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48)에게는 열성독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가 있다. 2004년 문을 열어 270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고종석 팬 카페(cafe.daum.net/kjsfreedom)’는 인문서 저자로서 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인문서 저자의 팬 카페는 손으로 꼽을 수 있다. 16권에 이르는 그의 책의 평균 판매부수는 5천부 안팎, 신간을 무조건 구입하는 고정 독자는 3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요즘 같아선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 진입이 무난한 ‘엄청난’ 숫자다.
인문서 저자=지금까진 <코드 훔치기>(마음산책·2000)가 제일 많이 팔렸다. 고종석은 책을 곱게 만들어준 편집자와 이 책을 논술교재로 활용한 논술학원 강사에게 그 공을 돌린다. 하지만 그가 글을 쓰고 책을 엮는 것이 단지 ‘연줄’ 덕분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겸손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글과 책에 대한 독자의 호응을 ‘시장성’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싶진 않다. 그에겐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고종석은 출판계에서 “아주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통한다. 아름다움보다 정확함을 특징으로 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고도의 정확성은 아름다움을 낳는다. 한 학생 독자는 “고종석의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느낌, 시야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전한다. 고종석의 절친한 벗인 강금실 전법무장관은 그의 시집비평집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2006)에 대해 “고종석의 평론은 매우 균형잡힌 시각에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논평한다. 고종석의 글은 어느 대학 논술시험의 지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기자=고종석은 기자다.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언론계에 들어와 초창기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한겨레> 재직시절, 기사문답지 않은 기사가 논란을 빚기도 하였으나, 기자의 문체가 살아있는 기사문의 이정표를 세운다. 1990년대 중반 프랑스 주재기자 때는 철학자 질 들뢰즈의 죽음을 색다르게 해석해 전달한다. “고갈된 일흔 살 삶을 스스로 끝장냄으로써, 그 자신이 곧잘 ‘철학적 일화’로써 거론하던 엠페도클레스의 전설적 자살이 있은 뒤 2천5백년 뒤에, 서양 철학사에 또 하나의 일화를 보탰다.” 그 후 ‘친정’인 한국일보사에 복귀하였고,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지금은 객원 논설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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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편 <기자들> 말고도 고종석은 단편소설집 <제망매>(문학동네·1997)와 <엘리아의 제야>(문학과지성사·2003)를 펴낸 바 있다. 소설은 왜 쓰게 됐나요? “기사가 사람 이야기를 그리긴 하지만 기사문의 언어는 그물코가 성긴 거죠. 빠져 나가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이 아닌 부분이 많이 있어요. 기사에서 새나가는 부분, 사회가 옳다 그르다 결정해주는 그런 선악·미추에 잡히지 않는 어떤 개인적인 선악과 미추, 개인적인 가치와 진실들은 기사가 잡아낼 수 없어요. 소설의 언어는 좀 달라요. 기사의 언어보다는 소설의 언어가 촘촘하지 않겠나, 덜 빠져나가지 않겠나 싶어 시작했어요.” ‘내 소설의 근간은 현실’이라는 고종석의 지론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기벽이라고 하긴 어려워도 고종석은 남의 소설을 잘 안 읽는다. 어느 출판사 사장의 목격담이다. 어떤 소설가의 출판기념 모임에서 소설가가 자신이 펴낸 책을 고종석에게 주자, 그는 이를 정중하게 사양하더란다. “고맙지만 나는 소설을 안 읽는다. 귀한 책 아끼기 위해서라도 다른 분께 주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집 두 권에 수록된 작품들이 더 낫다는 나의 독후감을 밝혔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계속 몸담을 생각이면 장편을 써야겠죠.”
언어학자
=이글을 쓰기 위한 인터뷰를 하면서 해묵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고종석이 말한 “영어공용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계층간 영어능력의 격차를 줄이고,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었다. 한동안 나를 헛갈리게 한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글의 한 구절이다. 이글은 <감염된 언어>(개마고원·1999)에서 볼 수 있다.
