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우는 소리에 눈을 떠 커튼을 걷고 창밖을 살피니 남국의 야자수들이 낯선 손님을 반긴다.
1963년에 20세 청년으로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국내여행을 같이 하기도 힘든 터에 부부동반으로 다섯 쌍이 큰마음 먹고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의 먼 길 나섰으니 반갑고 감사하다.
무등산 정기서린 광주에서 달려 온 복지시설의 사무국장들과 한 배를 탔으니 이 또한 좋은 인연이라, 노소(老少)는 지나칠까 장청(壯靑)이 동락(同樂)하여 아름다운 추억을 담았으면,,,,,
오후 7시 30분, 캄보디아의 씨엠립행 비행기가 만석(滿席)을 이루어 출발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체가 움직이지 않나 궁금하였는데 이를 알아차렸는지 기내방송이 나온다. 승객 중 한분이 하기(下機)를 원하여 이를 처리하느라 출발이 지연되고 있으니 손님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는 기내방송에 무엇을 확인하기 원하는지 의아하였다. 알고 보니 확인이 아니라 하기(下機)였고 세 사람의 일행 중 두 사람이 탑승하지 않아 먼저 탔던 승객이 내리려고 하던 차에 뒤늦게 두 사람이 합류하여 우리가 탄 OZ737편은 30분 지연 출발하였다.
사노라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닥치는 법,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로인해 씨엠립의 도착시간까지 30분이 늦어져 밤 12시가 넘어서(한국시간보다 두 시간 늦다) 공항의 입국수속을 마쳤다. 캄보디아 경찰관이 우리 일행을 찾는 안내문을 들고 있어서 그에게 여권과 입국비자, 카드, 사진, 비자피(1인당 25달러)를 건네주니 별도의 입국심사 없이 수하물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게 되어 여권은 어떻게 되는지 어리둥절하였다.
밖에서 기다리던 현지 가이드가 여권은 염려하지 말고 차에 오르라기에 이 나라 방식이 특이하긴 하였으나 일행 모두 무사히 입국하였으니 다행으로 여기고 호텔로 향하였다.(광주에서 온 미모의 여성은 구혼사진이라도 되는지 손바닥만 하게 큰 사진을 가지고 와서 모두들 웃었는데 경찰관도 따라 웃으며 사진을 돌려주었다. 웃으면 건강에 여러모로 좋은 일, 웃음을 선사한 경아 씨에게 감사한다.)
여행사에서는 이번부터 캄보디아 투숙호텔을 특급으로 업그레이드 하였다고 크게 자랑하였는데 티크목재로 바닥을 깔고 욕실과 침대도 널찍하고 깨끗하게 꾸며져 5년 전에 묵었던 호텔에 비하여 훨씬 쾌적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아내가 씻는 동안 TV를 켜니 한국의 YTN 새벽 2시 뉴스가 나와서 뜻밖 이었는데 몇 차례 외국에서 한국 TV채널이 나오는 것을 경험하였으나 YTN이 나오는 줄은 미처 몰랐다.
도착하면서부터 후끈한 날씨여서 더위를 각오하였는데 YTN뉴스는 오늘 서울 기온이 30도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우기지만 비는 오지 않고 기온이 높으니 반팔, 반바지 차림이 좋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오전 7시 반에 호텔 출발 예정이라 첫날부터 강행군의 스케줄인데 일행 모두 즐겁고 보람된 날이기를,,, (제1신- 2007. 6. 16 아침 6시, 씨엠립의 야자수 무성한 호텔에서)
추 신.
어제 신문에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를 탈출하려는 사람의 수가 매일 평균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나라의 비전이 없고 지도자들이 국민을 괴롭히기 때문에 탈출자가 많다는 것이다. 후진국이란 비전이 없는 나라, 국가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국가라는 배의 항로(원래 정부를 뜻하는 Government는 배의 조타수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를 마음대로 바꾸어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 번 여행이 동남아시아 국가인 캄보디아와 베트남이어서 이 지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칼럼이라 여겨졌다.
2. 왜 신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아내 김혜경은 ‘이 세상에 만만한 사람은 없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강조하는데 나는 이를 ‘이 세상에는 만만한 사람도, 만만한 나라도 없다.’로 바꾸었다.
캄보디아가 어떤 나라인가? 그 역사와 문화를 알고 있는가?
5년 전에 아내와 함께 태국을 거쳐 육로로 2박 3일간 앙코르유적과 씨엠립 일원을 돌아본 적이 있지만 아직도 캄보디아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만한 나라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어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40도 가까운 폭염 속에 세계7대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하는 앙코르 유적,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능가하는 킬링필드의 상흔, 어느 곳을 가든 살아 움직이는 시장 등을 돌아보며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 자연과 기후, 삶의 현장 등을 한 눈에 살피고 가슴에 담았다.
호텔에 돌아와 캄보디아 역사(이 번 여행을 위하여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집중 분석한 최신판 여행안내 서적을 샀다)를 읽어 보았다. 이를 요약하여 소개한다.
