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st Crew of the Space Shuttle Columbia
우주 비행선 컬럼비아호와 함께 사라진 7인의 우주비행사들
2003-02-10
We name our shuttles for our aspirations—Atlantis, Challenger, Discovery, Endeavour—the risks built into the very idea. Columbia, the fleet's pioneer, was named after an old Boston sloop that was the first American ship to circumnavigate the globe, carrying a cargo of otter skins to China. Any risk much repeated can become routine, and so it was for shuttle flights, except when they become tragic. That's when we are reminded that knowledge doesn't come easy and that many consequences are unintended, especially when we set off on an adventure.
우리는 우주 셔틀에 아틀란티스, 챌린저, 디스커버리, 엔데버 등 우리가 동경하는 바를 나타내는 이름을 붙이는데, 그 생각 자체에 위험성이 내포되고 있다. 셔틀의 선구자격인 컬럼비아호는 중국으로 수달피를 수송하면서 지구를 순항한 미국 최초의 선박인 보스턴 슬룹선의 이름을 딴 것이다. 어떤 위험성이건 자꾸 되풀이 되다보면 예사로운 것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인데 셔틀 비행의 경우도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그러한 것이었다. 그런 경우를 당하면 우리는 지식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결과들중에는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며, 특히 우리가 모험을 시도할 경우 그러하다.
It's strange how we glimpse the impossible only when it fails. How can this spacecraft exist, one that leaves the earth like a ballistic missile, a fragile plane strapped to half a million gallons of explosive fuel, but two weeks later returns as a glider, swooping in wide S turns back to earth under nature's power alone? The engineers who build these things know that so much has to work so perfectly and with such precise timing that we should expect them to fail catastrophically every 100 missions or so. That's why NASA must be America's most optimistic government agency, that it can keep muscling forward in the face of such odds. Columbia was the 88th mission since the Challenger was lost in January 1986—one flight lost to the cold, one perhaps to the heat.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불가능성을 일별하게 되니 이상한 노릇이다. 50만 갤런의 폭발성 연료에 결박된 가냘픈 비행기가 탄도 미사일처럼 지구를 떠났다가 2주 후에는 자연의 힘에만 의존하는 글라이더가 되어 큰 S자를 그리며 지구로 귀환하는, 이런 우주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렇듯 많은 것들이 정확한 타이밍으로 그렇듯 완벽하게 작용해줘야만 하는 것이므로 100번에 한 번쯤 비극적인 실패가 발생하게 되는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는 것을 이것을 건조하는 기술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사(NASA)야말로 미국의 정부기관들중에서도 가장 낙천주의적인 곳이 아닐 수 없고, 그렇기에 그들은 그와 같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우격다짐으로 일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컬럼비아호는 1986년 1월에 상실하게 된 챌린저호로부터 88번째가 되는 우주여행을 했던 것인데, 하나는 냉기가 그 원인이었고 또 하나는 아마도 열이 그 원인이었던 것 같다.
This crew flew into that anniversary and marked the moment on board. Mission chief Rick Husband called for a moment of silence. "They made the ultimate sacrifice, giving their lives to their country and mankind," he said of the astronauts of Challenger and Apollo 1, whose three astronauts died in a launch-pad fire in January 1967. "Their dedication was an inspiration to each of us." It would be cheaper and safer to explore space with cameras and computers rather than men and women. But something would be lost as well, something brave and passionate that was sent in the messages and shown in the lives of the Columbia crew, who knew better than most the risks they took.
