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정이 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육갑을 집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바람은 마치 어떤 안도감이었다. 3차 법정이 지난다. 술을 엄청마셨다. 여관생활 3일(미쳤지)을 끝내고 이제서야 시골에 도착한다. 먼저, 다음 재판에는 현재의 재판장이 아닌 다른 판사로 변경될 것이란 정보가 있었다. 인사이동이라는 것이다. 상당히 혼란스런 느낌에 휩싸였다. 원래 복잡한 구조에 묘미를 더하는 팔자라지만 매우 아쉽다. 그대로 진행이 되었으면 좋겠으나 핵심이 터지지 않은 요인에서는 둔탁한 여운이다. 여하튼 매우 감사하고 서운하다. 가시더라도 좋은 곳으로 옮기길 기원한다. 재판의 진행자나 반대 피차 역시 자유로울 수 없겠으나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싶지 않은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아홉바우 구암, 장부다리식당. 젊은 여주인은 시를 무척 좋아한다. 소석과 함께 점심을 하고 시골로 돌아왔다. 암자와 큰절을 경유 한 해의 마무리를 털어버릴 예정이었는데 행진은 석연치 못했다. 3박4일, 근래 보기 드문 외출. 그 동안 우두커니 집을 지켰을 우체통에는 편지가 있었다. 고등학교 총동문, 재판 직후라서인지 매우 뜻밖이다. 곧 싸이트도 재개장한다고 했다. 졸업앨범도 챙기지 못한 최종학교. 속이 상했는지 한림선생님은 인명사전의 허접스레기에 중졸이라고 표시해 버렸다.
바람처럼 떠도는 행각에서 늦게라도 동문회(싸이트)에 발길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이다. 동문의 편지를 받던 그날, 점심 때 선생의 말씀을 옮겨본다면. 공자께 여느 제자가 덕에 대해 묻노라니 "덕"이란 북극성과도 같다고 하시더란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변함없이 오직 그 자리..이에 정곡을 좀더 쉽게 구체적으로 청하는 제자에게 이르시길 "관(寬)"이라고 했단다. 너그러움의 총괄이랴. 자비존인. 자기를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그 의중에서 상대의 의향을 살피고 배려, 불만과 마찰이 없는 원만한 관계를 이루라는 가름침이리. 남에게 내세울 것도 없다지만 그 덕성에서조차 형편이 말이 아닌 자신을 떠올리면 부끄럽기 그지 없다.
잠시 한눈을 팔며 뉴스에서 이것저것 조합해 본다. 지금은 남과 북이 대치도 모자라 최고의 긴장관계를 발표했고, 나라 안은 빈부의 격차 자파우파 친북반북 반목과 차별 분리 대결 그 구도가 첨예하며, 사회는 시끄럽고 가치가 하락하니 껍데기가 개판을 치는 그 난장이 주도하는 몹시 불안한 시류이다.
주말과 휴일을 전전긍긍하다, 법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그것은 엊그제 있었던 3차재판의 기록을 열람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허탕을 친다. 형사과 계장석쯤에 있는 담당자는 20일 넘어 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고소인이 누구일까. 그가 확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초기 파출소에 출서할 당시 나와 L씨, H씨, P씨 그렇게 4인밖에 없었는데 고소인 대처된 J씨는 언제 신고를 했을까? 신고를 한 것일까, 신고를 하라고 불렀던 것일까. 그 정확한 사실은 법무관을 통해 다시 검토할 것이다.
재판 기록을 알고 싶어한 의도는 법무관과의 나중 통화에서도 특별한 소득이 없었다. 지난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은 이제 다시 재판정에 나와야 할 소지가 없다고 한다. 맥이 풀렸다. 그런데 재판의 기일이 그처럼 늦춰진 이유에 대한 질문도 빠뜨려 버렸다. 자신이 몹시 한심하게 느껴졌다.