‘캄보디아 역사는 크게 앙코르전성기와 크메르 루즈 집권이후의 암흑기로 나누어진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만들었던 민족이었지만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의 하나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은 다른 어떤 나라 못지않게 강하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3세기경에 메콩델타를 중심으로 정착하여 5세기경부터 힌두교 통치자에 의해 인도문화의 영향이 크게 증가하였다. 캄보디아 역사 중 802~1432년 까지를 앙코르시기라고 한다.(900년경에 지금의 앙코르 중앙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하고 프놈바겐, 프놈크롬 등의 사원을 건설했다. 크메르의 위대한 왕으로 알려진 수라야바르만 2세(1113년~1150년 재위)가 앙코르유적의 대명사인 앙코르 와트를 건설하고 중국의 송나라와도 관계를 맺었다. 또 다른 위대한 왕 자야바르만 7세(1181년~1201년 재위)는 마하야나(대승)불교를 받아들이고 크메르 역사상 가장 많은 사원, 도로, 교량 등을 건설했다.
15세기에 아유타야(태국)왕조 등이 강성해 지면서 화려했던 앙코르의 역사는 사라지게 된다. 1914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53년에 독립하여 캄보디아 왕국을 세웠으나 베트남과의 단교, 미국과의 관계악화로 어려움을 겪다가 1975년 4월에 크메르 루즈에게 정권을 빼앗기게 된다. 크메르 루즈 지도자 폴폿(Pol Pot)은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achea)로 국명을 바꾸고 반대파의 숙청, 산업의 국유화, 집단노동의 강요 등 폭정을 자행하여 폴폿 치하 4년 동안 전 국민의 4분의 1인 200만 명이 처형, 고문, 기아, 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1979년 베트남의 침략으로 폴폿 정권이 무너지고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었다가 1991년 파리평화협정에 의하여 18개월간의 과도 통치기간을 거쳐 1993년에 시아누크를 수반으로 하는 입헌왕국으로 재출발하였다. 1997년에 훈센 제2수상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후 1998년과 2002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정부를 이끌고 있다. 2004년 시아누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노르돔 씨아모이가 국왕으로 등극했다.‘
우리가 어제 살펴 본 앙코르 유적들과 킬링필드의 끔찍한 역사의 현장, 열악한 산업시설, 고단한 삶의 모습 등은 이러한 역사와 문화, 자연과 기후, 정치, 경제, 사회적 여건 등과 맞물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386세대의 저항적 기질이 엿보이는 강정훈 가이드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와 같은 캄보디아의 역사, 앙코르 유적과 캄보디아의 종교, 문화 등을 짜임새 있게 설명해 주었다. 5년 전에 보았던 곳도 새로운 감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번에 처음 가본 반데스라이의 정교한 조각예술과 주변 풍경, 65m의 산언덕에 올라 넓게 펼쳐진 평원 등을 살펴보며 한번 와 본 곳을 다시 돌아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그 때보다 지금 나무들이 더 크고 높은 것을 보며 동남아시아의 식물은 높은 기온과 많은 강수량의 혜택을 누리는데 사람은 왜 헐벗고 가난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자야바르만 7세 때 도입된 불교가 뿌리를 내려 전인구의 96%가 불교도이고 참족이 믿는 힌두교 3%, 기독교와 천주교인이 각각 0.5%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작년에 방문했던 미얀마도 400만개의 사원이 있고 수도에 거대한 황금불교 사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인민들의 삶은 피폐한 것을 보며 하루 빨리 동남아시아의 경제수준이 나아지기를 염원한다.
천년 세월 속에 일부가 훼손되기는 하였지만 세계인이 신비하게 여기는 수많은 사원들을 그토록 장엄하고 정교하게 지을 수 있는 공법과 기술을 장인(丈人)들은 어떻게 익히고 다듬었을까?
왜 권력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신격화하려고 그렇게 많은 인력과 재정을 동원하여 영생불멸을 추구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거주하는 왕궁과 주택들은 흔적이 없고 수많은 신전들만 오랜 세월을 견디며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며 ‘왜 신들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라는 2004년에 출간되었다는 종교관련 책자의 제목이 떠오른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의학 분야 연구진들이 수년간의 연구 끝에 펴냈다는 그 책 속에는 인간의 오른쪽 뇌에 종교를 담당하는 세포덩어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영향을 받아 인간은 끊임없이 종교를 찾고 만들며 그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곳곳에 크게 자리 잡은 뱀의 형상과 선악의 세계, 18,000명의 사람이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는 앙코르 와트의 벽에 새겨진 조각들, 우주와 영원을 향한 사원들의 치밀한 구도와 공법 등을 어찌 하루 만에 다 알아 볼 수 있으리.
앙코르 와트의 급경사 계단을 오르내리며 젊은 승려와 사진 한 장 찍고 미국에서 왔다는 노년의 관광객을 보며 180만의 관광객 중 한국인은 10% 쯤 될 것이라는 가이드의 말이 그러한가 여기면서도 곳곳에서 마주치는 한국인들, 북한이 직접 경영한다는 평양 냉면집의 점심식사와 북한처녀들의 활달한 공연 모습, 압살라 디너쇼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에 이르기 까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분주하게 보낸 하루였다.
18명의 우리 일행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좋은 꿈꾸고 오늘도 즐거운 날이기를,,,.