이번 탑승자들은 그 기념일을 앞두고 우주로 비행하여 그 곳에서 그 순간을 기념했다. 팀장인 리크 허즈번드는 묵념을 하자고 했다. "그들은 나라와 인류를 위해 목숨을 내줌으로써 희생의 극치를 보여줬습니다"라고 그는 챌린저호의 탑승자들과 1967년 1월에 발사대 화재로 사망한 아폴로호의 세 승무원들을 기리면서 말했다. "그들의 헌신은 우리들 모두를 분발케 했습니다." 카메라와 컴퓨터로 우주를 탐험하는 것이 사람을 보내서 하는 것보다 비용도 덜 들고 안전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탑승하지 않으면 뭔가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고, 자신들이 당면한 위험을 대다수 사람들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컬럼비아호 승무원들의 메시지와 그들의 삶에서 보게 되는 용감하고 정열적인 그 어떤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More than half the crew were rookies, who seemed to delight in the surprises of space, highly disciplined engineers and doctors reveling in a place where rules are broken, where physics plays games—Look, my cup is floating. They swam through the Columbia's passageways like happy dolphins, thrilled with their good fortune, doing somersaults.
승무원의 반 이상은 신참들이었는데 고도의 훈련을 쌓은 기술자와 의사인 그들은 법칙이 깨져서 물리학이 장난을 치는 공간에서 희열을 느끼면서--봐요, 내 컵이 떠있어요--우주의 놀라움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운에 스릴을 느끼면서 신이 난 돌고래처럼 공중제비를 돌면서 컬럼비아호 통로를 유영했다.
This came naturally to David Brown, who in an earlier life was a tumbler and stilt walker in the circus and rode a 7-ft. unicycle before he settled down to be a flight surgeon and naval aviator. That turned out to be good training: "What I really learned from that," he said once, "is kind of the teamwork and the safety and the staying focused, even at the end of a long day when you're tired and you're doing some things that may have some risk to them." This was his first space flight, and when he talked about it with friends, he talked faster, and his eyes got brighter, and his hands started moving, because there was no other trip like this.
항공군의관과 해군항공사로 정착하기 전에 서커스에서 텀블링과 죽마 타기를 하고 7피트의 일륜차를 탄 전력이 있는 데이비드 브라운에게는 그것이 생소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의 전력은 훌륭한 훈련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통해 정말 배우게 된 것은 일종의 팀웍과 안전성 그리고 집중력의 유지였는데, 긴 하루가 끝나고 지쳐 있으면서 위험이 따를 수도 있는 그 어떤 일을 하는 경우에조차 그것이 유지되었다." 이번은 그의 첫 우주비행이었는데 이에 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면 그는 말이 빨라지고 눈은 초롱초롱해지면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와 같은 여행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Whatever their specialties, all were teachers. They were growing bone cells and prostate-cancer cells and protein crystals, studying the effect of dust storms on the global climate and space flight on the cardiovascular system. Michael Anderson, who used to build moon houses for his sister's Barbies, once told a group of second-graders, "Whatever you want to do in life, you are training for it now." He worked so hard in college that he saw only two movies the entire time, but he wound up with a degree in physics and a chance to do what he had wanted ever since he was 3. At his old grade school in Avondale, Ariz., where his sister teaches, there were shuttle-shaped posters saying "You are my hero, Michael Anderson" and "The sky's the limit". A new model of the space shuttle had just arrived, and kids flocked to it in the library.
특기가 무엇이건 간에 그들 모두는 선생님들이었다. 그들은 골세포와 전립선암 세포와 단백질 결정체를 배양하고 있었고, 먼지 바람이 지구 기후에 미치는 영향과 우주비행이 심장혈관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었다. 여동생의 바비인형을 위해 '문 하우스(달 집)'를 지어주곤 했던 마이클 앤더슨은 2학년 아이들을 보고 "너희가 인생에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을 위한 훈련을 너희들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대학시절 어찌나 공부에 열중했던지 영화라고는 두 편 밖에 보지 않았지만 물리학 학위를 따게 되었고, 그가 3살 적부터 하고 싶어했던 일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의 여동생이 교사로 있는 애리조나주 애본데일의 한 초등학교, 그가 다녔던 그 학교에는 셔틀 모양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마이클 앤더슨, 그대는 나의 영웅" 그리고 "한없이 가자"였다. 우주 셔틀의 새 모델이 방금 도착하여 아이들이 도서실로 몰려왔던 것이다.
