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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3장33절] 상제께서 하루는 무당 도수라 하시며 고부인(高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며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하시고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라. 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고 하셨도다.
[공사3장13절] 상제께서 와룡리 신 경수의 집에서 공우에게 “너의 살과 나의 살을 떼어서 쓸 데가 있으니 너의 뜻이 어떠하뇨”고 물으시기에 그가 대하여 말하기를 “쓸 곳이 있으시면 쓰시옵소서” 하였도다. 그 후에 살을 떼어 쓰신 일은 없으되 다음날부터 공우가 심히 수척하여지는도다. 공우가 여쭈기를 “살을 떼어 쓰신다는 말씀만 계시고 행하시지 않으셨으나 그 후로부터 상제와 제가 수척하여지오니 무슨 까닭이오니까.” 상제께서 “살은 이미 떼어 썼느니라. 묵은 하늘이 두 사람의 살을 쓰려 하기에 만일 허락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배은이 되므로 허락한 것이로다”고 일러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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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와 한 묶음으로 엮인 사람은 전경에 의하면 高夫人 과 朴公又 외에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었다....그리고 [공사3장13절] 에 의하면 성사와 朴公又 는 살을 떼어낼 肉(身) 을 가지고 있는 人(間) 이다.....人 은 天地 사이(=間)에 있어서 人(間) 이라 불리운다.....人 의 위치는 天地 의 中 이다.....그래서...동양철학에서는 天地 사이의 物 과 事 는 60甲子 로 그 좌표를 정한다.....그런 관점에서는 천부경의 <人中天地一> 을 이해해볼 수도 있다.....이 사바세계의 순서로 보면 天(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와 地(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먼저 나오고 나서야 事와 物 을 기록할 수 있다....예를 들자면 성사는 辛未生 이라고 좌표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교운1장48절] 최 덕겸ㆍ김 자현ㆍ차 경석 등의 종도들이 상제와 함께 있을 때 최 덕겸이 “천하사는 어떻게 되오리까”고 상제께 여쭈는지라. 상제께서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쓰시면서 “이렇게 되리라” 하시니 옆에 있던 자현이 그것을 해석하는 데에 난색을 표하니 상제께서 다시 그 글자 위에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를 쓰시고 경석을 가리키면서 “이 두 줄은 베 짜는 바디와 머리를 빗는 빗과 같으니라”고 일러 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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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 이야기를 한 것은 經緯(경위), 즉 理(致)
를 이야기한 것인데, 天下事 를 묻는 질문에 12개의 지지를 먼저 이야기하셨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한다....德兼 이 물어보았는데, 경석을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이것은 경석이 經緯(경위), 즉 理(致) 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天下事 는 天下 즉, 地 와 人 에 관한 것이다....
이런 관점은 12運氣 와 관련되어 있다... 12運氣 는 (참고)에 붉은 색으로 표시했다...
(참고)
[제생1장43절] 상제께서 전주 이 치안의 집에 「고견 원려 왈지(高見遠慮曰智)」의 글을 써 놓으셨도다.
智者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每事 任意用之 謂之智慧勇力
大智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其次 與日月同 有弦望晦朔之理
又其次 與鬼神同 有吉凶禍福之道
萬事起於陰 以布陽 先察陰晦 以觀陽明 每事先觀始發處
陰起事而陽明 陽起事而陰匿 要須先察陰陽 陰陽則水火而已
日用事物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萬事可知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
陰殺陽生 陽殺陰生 生殺之道 在於陰陽 人可用陰陽然後 方可謂人生也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不測變化之術 都在於神明 感通神明然後 事其事則謂之大仁大義也
事有決斷然後 有變化之道也
春夏秋冬秋爲義 義則決斷也
六用三德 三德則天德地德人德也 統合謂之大德也
德義有生殺之權 生殺則陰陽 知此兩端而已
天用地用 人用之 調理綱紀 統制乾坤 此之謂造化手段也
理雖高 出於太極无極之表 不離乎日用事物之間
年月日時分刻輪廻 皆是元亨利貞天地之道也
天地之用 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而已
養則收藏處 藏則出用處 觀其收藏出用之物 以致出也
人而用之之道 捨此而何以也
入而養中 出而形外 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自然心自開也
(참고)
72
하루는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주는 내가 잡고 이제 뽑기까지 하였으니, 까기만 하면 되는데 까기는 여반장(如反掌)이니 너희들이 하라. 진주란 낙서의 법이니 낙서 구궁(九宮)의 수가 종, 횡, 대각(縱橫對角) 팔방이 모두 15임이니라. 또 낙서의 좌선(左旋), 우선(右旋)하고 상생상극(相生相剋)하는 이치도 너희들이 깨달아야 하느니라." 하시며, 낙서 구궁도(九宮圖)를 하시(下示)하시니 다음 표와 같으니라.
73
9월 중순에 상제님께서 임원들로 하여금 중부 도인 전원에게 구궁 팔괘와 생기법(生氣法), 십이운법(十二運法)을 가르쳐 외우도록 하시고 다음의 한시를 외워 주시니라. 先須掌中配九宮 縱橫十五在其中 선수장중배구궁 종횡십오재기중 次將八卦分八節 一氣統三爲正宗 차장팔괘분팔절 일기통삼위정종
각설하고..........
성사와 한 묶음으로 경전에 등장하는 2사람, 즉 高夫人 과 朴公又 에 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러다보면, 道通 에 관한 힌트를 얻을지도 모른다......
