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0 : 1.
한국 0 : 1 일본.
마음 속으로 '어쩌면...'을 되뇌이면서, 차마 가능성이 없다 할 순 없지만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는 바라지 않았던 패배.
4위.
동아시안 컵 4위.
아시아 축구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 4개국 중 4위. 중동의 이란을 합해서 사실상 이 5개 국가는 아시아 축구의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중 4개국이 출전한 대회의 최하위.
이것은 분명 실망스러울 수 있는 오늘의 한국 축구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처럼, 저 또한 오늘의 경기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어떤 희망을 보았다면 너무 후한 평가일까요.
2.
우리는 이번 동아시안 컵을 거치면서 몇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중원에서 게임을 풀어줄 수 있는 선수를 배치하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최고급 윙포드를 세워도 결코 득점하지 못한다는 것.
둘째로, 이번 대회를 통해서 다져진 수비진들의 능력이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것.
셋째로, 본프레레 감독의 전략 자체가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는 것. 상황상황에 대처하는 전술에 있어서는 구멍이 보이지만, 아직까지도 그것이 선수들의 전술 이해 부족인지 본프레레 감독이 선수들에게 맞닥뜨린 상황에 따른 전술을 제시하지 않은 것인지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것.
3.
오늘의 베스트는 누가 뭐래도 김두현입니다. 동아시안 컵 3경기를 통해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넘어온 볼을 논스톱으로 상대 수비의 빈 공간에 찔러넣을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선수임이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그의 왼발 중거리슛은 상대 수비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들고, 논스톱으로 오버래핑하는 아군의 - 발 앞이 아닌 - 공간 앞으로 찔러넣는 치명적인 스루패스와 상대 수비와 공격수가 충분히 경합할 수 있는 공간에 떨어지는 세밀한 롱패스, 그는 진정 한국 축구가 목마르게 찾아 헤매던 오아시스였습니다. 심지어, 본프레레 감독이 그를 계속 조커로 기용하는 이유가 그의 실력을 노출시키기 싫어서일 거라는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였지요.
정경호. 대한민국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사이드 돌파를 할 수 있는 선수를 찾았습니다. 듬직해보이는 덩치에 맞지 않는 빠른 순간 스피드와 발재간, 상대의 태클을 무시하고 드리블할 수 있는 과감함과 재치, 상대 몸싸움을 튕겨낼 수 있는 기본이 되는 피지컬, 그리고 논스톱으로 정확하게 올려주는 왼발 크로스. 오늘은 정경호가 중앙 공미 위치에 있었지만, 이 위치에서 잘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닙니다. 차라리 정경호를 이동국과 투톱으로 놓고, 이동국이 원톱 역할을 하다가 오른쪽 사이드로 살짝 빠지며 정경호가 왼쪽 사이드로 빠지고, 이천수가 그 빈자리로 침투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면 결과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정경호는 이제 설기현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설기현이 잉글랜드에서 더 발전하여 정경호보다 훨씬 좋은 실력을 보여준다면, 한국 축구는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천수는 오른쪽 공격수입니다. 공미 역할도 할 줄 아는 선수이지만, 그보다는 공미 자리에서 오른쪽 공간으로 파고드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입니다. 그를 왼쪽에 기용하는 것은 이영표를 오른쪽에 기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선수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천수는 북한과의 경기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나와 수차례 날카로운 공간 침투를 보여주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였던가요? 골라인까지 치고 들어가다가 오른발로 높지만 날카롭게 올린 크로스가 이동국의 머리로 정확하게 연결되었을 때 역시 그는 오른쪽에서 뛰고 있었습니다. 이천수는 차두리와 오른쪽을 두고 경합해야 할 선수입니다.
김동진은 왼쪽에서 다른 선수가 빈공간을 활발하게 만들어줄 때 빛을 발하는 선수입니다. 그가 활약했던 경기는 대부분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창출된 공간을 이용해 날카로운 패스를 날리거나 크로스를 날리는 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왼쪽 사이드 어태커가 죽으면 김동진도 같이 죽습니다. 그는 좀 더 자신의 왼발에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왼발은 충분히 쓸만합니다.