Pilot Willie McCool answered e-mail questions in space over NASA's website. He explained how the G-forces on takeoff feel kind of like a bear sitting on your chest. He had trouble sleeping that first night, when you are essentially floating in your bed. The hardest part of his job was having to take blood from his fellow astronauts. "He was afraid he would hurt somebody while he was drawing blood," one friend and fellow pilot says. They had been serving together on the aircraft carrier U.S.S. Enterprise when McCool got word he had been accepted by NASA. "I know he struggled with that decision, and I know that it was a family decision," he says of the father of three sons. "Willie was very much a family man and a good friend."
조종사인 윌리 맥쿨은 나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우주에서 이메일 질문에 응답했다. 그는 이륙시의 중력감이 마치 곰이 가슴에 앉아있는 듯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첫날 밤 실질적으로 침대속에 떠있는 상태에서 그는 잠을 잘 이룰 수 없었다. 그가 맡은 일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동료 우주인들로부터 혈액을 채취하는 일이었다. "그는 피를 뽑으면서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었어요"라고 친구인 동료 조종사는 말한다. 맥쿨이 나사로부터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들 두 사람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어렵게 그 결정을 내렸으며 그것은 가족이 내린 결정이었던 것으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세 아들의 아버지인 맥쿨에 관해 이야기했다. "윌리는 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었고 좋은 친구였어요."
Shuttle missions are always a mix of symbol and substance; the Challenger had the schoolteacher Christa McAuliffe; Columbia had Ilan Ramon, the first Israeli astronaut and a decorated F-16 pilot, whose mother and grandmother were Auschwitz survivors. He hoped that his adventure would be a happy respite from a hard winter for his embattled country: Israel could travel with him, to feel safe in a borderless universe. Even a Palestinian Authority spokesman had wished for his safe return. "We flew over Jerusalem," he said in an interview from space. "Israel looked so small and beautiful." He had asked Prime Minister Ariel Sharon for an Israeli emblem to take with him. And he borrowed a drawing from Jerusalem's Holocaust museum—by Peter Ginz, a boy in a concentration camp—of what he thought the earth would look like from the moon. Ramon sent his last letter by e-mail to his wife Rona on Friday: "Though everything here is astonishing," he wrote, "I can't wait until I'll see you all. Big hug to you and the kids, Ilan."
셔틀의 임무에는 언제나 상징적인 것과 실질적인 것이 뒤섞인다. 챌린저의 경우 거기에는 교사인 크리스타 맥콜리프가 타고 있었다. 컬럼비아호에는 일란 라몬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최초의 우주비행사이자 훈장을 받은 F-16 조종사인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난 분들이었다. 그는 그의 우주비행이 싸움에 시달리고 있는 그의 나라의 혹독한 겨울철을 잠시 피해서 지내는 기회가 되며, 이스라엘도 그와 더불어 여행하면서 국경 없는 우주공간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한 대변인마저도 그가 안전하게 돌아와 주기를 기원했다. "우리는 예루살렘 상공을 날았습니다"라고 그는 우주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말했다. "이스라엘은 무척 작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는 총리인 아리엘 샤론에게 우주로 가지고 갈 이스라엘 기장을 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유대인 학살 박물관으로부터 그림 하나를 빌렸는데 그것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소년 베드르 긴즈가 달에서 본 지구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라몬은 금요일 그의 마지막 편지를 아내인 로나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놀랍지만 우리가 만날 순간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워져요. 당신과 아이들을 꼭 껴안으면서, 일란."