추신 :
아침 7시 반에 우리 방에서 여섯 사람이 모여 일요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 오늘 글 제목인 ‘왜 신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를 상기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았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한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사도행전 17장 24~28절)
임태평 장로가 뜻 깊은 여행 중에 예배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우리 일행 모두의 건강과 평안을 기도하였고 나는 캄보디아와 그 백성, 여행에 참여한 우리 일행, 북한 식당을 포함한 이곳 동포들과 안내하는 이들 모두의 은총과 축복을 빌었다. 하나님이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제2신- 2007. 6. 17 아침 6시, 씨엠립에서)
3.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밤늦게 하노이에 도착하여 새 아침을 맞았다. 밤사이 빗소리 들리더니 창 밖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가 멀리서 온 손님을 반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캄보디아보다 베트남이 여러 면에서 앞선 나라인 것은 사실일 텐데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짐 찾느라 한 시간 기다리고 나서 첫 인상이 썩 좋지 않다. 그러나 현지 가이드의 붙임성 있는 태도와 설득력 있는 말씨에 공항에서의 일은 접어두고 베트남에서의 여정이 밝을 것을 기대한다.
앙코르 유적과 톤레샵 호수를 둘러본 씨엠립의 이틀 간, 하루는 폭염 속의 강행군에 지치고 하루는 서너 차례나 들른 쇼핑일정에 짜증이 나고 강정훈 가이드의 심드렁한 표정이 겹쳐서 약간 아쉬움이 남았다.
톤레샵 호수는 비가 오지 않는 건기(乾期)에는 서울의 다섯 배, 물이 넘치는 우기(雨氣)에는 경삼남도 크기의 바다 같은 넓은 호수인데 티베트에서 발원(發源)하여 중국, 라오스, 베트남으로 장장 4,000km를 흐르는 메콩강의 물줄기와 연결되어 짙은 황토색을 띠고 있다. 호수입구에서 20여 분간 배를 타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뱃길의 양 쪽에는 배나 뗏목위에 지은 수상가옥, 학교, 공공장소, 여러 종류의 가게, 수리소, 성당의 모습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언제나 갈 수 있지만 살고 싶지는 않은 곳‘ 이라고 말하는 가이드의 표현처럼 그 열악한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수상 가옥에 TV가 켜진 곳이 있고 천으로 된 그네에서 흔들거리며 쉬고 있는 여인, 교통수단인 조각배를 젓는 어린이 등이 한가로운 모습들인데 관광객을 쫓아 따르며 과일 등을 팔아달라고 몰려드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우리를 안쓰럽게 한다.
호수 한 가운데 널찍하게 자리 잡은 수상휴게소에서 일행들이 한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30 여 분간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수면의 풍경들을 지켜보며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을 실감한다.
선상 휴게소를 비롯하여 전날 밤에 들렀던 마사지 업소, 이어 들른 상황버섯가게, 보석상회, 잡화상점, 식당 등이 모두 한국인이 운영하는 영업소들이어서 한국인들이 진출하여 활발하게 사는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동포를 상대로 지나친 잇속을 챙기려는 자세가 안타까운 것도 여러 번 경험하였다. 30년 넘게 그 업계에서 종사하였다는 50대의 보석상사 지사장은 폭넓은 경험과 해박한 지식으로 보석의 여러 효용과 특성을 잘 설명해 주어서 세계 여러 곳의 보석상에서 새겨들은 짧은 보석 상식의 두께를 한 겹 더하여 주었다.(남자들을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보석을 사주라고 강권하여 짜증스러웠다는 후문이 아쉬운 점이기도 하였다,)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가 홍실, 청실, 백실의 사랑을 담고 있고 목에 걸어주어서 시원함을 체감한 진주는 순수, 누구나 한두 점 갖고 있는 금은 재물의 상징이라는데 이번 기회에 열두 달을 대표하는 보석들이 무엇인지 알아두시기를,,,
여러 가지 귀중한 보석들을 뽐내며 경쟁적으로 자랑하는 여인들에게 자기 아이들이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고 점잖게 일침을 놓는 현숙한 여인의 이야기는 잘 아실 터, 아내가 매주 수요일에 참석하는 성경 반은 광주에서 내노라하는 귀부인(?)들의 모임인데 거기에서도 옷 자랑, 보석 자랑이 가끔 있다고 한다.
‘인생 최고의 보화는 정진’ (人生 最佩服的 是 精進, 인생 최패복적 시 정진)이라는 경구도 있음을 첨부해 드린다. 이 경구를 보면 성철스님처럼 누더기 옷을 입어도 품격이 느껴지는 수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2001년 한 달간 중국여행 때 사천성 아미산의 만년사에서 적어 온 인생 14최 (인생의 열네 가지 최고)를 소개하니 읽어 보시기를,
짝퉁 가게에 들른 사이, 바로 맞은편에 있는 아동병원 쪽으로 가보았다. 첫 날 그 곳을 지나면서 가이드가 자야바르만 7세 석상을 가리켰는데 그 곳에 가서 살펴보니 아동병원이 스위스의 기부에 의해 지은 것, B형과 AB형이 특히 필요하다는 헌혈요청, 오스트랄리아인 Dr. Beat의 무료첼로 콘서트가 매주 4회 열린다는 공연장이 병원 옆에 있다. 'The cello is my weapon'- Dr. Beat Richner 라는 글과 함께,,,
세계적으로 귀중한 보배라 할 수 있는 앙코르 유적을 돌아보고, 우리 자신이 귀중한 보배인 것을 깨우치며 함석헌의 시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를 소개한다.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하고 믿어지는 단 한사람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요’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오후 6시 4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4시 40분까지 공항에 가야한다기에 저녁식사는 김밥으로 대체, 공항에서 가방들을 부치고 옹기종기 의자에 앉아 김밥을 먹고 출국수속을 마쳤다. 예정시간 보다 30분 빠르게 씨엠립 국제공항을 떠나며 사진 한 장씩 찍고 기내에 올라 제일 뒤 편 18석의 좌석에 앉아 또 한 컷 눌렀다.
