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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H. D. Shuemake
서문
이 책은 마음 속에 오랫동안 준비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대학과 여러 신학원에서 가르쳐 본 결과, 이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과 목사들은 모두 한 점의 오류도 없이 보존되어 온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리고 신뢰를 회복했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미국새표준역본'(A.S.V)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경 중에서 가장 정확한 번역본이라고 배웠다.
당시 나는 어렸고 성경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을 때였다. 그래서 교수가 하는 말이면 무엇이나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였다. 대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ASV 성경을 KJV 성경 위에다 두었다. 그러나, 몇몇 선배 목사님들과 만나면서 성경에 대해 여러 차례 논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대학을 나왔으며, 당시 내가 알기로는 꽤나 저명한 교수들 아래서 배웠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왜 이 목사님들은 내가 ASV가 가장 우수한 역본이라고 배웠을 때, KJV가 ASV 보다 우수하다고 믿는 것일까?
몇 년의 세월이 지나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나는 KJV를 수호하는 한 권의 책을 발견했고 참고문헌을 통해 여러 권의 참고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발견한 책은 1890년에 출간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 3권 9판이었다. 그 책은 중고서점에서 찾아낸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믿을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는 자료를 발견했다. 이 자료는 ASV가 변개한 필사본으로부터 번역되었으며 KJV 번역 진들이 이 사본을 반대한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후에 나는 차례차례로 킹제임스 성경을 수호하는 수많은 책들을 보게 되었다. 에드워드 힐스(Edward F. Hills) 박사가 쓴 "킹제임스 성경의 수호" (The King James Version defended) 와 "Believing Bible Study" 란 책과 더불어 데이비드 오티스 풀러(David Ottis Fuller)의 "어느 성경이 진짜인가 (Which Bible)?" "진짜냐 가짜냐 (True or False)?" 제스퍼 제임스 레이의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성경만을 쓰셨다"(God wrote only one Bible.) 도널드 클락 (Donald Clark)의 "성경 역본 소책자" 등이 대표적이다. 테네시 템플 대학의 교수였던 브루스 레이크 (Bruc Lake) 박사는 킹제임스를 변호하는 사람이었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반(反)니케아 교부들의 노선을 공부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오리겐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의 생애에 관한 4권의 책을 공부해 보면 성경 변개에 대한 조명을 더 분명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역본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동안 ASV를 비롯한 New ASV, NIIV와 기타 역본들에는 임의로 첨삭되거나 변개된 구절들은 많다는 것을 비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구절을 아예 삭제되어 있었다.
나는 일반 성도들에게 오늘날 우리들의 손에까지 전수된 성경 필사본은 서로 다른 두 종류가 있으며 KJV와 ASV는 서로 다른 필사본에서 번역되었음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변개된 사본들이 어떻게 우리손에 전수되었으며 ASV와 NIIV를 비롯한 많은 역본들이 거기에서 번역되었는가 뿐만 아니라 성경의 발전과정에 대해서도 그림을 통해 설명할 것이다.
(그림)
나는 이 책에서 대학교수들이 사용하는 어려운 단어를 써서 독자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이 부문에 관한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소위 성경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려운 용어와 말 때문에 원문비평학이나 필사본의 증거에 대해서 접근조차 못한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의학을 배우기 위해 의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단어를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의대에 간다' 이 말은 성경적 증거를 이해하는 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휘의 정의'를 배우는 데 일년에 10,000$를 요구하는 대학에서 공부한다. 이 말은 새로운 사람이 그 분야를 이해하고 수용하려면 수년간 연구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말밖에 안된다. 그 결과 성경 비평학은 일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벼랑으로 몰아넣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 삭제, 대체하고 임의로 신화를 접목시키고 철학을 반영한다.
최근에 나는 지역교회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휴스턴 지방법원에 가서 법인등록 서류들을 살펴 보았다. 나는 여러 주(州)에서 이 일을 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필요로 하는 서류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나는 서류 담당자에게 가서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된다. 직원은 나에게 변호사에게 문의해보라고 하며 정보를 잘 제공해 주지 않는다. 나는 알라바마 주의 법률 담당 서기관에게 전화를 했다. 이 사무관은 내가 '검인재판소'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법원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한번 변호사에게 문의하라는 충고를 들었고 그들은 내게 아무런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나는 자문해 보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 권리가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나는 검인 판사에게 주 법률담당관이 내게 필요한 서류들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복사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알라바마 주 법원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겠다는 협박(?)을 한 후에야 비로소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알라바마 주의 변호사들은 정부에 로비활동을 벌여 서민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서류작성이나 자신의 법인 서류철조차도 발급받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시민들이 스스로 이 일을 하면 자신들의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건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법률용어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설명해 줘야 할 필요가 있는 그런 것이다. 변호사들에 의해 작성된 서류를 보라. 쉬운 말을 얼마나 어렵게 써놓았는지, 미쳐 버리고 말지경이다. 법률용어, 될 수 있는 한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쓰는 그들의 전문용어를 배우려면 년간 수천 불의 돈을 들여가며 수천 시간 동안 배워야 하는 것이다. 경제용어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세계의 추세는 상인들을 암흑 가운데 묶어둔다. 그로 하여금 당신을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더 많은 일을 책임지면 질수록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애쓸 때, 대부분은 신학교를 찾거나, 대학을 입학해서 사무실 벽에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라도 걸어놓고 스스로 자신은 상당히 유식한 사람이요, 성경학자요, 진리를 발견하고자 한다면 상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의 학자들은 평범한 진리를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어려운 말로 바꾸어서 은폐하는 곳이다. 이 어휘들은 세상이 보아온 가장 위대한 책 - 킹제임스 성경(1611) 권위역본 - 에서 발견될 수 있는 진리 앞에서 가르쳐져야 한다.
