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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es of Grass by Walt Whitman ; 풀잎 ;휘트먼
풀잎
월트 휘트먼(Walt Whitman.1819~1892.)
한 아이가 두 손에 잔뜩 풀을 들고서
"풀은 무엇인가요?"하고 내게 묻는다.
내 어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아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필연코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내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다.
하느님이 일부러 떨어트린 기념품일 터이고,
소유자의 이름이 어느 구석에 적혀 있어, 우리가 보고
"누구의 것"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하노니- 풀은 그 자체가 어린 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 아이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문자일테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나 좁은 지역애서도 싹 트고
흑인과 백인, 캐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검둥이,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또한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돋아있는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한다.
너 부드러운 풀이여~ 나, 너를 고이 다루나니
너는 젊은이의 가슴에서 싹트는지도 모를 일이요,
내 만일 너를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너를 사랑했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너는 노인들이나,
생후에 곧 어머니의 무릎에서 떼어 낸
갓난아기에게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것.
자, 그리고 여기에 그 어머니의 무릎이 있다.
이 풀은 늙은 어머니들의 흰 머리로부터
나온 것 치고는 너무나도 검으니,
노인의 빛바랜 수염보다도 검고,
연분홍 입천장에서 나온 것으로 치더라도 너무나 검다.
아, 나는 결국 그 숱한 발언들을 이해하나니,
그 발언들이 아무런 뜻 없이 입천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죽은 남녀에 관한 암시를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것뿐만 아니라 노인들과 어머니와 그리고
그들의 무릎에서 떼어 낸
갓난아이들에 관한 암시도 풀어냈으면 싶다.
그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떻게 되었다 생각하며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다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딘가에 살아서 잘 지내고 있을 터이고
아무리 작은 싹이라도 그것은 진정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표시해 주고 있는 것일지니,
만일에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삶을 추진하는 것이지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삶을 붙잡는 것은 아니다.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나아갈 뿐,
죽는 것은 없고
죽음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행복한 것이다.
시인소개 :
Walt Whitman은 구전통의 맥을 이어주는 동시에 새로운 전통의 도래를 알린 작가이다.
그는 Emerson의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를 받아들이는데 이는 그의 시와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휘트먼은 워즈워스와 마찬가지로 범신론적 우주관에서 인간과 자연을 신성시하고
모든 생명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소중한 거라 여겼다. 그에게 있어 개인은 곧 우주이고 신이며
무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에머슨의 주요사상인 Self-Reliance가 반영된 것이다.
휘트먼에게 있어 신은 자기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만물을 초월한 영원불사의 존재도 아니었다.
인간 혹은 자연물 그 자체가 바로 ‘신’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정한 형제이고 친구’라 여기며
성경이나 종교 같은 것도 결국은 절대적이 못된다고 여긴
그의 사상은 에머슨의 초절주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또한 미국의 민주주의 도모에 노력했는데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거룩한 것이니
직업이나 종족, 외형상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을 똑같이 하나하나의 우주이고 신의 대표자라고 생각한 것은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반영해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강인한 인물들이었다.
구세계의 주인공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건국사상이 투철한 영웅적 지도자상이었으며,
신세계, 즉 청교도 세계에서는 성직자와 같은 종교적인 지도자상이었다.
그러나 이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약간의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휘트먼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로 변환되면서
무력에 의존하는 힘센 지도자인 영웅과 정신적 지도자인 귀족은 시대착오적 인물이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현대시에 어울리지 않는 주인공으로 전락을 했고
이런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영웅들 대신에 휘트먼이 'Song of Myself'에 내세운 화자는 평범한 민주시민,
즉 자아를 돌보게 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은 영웅이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한사람의 화자로서
주변세계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 화자는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민주 시민일 수도 있다.
즉 화자는 영웅도 성직자도 아닌 미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휘트만 시의 ‘나’는 인간개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상징이고 우주 속에 존재하는 생명체이자,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평등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에게 봉사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있는 인물이기도 한데
이런 이원적인 면은 민주주의 사회가 지니고 있는 특수성의 일면이다.
이처럼 휘트먼은 과거의 비극적 영웅에 집착하지 않고 민주국가의 시민을 영웅적으로 그려내고,
아물러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자연환경도 미국의 정신을 지닌 인격체로 취급하여
미국적인 것을 시 속에 반영하는 영웅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free verse'의 선포이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내용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고정된 form을 과감하게 breakaway 했는데
이는 미국의 cultural, literal identity를 세우기 위한 노력의 하나이다.
휘트먼은 에머슨의 Self-Reliance을 바탕으로 독립적이며 미국적인 identity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사상적 바탕을 에머슨이 제공하고 그 사상을 직접 시로 표현한 것이 바로 휘트먼이다.
즉, 휘트먼은 에머슨의 초절주의 사상을 시로 쓴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에머슨이 자신의 시에서 하지 못한 것을 휘트먼이 대신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휘트먼은 에머슨의 idea가 너무 idealistic하다고 여기어 realism의 경향으로 시를 쓰게 된다.
그가 처음 Leaves of Grass를 냈을 당시 시집에 있던 자신의 사진. 시집 속표지 뒷면에는
‘월트 휘트먼, 미국인, 한 야성적인 사나이, 하나의 우주(Walt Whitman, and American, one of the roughs, a cosmos)'라고
적혀 있다. 이 시집의 서문에서 휘트먼은 미국시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며
이 시집은 휘트먼 시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에머슨은 이 시집을 보고 휘트먼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휘트먼의 재능을 발견하며 그가 위대한 시인임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