절친한 벗 강금실도 애독자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특정집단에 의한 그런 식의 지식의 독점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정확한 한국어 사용자
아무튼 영어공용화의 긍정적 측면을 헤아리는 사람이 누구보다 분명하고 정확한 한국어 사용자라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명료한 개념 정의와 개념의 결을 세심하게 구분한 사례는 근간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개마고원·2006)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종석은 반미 친북 좌파가 고스란히 겹치는 것인지, 그 하나하나가 비난받을 일인지, 무엇보다 이런 딱지가 붙여진 이들이 정말로 반미 친북 좌파인지 되묻는다. “좌파는 친북보다도 훨씬 더 여러 겹의 뜻을 지니고 있지만, 그 핵심은 흔히 ‘복지’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회연대를 조직하는 데 정부가 일정한 구실을 해야 한다고 믿는 세계관과 관련돼 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몇 해 전, 그가 엿본 출판사 편집자의 우직한 원칙주의가 빚어낸 엽기적 풍경에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그가 읽던 고려시대 번역문집 문장 한가운데서 ‘미얀마제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마귀란 뜻의 당랑(螳螂)을 옮긴 ‘버마재비’를, ‘버마제비’의 오자로 예단한 교열자는 버마의 바뀐 나라이름에 맞춰 ‘미얀마제비’로 바로잡았던 것. 편집자가 ‘버마재비’의 어원이 ‘범(호랑이)의 아재비(아저씨)’라는 걸 알았더라도 수난을 겪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그의 판단에도 공감하지만, 이글의 결론은 더 공감한다. “무릇 글쟁이는, 제 글이 고스란히 활자화될 땐, 그 글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번역자=고종석이 우리말로 옮긴 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 <이게 다예요>(문학동네·1996)가 전부다. “번역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에요. 문장 하나를 우리말로 만족스럽게 옮기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번역이야말로 제대로 한다면 뼈를 깎는 작업일 것 같습니다. 영어나 스페인말이나 프랑스말이나 어설프게 읽을 줄은 아니까 주변에서 ‘너, 왜 번역 안 하느냐?’ 하는데, 저는 책 한 권 번역하려면 평생 해야 할 것 같아요. 또 번역은 일종의 평론인데 그렇게 하긴 정말 어렵죠.”
정치평론인=고종석은 정치현상을 보는 눈이 밝다. 시평집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머리말의 한마디는 그런 눈이 흐려지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들게 한다. 그마저 “은근히 기대를 걸었”다니. 2003년 1월 중순 발행된 <인물과사상 25>(개마고원)에 실린 글을 통해 내가 서둘러 은근한 기대조차 접는데 일조한 그가 아니던가. “우선 그의 지지자들부터, 대통령이 된 것 이상의 업적을 그가 자신의 임기 중에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의 집권이 우리 사회의 멘탈리티에 줄 긍정적 충격을 생각하면, 그 집권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업적, 그의 지지자들이 그와 더불어 자랑스러워할 만한 업적이다.” 다시 돌아온 정치의 계절에 정치를 바라보는 그의 혜안과 안목을 접할 수 있을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긴 줄었죠.”
대표작 네 권을 꼽는다면= “<기자들>은 첫 책이라서, <제망매>는 내가 소설가가 됐구나, <자유의 무늬>(개마고원, 2002)는 내가 저널리스트구나, <감염된 언어>는 내가 약간은 언어학도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했지요. 이 세 개가 제 정체성인데, 셋 다 얼치기이긴 하지만 이 책들에 기자로서, 소설가로서, 언어학도로서 정체성이 있는 같아요.” 그럼, 이 셋을 합치면 뭐가 될까요? 문화전달자가 어떨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뭔지는.”
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성년의 문턱에 선 아들에게-고종석
급히 마무리해야 할 글이 있어서 어제 네 졸업식에 가지 못했다. 서운했을 수도 있겠구나. 굳이 겨를을 내자면 못 낼 것도 없었지만, 네 어머니와 고모가 간다기에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았다. 더구나 아비는 세 해 전 네 형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으니, 네 졸업식에도 가지 않는 것이 공평한 일인 듯도 했다. 졸업을 축하한다. 그리고 이제 성년의 문턱에 이른 네게 몇 마디 당부를 하고 싶다. 이것은 아비가 자식에게 건네는 당부이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문을 나서는 네 세대 청년들에게 앞선 세대가 건네는 당부이기도 하다.