All were adventurers long before they became astronauts. Before Kalpana Chawla was born, her mother had been hoping for a son. "But out came Kalpana," her mother told the Week magazine in India, "who has achieved more than a boy could." Kalpana decided she wanted to be a space engineer by the time she was 14 and was the only woman to study aeronautics at Punjab Engineering College. Still, the idea of going to America was a shock to the members of her traditional family, and they agreed only on the grounds that her brother Sanjay would come with her to settle her in. She became an astronaut in 1994 and flew her first shuttle mission in 1997. She couldn't get over the marvel of it. "You just hang; you can't feel your hands," she told Colorado Engineer magazine. "It's not like on earth, where you can feel the ground and your elbows feel the chair. The only thing I feel is my thoughts." She used to set herself a time during meal breaks, always aiming for sunrise, so she could watch the earth move from dark to light as she went racing past.
그들은 모두 우주비행사가 되기 오래 전에 이미 모험가들이었다. 칼파나 촐라가 출생하기 전에 어머니는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기를 바랬다. "그런데 칼파나가 태어나서 사내아이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많은 것을 해냈어요"라고 어머니는 인도의 주간지 <위크>와의 대담에서 말했다. 칼파나는 14세가 되면서 우주 엔지니어가 되기로 작정했으며 푼잡 공과대학에서 항공학을 전공하는 여자는 그녀뿐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으로 간다는 것은 전통적인 그 집 식구들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으므로 그들은 오빠인 산자이가 함께 가서 그녀를 정착시키도록 한다는 조건에서만 미국 행에 동의했다. 그녀는 1994년에 우주비행사가 되어 1997년에 첫 셔틀 비행을 체험했다. 그 경이로움에서 그녀는 헤어날 수가 없었다. "사람이 그저 떠있는 거 있죠. 자기 손에 대한 감이 없는 거예요"라고 <콜로라도 엔지니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땅을 느낄 수 있고 팔꿈치로 의자를 감지할 수 있는 지구와는 다릅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내 생각뿐입니다." 그녀는 우주를 비행하면서 지구가 밤에서 낮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기 위해 언제나 식사 때 일출에 맞추어 시간을 잡았다.
She came away reminded that the world is very, very small, wishing we could all take the trip, because we would all come back better housekeepers, wiser stewards. "This planet below you is our campsite," she said, "and you know of no other campground."
그녀는 세상이 아주 아주 작다는 것을 실감하고 돌아오면서 우리 모두가 우주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봤다--그러면 다들 보다 낳은 주부가 되고 보다 현명한 살림꾼이 되어서 돌아올 것이니까. "아래 보이는 지구는 우리의 캠프장이고 우리에게는 캠프장이라고는 달리 없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The astronauts' final day began with Scotland the Brave, piped over the radio. The song was for Laurel Clark, the doctor from Iowa who was coming to the end of her first space flight. Did she know the words? "Wild are the winds to meet you. Staunch are the friends that greet you, kind as the love that shines from fair maidens' eyes." Her friends and family had been waiting to greet her from the moment she left. After Columbia lifted off safely, Clark's brother Daniel Salton told the Milwaukee Journal Sentinel that he realized he had been holding his breath for about 10 minutes. "Anyone who has watched (video of the) Challenger can't even hardly bear going through" the point where the Challenger exploded, her other brother Jon said.
우주비행사들의 마지막 날은 라디오를 통해 들리는 '용감한 스코틀랜드(Scotland the Brave)'로 시작되었다. 그 노래는 첫 우주비행을 끝내 가고있는 아이오아주 출신 의사 로렐 클라크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 가사를 알고 있었을까? "그대를 맞는 바람은 거칠게 불고 있는데, 그대를 맞아주는 친구들은 흔들림이 없고 고운 처녀들의 눈에서 반짝이는 사랑처럼 정겹네." 그녀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그녀가 떠나는 순간부터 그녀를 반갑게 맞아들일 순간을 학수고대했었다. 컬럼비아호가 무사히 이륙하자 클라크의 남동생인 대니엘 솔튼은 자신이 약 10분간 숨을 죽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밀워키 저널 센티널>에 말했다. 그녀의 또 한 사람의 남동생인 존은 "챌린저호(의 비디오)를 봤던 사람이면 누구든지" 챌린저호가 폭발했던 단계까지만 보고 "차마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말했다.
