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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기다렸다.
2008년 가을, 오룸 갤러리www.oroomgallery.com에서 한 번, 토탈 미술관www.totalmuseum.org에서 한 달 가량의 시차를 두고 두 번, 쉼 박물관shuim.org에서 하루 동안 두 번 그를 만났다. 앞으로 아마 나는 토탈에 다시 한 번 더 갈 것이고, 쉼 박물관엔 전시가 끝나는 12월 18일까지 시간이 허락될 때 마다 들리고 들리고 들리게 될 것이다.
나는 알렉산더 칼더http://100.naver.com/100.nhn?docid=152138를 좋아한다. 몬드리안에 압도된 그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그 구체적 표현이 ‘움직이는 조각(mobile)’이었다. 그의 모빌은 조각을 대좌(臺座)에서 해방시켰고, 양감에서도 해방시켰다. 부모님은 예술가였고, 그의 전공은 기계공학이다. 그는 2차원의 평면을 단지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3차원 공간으로 끄집어내었고, 그 과정에는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물리학적 감각이 깔려있다.
제임스 터렐은 반대다.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펼쳐낸다. 그의 평면들은 너무나 균일하고 너무나 엄격하다. 그 과정에는 인지신경학이라거나 물리학적 요소가 존재한다. 나로선 이런 기술적 호기심을 져버리는 것이 힘들다. 너 역시 의자 위로 올라가 감히 광원을 짐작하고 골똘히 생각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의 총명함. 그리고 호기심 이상의 무엇, 정신적으로 열려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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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James Turrell은 1943년 캘리포니아의 Los Angeles에서 태어나 Pomona college에서 지각 심리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는 심리학을 비롯하여 수학, 유기화학, 물리학, 지리학, 미술사 등을 접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졸업 후에 캘리포니아 소개 얼바인 대학교(California University at Irvine)에서 미술사와 미술이론을 공부하였습니다. Turrell은 비행조종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 항공술과 천문학에 능하였습니다. 비행을 통해 공간 감각, 하늘의 빛깔, 쏟아지는 햇빛, 기상조건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전 작품에 통해 드러나는 빛에 대한 인식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개인의 정신적 수련과 명상을 중시하는 Quaker교 집안에서 자란 Turrell은 작품 속에서 그의 종교적 배경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퀘이커 교도식 교육을 ‘숭고함을 정확하고 엄격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묘사하였는데, 이런 교육의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은 관객이 고요한 응시, 인내와 명상이라는 유사한 훈련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다 잘 인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 http://shui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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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오룸에서 만난 터렐은 LED와 타이머를 사용했다는 기술적 이야기 외엔 특별히 나를 잡아끄는 것이 없었다. 기다림에 비해 감흥이 밋밋했다.
10월 12일 토탈에서 칼같이 분할되고 매끄럽게 채워진 그의 면과 직면한 순간, 사실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을 애써 말로 표현하자면, 뭔가 쉬 닿을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숭고하고 절대적인 공간이 있고, 그 앞에서 나는 좋지도 싫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어느 지점에서 그 지켜봄을 그 들여다 봄을 그 빠져듬을 멈춰야 할 지 가늠할 수가 없다. 적어도 그 공간 앞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돌아오니 자꾸만 떠오른다. 그의 작품이 서서히 인지되었듯, 작품에 대한 나의 의식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11월 2일 오늘 다시 갔다. 토탈에서 멀지 않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 쉼 박물관에 먼저 찾아 갔다. 낮시간의 스카이 스페이스, 하늘과 벽과 그림자, 시간과 공간이 2차원으로 펼쳐지는 것을 한 50여분쯤 가만히 누워서 쳐다봤다. 그냥 쳐다봤다. 너는 뭔가 굉장한 기분을 느끼는 듯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너의 심장이 부러웠다.
