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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봉황산(510m)
아기자기 능선이 부드러운 봉황산
산허리에 탁사정을 꿰차고 봉황대, 송석정을 고이고이 숨겨온 알려지지 않은 산, 봉황산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팔송리와 명암리 사이에 솟은 산이다. 봉황산은 북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주능선과
거의 평행으로 동쪽으로는 중앙고속국도가, 서쪽으로는 5번 국도가 지난다. 5번 국도변에는 탁사정
유원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천주교 배론성지가 있다. 주능선 동쪽으로 중앙고속국도가
지나면서 산 남동쪽에 서제천나들목이 있어 봉황산 접근도 수월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꼭꼭 숨겨져 있었을까. 봉황산은 이를 가운데 두고 서쪽으로는 주론산과
구학산, 북으로는 천삼산과 감악산, 동으로는 백곡산 등 제천의 명산들이 에워싸고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모으기에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숨어있는 명산을
귀신같이 찾아내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수년 전부터 제천 등산인들 사이에서 봉황산의 코스가
괜찮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제천의 명산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8월8일, 청량리역 대합실은 피서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터져나갈 듯 북적인다. 무궁화호를 타고
새마을호를 타고 동으로 동으로 여름을 즐기러가는 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시원스럽다. 그런데
이 많은 인파 속에서 최두열(한국철도산악연맹 안전이사)씨를 어떻게 찾나.
이번 철도산행은 가족산행을 방불케 한다. 방학을 맞이해 최두열 대장이 가족들과 함께 산행하기를
청했으며 이에 김남곤 기자도 딸과의 산행을 언지했다. 이런! 기자만 혈혈 단신 외톨이 신세다.
가족과 오랜만에 산행을 한다는 최두열씨의 부인 김순임씨와 아들 최성규(부천상동중학교 3년)군,
딸 최유나(부청상동중학교 1년)양은 물론 옆집 자매 박서희(부천상동중학교 3년), 박가희(부천상
동중학교 1년)양도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 산행을 한다는 사실에 설레는 표정이다.
김기자의 달 김한솔(12세)양도 아빠와 오랜만의 외출에 신이 났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땀
흘리며 무언가를 함께 즐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서두르지 않고 출발한 것이 화근이다. 산행들머리인 팔송리 송석정 가든
앞에 도착해 등산화 끈을 조인다고 잠시 서 있었을 뿐인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아이들이 힘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다행히 산행 시작부터 수풀이 우거져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가 여름 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준다.
송석정 가든에서 작은 다리를 하나 지나 올라서면 바로 송석정이다. 정자 바로 아래는 작은 계류가
흐르고 있어 그곳에 앉아 신선놀음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다. 게으른 기자의 움직
임과는 달리 아이들은 빠른 걸음으로 산을 치고 오른다.
송석정에서 45분쯤 오르면 산불감시초소다. 봉황산 능선이 주위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보니
탁 트인 시원한 조망은 기대할 수 없어도 제천천의 시원한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눈요기가 된다.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여름 산행의 기본 중의 기본인 물을 충실히 챙겨왔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배낭에 꽁꽁 언 얼음물을 챙겨 물 달라고 보채는 법이 없다. 미래의 산꾼 자세가 완벽이 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데 8월8일이면 입추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절기, 그러나 가을은 커녕 지루한 장마가
겨우 끝이 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어 여름 땡볕은 절정을 향해가고 있으니 입추라는 말이
너무 낯설다. 뛰다시피 산을 오르던 아이들 입에서는 "더워요. 힘들어요. 배고파요." 라는 말이 연신 나온다.
정상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부지런히 걷는다. 첫번째 헬기장을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으니 또
헬기장이다. 헬기장에서 5분만 오르면 봉황산이다.
어, 그런데 아이들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정상이 뭐 이래' 라는 실망감을 얼굴 한가득 드러낸다.
조망은 꿈도 꿀 수 없을 뿐더러 변변한 정상석 하나 없다. 제천 다솔산악회에서 만들어 나무에 매단
철판 안내판이 전부다. 아직 제천의 명산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아 엿보인다.
정상에서 조금 빗겨난 길목에서 후딱 점심을 해치운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배고 고팠을 테지만,
찐하게 흘린 땀과 오랜만의 산행으로 밥이 꿀맛인 듯 식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다.
정상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안부에 닿으면 좌측으로 빠지는 길이 있지만 날머리인 학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직진하면 된다. 봉황산 능선길이 아기자기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한두 곳에
가파른 구간이 있지만 짤막해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도 조심히 한발짝씩 내딛으며 앞서간다.
여름이다보니 억세게 자란 풀들이 등산로 곳곳에 우후죽순 식으로 자라나 있다. 그저 더울 것만을
생각해 반바지를 입은 아이들의 다리가 성할 리가 없다. 그중 성규의 다리가 가시밭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엉망이다.
결국 산을 자주 오르는 아빠에게 원성이 돌아간다.
"반바지 입을 때 말려주시지. 따가워요. 아빠는 긴바지에 긴소매티 입었으면서..."
그랬다 최두열씨는 긴 소매 옷을 입고 산행을 해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원성을 들을 만도 하다.
안부에서 1시간 가량 오르니 송신탑이다. 잘 견디는 듯 싶더니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아이들의
걸음에 산행코스를 바꾸기로 한다. 학산으로 내려서기로 했던 건을 늘목으로 빠지기로 하고 송신탑
에서 왼쪽 능선으로 향한다. 아니, 누구나 왼쪽 능선으로 빠졌다 다시 봉황산 주능선에 올라야 한다.
송신탑 아래로 개인 농장이 있어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장이다보니 송신탑
까지 임도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송신탑에서 왼쪽길로 향해 10분 가량 걷다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다시
주능선을 오르는 길이고 왼쪽은 늘목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왼쪽 능선으로 조금 내려서니 잡풀이
무성한 벌판이다. 그리고 건너편에 다시 등산로가 시작된다.
햇살에 반사된 풀잎은 화려한 녹색을 뽐내지만 그곳을 통과해야 하는 우리 반바지 아이들은 걱정이
앞선다. 아니나 다를까 잡풀 벌판을 지나니 아이들 다리가 엉망이다. 예쁜 여중생들 다리에 흉이라도
생길까 걱정이다.
길이 선명하게 나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보니 수풀이 얼기설기 솟아나 있어
산행에 어려움을 준다. 빠른 길로 내려서려다 아이들 다리에 상처만 가득 안겨주게 생겼다.
뒤처진 기자와 가희, 서희를 향해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
"계곡이다!!"
막상 내려서니 작은 계류다. 이 계류가 계곡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다들 더위에 지친 모양이다.
한껏 부풀어 있던 자매는 순간 아쉬워하더니 얕은 물도 좋다며 물에 손을 담가본다. 계류를 벗어나
오르니 바로 임도다. 그런데 그 임도 오른쪽으로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우거진 수풀을 스틱으로
제치고 안을 들여다보니 진짜 계곡이다. 더운 날씨를 이길 장사가 어디있겠는가. 아이고 어른이고
모두 첨벙이다. 물놀이 삼매경에 빠진다.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이 났다. 깊지 않지만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줄기에 여름 산행의 피로를 모두 날려본다.
*산행길잡이
송석가든-(45분)-산불감시초소-(30분)-두번째 헬기장-(5분)-정상-(20분)-안부-(1시간10분)-송신탑-(1시간)-늘목(청솔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