"After that point, you can relax." Clark's son Iain said he wished someone else could have gone instead of his mom because he was missing her. She had taken with her a sheet containing all the pictures and fingerprints of his second-grade classmates. She e-mailed her family about how beautiful Mount Fuji looked from space, and the Sahara Desert, and the stars, up close. The fears that weighed on her family sat lightly on her. "To me, there's a lot of different things that we do during life that could potentially harm us, and I choose not to stop doing those things," she said. "They've all come to accept that it's what I want to do."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긴장을 풀 수 있어요." 클라크의 아들인 이언은 엄마가 그리운 생각에 엄마 대신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의 2학년 급우들의 사진과 지문이 담긴 한 장의 종이를 가지고 갔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우주에서 보는 후지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리고 사하라 사막과 별들이 바짝 다가와 보인다고 말했다. 그녀의 가족들을 짓누르고 있는 두려움이 그녀에게는 가볍게 와 닿았다. "내가 보기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해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들(식구들)은 모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받아들이기에 이르렀습니다."
So the reunions were ready, the celebrations waiting at the Kennedy Space Center, where Columbia was due to land. In Spokane, Wash., neighbors of Anderson's parents thought maybe they were having a party Saturday morning, a day to celebrate their son's second space adventure, but then it was the pastor coming and a neighbor with groceries because the truth was on TV. The countdown clock in Florida had started counting back up, when the landing time had passed and the shuttle had not arrived. People watching in eastern Texas heard a crushing rumble outside, the dogs whined, and horses started, and a poisonous rain of broken shuttle pieces fell onto backyards and roadsides and parking lots, through the roof of a dentist's office, bits of machinery in Nacogdoches, a hand and leg in San Augustine. NASA told everyone to stay away from the debris, that it could kill you, but the agency mainly wants a chance to gather the evidence and deter grave robbers. NASA buried all the remains of the Challenger in an old missile silo and sealed it with tons of concrete so the remains would never be auctioned off.
그렇게 해서 다시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컬럼비아호가 착륙할 예정인 케네디 우주센터에서는 축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워싱턴주 스포케인에서는 앤더슨의 부모님들이 아들의 2차 우주비행을 축하할 날인 토요일 아침에 파티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TV를 통해 사실을 알게 된 목사와 식료품을 든 동네 사람이 찾아왔다. 플로리다의 카운트다운 시계는 착륙시각이 지났는데도 셔틀은 도착하지 않은 가운데 시간을 다시 기록해 올라갔다. 동부 텍사스주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밖에서 요란하게 우르르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고, 개들은 낑낑댔으며, 말들이 놀라는 가운데 망가진 셔틀의 조각들이 뒤뜰과 길가와 주차장에 유독성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나코그도치에서는 한 치과의원 지붕을 뚫고 기계 조각들이 떨어졌으며, 산 오거스틴에는 손과 다리가 떨어졌다. 나사는 그 부스럭지들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라면 아무도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나사가 주로 원하는 바는 증거수집 기회를 확보하면서 본격적으로 도둑질을 일삼는 자들을 제지하자는 것이다. 나사는 챌린저호의 잔해 전부를 낡은 미사일 사일로에 묻고 여러 톤의 콘크리트로 그것을 봉해버렸는데 그 잔해가 경매에 부쳐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It tells you something about America's new reflexes that when Columbia vanished, NASA chief Sean O'Keefe called the White House and a Cabinet office that didn't even exist when the Challenger crashed: Homeland Security. "There are no survivors," the President said, but by then we had been watching the endless video of what looked like the shooting stars of August, knowing that those bright white puffs of star were made of metal and rubber and men and women. Like other fiery images, this one keeps replaying in the dark long after you turn it off, and while it felt like an attack on the calm of this watchful winter, in this case there was no apparent evil, no enemy other than the limits of man and machines and the tension between the goals we set and the risks we take.
