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북경에서 볼 수 있는 한국 KBS방송의 '노란 손수건'이(다른 방송이 나왔다면 당장 채널을 돌렸을...) 그 식상한 이야기를 돼먹지 않게 호주제도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미혼모주제에 애를 남자 동의 없이 낳아서 그 아이를 자기거니 남의 거니하고 싸우는 꼬라지가 같잖더니 드디어 호주제도를 걸고 넘어졌다. 시끄러운 이슈에 빌붙으면 덩달아 인기가 높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한다하는 여성 인사들은 TV에만 나오면 아무 문제든지 가부장적인 가정 구조에서 문제가 시작됐다느니... 그야말로 가부장제 와 호주제는 홍어 거시기이다.
지난번에는 인터넷 상에서의 원조교제에 대한 폐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도 지도교사라는 젊은 여자가 "현재와 같은 가부장적인 가정구조속에서...이런 피해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지요."라고 주장했는데... 왜? 도대체 원조교제가 가부장제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오히려 가부장제가 무너지고 있는 아노미적인 현대의 가정환경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집안에서 가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자녀를 학대하고 부인을 구타하며, 가장으로서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폭군의 위치를 말하는가? 모름지기 가장이란 가정을 화평하게 이끌어 나가고 다음세대인 자녀들을 훈육하고, 생계에 책임을 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가정의 평안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아닌가. 외부로 부터의 침입이나 공격에 대해서도 몸으로라도 막아서는 막중한 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사회의 가부장제가 어떤 해를 끼쳤는가?
오히려 그런 제대로된 질서가 유지되지 못한체 일탈적인 현상으로 보이는 문제, 즉 치맛바람이 아이들 교육을 피폐시켰으며 수고하지 아니한 투기의 대명사인 복부인이 가정 경제및 사회 경제를 망치지 아니하였는가?
제대로 된 집안의 어른이 어디 아녀자나 자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였는가? 돌상놈들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지금 싯점에서 가정 바로 세우기 위해 제대로 된 가부장제를 구축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호주제도 그렇다. 미국이라면 그렇게 치를 떨고 싫은 척하던 사람들이 호주제라 하면, 사례로 미국의 가정을 예로 들고 있다. 지금이 호주제로 피해를 당한다며, 이렇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던 그 사례들도 그 이면에는 여성 차별에 귀착된다. 나도 외동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지금 세상에 또 무슨 차별을 이야기해야 하나 의아하기만 하다. 호주제를 주장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해 보니 이러 저러하니 호주제를 고쳐야 한다고 설명한 글을 보라. 모두 그 귀결은 여성차별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재혼 남편으로의 입적및 여권발급의 어려움 등은 허울일 뿐이다. 사실 현행법에서도 전 남편과 협의만 잘이뤄지면 친권을 포기하고, 얼마든지 아이들이 원한다면 재혼 남편에게 호적을 입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다소 복잡하다면 협의와 동의 절차를 간소화하여 불편을 줄일 수 있을 터인데 이들은 막무가내로 철폐를 하자고 한다.
소위 여성인권자들이여. 정녕 차별을 폐지하자면 당신의 몸에서 자궁을 떼어내어라. 차별과 차이는 분명 다른 것이고, 그 차이조차 차별로 인식하는 자들이여.
소위 여성인권자들이여. 어떻게 저물주는 10개월동안 여성의 몸에 간직한 아이가 조그만 정자 하나에 의지해 엄마보다는 아빠를 닮을 수 있는지에 감탄을 하라.
아무리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어도 그 아이의 모습과 성격이 아비의 그것과 그리 닮았는지, 생각을 해보았는가?
이씨의 얼굴을 가진 아이를 김씨의 자식이라고 우겨봐라. 정녕 그것이 비극일터.
우리가 왜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면 그토록 난리를 치고 병원에 원망을 하는지 아는가. 같다면 아무나 갖다 키우면 될 것을... ...
KBS의 "노란 손수건"은 이렇게 말한다. 열달 동안 혼자 키우고 혼자 낳고 했는데 이게 나의 아이이지 당신의 아이이겠느냐고? 이를 쓴 작가에게 꼭 해줄말이 있다. 생명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무우씨를 뿌린 농부가 사정이 생겨 돌보지를 못하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어 밭에 나가보니 무우가 기특하게도 저 혼자 잘 자라주어 참 감사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무우를 뽑으려 하니 뽑히지를 않는다. 밭이 말하였다. 이건 나혼자 길렀으니 이 무우는 내것이라...
