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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쓰는거 아니랑께.ㅡㅡ...
흥미드립이 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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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평 전 주에 하냥대 축제였던 걸로 기억한다.(2주전이었나...) 하여튼 5월 말이었다.
축제 마지막날에 10학번을 봤다.
보면서 마음이 여러 모로 복잡했다. 당연 잘들 지내고 있었다.
그냥 쭉 다니면서 이 그룹에 계속 속해있을걸 했으면 하는 후회가 몰려왔고 1학년과 2학년 간 차이로 인한 괴리감도 들었다.삼반을 하는걸 알면 뭔 생각이 들까......? 도대체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삼반으로 마음을 굳혔지만, 아직 100% 결정된 게 하나도 아니었기에 그랬던 거 같다.
10학번하고 모이면서 11학번 여자후배 한 명을 알게되었다. (돌아보면 아예 모르는게 나앗을 듯 싶다. 내내 어색했음)
12학년도 6평날은 6월 2일이었다.
전편에서 말했다시피 11수능 끝나고 이사를 왔는데 고3 동생이 대중교통으로 통학하기에는 에러인 위치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차 태우고 동생을 통학시켰고 아버지는 출근을 에시당초 일찍하셨다.
동생 통학시간이 주로 7시~7시 30분이었는데 이 때 20~30분동안 집이 텅텅비었다. 이 시간에 몰래 6평을 보러 출발하기로 했다.
6월 1일에 적당한 분량의 편지 하나를 컴퓨터 한글문서로 저장해놨다. 심경이 복잡했다.
자기 전에 알람을 6시 50분으로 맞춰놨다. 6평 보러갈 짐도 다 꾸려놨다.
5월 되어서 평균 기상시간이 8시였다. 그래서 알람을 맞춰놓은건데 괜히 맞춘 셈이었다.
다음날에 갑자기 놀라서 깨보니까 6시 40분경이었다. 긴장을 해서인지 왠일로 빨리 깼다.
그래서 그냥 침대서 가만히 20분정도 누워 있다가 동생과 엄마가 나가자마자 방문을 뛰쳐나와서 가볍게 씻고 후다닥 옷 입은 다음에 대충 머리 말리고 집을 튀어나갔다.
아침은 원래 가다가 편의점에서 쳐묵할 생각이었으나 왠일로 식탁에 남은 식빵이 몇 조각 있기에 잼 안 바르고 두조각 집어들고 뛰쳐나왔다.
내 침대에 컴퓨터 바탕화면에 'xxx'라는 제목의 한글문서 확인하라는 쪽지 하나 남기고 나왔다.
(문서 제목을 뭐라 썼는데 기억이 안난다. 6평 끝나고 삭제해버림)
집에서 6평접수한 교대역 한샘학원까지 거리가 1시간정도였다. 8시까지 반드시 도착하라고 했으나 구라인걸 알기에
자체 목표 도착시간은 8시 20분이었다. 집에서 7시 15분??쯤에 뛰어나왔고 목표 도착시간에 맞춰서 학원에 도착했다.
가출해서 6평보러 가면서 드는 생각???
별로 없었다. 아니 가급적 안 하려고 했다. 그냥 mp3로 음악들으면서 갔다.
그래도 마음의 평정은 찾지 못했다. 진짜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나 싶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2012학년도 6평은 알다시피 문제가 쉬웠다. 풀면서 존나 잘 풀리기에 문제가 겁나 쉽구나 느꼈다.
11수능 이후에 내 수능 알짜공부시간이 채 2주가 간당할 터인데(5월 10일경에 시작 + 법 병행 + 6평 전 주 멘붕)
너무나도 잘 풀렸다.
점심은 대성 다니면서 익숙해진 교대역 식당 중 한 곳에서 먹었다.
대성학원에서 나오는 학원생들을 보면서 심정이 묘했다. (내가 작년에 저랬는데...... 저 때가 좋았지)
그렇게 시험과목들이 끝나고 화1-생1-화2로 이어지는 과탐까지 다 끝났다.
(물1 시험볼 자신이 없어서 6평전날 화1 벼락치고 갔다.)
사연많은 6평이 끝났다.
아침에 집 나갈 때부터 내내 전원을 꺼둔 핸드폰을 켜야했다.