앙코르 유적으로 국제 관광도시가 된 씨엠립이여, 안녕! 언제 다시 찾으리!
(제3신- 2007. 6. 18 아침 6시, 하노이 호수 옆의 호텔에서)
추신 :
① 아침에 호텔 수영장에서 몸을 풀었다. 넓은 호수가 앞으로 보이고 그 옆에 커다란 연꽃 밭이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일 듯, 여러 방에 전화를 걸어 이를 알려주었다.
② 어제 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관문의 큰 다리 양쪽에 LG마크가 선명한 선전판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마치 개선장군의 입성처럼 늠름하게 들어왔다. 우리가 탄 버스는 널찍하고 쾌적한 현대버스여서 더 좋았다.
③ 캄보디아의 열악한 인프라, 고단한 서민의 삶은 국가지도자들의 비전이 없어서 그렇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우리의 지도자들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기업이 앞서고 정부가 뒤처지는 것은 캄보디아만의 일이 아닐 터.,,,
④ 아침식사시간에 베트남의 명물, 쌀국수와 안남미로 어렸을 적부터 그 이름이 익히 알려진 쌀밥을 맛보며 고단했던 6~70년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농촌에서 일손을 익힌 박 선생의 농촌체험기를 들으며, 그의 아내는 도시에서 자라 벼를 쌀나무로 기억하고 있어서 동시대를 살아온 부부의 문화가 다른데 하물며 먼 나라의 풍습과 문화는 얼마나 다르랴,
4. 우리를 감동시킨 호치민과 그의 누나
하노이의 여러 모습을 보기 위해 9시에 호텔현관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르니 분수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에 무지개가 떠오른다. 하늘에 드리운 반원의 무지개처럼 아름답지는 않지만 무지개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소년의 가슴이 황혼에 이르러도 울렁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센스가 있는 박영숙 천혜 경로원 사무국장은 어느새 워즈워드의 무지개를 읊조리며 분위기를 띄우고 여러 명이 모두 흥겨운 기분으로 맞장구를 친다.
전후좌우에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행렬을 뚫고 한 채에 수억 원 쯤 된다는 고급주택가, 잘 고르면 횡재한다는 옛 도자기 진열가게 등을 차창으로 살펴보고 황색 성조기가 나부끼는 바딘광장의 호치민 묘역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바딘광장 주변의 호치민 묘소, 대통령궁, 호치민 집무실 등은 베트남의 국민적 영웅 호치민의 검소하면서도 탁월한 지도력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탐방코스였다. 1890년에 태어나 1969년 사망하기까지 독신으로 지내면서 청렴결백하고 소탈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끝까지 간직한 그는 아시아의 반식민지운동과 자주독립국가 형성을 이룬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세계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베트남국민의 전폭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유동구 가이드로부터 들은 베트남의 국민적 영웅 호치민의 자신에게 엄격했던 생애와 청렴결백하고 소탈하여 지금까지도 호 아저씨라 불리며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그의 행적에 뭉클한 감동을 느끼면서 훌륭한 ‘그런 사람’을 가진 베트남 인민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호치민의 누나가 30여년 만에 그를 찾아와 극적으로 상면했던 이야기, 함께 살자는 간청을 뿌리치고 외롭게 혼자 살다가 전쟁의 와중에서 쓸쓸하게 떠난 누이의 죽음을 뒤늦게 알고 오열했다는 호치민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도 감동을 더해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의 묘소에 헌화하며 10여 분간 묵념을 올렸다는데 그는 어떤 상념에 젖었을까? 취임초기에 80~90%의 국민적 지지와 기대를 모은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를 떠올리며 맨주먹으로 베트남인들이 그토록 선망하는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민초들의 역량이 새삼 돋보인다. 우리 모두 그 대열에 앞장선 세대들이 아닌가?
작년에 학생들과 함께 강진의 다산초당에 들렀는데 다산유물전시관장이 정약용의 행적과 사상을 소개하며 군민 중 한 사람이 베트남을 여행할 때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그가 강진에서 왔다는 소리를 들은 베트남인이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알고 있고 이는 호치민 주석이 평소 그 책을 머리맡에 두고 읽었기에 많은 베트남인들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노라고,,,, 그런데 유동구 가이드는 호치민 주석이 목민심서를 탐독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이를 입증할 자료가 없다며 이는 사실과 달리 와전된 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이지만,,, )
한 기둥 사원에서 수박과 여지(?)를 먹으며 리 왕조를 세웠던 왕이 아들을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평민에게서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얻게 되어 이를 기리는 뜻으로 사원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일행 중 이씨 성을 가진 이가 그 할아버지로부터 아들 낳는 비법을 전수 받아 첫딸 낳은 후에 이 비법으로 아들을 둘이나 낳게 된 사실을 여러분은 미처 모를 것이다.
