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라오스 나눔 정신, 새벽 탁발 행렬에 감동
2008년 루앙프라방에 취재를 왔던 뉴욕타임즈 기자의 시야에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명 속에서 희미하게 행렬을 이루고 있는 탁발승들의 모습이었다.
주황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이 사원을 따라 걸을 때 그들을 맞아주는 또 하나의 행렬,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이었다.
주민들은 새벽에 정성껏 준비한 과일, 밥, 떡을 승려의 바구니에 넣었고 탁발승들은 합장으로 공양을 받았다. 그날 ‘일용할 양식’이 그릇에 차면 승려들은 다시 밥이며 쌀을 다시 주민들의 바구니에 넣어주는데, 이 밥은 주변 소수민족이나 마을 빈곤층의 식탁에 올려졌다. 주민들의 식량이 절에 올려지고, 그 쌀이 다시 기층 민중에게 내려오는 선(善)순한 구조는 이기주의, 승자독식 시스템에 익숙한 미국 기자에게 경이(驚異)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장엄한 의식에 감명 받은 기자는 현장에서 특집을 써내려갔고, 이 기사 덕에 루앙프라방은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관광지’에 선정되었다.
◆고대부터 라오스 문명을 일군 곳 ‘제2의 수도’ 위상
라오스를 ‘시간이 멈추는 곳’ ‘영혼을 치유하는 힐링의 도시’라고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루앙프라방이다.
해발 700m 고도에 위치한 이 곳은 고대부터 타이족, 라오족이 문명을 일궈 온 곳. 메콩강과 남칸강이 합류해 풍요로운 대지와 용수를 제공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라오스의 ‘제2 수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1353년부터 약 200년간 란싼왕국의 수도로 자리 잡은 덕에 당시 왕궁과 불교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사원의 도시’라고 부를 만큼 이들 사찰은 양, 질적인 면에서 라오스 불교문화를 대표해,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런 도시 명성과 위상에 비해 사실 루앙프라방은 인구 6만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라오스 역사 1천년을 말할 때 한 왕조의 탄생지였고, 오랜 기간 라오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큼 사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 전통이 잘 보존돼 있다.
이 도시에서 두 달을 머물렀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에서의 사색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이 책엔 느린 걸음으로 도시를 산책했던 작가의 관조(觀照)가 잘 나타나 있다. 그 결과 루앙프라방은 그의 베스트 여행지 10곳에 당당히 랭크되었고, 책 제목(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여명 속 탁발행렬, 라오스의 나눔 정신 잘 나타나
전세계 여행객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된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 관람의 그 첫 문은 수면(睡眠)을 단축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되는 일이었다. 5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사원들이 물려있는 시내로 향했다.
아직은 어둠이 사위(四圍)를 삼킨 이른 새벽, 관광객들과 보시(布施)에 나선 마을 주민들이 사원의 담장 밑에 늘어서있었다.
잠시 후 흐릿한 어둠 속에서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하루에 첫 출발을 적선(積善)으로 시작하는 보시 행렬이요, 베품으로 새벽을 여는 나눔의 행진이었다.
이런 나눔 덕에 동남아의 최빈국 라오스에서는 주민들이 기아(飢餓)를 면할 수 있었고, 이런 공동체 미덕은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 지주로 작용했다.
승려 중에는 소년들도 많았는데 일부는 잠에서 덜 깬 듯 졸린 눈으로 행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민들은 이 동자승을 위해 과자, 초콜릿을 공양 한다. 동심은 동심인지라 이들은 바구니 가득 과자, 사탕을 집어넣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바구니가 차면 마을 어린이들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 언론에 알려질 당시만 해도 이 보시 행렬은 종교, 제의(祭儀) 기능에 충실했지만 지금은 일종의 퍼포먼스, 관광상품 정도로 퇴색되었다고 한다. 일행 중 몇 명이 이 체험에 참여했는데 밥, 바구니와 공양할 자리를 빌리는데 3달러를 내야 했다.
이런 상업화의 비난과 관계없이 이 행진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구세군 냄비를 피해 돌아가고, 몇 천원 전화 다이얼링에도 인색한 우리에게 이 행렬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꽝시폭포 비취빛 물빛, 푸시산 노을 감상도 필수 코스
루앙프라방이 라오스 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기능해 종교, 사상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 도시는 자연경관, 문화재 등 관광자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를 닮았다는 꽝시폭포.
밀림으로 뒤덮인 숲속에 카르스트 지형이 빚은 계단식 웅덩이에 찰랑거리는 에메랄드 물빛은 관광객들을 동화 속 나라로 이끈다. 옥색 물빛이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 앞에서면 관광객들은 그 위용과 풍경에 압도돼 버린다.
일정에 쫓긴 한국인들은 한두 시간 투어로 끝내지만 서양인들은 수영복, 튜브, 간식까지 가져와 반나절씩 머물고 간다.
라오맥주(Lao Beer)를 마시며 석양을 감상할 수 푸시산도 놓쳐서는 안 될 코스.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푸시산은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어 교통의 기준,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총 32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탓에 여성, 노약자, 어르신들은 힘들 수 있지만 대신 노역에 대한 댓가는 확실히 보장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 오를 때 커피와 이곳 특산물인 라오맥주를 가져가는데 이는 석양을 감상할 때 ‘조미료’로 쓰기 위해서다.
일행이 도착할 무렵 이미 정상에는 관광객들이 빽빽히 들어차있었다. 바쁜 일정 관계로 일몰을 끝까지 감상하지 못했지만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자체로 풍경이 되었다.
메콩강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저녁이 왔음을 알린다. 노을 사이로 선착장에 한무리 배낭 여행자들이 내린다. 그 배엔 다시 일정을 모두 마친 여행객들로 채워지며 관광객들이 교차한다.
선착장에도 낮과 밤의 자리가 바뀌었다. 루앙프라방의 밤은 아주 천천히 찾아온다. 그 게으른 밤에 의지해 우리도 잠을 청한다.
5일 일정이 모두 끝났고, 우리에게 주어진 70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문득 스치는 한가지 의문. 라오스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데 이 ‘시간의 역설’은 왜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더 낮추지 못하고, 더 내려 놓지 못해서였을까. 우리가 느낀 이 시간 지체(遲滯)는 라오스가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였다.
사진 설명
톱: 꽝시폭포에서 관광객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카르스트 지형이 빚은 계단식 웅덩이에 찰랑거리는 에메랄드 물빛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아트클립코리아 제공
시내: 푸시산에서 내려다본 루앙프라방.
탁발: 탁발 행렬 모습.
푸시산 노을: 푸시산 노을을 감상하는 모습.
야시장: 루앙프라방 야시장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