학자들의 어휘(glossary)는 반드시 성경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이해되어야 한다.
이미 나는 여기서 일반인들이 잘 안 쓰는 어휘(glossary)란 용어를 사용했다. 사전에서 이 말의 정의를 한번 찾아보면, "어떤 특정한 분야나 일에서 사용하는 기술적이고 전문적이고 애매한 말의 단어 또는 사전" 이라고 되어있다. 자, 이제 내가 왜 "학자들의 어휘는 반드시 성경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을 설명하지 않는지 알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위의 한 문장을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내가 하고 싶어하는 말 뜻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학자들의 집단'이 사용하는 단골 메뉴의 허상을 여러분에게 보여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것을 사지 않고 단지 친구로부터 빌려 쓸 뿐이다.
(1) 파피루스(Papyrus) : 사람들이 이 단어를 쓸 때, 그가 언급하는 것은 단지 '값이 싼 종이, 키가 크고 물 속에서 자라며, 갈대 같은 식물, 남부 유럽과 시리아, 아프리카가 원산지'라는 정도를 언급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이 식물의 줄기로 종이를 만들었으며 이집트에서 B.C. 2400년 전에 사용되었다. 여기에다 쓴 필사본이나 고대 문서들을 일컬어 '파피루스'(Papyrus)라고 한다. 신약성경도 아마 이런 종류의 종이 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학자들이 발견했던 문서는 1,2,3,4,5,6, ...으로 번호를 붙였다. 대부분의 파피루스 사본은 신약 교회사의 1세기에서 3세기 안에 기록된 것이다(100-300 A.D).
(2) 벨럼(Vellum) : 단순한 뜻은 "고급 피지, 그 위에 글을 쓸 수 있는 송아지 가죽 같은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을 "피지 문서, 송아지, 새끼 양가죽 같은 것으로 그 위에 글, 그림, 인쇄 등을 하여 말거나 묶어 둘 수 있는 피지" 란 말이다. 어떤 벨렘은 창문의 커튼처럼 말 수 있기 때문에 '두루마리'(scroll) 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은 책처럼 페이지별로 펴지기 때문에 '사본'(codex)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사본(codex)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시내사본(Sinaiticus)과 바티칸사본 (Vaticanus)이다. 이 두 사본은 식별하기 위해 이름이 붙여졌는데, 시내사본은 히브리어의 첫 알파벳인 Aleph으로, 바티칸사본은 B로 표시된다. (이런 글자는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말로 들린다.)
(3) 원문(texts) : 헬라어로 쓰여진 신약성경은 서로 다른 사람이 쓴 것을 함께 묶어 놓은 것이다. 원문(text)이란 말은 모든 문서에서 몸체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모든 사람들이 헬라어로 된 신언성경을 편집해 놓은 것을 말한다. 저명한 학자로는 에라스무스, 스탭파누스, 엘지버, 베자, 밀, 트레겔레스, 티센도르프, 라흐만, 그리스바흐,앨 포드, 메츠거, 알란드, 네슬, 웨스코트와 홀트, 사우터 등등이 있다.
(4) 필사본(Manuscripts) : 성경의 구절들과 절들을 포함하고 있는 파피루스나 벨렘을 통칭한다. 어떤 것은 신약 성경을 전권을 담고 있으며, 어떤 것은 일부가 빠져 있는 것도 있다. 어떤 다른 것은 단지 몇 구절만 있는 것도 있다.
(5) 역본(Versions) : 어떤 사람이 헬라어 원문에서 자국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역본이라고 한다. 니케아 종교회의 (325 A.D) 전에 시리아와 라틴에는 역본이 있었다. 다른 역본은 고트어와 페르시아어와 콥트어로 번역된 것이 있었다. 역본(Version)이란 말은 '성경의 번역'(translation)이라고 하면 정확한 말일 것이다. 이제 역본이란 의미는 이미 있던 언어에서 새로운 언어로 다시 쓴다(redo)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1952년과 1901년에 출간된 RSV와 ASV는 권위역본의 개정판(revision)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개정판'(revision)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그 이유는 ASV, RSV, LB, NIV등은 권위역본이 사용했던 필사본과 다른 계열의 필사본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6) 필사본의 계열(families of manuscripts) : 이미 (4)번에서 말했다. 킹제임스성경과 마르틴 루터 성경은 시리아 계열의 필사본에서 나왔다. 이것을 '표준원문'(Received Text) 이라고 부른다. New ASV(1963) 와 New RSV(1973)는 이집트 계열의 필사본에서 나왔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안 또는 히스키안 계열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될 수 있는 한 어려운 용어를 쓰려는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다! 또 다른 두가지 계열의 필사본이 있는데 '서방원문계열' 과 '카이사랴 원문계열'(Caesarian) 이다. 이 마지막 사본은 킹제임스 성경의 근원이 되는 "표준원문"의 증거가 너무나 많은 사본이기 때문에 그 수를 줄여서 권위 역본의 권위를 무너뜨리고자 고안한 새로운 이름의 계열이다.
필사본에 숫자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필사본의 이름은 라틴어나 그리이스어의 파생어로 지어서 가능한 한 말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겠지만 킹제임스성경은 어떤 다른 모든 성경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원했으며 설교되었고 가르쳐 졌으며, 이런 것들을 통해 선교 사역이 이루어졌다. 킹제임스성경이 존귀히 여김 받는 곳은 그 나라도 축복을 받았지만, 킹제임스성경이 무시되는 곳은 그 나라 또한 고통을 당하였다.