베트남이 중국, 일본, 한국과 함께 유교권의 나라인 것을 지난 2월 중국 산동지방을 여행하면서 들른 춘추원(春秋園, 춘추시대의 걸출한 사상가인 공자, 노자 ,관자, 손자의 업적을 기려 만든 기념관)의 공자관에서 재확인하였는데 오늘 문묘(1070년 이탄똥 왕이 세웠다)를 돌아보며 청나라의 강희제가 썼다는 만세사표(萬世師表)의 휘호와 그 아래 적혀있는 만대포봉 존경제왕 이후제왕사(萬代褒封 尊敬帝王 而後帝王師, 만대에 걸쳐 제왕의 존경하는 스승으로 받들어 모신다는 뜻인 듯)의 문구가 이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가지고 온 여행안내서에서 참고가 될 부분을 발췌하였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진주로 떠오르는 신흥도시국가로서 한국과는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인연을 가진 나라이다.
오랜 기간 중국의 영향에 종속되었다가 19세기 말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1945년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독립 국가를 선포하고 1946년에 프랑스와 8년간 전투 끝에 프랑스를 물리쳤으나 1954년 북위 17도를 경계로 북쪽은 호치민이 이끄는 공산정권, 남쪽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고딘디엠 정권이 들어섰다. 1964년에 남북베트남이 전쟁상태로 돌입하여 미국의 요청을 받은 한국이 참전하게 되어 10여 년간 5000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1975년 북부베트남에 의해 공산화 통일이 이루어져 한국과는 국교가 단절되는 등 적대관계에 있다가 1992년의 국교수립 이후 한국과 베트남은 새로운 교류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하였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에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처녀들과 기능공으로 취업하는 근로자가 급격하게 늘고 한국영화와 TV연속극이 베트남인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한류의 열풍이 가장 먼저 불붙었으며 2006년에는 해외투자 2위국으로 부상하는 경제협력국가로 베트남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나라이기도하다.‘
오전 마지막 코스인 씨클로(3륜 자전거) 타기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자동차들이 뒤섞여 통행하는 교통수단의 색다른 묘미를 체험하면서 시내의 여러 가지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날씨가 더운데다가 습도가 높아 오전 코스를 마치고 나니 모두들 지친 표정이었는데 한국음식점에서 쌈밥을 들고 한 시간쯤 휴식을 취하고 나니 다시 기운이 솟는다.
오후 1시 반, 보다 의미 있는 여행이 되도록 특별히 요청하여 방문한 베트남 한국문화원에서 김상욱 문화원장으로부터 문화원의 설립과정과 활동상황을 직접 설명 들으며 베트남의 여러 외국 공관 중 가장 먼저 문화원을 세우고 한국 문화의 저변을 해외에 뿌리내리게 열심히 일하는 엘리트 공무원의 열정과 포부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해주어서 보기 좋았다.
수신자 베트남 한국문화원장
제 목 문화원 방문요청
1. 귀 기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본원은 사회복지법인으로 본원 사무국장 박영숙을 비롯하여 광주시내 사회복지시설의 사무국장과 후원자 일행이 6월 15일부터 5박 6일간 캄보디아와 베트남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3. 여행기간 중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 상황을 비롯하여 해외 한국문화원의 역할과 업무내용을 살펴볼 수 있으면 더 값진 여행이 될 것으로 사료되어 우리 일행의 귀 문화원 방문을 요청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방문일시 : 2007년 6월 18일 오후 1시 30분
○ 방문인원 : 18명
○ 대 표 자 : 김 태 호(천혜경로원 후원자)
천 혜 경 로 원 장
오후 2시 반에 문화원을 출발, 3시간여 하노이에서 하롱베이에 이르는 도로 주변의 삼모작(三毛作)이 가능한 논과 밭의 풍요로운 모습, 도약과 발전의 활력이 느껴지는 산업시설, 캄보디아에 비하여 훨씬 잘 가꾸어진 농촌 풍경들을 눈으로 확인하며 아시아의 용으로 떠오르던 한국의 뒤를 이어 아시아의 진주로 각광받는 베트남의 미래가 밝게 느껴졌다.
저녁에 스파 월드에서 해수 목욕을 하고 전신마사지를 받은 일행들의 심신이 더욱 밝고 활기 있어 보기 좋다. 어제 밤 마사지 도중 자리에서 일어선 신사(사연을 들어보니 인도네시아계 여성의 체취가 참기 힘들어서 나왔다고 한다)께서 아침 시간에 호텔 밖을 유유히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펜을 놓고 그에게로 가련다.(제4신 - 2007. 6. 19 아침 6시, 하롱베이 해변 호텔에서)
추신
①호텔 밖에 나오니 방에서 본 박 선생은 안 보이고 애연가 박 선생이 담배연기 내 뿜으며 산책 중이다. 어제 점심시간에 그가 웃으며 캄보디아 공항에서 영어를 딱 한마디 써 먹었다고 말했다. Where's smoking area?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해변에서 예쁜 여인이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기에 흰 팔찌를 하나 샀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드리면 좋겠다고 치하하였다.