컬럼비아호가 사라졌을 때 나사 책임자인 숀 오키프가 백악관과, 챌린저호 폭발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중앙관서 국토안보국에 연락했다는 사실은 미국의 새로운 반사작용에 관해 무언가를 이야기해준다. "생존자는 없다"고 대통령은 말했지만 그때쯤에는 사람들이 8월 유성과도 같은 것의 비디오 화면을 끝없이 되풀이해서 보고 난 터라 그들은 밝게 빛나는 흰 한 줄기의 그 별이 금속과 고무와 인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것을 바라봐야 했다. 다른 짜릿한 영상처럼 이 영상도 끄고 난 연후에도 한참 동안 어둠속에서 되풀이해서 다시 나타나는데,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는 이 겨울철의 고요를 깨뜨리는 공격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경우 이렇다 할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적이 있다고 한다면 인간과 기계의 한계 그리고 우리가 설정하는 목표와 우리가 무릅쓰는 위험간의 긴장이 바로 우리의 적인 것이다.
—With reporting by Michael Duffy/Washington, Cathy Booth-Thomas/Nacogdoches; Simon Crittle, Amy Goehner, Sean Gregory, Ratu Kamlani and Julie Rawe/New York; Meenakshi Ganguly/New Delhi; Rita Healy/ Denver; Broward Liston/Cape Canaveral; Matt Rees and Aharon Klein/ Jerusalem; and Winston Ross/Spokane
notes-------
*Atlantis: 아틀란티스섬(지브랄타 해협 서쪽 대서양 해저에 함몰했다고 하는 전설의 섬)
*endeavour: 노력, 시도
*sloop: 슬룹선(돛대 하나의 배)
*circumnavigate: ~을 주항(周航)하다, 배로 일주하다
*otter: 수달
*set off on an adventure: 모험을 시작하다
*swoop: 급강하하다
*catastrophically: 비극적으로, 무참하게
*NASA: 미국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muscle forward: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가다
*odds: 가능성, 승률
*ultimate sacrifice: 궁극적 희생
*rookie: [美口] (프로야구) 신인선수, 풋나기, 초심자
*highly disciplined: 고도의 훈련을 갖춘
*revel: 매우 기뻐하다(즐기다)
*somersault: 재주넘기, 공중제비
*unicycle: (곡예용) 일륜차
*flight surgeon: [공군] 항공군의관
*aviator: 항공사, 조종사
*stay focused: 집중력을 유지하다
*speciality: 특기
*bone cell: 골세포
*protein crystal: 단백질 결정체
*prostate: [解] 전립선
*cardiovascular system: 심장혈관 계통
*Barbie (Doll): 바비인형(금발 푸른 눈의 플라스틱 인형)
*The sky is the limit.: [口] 제한이 없다, (돈이) 무제한으로 있다
*G-force: [物] 중력(gravitational force)
*Auschwitz survivor: 아우슈비츠 수용소(2차대전 때 나치가 유대인을 집단 수용했던 곳)에서 살아난 사람
*respite: (고뇌 일 따위의) 일시적 중지, 소강상태
*embattled: 싸움에 대비한
*emblem: 상징, 표상
*Holocaust: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
*steward: 가령(家令), 청지기, 지배인
*pipe: [美俗] 전해주다
*fair: 아름다운, 고운, 예쁜
*rumble: (천둥 수레 따위의) 우르르 울리는 소리
*reflex: [生理] 반사작용
*Homeland Security: 국토안보국(9.11사건 이후 미국에 새로 생겨난 중앙관서)
*shooting star: 유성
*puff: 한 번 휙 불기, 한 번 부는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