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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승리: 숫자와 통계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생활백서
I. B. 코언, 김명남, 생각의나무. 2010.02.06, P.263
원제 (The triumph of numbers: how counting shaped modern life 2005)
- I.B. 코언(I. Bernard Cohen, 1914–2003) 과학혁명(Revolution in Science 1985)
- 김명남, KAIST에서 화학 전공했다.
몇 가지 저자가 갖는 편견, 과학은 숫자다 또는 주지주의적 인식이 과학이다 라는 편견을 주의하고 읽으면, 르네상스 이래로 근대과학사의 재미있는 일화들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과학이 인간의 도덕과 미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생활의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이런 논지의 신뢰에는 공리주의, 행태주의, 사회심리학 등에 잠재해 있는 제국주의적 성격에 조심해야 한다. 다른 한편 프랑스의 과학사는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 전통인데 비해, 미국의 과학사 전통은 벨기에 출신인 사턴(George Sarton, 1884–1956)의 전통이란 것도 흥미롭고 출생연도가 같다는 것도. (48MKI)
미국의 교수들이 글을 써도 전문적인 논문이 아닌 책을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자기 문화 속에서 찾아서 쓴다. 그 “자기 문화 속에서”라는 무의식적인 글쓰기가 영미철학적 의미론에 빠지거나 주지주의에 근거한다. 그러한 것의 배경은 동일율이며 은근 슬쩍 유일신앙의 강조가 들어간다. 그래서 코언이 유대계가 아닌가 하여 찾아보았으나 en.Wiki와 fr.Wiki 속에 그런 언급은 없다. 근대과학에 대한 신뢰로서 에피스테를 다루는데, 푸꼬가 근대학문을 다루는 것과 차이가 크다. 물론 저자는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의 분야들을 다루고 푸꼬의 경우는 학문 중에서 인간과학의 분야를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48LNA)
유대계 아메리카 지식인들의 공통점은 중동의 전설따라 삼천리로부터 시작한다. 바빌론과 이집트를 건너뛰고, 페르샤를 무시하고서 말이다. 21세기는 삼황오제의 전설과 아브람의 전설의 대립에 있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적 구분과 더불어 인간의 삶의 터전과 지혜(소피아)와 지식(에피스테메)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 들뢰즈가 새로운 시각으로 천개의 고원을 썼다는 것을 주목하자. (48MKA)
우연을 우연으로 인정하지 않고 원인들의 조합으로 만들려는 공리주의적 주지주의자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목적론에 지배를 받고 있다. 우연은 우연이다. 우연이 길들여 지지 않는 다양체가 있다. 세상은 별종이 넘쳐난다. 별종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수학적 차이와 생물학적 차히에 대한 사유가 부족하면 해킹 또는 저자인 코언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차히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때, 주지주의의 폭력은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된다.(48MKI)
나는 평균값과 중간값과 양극의 차이에 대한 표를 생각할 때, 삐께띠의 도표가 상떽쥐뻬리(Saint-Exupery)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연상한다. 생산량의 증가에서 일부 소수가 착취하는 양의 증가는 보아뱀의 코끼리 코부분만 길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통계상으로 극단의 소수의 양이 늘면 평균값도 커가고 다른 극단에 다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틀렸다고 곳곳에서 이야기했다. 칼 폴라니(Karl Polany)는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 La Grande Transformation, 1944)에서 낙수효과는 없다고 했다. 신자유정책의 사기는 이 낙수효과로 표현된다. (48MKI)
**수의 승리(The triumph of numbers: how counting shaped modern life 2005)
목차 4-6
* 프롤로그 (7-12) - 피터 벅(2004년 8월)
수의 승리에는 원래 다음과 같은 긴 부제가 딸려있었다. “순자는 어떻게 사람들과 정부의 행위에, 자연의 탐구에, 사회분석에 개입하게 되었나” 나 자신을 비롯한 편집자들과 조언자들은 .. “통계는 어떻게 현대의 일상을 만들었는가”. (7)
버나드[코언]의 말을 빌면, “역사의 기록에 등장하는 사회조직과 정부 체계는 모두 다 어떤 식으로든지 수에 의존”했지만, “수가 분석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7세기, 과학의 혁명 시대에 들어서였다.” (9)
케플러의 천문학, 갈릴레오의 역학, 존 그라운트와 윌리엄 페티의 정치 산술, 라플라스의 확률이론과 적용과정, 피넬과 루이의 수치적 분석법, 케틀레이의 사회 물리학,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윌리엄 파의 통계를 향한 열정... 수비학과 수 신비주의는 물론이고 수치화 세태에 반대한 찰스 디킨스(어려운 시절)와 토머스 칼라일(차티스트 운동)의 주장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졌다. (10)
엘버트 허쉬맨의 잘 알려진 책 열정과 이익에 .. 부제는 ‘승리를 거두기 이전의 자본주의를 위한 정치적 논거들’이다. (11)
디킨스의 한 유명한 소설의 제목이 버나드의 마지막 책에 맞춤한 부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려운 시절(Hard Times)이 아니라 막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이 말이다. (12)
1 수의 세계 13
- 숫자가 없는 곳은 없다 13 / 역사 속의 수 15 / 『성경』의 숫자들: 다윗 왕이 지은 죄 26 / 다윗 왕이 저지른 죄의 결과 31
[이부분에 관해서 해명된 것이 많은 데, 그런 이야기가 없다. 작가는 바빌론과 이집트의 수에 대한 것이 없다.]
대체 언제부터 이처럼 숫자들이 넘쳐나게 된 걸까? (14) - [숫자들: 거대한 발명의 역사(Les chiffres ou l'histoire d'une grande invention, 1985)(숫자의 탄생 시대: 문명을 가로지르는 환상적인 숫자 여행, 조르주 이프라, 김병욱, 부키, 2011, P. 464.)를 꼭 참조하라! 코언이 얼마나 유대주의에 빠져 있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48MKA)]
기원전 3500년경에 제작된 이집트의 ‘왕의 곤봉’(19세기말 발굴, 왕의 장식곤봉 .. 그중의 하나는 파라오 ‘나메르의 곤봉’이다)에는... 이집들인들은 한 전투에서 포로를 120 000명 잡았으며, 소를 400 000, 염소를 1 422 000 마리 취했다. 아마도 과장이 섞인 숫자일 테지만 좌우간 고대 이집트인들이 매우 큰 자릿를 쓸 수 있었다는 증거다.(16)
쿠푸(Khufu et Khafre, Χέωψ 재위: 기원전 2589년 ~ 기원전 2566년)는 이집트 제4왕조의 파라오이다.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건설 ... [여기에서] 신비주의적 지식을 획득하는 활동은 피라미디오시(pyramidiocy, 피라미드pyramid와 바보짓idiocy 합성어) 또는 피라미디엇(pyramidiote, 피라미드와 바보짓idiots 합성어) .. (17)
이런 사람들 중에 찰스 피아지 스미스(Charles Piazzi Smyth,1819–1900) 대 피라밑이 인류에게 주는 유산(The Our Inheritance in the Great Pyramid, 1864)(The Great Pyramid: Its Secrets and Mysteries Revealed, 다른 제목, 판본이 여럿이란다) (18)
나폴레옹의 피라밑 돌 계산... 원정대 참가자 중 가스파르 몽주(Gaspard Monge, 1746-1818)도 계산했다. (19)
거대한 돌 하나하나를 적절한 위치에 짜맞추어 피라미드의 최종 구조를 만들어가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부정리는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21)
리처드 H G 패리, 캠브리지 대학, 공학부 토질역학 전문가. 호주에 있다? 피라밑 운반연구: 나무로 된 요람으로 밀어 올렸을 것이라.. 침목으로는 60-80명이 필요한데 요람모양 굴림대로는 16-20명이 족하다. - 일본 오바야시 그룹이 이것을 실험으로 증명. (21-26)
숫자에 대한 성경 문구 중 가장 영향력있는 문장은 「구약외경 지혜서」(11장 20절) .. 주님은 “모든 것을 재고, 헤아리고, 달아서 처리하셨다.” .. 수비학자들의 관심이다.(26-27) [측정하는 경우, 재고 헤아리고 달아서 처리했을 것은 이집트 피라밑이리라..]