이 이야기는 여성과 남성의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차이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생명은 남과 녀의 문제가 아니라 조물주와의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사회 이곳 저곳에서 가장에 대한 저주가 난무한다. 문제만 생기면 가장이 문제란다.
"매일 축늘어진 모습으로 들어와 피곤하다며 골아 떨어져 버린다, 밉다"
"아빠가 일찍 돌아와 우리랑 놀아주지 아니한다. 아빠가 밉다."
"맞아요. 당신은 애들하고 단 한번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저러는 것도 다 당신 탓이예요"
그래서 회사에서 뭐라 그러든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정적인 남자가 되기로 합니다.
"돈도 제대로 벌어오지도 못하고 사회에서 인생 낙오자처럼 뒤쳐지는 모습이 꼴보기 싫다"
"아빠! 왜 우리는 남들처럼 좋은 차 못사고 좋은 집에서 못살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큰 돈도 벌고 집안의 가족들을 만족시켜 주려고 맘먹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
"누가 아빠보고 돈만 벌어오라 그랬어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실수한 아빠가 미워요"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생각이 그따위예요.이혼해요"
몸도 기력도 쇠하여져서 다 자란 아이들을 바라만 볼수 밖에 없습니다.
"아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나 알아요?"
그렇군 이제라도 아이들과 가슴속의 이야기를 나눠야겠군...
"아버지하곤 말이 안통하니 말하기 싫어요!"
도대체 이 망할 놈의 세상은 언제나 가장을 이해해 줄 것인가?
제발 가장을 이해해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의 아버지가 도대체 무엇을 고민하는지 아는가? 그것을 알기위해 한번이라도 아버지를 제대로 바라 본적이 있는가?
아내들이여! 당신의 남편이 힘을 잃지 않고 사회에서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살게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이제 제발 가장에 대한 비난보다 서로 감싸고 서로 이해하는 가정이 되어 볼 생각은 없는가?
자녀들아! 너희는 어른에게 "어른들은 몰라요"라고 하지만 사실 어른들은 너희를 안단다. 왜냐하면 그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지. 그러나 너희는 정녕 어른들은 모른단다. 왜냐하면 그 시절을 못겪었기 때문이지.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 되면서 거울 앞에 섰을 때, 내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비로소 느끼곤 하지. 우리는 어른들을 몰랐어...라고.
여성 인권자들이여. 한번도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해 보지 않는 비굴한 비난자여. 당신이 가장이 되어 그 모든 비난을 받아보시구려. 그것이 무서워 결혼도 아니하고, 아니면 조금만 힘이 들면 벌컥 화를 내고 갈라서고 더 능력있는 남자에게 꼬리쳐 재혼하여 물질에 만족하며 입으로 떠드는 여성 인권자여. 정녕 시장에서 콩나물을 팔며 남편과 사별하여 가장이 되어 무진 고생을 하며 자녀를 길러낸 어머니를 보았는가?
이 사회를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인내요, 사랑이요, 이해란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
가부장제. 그것이 당신의 인생에 무엇을 어떻게 해를 끼쳤단 말인가? 자녀의 바름을 지도하기 위해 지엄한 훈계가 그대를 망쳤는가, 철없던 시절 함부로 살고자하는 당신의 길을 막아선 아버지의 성난 모습이 당신의 인생을 망쳤다는 것인가?
내인생은 나의 것을 외치며 익지도 않은 육체를 휘두르며 돌아댕기는 사양사회에 가부장제가 있는 것인가? 수백만명의 가정 파탄의 잔해인 미국 아동이 과연 행복의 표상인가?
가부장제가 우리나라 이혼율을 높인다고? 이처럼 높은 이혼율은 사회가 일안하는 여성의 혀끝에서 놀아나기 시작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참지 못하는 조급함에서 시작됐다. 자리를 잃은 가장들의 비틀거림에서 부터 시작됐다.
이제 그만 가장에게 다시 자리를 주어야 한다. 그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