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향 브람스 교향곡 3번 감상(11.18.)
후기낭만 11/19 조회수 : 38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 콘서트홀도 처음이었고 유난히 조용한 분위기도 조금은 의아했다. 콘서트 홀 로비에는 브람스 피협 1번이 울려퍼지고 있었고 난 으례 그것이 예당처럼 연주회 시작 전에 음반 하나를 플레잉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일곱시... 매표소에 사람이 없어서 너무 일찍 왔나 했다. 물품보관소에서 매표를 어디서 하냐고 물으니 아무 말도 없이 태연히 "매표소에 사람이 없냐"고 묻더니 다시 매표소로 안내해 주었다. 매표소엔 누군가가 다시 나와 표를 팔았고 나는 아주 진지하게 좌석까지 세세히 확인해가며 R석 4만원권(유니텔 회원가 32000원) 한장을 구입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그 표를 확인해 보았다. 표에는 오늘 공연일정이 여섯시로 찍혀 있었다. 난 뭔가 잘못되었거나 그것이 내가 표를 구입한 시간을 표시하는 건 줄 알았다. 당연히 클래식 공연 시작시간은 내가 알기로 7시 30분이 정상적인 것이었다. 로비에서 텔레비젼 같은 걸 보니 무대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화면이 나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고 있는 저 음악이 현재 진행중인 공연인 것을 알았다. 이미 피아니스트는 피협 2악장을 연주 중이었다.
정말 웃기는 매표소였다. 아니 공연시작했는데 표를 판 것도 웃기지만,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아주 태연하게 정상적으로 나의 진지한 태도에 느긋하게 응해 준 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었다. 환불해 주겠다고 했지만 거기까지 간 것도 아깝고, 실상 들으러 온건 교향곡 3번이었고, 마치고 지인들과 만나서 담소하는 것도 주목적이었으므로 그냥 보기로 했다. 난 한 악장에 8천원짜리 공연을 보게 된 것이다.
참 아담하고 훌륭한 홀이었다. 일단 그 규모가 클래식전용 콘서트 홀로는 이상적인 크기였다. 3층에 올라가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1층과 2층 전 좌석은 무대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서 연주를 직접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가 본 홀 중에는 2층 좌석에서 무대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홀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부채꼴 모양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어서 무대 음향 전체가 모아져서 객석으로 전해 올수 있었다. 또한 홀의 벽을 감싸고 있는 내장재도 예당 음악당보다는 소리의 반사가 적은 재질이었다. 전체적인 색조도 매우 세련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회색빛을 띠고 무대조명도 침침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나 목조분위기의 따뜻한 색조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무대가 밝은 예술의 전당 음악당과 달리 은은한 무대조명과 검은 색의 무대바닥 색조는 연주회의 비쥬얼한 면에서도 감상자의 눈을 훨씬 편하게 해 주었다. 또한 이 홀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전파차단시설의 완비였다. 이제 적어도 이 홀 안에서는 휴대전화의 벨소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점이 얼마나 감상자나 연주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지는 능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음향이었다. 그리고 오늘 공연에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브람스 3번은 참 좋아하는 곡이고 이 홀의 음향을 테스팅하기에도 좋은 곡이었다. 악장과 지휘자가 등장하자 그들의 얼굴이 또렷이 보일정도로 가까운 홀 구조에 다시금 놀랐다. 1악장의 첫 부분이 울려퍼지자 난 이 홀에 반해버렸다. 부천필 연주는 자주 들어왔지만 늘 예술의 전당 음악당이었고 그 곳의 음향은 잔향이 많아 참 부드럽고 우아하게 들리긴 하지만 뭔가 속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홀은 너무나 솔직했다. 마치 리허설장면을 훔쳐보는 것같이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직접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현악기의 거치른 마찰음 같은 것도 그대로 전해져 왔다. 다소 건조한 음향이라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같은 그런 끔찍한 건조함은 아니었고 그래도 적당한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은 예당 음악당처럼 단점을 덮어주거나 청중을 착각에 빠뜨릴만한 그런 몽롱하고 과장된 울림은 아니었다. 아마도 브람스 시대의 유럽 공연장이라면 딱 이 정도나 이거보다는 약간 작은 홀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시대 음악은 이 정도 규모의 홀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러나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면 약간은 귀가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베토벤이나 브람스를 하기엔, 그리고 리사이틀을 하기에도 참 적절한 크기였다.
그런 좋은 음향환경 속에서 새로 듣는 부천시향의 음향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어떤 분들은 어제 공연, 그리고 이번에 엘지아트센터에서 진행중인 브람스 페스티벌을 통해 부천시향의 연주수준이 예전 말러 공연때보다도 못해졌다는 느낌을 받는 분들이 많으신 것같았다. 그 분들은 악장의 교체에 따른 앙상블의 흐트러짐, 또한 브람스에 대한 임교수의 해석에 대한 불만 등 여러가지 점을 지적하셨지만( 그리고 그 지적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소견으로는 그런 점이 홀이 바뀜으로 인한 음향의 변화로 얻어지는 인상도 상당히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역시 이러한 홀에서는 앙상블의 조그만 부조화나 관악기주자들의 작은 실수도 유난히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을수 없었다.
브람스 3번을 참 좋아해서 여러가지 음반들을 들어보았지만 어제 부천시향의 연주는 나로서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1악장, 2악장은 참 수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클라리넷, 오보에 등 목관악기도 참 훌륭했다. 현악기들이 예전의 유려한 음색보다는 훨씬 날카롭고 거치른 음색을 여과없이 내뿜고 있었지만 그건 분명히 홀의 음향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악파트의 음향은 푸르트뱅글러와 베를린필의 티타니아 궁 실황(전쟁중 필하모니 홀의 파괴 이후)에서도 충분히 느껴지는 음향이었다. (그 홀도 유난히 건조한 음향으로 유명하다) 임교수님의 템포설정도 어떤 분은 고조됨만 있지 그것이 수그러들때의 어떤 뚜렷한 해석이 부재하다고 하셨지만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특히 여유있는 1악장의 템포(카라얀은 1악장이 상당히 성급한 면이 있다.)와 4악장의 다이나믹함을 강조한 것은 내 취향에 맞았다) 2악장은 지극히 아름다웠고, 3악장도 큰 불만은 없었다. (물론 이 곡은 3악장이 가장 인기있으니 이 부분에서 불만을 가졌을 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곡의 중점이 3악장에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4악장에서 앙상블이 흐트러지고 유난히 금관악기의 실수가 많이 나온 것은 사실이었다. 템포설정이나 역동성의 부각은 아주 훌륭했지만 총주 부분에서 금관악기들의 언밸런스는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또한 현악기들이 싱코페이션 부분에서 엇나가는게 많이 느껴졌다. (이건 다른 분의 지적인데 아주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4악장의 리듬은 오케스트라가 소화하기에 상당히 난해한 부분같아 보였다. 그럭저럭 무난히 4악장을 마치긴 했지만 뒤로 갈 수록 무너지는 앙상블 때문에 큰 감동을 주지는 못한 것같다.
하지만 처음 실황으로 들은 브람스 3번, 또한 훌륭한 홀이 제공해 준 이상적인 음향은 늦가을밤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같다. 나중에 지인들이 피아노협주곡이 훨씬 훌륭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참 애석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교향곡 3번의 매력을 다시 느낄수 있었던 어제 공연은 후회없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