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춘향수절가
숙종대왕 즉위초에 덕이 넓으시어 성자성손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금과옥조는 태평성대같고 의관문물은 우임금과 탕임금 시절에 버금가고 좌우보필은 주석지신이요, 용양호위는 간성지장이라. 조정에 흐르는 덕화는 고을마다 멀리 미치었으니 사방에 굳은 기운이 멀고 가까운 곳에 어려있다. 충성스런 신하는 조정에 가득차고, 효자열녀가 집집마다 있으니 아름답도다. 우순풍조하니 함포고복 백성득은 곳곳에서 격양가를 불렀다.
[1] 전라도 남원의 기생 월매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었는데, 삼남의 명기로 일찍 퇴기하고 성가라 하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 연장사순 일점혈육이 없어서 이것으로 한이 되어 장탄수심의 병이 되었다. 하루는 크게 깨우쳐 옛 사람을 생각하고 가군을 청입하여 여쭙되 공손히 하는 말이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 끼쳤던지 이생에 부부되어 기생행실 다 버리고, 예모도 숭상하고 여공에도 힘썼건만 무슨 죄가 그리 중하여 일점혈육 없으니 육친에 아무 친척도 없는 우리 신세 선영향화는 누가 하며, 사후감장은 어떡하리오. 명산대찰에 신공이나 하여 여자든 남자든 간에 낳으면 평생 한을 풀겠으니 가군의 뜻이 어떠합니까?" 성참판 하는 말이 "일생의 신세를 생각하면 자네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을 낳을 것 같으면 자식없는 사람이 있겠소" 하니, 월매 대답하되 "천하의 큰 성인인 공자도 이구산에 빌으시고, 정나라 자산도 우성산에 빌어서 나으셨고, 우리 동방강산을 말하자면 명산대천이 없겠습니까. 경상도 웅천의 주천의는 늦도록 자녀가 없어 최고봉에 빌었더니 대명천자 나 계시어 대명천지가 밝았으니 우리도 정성이나 들여봅시다.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가 꺾이겠습니까"
[2] 자식을 얻기 위해 월매는 이름난 산을 찾아가 공을 들임.
이날부터 목욕재계하고 이름난 산과 승지를 찾아갈 때 오작교 썩 나서서 좌우산천을 둘러보니 북서쪽의 교룡산은 술해방(戌亥方)을 막고 있고, 동쪽으로는 장임의 수풀 깊은 곳에 선원사가 은은히 보이고, 남으로는 지리산이 웅장한데, 그 가운데 요천수는 일대장강 벽파되어 동남으로 둘렀으니 별유건곤이 여기로다. 반야봉에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이름난 산과 내는 확실하다. 봉우리 위에 제단을 쌓아올려 제물을 진설하고, 단 아래에 복지하여 천신만고 빌었더니 산신님의 덕이신지 이때는 오월오일 갑자라.
꿈을 얻으니 서기번공하고 오채영롱하더니 한 선녀가 청학을 타고 오는데, 머리에는 화관이요, 몸에는 채의이로다. 월패소리 쟁쟁하고 손에는 계화 한가지를 들고 당에 오르며 거수장읍하고 공손히 여쭙되 "낙포의 딸인데, 반도를 옥황상제께 바치러 옥경에 갔다가 광한전에서 적송자를 만나 다하지 못했던 정을 나누다가 시간을 늦음이 죄가 되어 옥황상제께서 크게 노하셔서 진토로 내치심에 갈 바를 몰랐는데, 두류산 신령께서 부인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며 품으로 달려들 때 "학지고성장경고"라는 학의 소리에 놀라서 깨니 나가일몽이라. 황홀한 정신을 진정하여 가군과 꿈이야기를 하고 하늘의 도움으로 남자아이를 낳을까 기다리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서 열달이 지나 하루는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아름다운 구름이 영롱하더니 혼미한 가운데 생산하니 일개옥녀를 낳으니 월매의 일구월심 기다린 마음에 남자아이는 못낳았으나 약간 마음이 풀어지는구나. 그 사랑하을 어찌 다 형언하리. 이름을 춘향이라 부르면서 장중보옥같이 길러내니 효행이 무쌍이요, 인자함이 기린같더라. 칠, 팔세 되면서 서책에 착미하여 예모정절을 일삼으니 효행을 일읍이 칭송아니하는 사람 없더라.
[3] 금산군수에서 이배하여 남원 부사로 제수한 이한림과 아들 이몽룡
이때 삼청동 이한림이라 하는 양반이 있었는데 세대명가요, 충신의 후예라. 하루는 전하께옵서 충효록을 올려보시고 충효자를 택출하시어 자목지관을 임용하실 때, 이한림으로 하여금 과천현감의 금산군수에서 이배하여 남원부사로 제수하시니 이한림이 사은숙배하고 하직하고 치행을 차려 남원부에 도임하여 선치민정하니 사방에 일이 없고 방방곡곡의 백성들은 더디왔음을 칭송한다. 강구연월 문동요라. 시화연풍하고 백성이 효도하니 요순시절같다. 이때는 어느때요. 놓기좋은 삼춘이라. 호연, 비조, 많은 새들이 농초화답 짝을 지어 쌍거쌍래 날아들어 온갖 춘정을 다투는데 남산화발북산홍과 천사만사수양지의 황금색 꾀꼬리는 벗을 부른다. 나무나무 성림하고 두견새와 접송새가 날고나니 일년지가절이라.
이때 사또자제 이도령이 년광은 이팔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도량은 창래와 같고 지혜는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하루는 방자불러 말씀하되 "이 고을 경치 좋은 곳이 어디냐? 시흥춘흥이 가득하니 절승경처 말하여라." 방자놈 여쭈오되 "글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경치 찾아 무엇하겠소." 이도령 이르는 말이 "너 무식한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재사도 빼어난 경치의 강산을 구경하는 것이 풍월작문의 근본이라. 신선도 두루 돌아 박람하니 어찌하여 부당하랴. 사마장경이 남으로 양자강과 회수에 배를 띄워 큰 강을 거슬러 갈 때 광랑성파의 음풍이 노호하야 예로부터 가르치니 천지간 만물지변이 놀랍고 즐겁고도 고운 것이 글 아닌게 없느니라. 시중천자 이태백은 채석강에 놀아 있고, 적벽강 추야월에 소동파 놀아 있고, 심양강 명월야에 백난천 놀아있고, 보은속리 문장대에 세종대왕 노셨으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이때 방자 도련님 뜻을 받아 사방경개 말하되 "서울로 이를진데 자문 밖에 내달아 칠성암, 청연암, 세금정과 평양 염광정, 대동루, 모란봉, 영양 낙선대, 보은속리 문장대, 안의 수성대, 진주의 촉석루, 밀양 영남루가 어떠한지는 몰라도 전라도를 이를 진대 태인의 피향정, 무주 한풍루, 전주 한벽루가 좋사오나 남원 경치 좋은 곳을 들어보시오. 동문 밖 나가오면 장림숲, 선운사 좋고, 서문밖 나가면 관왕묘는 천고영웅의 엄한 위풍은 어제 오늘같고, 남문 밖 나가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좋고, 북문밖 나가오면 청천삭출금부용 기벽하야 우뚝섰으니 기암 둥실있는 교룡산성이 좋사오니 처분대로 가사이다." 도련님이 이른 말씀이 "이에 말로 듣더라도 광한루, 오작교가 경개로다. 구경가자".
[4] 이몽룡은 사또의 허락을 받고 순성하러 나감.
도련님 거동보소. 사또전 들어가서 공손히 여쭈되, "오늘 일기화란하오니 잠깐 나가 풍월음영시운목도 생각하고 싶으오니 순성이나 하여이다." 사또가 크게 기뻐하야 허락하시고 말씀하시되 "남주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되 시제를 생각하라." 도령 대답하되 "부교대로 하리라." 물러나와 "방자야, 나귀 안장 지어라."
방자 분부 듣고 나귀 안장 짓는다. 나귀 안장 지을 제, 홍현자공산호편 옥안금천황금륵 청홍사로 만든 고은 굴레, 주락상모 덥석 달아 층층다래 은엽등자 호피돋움의 전후걸이의 줄방울을 염불법사 염주매듯 나귀를 등대하였소. 도령님 거동보소. 옥안선풍 고운얼굴 전반같은 채머리를 곱게 빗어 밀기름으로 잠재워 댕기 석황물려 맵시있게 잡아 땋고 성천수주 접동배 세백저 상침바지, 극상세목 겹버선에 남갑사 대님매고, 육사단 겹배자에 밀화단추 달아입고, 통행건을 무릅아래 넌지시 매고, 영초단 허리띠, 모초단 도리낭을 당팔사 갖추어진 매듭 고를 내어 넌지시 매고, 쌍문초 긴 동정이 달린 중추막에 도포 바쳐 흑사띠를 가슴에 눌러 매고, 육분당혜 끌면서 나귀를 붙들어라 등자 딛고 선뜻 올라 뒤를 싸고 나오실 제,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삼문 밖 나올 적에 쇠금부채 호당선으로 일광을 가리우고 관도성남 넓은 길에 생기있게 나아갈 때 취래양주하던 두목지의 풍채인가. 시시오불하던 주랑의 고음이라. 향가자백춘성내이요, 만성견자수불애이라.
[5] 광한루에 도착한 이몽룡
광한루에 덥석 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경개가 매우 좋다. 적성 아침날의 늦은 안개 끼어있고, 녹색의 나무사이로 저문 봄은 화류동풍에 둘러있다. 자각단루분조회요, 벽방금전상영롱은 임고대를 이르는 말이고, 요헌기구하최외는 광한루를 일컬음이라. 악양루 고소대와 오초동남수는 동정회로 흘러갔고, 연자 서북의 평택과 같은데 또 한 곳 바라보니 백백홍홍 꽃이 어지럽게 피어있는 가운데, 앵무 공작 날아들고, 산천의 경치 둘러보니 에이굽은 반송 소나무, 떡갈잎은 아주 봄바람을 못이기어 흔들흔들거리고, 폭포유수 시냇가의 계변화는 방긋방긋 낙낙장송 울창하고 녹음방초 승화시라. 계수나무, 자단, 모란, 푸른 복숭아에 취한 산색은 장강요천에 풍덩 잠겨있고, 또 한 곳 바라보니 어떠한 한 미인이 봄새의 울음과 마찬가지로 온갖 춘정을 못이기어 두견화 질끈 꺽어 머리에도 꽂아보며 함박꽃도 질끈 꺽어 입으로 함쑥 물어보고, 옥수나상 반만 걷고 청산유수 맑은 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물머금어 양치하며 조약돌 덮섭 쥐어 버들가지 꾀꼬리를 희롱하니 타기황앵이 아니냐. 버들잎도 주루룩 훑어 물에 훨훨 띄워보고 백설같은 흰나비 웅봉자접은 화수물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황금같은 꾀꼬리는 숲속에 날아든다. 광한루의 경치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방가위지 호남의 제일 성(城)이로다. 오작교 분명하면 견우와 직녀는 어디 있나. 이런 승지의 풍월이 없을 소냐. 도련님이 글 두구를 지었으니 고명오작선이요, 광한옥계루라. 차문천상수직녀요, 지응금일아견우. 이때 내아에서 잡수실 상이 나오거늘 일배주 먹은 후 통인방자에게 물려주고 취흥 도도하여 담배를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거닐 때 경처에 흥을 겨워 충청도 고마 수영 보련암을 일렀으되 이곳 경치 당할쏘냐. 붉을 단, 푸를 청, 흰 백, 붉을 홍 고몰고몰이 단청 유막황앵환우성은 나의 봄흥취를 돕는구나. 황봉백접 왕나비는 향기찾는 거동이라. 비거비래 봄의 성안이요, 영주방장봉래산이 안하에 가까우니 물어보니 은하수요, 경치는 잠깐 옥경이라. 옥경이 분명하면 월궁항아 없을소냐.