민수기 인구조사 ... 모세의 인구조사... 「사무엘서」(하편 24절1-25)에 따르면 다윗 왕은 기분이 동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되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하여튼 사람들은 이 호구조사를 악한 것으로 간주했다. (28)
「역대기」(상편 21장 8절)에는 “다윗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느님께 ‘제가 잘못 했습니다’하고는 ‘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빌었다”고 적고 있다. .. 인구조사를 명한 다윗의 죄가 얼마나 중한 것으로 여겼는지 잘 알 수 있다. 세 가지 재앙은 삼년동안의 가뭄, 석달 동안 적의 칼에 쫓기는 것, 사흘 동안 온 나라에 역병이 창궐하는 것이다. 다윗은 마지막 재앙을 택했으며, 그로써 전염병이 돌아 70, 000명이 죽었다. (29) [실재적 사실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수비(數秘)의 믿음은 영국에도 또한 미국 식민지 시절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코벳(William Cobbett, 1763–1835)의 영국 의회사를 보면 1753년에도 인구조사를 반대하는 의견이 기록돼있다... / 식민지시절 미국에서도 ... (31-32)
아브라함 드 무와브르(Abraham de Moivre, 1667-1754) .. 우연론(The Doctrine of Chances, 1718) (33)
볼떼르(1694-1778) 그가 숫자 다루는 일에 능했으며, ‘복권정복’에도 성공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3)
아리스토텔레스 .. 갈릴레이 새로운 두 과학에 대한 대화(1638) .. 뉴턴 프리키피아 .. 호이겐스(1629-1695) .. (36)
2 수의 토대 위에 지어진 새로운 세상 39
- 케플러의 조화의 법칙 41 / 갈릴레오와 운동 법칙 42 / 생명과학에 등장한 숫자: 피는 순환하는가? 44 / 인구 통계학의 최초 적용: 지구는 얼마나 많은 인구를 지탱할 수 있을까? 50 / 보험과 생명표 53 / 숫자의 신세계 56 / 윌리엄 페티 경과 정치 산술 63
갈릴레이의 새로운 두 과학에 대한 대화(1638),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의 실험적인 자연 철학(Some considerations touching the Usefulness of Experimental Natural Philosophy, 1663 ..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의 새로운 천문학(Astronomia Nova, 1609), 타글리아(Niccolo Fontana dit Tartaglia, 1499-1557)의 신과학(La Nova Scientia, 1537) ... (39)
케플러 우주의 조화(Harmonices Mundi, 1619) (41)
갈릴레이의 새로운 두 과학에 대한 대화(1614 쓰고)(1638년 초판) 낙하 실험은 빗면을 굴려서 했다. (42)
뉴턴 프리키피아(1687) (44)
영국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혈액순환 운동 (45-48) [심장운동(De Motu Cordis, "On the Motion of the Heart and Blood" 1628)]
벨기에 의학자 반 헬몬트(Jean Baptiste van Helmont, 1577-1644) ... 식물성장에서 영양문제에 대해 정량적 연구.(48)
이탈리아 과학자 산토리오(Santorio Santorio. 1561-1636) .. 음식섭취와 체중의 관계를 정량적으로 연구.. (48)
양을 측정하는 새로운 기구가 속속 발명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새로운 과학이 얼마나 수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49) [정량계산이다]
레벤후크,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 네덜란드의 현미경학자 (50)
중요한 것은 레벤후크가 스스로 발견한 정자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 지 숫자를 빌려 표현하고자 한 덕에, 셰계 최초로 인구 통계학이라는 수적 과학행위를 기록한 사람이 되었다. (52)
17세기에는 숫자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중요한 최신 산업이 등장한다. 바로 생명보험이다. (53)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1656-1742)가 시작한 조시는 1680년 파리와 런던에서 치러진 장례식 수를 알아내는 거였다. 파리에서 24,441건, 런던에서 20,000건 미만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53)
카스파르 노이만(Caspar Neumann, 1648-1715)이 작성한 한 마을(브로츠와프, 독일어로 브레스라우)의 출생, 결혼, 사망자 수의 도표를 근거로 ... 핼리(Edmond Halley)는 논문 「인류 사망률 추정(An Estimate of the Degrees of the Mortality of Mankind“. 1693)」(원제목은 「인류의 사망률추정: 브로츠와프시의 출생과 사망을 기록한 흥미로운 도표를 기반으로: 연금 보험의 금액 확정을 위한 연구」)을 썼다. (55)
그라운트(John Graunt, 1620–1674)의 사망표에 관한 자연적이고도 정치적인 제고찰(Natural and Political Observations Made upon the Bills of Mortality, 1662) (58)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1623-1687) ..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1676년경 작성, 1690년 출간) (66)
3 수비학과 신비주의 철학: 과학자들, 수를 가지고 놀다 69
- 이름 속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는가?: 이름을 숫자로 바꾸는 법 71 / 과학 속의 수비학 75 / 수비학적 미신의 반대자들 78 /
사실 뉴턴은 숫자의 신비한 속성에 매료된 사람이었다. .. 솔로몬 성전의 크기와 구조를 계산한 내용으로 3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71)
「요한 계시록」이나 「다니엘서」에는 숫자에 대한 언급이 잦다. “일곱천사”나 “일곱나팔” (71)
페트루스 분구스(Petrus Bungus, Pietro Bungo, ??-1601)의 수의 신비(De mystica numerorum significatione, 1584) 수의 불가사의(Numerorum mysteria, 1591)는 카톨릭신자로서 루터의 이름에서 666을 찾았다. (72-74)
레오 10세의 이름을 짐승을 의미하는 숫자로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74) [분구스는 수를 알지만, 수의 체계를 모르는 또라이 이다 그런 또라이가 그다음에 루터의 신도가 된 스티펠리우스(s.d.)라는 이도 있다.]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도 과학을 수비학에서 찾으려 했다.(77) [지금도 당사주를 믿거나, 주역을 점으로 보는 것은 수비학의 수렁에 빠진 자들이다.]