(1) 高夫人
[행록4장22절] 훗날에 윤경이 상제를 찾아뵈옵고 고부인(高夫人)과 희남(熙南)의 병세를 알리니라. 소식을 듣고 상제께서 “내일 살포정에 가서 나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도다. 윤경은 이튿날 살포정으로 갔으나 상제를 뵈옵지 못하여 바로 태인 소퇴원 주막으로 가니라. 주막 주인이 윤경의 물음에 “선생님께서 윤경을 새울로 보내라”고 전하니 그는 새울로 떠나가니라.
그는 도중에서 일병 수백 명을 만나 검문을 받았으나 가환으로 의사를 모시러 가는 길이라고 알리니 저희들이 모두 물러가는도다. 윤경이 새울에 가서 상제께 배알하니 상제께서 “오늘은 병세가 어떠냐”고 물으시니라. 윤경이 “집에서 일찍이 떠났으므로 잘 모르나이다”고 아뢴즉 상제께서 “네가 무엇하러 왔느냐”고 꾸짖으시니 윤경은 몸 둘 바를 모르더라. 이날 밤에 상제께서 윤경으로 하여금 밤이 새도록 문밖을 돌게 하셨도다. 윤경이 졸음을 달래면서 돌고 있는 중에 첫닭이 울더니 상제께서 문밖으로 나오셔서 “네가 졸리지 않느냐”고 물으시기에 윤경이 “졸리지 아니하나이다”고 여쭈니 “그럼 나와 함께 백암리(白岩里)로 가자”하시고 길을 떠나시니라. 김 자현도 따라 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이르러 조반을 먹고 다시 정읍으로 갔도다. 상제께서 일행을 앞세우기도 하고 뒤에 따르게도 하시면서 얼마동안 가시다가 “일본 사람을 보는 것이 좋지 않다” 하시고 정읍 노송정(老松亭)에 이르셨을 때 “좀 지체하였다가 가는 것이 가하다” 하시고 반 시간쯤 쉬시니라. 일행은 노송정의 모퉁이에 있는 큰 못가에 이르렀을 때 일본 기병이 이곳으로 오다가 이곳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돌아간 많은 말 발자국을 보았도다. 이때 상제께서 “대인의 앞길에 저희들이 어찌 감히 몰려오리오”라고 외치셨도다. 옆에 있던 윤경이 행인으로부터 수십 명의 일본 기병이 이곳에 달려왔다가 딴 곳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라. 상제께서 대흥리에 이르셔서 고부인과 희남의 병을 돌보시니라. 그들은 병에서 건강한 몸을 되찾았도다.
[행록4장23절] 상제께서 무신년 어느 날 고부인에게 “내가 떠날지라도 그대는 변함이 없겠느냐”고 말씀하시니 부인이 대하여 “어찌 변함이 있겠나이까”고 대답하였도다.
[행록4장25절] 그리고 고부인에게 다시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여덟 가지 병으로 어떻게 고통하리오. 그 중에 단독이 크리니 이제 그 독기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부인의 손등에 침을 바르셨도다.
[행록4장26절] 다시 “크나큰 살림을 어찌 홀로 맡아서 처리하리오”라고 말씀을 하시니 고부인은 상제께서 멀리 외방으로 출행하시려는 것으로 알았도다.
[행록4장53절] 상제께서 태인 새울에 계셨도다. 어느 날 상제께서 박 공우를 경석에게 보내어 그를 오게 하시니 경석이 와서 뵙느니라. 상제께서 그에게 돈을 주시며 “돌아가서 쌀을 팔아 놓아라” 명하시니라. 그는 그 돈을 사사로이 써 버렸도다. 그 뒤에 상제께서 댁으로 돌아가셔서 부인에게 “쌀을 많이 팔았느냐”고 물으시니 부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경석을 불러 물으시니 경석은 그 돈을 부인에게 드리지 않았음을 고백하였도다. 이후로부터 상제께서 모든 일을 경석에게 부탁하지 아니하고 바로 고부인과 의논하여 일을 처리하셨도다.
[공사2장18절] 十二월 초하룻날 고부인은 상제의 분부대로 대흥리에서 백미 한 섬을 방에 두고 백지로 만든 고깔 二十여 개를 쌀 위에 놓고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니라. 이때 상제께서 “불과 물만 가지면 비록 석산바위 위에 있을지라도 먹고 사느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백미로 밥을 지어 이날 모인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도다.
[공사3장33절] 상제께서 하루는 무당 도수라 하시며 고부인(高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며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하시고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라. 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고 하셨도다.
[교운1장26절] 상제께서 정미년에 태인 고현내 행단에 이르러 차 경석에게
“夫主將之法 務攬英雄之心 賞祿有功 通志於衆 與衆同好靡不成 與衆同惡靡不傾治
國安家得人也 亡國敗家失人也 含氣之類 咸願得其志”
란 글 한 절을 외워 주시고 잘 지키기를 바라시면서 수부(首婦)가 들어서야 하느니라고 이르시니라. 경석이 상제를 모시고 돌아와서 그 이종매(姨從妹) 고부인(高夫人)을 천거하니 이날이 동짓달 초사흗날이니라.
[권지2장34절] 차 경석이 어느 때 정읍 고부인이 안질로 고생하고 자기 아들 희남(熙南)이 앓아 누운 것을 상제께 알리려 동곡에 아우 윤경을 보내니 마을 입구에 김 자현ㆍ김 광찬 등 十여 명이 상제로부터 “차 윤경이 대흥리에서 찾아오리라”는 말씀을 듣고 마중을 나와 그를 맞았도다.