킹제임스성경이 북미로 가고 제롬의 라틴어 성경이 남미로 갔다. 북미가 축복을 받았고 남미는 3류 국가로 전락해 버렸다. 킹제임스성경의 원문이 바로 종교개혁 성경의 원문이다. 킹제임스성경이 쓰여지는 곳에 부흥과 구령의 역사가 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성경을 쓰는 곳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킹제임스성경과 '표준원문'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림)
킹제임스성경은 헬라어 원문들의 다수와 일치한다.
첫째, 나는 킹제임스성경이 미국표준역본(ASV)과 다른 헬라어 원문에서 번역되었음을 지적한다. 킹제임스성경은 '표준원문'에서 번역되었다. 이것은 '다수필사본'(Majority Text)이라고 불렸다.
'표준원문'(Textus Receptus) 또는 '수용원문'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엘지버 형제들이 쓴 책들에서 비롯되었다. 에라스무스, 로버트 스테파누스, 베자와 엘지버 형제들은 모두 뛰어난 학자들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헬라어 신약성경의 "표준원문"은 그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Donale T. Clark이 쓴 Bible Version Manual을 참조하시오.) 이 헬라어 원문은 현존하는 다수 필사본과 일치한다.
학문의 전당
성도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곳은 안티옥과 시리아였다.
벌콥은 알렉산드리아의 학교는 플라톤 철학과 영지주의를 포함한 인기 있는 철학의 영향아래 있었다고 지적한다. 자연스럽게 철학과 종교의 조화를 꾀하기 시작하며 성경의 풍유적 해석방법을 도입했다. 이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은 클레멘트이며 그의 제자가 오리겐이다. 이 두사람은 성경을 풍유적(allegorical) 해석만이 진정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수장으로서 클레멘트를 계승한 사람은 오리겐이었다. 유명했던 그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오리겐도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기로 결심했다. ( UN Stand 백과사전. 뉴욕: 17권 P6346 참조하시오.)
(그림. P9)
그는 그리스도가 피조된 존재요, 혼은 선재(先在)를 주장했으며 성경의 풍유적 해석방법을 확립한 창시자이다.
오리겐은 헥사플라(Hexapla)라고 하는 6란 성경을 편집했다. 6개의 각 부분은 성경의 서로 다른 역본을 가지고 있다. 헥사플라는 오리겐이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성경 구절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헥사플라는 ASV, NIV, New ASV와 같은 현대의 많은 역본들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A. 오리겐이 원문을 변개시키다.
오리겐은 그리스 철학과 종교를 혼합하여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교리들을 담고 있는 성경 원문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서기 312년, 콘스탄틴은 로마의 황제가 되어서 제국의 수많은 서로 다른 종교를 하나로 통합할 목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한다. 그는 전쟁에 나가서 하늘에 떠 있는 십자가를 본 뒤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위 콘스탄틴의 믿음의 고백 후에 그가 취한 첫 번째 명령은 가능한 한 많은 종교들의 관점을 골고루 수용할 수 있는 성경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콘스탄틴은 교회와 국가를 '로마 카톨릭 교회' 안으로 일치시켰다.
오리겐의 제자중의 한 명이었던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으로부터 50권의 성경을 복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유세비우스는 제 5란을 편집해서 50권의 복사본을 콘스탄틴에게 바쳤다. 우리는 이 필사본들 중에 2권이 로마로 가는 길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을 안다. ( 이 두사본이 바로 그 유명한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이다.) 카톨릭 교회의 본산이 바로 로마임을 볼 때 콘스탄틴은 바로 교회와 국가를 함께 관장하고 있었다. 사본이 거기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또다른 많은 증거들이 이것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는 70인역(Septuagint)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흔히들 LXX라고 쓴다. 이렇게 쓰는 이유는 B.C250년 경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70명의 유대인들이 헬라어로 번역했다는 주장 때문이다. 하지만 오리겐(185-254 A.D)보다 먼저 그런 사본을 만들어 낸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사실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70인역은 오리겐의 헥사플라 제 5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은 헥사플라의 제 5란과 일치하는 점이 많고, 두 사본이 유세비우스의 생애에 씌어진 것 또한 이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지만, 학자들은 70인역이 영감 받은 성경이라고 생각하고 오리겐이 걸었던 그 땅위에 입을 맞추며 경배하고 있다. ASV와 RSV의 번역을 위해 사용된 헬라어 원문은 필사본 계열들 가운데서 오리겐을 따른 계열에서 나온 것이다. 이 헬라어 원문은 로마의 원문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ASV 성경으로 요한복음 9:38절을 펼쳐보면 난외주가 있을 것이다. 그 난외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된 존재라고 믿었던 오리겐의 신학이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다니엘서 3:25를 다시 한번 찾아보자. 킹제임스성경에는 '...그 넷째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과 같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ASV는 '...그 넷째의 모습은 신들의 아들(a son of gods) 과 같도다'라고 되어 있다. 's'와 'g'를 각각 소문자로 바꿈으로써 예수님이 우상이거나 마귀라고 가르치고 있다. 오리겐의 신학은 감추어 질 수 없다. 이와 똑같은 교리는 일명 신세계역본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요한복음 1:1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명심하라!
B.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A.D. 400년에 교황은 제롬에게 콘스탄틴의 성경(유세비우스로부터 받은 성경을 말함)과 가장 비슷한 라틴어 성경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제롬은 성실과 열정으로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다. 제롬은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의 원문비평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로서 유세비우스가 세운 카이사랴 있는 도서관에서 그들의 저작들을 모두 섭렵했다. 제롬이 만든 성경은 로마 교황청의 성경이 되었고 1546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교회사는 이 사건을 목도하고 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콘스탄틴이 오리겐의 헥사플라 5란에서 성경을 50권 복사하도록 명령한지 겨우 80년이 지났음을 명심하라.
