되었던 이 사데 시대의 마지막 무렵에 가까스로 이 죽음의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18세기 후반에 있었던 그 경건의 부흥과 선교적 열성을 불붙인 소수의 개혁자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다시금 부활의 새 아침과도 같은 빌라델비아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데 시대의 교회를 냉각시켰던 그 싸늘한 신학 교리 논쟁 이런 것들은 십자가로 맺어진 형제의 사랑과 세계 선교의 열성으로 모두 해빙되어서, 사도 시대 이래 없었던 부흥이 참으로 오랜만에 교회의 문을 노크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맏형님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다른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확산되어서, 마침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을 휩쓸었던 세계 선교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 사데 시대의 흰옷을 입은 자들이었던 경건주의자들과 모라비안 신자들, 그리고 웨슬리 형제와 화이트필드(Whitefield) 같은 이들의 경건 부흥과 세계 선교 운동은 1776년 미국의 독립과 1789년 프랑스 혁명 같은 사건들에 크게 자극을 받은 시대 분위기를 타고 전 세계 교회로 삽시간에 번진 것입니다. 세계의 구원을 위한 열망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슴마다 번지고 네덜란드, 독일, 아메리카의 모든 개신교회에 번져 나가서, 마침내 모든 세계가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불태워지고 구세주의 향긋한 이름의 향기가 이교의 땅마다 번지도록 수고에 이른 시대가 바로 이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입니다.
이러한 형제와 인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인 세계적인 선교 운동은 열렬한 기도 그리고 진지한 성경 연구로 뒷받침되었습니다. 1804년에 대영 성서 공회가 설립되었고, 1816년에 미국 성서 공회가 설립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대한 이와 같은 진지한 관심과 열렬한 성경 연구의 결과는 곧바로 성경의 결론이요 구속 역사의 종결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집약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설명된 2,300주야 문제와, 마침내 1844년에 시작되는 하늘 지성소에서의 재림 전 심판에 초점이 모아지게 됩니다.
기원전 457년 가을에 시작해서 2,300주야의 끝이 되는 때가 1844년입니다. 그러니까 초교파적이고 전 세계적인 재림 운동의 대단원의 막이 이제 열리게 된 것이죠. 이러한 배경은 빌라델비아 시대를 1798년부터 1844년까지로 적용하는 데 아주 적합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짧은 기간이며, 실제 빌라델비아의 역사가 일곱 교회가 위치한 도시들 가운데서도 가장 짧았다는 점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책망은 없고 칭찬만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영적 상태를 유지한 교회로 특징지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형제 사랑의 시대라고 부르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있을 수 없었지요. 여기 말씀을 보겠습니다.
>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시니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가라사대" (계시록 3장 7절)
예수께서 지금 빌라델비아 신자들에게 자신을 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죠. 빌라델비아 도시는 헬라의 문화와 언어를 소아시아 지방에 전파하기 위한 길목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동부 고원 지대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 것이죠. 이러한 배경 때문에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길목 도시 입구에 세워진 위엄 있는 문과 그 문의 열쇠를 소지하고 마음대로 여닫는 관리에 대해 아주 특별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그 도시의 열쇠가 아니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닫을 사람이 없는 위엄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계 3:12)
빌라델비아는 화산과 지진의 위험에 늘 노출된 도시였습니다. AD 17년에 사데 주변 10개 도시를 파괴한 대지진이 있었는데, 다른 도시들은 한 차례로 끝났지만 빌라델비아는 여진이 여러 해 동안 계속되어 시민들은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지진의 충격이 예고 없이 닥치면 벽이 무너지고 폐허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 바깥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그러다 지진이 멎으면 다시 들어와 보수하고, 또 여진이 있으면 밖으로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늘 대피할 태세를 갖추고 초연하게 살아갔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안정된 거처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하늘에서의 영원한 정착을 보증하신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약속이 없었을 것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일곱 도시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가졌는데, 기원전 159~138년 사이 버가모의 아탈로스 2세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아탈로스 2세가 자기 형인 유메네스 왕을 참으로 사랑했기에,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의 '필라델포스'라고 불렸고 그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 시대의 순수한 형제 사랑과 고상한 봉사 정신을 잘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이 도시는 헬라 문명을 보급하는 기지로 세워졌고 그 사명을 아주 잘 수행했습니다. 서기 19년경에는 리디아 사람들이 자기 말을 잊고 헬라어만 쓸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는 빌라델비아 시대의 교회들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복음을 성공적으로 온 세계에 전파하고,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소식을 전파한 빛나는 사명을 잘 예표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소개 중 "거룩하고 진실하사"라는 속성은 당시 사건과 연관 지을 때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빌라델비아 시대는 구약 성막 제도의 대속죄일에 해당하는 '하늘 성소의 정결'이 있게 되는 2,300주야의 끝, 1844년의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바로 이 해에 가장 거룩한 장소인 하늘 지성소에, 가장 거룩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셔서 백성을 죄로부터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는 봉사, 즉 재림 전 심판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구약 성막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였지만,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성소가 아니라 하늘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고,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진 왕의 권세로 문을 여십니다.