아무 문자나 연락이 없었다.
??????
ㅈ망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먼저 연락을 할 용기가 안 났다.
그냥 학원에서 나와서 교대역으로 내려갔다. 역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연락이 왔다.
'시험 잘 봤냐. 니 동생이 쉬웠다고 하더라. 어디인지는 아니까 집에 돌아와서 얘기하자꾸나'
'네'
전화를 끊고나서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나 시험보는 장소 말 안하고 갔는데 어떻게 알지??
나중에 알고보니까 삼반하는 걸 알았던 친구2명중 1명한테 전화를 직접 걸어서 알아낸 것이었다.
집에 왔다.
그리고 엄마한테 삼반 허락을 받았다.
조건이 3개 붙었다.
1. 2학기 한양대 다닐 것 + 학점관리도 제대로 해놓을것
2. 아빠한테 알리지 말 것
3. 이번에도 안 되면 닥치고 군대가기다.
1,3은 예상했는데 2가 의외였다.
처음에 2를 듣고 내 반응이 '네???' 였다.
하지만 어머니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결국 아버지는 12수능 끝나고 한 달후인,
동생이 서울대 자전 특기자 붙은 날 밤에야
내 삼반을 알게 되셨다. 당연 그 때까지 친척들도 죄다 몰랐다.
뭔가 조금 이상하게 돌아갔지만 어찌되었든 이제 몰래 삼반을 하는 일은 없게되었고
'수험생'으로 되돌아가는 강을 건넜다.
1학기를 경험해보았기에 무휴학으로 반수를 할 경우 시간이 상당히 촉박하다는건 알았다.
9월 이후에는 시간이 많이 쪼들릴터이고, 잘해야 실력유지일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8월까지, 길게 잡아서 추석까지 수능실력을 다 만들어야했다.
입시사에 길이 남을만한 물모의였던 6평 이후로 반수생이 폭증했다. 4월에 물어봤을 때는 학교 잘 다닐꺼라고 했던 대성 반수반 애들 2명이 반수한다고 연락이 왔다. 같이 9평을 접수할 때 다시 만나고 (6평 끝나고 며칠안되어서 9평접수를 받았다.) 그 2명과 함께 집근처 구립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구립도서관에서 한 10주(7,8월 + 6월 마지막 주) 정도 공부했다.
도서관으로 가는건 아침에 동생을 차로 학교에 통학시킬 때 거기에 꼽싸리껴서 차를 타고 갔다.
돌아오는 건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아침 7시 30분~8시에 공부를 시작했고, 대게 오후 3~5시 사이에 나왔다. 집에 와서는 저녁먹고 인강을 듣고나서 한 7~8시쯤부터는 계속 프로야구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하루 공부량 7-9시간을 채우면 더 이상 하기가 힘들었다. 진짜 반수반 생활할 때는 아침 7시30분 ~ 밤 10시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나조차 의아했다.
어찌되었던 규칙적으로 구립도서관에서 계속 생활했다.
그런데 같이 다니던 친구2명은 그렇지 못했다. 대학물을 먹어도 너무 먹었다.
초기에는 좀 나오더니만 며칠 지나니까 2명 중 1명씩 돌아가면ㅅㅓ 안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2명 다 안나오는 날도 생겼다.
얘네들도 반수반 다닐때는 안 그랬었는데...
성실성도 다소 망가진상태에다가 입도 험해졌었다.
날씨가 에지간히 더웠던 기억빼고는 아무런 기억없이 그렇게 7-8월을 보냈다.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8월까지 끝을 봐야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한 가지 문제는 이 때부터 멘탈이 스프링화 되기 시작했다. 기복이 심해졌다.
6평보기 이전까지는 내내 저점이었는데, 기분이 좋은 때와 저점일 때를 오가는 기복이 있었다.
(그래도 이 때는 공부하는데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10월쯤 되어서 기복이 진짜 심했다.)
수능공부는 최소한의 정석만을 따랐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다.
언어는 기출과 ebs. 예년과는 달리 대성의 박광일 기출 분석강의를 들었다.
수리는 ebs랑... 이것저것 풀었다.