장도미니크 카시니(Jean-Dominique Cassini, Giovanni Domenico Cassini, 1625-1712) 프랑스 천문학자도 숫자의 환상에 푹 빠진 인물이었다. (77)
카스파르 노이만(Caspar Neumann, 1648-1715)은 수적 미신을 타파하고자 했다.(78)
4 이성의 시대와 수 81
- 허치슨의 도덕 산술 82 / 헤일스의 정량적 식물학과 동물학 85 / 토머스 제퍼슨: 한평생 숫자에 얽매여 살다 87 / 벤저민 프랭클린과 숫자 96 / 프랭클린과 맬서스 104 / 프랭클린과 숫자, 그리고 천연두 109 /
프랑스 정부 역시 1789년에서 1800년에 이르는 10년간 국가를 운영하는 데 수치 자료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해야가고 있었다. (81)
수의 활용 사례 ..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7?)의 첫 책 미와 덕의 관념의 기원(Inquiry into the Original of our Ideas of Beauty and Virtue, 1725) .. 공리주의의 선구자이다. (82)
사실 헤일스(Stephen Hales, 1677–1761)가 수액(樹液)의 움직임이라는 대단한 발견을 한 것은 행운이었다. (85) [식물생리학].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 세이스 반란 (91) - [제퍼슨은 파리에 머물며 쓴 글에서 그 폭동[세이스 봉기(Shays's Rebellion)]을 이렇게 진단했다. “자잘한 폭동[봉기]이 이따금씩 일어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20년에 한번은 그런 폭동이 제발 일어나기를 바란다.. 애국파와 반란군의 피가 자유의 나무에 쌓인 때를 가끔 벗겨줄 필요가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마방진을 좋아했다.... 종이화폐의 속성과 필요성에 대한 소론(A Modest Enquiry into the Nature and Necessity of a Paper Currency, 1729) . 펜실베니아 가제트(Pennsylvania Gazette) 편집장 (101-102)
프랭클린(B. Franklin, 1706-1790) 인구 증가에 관한 관찰(Observations concerning the Increase of Mankind)(1751년 쓰고, 1755년 출판) . 토머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인구의 원리가 미래의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론 - 고드윈, 콩도르세, 그리고 그 외 작가들에 대한 고찰을 포함하여(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as It Affects the Future Improvement of Society, with Remarks on the Speculations of M.Godwin, M.Condorcet,and Other Writers 1798)
프랭클린(B. Franklin, 1706-1790)은 1736년에 4살짜리 귀한 아들 하나를 잃었다. (111)
프랭클린과 제퍼슨은 숫자에 매혹 당했으며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키는 데 그 점을 십분 활용한 사람들이었다. (115)
5 숫자의 새로운 활용법 117
- 숫자, 그리고 측정 117 / 프랑스인들의 수에 대한 관심: 라부아지에의 정치 산술 120 / 존 싱클레어 경의 스코틀랜드 인구 조사 125 / 피넬의 의학적 숫자들 131 / 루이와 수치적 분석법 / 숫자의 새로운 활용법: 콩도르세와 라플라스가 가져온 혁신 138 /
[프랑스 혁명후(19세기초) 숫자에 의한 통계, 도표등의 발달은 무슨 의미일까? 이런 통계 즉 실증적 정량화를 통한 학문의 방향을 잡은 것은 라브와지에로 시작하여 피넬, 루이 꽁도르세, 라쁠라스, 게리, 끄뜰레(벨기에인) 등 프랑스 학자들이다. 21세기에 초에 우선 떠오르는 것은 통계를 도표로 이용한 설명은 21세기 자본론의 삐께띠도 마찬가지 이다.]- [꽁뜨의 실증도 이 산물이고 맑스의 과학적(통계의 형이상학적 해석)도 이 19세기 숫자에 대한 의미규정의 산물이 아닐까?(48MKG)]
역사가들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시기에 숫자를 활용하는데 두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첫째 특징은 모든 것을 “계량하고자 하는 시대정신” .. 둘째 특징은 온갖 측정이 고도로 정밀해졌다는 점에서 “정밀의 시대” .. (117)
모든 것을 계량화하는 시대정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전국적인 인구조사가 드디어 실행되었다는 사실이다. .. 미국 1790년에 .. 스웨덴은 1792년에 네델란드는 1795년에..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1797년에 ... 영국에서는 1801년에 (118)
프랑스 정부는 1800년에 통계국을 신설하고 프랑스 국토 거주자들 대상으로 하는 인구조사를 시행하라는 법령을 발표했다. (118)
이 시기에 측정의 정밀도가 급상승한 증거로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천문학에서] 튀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 .. 플람스티드(John Flamsteed, 1646-1719) .. 18세기 동안 이 분야의 정밀도는 무려 200배나 증가하였다. (119)
라브와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가 주장한 새로운 화학의 근본원칙 중 하나는 숫자를 활용한다는 것인데, 특히 요즘 우리가 질량보존의 법칙이라 부르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120)
라부아지에의보고서는 국민의회의 요청에 따라 1791년에 라부와지에, 라그랑주 및 제자들에 의한 정치산술의 다양한 연구 모음집(파리 1791)이라는 제목의 책 1장으로 출판되었다. (122) [프랑스 위키에서 그에게 경제학자라고 한 이유가 있군.]