예수님만이 여실 수 있는 문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무덤의 문입니다. 계시록 1장 18절에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무덤 문을 열 수 있는 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는 그 열쇠를 바라보며 슬픔의 눈물을 닦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낼 수 있으며, 우리 자신도 두려움 없이 무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늘 지성소의 문입니다. 계시록 11장 19절에 하늘 성전이 열리니 언약궤가 보였다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지성소에 있습니다. 1844년에 예수께서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빌라델비아 시대는 이 지성소의 문을 열며 끝이 납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들어 있습니다. 당시 자유주의 사상과 고등 비평으로 성경을 가벼이 여길 때, 하나님의 법 십계명이 다시금 주의를 환기시키며 참 신앙의 길을 밝혀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이 심판의 기준으로서 기능을 회복한다는 엄숙한 확인입니다.
중세 시대 교황청에 의해 짓밟히고 변개되었던 하나님의 법—우상 숭배를 금한 둘째 계명과 창조주를 기억하는 넷째 계명(안식일)—이 빌라델비아 시대 끝 무렵에 다시 강조됩니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마지막 복음과 함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언급됩니다.
셋째는 진리의 빛과 생명의 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을 잔뜩 짊어지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를 칭찬하십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고대 빌라델비아는 규모가 작았지만 사명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사데 교회가 전해준 부흥의 불씨로 세상을 불붙였습니다. 상실했던 처음 사랑이 돋아나고 오순절의 역사가 재현된 것입니다. 이 연약한 교회가 이룩한 선교 업적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당시 개신교인들은 선교에 관심이 없었으나, 영국 구두 수선공 출신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에 의해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그는 히브리서 13장 말씀을 통해 헌신을 결단하고, 독학으로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쿡 선장의 항해기를 읽고 미개한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세계 지도를 껴안고 기도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 원로들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개종시키려 하신다면 우리 도움 없이도 하실 것"이라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캐리는 1792년 선교에 관한 책을 쓰고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십시오." 이 설교에 감동한 목사들이 침례교 선교회를 만들었고, 캐리는 32세에 인도 선교사로 떠납니다.
가족과 교회의 반대, 말라리아, 아들의 죽음, 아내의 정신병 등 처절한 시련이 있었지만 그는 일기장에 "하나님은 신실하시니 이 고귀한 사명만으로도 기뻐하겠다"고 적었습니다. 뱅갈에서 7년간 한 명의 회심자도 없었지만 그는 인내했습니다. 주님의 시간에 성취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교 센터도 일본 선교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역사를 진행해 오셨습니다. 땅에 사는 한 문제는 항상 있습니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캐리에게는 윌리엄 와드, 조슈아 마시맨 같은 신실한 동역자들이 생겼고, 마침내 개종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대학과 126개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캐리는 현지인에 의한 토착 교회 설립과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 번역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20년의 수고가 담긴 원고와 인쇄기가 불에 타 모두 소실되었을 때도 그는 로마서 8장 28절을 낭독하며 "하나님이 더 완벽하게 번역하라고 하시는 것"이라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소식에 자극받은 영국 젊은이 3천 명이 선교사를 지원했고, 500명이 인도로 와서 20년의 사역을 1년 만에 복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잘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저희 사역자들도 박사 학위 하나 없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사회 개혁(사티 제도 폐지 등)에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늘 정원 구석에서 기도하며 고난을 이겼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가엽고 불쌍하고 무력한 벌레 같은 인간, 당신의 친절한 팔에 안기나이다"라고 새겨졌습니다.
빌라델비아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재림에 대한 확신입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1780년 암흑일, 1833년 유성우 등 징조들은 재림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지진 때문에 늘 불안해하며 짐을 챙겨야 했던 빌라델비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거할 곳을 예비하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슬픔도, 상처도, 경제적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의 중심이신 예수님을 뵙게 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윌리엄 캐리처럼 우리도 재림의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이 땅의 삶이 수고로우십니까? 조금만 더 인내하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이들은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https://youtu.be/wkIPyvqpLyI?list=RDwkIPyvqpLy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