[제생1장41절] 어느 날 고부인은 모친이 단독을 앓는다는 기별을 듣고 근친하려고 하니 상제께서 좀 기다려서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마음 속으로 기뻐하여 기다리니라. 그러던 중에 모친이 아랫방에 들어오니라. 상제께서 “왕대 뿌리에 왕대 나고 시누대 뿌리에 시누대 나나니 딸이 잘 되도록 축수하라”고 부탁하시니 이로부터 단독이 곧 나았도다.
[예시1장70절] 상제께서 구릿골 약방에서
“약장은 안장롱이고 신주독(神主櫝)이니라. 여기에 배접한 종이를 뜯을 날이 속히 이르러야 하리라”
고 말씀하시고 그 후 대흥리에서 고부인에게 “약장은 네 농바리가 되리라”고 이르셨도다.
(2) 朴公又
[행록3장41절] 상제께서 그 후 경석에게 “너의 선묘인 구월산(九月山) 금반사치(金盤死雉)의 혈음(穴蔭)을 옮겨 와야 되리라”고 명하시고 공우에게 북을 치게 하고 말씀하시기를 “이 혈음은 반드시 장풍(長風)을 받아야 발하리라” 하셨도다. 이때 이 도삼(李道三)의 아우 장풍(長豊)이 문득 들어오거늘 공우가 북채를 잠깐 멈추고 “장풍이 오느냐”고 인사를 하는도다.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이제 그만 그치라”고 말씀하셨도다.
[행록3장46절] 김 덕찬(金德贊)의 누이동생 집에서 묘제가 있었던바 덕찬이 상제께 매가에 가셔서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상제께서 “나의 술을 먼저 마시라” 하시니 그가 “무슨 술이옵나이까”고 여쭈니 “좀 기다려 보라” 하시니라. 얼마 후에 공우가 삶은 닭과 술을 가져와서 상제께 드리니 이에 덕찬이 감복하여 술을 마셨도다.
[행록3장57절] 이 일이 나기 전날 상제께서 광찬을 정읍에 있는 경석에게 보내고 원일을 태인에 있는 경원에게 가게 하고 공우를 또 다른 곳으로 보내셨도다. 이렇게 피하게 하신 것은 광찬과 원일의 성질을 알고 계시는 터이고 공우는 여러 번 관재를 당하였던 까닭이었도다.[행록4장9절] 상제께서 어느 날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보림면 장재동을 지나는 길가에서 묘(墓)를 보시고 공우에게 이르시니라. “이 혈(穴)은 와우형(臥牛形)이나 금혈형(琴穴形)이라고 불리우니라. 그것은 혈명을 잘못 지어서 발음(發蔭)이 잘못되었느니라. 어디든지 혈명을 모르거든 용미(龍尾) 없이 조분(造墳)하였다가 명사에게 혈명을 지은 뒤에 용미를 달면 발음이 되나니라” 하셨도다.
[행록4장13절] 상제께서 공우를 데리시고 구릿골에 이르시니라. 도중에서 상제와 그는 한 장군이 갑주 차림에 칼을 짚고 제비산 중턱에 서 있는 것을 보았도다. 상제께서 구릿골에 이르셔서 김 준상(金俊相)의 집에 머무시니라. 어떤 사람이 김 준상을 잡으려고 이 밤에 구릿골에 온다는 말을 들었노라고 전하니라. 이 말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태연히 계시다가 저녁 무렵에 형렬의 집으로 가시니라. 여러 종도들이 준상의 집에서 잠자는데 공우는 뒷산에 올라가 망을 보고 있던 터에 원평(院坪) 쪽으로부터 등불을 가진 사람 대여섯이 구릿골을 향하여 오다가 선문(旋門)에 이르렀을 때 등불이 꺼지는 것을 보고 되돌아가 종도들을 깨워서 함께 피신하려고 하나 곤히 잠든 사람들이 좀처럼 깨지 않았도다. 그러나 한 식경이 되어도 아무 기척이 없으므로 안심하고 그는 잠에 드니라. 이튿날 상제께서 그에게 “대장은 도적을 잘 지켜야 하나니라”고 이르셨도다.[행록4장14절] 상제께서 공우에게 가라사대 “내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터이니 나의 말을 믿을지어다. 너는 광인이 되지 못하였으니 농판으로 행세함이 가하니라” 하시니라.
[행록4장19절] 손 병욱(孫秉旭)은 고부 사람인데 상제를 지성껏 모셨으나 그의 아내는 상제의 왕래를 불쾌히 여기고 남편의 믿음을 방해하였도다. 어느 날 병욱의 아내가 골절이 쑤시고 입맛을 잃어 식음을 전폐하여 사경에 헤매게 되었느니라. 공우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상제께 아뢰면 고쳐 주시리라고 믿었도다.
[행록4장20절] 그 후 어느 날 공우가 정읍에 가서 상제를 모시고 와룡리(臥龍里) 네거리에 이르렀도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회룡리(回龍里)가 있고 이곳에 신 경수(申京洙)가 살고 서북쪽 교동에 황 응종(黃應鍾)이 살고 있었도다. 상제께서 네거리 복판에서 공우에게 “어디로 가는 것이 마땅하냐”고 물으시니 공우가 “저희 집으로 가시옵소서” 하고 청하니 상제께서 세 번이나 되물으시므로 공우도 세 번 한결같이 대답하니라. 그러나 상제께서 먼저 응종의 집에 들르셨다가 곧 공우를 데리시고 병욱의 집에 가셨도다. 상제께서 병욱에게 돈 서돈을 청하시기에 그가 올리니 그것을 공우에게 간수하게 하시고 또 두 냥을 병욱으로부터 받아서 다시 그에게 그것을 갈무리하게 하신 후에 병욱의 아내를 불러 앞에 앉히고 “왜 그리하였느냐”고 세 번 되풀이 꾸짖고 외면하시면서 “죽을 다른 사람에게 가라”고 혼자 말씀을 하시니라. 병욱이 상제께 공양할 술을 준비하려 하기에 상제께서 “나 먹을 술은 있으니 준비하지 말라” 이르시니라. 병욱의 장모가 상제께서 오신 것을 알고 술과 안주를 올리니 상제께서 그 술을 드셨도다.
