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비 내리는 하동 쌍계사
비 개인 오후 맑고 화창한 날씨를 외면한 채 밀린 일을 한다.
며칠 전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뒷마무리를
피곤하다는 핑계로 미뤄두고 하루 이틀 지났다.
나이 탓인지 자꾸만 미뤄두는 습관이 조금씩 베어들기 시작한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면 아마 하루쯤 더 미뤘을 건데,
일렁이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식기를 닦다 등줄기 따스함에 고개 돌려보니
작은 창문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는
숨겨놓은 나의 그리움을 파고든다.
애써 날씨를 왜면한 채 마음을 다잡고 있을 즘,
전화벨 소리 요란하게 울린다. 맑은 목소리 여인네,
하동 쌍계사 벚꽃이 너무 아름답게 만개 했다며
연분홍빛 풀풀 날리며 풍경을 이야기한다.
여인네의 기분을 맞추느라 아름답겠다며 기뻐해 줬지만 화가 난다.
붙들어 숨겨놓은 나의 마음을 한 번도 아니고 세 차례나 흔들어 놓았으니.
요즘 들어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잦아지고
허전하고 답답한 마음 줄음 져 펴지질 않는다.
언제나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 인 듯 웃음 가득 넘쳐 났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에 쓸쓸함을 느끼며.
이 생각 저 생각 꼬리를 물고 짜증이 난다.
물건들이 발에 거치적거리고 놓아둔 식기들이
삐뚜러 보이며 기분이 일그러진다.
그러나 일을 마무리 짖고 커피 한 잔 손에 쥐고
목줄기 따라 넘어가는 커피는 나를 깨운다.
흔들리는 마음은 주체하기 힘들어진다.
해 마다 격어야 하는 계절 앓이다
며칠쯤 앓아 누워 깨어나면 기벼워질텐데,
마침 광주에 다녀와야 될 일이 있어
겸사 시간 여유를 부려보기로 마음을 굳히자 조금은 가벼워진다.
이른 아침
밤이 짧아졌는지 새벽 5시30분인데 어둠이 물러나고 있다.
들떠있는 마음은 나의 잠을 떨쳐 내는데 빨리 움직여 주었고.
집을 비워야하는 미안한 마음에
이것저것을 챙겨놓고 가져갈 물건은 올망졸망 작은 가방 속에 쑤셔 넣는다.
자동차에 테이프를 밀어 넣고 시동을 켜 출발하는 행복한 여행을 위해
날씨는 상큼한 봄바람과 새벽안개를 선물한다.
정오를 조금 넘은 시간,
광주에서 일을 마무리 짓고 세 차례나 다녀온 하동으로 결정했다.
쌍계사 벚꽃과 토방에서 하룻밤, 그러나 혼자는 처음이라 불안해진다.
길 잃어버리면? 혹 무서운 사람 만나면? 아니야 차에 문제생기면?
나를 주춤하게 만든다. 가봤던 길이지만 왠지 낯 설어진다.
오늘 따라 복잡한 도로는 갈등을 부추긴다.
언제까지나 함께는 아니겠다 싶어 순천 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진입해
톨게이트에서 표를 뽑아들고 마음을 열어 올려다 본 하늘,
푸른빛 바람향기 가득 하다.
음악을 크게 켜고 액셀레이터에 발을 올려 힘차게 밟았다.
자동차 엔진은 붕-우-웅-소리를 내고 숨을 컥컥 거리며
계기판의 손가락은 세 자리 숫자를 넘나들었다.
도로변 가로수 잘 다녀 오라며 손을 흔들고
파릇 파릇 생기 돋아나는 초록빛 들판은 평온하게 누워있다.
순천 58km
얼마나 달렸을까? 휴게소가 보이지만 쉬지 않고
자동차는 즐겁게 달려준다.
큰 트럭을 비껴가고 승용차를 추월해
나의 눈치를 보며 계기판 을 올렸다 내렸다 충성을 한다.
순천 20km
목적지가 가까이 있다는 이정표다.
하동으로 가기 전에 한곳을 들려 갈 곳이 있었다.
큰 도로에서 작은 도로로 빠져 나가자 도시가 눈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낯설고 무겁던 마음에 평온이 찾아든다.
순천에 가면 꼭 들려보고 싶은 곳 그 옛날 보리밥집이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주인여인이 몇 차례 다녀가진 않았지만 그리운 분이다.
보리밥집에 도착해 파전과 청주로 고픈 배를 채우고 서로의 동안을 펼쳐 보인다.
전에는 산언덕 쓰러져가는 주막집을 손질해 풍경이 아름다웠는데
이제 벽돌건물이라 맛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주인 여인네 마음을 흘겨 주었다.
주인이 비워 달라 해서 여기로 옮겼는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인네 또한 아쉬워한다.
