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일요일)
숙소(백두산 찜질방)을 나오니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6시 40분이었다.
한강으로 나가는 출구를 몰라서 무작정 북쪽으로 곧장 가니
올림픽 대로가 앞을 가로 막았다. 막다른 길이었다.
이왕이면 ‘가는 방향으로 가는’ 도보여행의 특성에 따라 동쪽으로 가니
강한 둔치로 나가는 토끼굴 팻말이 보였다.
[암사전철역에서 한강둔치로 나가는 팻말과 토끼굴]
암사전철역에서 둔치까지는 10여분 거리였다.
둔치로 나오니 강 건너 워커힐 위로
아직 지지 못한 하현달이 강물에 희뿌연 빛을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강변길에는 몇몇 사람들이 걷기운동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어딜 가든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하기야 나 같이 유행에 둔감한 사람도 걷기를 즐기는데...........,
[강동대교 부근에서 본 여명]
여명을 즐기며 강동대교를 향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1시간 정도 걸으니 갑자기 길이 없어졌다.
강가 팻말에 '광나루 종점, 여의도 기점 24.6km'이라 적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올림픽 도로로 올라가니 도로변에 좁은 갓길이 나 있었다.
갓길을 따라 가니 길가 언덕에 구암공원이 있어 올라가 보니 한강이 한 눈에 들어왔다.
[구암공원의 정자 : 불교의 전래와 관계가 있는 공원임. 가운데 부처상이 있다.]
구암공원을 지나 좀 더 가니 ‘고덕수변생태복원지’라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의 오솔길을 즐기며 강동대교에 도착하니 8시 40분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바람에 벌써 2시간을 걸은 것이었다.
강동대교부터는 호젓한 오솔길이 큰 뚝 위에 끝없이 계속 되었다.
[강동대교를 지나면 나오는 흙길과 아름다운 한강변]
흙길이었다. 걷기에는 흙길이 그만이지만
아직 땅은 얼어 있어 흙길의 촉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솔길 양쪽으로는 ooo꽃이 꽃 모양 그대로 말라 있어,
꽃길을 걷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다.
팔당대교가 가까워지면서는 강폭도 좁고 물 흐름도 빠르고 물도 맑았다.
청둥오리가 노니는 강가의 물길 흐름 속으로 비치는 자갈이 정갈했다.
띄엄띄엄 강물에 떠가는 듯한 풀무더기 섬들은
아스라이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좋은 풍광을 만들고 있었다.
[강동대교 부근의 한강]
40분을 넘게 걸었는데도 흙길은 계속되었다.
흙길을 걷는 것은 도보여행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아니다.
하지만 언 땅은 발바닥을 통해 마음까지 얼게 했다.
날이 풀리면 이 길을 다시 걸어야겠다.
그 때는 아마 어머니 젖가슴 같이 포근할 것 같다.
봄기운이 무르익은 폭신한 흙길을 걷다보면 나도 길이 될 것 같다.
하남시 경계선에 들어서니 뚝 위쪽으로는 억새밭이 아래쪽으로는 갈대밭이 계속되었다.
억새와 갈대의 군무를 즐기며 하남시에 들어서니
‘생태길’이라 하여 강변 둑을 흙길로 넓게 조성해 놓았다.
옛날 신장로 같이 편안한 길이 팔당대교 근처까지 계속되었다.
[하남시에서 조성한 흙둑길]
팔당대교를 건너기 위해 팔당대교 곁다리 밑을 통과해서
중앙다리 쪽으로 가니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마침 올라간 쪽에 인도가 있었다.
[팔당대교와 팔당대교에서 바라본 한강 풍광]
팔당대교 위에서 보는 한강의 풍치는 더 없이 수려했다.
한강 북변으로는 둔치의 길이 훤하게 뚫려 있었다.
[팔당대교에서 바라본 북쪽한강변의 둔치길, 둔치 옆 모래 사장에서 노니는 청둥오리 떼]
마침 물가 바로 옆에도 길이 있어 내려가니
때깔이 고운 청둥오리 떼가 물질을 하고 있었다.
한강 북변의 풍광을 즐기며 덕소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이었다.
마침 강변에 가까이에 “oo회관”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다.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삐쭉이 내밀고 안을 살펴보니
아주머니 둘이 음식 준비에 바빴다.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나 같이 숫기 없는 사람은 혼자서 도보여행을 할 때 곤란한 일이 한 둘이 아니다.