[6] 광한루에 오른 이몽룡은 그네를 뛰고 있던 춘향을 보게 됨.
이때는 삼월이라 일렀으되 오월 단오일이었다. 천중지가절이라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서음률에 능통하니 천중절을 모를쏘냐. 추천을 하랴하고 향단이 앞세우고 내려올 제 난초같이 고운 머리, 두 귀를 눌러 곱게 땋아 금봉채를 정재하고 나군을 두른 허리 미앙의 가는 버들 힘이 없어 띄운 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 아장거려 흔들거려 가만가만 나올 적에 장림 속으로 들어가니 녹음방초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에 황금같은 꾀꼬리는 쌍거쌍래 날아들 제 무성한 버들 백척장고 높이 매고, 추천을 하려할 제 수화유문, 초록장옷, 남방사, 홑단치마 훨훨벗어 걸어두고 자주영초 수놓은 당혜를 석석 벗어 던져두고 백방사 진솔속곳 턱밑에 바짝 치켜 올리고, 연숙마 그네줄을 섬섬옥수로 넌짓들어 양손에 갈라잡고, 백종버선 두 발길로 섭적올라 발구를 때 세류같은 고은 몸을 단정히 노니는데 뒤 단장 옥비녀, 은죽절과 앞치레를 볼 것 같으면 밀화장도, 옥장도며 광원사 겹저고리 갖추어진 색의 고름의 태가 난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 빝에 가는 티끌 바람 쫓아 펄펄, 앞 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위의 나뭇잎은 몸을 다라 흔들흔들 오고갈 때, 살펴보니 녹음 속의 홍상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 흰구름 사이에 번개불이 쐬이는 듯 천지재전홀언후라. 앞에 어른거리는 모습은 가벼운 저 제비가 도화일점 떨어질 때 채가려고 쫗는 듯, 뒤로 번듯하는 모습은 광풍에 놀란 호접이 짝을 잃고 가다가 돌아오는 듯, 무산선녀 구름타고 양대 위에 내리는 듯, 나뭇잎도 물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살근살근 "이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독해서 정신이 어질하다. 그네줄 붙들어라." 붙들려고 무수히 진퇴하며 한참 이렇게 노닐 적에 시냇가 반석 위에 옥비녀 떨어져 쟁쟁하고 '비녀, 비녀'하는 소리, 산호 채찍을 들어 옥반을 깨는 듯한 그 태도, 그 형용은 세상 인물 아니로다. 연자가 삼춘에 비거래라.
이도령 마음이 울적하고 어직하여 별 생각이 다 나겠다. 혼잣말로 섬어하되 '오호에 편주타고 범소백을 쫓았으니 서시도 올리 없고 해성월야에 옥장비가로 초패왕을 이별하던 우미인도 올리 없고 단봉궐 하직하고 백용퇴에 간 연후에 돌류청총 하였으니 왕소군도 올리 없고, 장신궁을 깊이 닫고 백두음을 읊었으니 반첩여도 올리 없고, 소양궁 아침날에 사측하고 돌아온 이 조비련도 올리 없고, 낙포선녀인가, 무산선녀인가' 도련님 혼비중천하여 일신이 고단하구나. 진실로 미혼지인이로다. "통인아" "예" "저 건너 화류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아라."
통인이 살펴보고 여쭙되 "다른 무엇이 아니오라 이 고을 기생 월매 딸 춘향이란 계집아이로소이다." 도련님이 엉겁결에 하는 말이 "매우 좋다. 훌륭하다." 통인이 아뢰되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구실 마다하고 백화초협의 글자도 생각하고, 여공재질이며 문장을 겸전하여 여염처자와 다름이 없나이다." 도련님이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되 "들은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너라." 방자놈 엿자오되 "설부화용이 남방에 유명하기로 방첨사, 병부사, 군수, 현감, 관장님네 엄지발가락이 두 뼘 가옷씩 되는 양반 외입장이들도 무수히 보려 하되 장강의 색과 임사의 덕행이며 이두보의 문필이며 태사의 화순심과 이비의 정절을 품었으니 금 천하지절색이요, 만고여중군자오니 황공하온 말씀으로 초래하기 어렵나이다." 도령이 대소하고, "방자야, 네가 물각유주를 모르는도다. 형산의 백옥과 여수의 황금이 임자가 각각 있느니라. 잔말 말고 불러오라."
[7] 이도령의 명으로 방자는 그네타는 춘향을 초래하러 건너감.
방자 분부 듣고 춘향 초래하러 건너갈 제 맵시있는 방자녀석 서왕모 요지연의 편지 전하던 청조같이 이리저리 건너가서 "여봐라, 이애 춘향아." 부르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라서 "무슨 소리를 그따위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놀라게 하느냐." "이 애야, 말마라. 일이 났다." "일이라니, 무슨일?" "사또자제 도령님이 광한루에 오셨다가 너 노는 모양보고 불러오란 영이 났다." 춘향이 화를 내어 "네가 미친 자식이다. 도령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 네가 내 말을 종지리새 열씨까듯 하였나 보다."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가 없으되, 네가 그르지 내가 그르냐? 네가 그른 내력을 들어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추천을 할 생각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남이 알까 모를까 은근히 매고 추천하는게 도례에 당연함이라. 광한루 멀지 않고 또한 이곳을 논지할진대 녹음방초승하시라. 방초는 푸르렀고 앞내버들은 초록장 두르고 뒷내 버들은 유록장 둘러 한가지 늘어지고 또 한가지 펑퍼져 광품을 못이겨 흔들흔들 춤을 추는데 광한루 구경처에 그네 매고 네가 뛸제 외씨같은 두 발길로 백운 사이에 노닐 적에 홍상자락이 펄펄, 백방사 속곳 가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희뜩희뜩, 도령님이 보시고 부르실 제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잔말 말고 건너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날이라 비단 나 뿐이랴. 다른 집 처자들도 여기와 함께 그네를 뛰었으되, 그럴 뿐 아니라 설혹 내 말을 할지라도 내가 지금 시사가 아니거늘, 여염 사람을 호래칙거로 부를 리도 없고, 부른 데도 갈 리도 없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못 들은 바라."
[8] 이도령의 분부로 춘향의 집까지 찾아가는 방자
방자가 이면이 붉어져 광한루로 돌아와 도령님께 여쭈오니 도령님 그 말 듣고 "기특한 사람이다. 언즉시야로되 다시 가 말을 하되 이러이러하여라." 방자 전갈 받들어 춘향에게 건너가니 그 새에 제 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간이 마주 앉아 점심밥이 방장이라. 방자 들어가니 "너 왜 또 오느냐?" "황송하다. 도령님이 다시 전갈하시더라.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노라. 여가에 있는 처자 불러보기 청문에 괴이하나 혐의로 알지 말고 잠깐 와 다녀가라'하시더라." 춘향의 도량한 뜻이 연분되려고 그러한지 홀연히 생각하니 갈 마음이 나되 모친의 뜻을 몰라 침음양구 말 안하고 앉았더니, 춘향모 썩 나앉아 정신없게 말을 하되 "꿈이라 하는 것이 모두 다 허사가 아니로다. 간밤에 꿈을 꾸니 난데없는 청룡 한 마리가 벽도지에 잠겨 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이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령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夢)자 용 룡(龍)자 신통하게 맞추었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갈 수 있겠느냐. 잠깐 가서 다려오라."
[9] 춘향이 광한루를 건너가 이도령을 만남.
춘향이 그제야 못이기는 척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 제, 대명전 대들보에 명매기 걸음으로, 양지마당에 씨암탉 걸음으로, 백모래 바탕 금자라 걸음으로 월태화용 고은태도 완보로 걸어갈 때, 흐늘흐늘 월서시토성습보하던 걸음으로 흐늘거리며 건너올 제, 도령님 난간에 절반만 비껴서서 완완이 바라보니 춘향이가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이 왔는지라.
도련님 좋아라고 자세히 살펴보니 요요정정하여 월태화용 이 세상에 짝이 없다. 얼굴이 조촐하니 청홍의 오는 학이 설월에 비치는 것 같고, 단순호리 반개하니, 별도 같고 옥도 같다. 연지를 품은 듯 자하상 고은 빛은 어려있는 안개가 석양에 비치는 듯, 취군이 영롱하여 문채는 은하수 물결같다. 연보를 정히 옮겨 천연히 누에올라 부끄러이 서 있거늘 통인불러 "앉으라고 일러라." 춘향의 고은 태도 염용하고 앉은 거동 자세히 살펴보니, 백성창파 새로운 비 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을 보고 놀라는 듯 별로 단장한 일 없이 천연한 국색이라. 옥안을 상대하니 여운간지명월이요, 단순을 반개하니 약수중지연화로다. 신선은 내가 몰라도 영주에 놀던 선녀 남원에 적거하니 월궁에 모이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구나. 네 얼굴, 네 태도는 세상 인물 아니로다.
이때 춘향이 추파를 잠깐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금세의 호질이요, 진세간의 기남자라. 천정이 높았으니 소년공명할 것이요, 오악이 조귀하니 보국충신이 될 것이니 마음으로 흠모하여 아미를 숙이고 염실단좌 뿐이로다.
이도령 하는 말이 "성현도 불취동성이라 일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살이요?" "성은 성가이옵고, 나이는 십육세로소이다." 이도령 거동보소. "허허. 그 말 반갑도다. 너의 나이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라. 성자를 들어보니 천정임이 분명하다. 이성지합 좋은 연분, 평생동락 하여보자. 네 부모 구존한가?" "편모하로소이다." "몇 형제나 되느냐?" "육십당년 나의 어머니 무남독녀 나 하나요."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로다. 천정하신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년의 즐거움을 이뤄보자."