②동양인과 유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5년 전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지방을 여행할 때 저명한 종교학자, 언론인과 일행이 되어 매일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고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원로언론인 이규태 씨가 국무성초청으로 미국에 가서 국무장관을 만났는데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특별한 종교를 가지지 않아서 무종교라고 대답하였더니 나중에 한국과장이 미국에서는 종교가 없다고 하면 인격적 대우를 받을 수 없다며 동양인은 유교적 생활에 익숙하니 유교라고 대답해도 괜찮았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누가 종교를 물으면 유교라고 대답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에 종교학자인 정진홍 교수가 Bolle라는 신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유교가 동양인에게는 물을 수 없는 질문이요 서양인에게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고 부연하였다.
③캄보디아 가이드의 무표정과 베트남가이드의 구수한 말솜씨가 일행 모두에게 화제가 되었다. 어쨌든 가이드는 고객을 존중하는 자세로 안내하는 본분을 다할 일이다. 유동구 가이드의 요령 있는 설명과 유머를 곁들인 적절한 말솜씨가 일행을 즐겁게 해주었다.
④환검 호수의 거북이 이야기가 생각나시는지, 부하군인이 호수에서 낚시 중 칼이 세 번이나 걸려 이를 장수에게 바쳤더니 전쟁에서 승리하여 왕위에 올랐다나, 훗날 호수에 나갔다가 거북이가 나타나 칼을 돌려 달라하여 이를 건네주어서 환검호수라 이름 지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지은 주 하느님 나를 도와주시네.’ (찬송가 가사에서)
5. 하롱베이는 아름다워라
어느덧 4박 6일의 마지막 날. 뜨거운 폭염 속에 땀 흘리며 힘들었지만 여행은 즐겁고 기쁜 일이어서 일행 모두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지난 일요일 아침 기도시간에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지으신 그 솜씨 깊고 주 하나님 영광 잘 드러내도다.’ 라고 찬송(찬송가 78장)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찬송처럼 완전하지는 않은 아쉬움이 있었는데 오늘 하롱베이를 돌아보며 바로 이곳이 찬송가사 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광이라고 느껴졌다.
오늘 처녀 출항한다는 산뜻한 배에 올라 출항을 축하하며 이양혜 씨(대학 시절 가수 정미조랑 같이 다녔는데 그녀보다 가창 실력이 좋았다는 사실을 알아주시라)가 ‘보리밭’을 열창하였고 우리가 새 배의 첫 손님이 된 것이나, 선망하는 한국인을 처음 고객으로 맞이한 그들 모두에게 좋은 일들이 많아지기를 축원하였다.
보리밭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현지에서 산 싱싱한 다금 바리와 갑오징어 회를 들며 건배하였고 선상에서 지은 점심식사도 맛이 좋아서 눈과 입, 가슴과 영혼까지 풍요롭고 상쾌하였다. 대한항공의 선전광고 장면을 담았다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며 어린 시절에 인상 깊게 읽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김황원이 대동강 모란봉에 올라 황홀한 광경을 읊조리다가 말문이 막혀 점, 점, 점, 하다가 흐느꼈다는 모습이 떠오른다. 잠시 배에서 내려 둘러본 동굴과 모래사장, 특히 400 계단을 땀 흘리며 올라선 전망대의 풍광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장년들은 모두 올랐는데 청년들은 이 좋은 풍경을 왜 아니 보셨을까?) 세상의 시름을 잊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신선놀이가 이런 것일까? 하늘의 용이 내려와서 이름 붙였다는 하롱(下龍)베이, 그 곳에서 새긴 아름다운 추억을 우리 모두 잊지 않으리라...
오후 2시 경, 다시 하노이로 향하는 차안에서 한 사람씩 이번 여행의 소회를 피력했다.
박계은, 정영란 부부 : 뜻 깊은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을 사회복지시설의 사무국장들과 천재일우의 기회를 타 함께하니 더욱 좋았다.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임태평, 정연희 부부 : 우여곡절이야 있지만 이름처럼 30년 넘는 생활 평안한 가운데 지내고 이렇게 좋은 멤버들과 여행한 것, 기쁘다. 그런 기회가 다시 오기를.,,
박무사, 이양혜 부부 : 34년간 아내와 함께 살아오면서 이처럼 여유로운 여행하는 것, 1963년 입학 이후 다섯 동창이 함께 사진 찍은 것은 언제였는지,,, 뜻 깊다. 앙코르의 불가사의, 하롱베이의 기묘함에 많은 것 느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지도자를 잘못만나 겪은 고통이 안타깝게 여겨지고 3,000명 라이따이한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일찍 그들을 품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이양혜 씨가 노래 한 곡 부르고 남편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여행한 것, 가이드의 설명이 좋았다며 감사하였다.)
이해영, 문형순 부부 : 오랜만에 남편친구들과 여행한 것, 특히 고향(광주)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 즐거웠다. 가이드가 흥미를 더해 주어서 감사하다.
김혜경 : 5대양 6대주를 아시나요? 유머가 넘치는 삶이 지식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에게도 강조했었다. 좋은 여행을 함께하여 감사하다.
박영숙 : 광주 노인 복지시설 사무국장들의 모처럼 해외나들이를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캄보디아 어린이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오열이 나온다. 우리가 잘 사는 것, 감사하면서 더 열심히 일하리라. 멋쟁이 오빠들, 잘생긴 가이드에게 찬사를 보낸다.
임민영 : 우여곡절 끝에 참여하여 좋은 여행된 것 감사하고 사진으로만 보던 문화유산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기억 길이 간직하리.