변론이 3회가 진행됐음에도 나는 이 사건이 피의자 4명으로 엮인 재판인 줄만 알았었다. 지난해 12월30일 1차 정식재판에서 법무관이 선임되고, 올해 1월 13일에 열린던 2차 변론은 증인 4명의 출석 요청 통과로 간단히 마쳤다. 1월13일에 2차가 있었고 30일에 3차가 있었으니 17일 터울이고, 4차는 한 달가량의 공간을 둔 것이다. 15일, 17일, 1개월, 재판은 더디게 진행 된다. 그것은 이 재판의 종지부를 재빨리 끝내지 않으려는 기색이라고 참조돼야 할 기운이랴.
더불어 3차 정식재판 직전 이 재판(사건/안건)의 실체와 요지를 법무관에게 안달하다시피 물어본즉, 그 한계를 얼버무리며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 공익법무관이 꼭 그처럼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긍동적이지 못하다. 아니 담당판사에게 풍기는 의문과 똑같이 핵심을 피하려는 눈치를 부정할 수 없겠다.
3차 재판이 끝나서야 사건과 연루 재판 상황의 윤곽이 대략 나온 것 같다. 그것도 법원을 들려 질문을 하고, 법무관과 두 차례의 통화 이후 알아차린 대강이다.
담당판사가 내게 호의적이면서도 핵심을 피해간다는 의문이 갈수록 깊어지며, 언급한바 법무관에게 느끼는 의아함이나 매마찬가지다. 나는 이 시점에서 저들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마무리한다. 그런데 조 판사가 인사발령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재판을 잘 치르라는 말을 해줬다. 바뀌는 판사와 지금의 판사에게 치루는 재판은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싶지만 역시 결자해지가 마땅할 것이라는 대의명분도 있겠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 진도가 지루하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해찰이 된다는 혼재된 아쉬움과 그 안타까움.
전반 정세를 살핀다. 밖으로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역 재공습..살상과 충돌은 그치지 않고, 내부 역시나 매우 불안하다. 용산참사의 불행에도 끄덕없는 청와대와 경찰들..앞으로 한 달간 일정의 임시국회..참사자에 대한 정의구현사제단의 추모미사, 집회..기독교계 성명..모레는 불교계의 차례로 이어진다고 했다.
중동이 종교간 대립이라면 국내는 그 갈등이 원만한 양상이다. 역시나 촛불의 힘이 전반을 아우르고 다듬은 소통의 문화를 나았다고 본다. 하지만 안팎의 사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나는 어떤 드라마틱한 결말을 설정하고서 마치 발표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급증에 시달리는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과정은 무상한 것.'
전제와 단정에 급급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다소 안심을 찾아준다.
이쯤 나는 전개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해 잠시 혼란을 느끼고 있다. 과연 어느쪽으로 가야 할까. 싸그리 타진이 돼야 할까, 좀더 고심을 기하며 느린 행보를 택해야 할까. 물론 그 선택의 완급보다 향방의 결정이, 더욱 중요하다. 기회는, 마치 작가의 손을 떠나 버린 소설처럼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
'신중하자.'
이것은 한민족의 음해를 누가하고 있는지와, 또다른 맹점 하나에 열쇠가 달린 문제다.
첫댓글 마치 신들린 것처럼 써내린 과정이 이쯤에서 마무리된다. 매우 혼란스런 행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염치불구 나는 이 판에서 뛰지 않을 수 없었다. 신열이었을지 모른다. 여하튼 마지막 1회의 변론을 남기고 재판은 끝나며, 그 결과는 행여 동안 지켜봐 온 지기에 한해 상상에 맡기겠다. 감사..
4차 변론/증인 출석은 2월 27일 예정대로 끝났고, 며칠 후 이제 선고만 남겨졌다. 이것으로 하여 동안 부실했던 잠시의 행적을 여기에다 남길 수 있었다는 것에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 같다. 문학의 친목과 소다 어색한 성향의 글들에 대해 일괄 변해명이 쉽지 않다. 모두 자신의 위치에 바쁘게 생활하는 것 같은데 본인만 그저 헛생각에 요란을 떨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