춘향이 거동보소. 팔자청산 찡그리며 주순을 반쯤 열어 가는 목 겨우 열어 옥같은 목소리로 여쭈오되 "충신불사이군 열녀불경이부절은 옛 글에 일렀으니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첩이라. 한 번 탁정한 연후에 인하여 버리시면 일편단심 이내마음 독숙공방 홀로 누워 우는 이 내 신세 내 아니면 뉘가 그럴고? 그런 분부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을 들어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을 적에 금석뇌약 맺으리라. 네 집이 어디쯤이냐?" 춘향이 여쭈오되 "방자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이 허허 웃고 "내가 너더러 묻는 일이 허황하다."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가 손을 넌짓이 들어 가르치는데, "저기 저건너 동산은 울울하고 연당은 청청한데 양어생풍하고 그 가운데 기화요초 난만하여 나무나무에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하고 암상의 굽은 솔은 청풍이 건듯부니 노룡이 굽이치는 듯 문 앞에 버들은 유사무사양류지요, 들축, 측백, 전나무며 그 가운데 행자목은 음양을 좇아 마주서고 초당 문 앞의 오동,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 나무, 포도, 다래, 으름 넝쿨 휘휘 칭칭 감겨 담장 밖에 우뚝 솟았는데 송정 죽림 두 사이로 은은하게 보이는게 춘향의 집입니다." 도련님 이른 말이 "장원이 정결하고 송죽이 울밀하니 여자절행가지로다."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여쭙되 "시속인심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겠습니다." 도련님 그 말 듯고 "기특하다, 그럴 듯한 일이로다. 오늘 밤 퇴령후에 너의 집에 갈 것이니 괄시나 부디마라." 춘향이 대답하되 "나는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 오늘 밤에 상봉하자."
[10] 다시 광한루를 건너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춘향
루에 내려 건너가니 춘향모가 마중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냐. 도련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가겠노라 일어나니 저녁에 우리 집에 오시겠다고 하옵데다." "그래, 어찌 대답했느냐?" "모른다 하였지요." "잘 하였다."
[11] 집으로 돌아온 이도령은 밤을 기다리며 책을 읽음.
이때 도련님이 춘향을 아련히 보낸 후에 미망이 들 데 없어 책실로 돌아오니 만사에 듯이 없고 다만 춘향이 생각이라. 말 소리가 귀에 쟁쟁, 고은 태도는 눈에 삼삼, 해지기를 기다릴 새 방자 불러 "해가 어느때나 되었느냐?" "동쪽에서 아구트나이다." 도련님 대로하여 "이놈 괴씸한 놈, 서쪽으로 지는 해가 동으로 다시 가랴. 다시금 살펴보라." 이윽고 방자 여쭈오되 "일낙함지 황혼되고 월출동형 하옵니다."
저녁이 맛이 없어 전전반측 어이하리. 퇴령을 기다리라하고 서책을 보려할 때 책상을 앞에 놓고 서책을 자세히 살펴보는데 중용, 대학,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주역이며 고문진서, 통사략과 이백, 두시, 천자까지 내어놓고 글을 읽을 때 시전이다. "관관저구재하지주 요조숙녀군자호구로다. 아서라. 그 글도 못읽겠다." 대학을 읽을 때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춘향이로다. 그 글도 못읽겠다." 주역을 읽는데 "원은 형코 정코 춘향이코 딱댄코 좋고 하니라. 그 글도 못읽겠다." "등왕각이라. 남창은 고군이요, 홍도는 신부로다. 옳다. 그 글 되었다." "맹자현양혜왕 하신대 왕왈 수불원천리이래 춘향이 보시러 오셨습니까." 사략을 읽는데 "태고에 천황씨는 쑥떡으로 왕이 되어 세기섭제하니 무위이화라 하야 형제 열 둘이 각각 일만 팔천 살을 살았다."
방자가 여쭈오되 "여보 도련님, 천황씨가 목덕으로 왕이 되었다는 말은 들었으되 쑥떡으로 왕이 되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요." "이자식 너는 모른다. 천황씨가 일만 팔천세를 살던 양반이라 이가 단단하여 목떡을 잘 드셨거니와 시속 선비들은 목떡을 먹겠느냐? 공자님께옵서 후생을 생각하시어 명륜당에 꿈에 나타나 시속 선비들은 이가 부족하여 목떡을 못먹기로 물렁물렁한 쑥떡으로 고치라 하야 삼백육십주 향교에 통문하고 쑥떡으로 고쳤느니라." 방자 듣다가 말을 하되 "여보, 하나님이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거짓말도 듣겠소." 또 적벽부를 들여놓고 "임술년 가을 7월 16일에 소자는 객과 더불어 적벽 아래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 이때 맑은 청풍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아니하더라. 아서라, 그 글도 못읽겠다." 천자를 읽을 때 "하늘천 따지" 방자 듣고 "여보 도련님, 점잖은 사람이 천자는 웬일이요."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의 본문이라. 양나라 주사변주흥사가 하룻밤에 글을 짓고 머리가 희었기로 책이름이 백수문이라. 낱낱이 새겨보면 벼똥 쌀 일이 많다." "소인놈도 천자속은 압니다." "네가 알았더란 말이냐?" "예, 들으시오. 높고높은 하늘천, 깊고깊은 따지, 홰홰친친 가물현, 불타겠다 누를 황" "예 이놈, 상놈은 적실하다. 이놈 어디서 장타령하는 놈의 말을 들었구나. 내가 읽을 테니 들어라. 천개자시생천하니 태극이 광대한 하늘 천, 지벽어축시하니 오행팔괘로 펼쳐져 있는 땅 지, 삼십삼천이 텅비고 또 텅비어 인심지시 검을 현, 이십팔숙 금목수화토의 똑바른 가장 가운데 색 누를 황, 우주명중화 옥우쟁영 집 우, 햇수가 오래된 나라의 흥하고 성하고 쇠하니 왕고래금 집주, 우치홍수 기자초의 홍범구주 넓을 홍, 삼황오제가 붕하신 후 난신적자 거칠 황, 동방에 장차 새벽이 오므로 고고천변 일륜홍 번뜻솟아날 일, 억조창생 격양가의 강구연월의 달 월, 한심미월 때때로 불어나서 15일 밤에 찰 영, 세상만사 생각하니 달빛과 같은지라 십오야 밝은 달이 기망부터 기울 측, 이십팔숙 하도낙서 벌려놓은 법일월성진 별 진, 가현금야숙창가 원앙금침에 잘 숙, 절대가인 좋은 풍류 나례춘화에 벌릴 열, 은은한 달밤 삼경에 만단정회 베풀 장, 오늘 찬바람 쓸쓸하게 불어오니 침실에 들거라 찰 한, 베개가 높거든 내 팔을 베어라, 이만큼 오거라 올 래, 에후리쳐 질끈 안고 님의 다리 사이에 드니 설한풍에도 더울 서, 침실이 덥거든 음풍을 취하여 이리저리 갈 왕,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때는 어느때냐 엽락오동의 가을 추, 백발이 장차 우거지니 소년풍도를 걷을 수, 나무로 쓰러뜨리는 찬바람 흰구름 강산의 겨울 동,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 깊은 곳에 감풀 장, 부용꽃이 어젯밤 가랑비에 펴서 아름다운 빛이 비치는 태도 부를 윤, 이러한 고은 태도 평생을 보고도 남을 려, 백년가약 깊은 맹세 만경창파 이룰 성, 이리저리 노닐 적에 알지 못하는 해 세, 조강지처불하당 아내 박대 못하나니 대동통편 법중 율, 군자호구이 아니냐. 춘향이 입, 내 입을 한 곳에다 대고 쪽쪽빠니 법중려자가 아니냐. 애고애고 보고싶다."
소리를 크게 질렀노니, 이때 사또 저녁 진지 잡수시고 식곤증이 나계시어 평상에서 취침하시다가 "애고애고 보고싶다." 소리에 깜짝 놀라, "이리오너라." "예." "책방에서 누가 생침을 맞느냐. 신다리를 주물렀느냐. 알아보고 와라." 통인 들어가 "도련님, 왠 목청이요. 고함소리에 사또께서 놀라셔서 염문하라 하옵시니 어찌 아뢸까요?" '딱한 일이로다. 남의 집 늙은이는 이롱증도 있다만은 귀 너무 밝은 것도 예사일이 아니로다' 그러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왜 있을고. 도련님 크게 놀라 "이대로 여쭈어라. 내가 논어라 하는 글을 보다가 '슬프도다. 나도 늙은지 오래되었구나. 꿈에 주공을 보지 못했다'라는 대문을 보다가 나도 주공을 보면 그리하여 볼까하여 흥취로 소리가 높았으니 그대로만 여쭈어라."
[12] 목낭청을 불러 글공부하는 아들을 자랑을 하는 사또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쭈오니 사또는 도련님에게 승벽있음을 크게 기뻐하여 "책방에 가서 목낭청을 가만히 오시라고 하라." 낭청이 들어오는데 이 양반이 어찌나 고리타분하게 생겼던지, 우뭔가 꺼림직한지 금심이 담쑥 들었던 것이었다. "사또, 그 사이 심심하시오?" "아, 거기 앉으시오. 할 말이 있네. 피차 우리 옛 친구로서 동문수업 하였거니와 어릴적 글읽기같이 싫은 것이 없건마는 우리 아이의 시흥을 보니 어찌 아니 기쁘겠소." 이 양반은 지여부지간에 대답하였다. "아이 때 글읽기를 시작하면 읽고 쓰고 불철주야하지." "예, 그럽디다." "배운 바가 없어도 필재절등하지." "그렇지요. 점하나만 툭 찍어도 고봉투석같고, ㅡ를 그어놓으면 천리에 펼쳐진 구름이요, 갓머리()는 칼로 짤라낸 모습이요, 필법을 논하면 바람이 물결치고, 번개와 우뢰가 치는 것이요, 내리그어 치는 획은 늙은 소나무가 절벽에 거꾸로 걸려있는 것과 같다. 창과로 말한다면 마른 등넝쿨같이 뻗어갔다 도로 채는데는 성난 송곳 끌같고, 기운이 부족하면 발길로 툭 차올려도 획은 획대로 되나니 글씨를 가만히 보면 획은 획대로 되옵디다." "글쎄 들어보게. 저 아이 아홉 살 먹었을 때, 서울집 뜰에 늙은 매화 있는 고로 매화나무를 두고 글을 지으라 하였더니 잠시 지었으되 정성들인 것과 용사비등하니 일람첨기라. 묘당의 당당한 명사가 될 것이니 남명이 북고하고 한 수의 시에 춘추를 다 읊었지." "장래 정승을 하오리라." 사또가 너무 감격하여 "정승이야 어찌 바라겠냐마는 내 생전에 급제는 쉽게 하리마는 급제만 쉽게하면 출육이야 베면이 지내겠다." "아니요, 그리 할 말씀이 아니라 정승을 못하면 장승이라도 되지요." 사또가 호령하되 "자네 누구 말로 알고 대답을 그렇게 하나?" "대답은 하였사오나 누구말인지 몰라요." 그런다고 하였으되 그게 또 다 거짓말이었다.
[13] 밤이 되자 이도령은 춘향의 집으로 떠날 채비를 함.
