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당국, 은행 탓 앞서 신관치 논란 해소부터
중앙일보
입력 2024.08.26 00:32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최근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상으로 금리 왜곡 현상이 빚어진 데 대해 은행 탓을 했다. [KBS 캡처]
금감원장, 주담대 금리 왜곡에 “강한 개입” 시사
정책 엇박자 따른 혼선과 부작용부터 반성해야
제2금융권인 보험사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시중은행보다 낮아지는 초유의 금리 역전이 벌어졌다. 5개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금리가 낮은 NH농협은행 주담대 최저금리(23일 기준)는 3.65%로, 7개 주요 생보사(3.59%)나 손보사(3.19%)보다 높다. 보험사는 은행보다 자금 조달 부담이 크기 때문에 대출금리가 더 높은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요 보험사들이 금리 선정의 기초가 되는 국고채 금리 하락에 맞춰 주담대 금리를 낮추는 동안 5대 시중은행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며 거꾸로 지난 두 달 동안 22차례 금리를 인상한 탓에 이 같은 금리 왜곡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관치금융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어제(25일) KBS에 출연해 “은행이 물량 관리나 적절한 미시 관리를 하는 대신 금액(금리)을 올리는 건 잘못된 것”이라며 “은행 가계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은행에)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이 시장금리 개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례적이기도 하지만, 신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하다.
시중 금리가 하향세에 접어들었는데도 은행이 주담대 금리를 올린 것은 금융당국의 유·무형 압력 탓이 컸다. 이 원장만 하더라도 지난달 2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에 편승한 대출 확대는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은행을 압박했다. 은행권 가계대출 취급 과정에 대한 관계부처 합동조사까지 언급했다. 시중은행들의 금리 인상엔 이런 금융당국의 압박이 작용했다.
22일 현재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22일 기준)은 지난달보다 6조7903억원 늘어 월별로는 2016년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을 기록했다. 특히 주담대 증가세는 역대 가장 빠른 수준으로, 코로나로 0%대 초저금리를 유지하던 때보다 더 빠르다. 이처럼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늘면서 올 2분기 국가채무와 가계빚 합산은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어섰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금융감독 당국을 비롯해 경제 부처가 엇박자를 내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준 요인이 적지 않다. 당초 7월 도입 예정이던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규제 시행을 불과 엿새 앞두고 돌연 9월로 연기하면서 대출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자 막차를 타려는 ‘영끌족’을 자극했다. DSR 규제 연기로 대출 수요를 자극하는 한편, 은행에는 대출금리를 올리도록 유도해 놓고 이제 와 딴소리를 하는 셈이다. 남 탓 할 시간이 없다. 이제라도 정교한 정책 대응으로 집값 불안 심리를 잠재워 급증하는 빚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