나는 이 시점에서 제롬의 시대보다 앞서 라틴어 역본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시리아 안티옥에서 출간된 '구 라틴 벌게이트'(Old Latin Vulgate)라고 알려져 있다. 이 성경은 그리스어 성경에서 번역되었으며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시드니 콜렛이 쓴 "All about the Bible"의 28페이지를 참고하시오.) 구 라틴 역본은 영국의 첫 번째 성경이 되었다. 이 성경이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와 헷갈려서는 안된다. 구라틴 역본은 2세기에 출간되었으며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4세기에 나온 것이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구라틴 역본의 개정판이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의 그리이스어 원문을 전수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드니 콜렛(Sidney Collet)은 그의 저서 "All about the Bible"pp 27-28 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은 바티칸사본이라고 지적한다. 이 사본은 1481년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도서관에서 이상하게 발견되었다. 시내사본이라고 알려진 사본은 티쉔돌프에 의해 성 캐더린 수도원의 쓰레기 통에서 1844년에 발견되었다. 콜렛은 말하기를 1859년 러시아 황제의 영향으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로부터 이 사본이 건져냈다고 말한다. 시중에 나와있는 많은 번역본들을 읽어보면 성경의 여백에 난외주가 있다. 이 난외주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두사본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콜렛은 계속해서 티쉔돌프는 바티칸사본(Vaticanus)과 시내사본(Alep)은 콘스탄틴 대제가 유세비우스에게 명하여 만든 50권의 복사본이라고 믿었으며 시기는 A.D 331년 경이었음을 지적한다.
C.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헤라어 신약성경
1881년에 두 권으로 편집된 헬라어 신약성경이 출현했다. 이 성경은 캠브리지에서 흠정강좌 담당교수였던 웨스트코트와 역시 신학 교수였던 홀트가 만든 것이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성경은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학자들과 로마 카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도들에게조차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편수한 성경은 스크리브너(Dr. Scrivener)와 딘 버간(Dean Burgon) 같은 학자들과 정반대의 의견에 부딪혔다.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신약성경은 로마를 경유한 콘스탄틴의 '에큐메니칼 성경'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두 성경은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틴을 위해 만든 50권의 복사본중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본이다.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전적으로 의존했고 가치를 부여하여 그들이 만든 헬라어 성경의 기초자료로 썼던 이 두 사본들 - 특히 바티칸사본- 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본이다.
"많은 학생들이-티쉔도르프나 홀트를 포함하여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은 콘스탄틴이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교회들에서 사용하기 위해 유세비우스에게 명령하여 만든 50권의 복사본중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The bible Verwion Manual by Donald T. Clark)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표준원문'을 거절하고 그보다 훨씬 열등한 사본으로 대체했다. 소위 학자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된 바로 그 원문이 '전통원문'(표준원문) 이요, 현존하는 헬라어 사본들 중 95%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편수한 신약성경의 사본은 단지 5%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안다. 이 5%에서 RSV, ASV, NIV등이 나왔다.
D. 킹제임스 성경의 헬라어 원문
나는 여기서 이 주제에 관해 길게 다루지는 않겠다. 다른 많은 책들에서 이 문제에 관해 씌어진 훌륭한 내용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원문의 개요정도를 다루고자 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킹제임스성경의 신약은 '다수 필사본'(Majority Text)인 '표준원문'(Textus Receptus)에서 번역되었다. 이 원문은0로마를 경유하거나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다. 로마 카톨릭이 만들어 =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보호 아래, 초기 필사본의 변개의 위협을 물리친 참된 원문이다. 다수 필사본은 5세기까지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성도들과 모든 교회에서 사용된 유일한 성경이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소수 필사본을 버리거나 화분의 받침대 정도로 사용했다. 다수필사본은 계속 필사에 필사를 거듭해서 비잔틴 제국 시대(452-1453)에는 모든 사람이 사용하게 되어 일명 '비잔틴 원문'이란 말이 나왔다. 오늘날 이 사본들을 '표준원문' 이라고 한다.
필사본의 목록을 뒤져보면 약 5,366 가지가 있다. 이미 말했듯이 킹제임스성경은 이 사본들의 95%와 일치한다. 이는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을 위해 사용된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이 표준원문(Received Text-수용원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이다. 내가 이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꼭 명심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듯이 반복은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다.
E. 최초의 필사본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은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최초의 헬라어 필사본은 A.D100년 이전에 완성되었지만 곧 소실되었다. 그 사본들은 초기 성도들의 지속적인 사용에 의해 다 낡아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48번이나 약속하셨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도가니에서 일곱번 단련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 시편 12:6-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사40:8
"주께서 너무 어려워 못할 일이 있겠느냐?" 창18:14a
손으로 직접 쓴 최초의 원본과 그 원본을 베껴 쓴 사본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성도들에 의해 전수되었다. 원문을 복사한 이 사본들을 '그릭 벌게이트'(Greek Vulgate)라고 했는데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성경은 그리스의 귀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학자나 비평가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맡기지 않으셨다.
초대교회는 성경의 선별과 보존에 있어서 3가지 방법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이런 방법으로 초대교회는 신약성경의 순수성을 보존할 수있었고 많은 양의 필사본을 만들어 사람들이 읽게 하였다. 성경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현재 66권의 성경을 선별해서 읽게 하셨다. 성령께서는 헬라어원문이 사용되도록 하셨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필사본이 두 종류가 있다고 하자. 이 두 종류의 복음서에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경 전체의 주인공이요,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폈다. 한 권은 수용되었고 한 권은 버려졌다. 성령께서는 가짜 성경과 변개된 사본들을 일깨워 주심으로써 길을 인도하셨다. 영감받은 성경을 모조하거나 흉내내기 위해 애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씌어진 위경, 외경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바울의 시대에도 성경을 변개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여러사람들과 같지 않고, 오직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보내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성경이 필사될 때 변개된 사본들도 같이 필사되고 있었다. '가장 오래되고 원문에 가까운 사본에는 이 단어가 없고, 이 절이 없고, 이 문장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성경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성경 여백에다 늘 난외주를 달아 놓는 것도 볼 수 있다. 오래된 것이라고 가장 좋은 것이 아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고 정확하게 반영되었음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사도들이 죽은 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레나우스(Irenaeus) 는 불가지론자인 말시온(Marcion)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하여 말시온과 그의 추종자들도 성경을 손상시키기 시작했으며 일부 성경은 전혀 인정하려들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복음서를 누가복음으로 축소시켰으며 바울 서신서들만이 진짜라고 주장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제한시키고 있었다."(Hurst,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참조)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공격은 주로 성경을 다루었다.