응종의 집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새벽에 구릿골로 행차하셨도다. 가시는 도중에 공우에게 “사나이가 잘 되려고 하는데 아내가 방해하니 제 연분이 아니라. 신명들이 없애려는 것을 구하여 주었노라. 이제 병은 나았으나 이 뒤로 잉태는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과연 그 후부터 그 아내는 잉태하지 못하였도다.
[행록4장40절] 상제께서 하루는 공우(公又)를 데리고 어디를 가실 때 공우에게 우산을 사서 들게 하셨도다.
공우는 상제께서는 원래 우산을 받는 일이 없었고 비록 비오는 날 길을 가실지라도 비가 몸에 범하는 일이 없었던 일을 생각하여 이상히 여기더니 뜻밖에 비가 오는도다. 상제께서 공우에게 우산을 받으라 하시니 공우는 상제께 받으시길 청하여 서로 사양하다가 함께 비를 맞아 옷이 흠뻑 젖으니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뒤로는 우산을 들지 말라. 의뢰심과 두 마음을 품으면 신명의 음호를 받지 못하나니라”고 하셨도다.[행록4장41절] 상제께서 어느 날 차 경석ㆍ김 광찬ㆍ황 응종을 앞에 세우고 공우에게 몽치를 들게 하고 윤경에게 칼을 들리고 “너희가 이 이후에도 지금의 스승을 모시고 있듯이 변함이 없겠느냐. 변함이 있으면 이 몽치로 더수구니를 칠 것이오. 이 칼로 배를 가를 것이니라”고 꾸짖기도 하고 타이르시기도 하셨다.
[행록4장47절] 이후에 백암리에서 상제를 박 공우와 신 원일이 모시고 있었도다. 이때 종도 김 경학의 천거로 김 영학(金永學)이 상제를 배알하였을 뿐 상제께서 이레 동안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도다. 영학이 매우 불만을 품기에 공우와 원일이 그에게 “그대가 상제께 삼가 사사하기를 청하면 빨리 가르쳐 주시리라”고 일러주니 그때야 그는 사사하기를 청하니 상제로부터 승낙을 얻었느니라. 그런데 상제께서 갑자기 그를 꾸중하시는도다. 영학은 두렵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니라. 상제께서 영학을 불러들여 “너를 꾸짖는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을 물리쳐 내려 하는 것이니 과히 불만을 사지 말라”고 타이르셨도다. 영학이 “무슨 척이니까. 깨닫지 못하겠나이다”고 되물은즉 “너는 열여덟 살 때 살인하고 금년에 또 살인하였나니 잘 생각하여 보라”고 회상을 촉구하시니 그는 옛일을 더듬었도다. “그 나이 때에 제가 남원(南原)에서 전주 아전과 말다툼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분격하여 그에게 화로를 던져 머리에 상처를 입혔는데 이것으로써 신음하다가 그 이듬해 三월에 죽었나이다. 또 금년 봄에 장성(長城) 다동(多洞)에서 사는 외숙인 김 요선(金堯善)이 의병으로부터 약탈을 당하여 의병대장 김 영백(金永白)을 장성 백양사(長城白羊寺)로 찾아가서 그 비행을 꾸짖으니 그 대장은 외숙에게 사과하고 그 의병을 찾아 총살하였나이다”고 영학이 이 두 가지 일을 아뢰었도다.
[행록4장50절] 공우가 항상 술을 과음하여 주정이 심하거늘 하루는 상제께서 공우를 불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술을 비교하리라” 하시고, 상제께서 술을 많이 권하시다가 갑자기 “너는 한 잔 술밖에 못된다” 하시니 그 뒤로는 공우가 한 잔만 마셔도 바로 취하여 더 마시지 못하였도다.[행록4장53절] 상제께서 태인 새울에 계셨도다. 어느 날 상제께서 박 공우를 경석에게 보내어 그를 오게 하시니 경석이 와서 뵙느니라. 상제께서 그에게 돈을 주시며 “돌아가서 쌀을 팔아 놓아라” 명하시니라. 그는 그 돈을 사사로이 써 버렸도다. 그 뒤에 상제께서 댁으로 돌아가셔서 부인에게 “쌀을 많이 팔았느냐”고 물으시니 부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경석을 불러 물으시니 경석은 그 돈을 부인에게 드리지 않았음을 고백하였도다. 이후로부터 상제께서 모든 일을 경석에게 부탁하지 아니하고 바로 고부인과 의논하여 일을 처리하셨도다.[행록4장56절] 상제께서 광찬이 불만을 품은 것을 심히 괴롭게 여기셔서 형렬에게 이르시니라. “광찬이 자살하려는 것은 제가 죽으려는 것이 아니요 나를 죽으라는 것이니라. 내가 정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행이라. 뒷일은 네게 통지하리라.” 二十八일에 상제께서 공우(公又)를 데리시고 동곡을 떠나 정읍 경석의 집에 가셨도다.