김경아 : 밝고 즐거운 시간 가질 수 있어서 스트레스 많이 풀었다. 반듯하게 젊은 모습 간직하도록 노력하겠다. 아름다운 부부들의 모습 보며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김미정 : 다른 나라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늘 있는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며 돌아 볼 수 있어서 뜻 깊었다.
정민희 : 좋은 분들과 함께 즐거운 여행하게 되어 기쁘다. 늘 건강하시기를,,,.
조미성 : 부부가 함께 온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같이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 가이드의 설명도 좋았다.
손만석 : 여행을 통하여 많은 것 느끼고 동행한 어른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바쁜 시간을 더 뜻 깊게 살 수 있도록 힘쓰겠다.
정상진 : 일상을 벗어나서 좋았고 여행을 통하여 많이 배웠다. 어르신들께 소주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다음 기회에 모실 수 있기 바란다.
잠깐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이나 지나 어느덧 휴게소에 도착, 노니 비누와 약제, 명품가방 등을 사고 라텍스 판매장에서 베게들을 사는 사이에 마지막 하루가 훌쩍 지나 저녁 8시 반, 공항으로 향하였다.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근엄한 표정의 박무사 선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표정과 달리 옛 것과 새 것이 뒤섞인 우스개 소리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①우유배달 아줌마와 아빠가 벌인 일 - 혹 떼려다 혹 붙인 엄마
②조지 브라운에게 시집간 처녀가 이장에게 전화하였던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③레간자는 소리 없이 강하였다. 새마을호는?
④사위는 러브호텔 보일러공 → 뭐라고?
공항의 출국장 입구에 수십 명의 환송객이 배웅 나온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국으로 취업하러 가는 기능인을 전송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 한다. 우리도 한때 김포국제공항 출국장에 수십 명씩 나간 적이 있었다.
기내에서 신문을 펼치어 찌엣 베트남 주석이 종전 후 첫 미국방문길에 오르는 사진과 기사가 눈에 띈다.(중앙일보 2007.6.19)
베트남전이 끝난 지 32년 만에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그가 18일 미국 방문 길에 올랐다. 하노이 공항에서 그는 "이번 역사적인 방문이 양국 관계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미를 계기로 베트남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을 넘어 세계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의 이 같은 실용주의 리더십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과거는 미래를 위해 해석돼야 한다"=찌엣 주석은 이번에 미국에 사는 베트남 교민대표들을 만난다. 이들은 1975년 사이공 함락과 함께 공산주의가 무서워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보트피플)들이다. 모두 150여만 명에 이른다. 그동안 조국의 공산정권에 저항했던 이른바 반체제 세력이다. 그러나 찌엣 주석은 "과거는 과거다. 국가발전을 위해 이들의 식견과 자금, 조국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 조국 발전의 아이디어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열린 마음은 이미 몇 년 전에 확인된 바 있다. ◆형식보다는 내용 추구=찌엣 주석은 이번에 100여 명의 기업인을 데리고 미국에 간다. 그는 기업인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고 한다. 미국 기업인을 만날 때 형식적인 의향서는 교환하지 말고, 구체적인 투자 유치 자료를 들고가 협상을 끝내라고 한 것이다. 또 투자 유치를 못 하면 반드시 미국 기업인들의 베트남 방문을 성사시키라고 주문했다. 찌엣 주석은 팜 자 키엠 외교부장관과 응우옌 티엔 년 교육부 장관에게도 미국의 외교.교육.민간단체들과 정기적인 교환 방문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정치와 경제 등 일부 분야 교류로는 양국 관계의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권 문제도 실용으로 푼다=올 4월 협상에서 양국 정상회담은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베트남 정부가 자국 민주단체인 '블록 8406' 회원 2000여 명에 대한 검거를 시작하자 부시 행정부가 찌엣 주석의 방미를 취소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베트남 정부는 곧 바로 특사를 파견해 미국을 설득했다. 당시 특사는 인권 문제 개선에 대해 구체적인 조치들을 제시할 것이라며 회담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아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7월 초로 예정된 양국 정상회담은 20일이나 앞당겨졌다. 특사는 이와 함께 찌엣 주석이 가능한 한 많은 미국 인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지도자들을 만나 폭 넓은 교류를 하겠다는 뜻이다. 인권 문제를 양보하면서 얻을 것은 모두 얻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중국 측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방미가 공식이냐 실무냐를 놓고 미국과 논란을 벌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베트남은 미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이에 상응하는 조치도 취했다. 16일 민주화 운동을 해온 레 꾸억 꾸언 등 2명의 반체제 인사를 우선 석방했다. 호찌민시 드래건펀드의 창업자인 도미니크 스크리븐 펀드매니저는 "베트남이 지난해 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로 부상하는 데는 정치 지도자들의 유연하고 실용적인 사고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월남전에 파병하고 베트남 처녀들이 시집오는 나라로 막연하게 알던 곳, 한류의 열풍이 몰아치고 경제교역이 가속화되는 떠오르는 진주, 베트남이여 안녕! (제5일 - 2007. 6. 20 오후 4시, 여행을 마치고 광주에서)
후기(後記)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 한 번 다녀온 곳이라 더 관심이 가서 그런지 베트남 주석이 미국방문 하는 기사가 며칠째 신문에 나오더니 25일 밤 TV 톱뉴스에는 한국인 관광객 13명을 포함한 22명의 탑승자가 탄 캄보디아 전세비행기가 추락하였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것을 기뻐하였는데 사고 소식을 접하며 의례적인 것인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씨엠립에서 이륙한 사고기는 우리가 지난 17일 저녁, 그곳에서 타고 하노이로 간 PTM 항공사 소속이어서 더욱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천혜경로원 박영숙 사무국장과 아내 김혜경은 그때 비행기 뒷좌석에서 누워 갔는데 만약 사고가 났다면 뼈도 못 추릴 뻔 했다며 캄보디아의 무더위, 가이드의 불친절 등과 함께 열악한 환경 속을 무사히 빠져 나온 것에 안도하는 표정이다. 서울의 박계은 친구도 전화를 걸어와서 같은 뜻을 표하였다.