이때 도령은 퇴령놓기를 기다릴 때 "방자야." "예." "퇴령놓았나 봐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으니 "하인 물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좋다, 옳다옳다. 방자야, 등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집으로 건너갈 때, 자취없이 가만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상방에 불 비친다. 등농을 안보이게 가려라." 삼문밖 썩 나서서 좁은 길 사이에 달빛이 밝게 빛나고 꽃 사이의 푸른 버들 몇 번이나 꺾어지며 투기소년 (鬪技少年) 아이들은 야입청루 하였으니 지체말고 어서가자. 그럭저럭 당도하니 가련한 오늘 밤 고요하니 가기절색이 아니냐. 가소롭다. 어단자는 도원의 길을 모르던가. 춘향의 집 문앞에 당도하니 사람은 고요하고 밤은 깊은데 달빛은 삼경이라. 고기는 뛰어나왔다 잠기고 대접같이 큰 금붕어는 님을 보고 반기는 듯 달빛 아래의 두루미는 흥을 못이겨 짝부른다.
[14] 춘향의 집에 당도한 이도령.
이 때 춘향이 칠현금을 비스듬히 안고, 남풍시를 희롱하다가 침석에서 놀고 있는데, 방자가 안으로 들어가되 개가 짖을까 염려하여 자취없이 가만가만 춘향의 방 영창밑에 가만히 살짝 들어가서 "이애 춘향아, 잠들었냐?" 춘향이 깜짝놀라 "네가 어찌 왔느냐?" "도련님이 와계시다." 춘향이 이 말 듣고 가슴이 울렁울렁 속이 답답하여 부끄럼을 못이겨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저의 모친 깨우는데 "애고 어머니, 무슨 잠을 이다지 깊이 주무시오." 춘향의 모 잠을 깨어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누가 무엇을 달라고 하셨소." "그러면 어찌 불렀느냐?" 엉겁결에 하는 말이 "도련님이 방자를 모시고 오셨다오." 춘향의 모 문을 열고 방자를 불러 묻는 말이 "누가 왔느냐?" 방자 대답하되 "사또 자제 도련님이 와계시오." 춘향의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향단아" "예" " 뒤 초당에 좌석, 등불, 촛불 조심하여 마련해 놓아라." 당부하고 춘향모가 나오는데, 세상 사람이 다 춘향모를 일컫더니 과연이로다. 자고로 사람이 외탁을 많이 하는 고로 춘향같은 딸을 낳았구나. 춘향 어머니 나오는데 거동을 살펴보니 반백이 되었는데, 소탈한 모양이며 단정한 거동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며 건강하고 살과 피부 가르지 않고 통통하여 복이 많은지라. 꾸미지 않고 점잖게 짚신을 끌어 나오는데 가만가만 방자 뒤를 따라온다. 이 때 도련님 왔다갔다 두리번하야 지루하게 서있을 때 방자 나와 여쭈되 "저기 오는데 춘향의 어머니로소이다."
[15] 이도령을 집안으로 모시는 춘향모
춘향의 모가 나오더니 공손히 손을 모으고 우뚝 서며 "그 사이 도련님의 문안이 어떠하오?" 도련님이 반만 웃고 "춘향어미라지. 불안한가?" "예, 겨우 지냅니다. 오실 줄을 진정 몰라 영접이 불민하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춘향의 어머니가 앞에 서서 인도하여 대문과 중문을 다 지나 후원을 돌아가니 햇수가 오래된 따로 떨어진 별초당에 등롱을 밝혔는데, 버들가지가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이 구슬로 된 발이 갈공이에 걸린 듯 하고 오른편의 푸른 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라게 하는 듯, 왼쪽에 서있는 반송은 광풍이 건득 불면 노룡이 꿈틀거리는 듯, 창 앞에 심은 파초 날씨가 따뜻한 때 봉황의 꼬리처럼 길게 속잎 빼어나고 수심여주같은 어린 연꽃은 물밖에 겨우 떠서 옥이슬을 받쳐있고, 대접같은 금붕어는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되려하고 때때로 물결쳐서 출렁 덤벙 굼실 놀 때마다 즐거운 것처럼 벌어지고, 높이 솟은 세 봉우리의 돌멩이로 만든 인조의 산은 층층이 쌓였는데, 뜰 아래 학, 두루미는 사람을 보고 놀라 두 죽지를 딱 벌리고 긴 다리로 징검징검 낄룩 뚜루룩 소리하며 계수나무 꽃잎에 삽살개 짖는구나. 그 중에 반가울사 못 가운데 쌍오리는 손님 오신다고 두둥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 밑에 다다르니 그제야 저의 모친의 명을 받아서 사창을 반개하고 나오는데 모양을 살펴보니 뚜렷한 하나의 둥글고 밝은 달이 구름 밖에 솟았는데 황홀한 저 모양은 헤아리기 어렵도다. 부끄러이 당에 내려 천연히 서있는 거동은 사람의 간장을 다 녹인다.
[16] 춘향방에 들어온 이도령은 춘향의 세간들을 구경함.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더러 묻는 말이 "피곤하지 아니하며 밥이나 잘 먹었느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하고 묵묵히 서있거늘, 춘향모가 먼저 당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차를 권하고 담배불을 붙여 올리오니 도련님이 받아 물고 앉았을 제, 도련님 춘향집에 오실 때에 춘향에게 뜻이 있어 와계신 것이지 춘향의 세간기물 구경온 바 아니로되, 도련님 첫 바깥출입이라 밖에서는 무슨 말이 있을 듯 하더니 들어가 앉고 보니 별로 할 말이 없고, 공연히 천축기가 있어 오한증이 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할 말이 없는지라.
방안을 둘러보며 벽을 살펴보니 몇 가지 기물이 놓였는데, 용장, 봉장, 서랍장이 여기저기 벌려 있는데 무슨 그림장도 붙여있고, 그림을 그려 붙였으되, 서방없는 춘향이요, 공부하는 계집아이가 세간기물과 그림이 왜 있을까마는 춘향모가 유명한 명기라 그 딸을 주려고 장만한 것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명필의 글씨가 붙어있고, 그 사이에 붙인 명화는 다 후리쳐 던져주고, 월선도라는 그림을 붙였으되 월선도 제목이 이렇던 것이었다. 상제고거강절초에 군신조회 받던 그림, 청년거사 이태백이 황학전에 꿇어앉아 황정경을 읽던 그림, 백옥루를 지은 후에 장길을 불러올려 상양문을 짓는 그림, 칠월칠석에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그림, 광한전 달밝은 밤에 도약하던 항아그림, 층층이 붙였으되 광채가 찬란하여 정신이 산란한지라.
또 한 곳 바라보니 당춘산 엄자릉은 간의대부 마다하고 백구로 벼슬삼고 원학으로 이웃삼아 양구를 떨쳐입고 추동강 칠리탄에 낙시줄 던진 경치가 역력히 그려있다. 바야흐로 신선의 절경이라 이를만하다. 군자호귀가 놀데로다. 춘향이 일편단심으로 한 지아비를 따르고 섬기려고 하고 글 한 수를 지어 책상 위에 붙였으되 운치를 띤 봄바람의 대나무요, 향을 태우고 밤에 글을 읽도다. "기특하다. 이 글의 뜻은 목란의 절이로다."
[17] 이도령은 춘향모를 설득하여 춘향과의 백년가약을 허락받음.
이렇듯 치하할 제 춘향모가 여쭈오되 "귀중하신 도련님이 누추한 땅에 욕되게 왕림하시니 황공감격하옵니다." 도련님이 그 말 한마디에 열렸다. "그럴 리가 왜 있는가? 우연히 광한루에 춘향을 잠깐 보고 변변히 보낸 뒤에 꽃을 찾는 벌과 나비처럼 취한 마음 오는 밤에 온 뜻은 춘향어미를 보러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이와 백년언약을 맺고자 하니 자네의 마음이 어떠한가." 춘향모 여쭈오되 "말씀은 황송하나 들어보오. 자하골 성참판 영감이 보후로 남원에 좌정하였을 때 소리개를 매로 보고 수청을 들라 하옵기에 관장의 명을 못이겨 모신지 석달만에 올라가신 후에 뜻밖에 임신하여 나온게 저것이다. 그 자세한 내용으로 고목하니 젖줄이 떨어지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 양반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니 보내지 못하옵고 저것을 길러낼 때 어려서 잔병조차 그리 많고 7세에 소학 읽혀 회순심을 낱낱이 가르치니 씨가 있는 자식이라 만사를 달통이요, 삼강행실 누가 내딸이라 하겠는가, 가세가 부족하니 재상과는 부당이요 사서인 위 아래로 미치지 못하여 혼인이 늦어가므로 주야로 걱정이 나지만 도련님 말씀은 잠시 춘향과 백년기약한다는 말씀이오나 그런 말씀은 마옵시고 노시다 가옵소서." 이 말이 참말이 아니라 이도령이 춘향을 얻는다 하니 뒤에 래두사를 몰라 늘러 하는 말이었다.
이도령 기가 막혀 "좋은 일에는 마가 많다. 춘향도 아직 미혼전이요, 나도 미장전이라. 피차 언약이 이러하고, 육례는 못할 망정 양반의 자식이 한 입으로 두 소리를 할 리가 있나." 춘향의 모가 이 말을 듣고 "또 내 말을 들으시오. 고서에 적혀있되, 지신막여주이요, 지자막여부이라 하니 지녀(知女)는 어머니가 아닌가. 딸의 마음 깊은 구석구석은 내가 알지. 어려서부터 야무진 뜻이 있어 혹시나 신세를 그르칠까 의심이요, 일부종사 하려하고 사사이 하는 행실 철석같이 굳은 뜻이 청송 녹죽 전나무 사시절을 다투는 듯, 상전벽해 될지라도 내딸 마음 변할손가. 금은오촉의 백이 적여구산이라도 변치 아니할 터요, 백옥같은 내딸 마음 청풍인들 미치리요. 다만 고의를 회칙코자할 뿡이온데 도련님은 욕심부려 맺었다가 미장전 부모님이 도련님이 몰래 깊은 사랑 금석같이 맺었다가 소문이 두려워 버리시면 옥결같은 내 딸 신세 빛깔좋은 무늬가 아름다운 구슬, 고은 구슬, 구녁소리 깨지는 듯 청강에 놀던 원왕새가 짝 하나를 잃었던들 어이 내 딸 같을 손가. 도련님 마음이 말과 같을 진대 깊이 잘 생각하여 행하소서." 도련님 더욱 답답하여 "그것은 두 번 걱정하지 마소. 내 마음 헤아리니 특별간결 굳은 마음 가슴 속에 가득하니 분수에 맞는 도리는 다를 망정 저와 나와 평생기약 맺을 때 전안납폐 아니한들 창파같이 깊은 마음 춘향 사정 모를손가." 이렇듯 이같이 얘기하니 청실홍실 육례를 갖추어 만난다 해도 이보다 더 낫겠는가. "내 저를 초취같이 여길테니 대하라고 걱정말고 장가들지 않음도 염려마오. 대장부 먹은 마음 박대행실 있겠는가. 허락만 하여주소."