너는 어제 열두 해의 학교 교육을 마쳤다.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 모두에게 의무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는 기간보다 세 해 더 학교를 다닌 것이다. 그것은, 네 둘레의 친구들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너 역시 적어도 네 세대의 가장 불운한 한국인들에게 견주어 학교 교육의 혜택을 더 받았다는 뜻이다. 그 여분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네 동갑내기들 가운데는 학교 공부에 대한 열의와 재능이 너보다 컸던 사람들도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마라.
너는 이제 열아홉 살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다정다감한 부모들이 20대, 30대의 어린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터라 네겐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비 생각에 열아홉이면 두 발로 설 수 있는 나이다. 그것은 이제 네가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기 시작할 나이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 독립의 첫걸음으로 우선, 앞으로의 학교 공부는 네 힘으로 하려고 애써라. 국가가 고등교육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대학에 다니고 싶으면 제가 벌어 다니라는 말이 야박하게 들릴 줄은 안다. 그러나 단지 경제적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네 동갑내기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라. 또 네 형도 제 힘으로 대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라. 지금 당장 온전히 독립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네가 아비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꼭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마라.
성년의 표지로서 경제적 독립 못지않게 긴요한 것은 정신의 독립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든, 책을 읽거나 신문, 방송을 보든, 네가 접하는 지식과 정보와 의견들에 늘 거리를 두도록 애써라. 줏대를 버린 뇌동은 그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크게 해롭다. 그러나 줏대를 지닌다는 것은 독선적이 된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 줏대를 지니되, 진리는 늘 여러 겹이라는 사실도 잊지 마라. 독립은 고립과 아주 다르다. 고립은 단절된 상태를 뜻하지만, 독립은 연대 속에서도 우뚝하다. 연대는 어느 쪽으로도 향할 수 있지만, 아비는 네 연대가 공동체의 소수자들, 혜택을 덜 받은 사람들에게 건네지기를 바란다. 적어도 너 자신보다는 소수자의 표지를 더 짙게 지닌 사람들 쪽으로 네 연대가 길을 잡기 바란다. 높이 솟아오른 정신일수록 가장 낮은 곳을 응시한다.
네가 막 그 문턱에 다다른 세상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상상하던 세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사악한 이성과 욕망의 온갖 광기가 휩쓰는 세상에서 너는 너 자신과 아비를 포함한 인간의 비천함에 절망하고 지쳐, 어느덧 그 비천함의 능동적 실천자가 되고 싶은 유혹에 노출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더러워 보이는 세상 한 구석에 인류의 역사를 순화하고 지탱해 온 순금의 정신이 숨어 있다는 것도 잊지 마라. 그 순금의 정신은 상상 속의 엘도라도가 아니라 바로 네 둘레에 있을 수도 있다.
네가 잘 알고 있듯, 아비는 충분히 독립적이지 못했고 충분히 연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뒷세대가 저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아비에게도 스스로 이루지 못한 것을 네게 당부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독립적이 되도록 애써라. 소수자들과 연대하려고 애써라. 다시 한번, 네 졸업을 축하한다. 2004.02.12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고종석, 개마고원 2006 p144~p146[윤대녕의 독서일기] 고종석의 유럽통신 - 고종석
◎기호론적 문체로 폭넓은 관심사 다룬 사신들
얼마전에 나는 무슨 일인가로 모 잡지의 편집자와 만난 자리에서 여담으로, 고종석의 처녀 단편 「제망매」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나는 그 때 만났던 편집자가 고종석씨의 친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잠시 아연했던 기억이 난다.