[행록5장9절] 경석이 三월 어느 날에 공우와 윤경을 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보내어 상제께 일이 무사함을 아뢰게 하였도다. 그 말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내가 공사를 본 후에 경석을 시험하였으되 일을 무사히 처결하였으니 진실로 다행한 일이로다”고 하셨도다.
[행록5장21절] 二十일에 모든 종도들이 속속 동곡에 모이니 김 형렬ㆍ김 갑칠ㆍ김 자현ㆍ김 덕유ㆍ류 찬명ㆍ박 공우ㆍ신 원일ㆍ이 치화ㆍ이 공삼ㆍ최 덕겸 등이오. 채 사윤(蔡士允)은 처음으로 동곡에서 시좌하니라. 상제께서 류 찬명에게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육정육갑 지혜용력(天文地理風雲造化八門遁甲六丁六甲智慧勇力)과 회문산 오선위기혈 무안 승달산 호승예불혈 장성 손룡 선녀직금혈 태인 배례전 군신봉조혈(回文山五仙圍碁穴 務安僧達山胡僧禮佛穴 長城巽龍仙女織錦穴 泰仁拜禮田群臣奉詔穴)을 쓰게 하고 불사르셨도다.
[행록5장36절] 이때에 여러 종도가 떠나고 김 형렬ㆍ차 경석ㆍ박 공우ㆍ김 자현ㆍ김 갑칠ㆍ김 덕찬 등 여섯 사람만이 상제를 지켜보니라. 부친이 고부 객망리 본댁으로부터 동곡에 오시고 형렬은 뜻밖의 변을 당하여 정신을 수습치 못하는지라. 종도들이 궤 속에 간수하였던 돈으로 치상을 끝내고 남은 돈을 본댁으로 보냈도다.
[공사1장32절] 상제께서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고 박 공우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때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나는데 두 노파가 상제의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기에 상제께서 길을 비켜 외면하셨도다.
[공사1장33절] 또 공우를 데리고 정읍으로 향하실 때 상제께서 “마음으로 천문지리를 찾아보라”하시기에 공우가 머리를 숙여서 풍운조화를 생각하니라. 상제께서 별안간 공우를 돌아보시며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으니 다시 찾아라” 이르시니 그는 놀라서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그릇되게 생각한 것을 뉘우치니라. 그는 다시 천문지리를 마음으로 찾다가 정읍에 이르니라. 이날 밤에 상제께서 눈비가 내리는 것을 내다보시면서 공우에게 “너의 한 번 그릇된 생각으로써 천기가 한결같지 못하다”고 책망하셨도다.
[공사2장8절] 목수가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기에 상제께서 목수로 하여금 목재를 한 곳에 모아 놓게 하고 앞에 꿇어앉힌 후 크게 꾸짖고 봉서 하나를 목수에게 주고 꿇어앉은 그대로 불사르게 하시니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목수가 두려워서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 “속히 마치라” 독려하시니라. 그 목수가 수전증이 나서 한 달이 넘은 후에 겨우 일을 끝내니라. 약방을 차린 후 상제께서 공우에게 “천지의 약기운은 평양에 내렸으니 네가 평양에 가서 당제약을 구하여 오라”고 명하셨도다. 그 후에 다시 그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고 그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공사2장11절] 상제께서는 약방에 갖추어 둔 모든 물목을 기록하여 공우와 광찬에게 주고 가라사대 “이 물목기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봉안한 석가불상을 향하여 그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불사르라”하시니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이로부터 몇 해 지난 후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석가불전을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니 미륵전 앞이 넓어지느니라. 이 불전이 오늘날의 대장전이로다.
[공사2장17절] 종도들의 음양 도수를 끝내신 상제께서 이번에는 후천 五만 년 첫 공사를 행하시려고 어느 날 박 공우에게 “깊이 생각하여 중대한 것을 들어 말하라” 하시니라. 공우가 지식이 없다고 사양하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라 아뢰기를 “선천에는 청춘과부가 수절한다 하여 공방에서 쓸쓸히 늙어 일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불가하오니 후천에서는 이 폐단을 고쳐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가려서 친족과 친구들을 청하고 공식으로 예를 갖추어 개가케 하는 것이 옳을 줄로 아나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처결하지 못할 것이므로 너에게 맡겼더니 잘 처결하였노라”고 이르시고 “이 결정의 공사가 五만 년을 가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2장21절] 한번은 상제께서 임 상옥에게 사기그릇을 주신 뒤에 공우를 대동하고 전주로 가시는 도중에 세천에 이르시니 점심때가 되니라. 공우가 상제를 고 송암(高松菴)의 친구 집에 모시고 상제께 점심상을 받게 하였도다. 상제께서 문득 “서양 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뒷골방에서 딴전 보는 자가 있는 것을 미처 몰랐노라” 하시고 “고 송암에게 물어보고 오너라”고 공우에게 이르시고 칠성경에 문곡(文曲)의 위치를 바꾸어 놓으셨도다.
[공사3장3절] 상제께서 어느 날 공우에게 “고부에 가서 돈을 주선하여 오라” 하시더니 마련된 돈으로써 약방의 수리를 끝마치시고 갑칠로 하여금 활 한 개와 화살 아홉 개를 만들게 하시고 그것으로써 공우로 하여금 지천(紙天)을 쏘아 맞추게 하시고 가라사대 “이제 구천을 맞췄노라” 하시고 또 말씀을 잇기를 “고부 돈으로 약방을 수리한 것은 선인포전(仙人布氈)의 기운을 쓴 것이니라” 하셨도다.