혼자 음식점을 들어가는 일도 그렇지만 저녁에 모텔을 들어가는 일은 더 그렇다.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너무 짜서 먹는둥마는둥 하고 나왔다.
조금 더 가니 골프연습장 옆 아파트 상가에 음식점 간판이 보였다.
곧 후회하였지만 점심을 두 번 먹을 수는 없었다.
[멀리 산이 강변둔치길을 막고 있다] [넘을 수 있는 오솔길]
한 시간 정도 걸으니 강변길이 없어지고 산이 앞을 막았다.
지도를 보니 수석동이라는 곳이다.
가까이 가보니 산등성이로 길이 보였다.
산을 넘으면서 보니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지체하지 않고 걸으면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리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는 한정식집]
강동대교를 지나면서는 엄지발톱이 빠질 듯이 아팠다.
아마 수석동에서 산을 오르내리면서 무리한 것 같았다.
걷기가 등산이나 다른 운동 하고 다른 것은
몸의 어느 부분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물만 먹고도 할 수 있는 것이 걷기이고
또 그렇게 해도 크게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이 걷기다.
두어 시간을 걸으니 광진교가 멀리 사양에 쓸쓸했다.
그 옆 언덕 위로 워커힐이 길게 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 길 끝자락에 워커힐이 있다.]
워커힐 아래에 오니 갑자기 둔치의 길이 끊겼다.
하는 수 없이 차도로 올라오니 차도 강변 쪽으로 자전거 길이 넓게 만들어져 있었다.
워커힐 고개가 서울(광진구)과 경기(구리시)의 경계였다.
추워서 충분히 쉬지 못하고 계속 걸었더니 발과 다리의 고통이 극에 달했다.
더구나 아침 6시 40분부터 걸었으니 오죽하랴.
빨리 숙소(찜질방)을 찾아야 했다.
광나루역도 지나고 올림픽 대교도 지나서야
‘보석불가마사우나’라는 찜질방을 찾을 수 있었다.
들어가니 6시 30분이었다.
찜질방에 수면실이 따로 있어서 잘 잤다.
다음날 강변으로 가는 길에 보니 동서울터미널 가까이에
‘강변스파랜드24시전통불가마’가 있었다.
[걸으면서 깨닫는다.]
나는 길을 묻지 않는다.
이것은 내 성격이기도 하지만 자만에서 나오는 과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쉬운 일을 힘들게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아는 길도 물어가는 사람은 소심한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고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면,
그 일로 인해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평생 그 일에 발목을 잡혀 인생을 낭비하게 되는 수가 있다.
물어보는 것도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준비하는 것은 겸손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
이제부터라도 뭐든지 물어보면서 살아야겠다.
그러면 분명 내 인생도 달라질 것이다.
걸은 거리 : 암사역에서 팔당대교를 건너 강변역까지
걸은 시간 : 오전 6시 40분에서 오후 6시 30분까지
식사 : 아침 - 우유 한잔+미숫가루
점심 - 된장찌개
저녁 - 우유 한잔+미숫가루
첫댓글 소진님과 저는 뭐든 반대네요~~ㅎ 저는 꺼떡하면 묻고 음식점도 씩씩하게 들어가고~~ㅋ 사담이구요 한강걷기 3박4일은 꼭 해볼랍니다 그땐 알고 갈래요 ^^*
저두 혼자선 절대 식당에 못 들어가요. 한 번도 혼자 들어가 본 적이 없네요. 하지만 길을 묻는 건 아주 잘~~~합니다.모르는 길은 자신이 없으니....
전 처녀 때부터 길 묻는 것도 혼자 식당 들어가는 것도 모텔 들어가는 것도 다 잘하는데...ㅎㅎ 카페지기님 성격이 보이는 글 같아서 좋습니다. 아, 글 읽다보니 다시 방랑벽이 도지는 듯...여행가고 싶어라~
저또한 길을 묻는것을 못하는데 돌아가더라도 제가 혼자 터득해서 존심인지 무식인지?" 타인에게 나의 모자람을 보여주기싫은이기심인지도 사우나는엄청 좋아하고 음식은 그래도 혼자잘 먹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