춘향모 이 말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몽조가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짐작하고 기꺼이 허락하여 "봉이 나면 황이 나고, 장군이 남에 용마가 나고, 남원의 춘향이 나니 이화춘풍이 꽃답다. 향단아, 술상 준비 하였느냐?" "예"하고 대답하고 주효를 차릴 적에 안주 등을 볼 것 같으면 굄새도 정결하고 대양판, 가리찜, 소양판,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에 동래 울산 대전복 대모장도 드는 칼로 맹상군의 눈썹과 같이 어슥어슥 오려놓고, 염통, 산적, 양볶음과 춘치자명 생치다리, 적벽대접 분안에서 나는 그릇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밤, 찐밤, 잣, 송이 버섯이며 호두, 대추, 석류, 유자, 홍시, 앵두, 탕그릇 같은 배가 볼품있게 고였는데, 술병 치레를 볼 것 같으면 티끌없는 백옥병과 푸르른 산호병과 엽락금정 오동병과 목이 긴 황새병, 자래병, 당화병, 쇄금정, 소상동정, 죽벌병, 그 가운데 품질이 좋은 은으로 만든 주전자, 적동자, 쇄금자 등을 차례로 놓았는데 빠짐없이도 구비하여 놓았구나.
술 이름을 말할진대 이적선 포도주와 안기생 자하루와 방문주 천일주, 백일주, 금호주, 팔팔뛰는 화주,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 골라내어 알안자에 가득부어 청동화로 백탄불에 냄비장수 끓는 가운데 알안자 둘러 차지도 뜨겁지도 않게 데워내어 금잔, 옥잔, 앵무배를 그 가운데 데웠으니 옥경연화 피는 꽃이 태을선녀 연잎을 띄우듯 대광보국 영의정 파초선 띄우듯 두둥실 띄워놓고 권주가 한 곡조에 한잔 한잔 또 한잔이라.
이도령 하는 말이 "오늘 밤에 하는 절차 보니 관청이 아닌데 어이 그렇게 갖추었는가" 춘향모 여쭈오되 "내 딸 춘향이 곱게 길러 요조숙녀 군자호구 골라서 금실우지 평생을 동락하올 적에 사랑에 노는 손님, 영웅 호걸, 문장들과 죽마고우 벗님네들과 주야로 즐기실 때, 내 당의 하인 불러 밥상, 술상 재촉할 때 보고 배우지 못하고 어찌 곧 등대하리. 내자가 민첩하지 못하면 가장의 낯을 깎음이라. 내 생전에 힘써 가르쳐 아무쪼록 본받아 행하라고 돈 생기면 사모아서 손으로 만들어서 눈에 익히고 손에도 익히고 일시 반때 놓지 않고 시킨 바라. 부족하다 마시고 구미대로 잡수시오."
앵무배 술 가득 부어 도련님께 드리니 도령 잔 받아 손에 들고 탄식하여 하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하자면 육례를 행하겠으나 그러지르 ㄹ못하고 개구멍 서방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랴. 이애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이 술을 육례 수롤 알고 먹자." 일배주 부어 들고 "너 내말 들어 보아라. 첫째 잔은 합환주라. 이 술이 다른 술이 아니라 근원근본으로 삼으리라. 순임금의 아황, 여영 귀하게 만난 연분 지중하다 하였으되 월로의 우리 연분 삼생가약 맺은 연분, 천만년이라도 변치 아니할 연분 대대로 삼태육경 자손이 많이 번성하여 자손, 증손, 고손이며 무릎위에 앉혀놓고 '죄암죄암 달강달강' 백세 이상을 오래 살다가 한날 한시 마주 누워 죽게 되면 천하에서 제일가는 연분이지." 술 한잔 들어 잡순 후에 "향단아 술부어 너의 상전에게 드려라. 장모, 경사술이니 한 잔 먹소." 춘향 어머니 술잔 들고 한 편 기쁘고 한 편 슬퍼하는 말이 "오늘이 여식의 백년지고락을 맡기는 날이라 무슨 슬픔이 있으리까마는 저것을 길러낼 제 애비없이 길러 이 때를 당하오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여 비창하여이다." 도련님 이르는 말이 "기왕지사 생각하지 말고 술이나 먹소." 춘향모 수삼배 먹은 후에 도련님 통인 불러 상물려 주면서 "너도 먹고 방자도 먹여라." 통인, 방자 상물려 먹은 후에 대문, 중문 다 닫히고 춘향어미 향단이 불러 자리 보전시킬 때 원앙금침과 샛별같은 요강, 대야, 자리 보전을 단정히 하고 "도련님 평안히 쉬옵소서. 향단아 나오너라. 나하고 함께 자자."
[18] 백년가약을 맺은 춘향과 이도령은 날마다 사랑을 나눔.
둘이 다 건너갔구나. 춘향과 도련님 마주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사양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에 봉학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를 구부려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 바드드시 거머쥐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의 가는 허리를 담쑥 안고 "나상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몸을 틀제 이리곰실 저리곰실 녹수에 홍연화가 미풍을 만나 굽이치듯 도련님이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꿈틀댄다. 이리굼실 저리굼실 동해 청룡이 굽이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될 말이로다." 꿈틀대는 중에 옷의 끈을 풀어 발가락에 딱 걸고서 껴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를 하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홀딱 벗겨지니 형산의 백옥덩어리 이 위에 더할쏘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금이 놓으면서 아차차 손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쫓아 드러누워 저고리르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골십낼 때 삼승 이불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고나. 그 가운데 진진한 일이야 오죽하라.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 맛이 간간이 새로워 부끄러움은 차차 멀어지고 그제는 기롱도 하고 우스운 말도 있어 자연히 사랑가 되었구나. 사랑으로 노는데 꼭 이 모양으로 놀던 것이었다.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칠백월하초의 무산같이 높은 사랑, 목단무변 수애여천 창해같이 깊은 사랑, 증경학무 하올 제 차문취소하던 사랑, 섬섬초월분백 함교함태 숱한 사랑, 월하의 삼생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사랑, 화우동산 목단화같이 펑퍼지고 고은 사랑, 연평 바다의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은하 직녀의 직금같이 올올이 이은 사랑, 청루미녀 침금같이 혼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 수양같이 청쳐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 노적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 옥장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 홍록 봄바람이 넘노나니 황봉백접 꽃을 물고 즐긴 사랑, 녹수청홍 원앙새격으로 마주둥실 떠서 노는 사랑, 해마다 칠월칠석 밤에 견우와 직녀가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이가 팔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 초패왕이 우미인을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방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나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한들 팔 곳이 어디 있어 생전 사랑이 이러하고 어찌 사후기약 없을 소냐. 너는 죽어 될 것이다. 너는 죽어 글자되되 땅 지(地)자, 그늘 음(陰)자, 아내 처(妻)자, 계집 녀(女)자 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 되되 하늘 천(天)자, 하늘 건(乾), 지아비 부(夫), 사내 남(男), 아들 자(子) 몸이 되어 계집 녀(女) 변에다 딱 붙이면 좋을 호(好)로 만나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 또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 청계수, 옥계수, 일대장강 던져두고 칠년대한 가물어도 일상진진 젖어있는 음양수라는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되 두견새도 되려하지 말고, 요지일월청조, 청학, 백학이며 대붕조 그런 새가 되지 말고 쌍거쌍래 떠날 줄 모르는 원항새가 되어 녹수에 원앙격으로 어화 둥둥 떠놀거든 나인 줄을 알려므나. 사랑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안될려요."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경주 인정도 되지 말고, 전주 인정도 되지 말고, 송도 인정도 되지 말고, 장안·종로 인정 되고, 나는 주겅 인정 마치나 되어 삼십삼천 이십팔숙을 응하여 길마재 봉화 세 자루 꺼지고 남산 봉화 두 자루 꺼지면 인경 첫 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때마다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 뎅, 도련님 뎅이라 만나보자꾸나. 사랑사랑 내 간간 내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방아확이 되고 나는 주겅 방아 되어 야경신연경신월경신일경신시의 강태공 조작방아 그저 떨꾸덩떨구던 찍거들랑 나인줄 알려므나. 사랑사랑 내사랑 내 간간 사랑이야." 춘향이 하는 말이 "싫소. 그것도 아니 될라요." "어찌하여 그 말이냐?" "나는 항시 어찌 이생이나 후생이나 밑으로만 되려니까 재미없어 못쓰겠소."
"그러면 너 죽어 위로 가게 하마. 너는 죽어 독매 윗짝이 되고, 나는 주겅 밑짝이 되어 이팔청춘 홍안미색들이 섬섬옥수로 맷대를 잡고 슬슬 돌리면 천원지방처럼 휘휘 돌아가거든 나인줄 알려므나." "싫소 그것 아니 될라요. 위로 생긴 것은 부애나게만 생겼소. 무슨 이유의 원수로서 일생 한 구멍이 더하니 아무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명사십리 해당화가 되고, 나는 죽어 나비되어 나는 네 꽃송이 물고 너는 내 수염 물고 춘풍이 건 듯 불거든 너울너울 춤을 추고 놀아보자.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내 간간 사랑이제,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이 모두다 내내사랑 같으면 사랑 걸려 살 수 있나. 어허 둥둥 내 사랑, 내 예삐 내 사랑이야. 방긋방긋 웃는 것은 꽃 중의 왕 모란화가 하룻밤 세우 뒤에 밤만 피고자 한 듯 아무리 보아도 내 사랑 내 간간이로구나. 그러면 어쩌자는 말이냐 너와 나와 정이 있으나 정(情)자로 놀아보자. 음이 서로 같으니 정자노래나 불러보세" "들읍시다." "내 사랑아 들어보아라. 너와 나와 정이 있으니 어이 아니 다정하리. 담담장강수 유유원객정, 하교불상송 강수원함정, 송군남포불승정, 무인불견송아정, 한태조희우정, 삼태육경 백관조정 도장청정, 각씨친정, 친고통정, 난세평정, 천년지정, 월명성희, 소상동정, 세상만물 조화정, 근심걱정, 소지원정, 주위인정, 음식투정, 복없는 저 방정, 송정, 관정, 내정, 외정, 애송정, 천양정, 양귀비 침향정, 이비의 소상정, 한송정, 백화만발호춘정, 기린토월육모정, 너와 나와 만난 정, 일정, 실정, 논지하면 내 마음은 원형이정. 네 마음은 일편탁정, 이같이 다정하다 만일 한 번 깨어지는 정, 복통절정 걱정되니 진정으로 원정하자는 그 정이다."
춘향이 좋아라고 하는 말이 "정속은 도저하오. 우리집 재수있게 안택경이나 좀 읽어주오." 도련님 허허 웃고 "그 뿐일 줄 아느냐. 또 있지야. 궁자노래를 들어 보아라." "애고 얄궂고 우습다. 궁자 노래가 무엇이어요?" "너 들어 보아라. 좋은 말이 많으니라. 좁은 천지 개택궁, 뇌성벽역 풍우 속의 서기삼광 풀려있는 엄장하다 창합궁, 성덕이 넓으시사 조임이 어인일인고 주지객 운성하던 응왕의 대정궁, 진시황 아방궁, 무넌하득 하실 적에 한태조의 함양궁, 그 곁에 장락궁, 반첩려의 장신궁, 당명황제 상춘궁, 이리 올라 이궁 저리 올라 서벽궁, 용궁 속의 수정궁, 월궁 속의 광한궁, 너와 나와 합궁하니 한평생 무궁이라. 이궁 저궁 다 버리고 너의 두 다리 사이 수룡궁에 내 힘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말으시오."