라부아지에는 보고서의 마지막에 제안을 하나 덧붙였다. 프랑스의 인구, 농업, 상업에 관한 자료들을 정기적으로 수집할 통계국, 즉 자료와 수치를 관리하는 상임 사무국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 그는 부처를 설립하여 사실 자료들을 쌓아나가면 “정치경제학이라는 과학”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4)
싱클레어(John Sinclair.1754-1835)경이 남긴 스코틀랜드 통계 기록은 18세기말이 되어서 국가와 사회에 관한 수치들이 얼마나 관심이 점증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례이다. (125) [그의 저작 스코틀랜드 통계 기록(Compte statistique de l'Ecosse(21 vols., 1791-1799). ]
필리프 피넬(Philippe Pinel, 1745-1826)은 “정신이 이상한”자들을 치료하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꾼 공로로 의학사에 길이 기억되는 인물이다. .. 피넬은 그 어떤 개인이라도 강제적 억압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 혁명의 의무는 모든 개인을, 설령 정신이상자라 하더라도, 억압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131)
정신착란에 관한 의학 철학적 논고(파리 1809)..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현명한 자는 자신의 치료법을 자랑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비판한다” (132)
보스턴의 의사 조지 파크먼(George Parkman, 1790(9)–1849) ...(133)
루이(Pierre-Charles-Alexandre Louis, 1787-1872)는 “수치 분석법”이라는 용어를 씀 (134)
역사학자들은 루이를 “의학 통계학의 아버지” 내지는 “임상통계학의 개척자 중의 한사람”으로 부른다. (134)
루이는 통계적 증거를 통해 방혈이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증명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의학계에 도전장을 던진 입장이 되었다. 그의 주적은 고명한 의학박사 브루세(Francois Broussais, 1772-1838)이였다. 1820년대 말 브루세이는 한해에만도 10만마리의 거머리를 사용할 정도 였다. (136)
루이 제자로서 미국의사인 홈즈(Oliver Wendell Holmes, 1809-1894) (136)
루이 연구는 엘리샤 바틀렛(Elisha Bartlett, 1804–1855)의 의학의 철학에 관한 시론(An sssay on the philosophy of medical science, 1844) (137)
루이는 비판자 중의 하나인 크뤼베이이에르(Jean Cruveilhier, 1791-1874)에게 보낸 편지에서 “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험은 유사한 다른 사계들과 연결하여 판단하지 않는 한 그 자체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연결하는 방법은 숫자를 헤아리는 것입니다.”(138) [크뤼베이이에르(Jean Cruveilhier, 1791-1874): 프랑스 의사, 외과, 해부학, 병리학자. 인간 신경체계의 해부학(Anatomie du systeme nerveux de l'homme, 1838) ]
꽁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1743-1794).. 인간 정신의 진보에 대한 역사표의 초고(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es de l’esprit humain, 1795 (posthume) (139)
라쁠라스(Pierre-Simon Laplace, 1749-1827) .. 천체역학(Traite de Mecanique celeste1, 1799-1825) ... 확률에 대한 이론적 분석(The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es. 1812) (139)
6 통계의 범람 141
- 넘쳐나는 도표들 141 / 범죄에 대한 게리의 연구 144
19세기 첫 몇십년간, 특히 프랑스에서, 숫자에 대한 관심은 엄청난 수준으로 끓어올랐다. 한 역사학자는 이들 두고 숫자의 범람이라고 까지 표현했다. (141)
조셉 푸리에(Jean Baptiste Joseph Fourier 1768-1830) (142)
게리(Andre-Michel Guerry, 1802-1866)는 범죄자료를 연구하던 중에 프랑스에서 매년 벌어지는 다양한 범죄에 일정한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 이 숫자들을 분석해보았더니 기존의 일반적인 추측과는 정반대로 교육 수준이 높은 지역이 범죄 발생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게리는 1833년에 이 발견을 프랑스의 도덕 통계학 시론(Essai sur la statistique morale de la France, 1833[을 출판했다]. (144)
프랑스에 대해 연구하던 헨리 리튼 불워 (Henry Lytton Bulwer 1801–1872)[영국 자유당 정치가]가 자신의 책에 게리의 지도와 도표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144)
게리의 작업에서.. 영어로 번역하면 ..“도덕적 통계”정도로 번역되는 표현 ... 게리가 분석한 통계는 알콜 중독, 매춘, 살인, 자살, 대물 파괴 등 사회적 일탈행위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언젠 이언 해킹(Ian Hacking, 1936-)이 지적한대로 “부도덕 통계”가 더 적절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145)
게리가 유독 관심을 기울인 범죄는 자살이었다. (당시에는 자살이 범죄로 여겨졌다) ... “젊은이는 목을 매고, 중년에 이른 자들은 보통 총으로 머리를 쏘며, 그보다 더 늙은 자들은 어릴때 습속이 재발하여 다시금 매달려 죽는 편을 선호한다” (146) [현 우리나라 신문에 오르내리는 자살의 유형은 어떠할까? - 뒤르껭은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의지박약), 숙명적 자살 등 4가지로 구분하였다. ]
게리가 발표한 둘째 통계연구의 제목은 영국도덕 통계와 프랑스 도덕 통계( Statistique morale de l'Angleterre comparee avec la statistique morale de la France, d'apres les comptes de l'administration de la justice criminelle en Angleterre et en France, etc., 1864) (147)
뻬레(Jacques Perret, 1906-1992)는 1955년[4월 16일] 영어 컴퓨터를 프랑스어 Ordinateur로 번역하다. (148)
게리의 자살에 대해 심도 싶은 연구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밀 뒤르껭은 그 유명한 자살론의 고전을 집필할 때 게리를 인용하지 않았다. (148) [뒤르껭(David Emile Durkheim, 1858-1917) 현대 사회학의 기초자. 자살론(Le Suicide, 1897) ]
7 완숙기에 다다른 통계학: 케틀레의 시대 149 [께뜰레 Quetelet],
- 숫자, 수의 과학, 그리고 조이스의 『율리시즈』 149 / 께뜰레, 그리고 숫자로 가득한 세상 153 / 범죄 처리 예산 158 / 통계의 신뢰성 171 / 콩트 대 께뜰레: 사회 물리학이냐 사회학이냐? 174 / 께뜰레는 무엇을 성취했는가? 179 /
1933년 .. 당시 미국 지방법원 판사였던 존 울시가 “율리시즈는 미국에 들어와도 좋다” 고 딱 잘라 말하며 책에 걸렸던 판매금지 조치를 해제했던 것이다. (150)
울시 판사가 상상한 인물, “평균적인” 남자나 여자라는 인물을 최초로 떠올린 사람은 아돌프 께뜰레(Adolphe Quetelet, 1796-1874)였다. 19세기를 통털어 가장 혁신적이고 영향력있는 사상가 중의 하나... (153) [맑스(Karl Marx, 1818-1883)가 자본론(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 1867)에서 노동하는 인간을 떠올린 것은 평균적인(보편적인)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보다 가치라는 문제에서 상품의 모든 가격의 척도가 되는 화폐를 넘어서 자본이라는 가치도 평균(보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
그의 영향력을 찰스 다윈, 칼 맑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이들의 수준엔즌 미치지 못했지만 우리 인간의 사고방식을 크게 바꾸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평균적인 인간” 같은 용어를 쓸 때 그 뒤를 따르는 셈이다. (154)
께뜰레는 벨기에 천문대의 건설 주역이었다. .. 파리왕립천문대에 파견을 갔으며 .. / 그는 라플라스, 푸와송, 푸리에와 교유할 기회를 얻었다. .. 오늘날 그는 정량적 사회과학 또는 통계에 기반을 둔 사회학의 아버지라 불린다.(156)
께뜰레가 발견한 것 중 가장 놀랄만한 것은 범죄의 규칙성 문제였다. ..“한해를 마칠 때 우리는 다음해에도 똑 같은 범죄들이 똑같은 비율로 이루어지리라는 슬픈 전망을 할 수 있다.”(158)
께뜰레가 1831년 펴낸 책 다양한 연령대의 범죄 경향에 관한 연구 ... (159)
사회를 분석하는 이 새로운 과학은 갈릴레이나 뉴턴의 과학과는 좀 다른 것이 분명했다. 결정론적 법칙이 아니라 통계적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161)
빌레르메(Louis Rene Villerme, 1782-1863)
“사회가 범죄를 예비하니, 죄 지은 자는 그 도구일 뿐입니다.” / 이 정서는 께뜰레의 1842년 작 인간과 그 기능의 발전론: 사회물리학(Sur l'homme et le developpement de ses facultes, ou Essai de physique sociale, 1831(2권), (161)
범죄의 규칙적 발발을 지적한 통계학자는 께뜰레 말고도 또 있었다. 바로 앞장에서 만났던 게리(Andre-Michel Guerry, 1802-1866)이다. (163)
하지만 께뜰레가 방대하고도 자양한 자료원들을 뒤져 여러 정보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실지로 큐칙성을 끌어낸 분야는 딱 3가지, 범죄, 자살, 결혼뿐이다. (166)
께뜰레는 통계학이 두 가지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나는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료로, 다른 하나는 정치가들의 지침으로였다. (172)
그는 모든 인간 행동과 모든 자연 사건에서 수치관계와 법칙을 찾으려고 들었다. .. 극작가의 창조성이고, 다른 하나는 라일락의 개화 시기이다. (173)
내가 아는 한 이 수치 놀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원예학자는 아무도 없다. (174) [적용의 오류에 대한 예가 될 것이다]
께뜰레가 “사회 물리학”이란 말을 선택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것은 이로부터 “사회학”이라는 용어가 발명되리란 점이었다. [“사회물리학”(1831), 사회학(1839)이다.]
