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위기
글쓴이 나유나유
02 탐색
일단 목표물로 찍어놓은 이상 어떻게든 덮쳐야 한다.
“이거 뭐야?”
규환은 민희가 건넨 작전용 노트를 읽다가 한 구절에서 눈이 멈췄다.
“뭐긴 작전계획서지.”
민희는 설렁설렁 말했다.
“너 확신은 있는거야?”
“없어.”
며칠전의 날뛰던 모습과는 사뭇다른 모습. 슬슬 진지하게 해볼생각인 모양이었다.
“안그래도 지금 은퇴다 뭐다 해서 난리인데 거기에 스토킹까지 해봐라 어떻게 되나.”
“하지만 이제 케이블 방송도 주간지도 여성잡지도 와이드쇼도 모두 소용없게 되었는걸.”
“인터넷에서 찾아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랬다. 이미 사태는 급박해졌다. 며칠 전의 습격사건.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녀의 집이 초토화되고 그 배후에는 매니저인가 뭔가하는 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역시 그녀는 그런 간단한 습격따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병원에 있다고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여자의 몸으로 우왁스러운 폭력배들을 그것도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두명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들을 간단히 이겨냈을 리가 없었다. 일반사람들은 그녀가 이미 ‘당했다’라고 생각하지만 규환과 민희의 생각은 달랐다. 무언가가 있다. 그녀에게는 역시 무언가가 있었다. 설령 자신들이 찾고있는 존재가 아닐지라도 그녀에게는 보통이 아닌 무언가가 있었다. 도저히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슬슬 행동에 나서야 할 시점이었다. 이전의 경우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녀는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자. 이 세상에 자신을 비추고 있는 자일지도 모른다. 규환과 민희처럼. 하지만 좀처럼 방법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다지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민희의 경우는 아예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상황이다.
문득 규환은 기둥에 걸린 둥근 아날로그 시계를 보았다. 오전 아홉시 삼십오분. 슬슬 가게를 열어야 할 시간이었다. 문득 중요한 것이 생각났다는 듯 규환은 찌푸린 얼굴로 민희를 쳐다보았다.
“너 오늘 학교 안가?”
“오늘은 일요일이랍니다. 규환오라버님.”
그랬다 오늘은 일요일. 그 사건이 터진지 벌써 열흘째. 정말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다.
“가게 열거니까 돌아가.”
“오늘은 가게에서 공짜로 커피를 마시면서 열심히 혼자 작전을 짜겠습니다 대장.”
“호오? 알바생들 오면 어떻게 하려고?”
“걱정없습니다 대장. 구석자리에서 클럭킹하고 있겠습니다.”
굳이 마법으로 따지자면 투명화의 술법. 물론 완벽하게 투명해지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존재감을 극도로 희미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민희는 본래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이. 자신의 존재감을 0에 가깝게 희석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손님에게는 그 자리에 사람이 앉아있는 것으로 판단되기는 하는데 전혀 관심에 들어가지 않는 마치 공기 같은 존재로 있게 되고, 점원에게는 그 자리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말하자면 있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가볍게 말하지만 이런 술법을 쓰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민희만이 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노트북 빌려줘. 와이브로 되지?”
“아 어.”
“땡큐.”
민희는 구석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그 옆에는 노트가 몇권이나 널부러져 있었고 이따금 노트와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었다. 규환은 가게 문을 열었다. 오늘은 주말이라 아르바이트생과 직원들이 오후부터 출근한다. 사실 주말이 더 바쁘긴 하지만 일요일만큼은 점원들과 알바생들에 대한 작은 배려로 오후 출근을 시킨다. 사실 오전에 손님이 별로 없는 이유도 있지만. 카페 위치가 애매한 장소에 있어서 아는 손님은 다른 곳에 안 가고 이 카페로 찾아오지만 모르는 손님은 찾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오는 손님이라고는 민희가 가끔 인터넷 지식검색이나 블로그 같은 곳에 일부러 광고성 소개글을 띄운 걸 보고 오는 사람들 정도.
대부분은 알음알음으로 찾아온다. 그럼에도 카페가 번성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긴 하다.
“어차피 오전에 올 사람도 없고 문 열어도 소용없을라나?”
규환의 말에 민희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과 공책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주술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종의 가상세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단순한 0과 1의 세계에 마법 따위가 끼어들 틈이 어디에 있냐고 하지만, 마법 자체는 본래 존재와 부존(不存)을 다루는 술법. 이만틈 쓰기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도 없는 셈이다.