[공사3장13절] 상제께서 와룡리 신 경수의 집에서 공우에게 “너의 살과 나의 살을 떼어서 쓸 데가 있으니 너의 뜻이 어떠하뇨”고 물으시기에 그가 대하여 말하기를 “쓸 곳이 있으시면 쓰시옵소서” 하였도다. 그 후에 살을 떼어 쓰신 일은 없으되 다음날부터 공우가 심히 수척하여지는도다. 공우가 여쭈기를 “살을 떼어 쓰신다는 말씀만 계시고 행하시지 않으셨으나 그 후로부터 상제와 제가 수척하여지오니 무슨 까닭이오니까.” 상제께서 “살은 이미 떼어 썼느니라. 묵은 하늘이 두 사람의 살을 쓰려 하기에 만일 허락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배은이 되므로 허락한 것이로다”고 일러주셨도다.
[공사3장20절] 또 하루는 상제께서 공우에게 “태인 살포정 뒤에 호승예불(胡僧禮佛)을 써 주리니 역군(役軍)을 먹일 만한 술을 많이 빚어 놓으라” 이르시니라. 공우가 이르신 대로 하니라. 그 후에 상제께서 “장사를 지내 주리라”고 말씀하시고 종도들과 함께 술을 잡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상제께서 “지금은 천지에 수기가 돌지 아니하여 묘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으리라. 이후에 수기가 돌 때에 땅 기운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3장35절] 상제께서 하루는 구릿골에서 밤나무로 약패(藥牌)를 만들어 패면(牌面)에다 “만국의원(萬國醫院)”이라고 글자를 새겨 그 글자 획에다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바르시고 “이 약패를 원평(院坪) 길거리에 갖다 세우라”고 공우(公又)에게 명하셨도다. 공우가 약패를 갖고 원평으로 가려고 하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이 약패를 세울 때에 경관이 물으면 대답을 어떻게 하려 하느뇨” 하시니 공우 여쭈길 “만국의원(萬國醫院)을 설치하고 죽은 자를 재생케 하며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도 걷게 하며 그 밖에 모든 질병을 다 낫게 하리라고 하겠나이다”고 아뢰니 “네 말이 옳도다. 그대로 시행하라” 하시고 그 약패를 불사르셨도다.
[교운1장21절] 상제께서 대흥리로 행하실 때 박 공우가 따라가니라. 상제께서 경석의 집에 들러 글을 써서 벽에 붙이고 “내가 머무는 곳을 천지가 다 알아야 하리라”고 말씀하시니 갑자기 천둥이 치는지라. 공우가 몹시 놀라고 마을 사람들도 뜻밖의 천둥을 이상히 여기니라. 이후에 일진회원인 안 내성(安乃成)ㆍ문 공신(文公信)ㆍ황 응종(黃應鍾)ㆍ신 경수(申京洙)ㆍ박 장근(朴壯根) 등이 상제를 추종하였도다.
[교운1장25절] 상제께서 정미년 가을 어느 날 신 원일과 박 공우와 그 외 몇 사람을 데리시고 태인 살포정 주막에 오셔서 쉬시는데 갑자기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 집에 범하려 하기에 상제께서 번개와 우레가 일어나는 쪽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곧 멈추는지라. 이때 공우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번개를 부르시며 또 때로는 꾸짖어 물리치기도 하시니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는 상제시라, 어떤 일이 있어도 이분을 좇을 것이라고 마음에 굳게 다짐하였더니 어느 날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만날 사람 만났으니라는 가사를 아느냐” 하시고 “이제부터 네가 때마다 하는 그 식고(食告)를 나에게 돌리라” 하시니 공우가 감탄하여 여쭈기를 “평생의 소원이라 깨달았나이다.” 원래 공우는 동학신도들의 식고와는 달리 “하느님 뵈어지소서”라는 발원의 식고를 하였는데 이제 하시는 말씀이 남의 심경을 통찰하심이며 조화를 임의로 행하심을 볼 때 하느님의 강림이시라고 상제를 지성으로 받들기를 결심하였도다.
[교운1장33절] 공우가 어느 날 상제를 찾아뵈옵고 도통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니라. 상제께서 이 청을 꾸짖고 가라사대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베풀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 편벽됨을 힐난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 하셨도다.
[교운1장35절] 이 말씀을 마치시고 공우에게 “천지의 조화로 풍우를 일으키려면 무한한 공력이 드니 모든 일에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정 북창(鄭北窓) 같은 재주로도 입산 三일 후에야 천하사를 알았다 하느니라”고 이르셨도다.[교운1장51절] 상제께서 무신년 六월에 대흥리에 계시면서 공우로 하여금 각처의 종도들을 찾아 순회하게 하여 열하루 동안 매일 새벽에 한 시간씩만 잠에 들도록 하시니라. 경석이 명을 좇아 여러 날 동안 자지 않았기에 지쳐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문 앞의 모시밭 가에 이르러 잠에 취하여 혼미에 빠진지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천자(天子)를 도모하는 자는 모두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교운1장58절] 상제께서 어느 날 한가로이 공우와 함께 계시는데 이때 공우가 옆에 계시는 상제께 “동학주(東學呪)에 강(降)을 받지 못하였나이다”고 여쭈니 “그것은 다 제우강(濟愚降)이고 천강(天降)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도다. 또 “만일 천강을 받은 사람이면 병든 자를 한 번만 만져도 낫게 할 것이며 또한 건너다보기만 하여도 나을지니라. 천강(天降)은 뒤에 있나니 잘 닦으라”고 일러 주셨도다.