꽁뜨(Auguste Comte, 1798-1857)는 께뜰레가 자신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사상을 취한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께뜰레 사상 자체가 매우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꽁뜨는 확률에 바탕을 둔 과학을 경멸했다. 그는 그런 과학은 전혀 정합하다고 보지 않았고, 과학에 확률을 끌어들이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거나 진정하고도 “완전한” 지식이 결여되어 생긴 사건으로 보았다. (176) [통계적 평균치에 의한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삐께띠의 21세기 자본론에서 도표을 활용을 생각해보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 박근혜정부가 (법인세와 누진세 없이) 증세없는 복지을 주장하는 통계에도 이런 기만을 볼 수 있다. 진실을 은폐하는 거짓 통계도 많은데, 그것은 질문 항에 문제가 많다. (48MKI)]
“우연”이든 아니든 궁극의 승자가 된 것은 께뜰레이다. (177) [이 작가는 확률을 측면을 강조하려는 표현인가? 사회학의 승자는 꽁뜨 이지... 이 책의 저자는 몇 가지 점에서 어뚱한 소리를 한다. 앞에서 666이라든지, 다윗의 인구통계라든지.. 게다가 뭐라 이집트의 기록은 과장이라고 별 미친놈의 소리들 다 들어본다(48MKI)]
역사학자들은 보통 자연과학이 사회과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연구하는데,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과 볼쯔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의 경우는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에 영향을 준 사례이니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시어도어 포터(Theodore M. Porter, s.d.)도 이점을 지적한 바 있다. (177)
8 통계, 비판에 직면하다 179
- 칼라일과 차티스트 운동 179 / 디킨스와 통계 180 / 삼라만상의 진흥을 위한 진흙안개협회 182 / 죽음의 계산 책 183 / 서신으로 주고받은 경멸감 186 / 사실과 수치: 『어려운 시절』이 주는 메시지 188 /
그런데 동시에, 인간사를 논하는데 숫자가 끼어드는 것에 질색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79)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은 차티스트 운동가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믿었으며, 공식 통계라는 것이 사람들의 실제 상황을 왜곡해 보여주는 만큼 정부는 개혁을 저지하고자 통계를 사용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180)
통계가 인간성을 빼앗고 있다는 신념은 칼라일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곧 칼라일 자신보다도 훨씬 강력한 목소리가 등장하여 그의 비판을 더 크게 주장해 줄 것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유명 작가였다. (180)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가 통계를 반대한 까닭은 두 가지였다.정치 지도자들이 런던의 빈민과 공장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 사회적 입법을 막아서면서 그 근거로 통계를 마구 들인 댄다는 것 .. 게다가 통계는 원래가 개개인보다 평균에 집중하는 법이라 인간의 특질을 비인간적인 숫자의 나열로 환원함으로써 인간성을 말살한다고 주장한다. (181)
통계에 대한 비난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금언은 마크 트웨인이 디스레일리 경의 격언이라며 인용한 말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는데, 거짓말, 지독한 거짓말, 그리고 통계이다” 디즈레일리의 소설이나 연설문이나 편지 어디에서도 이 경구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은 자그만 흥밋거리다. (182)
디킨스는 협회(영국과학진흥협회)를 패러디한 글의 제목을 “삼라만상의 진흥을 위한 진흙안개 협회의 첫모임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라고 지었다. 세 명의 과학자 “코골기교수, 졸기 교수, 헐떡거리기 교수”의 주장... (183) [디킨즈의 풍자는 사실에 대한 묘사일 수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들 중에서 코골기의원(이완영), 졸기의원(김성태, 김무성 등), 헐떡거리기의원(누드보는 심재철, 권성동)이 SNS에 자주 오른다. ]
디킨스와 몰리(Henry Morley, 1822–1894)는 언제나 비율보다는 개인의 사정에 초점을 맞췄으며, 실제로 그런 위험한 기계에 다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84)
디킨스는 편지에서 자신은 “수치와 평균치들을 보느라 다른 것은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의 적”이라 명확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밝혔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시대의 가장 큰 악이요 사악한 자들의 대변인”이라는 것이다. (186)
디킨스(1812-1870)가 1854년에 출간하여 토머스 칼라일에게 바친 소설 어려운 시절(Hard Times: For These Times, 1954)은 가차없이 냉혹하고 씁씁한 이야기다. (188)
이처럼 디킨스는 숫자, 평균치, 통계에 기반을 둔 가치 체계를 거부했다. .. 두뇌의 법칙은 가슴의 법칙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93)
9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195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
- [생애: 전반부] 195 / 위생 개혁 사업: 숫자라는 증거 205 / 통계를 향한 열정 213 /
[이 책에서 흥미있는 부분은 나이팅게일 부분이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없던 시절에, 질병에 대한 예방법도 없는 시절에 경험적 사실들을 모와서 현실의 상태를 바꾼 위대한 여성이다. 소명을 받들어 독신으로 살았으며, 크림반도 전장에서 전투보다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도표로 만들었다. 그 자신의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여성위원회를 조직하였다. ]
숫자의 사회적 활용에 관한 책에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한 장을 차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녀가 통계를 활용한 모양을 보면 19세기에 공공 보건과 사회 개혁의 측면에서 숫자의 실용성이 갈수록 인정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나이팅게일 자신이 수치정보를 포장하는 방법을 개선시킨 공로가 있다.(195)
다재다능한 이 여인은 또한 신비주의자였다. 그녀는 일생동안 여러차례 신을 영접했노라고 말했다. 그녀가 최초로 신을 영접하고 부르심을 받은 것은 열여섯 살때의 일로, 후에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이 나에게 ‘나를 섬기라’ 말씀하셨다”(197)
1856년 7월, 크림 전쟁이 끝나 영국으로 귀국한 나이팅게일은 온 영국이 자신을 영웅처럼 받드는 통에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 그녀는 영향력을 활용해 군대의 위생 상황을 개선하기로 마음먹었다. (205)
1856년 가을의 한 저녁모임에서 나이팅게일은 윌리엄 파(William Farr, 1807–1883)를 만났다. (206)
1860년 런던에서는 세계 통계대회가 열렸다. 병원통계 양식을 통일하자는 나이팅게일 제안 .. 통계학자들은 그녀의 계획에 열렬히 찬성했고... 협회가 받아들인 최초의 여성이었다.(210)
나이팅게일은 께뜰레는 최초로 만난 순간부터 경외하기 시작했다. 1872년 그녀는 께뜰레로부터 1869년판 사회 물리학을 선물 받고는 수없이 반복해 읽었다. (212) 나
첫째로 그녀는 통계를 통해 인류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214)
더 중요한 것[둘째]은, 통계를 통해 신이 인간에게 맺는 관계를 밝힐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215)
1891년 그녀는 우생학의 아버지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에게 보낸 편지 .. (219)
*에필로그 221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1791-1871)가 설계한 차분기관과 해석기관.. (222)
미국은 1890년에 .. 천공카드(punched cards) (222)
홀러리스(Herman Hollerith, 1860–1929)는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이것이 다른 두 개 회사와 합병하여 이룬 것이 오늘의 IBM이다. (224)
* 감사의 말 225
일레인 스토렐라, 피터 벅, 크뤼거(Lorenz Kruger, 1932-1994), 레이니 다스톤(s.d.), 테드 포터(s.d.), 통계학자 스티븐 스티글러(Stephen M. Stigler, 1941-), 해킹(Ian MacDougall Hacking, 1936-). [여기까지 저자가 쓰고 죽은 것 같다.]