(오르비에서 주최한 모의고사 체험단도 가봤다. 엄마는 알았지만 아빠는 친구만나러 나간줄 아셨다)
외국어는 닥ebs 였고
과탐은 기출과 인강위주였다. 생1만 ebs를 풀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났고 9월이 왔다. 대학 시간표는 목요일을 비워놓는데는 성공했으나 부작용으로 수요일에 과중하게 몰렸다.(금요일에 몰리게 짤려고 했는데 실패. 학점은 17학점이었다.)
2012학년도 9평은...
여태까지 너무 많은 모의고사를 봐서 기억이 섞였는지,
아니면 9평이 끝나자마자 대학 2학기를 다녀야하고 동시에 무휴학 반수를 해야했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히 기나긴 수험생활에 지쳤는지는 모르겠는데
평가원이 주최한 시험치고 아무런 기억이 안 난다. 쉬웠다.
언,외에서 1개씩 나가서 1등급. 수리에서 2개가 나가서 2등급.
탐구에서는 물1,생1은 안정적으로 1등급이 떴는데 화2가 2컷에 걸쳤었나?? 하여튼 빵꾸낫다.
동생하고 원점수 비교로 내기떳는데 동생이 외국어랑 사탐이 털털 털려서 내가 이겼다.
(글고보니까 나나 동생이나 9평 점수 나오는 모양새하고 수능하고 일치했다...)
작년 추석은 에지간히 빨랐다. 2학기 개강하고 며칠 안 지나서 추석이었다.
추석 때 친척들이 와서 동생한테 수능 잘 보라고 응원했다. 나에게는 대학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친척들에게는 삼수생이 아닌 대학생인게 나한테 편했다.
2학기 대학생활은 전년도 1학기 대학생활의 무미건조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삭막했다.
11하고 어떻게든 친해질려고 의지가 있었어도 이미 형성된 카르텔 깨고 들어가기도 힘들터인데
그럴 의지가 있었을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10학번 중에서 재수강하면서 나하고 같이 다니기로 했던 동기가 있었는데
그 애가 8월에 갑자기 공석 메꾸는 걸로 군대를 가버렸다. 매개체가 전혀 없었다.
결국 11학번하고는 2명빼고 전부 '얼굴만 아는 상태'로 내내 2학기를 보냈다.
2명은 기초설계 과목이라서 어떻게든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둘 다 선한 애들이 걸렸다.
1주일에 1번씩 10학번 동기/형들과 만날 때, 그리고 사반하는 형 하나와 있을 때. 설계할 때와 실험할 때 빼고는
내내 혼자 다녔다. 수업 끝나고 하냥대 중도 지하2층에서 수능준비에 몰두했다.
귀찮아서 대충 쓰는게 아니라, 진짜 2011년 2학기 기간에는 별 기억이 없다.
얼핏 남는 느낌이라고는
[1. 이딴 짓 두번 다신 안한다. + 2. 현대물리 개C발. 왜 멀쩡한 책은 바꿔가지고... +3. 대학중간고사 때는 학교 일찍 끝나니까 굳ㅋ]
그러면서 9월이 지나갔고 10월에 대학 중간고사가 끝났다.
점점 기복이 심해져서, 기분이 저점일 때는 회의론자가 되어서 공부가 힘들었던 멘탈로 수능 날까지 굴러갔다.
수능이 2주내로 다가오면서 고3때와 반수 때는 못 느낀 감정을 하나 느꼈다.
가끔 신문보면 수능이 다가오면서 불안감이나 강박감을 느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사 보면서 '개솔하고 있넼ㅋㅋㅋㅋㅋ' 라고 웃던 나였다.
개소리가 아닌 걸 알았다. 시시때때로 숨이 턱턱 막혔다.
또 망하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인생 파노라마가 쫙 펴졌다.
그 파노라마를 겪느니 인생리셋설을 믿고 리셋을 시도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수능 전주 ~ 수능 전날까지 계속 그랬다. 어디 산이라도 올라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그런 곳에 부을 시간이 없었다.
집에서 공부하고 있자니 답답했고, 밖에서 돌아다니려고 하니까 불안했다.
이렇게 불안감에 쩌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불안감에 쩔어서 망할까봐 더 불안했다.
수능이 어서 와서 이 상황이 끝났으면 싶었고, 수능날이 다가오는 게 두렵기도 했다.
