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서 날기다려다오
평생이 걸려도 꼭 너에게 찾아갈테니까
언제까지라도 날 꼭 기다려다오
그렇게 해줄수 있지?
그럴께요
언제까지 꼭 기다릴께요
.
.
.
사랑.. 해요“
내가 유일하게 보던 TV드라마
서울 1945의 마지막회
두연인의 비극적인 이별장면의 대화이다.
얼마후 여자는 무사히 탈출하여
함흥고향집으로 돌아가고
남자는 토벌대의 포위속에서
끝까지 자신을 구하려던 친구를 대신하여
온몸에 총탄세례를 받고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여자는 고향집에서 남자가 죽은지도 모르고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는 기나긴
기다림을 시작한다.
해방공간의 비극적인 역사배경속에서
신념을 달리하는 네젊은이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보면서
이토록 가혹한 운명이 있을수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현실에선 드라마보다 훨씬더 가혹했다.
장기려박사의 일생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고등학교때 체육선생님은 평양에 두고온 처자식을 생각해서
평생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설령 재혼을 했더라도 어찌 잊을수 있을까.
만일 내가 아내와 딸아이을 두고
기나긴 이별을 하게된다면 어찌 그세월을 살수가 있을까.
새삼 내옆에 있는 아내와 딸아이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평생 고향과 북의 아버지를 그리워하셨던
나의 아버지를 다시금 생각한다.
다시 이강산에 봄날이 찾아오면
모처럼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한탄강 언덕위 부모님 묘소에 다녀오고 싶다. .
1950년 9월 경남 김해에서 병중의 아내를 지게에 지고 피난을 가는
한 지아비의 모습을 담았다. 부인은 시각장애인인 듯 하다.
나는 이 사진을 찾고는 부부애의 극치로 마치 성화(聖畵)를 대한 듯,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 박도선생님의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중에서..
첫댓글
삼일절이 지나간 일요일입니다.
긴 한파가 지나고
완연한 봄의 기운을 싸고 돌아
우리 모두의 마음이
봄과 어린시절과 젊고 패기있던 시절이
그리움과 함께 밀려 오는 가 봅니다.
지나고 보니,
살기에 편리한 돈과 재산과 명예보다
모두 어렵고 힘든 시절,
전쟁에서 고향과 가족 잃은 분들이
더 많은 사랑과 고향 그리는 마음을 달래고
순수한 정과 살그러운 정이 많음을 봅니다.
그래서 행복은 돈과 재산 명예, 물질이
행복의 기준이 아님을 압니다.
따스한 봄날,
한탄강 언덕 위 부모님 산소에 다녀옵소서....
방장님 감사합니다
모처럼 3일연휴를 맞아
어제는 변산반도에 다녀왔고
오늘은 종일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저야 전후세대라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받아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가난했지만 따스한 정이 있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해야 되겠지요
"사랑은
그저 미친 짓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에
공감하며 살았는데
아픈 아내를 지게에 지고
피난길에 나서는
남정네의 모습에서
맘이 확 바뀌네요
하지만
너무 늦었어
그냥 이대로
아쉽지만 살랍니다
여전히
사랑은 미친 짓이라고
반갑습니다
이성간 사랑의 유효기간은 몇년이 채안될겁니다
저도 그냥 이체제에 안주해서 측은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따로 없고
무한정인것 같습니다
홑샘님, 그러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구해 보셔요.
처녀 총각이 만난 시절은 사랑이
고작 3년 밖에 가지 않는다네요.
지금 만나면,
욕심내는 여자는 제외하고...
나이든 그 모습에서 만나면,
더 진실할 것 같아요.
나이들면, 세상이 다 부질없다해도
부부는 더 진한 감동으로 살아갑니다.^^
聖畵맞네요.
눈물이 핑 돕니다.
평생을..
아릉다운 사진과 글 입니다.
커쇼님 반갑습니다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더 지극하고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저부부는 전쟁이 끝나고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을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은
희극도 만들고 비극도 만들게 됩니다.