오범석은 제가 청대 시절부터 좋게 봤던 선수입니다. 그때는 까까머리였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귀여운 외모와 다르게 악착같은 수비와 들고 날 때를 아는 움직임이 괜찮은 선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박규선보다 한 발 앞서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백지훈은 2010년을 내다보고 키워야 할 선수입니다. 당장 2006년은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부상으로 아웃된다면 모를까, 박지성과 김두현, 김남일을 제낄 수 있을 만큼의 아우라를 찾기 어렵습니다. 간간이 보이는 공간을 찾는 센스와 볼 다루는 실력은 그의 미래를 기대하게끔 만듭니다. 어쩌면 2010년의 중원은 백지훈과 김두현, 김정우가 책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진규의 문제점은 느리다는 것입니다. 느리고, 상대 침투에 무방비 상태이며, 그 정도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돌아오는 조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만일 조병국이 월드컵까지 재활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모르겠지만, 조병국이 돌아온다면 그를 능가할 수 있는 부분은 프리킥 밖에는 없습니다. 그나마 그보다 더 잘 차는 박주영이 있고, 김진규 때문에 적당히 먼 거리의 프리킥을 허공에 날려버리는 일이 잦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가 유망한 수비수임에는 분명하지만 현 시점에서 한국팀에 크게 보탬이 되는 선수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김한윤, 유경렬, 김영철이 지금 상황에선 가장 노련하고 안정적인 수비 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정수. 그가 부상에서 돌아온다면 그를 반드시 시험해봐야 합니다.
소속팀에서 많은 도움을 기록하고 있는 홍순학이 단 10분밖에 선보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애초에 전 오늘 경기에 홍순학이 선발로 뛰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나마 그동안 내 쓰던 박규선이 아니라 오범석을 뛰게 하였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조금은 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리고 이동국. 어느 순간부터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그의 발끝에서 확신이 사라졌습니다.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보다는 그 위치에서 한 발짝 피해있는 그를 보면서 마음 한 쪽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그나마 그가 많이 뛰고, 여전히 양질의 패스를 해준다는 데에서 어느정도 위안을 찾습니다.
김진용. 개인적으로 이 선수에게 기대감을 조금 느낍니다. 일단 잘생겼(?)구요, 이동국에게서만 볼 수 있었던 감각적인 하프발리슛도 보여주었고, 작정하고 발재간을 부릴 경우 상대 수비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개인기도 - 물론 그것이 돌파력으로 잘 연결은 되지 않았습니다마는 - 갖고 있고, 듬직한 체격으로 제공권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컵대회에서 박주영과 함께 득점 경쟁을 벌였을 정도로 득점력도 갖고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박주영. 그는 지금 정상이 아닙니다. 몸의 밸런스가 깨졌고 자신감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막판 쿠웨이트 전과 비슷한 상황에서 이동국이 왼발로 기가막힌 스루패스를 넣어주었을 때, 예전의 박주영이었다면 단 한 번의 볼터치로 상대 수비를 제껴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박주영은, 상대 수비가 다 들어올 때 까지 공을 가지고 우물쭈물 하다가 결국 뒤로 돌리고 맙니다. 굳이 그를 아픈 와중에 내보낼 수 밖에 없게 여론을 조성한 찌라시와 그 여론에 일조한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이 매우 원망스럽습니다. 아픈 선수는 쉬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어린 유망주라면 더더욱 몸관리를 철저하게 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많은 전술적으로 유용한 선수들을 얻었습니다. 최전방에서 공간을 창출해낼 수 있는 포워드와 사이드 돌파에 능숙한 윙포워드, 침투 공격에 능한 윙포워드, 적재적소에 패스를 찔러넣어줄 수 있는 중앙 미드필더와 안정적인 수비를 볼 수 있는 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반년 전에 비한다면 행복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비라인과 여전히 강한 골키퍼. 게다가 해외파로 우리에게는 네드베드와 비교되는 한 선수가 있고, 사이드와 중앙을 넘나들며 돌파와 득점력을 보여주는 선수도 있고, 작정하고 미친듯이 달리면 그 누구도 막아설 수 없을 것 같은 포스를 뿜어내는 포워드도 있습니다.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국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기대감에 젖게 만드는 잘생긴 판타지스타도 한 명 있고,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왼쪽 윙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만해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이 선수들이, 정말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기만 한다면, 좋은 경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들에게서 내일의 희망을 봅니다.
4.
우리 선수들에게 몇 가지만 부탁합니다.
첫째로, 공은 나의 전진방향과 함께 흘러야 합니다. 혹은, 공은 내가 벽이라도 되는 듯이 나를 튕겨서 다른 선수에게 이어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선수들의 가장 나쁜 습관은, 패스받은 공을 정지 상태에서 발바닥으로 한 번 잡았다가 굴리면서 이동하기 시작하는 습관과 공을 받아 무조건 뒤돌아서는 습관입니다. 기본적으로 공은 논스톱으로 흘러야 합니다. 공을 받기 전에 미리 공을 줄 선수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마치 당구공이 갈 길을 미리 보듯, 공을 차기 전에 공이 갈 길을 미리 머리속에서 시뮬레이션해야 합니다. 그리고 패스를 받으면 뒤돌아 치고 나가지 말고, 미리 봐둔 길과 공간으로 치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게 되는 선수는 애석하게도 박지성과 이영표, 김두현밖에 없습니다. 모든 선수가 기본적으로 터득해야 합니다.
