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다 주말이면 산 좋고 물 맑은 시골로 들어가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 스트레스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힘을 얻고 돌아오는 삶, 도시인이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지난 16일 밀양시 삼랑진읍 행곡리 돌담마을에서 만난 정홍섭(68) 전 신라대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근데 좀 유별나다. 산촌에서 더 많이 지낸다. 5촌2도의 삶이다.
"오래 전부터 퇴직하고 나면 시골에 들어와 살려고 했지요. 조그만 생태체험형 대안학교를 하나 만들어 학교서 포기한 아이들과 공부도 하고 텃밭도 가꾸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꿈 말입니다. 사실 그동안 남 비판하고 학교나 단체 일 하느라 정작 자신을 살펴보는 일은 게을리했지요. 이젠 바깥 그만 보고 내면을 성찰하며 살아 보자 하는 바람도 컸습니다."
생태체험형 대안학교 꿈 위해
2012년 퇴직 후 곧바로 시골 이주
초창기 빈집 많고 곳곳에 쓰레기
체험학교 미루고 마을가꾸기 앞장
된장 사업으로 수익 기반 갖추고
마을 예뻐지니 사람들 관심 커져
산촌 복원 창조적 마을 프로젝트
정부 최종 심사 통과 땐 더 큰 변화 기대정 전 총장은 주말마다 양산·물금 등 경남 곳곳 좋다는 데는 다 찾아다녔다. 그러다 이곳을 처음 본 순간 딱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결국 3개월 만인 2012년 12월 초 이곳에 들어왔다. 속전속결이었다. 총장 임기는 11월 25일 끝났다. 부산엔 부산대 상담사 양성 과정 강의 등을 위해 1~2일 정도 출타한다.
"경치가 참 좋았어요. 해발 250m에 위치해 있어 약간 비탈길이지만 그대신 멋진 전망을 얻었습니다. 정남향이어서 볕도 많이 들지요. 천태산이 멀리 있고 저 밑으론 낙동강이 흐르지요. 안태호 등 군데군데 호수도 있어서 새벽에 안개가 끼거나 비올 때 보면 정말 환상적입니다."
정 전 총장은 처음 왔을 때는 40여 시골집들이 대부분 비어 있었다고. 상주가구는 7가구에 불과했다. 마을은 정돈이 안 된 상태였다. 돌담 사이에 담배꽁초 등 온갖 쓰레기들이 넘쳐 났다는 것. 정 전 총장은 체험학교는 후일로 미뤘다. 일단 마을을 정비하고 사람이 와서 살고 싶도록 가꾸는 게 더 시급했다고.
"우선 소득사업을 뭘 할까 구상했지요. 옆집에 전통장을 담그는 분이 계셔서 그것을 크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죠. 된장 5단지 정도 가내 부업 수준으로 하셨는데 장맛이 좋았어요. 그분 비법을 전수 받고 아는 발효 전문가에게 자문을 해 전통된장을 재현했지요."
정 전 총장은 지금은 180단지 규모 된장사업으로 커졌다고 자랑한다. 덕분에 퇴직금이 다 날아갔단다. 사는 집 말고도 장독대 터 2곳 등 몇 군데 땅을 더 마련했던 것. 판매는 인터넷이나 추석 등 명절에 알음알음으로 한다고. 한창 장 담글 때는 일손이 부족해 김해 아파트부녀회와 협약을 맺었단다. 와서 장 담그기 체험도 하고 일당도 벌어 간다고.
"된장 전문가들은 이곳이 햇볕이 많이 들고 공기와 물이 맑은 데다 황토 토양이어서 장류를 발효시키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장독도 전라도를 돌며 수집했지요. 한 40~50년 된 독도 많습니다. 옛날 독은 유약이 거친 대신 숨을 잘 쉰다고 하지요. 된장 속 효모는 공기를 좋아해 묵은 독 장이 더 맛있습니다. 예전 좀 있는 집 엄마들은 딸 시집 보낼 때 장맛이 제일 좋은 단지를 딸려 보냈다고 합니다. 일종의 우수한 효모 종자를 준 셈이지요."