성경이 완성된지 100여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원래의 원본과는 상이한 가장 변개된 사본이 등장했다. 성경의 필사본을 변개시키는 자들은 주로 성경의 원문을 고치기 시작했다. 변개된 사본들이 널리 퍼졌지만 그 사본들 간에도 통일성이나 일치점이 별로 없었다.(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Book 5, chap28) Ante- Nicean Fathers의 4권 230쪽과 "오리겐의 비평서"(the Critical Works of Origen) 를 보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성경의 원문은 임의로 더하고 빼버렸음을 알 수 있다. 오리겐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정했고 단지 피조물이라고 믿었다. 이 교리는 325년 아리안 논쟁에서 중지되었고 현재 여호와의 증인들을 통해 계속해서 뿌리를 유지하고 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영원토록 당신의 말씀을 오류없이 보존하신다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들은 이 믿음에 기초해서 헬라어 사본을 필사하고 또 필사해서 변개된 사본을 제치고 전체 필사본의 절대다수인 95%를 점했던 것이다. ( 나는 여기서 여러분들이 이 점을 깊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킹제임스성경은 다수 필사본에서 나왔으며 이 다수 필사본은 그리스에서 평범하게 사용되는 대문자 필사본에서 필사한 것이다. 현대의 모든 역본들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다수 필사본을 거부하고 '버림받은 꾸러미'인 소수 필사본을 택해서 번역한다. 1백개의 사본중 95개를 버리고 나머지 5개의 신약 필사본을 취해 번역한다. 이 5개의 사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공격하는 것들이다. 사탄은 성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안티옥과 시리아에서 발견되는 헬라어 성경의 전달경로는 ASV의 원문의 뿌리인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로마를 거치지 않았다. 킹제임스의 원문은 A.D 90년 이전에 있었던 몇몇 사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파피루스 52, 요한복음을 포함하고 있다.) 타이티안의 "Diatesseron"(190 A.D.)에는 A.D. 330- 350년에 씌여진 사본을 전수한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신약성경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킹제임스성의 본문들을 담고 있다.
킹제임스성경의 근간이 된 헬라어 신약 성경이 330년 이전에 완벽하게 존재했음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 것은 '표준원문'이 다른 어떤 헬라어 필사본보다 오래 전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ASV, New ASV와 RSV, New RSV 성경이 한 개의 헬라어 신약성경의 원문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킹제임스성경을 비판하는 그 정도의 필사본의 증거를 가지고 자유주의자들을 대한다면 그들은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킹제임스성경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비판적이면서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관대한 것일까?
킹제임스성경과 사해사본에 있는 이사야서를 비교해 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사해 두루마기 (Dead Sea Scrolls)는 1947년에 쿰란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두루마기와 킹제임스성경의 이사야서가 같다. 이 사실은 킹제임스성경의 원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 준다.
요셉 P. 프리 박사가 쓴 "고고학과 성경 역사"의 319쪽에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기원전 100년에 쓰여진 이 고대 사본 (사해 두루마기 책에 있는 이사야서)과 우리가 성경으로 번역하여 쓰고 있는 후기 필사본 (900-1000 A.D)사이에는 어떤 상이점도 발견할 수 없다."
왜 미국 표준역(ASV)을 거부하는가?
나는 앞에서 이미 킹제임스성경의 원문이 된 사본들과 ASV, NIV, 기타 배교한 성경들의 원문이 된 사본들 간에 차이점과 두 흐름을 잠깐 설명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ASV(1901)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왜 이 책이 오류가 있는지 대학의 강단에서, 교회에서 사용해서는 안되는지, 나는 왜 그 책을 배척하는지 설명하겠다.
첫째, 여러분들은 ASV로 마가복음 1:2을 주의깊게 보기 바란다. "보라 선지서 이사야에 기록된 바와 같이 나의 종은 네 면전에 보내노라" 그러나 이 구절은 이사야서에 나오지 않는다. 말라기서 3:1에 있다. ASV 번역자들은 성령을 거짓말장이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는데 사실이 아닌 어떤 것을 사실처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킹제임스성경은 "선지서들에도 기록된 바와 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정확하다. 마가복음 1:2은 이사야서를, 1:3은 말라기서에서 인용했기 때문이다.
둘째, 다니엘서 3:25절 후반부를 보라. 킹제임스성경은 "...그 넷째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도다." 성경을 처음 공부하는 초신자라해도 이 넷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것이다. 킹제임스 번역자들은 분명히 하나님(God)을 대문자 G로 썼고 the Son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성을 나타낸다.
반면에 ASV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넷째의 모습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신과 아들에서 모두 소문자로 처리했다. 그러면 이는 마귀이거나 이방 신을 의미하게 된다. 성경에서 이방 신들과 우상들과 마귀들은 신(god)이라고 부르고 있다. 신(god)과 하나님(God)은 결코 같은 존재가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의 수장 격인 오리겐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피조된 하나의 신이라고 믿었으며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 교리는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이 신실하게 믿고 있다. 불 속에 있는 넷째의 모습을 "신들"의 "한 아들"(a son)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이것이 내가 ASV와 NIV를 사용하지 않는 또 한가지 이유이다.
