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2일 아침편지
“김장하” 그는 1944년 경남 사천 가난한 집안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후 1959년 한약방 점원으로 취업했고, 1962년 독학으로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해 성년의 나이가 된 이듬해 면허증을 받았다. 같은해 사천에 연 한약방은 갓 스무살 원장이 실력 좋고 정직하단 소문이 나 전국에서 손님이 밀려왔다. 많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는 자신이 가난 탓에 못 배운 한을 전재산을 털어 고등학교를 지은 걸로 달랬다. 그리고 1991년 그 학교를 110억원 가치의 건물·땅과 함께 국가에 헌납했다. 그에게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을 비롯해 서울대 출신 과학자, 의대교수 등 1000명은 족히 넘는다. 오죽하면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란 별명이 붙었을까. 정작 자신은 헤진 양복을 입고 같은 소파와 찻잔을 수십년간 쓰는 등 검소함이 몸에 뱄다.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구린내가 나고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 “(한약업을 하며)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 등 선생의 어록도 화제다. 장학생 출신 김종명씨가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선생이 그러더란다. “그런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https://www.youtube.com/watch?v=a8Yk_jc1L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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