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지치기
지난 3월에 저희는 대구에서 줄장미 묘목을 10여그루 사다가 옮겨 심었고
그 사이에다 찔레꽃을 가까운 산에서 파내어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로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 주었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잘라 내는게 아까와
기어이 그냥 두고 말았습니다. 살아나겠지... 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니 끝이 시들시들해 지는게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바로
그때라도 과감하게 잔 가지들을 쳐주는 게 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지들이 아까와 겨우 흉내만 내었습니다. 4월말이 되자 나무들이 본격
적으로 말라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새순이 한창 돋느라 많은 수분과 영영
분이 필요하였는데도 미처 활착하지 못한 뿌리들은 그 필요들을 감당하기
에 너무나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아이구야!'하며 미련스럽게 남
겨 두었던 가지들을 대부분 뭉터기로 잘라 내었지만... 지금 대부분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뿌리까지 타들어 가 버린 것입니다.
이 일은 저에게 지난 저의 미련스러웠던 삶들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예
수 그리스도를 제 인생에 모셔 들이고 저는 새로운 인생으로 거듭태어 났
었습니다. 바로 그 때 주님께선 저의 삶의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죄들을 깨
닫게 하셨습니다. 거짓, 미움, 증오감, 부정직, 무기력, 좌절... 저는 이 따위
것들을 쓸어서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미련을 두고 아까와
남겨 놓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야- 싶었던 단 몇권의 책들, 음반,
그림들...
그러나 바로 그것들이 저의 영혼을 조금씩 오염시키고 감각을 마비시켜
가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그때라도 그 모든 것들을 아얘 불 태웠
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없앴지만, 나머지 조금은 숨겨놓았습니
다. 여전히 자극적인 내용의 스포츠신문에 마음이 빼앗기고 있었고, 헛된
가치관의 TV, 영화에 미련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의 영적 건강이 조금씩 피
폐해져 가고 마침내 말라 비틀어 죽기 직전에야... 그 찌꺼기들을 향해 분노
를 품고 꺼집어 내어 불태우고 잘라 내었습니다. 그렇게 늦게서야... 말입니
다.
하나님께서 '그건 내가 싫어한다'고 하는 것은 아깝더라도 과감하게 잘라
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 대신에 훨씬 가치있고 튼튼한 새로운 순(筍)이
돋아 오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육감적인 즐거움
과 만족들을 과감히 잘라내지 않으면 이러한 새로운 차원의 순(筍)은 결코
돋아 오를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이상한 그림의 싸구려 잡지와 무가치한
노래 테잎들과 사탄적인 비디오, 영화를 과감하게 우리의 삶에서 추방하지
못합니까?
그러고 있는 사이, 우리의 영적 건강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
다. 그러다 마침내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
-국민일보- 예화설교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