셋째, 여러분은 요한복음 9:38절을 주목하기 바란다. 여기에 예수는 단지 눈에 보이는 피조된 존재라는 오리겐의 교리가 들어 있다. 38절에는 "..주께 경배하더라."하고 되어 있다. ASV의 난외주를 보라. "헬라어로 (경배하다. worship)의 뜻은 일반적인 존경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창조주나 피조물(여기서는 이 뜻) 에게 하는 행위였다 4:20참조."라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다.
독자들은 이것을 읽으면서 ASV번역진들이 이 난외주를 붙인 것을 볼 때 이들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리겐의 가르침인 것이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ASV를 사용하지 않는다.
네째, ASV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성구가 있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저나 여러분이나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마태복음 5:22을 펴보라.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형제들에게 화를 내는 자는 누구나 심판의 위험에 처하리라." 이 구절에 따르면 누구든지, 무슨 이유에서든지 당신에게 화를 내면 그는 심판의 위험에 처해지는 데는 차별이 없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단지 죄인들만이 심판의 위험에 처해지는 것아닌가?
킹제임스성경으로 마태복음 5:22를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까닭없이 자기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며" 뭔가 차이점이 있다는 생각이 당신의 뇌리를 스칠 것이다. 사람은 어떤 이유로 화를 낼 수도 있다. ASV에는 "까닭없이"란 말을 삭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까지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내가 맡고 있는 수업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이라고 정죄하며 심판의 위험 가운데 몰아넣는 그런 성경을 사용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헬라어 표준원문과 다른 원문을 비교해 볼 때 여러분은 "없음" 이란 구절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표준 원문을 본다면 RV, NIV, ASV, NASV, RSV, 기타 역본들이 번역되었던 그 원문에서 빠져있는 200여개 이상의 단어와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주"(Lord)라는 단어를 RV, NIV, ASV, NASV, RSV, 기타 역본들에서는 수십번이나 빼버렸다. 그분의 신성에 관련된 동정녀 탄생을 공격하기 위해 "처녀"(Virgin)를 "젊은 여인"(young lady)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 역본이 정확한 번역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구주이신 그분을 높이는 성경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면 간단할 것이다. 나는 ASV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KJV만큼 높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그분의 신성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는데 깊은 공헌을 했다고 믿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이상한 학교에서 오리겐은 예수 그리스를 피조된 신이며 영생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가르쳤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 1936년 판. 제 16권 PP900-902 참조) 또한 그는 현존하는 사본들을 변개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비평가였다. (Ante- Church Fathers Vol. IV, p230)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은 첨가와 삭제가 임의로 이루어졌다.
이런 사람의 신학은 철학과 종교의 혼합이었으며 영지주의자들의 믿음과 신념을 성경에 섞어 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신약성경을 다 뜯어고쳤다는 말이 아니라 말씀을 변개시켰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이 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증거와 자료를 제시할 순 없지만 만약 깊이 있게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현대의 학자들
신학원과 대학과 신학교의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 교수들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그들은 RV, NIV, ASV, NASV, RSV, 기타 역본들이 KJV 보다 번역이 더 정확하고 잘 되었으며 원본에 가깝다고 하고 있지 않는가? 아무도 원본을 본 사람은 없다. 그들 스스로도 보지 못한 사실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원본에는..." 어쩌고 저쩌고 하며 떠드는 교수들이나 학자들은 모두 떠벌이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원본들 운운하면 자신들의 권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하지만 그들 또한 그들이 배운 것과 똑같이 학생들이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에서 사용된 계명은 요한이 요한일서 3:24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그분안에 거하고.."하신 말씀과 연관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요한일서 4:21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하느니라. 이것이 우리가 그 분께 받은 계명이니라." 요한이 그의 첫번째 서신서에서 왜 이렇게 "계명"(Commandment)란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겠는가? 계시록에서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이 단어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인해 킹제임스성경이 의미를 바꿔버린 다른 역본 (NIV, ASV, NASV, RSV) 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위에서 대략적으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지만 계시록 22:14을 한번만 더 살펴보자.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계시록 22:7에서 요한은 '...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9절과 10절에서 계속 반복해서 나온다. 요한은 19절에서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아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우리는 이상의 말씀들을 통해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바로 그 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불의를 행하지 않는 길이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손을 댄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렇게 한다면 "이 책에서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계시록 22:19에 나온 대로)
어떤 사람이 계시록 22:14절에 나온 "계명"이란 말을 모세에게 주어진 십계명이라고 우길지 모르겠지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구원은 율법을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설명해 놓았다. 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이 "계명"이란 단어는 "예언의 말씀들"이며 요한일서 3:23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as he gave us commandment) 하나님의 말씀이 계명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은 정확하여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나는 어떤 목사가 사람이 구원받고 나서 여러 가지 시험과 많은 죄로 인해 배교할 수 있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죄"(sin)란 단어의 의미중 한가지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그의 믿음과 반대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요한1서 3:23절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성경에서 칼빈주의적 관점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내가 확신하건대, 그는 성경에서 충분히 그럴만한 구절을 뽑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문맥의 뜻이 완전히 틀리지 않는다면 요한 1서 3:23절에 나오는 계명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가끔 RV, NIV, ASV, NASV, RSV, 기타 역본들이 킹제임스성경보다 훨씬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속아서 덩달아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답변을 듣고서 놀랄 때가 많다.
어느 날 내가 ASV의 오류에 대해서 가르쳤다. 나는 마가복음 1:2를 인용해서 ASV의 거짓을 폭로했다. 강의가 끝나자 한 신사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오 잘 들었습니다. 저도 그것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물은 답변은 "당신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얼마나 조사해 보았습니까?"