"그게 잡담은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업음질이나 하여보자." "애고, 참 잡성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하여요." 업음질을 여러 번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업음질은 천하에 쉬우니라. 너와 나와 활씬 벗고 업고 놀고 안고 놀면 그게 업음질이제."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벗겠소." "예라, 이 계집아이야. 안 될 말이로다. 내가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훨씬 벗어 한편 구석에 밀쳐놓고 우뚝 서니 춘향이 그 거동을 보고 방긋 웃고 돌아서다 하는 말이 "영락없는 낮도깨비 같소." "오냐, 네 말이 좋다. 천지만물이 짝 없는 것이 없느니라. 두 도깨비 놀아보자." "그러면 불이나 끄고 놉시다." "불이 없으면 무슨 재미있겠느냐." "어서 벗어라. 어서 벗어라." "애고 나는 싫어요." 도련님 춘향 옷을 벗기려 할 제 넘놀면서 어룬다.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없어 먹지는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는 듯,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입에다 물고 채운간에 넘노는 듯, 단산 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나무 속으로 넘노는 듯, 아홉 골짜기 청학이 난초를 물고서 오래된 소나무 사이를 넘노는 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 담쑥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귓밥도 쪽쪽 빨며,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같은 혀를 물고 오색단청 순금장 안에 쌍거쌍래 비둘기 같이 꾹꿍끙끙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쑥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저고리, 침, 바지 속옷까지 활씬 벗겨놓으니 춘향이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았을 때, 도련님이 답답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이 빨개져서 구슬땀이 송실송실 앉았구나. "이애, 춘향아. 이리와 업히거라." 춘향이 부끄러워하니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왕에 다 아는 바니 어서 와 업히거라."
춘향을 업고 추키시며 "어따, 그 계집아이 똥집 매우 무겁다. 네가 내 등에 업히니까 마음이 어떠하냐." "한끝나게 좋소이다." "좋으냐?" "좋아요" "나도 좋다." "좋은 말을 할 것이니 네가 대답만 하여라." "말씀 대답 하올테니 하여 보옵소서." "네가 금이지야?" "금이라니 당치않소. 팔년풍진초한시절에 육출기계진평이가 범아부를 잡으려고 황급사만을 흩었으니 금이 어이 남으리까." "그러면 진옥이냐?" "옥이라니 당치않소. 만고영웅 진시황이 형산의 옥을 얻어 이사의 명필로 수명우천기수영창이라. 옥쇄를 만들어 만세유전을 하였으니 옥이 어이 되오리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해당화냐?" "해당화라니 당치 않소. 명사십리 아니거든 해당화가 되오리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밀화, 금패, 호박, 진주냐?" "아니 그것도 당치 않소. 삼태육절, 대신, 재상, 팔도방백, 수령님네 갓끈, 풍잠 다 하고서 남은 것은 경향의 일등 명기 지환벌 허다하게 다 만드니 호박 진주 부당하오." "네가 그러면 대모 산호냐?" "아니 그것도 내 아니요. 대모간 큰 병풍, 산호로 난간하여 광리왕 상양문의 수궁보물 되었으니 대모 산호도 부당이요." "네가 그러면 반달이냐?" "반달이라니 당치않소 금야초생 아니어든 푸른 하늘에 돋은 명월, 내가 어찌 그것이로리까." "네가 그러면 무엇이냐? 날 홀려먹는 불여우냐? 너의 어머니 너를 낳아서 곱기도 곱게 길러내어 나만 홀려 먹으려고 생겼느냐? 사랑 사랑 사랑이야. 내 간간 내 사랑이야. 네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생률, 숙률 먹으려느냐. 둥글둥글 수박의 웃봉지 대모장도 드는 칼로 뚝 떼어놓고 강릉백청을 두루 부어 은수저 반간저로 붉은점 한 점을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시금털털 개살구를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돼지 잡아주랴. 개 잡아주랴. 내 몸통채 먹으려느냐." "여보 도련님, 내가 사람 잡아먹는 것 보았소." "예라 요것, 안될 말이로다. 어화둥둥 내 사랑. 이제 이애 그만 내리려므나. 백사만사가 다 품앗이가 있느니라. 내가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애고, 도련님은 기운이 세어서 나를 업었거니와 나는 기운이 없어 못없겠소." "업는 방법이 있느니라. 나를 돋우어 업으려 말고 발이 땅에 자운자운하게 뒤로 쳐진듯하게 업어다오."
도련님을 업고 툭 추슬려 놓으니 짐작이 틀렸구나. "애고 잡성스러워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내가 네 등에 업혀있으니 마음이 어떠하냐. 나도 너를 업고 좋은 말을 하였으니 너도 나를 업고 좋은 말을 해야 하지." "좋은 말을 하오이다. 들으시오. 부열을 업은 듯, 여상이를 업은 듯, 가슴 속에 큰 지략 품었으니 이름이 넘쳐 한나라의 대신되어 주석지신 보국충신 모두 헤어리니 사육신을 업은 듯, 생육신을 업은 듯, 일선생, 월선생, 고은 선생을 업은 듯, 제봉을 업은 듯, 요동백을 업은 듯, 충무공을 업은 듯, 우암 퇴계 사계 명제를 업은 듯, 내 서방이지. 내 서방 간간 내 서방, 진사급제 밑바탕으로 하여 직부주서, 한리학사, 이렇듯이 된 연후 부승지, 좌승지, 도승지로 당상하여 팔도방백 지낸 후 내직으로 각신, 대교, 복상, 대제학, 대사경, 판서, 좌상, 우상, 영상, 규장각 하신 후에 내삼천외팔백주석지신 내 서방, 알뜰 간간 내 서방이제."
"제 손조 농집나게 문질렀구나. 춘향아, 우리 말놀음이나 좀 하여보자." "애고 참 우스워라. 말놀음이 무엇이요?" 말놀음을 많이 하여 본 듯 "천하 쉽지야. 너와 나와 벗은 김에 너는 온바닥을 기어다녀라. 나는 네 궁둥이에 딱 붙어서 네 허리를 잔뜩 끼고 볼기짝 퇴금질로 물러서며 뛰어라. 알심있게 뛰거들면 탈 승자놀이가 있느니라. 타고 놀자 타고 놀자. 헌원씨 습용간과, 능작대무, 치우 탁욕야에 사로잡고 승전고를 울리면서 지남거를 높이 타고, 하우씨 구년지수 다스릴 때 육행승거 높이 타고, 적송자 구름 타고, 여동백은 백호 타고, 이적선은 고래 타고, 맹호연은 나귀 타고, 태을선녀는 학을 타고, 대국천자는 코끼리 타고, 우리 전하는 연을 타고, 삼정승은 평교자를 타고, 육판서는 초간 타고, 훈련대장은 수레 타고, 남원부사는 별연 타고, 일모장강어옹들은 일엽편주 돋우어 타고, 나는 탈 것 없으니 오늘 밤 삼경 깊은 밤에 춘향배를 넌짓 타고, 홑이불로 돗을 달아 내 기계로 노를 저어 오목섬을 들어가되 순풍에 음양수를 시름없이 건너갈 제 말을 삼아 탈양이면 걸음걸이 없을쏘냐. 마부는 내가 되어 네 구정을 넌지시 잡아 구부정한 걸음 반부새로 화장으로 걸어라. 기총마 뛰듯 뛰어라." 온갖 장난을 다하고 보니 이런 장관이 또 있으랴. 이팔 이팔 둘이 만나 미친 마음 세월 가는 줄 모르던가 보더라.
[19] 이도령이 부친의 전출로 상경하게 됨.
이때 뜻밖에 방자나와 "도련님, 사또께옵서 부릅시오." 도련님 들어가니 사또 말씀하시되 "여봐라. 서울서 동부승지 교지가 내려왔다. 나는 문부사정하고 갈 것이니 너는 내행을 배행하여 명일로 떠나거라." 도련님 부교 듣고 한 편 반갑고 한편은 춘향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여 사지의 맥이 풀리고 간장이 녹는 듯 두 눈으로 더운 눈물이 펄펄 솟아 옥면을 적시거늘 사또 보시고 "너 왜 우느냐? 내가 남원에 일생 살 줄로 알았더냐. 내직으로 승차되니 섭섭하게 생각말고 오늘부터 치행동절을 급히 차려 명일 오전으로 떠나니라." 겨우 대답하고 물러나와 내하에 들어가 사람이 물론 상중하하고 어머니께는 허물이 적은지라. 춘향이 말을 울며 청하다가 꾸중만 실컷 듣고 춘향의 집을 나오는데 설움은 기가 막히나 길에서 울 수도 없고 참고 나오는데 속에서 두부장 끓듯 하는지라.
[20] 이별을 고하기 위해 춘향의 집을 찾아감.
춘향 문 앞에 당도하니 통채, 건데기채, 보채, 왈칵 쏟아져노니 "어푸 어푸 어허" 춘향이 깜짝 놀래어 왈칵 뛰어 내달아 "애고 이게 웬일이오.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꾸중을 들으셨소. 길에서 오시다가 무슨 분함을 당하여 계시오. 서울서 무슨 기별이 왔다더니 중복을 업어 계시오. 점잖으신 도련님이 이것이 웬일이오." 춘향이 도련님 몸을 담숙 안고 치마 자락을 걷어잡고 옥안에 흐르는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으면서 "울지 마오, 울지 마오." 도련님 기가 막혀 울음이란 것이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우는 것이었다.