정 전 총장의 이런 마을 가꾸기에 동네 할머니들도 처음엔 긴가민가하다가 요즘엔 모두 전폭적인 후원자가 됐다고 한다. 이사 온 다음 해인 2013년 1년 동안 마을 정비를 하고 된장사업의 기초를 닦은 뒤 2014년에 밀양시에서 3천만 원의 예산을 따내 마을 안길을 넓히게 됐다.
 |
사진은 지난해 5월 개최한 마당차회. 돌담마을 제공 |
"마을이 어느 정도 예뻐지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라고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전통산촌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돌담·초가 복원과 황토체험방·주차장 건립, '달빛 산책로' '꽃길 트레킹' 등 걷기코스 개발, 그리고 음악회 개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창조적 마을가꾸기 프로젝트를 농림수산부에 신청, 현재 경남도를 거쳐 정부 최종 심사만 남았습니다."
정 전 총장은 돌담마을발전위원장 자격으로 오는 25일 정부 세종청사에 심사 받으러 간다고. 통과되면 1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되는데 마을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흐뭇해한다. 어떻게 3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이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을까.
"다른 외지인들은 다 주말주택 개념으로 이곳에 왔지요. 저는 이곳에 체험학교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왔기 때문에 초기엔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묵묵히 허드렛일을 하고 각종 이벤트를 만드니 다 좋아하시더라고요. 2013년 가을부터 시작한 '달빛음악회'도 그중 하나지요."
정 전 총장은 첫 음악회는 집 마당에서 개최했는데 주위의 많은 분이 재능기부를 했단다. 클래식 기타부터 성악·색소폰 연주, 그리고 시 낭송·무용까지. 특히 풀벌레 소리 들으며 달빛 아래서 연주한 대금산조는 눈물이 날 정도로 멋졌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첫해 100여 명이 왔고 지난해엔 230여 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제가 사는 집도 본채는 현대식으로 바꿨지만 '돌담산방'이라고 이름 붙인 아래채는 전통 밭전자 구조로 복원했습니다. 앞에는 초당방과 외양간, 뒤에는 헛간과 뒷간으로 구분되는데 붙박이장과 화장실을 들여놓아 현대식을 가미한 전통가옥이 됐습니다. 한번 본 사람은 다 탐을 내는 공간이지요."
정 전 총장은 맨 위쪽 터에서 된장 보관 저온창고 토굴 공사를 하다가 기가 엄청 나오는 바위를 발견했다고 귀띔한다. 지인들의 의견과 오링테스트 등 여러가지를 종합해 본 결과 '자연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많은 곳이라고. 저온창고 대신 토굴 명상방으로 만들어 놨다고 자랑한다.
"196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땐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방직공장 다니면서 대구상고 야간반을 다녔지요. 당시 교사 되는 게 꿈이었죠. 공장 그만두고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지요. 돈이 없어 3일 굶고 경북대 본고사를 치렀습니다. 마치고 나오니 하늘이 노래지더군요."
정 전 총장은 중·고교 교사를 거쳐 대학교수, 총장, 교육혁신위원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80년 10월 교육정책에 관해 정부 비판 글을 썼다가 혼쭐이 나고 교사를 그만 뒀다. 그게 전화위복이 됐다. 부산대 조교를 거쳐 85년 부산여대(현 신라대) 교수로 임용됐던 것.
정 전 총장은 교수 시절 호헌철폐 시국선언, YMCA 중등교육자협회 교육자선언 동참, 참여연대 창립 등 80~90년대 부산 시민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유명해지려고 시민운동을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인터뷰도 자주 하고 신문에 글도 쓰면서 결과적으로 득이 되어 돌아왔다며 웃는다.
"긍정적으로 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기회가 와도 그게 기회인 줄 모르지요. 긍정적인 사람은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마음도 비우게 됩니다. 그러면 시야가 넓어져요. 세상을 정확하게 보게 되지요. 현재 일에 충실한 것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soney97@busan.com
정홍섭 전 총장은1947년 경북 경주 출생. 대구 방직공장 다니면서 대구상고 야간부 졸업. 1970년 경북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졸업, 부산 내성중·부산전자공고 등에서 교사 생활. 1985년 신라대 교육학과 교수. 1990년 부산대 대학원 교육학 박사. 2000년 부산시교육위원회 부의장. 2004~2012년 신라대 4, 5대 총장. 2007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장. 2008년 황조근정훈장. 2011년 캄보디아 국가재건최고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