둘째로, 짧은 패스는 강한 패스만 못합니다. 짧고 약한 패스로 상대에게 역습 찬스를 허용하느니, 조금 길더라도 세게 패스하는 편이 낫습니다. 물론 너무 세서 받는 선수가 트래핑할 수 없을 정도로 차서는 아니되겠지요. 2:1 패스나 월패스, 삼각패스 상황에서 패스가 너무 짧아 계속 끊기는 것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셋째로, 셋트피스 상황에서 자리싸움에 너무 서투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격시에든 수비시에든 항상 상대 선수와 공 사이에 위치해야 합니다. 오늘 실점은 물론 일차적으로 앞에서 헤딩을 뜬 선수가 전혀 공을 건드리지 못하고 예상치못하게 흐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앞에 누군가 위치를 선점해 주었다면 얘기는 달랐겠지요. 적어도 편하게 갖다대지는 못했을 겁니다.
넷째로, 안된다 싶으면 바로 때려야 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슈팅 기회라고 생각하는 찬스는 상대도 슈팅 기회라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들 것입니다. 슈팅 상황에서 변수가 생기면 지혜롭게 대처하기 보다는 당황하고 조급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대 수비가 예측하기 전에 슈팅을 때려줘야 좋은 기회가 많이 납니다. 최근 경기에서 분명히 패스가 정확했고 상대 수비를 따돌리고 제대로 침투했는데도 공의 바운드를 기다린 탓에 골키퍼 품에 안겨줘버린 찬스가 몇 번 있었습니다. 되든 안되든 일단 발에 갖다 대야 합니다. 그 기회를 놓쳐도 기회는 또 옵니다. 그 기회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너무 완벽하게 잡아서 하려고 기다리면 이미 상대 수비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는 있겠지만, 몸이 그렇게 반응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경기,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역시 우리에게는 게임을 풀어나갈 게임 메이커가 있어야 경기다운 경기가 됩니다. 생각해보면 히딩크 체제에서도 항상 게임 메이커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김두현의 발견이 기쁩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더 좋은 경기력으로 조금 더 큰 희망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쓸데없이 길기만 한 글을 읽게 해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첫댓글 ... 다른 것 하면서 쓰다보니 너무 오래 걸려서 뒷북이 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김두현이 부상으로 빠지니까 " 이 때 김두현이 있었으면 잘했을텐데 " 하는 아쉬움이 자주 들더라구요 .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돌아다니다 어떤분이 말하시는걸 본건데.. 저도 그런거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용 오늘 미들진이 위아래로 움직이는게 좀 신통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봉래도 그게 불만스러워서 손으로 움직이라고 했는데 말도 안들었다는군요
원래 소중한건 곁에 없을때 안다는말이 여기서.. ㅎㅎ
백지훈보다는 김정우나 김상식을 넣었다면 미들의 들고 나는 움직임이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백지훈이 초년병이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미숙함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하고 그동안의 한국축구에 대한 제 머릿속에 생각을 단번에 정리해주신듯 ㅇ_ㅇ
전 솔직히 김상식선수는 별로 믿음이 안가서;; 백지훈선수를 꾸준히 키웠으면 하는바램이;;
흠..그리고 이동국 관련에서.. 정말 동감이 가네요 옛날 그 꽃미남이(지금도 잘생겼지만;)웃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동국 오늘 언성도 높이더군요; 차라리 이동국의 성격이 루니같았다면 어땟을지(--ㅋㅋㅋ)
김상식 선수는 선수보다 식사마의 이미지가 -_- 젠장
아직 수비는 모르겠네요;; 좀 강호랑 해봐야 될텐데;;
헐, 전 귀여운 강사마가....정말 좋은 글이네요. 우리가 가진 선수들이 완벽하게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면 다시 한번 월드컵에서 정말 꿈같은 날들을 지낼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만,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야할련지... 세대 교체 속도가 너무 더딘 것도 불안하구요
흠...눈에서 거부반응이;;
스마일님 차라리 종합,정리해서 답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눈에 피로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스마일 님. 답변 적고 있는데 말없이 지우시는 건 또 뭡니까... 너무 배려가 없으시군요. 답글 적으시더라도 추가 답변 적지 않겠습니다. 생각의 차이로 여기고 넘어가주세요. 그럼..
몇몇분들이눈이피로하다고하시고..종합적으로정리해서답글로올려달라고하셔서..지우고밑에답글달았습니다..;무례하게느껴지셨다면죄송합니다..절대그러한의도가아니었습니다..
난초도둑씨 축구 평론가 같으셔 ㅍ_ㅍ;;; 책 내도 좋을듯 싶으셔 !!
"감독휴게실"에서 옮겨 옵니다 날짜 : 2005.08.08 00:04
작정하고 미친듯이 달리면 그 누구도 막아설 수 없을 것 같은 포스를 뿜어내는 포워드 -_-)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