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이 잭슨, 녹색이 롱스트리트와 힐, 그리고 파란색이 북군입니다.
게인즈밀 전투 이후 맥클레란은 거의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키이스의 4군단에게 글리데일 교차로를 확보하라고 하고 포터의 5군단에게 매번힐을 확보하라고 한 뒤, 남쪽으로 훌쩍 이동해버렸다. 적이 추격해오는 중대한 상황에서 지휘부서를 이탈하고 대리자도 임명하지 않은 행위를 뭐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 도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난 메카닉스빌과 게인즈밀 전투는 비록 결과적으로는 남군의 승리였지만 사상자는 남군이 훨씬 많았다. 애초에 북군이 남군을 압도할 만한 병력이 되었기 때문에, 실제 전력은 더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겁먹기 시작한 맥클레란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북군은 살기 위해 남쪽의 보급기지로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칼자루를 리가 쥐게 되었다. 리는 전면적인 추격전을 구상했다. 치카호마니 강 북쪽의 모든 북군이 이동했기 때문에, 리치먼드 전면에 있는 후거와 매그루더 사단에게 진격을 명령했다. 정면에서 후퇴하는 북군을 붙잡아 두라는 것이었다. 그간 북군의 강력한 진지로 인해 공격이 불가능했지만, 북군이 그 진지에서 물러난 것이다. 곧바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북군의 막대한 보급물자가 쌓여있는 새비지역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새비지역
잭슨과 D.H 힐도 치카호마니 강을 건너서 새비지역으로 향하게 하였다. 계획대로라면 후퇴하는 북군은 새비지역에서 잭슨과 매그루더의 함정에 걸리게 된다. 롱스트리트와 A.P 힐은 후퇴하는 북군의 오른쪽 측면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후거의 9천 병력은 화이트 오크 습지대에서 북군을 공격하고, 홈즈의 6천명의 사단은 맬번힐 쪽으로 가서 기습하기로 하였다.
6월 29일, 새벽 3시 반에 매그루더가 새비지역 쪽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매그루더의 부대 입장에는 첫 전투였다. 하지만 노련한 잭슨의 군이 같이 공격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좌측에는 후거의 사단이 진격하여 북군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매그루더는 자신의 공격이 주공이 아니고 단순히 적을 견제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는 지, 새비지역 쪽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진격했다. 후거와 잭슨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이들 부대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매그루더는 1만 3천의 병력으로 혼자 북군을 상대하게 된다는 것이 두려워서, 리에게 2개여단의 증원을 요청하고 공격대신 방어태세를 취했다. 추격을 위한 중대한 시간을 날리게 된다.
마침내 리가 직접 매그루더에게 공격을 명령했는 데, 이 때가 오후 4시였다. 새비지역 주변에 위치한 북군은 섬너의 병력으로, 이들은 매그루더의 공격을 저지했다. 매그루더의 신병들은 상당히 소극적으로 전투를 치르게 됬지만, 리가 증원 보낸 2개 여단은 매우 격렬하게 싸웠다. 커쇼우와 셈즈 여단인데, 북군의 버몬트여단과 반스 여단과 격전을 치른다. 하지만 2개 여단의 공격으로는 북군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밤 10시가 되자 전투는 종료하고 북군은 10만이 먹을 수 있는 군수물자를 불태우고, 2천 5백명의 환자들을 남군에게 방치한 뒤 빠져나온다.
새비지역의 전투 삽화
왜 잭슨은 새비지역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당시 치카호마니 강을 도하하기 위해 북군이 파괴한 그레이프빈 다리를 복구하던 잭슨은 다리를 보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진격’ 명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새비지역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교량을 확보하라는 명령으로 잘못 전달이 됬는 지 오늘날까지도 명확한 이유가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잭슨은 밤까지 그레이프빈 다리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리는 북군을 타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어이없이 날려버린 뒤, 다시 두 번째 계획을 세웠다. 맥클레란이 제임스강의 해리슨랜딩까지 후퇴하기 위해서는 글렌데일에 있는 중요한 교차로를 확보해야 했다. 부대의 진격속도와 5천대의 수송마차의 속도가 같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물자를 안전하게 이동시킬 때까지 교차로를 북군이 통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리는 이 교차로에서 북군을 섬멸하고자 했다.
대부분의 북군이 6월 30일쯤에는 글렌데일 교차리에 도착하였다. 우리의 맥클레란 사령관은 7개사단을 서쪽과 북쪽을 바라보게 반원형으로 배치한 뒤에, 제임스강 남쪽으로 가서 북군 갈레나호에 승선했다. 남군이 추격해 오는 속에서 부하들을 버려두고 24시간을 배안에서 편히 쉬었다. 글렌데일 전투는 최고사령관이 없는 속에서 각 군단장의 조정을 통해 행해진 전투였다.
