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와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은 굳이 방학이 아니어도 한국 극장가에서 심심찮게 개봉되고 대박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놀라운 것은 한국산 애니메이션도 이 와중에 한 해에 몇 편씩은 꼬박꼬박 만들어지고 있으며, 극장에 내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근한 토종 캐릭터를 내세우고 한국적 정서를 한껏 살린 배경 등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국산 애니메이션의 창작은 일견(一見) 쉬운 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 국산 애니메이션들의 흥행성적은 지극히 보잘것없다.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열정과 노력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 스토리 문제다. 이처럼 콘텐츠를 파는 데 있어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관객유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2011년 여름방학.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만화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바로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사계절출판사에서 나온 원작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은 199쪽 분량의 꽤 유명한 창작동화이다. 지난 2000년에 초판이 나왔고 1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알려졌다. 시골의 한 양계장 철장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죽을 때까지 알(달걀) 낳을 운명을 타고난 암탉 ‘잎싹’의 이야기이다. 이 원작을 충무로의 유명영화사 명필름이 영화화에 나선 것이다. 내용을 들여보자.
그들은 숨 쉴 공간도 충분히 없고 옆으로 제대로 날갯짓조차 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 갇힌 채,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쏟아지는 사료를 꾸역꾸역 먹고, 때가 되면 알을 낳는다. 밤이 되면 선 채로 잠을 자고 다시 아침이 오면 쏟아지는 사료를 먹고, 때가 되면 또 알을 낳고……. 이런 곳에 사는 주인공 암탉 ‘잎싹’은 자기 눈앞에 빤히 내다보이는 양계장 마당을 보며 ‘이곳을 빠져나가 마당을 맘껏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고 환상을 품는다. 마당에 놓아기르는 저 닭과 오리들처럼 하늘을 보며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잎싹’은 사료 먹기를 거부한다.
깡마른 병든 닭을 좋아할 주인은 없다. 비실비실한 ‘잎싹’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육계로도 쓰이지 못할 폐계가 되어 버려지고, 죽어가는 닭들을 실어 나르는 손수레 속에서 가냘픈 숨을 내쉰다. 존재가치를 잃어 그냥 내버려진 무수한 닭들 사이에서 겨우 살아난 ‘잎싹’. 그런데 어렵사리 살아서 양계장을 나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족제비의 날카로운 눈빛과 이빨. 그렇다 양계장 탈출이 마냥 자유를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잎싹’은 암탉이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의 알을 품어보지 못한 야생에 던져진 한 마리 불쌍한 닭이 되었다. 자신의 알을 품어보고 싶어 하던 어느 날 청둥오리의 알을 품게 되고, 그 알에서 부화한 ‘초록’과 기이한 모자 관계를 맺게 되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생태계에서 마지막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자신이 낳은 알을 직접 품고 새끼의 탄생을 지켜보고 싶은 것, 그리고 그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아마도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암탉'은 자신의 알을 낳고 까는 대신 남의 아이를 품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천생고아가 되었다가 ‘종’(種)이 다른 엄마를 갖게 된 새끼 ‘초록이’도 마찬가지이다. 자라면서 마치 사춘기 청소년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는다. 당장이라도 둥지를 박차고 나갈 것도 같지만 가늘게 이어진 모자의 끈끈한 정은 어쩔 수가 없었는지 영화는 소설을 충실하고 다채롭게 옮긴다. 특히 수달 캐릭터의 추가는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보아온 주연급을 돋보이게 하는 희극적 특성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 작품의 영화적 완성도와 독자성을 뽐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내리사랑으로 표현되는 부모의 사랑이며, 무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리더의 희생을 다룬 한마디로 희생의 드라마다. 마치 <식스 센스>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어쩌면 살아생전 너무나도 한이 맺힌 암탉의 자유의지를 그린 환상의 모험담이라 할 수 있겠다.
원작소설의 마지막 그림은 너무나 슬프다.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 ‘잎싹’이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과 자연은 닭에게는 너무나 광활한 대지이다. “나를 잡아먹어라.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라.”라는 대사는 영화에서는 너무나 충격적으로 울린다. 관객들은 이제 자신의 아이를 훌륭히 키워 저 멀리 보낸 부모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원수의 아이마저 살리기 위해 마지막 목숨을 기꺼이 내바치는 미물의 선택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동안 국산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은 72만 명의 <로보트 태권브이> 디지털복원판 이었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이 9월 5일 200만을 돌파하고 관객 300만을 향하여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외국 애니메이션으로는 제작비가 무려 1억 5천만 달러(1600억 원)인 <쿵푸 팬더2>가 500만 관객을 모았다. 이에 비하면 <마당을 나온 암탉>의 순제작비는 30억, 후반 홍보비 등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50억 원이란다. <암탉>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무겁고, 힘겹고, 눈물겨운지 알 것 같다.
목소리 연기는 문소리∙유승호∙최민식∙박철민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스타들이 맡았다. 또한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선녹음-후작화-본녹음 시스템’을 도입, 후시녹음 만으로의 제작방식이 주는 완성도의 아쉬움을 최대한 보완하였다.
제작사 오돌또기의 연출팀은 영화의 주공간이 된, 천연 기념물 제 524호로 지정된 우포늪을 여러 차례 답사하여 대한민국의 산∙호수∙들판의 모습을 동양화적 기법을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로 완성하였다. 또한 2D 셀 애니메이션의 평면성을 보완하기 위해 필터링, 블러링, 라이팅 등의 특수효과 및 3D 기법의 합성을 적극 시도해 완성도를 높였으며, 특정 장면에서는 종이를 오려 한 컷씩 움직이며 촬영하는 ‘디지털 컷 아웃 애니메이션’ 기법을 도입하는 등 영화의 형식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음악은 <올드보이><혈의 누><안녕, 형아>로 유명한 이지수 음악감독이 맡았다. 2011년 3월, 체코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CZECH NATIONAL SYMPHONY ORCHESTRA)가 연주한 그의 영화음악은 빼어난 감성과 웅장한 스케일로 완성되었다. 또한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며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주제가는 ‘바람의 멜로디’란 제목으로 현재 대중음악계의 핫 아이콘으로 떠오른 소녀 디바, 아이유가 불러 감동을 더했다.
파수꾼 자리를 두고 경합을 하는 비행 경주 장면에서 ‘초록’과 ‘빨강머리’의 막판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도입한 것이 하모니 기법이다. 하모니 기법은 동작을 표현하는 일반 셀화에서 배경 미술용이라 할 수 있는 수채화풍 일러스트로 화면을 급전환하여 잠시 멈추거나 일정한 틈을 두고 정지 화상 몇 장을 교체함으로써 시청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법.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는 한국적 터치를 그대로 살려 연필 드로잉을 여과 없이 보여 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할리우드의 매끄러운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에겐 그림이 투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용도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사실은 비극적이다. 삶이란 게 원래 그렇게 힘겹다. 자식이란 부모가 아무리 희생하더라도 결국은 둥지를 떠나갈 그런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우리 <마당을 나온 암탉>의 마지막 숨이 끊기기 전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꼭 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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