계시록 22:14
최근 어떤 목사님이 내게 전화를 해서 계시록 22:14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다. 그 목사님은 계시록 22:14에 따르면 킹제임스성경은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계22:14)
그는 계속해서 ASV가 더 훌륭한 번역이라고 설명했다. ASV는 "그들의 옷을 깨끗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안으로 들어가게 하려함이라." 이 구절은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나은 번역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계속해서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언급했다.
자, 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엡2:8-9). 나는 계시록 22:14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았다. 문제는 ASV에 왜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가에 있다. RV, NIV, ASV, NASV, RSV, 기타 역본들은 여기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H.C. Hoskier에 따르면 계시록의 원문의 최종권위로 바티칸과, 시내사본같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필사본들을 따랐으며 이 사본들은 모두 "그들의 옷을 깨끗케 하는 자"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또한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옷을 깨끗케 하는 자"라고 되어있다. 호스키어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킹제임스성경과 다수 필사본, 시리아 계열의 사본들이 의심할 바없는 전통원문이라고 말했다. (계시록의 원문에 관하여, H.C. Hoskier, London, Quaritch, 1929, Vol. 2, Pg. 635)
마가복음 16:9-20
이것은 꽤나 심각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역본들은 여백에다 가장 오래된 고대사본에는 이 구절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1901년에 나온 ASV의 여백에는 "가장 오래된 두 사본과 권위있는 역본에는 9절부터 끝구절까지는 없음" 이라고 적어 놓았다. 물론 여기서 번역자들이 말하는 두 사본이란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을 의미한다.
먼저 이 두사본은 로마 카톨릭의 사본이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 원문을 변개시킨 오리겐의 손을 거친 이 사본들은 후대에 와서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재구성된다.
왜 이 구절들이 킹제임스성경에는 있는지, 또 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인지 세가지 이유를 들겠다. 내가 조사해 본 바로는 그리스바흐가 쓴 '신약 비평' 2판 (1796-1806)에서 마가복음 마지막 12 구절을 무례하게 다루고 나서부터였다. 이전 신약성경의 판본들은 이런 비난과는 무관했다.
1707년에 밀(MIll)은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의 위치나 당위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고 단언했으며, 신약성경을 출간했던 벵겔(1734)과 베스틴타인(1751-52)은 그 위치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구절이라고 했다.
메트헬이란 사람은 1788년 자신의 임종 때까지 그의 혼신의 힘을 다해 14년간 신약성경의 헬라어 원문을 수집하였다. 그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구절들의 진위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티쉔돌프와, 트리겔레스, 딘 앨포드와 같은 인물들에 관심을 기울여 주기바란다. 이들은 신약성경을 재 편집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편수한 성경은 1842년 이후로 권위역본을 대체하고 있다. 티쉔돌프는 이 구절들은 본래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이 시간낭비에 불과한 것같아 그만둔다.
트리겔레스는 말하기를, "우리는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 그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마가는 8절에서 완전히 끝냈거나 상당히 시간이 경과한 뒤에 기록했는지 알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격자도 아니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난뒤에 쓴 것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8절의 "이는 그들이 무서워함이라."에서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12절은 조금 남아 있었다(?) 고 말하면서 누가 지었든 간에 복음서의 두번째 책으로써 믿을만한 것으로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딘 앨포드는 그의 선배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서의 원본은 이미 찢겨져 나가고 없다"고 가정한다. 그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은 자신의 성경에는 없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마가복음의 끝부분에 있는 주목할만한 파편 조각이라고 했다.
1700년 이상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믿어온 성경이 원래의 원문에는 없었던 것이라는 비평가들의 주장을 우리가 수용하려면, 우리는 확실한 증거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마가복음에 따르면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마지막 구절들은 2세기의 초대교회에서 사용하던 성경과 똑같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비평가들의 비평을 완전히 박살내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울만한 뚜렷한 필사본의 증거도 없다. 이런 구절들이 의문시된다면 그것을 증명해 보라. 그렇지 않다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만약 이 구절들이 원문에 없었다면 왜 그들은 헬라어 원문에도 없는 것을 반대로 집어넣었단 말인가? 왜 그들은 그런 것을 우리에게 읽으라고 주는 것인가? 실제로 이 사람들은 그들의 이론에 매여 있는 자들이다.
나는 일찍이 세 가지 자료를 제시했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음의 3가지이다. "가장 오래된 필사본", "최초의 헬라어 원문" "교부들"에 그들의 목을 걸고 있으며, 자신들이 주장하는 이론보다 더 신뢰를 둔다. 이들은 이 3가지를 근거로 신약성경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럼 필사본의 증거들을 조사해 보자. 우리는 4세기 때의 몇 가지 사본을 가지고 있다. 바티칸사본(B)과 시내사본(Aleph)은 가장 오래된 사본이며, 알렉산드리안사본, 에프라임사본, 베자사본은 약 6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비평가들은 말하기를 성경에 있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증명하기 위해 바티칸사본을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바티칸사본에는 이 구절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 사본을 필사한 필사자는 마가복음을 옮겨 쓸 때 빈 여백을 남겨 두거나 최소한 12구절이 들어 갈만한 빈 공간을 남겨 두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왜 그는 이 공간을 남겨두었을까? 무슨 이유로 이 필사자가 마지막 12구절을 쓰지 못하고 빈여백없이 꽉 채워서 써야하는 필사자들의 규정을 어겨가며 두었을까? 모든 성경은 다음 권으로 넘어갈 때 바로 이어서 쓰게 되어 있다. 그런데 바티칸사본을 기록한 필경자는 왜 그렇게 하지 않고 빈 공간을 남겨 두고 넘어가 버렸다. 이것은 필사자가 베껴 쓰던 사본에는 12구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
이런 단순한 논리로도 바티칸사본이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Dean Burgon 이 쓴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참조할 것. David Ottis Fuller의 "True of False?" Pg 6,7 를 참조하시오)
버간에 따르면 시내사본은 바티칸사본보다 약 50년 후에 나왔다고 한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은 이미 바티칸사본에서 삭제된 상태였고 그 사본의 영향으로 시내사본에도 그 구절들이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비평가들이 가장 오래된 이 두 사본에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딘 버간은 본래 시내 사본은 요한복음에 맞추어서 마가복음의 끝부분을 삭제했고 요한복음 또한 24절로 끝맺었다고 기술한다. 그렇다면 왜 요한복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쟁과 언급이 없는가? 이 책에서 두 사본의 삭제 구절들을 하나하나 비교해서 설명할 시간과 공간이 없는 관계로 넘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이 두사본에 없다는 것이 적법한 주장이 될 수는 없다.