춘향이 화를 내어 "여보 도련님, 아가리 보기 싫소. 그만 울고 내력이나 말하오." "사또께옵서 동부승지로 승차하셨소." 춘향이 좋아하며 "댁의 경사요. 그래서 그러면 왜 운단 말이오?" "너를 버리고 갈 터이니 내 아니 답답하냐?" "언제는 남원 땅에서 평생 사실줄 알았소? 나와 같이 어찌 함께 가기를 바래리오. 도련님 먼저 올라가시면 나도 예서 팔 것 팔고 추후에 올라갈 것이니 아무 걱정 마시오. 내 말대로 하였으면 군색치 않고 좋을 것이오. 내가 올라가더라도 도련님 도련님 큰댁으로 가서 살 수 없으니 큰 댁 가까이 조그만한 집 방이나 두엇되면 족하오니 염탐하여서 두소서. 우리 식구 가더라도 공밥 먹지 않을테니 그렁저렁 지내다가 도련님이 나만 믿고 장가 아니 갈 수 있소. 부귀영총 재상가의 요조숙녀 가리어서 혼정신성 할지라도 아주 잊지는 마옵소서. 도련님 과거하여 벼슬 높아서 외방가면 실내마마 치행할 제 마마로 내세우면 무슨 말이 되오리까. 그리 알아 조처하오." "그게 이를 말이냐. 사정이 그러하기로 네 말을 사또께는 못여쭈고 대부인 앞에 여쭈니 꾸중이 대단하시며 양반의 자식이 아버지따라 하향하였다가 화방작첩하여 데려간다는 말이 전정에도 괴이하고 조정에 들어가면 벼슬도 못한다더구나. 불가불이별이 될 수 밖에 없다."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 코부분이 갑자기 색이 변하여 요두전목으로 붉으락 푸르락 눈을 간간조롬하게 뜨고 눈썹이 꼿꼿해지면서 코가 발심발심하여 이를 뽀드득뽀드득 갈며 온 몸을 수수잎 틀듯하며 꿩차는 듯하고 앉더니 "이게 왠말이오" 왈칵 뛰어 달려들어 치마자락도 와드득 좌드득 찢어버리며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비벼 도련님 앞에서 던지면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이것도 쓸데 없다." 명경, 체경, 산호죽절을 두루처 방문 밖에 탕탕 부딪치며 발을 동동 굴러 손뼉치며 돌아앉아서 자탄가로 울며 하는 말이
"서방없는 춘향이가 세간 무엇하며 단장하여 누구 눈에 곱게 보일고. 몹쓸 년의 팔자로다. 이팔청춘 젊은 것이 이별되리 줄 어찌 알랴. 부질없는 이내 몸을 허망하신 말씀으로 전정신세 버렸구나. 애고애고 내 신세야." 천연히 돌아앉아 "여보, 도련님! 지금 말하진 말씀 참말이요 농말이요?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백년언약 맺을 적에 대부인 사또께옵서 시키시던 일이옵니까? 빙자가 웬일이요. 광한루서 잠깐 보고 내 집에 찾아와서 침침무인야삼경에 도련님은 저기 앉고 춘향이 나는 여기 앉아 나보고 하신 말씀 구망불여천망이요, 산망불여천망이라고 전년 오월 단오날 밤에 내 손길 부여잡고 우둥퉁퉁 밖에 나와 당중에 우뚝 서서 경경이 맑은 하늘 천번이나 가르치며 만번이나 맹세키로 내 정령 믿었더니 끝내 가실 때는 톡 떼어버리고 가시니 이팔청춘 젊은 것이 낭군없이 어찌 살고. 침침공방추야장에 시름사상 어이할고. 애고애고 내 신세야. 모지도다 모지도다, 도련님이 모지도다. 독하도다 독하도다, 서울양반 독하도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존비귀천 원수로다. 천하에 다정한게 부부정 유별하건만 이렇듯 독한 양반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애고애고 내일이야. 여보 도련님, 춘향몸이 천하다고 함부로 버리셔도 그만인 줄 아지마오. 첩지박명 춘향이가 식불감 밥 못먹고 침불안 잠 못자면 며칠이나 살 듯하오. 상사로 병이 들어 애통하다 죽거든 슬프고 원통한 이 혼신이 원귀가 될 것이니 존중하신 도련님께 그건들 재앙이 아니 되겠소? 사람의 대접을 그리 마오. 죽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 애고애고 서러워라."
한참 이리 자진하여 슬피울 제 춘향모는 물색 모르고 "애고 저것들 또 사랑싸움났구나. 어, 참 아니꼽다. 눈구석에 쌍가래톳 설일 많이 보네." 하고 아무리 들어도 울음이 장차 길구나. 하던 일을 밀쳐놓고 춘향방 영창 밖으로 가만가만 들어가서 아무리 들어도 이별이구나. 허허 이거 별일 났다. 두 손뼉 땅땅 마주치며 "허허. 동네 사람 다 들어보오. 오늘날로 우리 집의 사람 둘 죽습니다." 어간마루 덥석 올라 영창문을 두드리며 우두둑 달려드니 주먹으로 겨누면서 "이년 이년 썩 죽거라. 살아서 쓸 데 없다. 너 죽은 시체라도 저 양반 지고 가게. 저 양반 올라가면 뉘간장을 녹이려느냐. 이년 이년 말듣거라. 내 일상 이르기를 후회되기 쉽느니라. 도도한 마음 먹지말고 여염사람 가리어서 형세와 지위 너와 같고, 재주와 인물이 모두 너와 같은 봉황의 짝을 얻어 내 앞에서 노는 모양을 내 안목으로 보았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마음이 도고하여 남과 별로 다르더니 잘되고 잘 되었다."
두 손뼉 꽝꽝 마주치면서 도련님 앞에 달려들어 "나와 말좀 하여 봅시다. 내 딸 춘향을 버리고 간다하니 무슨 죄로 그러시오. 춘향이 도련님 모신지가 거의 일년이 되었으되 행실이 그르던가, 예절이 그르던가, 침선이 그르던가, 언어가 불순하던가, 잡스러운 행실가져 노류장화 음란턴가, 무엇이 그르던가. 이 봉변이 웬일인가. 군자 숙녀 버리는법 칠거지악 아니면 못버리는 줄 모르는가. 내 딸 춘향 어린 것을 밤낮으로 사랑할 제 안고 서고 눕고 자며 백년 삼간 육천일을 떠나살지 말자하고 주야장천 어루더니 말경에 가실제는 뚝 떼어 버리시니 양유천만사한들 가는 춘풍 어이하며 낙화낙엽 지고난 후에 어느 나비가 다시 올까. 백옥같은 내 딸 춘향 화용신도 부득이 세월이 장차 늙어 고운 얼굴 백수되면 시호시호부재래 다시 젊어지지는 못하리니 무슨 죄가 진중하여 허송백년하오리까. 도련님 가신 후에 내 딸 춘향이 님 그리워할 때 월정명야삼경에 첩첩수심 어린 것이 가장 생각 절로 나서 초당 앞 화계 위에 담배 피워 입에 물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불꽃같은 시름, 상사가 가슴 속에서 솟아나 손들어 눈을 씻고, 휴우 한숨 길게 쉬고 북쪽을 가리키며 한양계신 도련님도 나와 같이 그리우신지 무정하여 아주 잊고 편지 한 장 아니하신가. 긴 한숨에 떨어지는 눈물 옥안홍상 다 적시고도 아니벗고 외로운 베개 위에 벽을 안고 돌아누워 밤낮으로 길게 한숨지며 우는 것은 병 아니고 무엇이오? 시름상사 내 고쳐주지 못하고서 원통하게 죽는다면 칠십당년 늙은 것이 딸 잃고, 사위 잃고 태백산 가을 까마귀 게발 물어다 던지듯이 혈혈단신 이내 몸이 누구를 믿고 산다는 말이오. 남 못할 일 그리 마오. 애고애고 서러워라. 못하지요.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고 아니 데려가오. 도련님, 대가리가 둘 돋쳤소. 애고 무서워라. 이 쇠땡땡아."
왈칵 뛰어달려드니 이 말 만일 사또께 들어가면 큰 야단 나겠거든. "여보소 장모. 춘향이만 데려가면 그만 아니오." "그래, 아니 데려가고 견뎌낼까." "너무 지나치게 주장하지 말고 여기 앉아 말 좀 듣소. 춘향을 데려간데도 가마, 쌍교 말을 태워 가자하니 반드시 이 말이 날 것이니 달리는 변통할 수 없고, 내가 기가 막히는 중에도 꾀 하나를 생각하고 있네마는 이 말이 입 밖에 나면 양반 망신만 하는게 아니라 우리 선조 양반이 모두 망신을 할 말이로세." "무슨 말이 그리 좋은 말이 있단 말인가." "내일 내행이 나오실 때 내행 뒤의 사당이 나올테니 배행은 내가 하겠네." "그래서요." "그만하면 알지." "나는 그 말 모르겠소." "신주는 모셔내어 창옷 소매에다 모시고 춘향은 요여에다 태워갈 수밖에 없네. 걱정 말고 염려마소."
춘향이 그 말 듣고, 도련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소, 어머니. 도련님 너무 조르지 마소. 우리 모녀 평생 신세가 도련님 손바닥 안에 달려 있으니 알아서 하나 당부나 하오. 이번엔 아무래도 이별할 수밖에 수가 없네. 이왕 이별이 될 바에는 가시는 도련님을 왜 조르리까마는 우선 답답하여 그러하지. 내 팔자야. 어머니 건넌방으로 가옵소서. 내일은 이별이 될 터인가 보오. 애고애고 내 신세야. 이별을 어찌 할고. 여보 도련님." "왜야?" "여보, 참으로 이별을 할테요?" 촛불을 돋우어 키고 둘이 서로 마주 앉아 갈 일을 생각하고 보낸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 한숨질과 눈물겨워 경경오열하여 얼굴도 대어보고 수족도 만져보며 "날 볼 날이 몇 밤이오? 애닯다. 나쁜 수작 오늘밤이 망종이니 나의 서러운 원정 들어보오. 연근육순 나의 모친 일가 친척 하나 없고, 다만 독녀 나 하나라. 도련님께 의탁하여 영귀할까 바랬더니, 조물이 시기하고 귀신이 작해하여 이 지경이 되었구나. 애고애고 내 일이야. 도련님 올라가면 나를 믿고 사오리까? 천수만한 나의 회포 주야생각 어이하리. 이화, 도화 만발할 제 수변행락 어이하며, 황국단풍 늦어갈 제 고절숭상 어이할고. 독수공방 긴긴 밤에 전전반측 어이하리. 쉬느니 한숨이요. 뿌리나니 눈물이라. 적막강산 달밝은 밤에 두견새 소리를 어이하리. 상풍고결만리변에 짝찾는 저 기러기 소리를 누가 금하오며 춘하추동사시절에 첩첩이 쌓인 경물 보는 것도 수심이요, 듣는 것도 수심이라."
애고애고 섧게 울 때, 이도령 이른 말이 "춘향아 울지마라. 부수소관첩재오라. 소관의 부소들과 오나라 정부들도 동서의 님 그리워 규중심처에서 늙었거늘 정객관산로기중에 관산의 정객이며 녹수부용채현녀도 부부신정이 극중이다가 추월강산이 적막한데 연을 캐어 천리상사 부디 마라. 너를 두고 가는 내가 하루 열두시간으로 나눈 것을 낸들 어이 무심하랴. 우지마라, 우지마라." 춘향이 또 우는 말이 "도련님 행화춘풍 거리거리 취하는게 장시주요, 청루미색 집집마다 보시는 이 미색이요, 곳곳의 풍악소리, 간 곳마다 화월이라. 호색하신 도련님 주야로 호강 노실 때 나같은 하방천첩이야 손톱만큼이나 생각하오리까. 애고애고, 내 일이야." "춘향아, 울지 마라. 한양성 남북촌의 옥녀가인 많건마는 규중심처 깊은 정은 너밖에 없었으니 내 아무리 대장부인들 잠시라도 잊을쏘냐."
[21] 이도령은 후일을 약속하고 한양으로 떠남.