민희는 어차피 찾아야 하는 아영에 대한 것과 함께 그동안 찾아다니던 정보들을 재구축해서 파일로 저장했다. 아영에 대한 정보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것 아영에게서 직접 얻은 것을 포함해서 도합 520392종. 그중 중복되는 정보를 제외하고 나머지 정보를 추려냈더니 10만건 정도로 압축되었다. 대략 5배 정도로 잘못된 정보가 있었던 듯하다. 그 것을 마법진으로 전송 노트에 펼쳐둔 간의 마법진에서 필요한 정보만 따로 분류해 냈다. 일단 기본적인 분석결과로 봐서는 그녀에게는 확실히 묘한점이 있었다. 아무리 천재니 뭐니 하지만, 결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었다. 민희가 만들어 낸 가상현실전용 마법진을 통해 몇가지 재미있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그 한 가지는 아영은 인간이 이끌리기 쉬운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 것은 음(音)의 유혹이라는 함정. 인간은 5감을 기초로 행동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성적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느끼는 다섯가지 행위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가기 마련이다. 그 중 음. 즉 소리의 유혹에 그녀는 전혀 걸려들지 않는다. 에코스나 그녀가 프로듀싱한 음악을 보면 절대로 이 조합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조합으로 이루어진 앨범이 많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결코 불가능한! 인간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음의 유혹에 이끌려 결코 이렇게 배치할 수 없는 위치에 배치된 곡들이 많았다. 인간은 음이 가지는 깊숙한 곳의 유혹. 단순히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음이 내포하고 있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굴복하고 따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절대로 듣고 분석해내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음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존재의 형태. 존재의 힘. 그 것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가끔 가수들이 ‘실은 이 앨범은 이렇게 이렇게 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라고 할 때가 있다. 사실 그렇게 되는 경우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이라는 생물은 음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존재의 힘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영은 달랐다. 존재의 힘을 넘어서서 그 존재의 힘을 거꾸러트리는 배치. 음을 다루고 분석하는 힘. 마치 음의 내부의 존재의 힘을 듣는 것만으로 알아내버린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가수이기 때문에 다른 쪽 존재의 힘도 동일하게 다룰 수 있는지는 자료가 부족하긴 하지만, 민희는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았다. 그녀가 진짜 존재의 힘을 다루는 능력이 있다면? 지금까지 오인했던 많은 타겟들. 그들은 존재의 힘을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힘의 영향력을 너무나도 강하게 받고 있는 자들이었다. 생 그 자체가 존재의 힘에 휘둘리고 있는 자도 있었고, 받고 있는 존재의 힘에 눌려버린 자들도 있었다. 모두 그 타겟의 존재 자체에 간섭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해서 오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영은 다르다. 존재의 힘을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마법이라는 힘을 빌리지 않고는 존재의 힘의 근원에 다가설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오랜 실험을 반복하여 얻어진 일종의 과학적 결론. 즉, 아영이 존재의 힘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것은 설령 자신들의 세계의 신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필시 누군가에게 노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존재의 힘을 다룰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이 세상을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도 또 세상을 쪼개는 것도 복사하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마음까지 손에 넣는 것도. 모든 인과를 뒤틀어버리는 것도 시간을 앞이나 뒤로 돌리는 것도.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이 세계의 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의 신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의 신이 된다면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이 대단한 사실을 어쩌면 그녀 자신은 눈치채지 못하고 잇을 수도 있다. 이것이 민희가 내놓은 하나의 가설이었다. 물론 이 가설의 출발점에는 한 가지의 펙트(Fact)가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딸랑
“어서오세요. 아!”
아영이었다. 병원에서 나온지 며칠되지 않았을 그녀. 이 가게에 들릴 확률이 높아지도록 인과를 약간 손보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이곳에 이렇게 자주 올 리가 없었다. 우연……. 아니 필연인 것이다. 민희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새끼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렀다. 주머니에는 이럴 때 사용하려고 늘 소독한 바늘을 가지고 다녔다. 역시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그리고 노트에 손가락의 피를 섞은 잉크로 재빨리 마법진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두 눈은 아영에게 꽂아둔 채로 10초도 되지 않아 원과 곡선과 고대갑골문과 룬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법진이 완성되자 민희는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타액에는 혈액을 응고 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쉽게 말해 임시 지혈. 그리고 마법진을 노트북 아래 깔고 아영을 향해 키보드와 터치패드를 움직여 그녀로부터 확실한 정보를 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쓸모없는 부스러기들이 모아지던 중. 규환이 커피를 건네준 그 순간. 민희는 눈을 의심할만한 엄청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녀는 음안의 존재의 힘을 스스로의 힘으로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캐치해냈다. 그 음 자체는 부수적인 것. 그 존재의 힘. 상대방의 존재감 상태 모든 것이 그녀의 귀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듣는 것만으로 보고 있었다. 마치 소리로 상대를 발가벗기는 듯한 느낌. 그녀 앞에서는 어떤 두꺼운 소리의 벽도 소용이 없었다. 발걸음을 떼는 소리 맥박이 흐르는 소리 목구멍을 통해 숨이 들락거리는 소리만으로도 아영은 상대를 모두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녀는 틀림없는 존재를 조종하는 자였다. 단지 지금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뿐. 그리고 그 사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고 있을 뿐. 아영이 가게를 나가는 순간까지도 민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50% 아니면 그 이상 그녀는 자신들이 찾고 있던 신과 동일한 능력을 지닌 자가 틀림없었다.
오후 11시. 영업이 끝난 뒤 규환은 민희가 구석자리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와, 화장실도 안가고 오래도 있네.”
“그 여자.”
“연예인도 힘들겠어. 나는 자식낳으면 절대로 연예인만은 시키지 않을 거야.”
“그게 아니야. 그 여자 무언가 있어. 다음에 올 때는 몸에 무언가를 새겨두겠어. 지금처럼 수동적인 추적기가 아니라 피동적 텔레포테이션하고 언제라도 발동할 수 있는 틈을 포함해서 전부.”
민희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 정도야?”
규환은 놀랐다. 민희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변한 건 그 사건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찾는 게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있어.”
“뭐가 있는데?”
“존재의 조율능력.”
“뭐라고?”“확실해. 그 여자는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다음번에 이 카페에 오면 꼭 불러. 텔레포트라도 타고 올테니까.”
사용한 설정은 위한님의 유아영
사용된 글은 위한님의 패러럴어드벤쳐 5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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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영이가 주인공 같아요. 나도 얘가 이리 대단할 줄 몰랐는데...
그러게요.. 점점 오해가 증폭되어서 괴물이 되어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