*옮긴이의 말 228
사턴(George Sarton, 1884–1956)의 수제자인 코언(I. Bernard Cohen, 1914–2003).
1962년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김동원(s.d.) 화학전공 KAIST에서 공학박사.
*주 232
*참고문헌 241
*찾아보기 253
(48M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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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s.d.) 화학공학전공: 현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의 교수. KAIST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KAIST)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김명남, KAIST에서 화학 전공했다. 김동원의 제자.
피터 벅(s.d.) 하버드 대학. [[코언의 유고 수의 승리(The Triumph of Numbers: How Counting Shaped Modern Life 2005)를 정리한 동료 또는 후배 교수? ]]
리처드 H G 패리(s.d.), 캠브리지 대학, 공학부 토질역학 전문가. 호주에 있다? 피라밑 운반연구: 나무로 된 요람으로 밀어 올렸을 것이라.. 침목으로는 60-80명이 필요한데 요람모양 굴림대로는 16-20명이 족하다. - 일본 오바야시 그룹이 이것을 실험으로 증명.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elēs,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에서 탄생. (플라톤 나이 3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50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오브리(John Aubrey 1626–1697) 영국 골동품 수집가, 자연철학자, 작가. 그는 인구학자인 그라운트에 대해 기록했다.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1791-1871) 영국 수학자, 철학자, 발명가, 기계공학자. '프로그램이 가능한 컴퓨터' 개념의 시초자이다.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다.
바틀렛(Elisha Bartlett, 1804–1855) 의학박사, 교수, 시인 의학의 철학에 관한 시론(An sssay on the philosophy of medical science, 1844).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통계역학(확률개념 도입) 건설자의 한 사람이며, 볼츠만방정식을 도입하여 맥스웰볼츠만분포를 확립했다.
보일(Robert Boyle, 1627-1691) 아일랜드 물리학자, 화학자. 실험적인 자연 철학(Some considerations touching the Usefulness of Experimental Natural Philosophy, 1663(Considerations sur l'utilite de la physique experimentale)
튀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 덴마크 천문학자 1576년 우라니엔보리 천문대, 스티에르네보르 천문대 설립, 그 수집 자료를 죽을 때 조수인 30살의 케플러(J. Kepler 1571-1630)에게 넘겨주었다.
브루세이(Francois Joseph Victor Broussais, 1772-1838)프랑스 의사, 외과의사
헨리 리튼 불워(Henry Lytton Earle Bulwer, 1st Baron Dalling and Bulwer, Henry Lytton Bulwer 1901-1872) 영국 자유당, 외교관, 작가. France, Social, Literary, Political. 1834 The Monarchy of the Middle Classes. France, Social, Literary, Political, Second Series. 1836 페
트루스 분구스(Petrus Bungus, Pietro Bungo, 1550?-1601) 수의 신비(De mystica numerorum significatione, 1584) 수의 불가사의(Numerorum mysteria, 1591),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 영국의 평론가, 역사가. 이상주의적인 사회 개혁을 제창하여 19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장도미니크 카시니(Jean-Dominique Cassini, Giovanni Domenico Cassini, 1625-1712) 이탈리아출신 프랑스의 천문학자. 1669년 루이 14세의 초청으로 파리 천문대 초대 대장이 되었다.
버나드 코언(I. Bernard Cohen, 1914–2003) 미국에서 과학사 첫 박사학위자. 하버드 대학 과학사 교수. 뉴턴 전공자이다. 아인슈타인이 죽기 전 1955년 마지막 인터뷰를 한자이기도 한다. 뉴턴의 “프리키피아” 입문(Introduction to Newton's Principia, 1971, 과학에서 혁명(Revolution in Science, 1985), 과학과 발견의 선구자들(Science and the Founding Fathers: Science in the Political Thought of Jefferson, Franklin, Adams, and Madison, 1995, 하워드 에이컨(Howard Aiken: Portrait of a Computer Pioneer (History of Computing) 1999, 원고는 2003년인데 죽고 나서 나온 책 - 수의 승리: 통계는 어떻게 현대의 일상을 만들었는가 (The Triumph of Numbers: How Counting Shaped Modern Life, 2005)
꽁뜨(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c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이란 용어는 1839년에 창안하였다.
꽁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1743-1794) 프랑스 철학자, 수학자, 정치가, 계몽기 인물이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대한 역사표의 소묘(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es de l’esprit humain, 1795 (posthume) .
크뤼베이이에르(Jean Cruveilhier, 1791-1874) 프랑스 의사, 외과, 해부학, 병리학자. 인간 신경체계의 해부학(Anatomie du systeme nerveux de l'homme, 1838)
다윗 왕(David, 히브리어: דָּוִד, 아랍어: داود, 전1107 -전1037년)은 이스라엘 왕국의 제 2대 왕으로서 40년간(전1077 - 전1037년) 통치하였다.
찰스 존 허펌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1812-1870) 빅토리아 시대 영국 소설가. 어려운 시절(Hard Times: For These Times, 1954),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 1859),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 영국의 정치가이자 작가. 런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2세에 성공회 신자가 되었다. 법률과 문학을 공부, 그리고 문학에 관심으로 비비안 그레이, 1826를 썼다.
뒤르껭(David Emile Durkheim, 1858-1917) 현대 사회학의 기초자. 사회학 방법의 규칙들(Les Regles de la methode sociologique 1895) 자살론(Le Suicide, 1897), 종교적 삶의 근본형식들(Les Formes ele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 1912)
윌리엄 파(William Farr, 1807–1883) 영국 전염병학자, 통계의학의 창설자. 프랑스에서 루이(Pierre-Charles-Alexandre Louis, 1787–1872)의 강의를 들었다. 1837년에 영국 의학 년보(British Annals of Medicine, Pharmacy, Vital Statistics, and General Science)를 정립했다. 그는 “생명표”(life table)를 작성했다.