수능 3일전에는 지금이 수능시작 3분전이었으면 하는 마음과 수능 3달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같이 들었다.
앞뒤가 다 막혀있었다.
수능이 낀 주의 월,화요일은 대학 수업 다 튀고 언수외탐 마무리와 멘탈 정립하는 데 집중했다.
수능 직전 날에는... 수험표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도저히 집에서는 집중이 안될거 같아서 수능 전날에 대학에 갔다.
물리만 듣고 뒷강의는 전자출결하고 튀었으며 그래서 제일 나중에 있던 일반화학은 그냥 결석이었다.
동생은 집앞 여고가 수능장소였다. 난 반수때와 같은 영동일고였다.
영동일고에 아버지차를 타고 갈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는 수능 끝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내 삼반을 몰랐다.)
택시라도 타야되나 싶었는데, 검색하다가 알았다.
영동일고가 2호선 신천역 앞이란걸......
있지도 않은 조별과제가 있다고 하면서 8시30분까지 대학에 가야한다고
아버지한테 직장가시는 길에 잠실역이나 잠실나루역에 떨궈트려달라고 했고, 알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렇게 내 세번째 수능 날이자 동생의 첫번쨰 수능 날이 왔다. 동생한테 수능 잘 보라고 말한 다음에 집에서 나왔다.
잠실나루역에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내렸다.
'학교'를 아버지는 '한양대학교'로 인식했고 나에게는 '영동일고등학교'였다.
잠실나루에서 신천까지 2정거장 거리로 5분도 안 걸린다.
서늘하고 떨렸다. 손이 차가웠다. 이번에는 잘 될거라고 자기암시를 하면서 갔다.
신천역에서 영동일고는 진짜 지척이었다. 이걸 왜 재작년에는 잠실역까지 걸어갔는지...
초콜릿 몇 개 받고 들어갔다. 시간상 7시 30분쯤에 도착했을 것이다. 내가보는 교실에는 내가 3번째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보니 의자가 삐걱거렸다. 복도에서 의자를 바꿨다.
과탐 요약집을 쭉 읽었다. 8시가 되고 나서 11학년도 수능 언어를 봤다. (12년도 6,9평은 안습...)
20분이 되고 이제 짐정리하고 OMR을 체크했다.
그리고 진짜 내 마지막 수능이 시작되었다.
언어 - 까다로웠다. 비문학이 이전 6,9평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도 11처럼 문학을 날려푼건 없었다. 시간이 딱 맞았다.
수가 - 난이도가 극과 극이었다. 쉬운건 쉬운데 어려운게 짜증날 정도로 잘 안 풀렸다. 마지막 10분에 초인적으로 4점짜리 3개를 풀어제꼇다. (하나가 29,30번이었고 하나는 객관식 21번인가.. 하여튼 벡터내적이랑 최대최소 엮인게 있었다.)
외국어 - 시발ㅋㅋㅋㅋㅋ 존나 잘 풀렸다. 11때 빈칸의 악몽이 있던 나에게 12외궈는 축복이었다. 근데 문법문제 하나를 막판에 바꿨는데 망ㅋㅋㅋ. 그냥 처음에 푼 게 장땡이다.
물리1 - 풀다가 19번인가... 봤을 때 난감했던 게 하나 있었다. 그거 버리니까 시간이 적당히 남았다. 나머지 검토하고 19번 찍고 버렸다.
생물1 - 1컷이 44점에, 50점 표점이 73점으로 상당히 난도있게 된 시험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물리보다 평이했다. 11처럼 시력테스트를 요하는 찌질한 낚시도 없었고 10처럼 갑자기 생2연관이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다.
화학2 - 4페이지 시발ㅋㅋㅋ 고3 10수능 때가 데자뷰되었다. 화2 4페이지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이번에는 끝까지 잡고 풀었고 4페이지에서는 1개밖에 안 나갔다. 3페이지에서 1개 나갔고, 어디에서 2점짜리인가 하나 어이없게 나갔다.
집에 와서 채점을 하고 3년 내내 메가등급컷을 보았다.
언어는 그냥저냥했는데 (가채점을 잘못해서 3점짜리가 하나 추가로 나가있었다.)