서로 피차 기가 막혀 연연이별 못떠날지라. 도련님 모시고 갈 후배사령이 나올적에 헐떡헐떡 들어오며 "도련님 어서 행차하옵소서. 안에서 야단 났소. 사또께옵서 도련님 어디 가셨느냐 하옵기에 친고작별 하고자 문 밖에 잠깐 나가셨노라 하였사오니 어서 행차하옵소서." "말 대령하였느냐?" "말 대령하였소." "밸마욕거장시 청아석별견의이로다."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데 춘향은 마루 아래 툭 떨어져 도련님 다리를 부여잡고 "날 죽이고 가면 가지 살리고는 못가고 못가느니." 말 못하고 기절하니 춘향모 달려들어 "향단아, 찬물 어서 떠오너라. 차를 달여 약 갈아라. 네 이 몹쓸년아 늙은 어미 어쩌려고 몸을 이리 상하느냐." 춘향이 정신차려 "애고 갑갑하여라." 춘향모 기가 막혀 "여보 도련님, 남의 생때같은 자식을 이 지경이 웬일이오. 간절한 우리 춘향 애통하여 죽거든 혈혈단신 이 내 신세 누구를 믿고 살란 말이요."
도련님 어이 없어 "여봐라 춘향아. 네가 이게 웬일이냐. 나를 영영 안보려느냐? 한양낙일 수운기는 소통국의 모자이별, 정객관산노기중의 오희월녀 부부이별, 편삽수유소일인은 용산의 형제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은 이성의 붕우이별, 그런 이별 많았어도 소식 들을 때가 있고 상면할 날이 있었으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상원급제 출신하여 너를 데려 갈것이니 울지 말고 잘 있거라. 울음을 너무 울면 눈도 붓고 목도 쉬고 골머리도 아프니라. 돌이라도 망두석은 천만년이 지나가도 광석 될 줄 모르고, 나무라도 상사목은 창밖에 우뚝 서서 일년 춘절 잎이 필 줄 몰라 있고, 병이라도 회심병은 오매불망 죽느니라. 네가 나를 보려거든 서러워 말고 잘 있거라."
춘향이 할 수 없어 "여보 도련님, 내 손의 술이나 망종 잡수시오. 행찬 없이 가실 것이면 나의 찬합 갈마다가 숙고참에서 주무실 때에 날 본다하고 잡수시오. 향단아, 찬합, 술병 내오너라." 춘향이 일배주 가득 부어 눈물 섞어 드리면서 하는 말이 "한양성 가시는 길에 강수청청 푸르거든 원합정 천시가절이 되어 세우라 뿌리거든 노상행인욕단혼 말 위에서 피곤하여 병이날까 염려되니 방초무초 저문 날에는 일찍 주무시고, 아침날 풍우상에 늦게 떠나시며, 한 채찍 천리마로 모실 사람 없사오니 부디부디 천급귀체 시사안보 하옵소서. 녹수진경도에 평안히 행차 하옵시고, 일자음실 듣사이다. 종종 편지나 하옵소서."
도련님 하는 말이 "소식 듣기 걱정마라. 요지의 서왕모도 주목왕을 만나려고 한 쌍의 청조를 보내어 수천리 먼먼 길의 소식을 전송하였으며, 한무제 중랑장은 상림원 군부 앞에 일척의 금서를 보냈으니, 백안과 파랑새가 없을 망정 남원 인편마저 없을 소냐. 서러워 말고 잘 있거라."
말을 타고 하직할 제 춘향이 기가 막혀 하는 말이 "우리 도련님이 가네, 가네 하여도 거짓말로 알았더니 말타고 돌아서니 참으로 가는구나." 춘향이가 마부 불러 "마부야, 내가 문밖에 나설 수가 없으니 말을 붙들어 잠깐만 지체하여라. 도련님께 한 말씀만 여쭈련다." 춘향이 내달아 "여보 도련님, 인제 가시면 언제나 오시려오. 사절 소식 끊어질 절 보내느니 아주 영절 녹죽창송 백이숙제 만고충절 천상의 조비절 와병인사절 죽절, 송절, 춘하추동 사시절, 끊어져 단절, 분절, 훼절, 도련님은 날 버리고 박절히 가시니 속절없는 나의 정절 독수공방 수절할 제 어느 때에 파절할고. 첩의 원정 슬픈 고절 주절 주야 생각 미절할 때, 부디 소식 돈절마오." 대문밖에 꼬꾸라져 섬섬한 두 손길로 땅을 꽝꽝치며, 애고애고 내 신세야. 애고 일성하는 소리 황의산만풍소식이요, 정기무광일색박이라. 엎어지며 자빠질 때 서운하지 않게 갈 것이면 몇 날 몇 일 될 줄 모르네라.
[22] 이별한 춘향과 이도령은 서로를 그리워함.
이때 춘향이 할 일없어 자던 침방으로 들어가 "향단아 주렴 걷고, 안석 밑에 베개 놓고 문닫아라. 생시에는 만나보기 어려우니 잠이나 들면 꿈에 만나보자.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서 보이는 님을 신의없다고 일렀건만 답답하게 그리워할진데 꿈 아니면 어이보리. 꿈아 꿈아, 너 오너라. 수심첩첩 한이 되어 몽불성을 어이하랴.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인간이별 만사중에 독수공방 어이하리. 상사불견 나의 심정 누가 알아주랴. 맺힌 마음, 이런 저런 흐트러진 근심, 후리쳐 다 버리고, 자나 누우나 먹고 깨나 임 못보아 가슴 답답 어린 모습, 고운 소리 귀에 쟁쟁, 보고싶어라, 보고 싶어라, 님의 얼굴 보고 싶어라. 듣고 싶어라, 듣고 싶어라, 님의 소리 듣고 싶어라. 전생의 무슨 원수로 우리 둘이 생겨나서 그리워하는 상사 한데 만나 잊지 말자. 처음 맹세 죽지 말고 한데 있어 백년기약 맺은 맹세 천금주옥 꿈 밖이요. 세사일관 관계하랴. 근원 흘러 물이 되고, 깊고 깊고 다시 깊고 사랑 모여 산이 되어 높고 높고 다시 높아 끊어질 줄 모르거든, 무너질 줄 어이 알리. 귀신이 작해하고, 조물이 시기한다. 일조 낭군 이별하니 어느 날에 만나보리. 천수만한이 가득하여 끝끝마다 느낌이 온다. 옥같은 얼굴 헛되이 늙으니 해와 달이 무정하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은 어이 그리 더디게 새며 녹음방초 비낀 곳에 해는 어이 더디게 가는고. 이 상사 아시면 님도 나를 그리워하련만 독수공방 홀로 누워 다만 한숨이 벗이 되고, 구곡간장 굽이 썩어 솟아나니 눈물이라. 눈물 모아 바다되고 한숨지어 청풍되면 일엽주 모아타고 한양낭군 찾으련만 어이 그리 못보는고. 우수명월 달 밝을 때 설심도군 느끼오니 분명한 꿈이로다. 현야월두우성은 님 계신 곳이 바치련마는 심중에 앉은 수심 나혼자 뿐이로다. 야색창망한데 경경이 비치는 것이 창밖의 형화로다. 밤은 길어 삼경인데 앉아 있은들 님이 올까, 누워있은들 잠이 오랴. 님도 잠이 아니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마도 원수로다. 흥진비래 고진감래 예로부터 있건마는 기다림도 적지 않고 그리워한지도 오래되었건만 일촌간장 구비구비 맺힌 한을 임 아니면 누구라서 풀고. 명천은 하감하시어 쉽게보게 하옵소서. 못다한 인정 다 만나 백발이 다하도록 이별없이 살고 싶어라. 묻노라. 녹수청산 우리 님 초췌행색 아연히 이별한 후에 소식조차 돈절하니 인비목석 아닐진대, 님도 당연히 느끼리라. 애고애고 내 신세야."
양천자탄의 세월을 보내는데, 이때 도련님은 올라갈 때 숙소마다 잠 못이뤄 "보고 싶구나, 내 사랑, 보고 싶구나. 주야불망 우리 사랑, 날 보내고 그리운 마음 속히 만나 풀리라. 일구월심 굳게 먹고 등과외방 바라더라."
[23] 남원에 새로 부임한 사또 변학도
이때 수삭만에 신관 사또 났으되 자하골 변학도라 하는 양반이 오는데 문필도 유려하고 인물풍채 활달하고, 풍류 속에 달통하여 외입 속이 넉넉하되, 한갓 흠이 성정 괴팍한 중에 사증을 겸하여 혹시 실덕도 하고, 오결하는 일이 사이사이에 많은 까닭으로 세상에 아는 사람들은 다 고집불통이라고 하였다. 신연하인 현신할 때 "사령등 현신이요, 이방이요, 감상이요, 수배요." "이방 불러라." "그새 너의 고을에 일은 없느냐?" "예, 아직 무고합니다." "너의 고을 관노가 삼남의 제일이라지?" "예, 부림직하옵니다." "또 너희 고을에 춘향이란 계집이 매우 색이라지?" "예." "잘있냐?" "예, 무고하옵니다." "남원은 여기서 몇 리인고?" "육백삼십리로소이다." "마음이 바쁜지라. 급히 치행하라." 신연하인 물러나와 "우리 고을에 일이 났다." 이 때 신관사또 출행 날을 급히 받아 도임차로 내려올제, 위의도 장할시고. 구름같은 별연곧고 좌우청장 떡 벌리고, 좌우편 부축하고 명령을 행하는 이가 물색진한 모시, 천익, 백주, 전대고를 늘여 엇비슷하게 눌러 매고, 대모관자, 통영갓을 이마에 눌러 숙여쓰고 막대기 줄 겹쳐잡고 "에라, 물러섰다. 나가거라." 론금이 지엄하고 좌우구종 긴 경마 뒷채잡아 힘써라. 통인한쌍 채찍들고 전립의 행차배행 뒤에 따르고 수배, 강상, 공방이며 신연 이방 늠름하다. 일산보종 전배하여 대로변으로 갈라서고 백방수유 익산 복판 남수유 선을 둘러 주석고리 얼른얼른 호기있게 내려올 때 전후의 혼금소리 청산이 상응하고, 권마성 높은 소리 백운이 높이 떠있구나. 전주에 다다라서 경기전 객사연명하고 염문에 잠깐 다녀서 조분목 썩 내달아 만마관 노구바우 너머 임실을 얼른 지나서 오수들러 중화하고, 즉일 도임할 때 오리정으로 들어갈 때 천총이 영솔하고 육방하인, 청로도로 들어올 때, 청도 한 쌍, 홍문 한 쌍, 주작 남동각, 남서각 홍초남문, 청룡 동남각, 서남각, 남초 한 쌍, 현무 북동각, 북서각, 흑초, 홍무 한쌍, 동사순시 한 쌍, 영기 한 쌍, 집사 한 쌍, 기패관 한 쌍, 군인 열 두 쌍, 좌우가 요란하다. 행군취타 풍악소리 성의 동쪽에 진동하고, 삼현육각 권마성은 멀고 가까운 곳에 낭자한데, 광한루에 보전하여 개복하고, 객사의 연명차로 남여타고 들어갈 때, 백성들의 눈에 엄숙하게 보이려고 눈을 별양 궁글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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