플람스티드(John Flamsteed, 1646-1719) 영국 천문학자. 그리니치 천문대(l'observatoire de Greenwich, 1676)의 첫 천문대장이었다.
조셉 푸리에(Jean Baptiste Joseph Fourier 1768-183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샤를 푸리에와 혼동하지 말 것, 열의 분석이론(Theorie analytique de la chaleur, 1822)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명, 미국 정치인, 과학자. 펜실베니아 가제트(Pennsylvania Gazette) 편집장. 특별한 공식적 지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군(軍)과의 동맹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 미국 독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피뢰침, 다초점 렌즈 발명. 종이화폐의 속성과 필요성에 대한 소론(A Modest Enquiry into the Nature and Necessity of a Paper Currency, 1729), 인구 증가에 관한 관찰(Observations concerning the Increase of Mankind, Peopling of Countries, &c)(1751년쓰고, 1755년 출판), 전기작가 레오 르메이(J. A. Leo Lemay, ??-2008)의 The Life of Benjamin Franklin(3 volumes 2005-2008)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78살) 이탈리아의 수학자․천문학자․물리학자. 근대 과학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특히 중력과 운동에 관한 연구에 실험과 수리해석을 함께 사용하여 일반적으로 근대역학과 실험물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자연은 수학적 언어로 씌어진다'라는 주장으로 수학적 합리주의를 주창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대항했다.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 영국 인류학자. 우생학자. 찰스 다윈은 그의 배다른 외사촌 형이었다. 1892년 지문을 이용하는 범죄 연구로서 Finger Prints, 1892도 있다.
게리(Andre-Michel Guerry, 1802-1866) 프랑스 통계학자, 법률가, 그의 도덕 통계학(statistique morale)의 기초자이다. 이학문은 범죄학, 사회학, 사회과학들 등의 기원이다. 프랑스의 도덕 통계학 시론(Essai sur la statistique morale de la France, 1833, 영국도덕 통계와 프랑스 도덕 통계( Statistique morale de l'Angleterre comparee avec la statistique morale de la France, d'apres les comptes de l'administration de la justice criminelle en Angleterre et en France, etc., 1864)
그라운트(John Graunt, 1620– 1674) 영국의 첫 인구학자. 그의 본래 직업은 바느질 도구 판매상인(haberdasher)이다. 사망표에 관한 자연적이고도 정치적인 제고찰(Natural and Political Observations Made upon the Bills of Mortality, 1662)
헤일스(Stephen Hales, 1677–1761) 영국 목사, 식물학, 공기화학, 생리학자. 특히 식물생리학. Vegetable Staticks (1727), Haemastaticks (1733). ,
해킹(Ian MacDougall Hacking, 1936-) 카나다 철학자. 과학철학 전문가. The Emergence of Probability (1975), The Taming of Chance 1990), Scientific Revolutions (1990) Rewriting the Soul: Multiple Personality and the Sciences of Memory (1995)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1656-1742) 영국 천문학자, 기상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핼리 해성의 주기를 발견하였다. 1705년, 혜성 천문학 총론(Synopsis Astronomia Cometicae, 1705)을 발간. 1456년과 1531년, 1607년, 1682년에 나타났던 혜성이 모두 같은 혜성이라는 주장을 제시하고, 이 혜성이 1758년 다시 나타날 것이라 예측하였다. 예측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이 혜성은 핼리 혜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는 영국의 의학자, 생리학자이다. 심장운동(De Motu Cordis, "On the Motion of the Heart and Blood" 1628)
반 헬몬트(Jean Baptiste van Helmont, 1577-1644) 벨기에 의학자, 화학자. 동물열이 음식물 발효과정 .. 식물성장에서 영양문제에 대해 정량적 연구...
허쉬먼(Albert Otto Hirschman, Otto-Albert Hirschmann, 1915–2012) 독일 베를린 태생, 유태인 가계, 1933년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미국 경제학자. 경제정책과 정치 이데올로기 전공. (Exit, Voice, and Loyalty: Responses to Decline in Firms, Organizations, and States, 1970( Exit, voice, loyalty. Defection et prise de parole, 2011), 열정과 이익: 승리를 거두기 이전의 자본주의를 위한 정치적 논거들(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 Political Arguments For Capitalism Before Its Triumph. 1977)
홀러리스(Herman Hollerith, 1860–1929) 미국 통계학자. 1890년 천공카드(punched cards)로 하는 기계적 계산의 발명가이다.]
홈즈(Oliver Wendell Holmes, Sr, 1809-1894) 미국 작가, 내과 의사, 수필가 시인이다.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7?) 영국의 도덕감각학파. 인간의 심성에는 이기적 경향과는 독립된 이타적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미적 감각과 마찬가지로 정사(正邪)를 판단하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도덕감각이 있다고 설파했다. 공리주의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미와 덕의 관념의 기원(Inquiry into the Original of our Ideas of Beauty and Virtue, 1725)
하위헌스,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천문학자. 토성이 고리를 가진 것을 발견하였으며, 탄성체의 충돌문제, 진자운동을 연구하여 운동량보존법칙, 에너지보존법칙에 해당하는 이론을 전개, 역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하였다.
잭슨(James Jackson, 1777–1867) 미국 내과의사. 홈즈(Oliver Wendell Holmes, Sr, 1809-1894)의 스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미국의 정치인, 3대 미국 대통령(재임 1801-1809),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이다(1776년).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독일의 천문학자. 새로운 천문학(Astronomia Nova, 1609), 우주의 조화(Harmonices Mundi, 1619)
쿠푸(Khufu et Khafre, Χέωψ 재위:기원전 2589년-기원전 2566년)는 이집트 제4왕조의 파라오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건설자이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유물을 남긴 쿠푸 자신의 유물로는 7.6cm의 작은 상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이름의 뜻은 "크눔으로부터 보호받다"이며, 마네토의 연대기에는 수피스 1세로 되어있다.
크뤼거(Lorenz Kruger, 1932-1994) 독일 과학사가, 과학철학자.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 미국 물리학자, 역사가, 과학철학자.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라그랑쥬(Joseph Louis, comte de Lagrange, en italien Giuseppe Lodovico de Lagrangia, 1736-1813) 이탈리아 수학자, 역학자, 천문학자.
라쁠라스(Pierre-Simon Laplace, 1749-1827)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천체역학(Traite de Mecanique celeste1, 1799-1825) 확률에 대한 이론적 분석(The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es. 1812)
라브와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1794) 프랑스 화학자, 철학자, 경제학자. / 1772년 10월 라브와지에는 렌즈로 태양열을 모아서 납 조각을 태웠다. 남은 납 재의 무게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18세기의 화학자들이 인정하던 '연소'이론(플로지스톤 이론)과 모순이다.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 네덜란드의 현미경학자·박물학자. 포목상(상업)에 종사하면서 렌즈연마술, 금속세공술 등을 익혀 확대율 40∼270배의 현미경을 만들었다. 직접 제작한 현미경이 400개 이상이다. 자신의 현미경으로 원생동물·미생물 등을 관찰하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생물이 있음을 밝혔다.