[교운1장64절] 공우가 三년 동안 상제를 모시고 천지공사에 여러 번 수종을 들었는데 공사가 끝날 때마다 그는 “각처의 종도들에게 순회ㆍ연포 하라”는 분부를 받고 “이 일이 곧 천지의 대순이라”는 말씀을 들었도다.
[교법1장42절] 상제께서 박 공우가 아내와 다투고 구릿골을 찾아왔기에 별안간 꾸짖으시기를 “나는 독하면 천하의 독을 다 가졌고 선하면 천하의 선을 다 가졌노라. 네가 어찌 내 앞에 있으면서 그런 참되지 못한 행위를 하느뇨. 이제 천지신명이 운수자리를 찾아서 각 사람과 각 가정을 드나들면서 기국을 시험하리라.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여 가정에 화기를 잃으면 신명들이 비웃고 큰일을 맡기지 못할 기국이라 하여 서로 이끌고 떠나가리니 일에 뜻을 둔 자가 한시라도 어찌 감히 생각을 소홀히 하리오” 하셨도다.
[교법1장45절] “내가 너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네 뱃속에 경우가 많은 연고니라. 여자도 경우가 많아야 아이를 많이 낳으리라”고 공우(公又)에게 말씀하셨도다.
[교법2장10절] 공우는 종도들이 모두 상투를 틀고 있는데 자신은 삭발하였기에 그들과 싸이기 어려우므로 불안하게 생각한 나머지 머리를 길러 솔잎상투에 갓망건을 쓰고 다니다가 금구(金溝)를 지나던 어느 날 일진회의 전 동지 十여 명을 만나 그들의 조소를 받고 머리를 깎여 두어 달 동안 바깥 출입을 금하고 다시 머리를 기르는 중이었도다. 돌연히 상제께서 찾아오셔서 한동안 출입하지 않는 까닭을 물으시니 공우가 사실 그대로 아뢰니라. 상제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 머리와 무슨 상관하리오.” 이 말씀을 하시고 공우를 데리시고 구릿골로 떠나셨도다.
[교법2장31절] 또 공우의 성질이 사나워서 남과 자주 다투기에 하루는 상제께서 공우에게 “너는 표단이 있으니 인단으로 갈음하라”고 말씀하시고 난 뒤로는 성질이 누그러지고 남에게 이기려고 하지 않고 다시 다투지 아니하였도다.
[교법3장12절] 상제께서 천원(川原)장에서 예수교 사람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으며 크게 고통하는 공우를 보시고 가라사대 “너도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완쾌된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 공우가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후일에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할 것을 생각하니라. 수일 후에 천원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려 상제께서 가라사대 “네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두 고을 목사가 움직였노라” 하시니라. 그 후에 상처가 완전히 나았도다.
[권지1장11절] 상제께서 어느 날 경석을 데리고 농암(籠岩)을 떠나 정읍으로 가는 도중에 원평 주막에 들러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술을 사서 권하고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짐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三十리 되는 곳에 이르러 “대진(大陣)은 일행 三十리라” 하시고 고부 송월리(松月里) 최(崔)씨의 재실에 거주하는 박 공우(朴公又)의 집에 유숙하셨도다. 공우와 경석에게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일지라도 모르는 일이니라” 또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희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 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려 함이노라.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자 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라고 말씀하셨도다.
[권지1장19절] 박 공우가 한때 일진회의 한 간부였으나 상제를 따른 후의 어느 날 가만히 일진회 사무소에 일을 보고 돌아왔는데 상제께서 문득 공우에게 이르시기를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그 몸이 찢어지리니 주의하라” 하시기에 공우는 놀라며 일진회와의 관계를 아주 끊고 숨기는 일을 하지 않으니라.
[권지1장20절] 상제께서 어느 날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새울에서 백암리로 가시는 도중에 문득 관운장(關雲長)의 형모로 변하여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내 얼굴이 관운장과 같으냐” 하시니 공우가 놀라며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거늘 상제께서 세 번을 거듭 물으시니 공우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관운장과 흡사하나이다”고 아뢰니 곧 본 얼굴로 회복하시고 김 경학의 집에 이르러 공사를 행하셨도다.
[권지1장33절] 천도교 손 병희(孫秉熙)가 호남 일대를 순회하고자 전주에 내려와서 머물렀도다. 상제께서 공우에게 “네가 전주에 가서 손 병희를 돌려보내고 오라. 그는 사설로 교도를 유혹하여 그 피폐가 커지니 그의 순회가 옳지 않다”고 분부를 내리셨도다. 이에 그가 복명하였으되 이튿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계시지 않으므로 이상히 여겼느니라. 며칠 후에 손 병희는 예정한 순회를 중지하고 경성으로 되돌아갔도다.
[권지2장1절] 박 공우의 아내가 물을 긷다가 엎어져서 허리와 다리를 다쳐 기동치 못하고 누워 있거늘 공우가 매우 근심하다가 상제가 계신 곳을 향하여 자기의 아내를 도와 주십사고 지성으로 심고하였더니 그의 처가 곧 나아서 일어나느니라. 그 후 공우가 상제께 배알하니 웃으며 가라사대 “내환으로 얼마나 염려하였느냐” 하시니라. 또 박 공우가 큰 돌을 들다가 허리를 상하여 고생하면서도 고하지 않았더니 하루는 상제를 모시고 길을 가는데 갑자기 노하여 말씀하시기를 “너의 허리를 베어버리리라” 하시더니 곧 요통이 나았도다.