「제망매」에 대한, 아니 그의 글에 대한 내 편집적 애정의 말이 뒤늦게 거북스러웠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쌓아두고 있던 책들 중에서 「고종석의 유럽통신」(문학동네간)을 슬쩍 먼저 꺼내 읽게 되었다. 책읽기도 때로 인연과 관계되는 일인가.
그렇다면 그건 분명히 「행복한 책읽기」에 속하는 것이리라.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지금 프리랜서(혹은 통신원)로 가족과 함께 파리에 체류하고 있다.
전에는 신문기자(라기 보다는 문학 칼럼니스트)였고 이미 세 해 전에 장편소설 「기자들」을 써서 소설가로 입문하기도 했다.
이 복잡한 이력은 역설적으로 말해 현재 그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자의에 의한 자비 망명의 길을 걷고 있다.
김현식으로 말하면 이 땅에는 「준수해야 할 풍속」이 없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는 결국 하나의 길을 걷고 있는 것같다.
많이 서성인 길은 굳어, 흐린 날에도 빛나게 마련이다.
인문학적 사유로 가득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비누 묻은 손을 찬물에 담그고 오래오래 씻고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고종석의 유럽통신」은 그가 파리에 머물며 쓴 글(이라기 보다는 편지들)이다. 그러나 그 정치한 사신들은 분명 공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글은 지시하는 바가 뚜렷한 기호론적 문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5월의 파리에서 광주의 5월을 얘기하고 인종, 언어, 문학, 예술, 일본, 혁명, 제국주의, 정치 등으로 관심사를 넓혀가며 지적 사변을 토해내고 있다.
그는 순결성과 민족주의가 인류 분쟁의 원범이라고 말하며 「순수함에 대한 열정, 순결함에 대한 광기는 결국 불순함에 대한 증오, 요컨대 타인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고」 한편 「세계시민주의로서의 개인주의는 불순함에 대한 사랑이고, 관용에 대한 경배」라는 논리를 이끌어낸다.
이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닌,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은 관용의 철학, 수치심의 윤리」라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불순함에 대한 옹호」야 말로 진정한 국제적 코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언어 혹은 글의 율법이 근본적으로 권력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감상주의자」라고 단언하고 자신의 글에서 그 율법의 틀을 무너뜨리려고 집요하게 애쓰고 있다.
거꾸로 글이, 문학이 또한 권력과 억압의 율법을 견뎌낼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1995.11.3〉
나는 고종석씨의 글이 너무너무 좋다. 무지무지 좋다. 고종석씨의 글보다 더 감탄하며 읽을 더 훌륭한 글들은 많지만, 박장대소를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껴가며 같은 고민점을 짚어가게 되는, 최대의 몰입력. 내가 바라고 지향하는 그 길과 같은 길 저 앞에 서 있는 대선배.
전에 읽은『자유의 무늬』를 다시 꺼내서 이것 저것 읽다보니, 어느 책에서나 마주치면 항상 그어놓는 볼테르의 말과 올리버 홈스의 말이 여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줄이 그어져 있었다. 대학 초년생 때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의 『나는 무질서한 것이 좋다』를 읽고 대단히 즐거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고종석씨가 늘상 말하는 것과 저 크레센초 선생이 하는 말이 비슷하네. 존 스튜어트 밀이 설명하는 '자유' 의 개념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부하라고 안 해도 아이들이 알아서 잘 하는 집 부모가 '우리는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압력을 넣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반쯤 실소가 나온다. 잘하는 애들한테 압력 안 넣는건 복종하는 노예에게 야단 안 치는 주인과 뭐가 달라. 잘하지 않아도 공부닦달 안 하는 게 대단한 부모인거지.
자유란 항상 권력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않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일 때에나 의미가 있고, 질서와 청결과 순수주의의 결벽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가를 물었을 때 그 진정성이 밝혀진다. 다른 이야 어떻다 치더라도 난 참 고종석씨의 사상이 좋다.
http://heeyo.egloos.com/1525845
첫댓글 고종석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내가 준 도서상품권으로 <고종석의 영어이야기>를 샀습니다. 예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1998년에 <신화와 역사가 있는 7일간의 영어이야기>의 개정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