버간은 또 말하기를, "두개의 대문자 필사본(바티칸 사본과 시내사본)을 제외하고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구절을 삭제한 필사본은 대문자 필사본이나 소문자 필사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18개의 대문자 필사본과 600개의 소문자로 기록된 복음서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구절들이 삭제되어 있지 않다."
이제 필사본의 자료를 살펴보았으니, 초기 교부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4세기 이전에 이미 교부들이 있었다. 이때 이미 100여개의 교회서신들이 있었으며 이런 것은 가장 오래되었다고 생각되는 두 사본보다 앞선 것이었다. 밀란의 주교였던 암브로스(374-397 A.D.)는 마가복음의 이 부분을 자유롭게 인용했으며 15절을 4번, 16,17,18절을 각각 세번씩, 20절을 한번 인용했던 기록이 있다.
크리소스톰(400 A.D.)이 그의 저서에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언급하면서 누가복음만이 승천을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한 후 마가복음 16:19-20을 인용했다.
제롬(331-420 A.D.)은 가장 오래된 교부들 중의 한 명이며 성경에 대해 특별히 많은 공부를 하였으며, 신약성경을 편집했으며, 그가 번역한 성경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마가복음의 마지막 구절들이 원본에 없었거나 가짜라고 생각했다면 그의 라틴벌게이트에 그것들을 포함시켰겠는가. 그는 그의 책에서 9절을 자주 인용했으며 14절을 인용했다.
395-430년 사이에 위세를 떨쳤던 어거스틴은 이 구절들을 더욱 많이 인용했다. 그는 자주 이 구절을 인용했는데, 그것들을 마가복음으로 인정했으며 교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읽고 부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히 인용했다.
세번째 자료로, 성경의 초기 역본들로 눈을 돌려 제롬의 라틴벌게이트를 살펴보자. 그는 382년에 교황의 요청에 따라 라틴어 역본을 만들었다. 제롬은 그가 성경을 번역하기 전에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헬라어 사본을 열심히 조사하고 공부했다. 그의 번역은 구 라틴역본을 많이 참조해서 개정했다. 구라틴 역본은 가장 오래된 역본 중의 하나이며 거의 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고트어로 된 '울필라스 역본' (350 A.D.) 이 있다. 이 역본은 마가복음의 12구절을 담고 있다.
다음으로 4-5세기 경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 역본을 보아도 마가복음의 마지막 구절들은 명백하게 담고 있다.
여러분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필사본들과 교부들의 증언과 초기 역본들에 대해서 자료를 제시하고 싶다.
요한 1서 5:7에 관하여
요한 1서 5:7을 보면, "이는 하늘에서 증거 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 이 구절은 수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구절이다. 하지만 모든 증거들이 진실을 증명하고 있다. 라틴어 성경과 라틴 교부들이 쓴 책을 통해서 발견되는 초대교회들의 증거를 볼 수 있다. 250년 경 카르타고의 사이프러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기록되기를 '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다.'
4세기의 스페인 주교였던 프리스킬리안의 두 작품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책이 있다. 그는 그의 대적자들과 정적이었던 이데우스 클라수스와 황제에 의해 참수형을 당했다. 5세기 경, 북아프리카에서 강력하게 벌어진 아리안 논쟁(439-534) 에서, 즉 '삼위일체' 논쟁에서도 이 구절은 강력한 근거 구절이 되었다. 이 시기에 이태리에서도 카시도로스(480-570)가 이 구절을 인용했다. 이 구절은 5-6세기의 구라틴 사본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구라틴 사본에서 번역된 라틴 벌게이트의 원문에서도 이 구절은 그대로 취해졌다. 클레멘트가 편집한 성경이나 후에 다른 역본들에서도 이 구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Pg 205. The King James Version Defended by Edward F. Hills) 이 구절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에도 있다. 에라스무스는 성경에 그 구절이 있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편수한 것이지 없는 것을 집어넣은 것은 아니다.
나는 성경에 대해 공부하는 신학생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자면 킹제임스성경의 주 원문은 에라스무스의 초판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베자의 5판(1598년)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라. 하나님께서는 '표준원문'과 라틴어를 통해 충실히 요한1서 5:7을 보존하셨다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다. 하나님은 시편 12:6-7에서 "자신의 말씀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보존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결 론
나는 킹제임스성경이 일점의 오류도 없이 현재까지 보존된 유일한 성경임을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통해 깊이 있게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안다. 모든 항목을 상세하게 다루는 것은 본래 나의 의도가 아니었으며 단지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사본에는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킹제임스성경의 원문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 책은 여러 역본들과 연관해서 여러 구절을 통해 킹제임스성경을 반대하는 의견들을 보여 주었다. 비평가들의 주장은 성경에 없는 것들이거나, 진짜는 가짜로 우기거나, 있던 것은 없었다고 하는 그런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