수리에서는 26,28,29번을 나갔다. 원래대로면 빡쳐야 하는데 웃음만 나왔다.
26,29번은 왜 틀렸는지 당일날 깨달았다. 삼각형 넓이에서 1/2를 앞과 뒤에 모두 한번씩 곱해놓으니까 답이 12인데 내 답은 6이었다. 29번은 a를 구해야 되는데 a를 구하기 위해 내가 임의로 세운 x를 구해놓고 끝냈다. 28번은 걍 몰라서 틀렸다. 21번과 30번 맞은 보람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빡치기 보다는 웃음만 나왔다. 수능에 에지간히 지쳐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어는 채점하고 나서 문법 바꾼걸 후회했고, 그래도 설마 1컷이 96 위로 갈 거라고 생각을 안 했다.
과탐은 생1과 화학2가 의외였다. 생1 등급컷이 생각보다 낮았고, 화2 등급컷은 지나치게 높았다. (근데 이게 맞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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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기간 때 이번에는 전적으로 내 꼴리는 대로 썼다.
삼반수라 원서 쓸 때 가다군은 자체 점수 패널티도 줘보고 썼다.
가군에서 연공과 원치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반수할 때까지는 나에게 선택하기 명확했지만 삼반수를 하다보니까 선택하기 헷갈렸다. 고민 끝에 원래 가던 길 가기로 했다. 닭튀기는 재미도 쏠쏠할 듯 싶었다.
나군은 처음부터 생각있던 곳에 넣었다.
다군은 가군 결정나면서 별 의미없이 되었다.
그리고 이 카페에서 잉여짓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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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월이 왔다. 정시 마감은 21일. 서울대 마지막 3차추합 마감일은 20일이었다.
2월 20일. 가,다군은 이미 결정이 나있었다.
연화공 12학번들이 MT 전날이라고 대다수가 들뜬 날에, 나군에서는 마지막 3차추합이 돌았고 난 붙지 못했다.
이 날 내가 2시~5시로 보강과외를 했던 학생은(원래 3시~5시) 내가 수업 마지막에 시계를 좀 많이 쳐다본다고 했다.
...... 보강하기 힘들어서 시계를 쳐다본게 아니었는데 조금 민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21일. 연대공대 전체 MT날이었다. 12학번들이 선배 전번 딴 답시고, 술게임 배운다며 죽어라 마시고 있을 때
나도 삼반 처음 말했던 친구2명과 술 마시고 있었다. 죽도록은 안 마셨다.
그 전주에 고등학교 같은 반 애들 만나서 삼반한거 말하고 지난 1년간 ㅗ같았다고 썰풀면서 술을 에지간히 마셔서
스맛폰도 분실하고 생전 처음으로 필름도 끊긴 터라 후유증이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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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목표는 못 이뤘다. 2년동안 방황을 한 셈이 되어버렸다.
현역으로 붙은 곳vs반수로 붙은 곳vs삼수로 붙은 곳으로 비교하면 더 망측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거 푸념하기에는 이제 시간이 없다는 걸 내가 느끼기에
더 이상 방황말고 그냥 주어진 상태에서 잘 살아보기로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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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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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2년 얶매이는데
의치는 가는순간 평생 그쪽으로 얶매이잖아.
나중에 닭튀기면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만
지금은삼반해서 2년뜬게 후회될지언정 그쪽으로 안간건 별생각안듬
근데 훈련소 들가면 처음에는 땅좀칠듯ㅋㅋ
대단하네요, 입시철에 울아이 수시발표전 불안한 마음에 입시상담 했었는데 친절히 답변주셨지요, 3번의 수능을 치루면서 잃어버린 시간 보다 많을걸 얻은것 같군요, 대학생활 잘하고 소망 꼭 이루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T.R.G님, 2년간 많은 것을 경험 하셨네요. 늦둥이 중2 딸애 때문에 우연히 이곳에 들어와 가끔 읽어보는데, 30년전의 내 모습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하네요. 나도 당시 삼 반수 실패하여 군 입대-->제대 후 다시 학력고사 보아서 가고 싶었던 의대를 27세에 입학하였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젊은 나이이니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 힘내십시요.^^
근데요~
티알쥐님 정말 멋있으신데
왜 여친 안 생겨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