그후에는 관장님의 따님으로 한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전업을 결심하고 프랑스로 넘어가 그곳에서 프랑스 정부가 지원하는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며 작가로 활동 중인 남은정 작가님을 따라 박물관 구석구석을 걸었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은 우리에게 매순간 정성스럽고 명쾌한 목소리로 많은 이야길 전해주셨다. "토탈 들렸다 일몰 시간에 다시 올게요"
토탈 미술관, 1층의 맨 처음 방과 두번 째 방, 지하 2층의 세번째 방, 시간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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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의 말 : 1976년 처음 선보인 타이니 타운(Tiny Town) 작업은 터렐의 다른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빛이 환영적으로 작용하여 가상의 공간을 창조합니다. 이 작업에서는 방이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지는데, 방의 절반은 감각 공간으로, 나머지 절반은 지각 공간으로 구성됩니다. 캄캄한 방안에 들어서서 감각 공간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을 지각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눈이 점차 어둠에 적응하게 되면 앞쪽에 희미한 사각형이 인지됩니다. 원거리에서 보면 그 사각형은 불투명한 표면으로 인해 2차원의 회화작품처럼 보이지만, 점점 다가갈수록 표면은 투명해지며 빛으로 가득 찬 무한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관객은 빛과 공간의 존재를 온전하게 체험하게 되며 이를 통해 무한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빛이 너무나 미약하여 벽도 의자도 보이지 않고 그저 깜깜하기만 하다. 서서히 내 눈이 적응을 하면 모든 것이 분간이 되는 시점이 온다. 방의 구석구석을 쳐다보고, 사각 프레임 너머의 모서리가 없이 빛으로 채워진 둥근 공간을 살피던 중, 다른 관람객이 벽을 더듬으며 들어온다. 그들은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내 눈은 그들을 너무나 선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그들을 보니, 좀전에 내가 저랬었겠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갤러리의 말 : 섈로우 스페이스(Shallow Space)는 월 프로젝션(Wall Projection)작업에서 발전한 작품으로, 관객이 차지하는 공간을 보다 건축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지각은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에 구속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프로젝션(Projection) 작업과 마찬가지로 관객의 공간지각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만, 프로젝션이 평면에서 공간을 이끌어내려고 한 반면, 섈로우 스페이스는 공간을 좀더 건축적으로 사용하여 3차원에서 2차원의 평면을 끌어냅니다. 이 작품은 막다른 벽면으로부터 다양한 거리를 두어 파티션 벽(partition wall)을 설치하고, 파티션 벽의 뒤쪽으로부터 흘러나온 빛이 방 전체로 퍼지도록 했습니다. 원거리에서 보면 기존의 벽과 파티션 벽 사이의 공간감은 사라지고 실제로 공간은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평편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즉, 3차원의 공간에 빛을 비추어 2차원적인 구성을 시사하는데,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에 따른 입체감이 환영적으로 작용하여 가상의 공간을 생성합니다.
√ 너의 감탄 "아, 굉장하다는 말 밖엔!"
갤러리의 말 : 빛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1960년대 후반, 어두운 공간의 벽면과 모서리에 프로젝터로 빛을 투사하여 기하학적인 형상을 보여주는 프로젝션(Projection) 작업을 통해 처음 선보였습니다. 프로젝션 작업은 모서리에 빛을 투사한 크로스코너 프로젝션(Cross-corner Projection) 작업과 벽면에 빛을 투사한 월 프로젝션(Single-wall Projection) 작업으로 구분되는데, 이번에 전시되는 "자디토(Jadito)" 는 월 프로젝션 작업입니다. 프로젝터의 빛으로부터 생성된 사각형은 바닥에 부유하고 있는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벽에 베어 든 것처럼 보입니다. 흔들거리는 사각형은 관객으로 하여금 본다는 행위(seeing)에 집중하게 하며, 머지않아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합니다. 프로젝션 작업은 이후 빛을 이용해 건축적 공간을 다룬 섈로우 스페이스(Shallow Space)와 타이니 타운(Tiny Town)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 앞선 방의 작품들과 매한가지로 저 사각형을 빛으로 연출된 빈 공간으로 여길 듯 하여, 내가 보라며 손가락 그림자를 연출하자 너는 놀란다. 이번엔 빈 공간이 아니라 정말 외벽이다. 그리고 이내 광원과 스크린 사이에서 장애물(우리 입장에선 사물이지만 빛의 입장에선 장애물)이 광원에 가까워질수록 그림자의 외곽선이 불명확해지는 빛의 회절을 이야기한다. 의아해하기를, 어째서 터렐이 연출한 사각 프레임의 외곽선은 프레임을 연출하는 장애물이 광원과 무척 가까이 있음에도 이토록 날카로울 수가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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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전에 다시 쉼 박물관,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SKY SPACE'에 누워있으니, 심장이 잠시 비정상적으로 요동칠 만큼 자극적인 순간이 왔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일몰이 끝나고 하늘은 색을 잃었다. 그 사이 스페이스 내부의 인공 조명이 몇 차례 섬광을 일으킨다. 나는 그 섬광을 네 번 겪었다. 그리고 시각적 고요가 찾아왔고, 나를 제외한 모든 관람객이 그 공간을 떠났다. 혼자 남은 나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다른 관람객이 뭉쳐놓고 간 열 장의 모포를 개어 단정하게 쌓아두었다. 입구 왼쪽 의자에 다섯장, 입구 오른쪽 의자에 다섯장
비가 오는 날, 비가 그리는 드로잉 선이 그렇게 아름답다구요. 눈이 내리는 날, 눈이 만들어내는 그 무늬가 또 그렇게 아름답다구요. 끄덕끄덕, 다시 놀러 올게요. 남은정 작가님, 석사 학위 논문 주제가 20세기 라이트 아트였다구요. 제임스 터렐과 제니 홀처와 댄 플래빈과 브루스 나우만을 이야기 한다구요. 끄덕끄덕, 수일내로 찾아 읽어야겠어요. 또 이야기 나눠요. 한국에서든 프랑스에서든 직접적으로든 작품을 통해서든 또 뵙고 또 뵈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첫댓글 마인드 스페이스전....;;;? 아- 기억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