[권지2장3절] 종도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신 경수의 집에 머물렀느니라. 공우는 밤에 잠자리에서 빛나는 사람 수십 명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상제가 계시는 문밖의 뜰에서 배례하는지라 이에 놀라서 공우는 상제의 등 뒤에 숨었도다. 아침에 상제께서 꿈 이야기를 물으시거늘 공우가 그대로 아뢰니 다시 가라사대 “그들이 천상 벽악사자(天上霹惡使者) 이니라” 하셨도다.
[권지2장4절] 공우가 상제를 좇은 후로부터 순유에 자주 시종하였도다. 그는 상제께서 어디서든지 머무시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실 때는 밤이면 달무리, 낮이면 햇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증험하였으므로 언제든지 햇무리나 달무리만 나타나면 출입하실 줄 알고 먼저 신발과 행장을 단속하여 명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반드시 불러 길을 떠나자 하셨도다. 대저 상제께서는 어디를 가시든지 미리 말씀하신 일이 없었도다.
[권지2장18절] 한여름에 정읍의 버들리에서 젊은 여자가 범에게 물려 갔는데 이 도삼이 정읍 수통목에 계시는 상제를 찾아뵈옵고 그 일을 아뢰니라. 상제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공우에게 “하늘에 좀성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니 공우가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나타나 있음을 아뢰니 상제께서 베고 계시던 목침으로 마룻장을 치시며 “좀성아, 어찌 무고히 사람을 해하느뇨”고 꾸짖으셨도다. 이튿날에 그 여자가 몸에 조그마한 상처만을 입고 살아 돌아왔느니라.
[권지2장24절] 박 공우가 상제의 명을 받들어 각처를 순회하다가 어느 곳에서 상제를 믿지 않고 비방하는 것을 듣고 돌아와서 상제께 아뢰려니 상제께서 미리 아시고 “어디서 무슨 부족한 일을 보고 당하여도 큰일에 낭패될 일만 아니면 항상 남을 좋게 말하기를 힘쓰라”고 타이르셨도다.
[제생1장39절] 어느 해 여름 천원(川原)에 계실 때 참외를 올리는 자가 있었으나 상제께서 잡수시지 않고 그대로 두셨는데 공우가 사사로이 한 개를 먹었더니 갑자기 설사가 나고 낫지 않느니라. 할 수 없이 상제께 사유를 고하니 가라사대 “그 아내가 주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가져왔으므로 살기가 붙어 있었는데 그 살기에 맞았도다” 하시고 “닭국을 먹어라” 하시기에 공우가 명하신 대로 하였더니 곧 설사가 나았도다.
[예시1장38절] 어느 날 상제께서 차 경석의 집 서쪽 벽에 二十四장과 二十八장을 써 붙이고 박 공우의 왼팔을 잡고 “만국 대장(萬國大將) 박 공우(朴公又)”라고 음성을 높여 부르셨도다. 이후에 공우가 어디에 떠나려면 문밖에서 방포성(放砲聲)이 갑자기 울리곤 하였도다.
[예시1장39절] 종도 차 경석ㆍ안 내성ㆍ박 공우가 대흥리 앞 내에서 목욕할 때 상제께서 경석에게 흰 소금 한 줌을 물 위에 뿌리게 하신 다음에 냇물에 들어오셔서 고기잡이를 하신다고 하시더니 경석의 다리를 잡고 “가물치를 잡았다”고 하시기에 경석이 “저의 다리이외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그렇게 되었나” 하시고 다리를 놓으셨도다.
[예시1장41절] 상제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마음속으로 육임(六任)을 정하라고 명하셨도다. 공우가 생각한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이 불가하다 하시어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정하였더니 이 사람들을 부르사 불을 끄고 동학 주문을 외우게 하여 밤새도록 방안을 돌게 하다가 불을 켜 보게 하시니 손씨가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느니라.
상제께서 “나를 부르라”고 그에게 이르시니 그는 겨우 정신을 돌려 상제를 부르니 기운이 소생하니라.
상제께서 이 일을 보시고 종도들에게
“이는 허물을 지은 자니라.
이후에 괴병이 온 세상에 유행하리라.
자던 사람은 누운 자리에서 앉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길을 가던 자는 노상에서
각기 일어나지도 못하고 옮기지도 못하고 혹은 엎어져 죽을 때가 있으리라.
이런 때에 나를 부르면 살아나리라”
고 이르셨도다.
[예시1장46절] 상제께서 하루는 “천지 대팔문(天地大八門) 일월 대어명(日月大御命) 금수 대도술(禽獸大道術) 인간 대적선(人間大積善) 시호 시호 귀신 세계(時乎時乎鬼神世界)”라 써서 신 경수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공우(公又)를 주어 경수의 집 벽에 붙이게 하시고 가라사대 “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정하노니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 하셨도다. 이때에 또 형렬(亨烈)에게 가라사대 “법(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萬方)에 펼쳐 나가는 것이므로 서울 경(京) 자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로다. 그러므로 경수(京洙)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경학(京學)의 집에 대학교를, 경원(京元)의 집에 복록소(福祿所)를 각각 정하노라” 하셨도다.
[예시1장48절] “상제께서 학동을 떠나던 어느 날 박 공우에게 “나의 이번 길은 한 사람의 절을 받기 위함이니 이 절이 천하에 널리 미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예시1장79절] 상제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말씀하시길
“동학 신자는 최 수운의 갱생을 기다리고, 불교 신자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예수 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고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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