리는 북군의 서쪽에는 롱스트리트와 A.P 힐 사단을, 북쪽으로 잭슨을 투입하여 섬멸전을 구상했다. 만약 롱스트리트와 잭슨이 북군을 돌파한다면, 북군의 대부분의 병력이 글렌데일 교차로에서 남군의 포위망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북군을 격파해버린다면, 그 순간부터는 그야말로 섬멸전이 될 것이며, 반도에 상륙한 12만의 북군의 대부분은 와해되어 버릴 것이다.
만약 잭슨이 제대로 공격했다면...
글리데일 전투를 앞두고 작전계획을 잭슨에게 설명하는 리장군
결론부터 말해서, 글렌데일 전투는 롱스트리트와 A.P 힐 장군의 12개 여단이 글렌데에일 배치된 대부분의 북군과 대적한 전투였다. 7일전투 전체에서 가장 격렬했던 전투로 이 글렌데일 전투를 꼽는다. 롱스트리트와 힐의 병력은 2만명이었는 데, 글렌데일 남쪽에 프랭클린 군단 2만, 중앙에 섬너와 하인젤만의 4만이 있었다. 더군다나 강력한 방어진지에서 수십문의 대포의 지원속에서 남군을 기다렸다.
이 악조건 속에서 롱스트리트와 힐은 최선을 다했다. 한 예로 윌콕스의 여단은 6문의 포를 노획했다. 이를 북군 팬실배니아 여단이 다시 노획했다. 다시 남군 필즈의 버지니아 여단이 노획했다. 이렇게 물고물리는 전투가 밤 9시까지 계속되었다. 전투의 사망자는 남군 3천 6백, 북군 2천 8백이었다.
격전이 벌어졌던 포대
- 윌콕스 여단의 한 기수가 용감하게 노획한 포대 위로 올라갔다.
잭슨은 왜 없었는가? 잭슨의 2만 1천 병력은 새비지역 남쪽에서 북군 세지윅의 2만 5천 병력과 만났다. 잭슨은 세지윅의 방어선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남군의 즉각적인 공격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단 포병을 불러서 북군에게 포격을 가했다. 그때가 오후 3시였다. 잭슨이 북군과 포격을 주고받는 동안, 잭슨의 도착을 기다리다 지친 리가 롱스트리트에게 공격을 명령한 때가 오후 4시였다. 잭슨은 롱스트리트가 공격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계속 포격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낮잠까지 잤다. 잭슨이 낮잠을 자는동안 남군에게 있어 북군을 완전히 섬멸할 거의 유일한 기회, 남군의 ‘칸나에’ 전투가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북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북군을 상대로 2번의 회심의 기회를 노렸지만, 결국 리는 강타를 날리는 데 실패했다. 이제 북군은 거의 해리슨 랜딩까지 도착했으며, 만약 제임스강에 북군이 도착한다면 강력한 함포의 보호 속에서 안전하게 될 것이다.
리에게 남은 기회는 이제 단 1번이었다. 해리슨랜딩으로 가는 마지막 요충지인 맬번힐에서 북군을 섬멸하는 것이다.
글렌데일 전투가 끝나고, 내일의 작전을 구상하는 리 장군
첫댓글 음..환장하겠네요.. 아무리봐도.. 새비지역도 그렇고...맥클라렌..유능하지 않아보이는데.. 유능한 인물이라는 평가 글이 넘 자세해서 그 자료와 혼동되니 평가를 못내리겠네요.. 리가 넘 유능해버린건가...천적이란건가... 누가 좀 평가를 제대로 해주세요..전 버로우라는..
그 평가글 저도 아는 데 '스티븐리'라는 근세 서양 전쟁사의 달인이 올린 낚시글입니다. 이것이 스티븐 리 님이 진지하게 7일전쟁을 분석한 글입니다. http://historykr.com/bbs/zboard.php?id=blog&page=1&page_num=20&select_arrange=headnum&desc=asc&sn=off&ss=on&sc=on&keyword=&no=340&category
낚시글....ㅇㅈㄴ 감사합니다... 링크 글로 들어갈려니..지금 안들어가지네요..
퍼갈께요~
대군의 통솔은 확실히 만만치 않은 일이군요. 그럼에도 남군 사령관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북군 사령관은 그냥 드러누웠으니 무척이나 대조적입니다.
아무래도 남군측장군들의 질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병사들의 의욕면에서도 남부측이 훨씬 우세했으니깐 말다했죠 ㅡㅡ
역시 북군은 쪽수가 많아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