지난 일요일 오후 예배 때는 천혜경로원 식구들과 함께 이번 여행 때 찍은 사진을 컴퓨터 화면으로 감상하며 우리가 돌아본 여정을 다시 되새겼다. 광주 사회복지시설 사무국장들은 2008년부터 확대 시행하는 노인복지제도의 설명회에서 만나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풀 겨를 없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는 후속 근황도 전해 들었다. 세중 투어몰 고객관리 팀에서 여행을 잘 다녀왔는지 묻는 확인전화가 있었다. 큰 불편 없이 다녀왔으나 가이드가 비교 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천혜경로원 박영숙 사무국장이 서울에 사는 여행 친구들을 한 번 초대하겠다고 제의하였는데 그때가 언제일지 가다려진다. 참고가 될 부분들을 소개한다.
(1) 캄보디아 추락사고 관련기사
한국인 관광객 13명을 태운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 현장에 대한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추락 지점이 열대 우림이고 폭우 등 기상악화로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지 목격자들의 증언과 주변정황으로 볼 때 22명의 탑승자들은 모두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훈센총리와 군 총사령관이 나서 사고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캄보디아 관광의 최대 소비자인 한국인 대상 사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빠른 구조에 정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25일 현장에 급파된 신현석 캄보디아 주재 대사 일행은 사고현장으로 추정되는 캄포트 주청사에서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들과 밤늦게 까지 대책회의를 가졌다. 신 대사는 밤 11시 경 훈센 총리와 직접 전화 통화를 했다. 훈센 총리는 이 통화에서 한국인 탑승자 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고 캄보디아 주재 미국 대사에게 미국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항공기 추락 추정시점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취재하고 있는 YTN 전준형 기자의 멘트를 들어보자
‘이번에 추락한 항공기에는 특히 가족 단위의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탑승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고고싱' 16살 정민이가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의 미니홈피에 달아놓은 제목입니다. 충북 음성의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정민이와 동생 준기는 방학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정민이가 남긴 글에는 여전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지만, 방명록에는 정민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친구들의 안타까운 글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후·민·하의 아빠, 윤의 남편, 조종옥입니다.' 바쁜 정치부 기자 생활 가운데서도 행복한 다섯 식구의 삶을 꾸려가던 조 기자에게는 모처럼 마련한 가족 해외여행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두 형을 캄보디아로 떠나보내고 홀로 외갓집에 맡겨진 한 살짜리 쌍둥이 막내아들은 아직 영문도 모른 채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학에 편입한 뒤 효도하겠다며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난 서유경 씨 가족들도 하늘이 효심에 무심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행복하기만 했던 가족여행을 한 순간에 끔찍한 비극으로 바꿔버린 추락사고. 하지만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아직도 기적처럼 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캄보디아 관광가이드의 이번 사고에 대한 소회
27일자 중앙일보에 캄보디아의 한국인 관광가이드가 캄보디아 패키지 관광실태와 이번 사고에 개한 소회를 피력한 글이 실렸다.
캄보디아의 현지여행사는 한국여행사에서 일감을 맡는 소규모여행사로 월급을 주지 않는다. 저가(低價) 여행은 선택 관광과 쇼핑 투어를 통해 커미션을 벌어야 하는 기형적 제도로서 손해를 감수하는 마이너스 투어와 웃돈을 지불하는 언더 투어까지 생겼다. 관광객들은 바가지 선택 관광과 쇼핑 투어를 안 하려고 버티고 가이드는 이에 목을 매려하니 서로 짜증을 내게 되고 불성실한 가이드를 하게 되기도 한다. 캄보디아에서 한국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두 개의 국내선과 전세비행기가 있는데 이번에 사고가 난 PTM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사고의 위험성이 있어 타고 싶지 않지만,,,
가이드는 사고가 나도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더 나아가 해외 패키지여행 전반의 문제를 차분히 짚어 봐야 한다.‘
27일 기체가 발견되었다는 속보가 나오고 이어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는 캄보디아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제발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던 가족들과 우리 모두에게 안타까움을 안겨 주는 보도이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즐거운 추억은 길이 간직하되 아쉽고 안타까운 사연은 털어버리자.
모두들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는 날들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파이팅을 외쳐본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여행으로 좋은 추억이 되셨을텐데, 바로 1주후 안타까운 사고가 있어, 정말 잊지 못할 곳이 되셨겠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록 사고가 났지만 멋진 여행지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요. 저도 한 번 꼭 다녀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