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에게 20분 거리가 장애인에게는 2시간 이상 걸린다.
리프트 추락사고를 계기로 이동권 확보 요구 목소리가 높다.
김 은 선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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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1급 장애인 이원교(36)씨는 약속장소인 서울시청 앞으로 가기 위해 오전 9시 집을 나섰다. 李씨의 안암동 집에서 시청까지 가려면 버스로 20∼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그가 버스를 이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李씨는 안암 지하철역으로 갔다. 여기서 출발해 청구역에서 한번, 또 동대문운동장역에서 한번 더 지하철을 갈아타는 것이 최단거리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새로 개통된 6호선에는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 쉽게 승차장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상의 엘리베이터 입구가 경사지에 세워져 있어 올라가기가 몹시 힘들었다. 나머지 노선의 경우엔 계단 옆에 달린 전동리프트를 타고 오르내려야 한다. 리프트 한번 이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분. 동대문운동장역에서만 세차례 리프트를 탔고, 이 때문에 환승하는 데만 50분이 걸렸다. 게다가 이곳 리프트가 작동 중 고장나는 바람에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한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시청역에는 리프트조차 없었다. 역무원 2명이 그의 휠체어를 손으로 끌어 올렸다. 결국 그가 시청 앞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 어느덧 출발한지 2시간 20분이 지난 뒤였다.
李씨는 1996년 ‘세계 휠체어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일본 나고야(名古屋)를 방문한 적이 있다. 경기를 마친 다음날 그는 부인 김기정(37·뇌성마비 장애1급)씨와 함께 나고야코(名古屋港) 수족관 관광을 나섰다. 그곳에선 차도와 인도 사이에 보도턱이 없었고,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역무원들도 李씨 부부가 가는 곳마다 달려나와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도 좁아 휠체어 바퀴가 걸릴 염려도 없었다.
그가 수족관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40분. 일반인들이 그곳까지 가는데 걸리는 30분에 비해 불과 10분이 더 걸렸다. 게다가 시내버스 10대 중 1대는 휠체어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차체가 낮게 설계된 저상(低床)버스였고, 장애인이라고 승차를 거부하는 택시도 없었다. 李씨는 “그날 나는 생애 처음으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길을 가다 장애인과 마주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장애인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집밖으로 나오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 아예 외출을 기피하는 것이다. 200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소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체장애·뇌병변장애·시각장애 등 소위 이동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1백10만여명으로 추정되지만 그 중 70% 이상은 1주일 동안 한번도 외출하지 않는다.
서울지하철공사가 관할하는 1∼4호선 1백15개역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역은 6곳(5%), 리프트가 설치된 역은 39곳(34%)에 불과하다. 또 도시철도공사가 관할하는 5∼8호선 1백48개역 중 엘리베이터와 리프트가 설치된 곳은 각각 57곳(49%)과 43곳(37%)으로 사정은 조금 나은 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리프트나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을 배려한 이동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훨씬 더 많다.
교통개발연구원의 신연식 박사는 “시설이 설치돼 있어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거기엔 법률적 장치 미비도 한몫한다. 장애인 편의시설촉진 시민연대의 배융호 연구실장은 “장애인 이동은 대부분 리프트에 의지하고 있지만 리프트는 엘리베이터와 달리 안전관리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고장도 잦고 사고위험도 높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이 버스를 이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혼자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행여 동행인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끌어올린다 해도 배차시간에 쫓기는 버스기사가 이를 달갑게 생각할 리 없다. 그렇다고 휠체어를 올릴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된 버스나 저상버스를 운행하는 업체도 없다. 다행히 얼마전 서울시가 장애인 전용 저상버스를 도입해 일부지역에서 운행하고 있지만 배차간격이 2시간이나 되고, 정류장도 띄엄띄엄 있어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택시도 해결책이 못되기는 마찬가지다.
박종희(28·뇌성마비 장애2급)씨는 지난해 12월 혼자 어두운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는 그날 밤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푼 뒤 12시쯤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택시들은 다가와 잠시 멈칫하다가는 朴씨의 휠체어를 보고 그냥 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를 훌쩍 넘겼다. 朴씨는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듯한 그날은 내 생애에서 가장 춥고 어두운 밤이었다”며 당시의 참담한 기분을 떠올렸다.
서울역 광장 한켠에서는 지금도 장애인 10여명이 번갈아 나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원교씨도 거의 매일 그곳으로 ‘출근’한다. 안암동 집에서 서울역까지 가려면 몇시간이 걸리지만 李씨는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정부측에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보다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줄 것을 촉구중이다. 그들이 벌써 2주째인 이번 시위를 벌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올 1월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면서부터다.
장애인들에게 지하철 휠체어 이동 사고는 남의 일이 아니다.
시위를 이끄는박경석(41·지체장애1급)씨는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5개년 계획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국은 진정코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것이 그들을 효율적으로 돕는 방법인지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예산낭비만 초래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권영진(22·지체장애2급)씨는 한때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며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던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그는 1997년 겪은 끔찍한 오토바이 사고로 현재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후천성 장애인이다. 오토바이 대신 휠체어 신세를 지는 그에게선 예전의 활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이전과 달리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사고전에는 장애인이 어떻게 살아가든 알 바 아니었지만 지금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위현장에 나와 있는 사람은 장애인만이 아니었다. 34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 구슬땀을 흘리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사로 활동중인 김도현(28)씨는 “현재까지 2만명이 서명했다.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50배만 더 하면 된다”며 활짝 웃었다.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현장에 나온 그는 “장애인에 대한 시민의식 변화와 제도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생인 이지은(22)씨는 서명운동을 돕기 위해 여름방학까지 ‘반납’했다. 새내기때 학내 장애인 인권 동아리를 통해 소외계층에 큰 관심을 갖게 된 李씨는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때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그녀는 보아란듯이 “해외여행이다 피서다 떠나는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은 한국사회가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 불편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 그들을 가족처럼 또 이웃처럼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간다면 머지않아 이원교씨 같은 장애인들에게 3시간씩 걸리던 거리가 30분이면 넉넉할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