가난하지 않은 나라..
군사 외교 강국인 나라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누구나 살고 싶어할진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좋은나라를 만들고 유지관리하는데
국민 각자가 자기일보다도 나라일에 최우선의 노력이 필요하다하겠습니다.
행복은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행복과 평화는 노력과 힘이 있어야 가능할겁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우리나라도 그틈바구니에서
강하게 살아남을수 있도록 모두가 정신바짝차리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세대까지는 전쟁의 파괴와 피폐함을
선대로부터 듣고 자라서 간접적으로나마
인지하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세대가 가장 축복된 삶을 산것같다는 생각요
전쟁도 안겪고 경제는 무한성장가도를 달렸던ᆢ
대신 이 자유체제를 후세대에게 그대로 전수해야하는 책임도 있다는요
반갑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세대가 전쟁을 직접겪지 않았으면서
고도성장의 혜택을 받은 세대라고 생각되네요
하지만 우리 자식들과 후손들은 경제침체와 인구감소의
어려움속에 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딸을 비롯해 젊은 세대들이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과
기대가 희박하거나 가능하지 않다는
차이는 한의 차이로 나타나지 싶습니다.
그 한을 평생 품고 사셨을 그산님의
춘부장 어르신의 아픔에 제 가슴도
아픕니다.
마음 먹으면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저도 고향 생각나고 부모님 생각 날 때면
가슴 이렇게 저리는데요.
마음자리님의 넉넉한 마음새가 너무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통일되면 할아버지 묘소에 술한잔
올리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3일후 돌아가셨습니다
제세대에도 갈수록 통일이 어려워지니 유언을
지켜드리기가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
올해 95세인 집사람 작은 어머니는 1950년 20살에 임신7개월때 남편이 사라져 알고보니 월북하였으나 돌아올거라 굳게믿고 평생을 수절하고 아들하나 키우고 살았고 그아들은 지금 75세가 되었습니다. 10년전 남북이산가족만남때 65년만에 남편을 만났습니다.
북에간 남편은 재혼하여 자식을 다섯을 두었답니다. 당시 방송국에서 이사연을 서로 경쟁적으로 여러번 방송을 한게 남편오기를 기다리면서 결혼식때 신던 남편의 구두 남편이 쓰던 시계와 요강까지도 수도없이 이사를 다녔어도 갖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반갑습니다 사모님의 작은 아버님이 임신한 스무살의 젊은 아내를 남기고
월북하셨군요. 그때 지식인들은 좌익사상을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산가족 만남때 만나셨으니 원을 푸신것 같습니다. 이사때마다 남편이 쓰시던
생활용품을 가지고 다니셨으니 얼마나 그리움이 크셨을지 상상이 안됩니다
제게는 사촌형이 되는 아버지 형님의 아들이 북한군 신분으로 70년대말에 휴전선을
넘어 귀순해서 제 아버지와 상봉장면이 저녁뉴스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반가우면서도 북에 남은 가족들을 생각해서 안왔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한편의 성화를
보는 듯 잘 보고,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제게는 평생을
기다릴 사랑은 없지만
작은 언덕 아래
고향집이 있었으면 하고,
꿈 꾸어 왔습니다.
그 곳이 사랑의 보금자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극한 상황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얼마나
가슴아픈 일이겠습니까?
다시금 봄날이
찾아 오면,
한탄강 언덕위
부모님 묘소에
다녀 오십시요.
그리고 통일된 어느날
조부모님의 묘소에
술 한잔
올리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래전에 본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가슴아프고 먹먹하여
블로그에 감회를 적었는데 오랜만에 수필방에 글도 쓸겸 올려봤습니다
아버지는 해방전인 1940년 서울에 유학오셨다가 고향에 못가고
6.25때는 징집되어 국군으로 참전하셨습니다. 그래서 호국원안장자격이
되기에 아버지께 죄스럽지만 올해 이천호국원으로 이장예정입니다
갈수록 유언을 지켜드리기가 힘들것 같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그날을 기다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