이야기 꽃이 피어나지만 자리를 끝내고 하동으로 향했다
하동,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성질 급한 꽃잎이 마중 나와 입구에서 서성인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벚꽃, 배꽃, 유채꽃이 줄을 잇는다.
흰빛, 분홍빛, 노란빛, 강물위에 은빛 찬란함,
나는 자동차 문을 열어 긴 숨을 토해 낸다.
벗 나무 터널을 들어서자 공기까지 분홍빛으로 물들여 꽃비로 내린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나에게 입술과 온몸을 어루만지고
가슴 속까지 파고들며 촉촉이 젖어든다.
미련이 남은 꽃잎은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고
길 넘어 섬진강은 버거운 삶의 무게 내려놓고 쉬어가라 나를 꼬-옥 안아 준다
고요하고 평온하다.
하동을 둘러싸고 있는 산 능선 따라 어둠이 마을로 내려오는 시간,
흰빛과 연분홍빛 나를 유혹하며 붙잡지만
섬진강의 물줄기 꽃향 깊게 스며들어 빨리 가라며 나를 배웅하며 내려간다.
설익은 겨울에 다시 만나리.
여기 저기 불빛이 도시 임을 알려 준다
깜깜해 지기 전에 주어 들었던 식당을 찾아 나선다.
시골스런 분위기의 “이샌집” 이라 일러 주었는데,
근처 골목을 돌아 고개를 쭈-욱 빼고 이리저리,
저만치에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정낭이 반기며
흙으로 정리된 건물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샌집”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손님들로 북적 거린다.
이층 건물은 아니지만 한쪽을 층을 만들어
옥탑 방으로 앙증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쪽문에 눈길이 멈춘다.
흘려들은 소리가 있었다.
이샌님께 부탁해 그 방에 들어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셔보라 귀 뜸해줬다.
거기에 곁들여 특별손님에게 베푸는 이샌님의 배려라 들었다.
운수좋은날,
이샌님의 배려로 옥탑 방으로 들어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장구와 옛 궤,
그리고 옆으로 가끔 허락해주는 손님을 위한 상하나,
입구에 둥그런 창문으로 건물 불빛도 다녀 가는듯,
키낮은 공간에 들어 앉으니 온몸은 고향을 찾아든듯 드러눕는다
옥탑 방 개단이 밖으로 있어 음식 배달이 불편했는지
작은문을 만들어 바구니 두레박으로 음식을 담아 올린다.
두레박은 열심히 세상을 퍼 올리고
한 잔 술, 두 잔 술, 창문에 불빛과 시간이 고개 떨군다
슬렁거리던 아래층 탁자들이 하나 둘 비워지고
도란도란 소리가 깊어가는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이샌님, 아래층에 멋진 밤이 기다린다며 함께 하길 원했다.
홀은 마루로 몇 개가 만들어졌고 큰방이 하나 있다.
큰방에는 돌을 맞은 아기가 재롱을 부리며 가족들의 축복속에 안겨,
앞자리에는 소박하고 수수한 차림의 가족들이 파전에 청주를 들면서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나는 커피 한잔을 주문해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반쯤 마시자 앞자리에 앉아있던
쪽머리의 30대 후반의 여인이 밖으로 나가더니 기타를 들고 들어온다.
여인의 앞자리에 앉아있던 머리에 두건을 쓴 남자분도
밖으로 나가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와 자리에 앉는다.
나는 악기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오늘 정말 운수가 좋은 날이구나 이런 곳에서 이런 멋을 만나다니
마음은 흥분되어 음악이 되어 흐른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내려놓을 즘
여인은 돌아앉아 기타 집에서 기타를 꺼내 키를 맞추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이샌님이 소개한다. 대학가요제 출신인 고명숙님,
부부는 무명가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고 선생님 자신의 노래, 어머니의 품을 그리며…….
첫 곡으로 선물해준다.
아! 너무 아름답다 저렇게 순수하고 수수한 차림,
맑은 영혼의 소리가 별빛 달빛 모두 초대해 이샌집 가득 채운다.
조금은 굵은 목소리이면서도 맑다. 몇 곡을 부른 뒤
개신교 신자이신 고 선생님 “실로암” 을 손뼉 치며
하나 되어 행복한 밤을 불 사른다.
딸아이 노래까지, 기쁨 두 배. 정말 축복받은 시간,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하다.
이제 이샌님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자 지친 영혼 흐느적 거리며 슬피울고
허공을 날아 오른다.
무르익어가는 자리를 정태춘, 박은옥 “떠나가는 배”를 마지막으로 나서야 했다
시간이 벌써 12시를 넘어 달리고 있다.
이샌님의 고마운 배려 가슴에 앉고
정낭을 넘어 기타소리가 조금 씩 조금 씩 멀어져가는 밤길.
마음을 튕기며 행복한 하루였다고,
운수좋은날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찾아 든다.
첫댓글 휘휘돌아 자리에 잘 돌아오셨나요? 축하드립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담고 오셨겠군요.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