루이(Pierre-Charles-Alexandre Louis, 1787-1872) 프랑스 의사. 몇몇 염증성 질환에서 방혈의 효과와 그리고 폐렴의 치료에서 구토제와 발포제의 효과에 대한 연구(Recherches sur les effets de la saignee dans quelques maladies inflammatoires, et sur l'action de l'emetique et des vesicatoires dans la pneumonie)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 영국의 인구통계학자, 정치경제학자. 영국 왕립 학회 회원. 인구의 원리가 미래의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론 - 고드윈, 콩도르세, 그리고 그 외 작가들에 대한 고찰을 포함하여(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as It Affects the Future Improvement of Society, with Remarks on the Speculations of M.Godwin, M.Condorcet,and Other Writers 1798)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수학자. 파동설을 이용.
모세(Moise) 야곱의 후손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떠남 - 모세 이집트 지방행정장관[프로이트의 견해] 그와 언약의 궤를 보호하는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민족이 아니라 이집트 근위대일 것이다.
아브라함 드 무와브르(Abraham de Moivre, 1667-1754) 프랑스 출신의 영국 수학자. 위그노교도였기 때문에 1685년 낭트 칙령의 폐지에 따라서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 복소수에 관한 '드무아브르의 정리', 확률론에 관한 '드무아브르ㆍ라플라스(de Moivre-La place)의 정리' 따위로 유명하다. 우연론(The Doctrine of Chances, 1718)
가스파르 몽주(Gaspard Monge, 1746-1818)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사영기하학(기하화법)의 발명자이다
몰리(Henry Morley, 1822–1894) 영국 문학 작가. 교수. 디킨즈가 발간하는 잡지, 가정의 말들(Household Words)지와 한해 내내(All the Year Round지에 글을 썼다.
나폴레옹(Napoleon Ier, Napoleon Bonaparte, 1769-1821) 프랑스 초대 황제. 1798년 이집트 원정.
카스파르 노이만(Caspar Neumann, 1648-1715) 독일 목사, 신학자, 해브류 언어 교수, 노이만이 작성한 한 마을(브로츠와프, 독일어로 브레스라우)의 출생, 결혼, 사망자 수의 도표를 근거로 핼리(Edmond Halley)는 논문 「인류 사망률 추정(An Estimate of the Degrees of the Mortality of Mankind“. 1693)」을 썼다. 원제목은 「인류의 사망률추정: 브로츠와프시의 출생과 사망을 기록한 흥미로운 도표를 기반으로: 연금 보험의 금액 확정을 위한 연구」이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85살) 영국 물리학자 수학자.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 영국 간호사, 작가, 통계학자이다. 성공회의 성인이기도 하며, 성공회에서는 8월 13일을 나이팅게일의 축일로 지키고 있다.
파크먼(George Parkman, 1790–1849), 미국 의사, 사업가, 프랑스 의사인 피넬의 제자. .
뻬레(Jacques Perret, 1906-1992) 프랑스 문헌학자. 라틴전공, 문법으로 교수자격 통과 또한 카돌릭 신학자이기도 하다. 1955년 4월 16일 영어 컴퓨터를 프랑스어 Ordinateur로 번역하다.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1623-1687) 영국의 경제학자. 처음엔 의학을 공부. 뒤에 경제학에 열중. 1649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 중농주의 선구자이며 노동가치설 주장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1676년경 작성, 1690년 출간). 아담 스미스와 흄에게 영향을 주었다.
필립 삐넬(Philippe Pinel, 1745-1826) 프랑스의 의사, 현대 정신의학의 시조이다. 정신적 이상에 관한 철학적 의학론(Traite medico-philosophique sur l'alienation mentale, 1801)
포터(Theodore M. Porter, s.d.) 미국 과학사가. 통계적 사상의 발흥 1820-1900(The Rise of Statistical Thinking, 1820-1900), 수의 신뢰(Trust in Numbers: The Pursuit of Objectivity in Science and Public Life), 칼 퍼어슨(Karl Pearson: The Scientific Life in a Statistical Age, 2004)
랑베르 아돌프 자크 께뜰레(Lambert Adolphe Jacque Quetelet, 1796-1874) 벨기에 수학자, 천문학자, 박물학자. 통계학자. 근대 통계학을 성립시킨 사람은 벨기에의 천문학자 인간과 그 능력의 발전에 관하여. 즉 사회물리학(Sur l'homme et le developpement de ses facultes, ou Essai de physique sociale, 1831(2권),
산토리오(Santorio Santorio. (라) Santorius. 1561-1636) 이탈리아의 의사. 정밀기구들을 처음으로 의술시행에 사용. 음식섭취와 체중의 관계를 정량적으로 연구.
사턴(George Alfred Leon Sarton, George Sarton, 1884–1956) 벨기에-미국 화학자. 과학사 학문 창설자. 그의 수제자가 이 책의 저자 코언이다.
싱클레어(John Sinclair, 1754-1835) 스코틀랜드 농업학자, 통계학자. 스코틀랜드 통계 기록(Compte statistique de l'Ecosse(21 vols., 1791-1799). 아담스미스의 친구이며 제자.
찰스 피아지 스미스(Charles Piazzi Smyth,1819–1900) 스코틀랜드 왕립천문학자. 이집트 피라밑 연구자. 수의 신비를 연구했다(수비학자). 대 피라밑이 인류에게 주는 유산(The Our Inheritance in the Great Pyramid, 1864)(The Great Pyramid: Its Secrets and Mysteries Revealed, 다른 제목, 판본이 여럿이란다)
스티븐 스티글러(Stephen M. Stigler, 1941-) 1982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1911-1991)의 아들이기도 하다. 스티글러는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 캠퍼스)에서 통계학 박사학위. 시카고 대학 통계학과 교수이자 국제통계협회(International Statistical Institute; ISI) 회장. 저서로는 『통계학의 역사: 1900년 이전까지의 불확정성의 측정』(1986) 『탁자 위의 통계학: 통계학적 개념과 방법의 역사』(1999) 등이 있고, 편저로는 『19세기 미국 수리통계학사』(1980) 『바하두르의 추정이론 강의』(2002)
타글리아(Niccolo Fontana dit Tartaglia (≪ Le Begue ≫), 1499-1557) 이탈리아 수학자.신과학(La Nova Scientia, 1537)
투즈(Adam Tooze, 1967) 영국 역사가. 예일대 교수. [유대계?] 1900-1945년 사이 통계와 독일 상황(Statistics and the German State, 1900-1945: The Making of Modern Economic Knowledge, 2001)
빌레르메(Louis Rene Villerme, 1782-1863)는 프랑스 의사, 사회학의 선구자중 한사람이다. 노동의학의 개척자이다.
볼떼르(Voltaire, 1694-1778) 그가 숫자 다루는 일에 능했으며, ‘복권정복’에도 성공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울시(John Munro Woolsey, 1877–1945) 뉴욕주 연방판사. 조이스의 작품 “율리시즈는 미국에 들어와도 좋다” 고 딱 잘라 말하며 책에 걸렸던 판매금지 조치를 해제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율리시즈(Ulysses,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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