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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대 (염상섭) 작품 해설
작품 배경
《삼대》는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27일까지 215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한 신문 연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연재 당시 김병화를 비롯한 ‘주의자’(당시 주의자는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를 가리켰음)가 등장한 이유로 일제 하에서는 단행본 출판 허가를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정 아래 거의 압수 조치나 다름없이 발행이 묶여 있다가 해방 이후 염상섭은 41장과 42장을 추가하고 연재 당시의 문장을 약간 수정 보완하여 1947년 을유 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전집에 실린 작품은 바로 이 을유 문화사본이다.
작품 해설
염상섭은 연재에 들어가기 전 작품의 내용과 방향을 예고한 바 있는데, 여기서 보면 이 작품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3대가 사는 중산 계급의 한 가정을 그려 보려 한다.’ ‘단순한 도덕 문제라든지 가족 제도의 구습 구관의 파기라는 부분적 노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적 의식이 깊어간 시구의 충돌에 그 뜻이 새롭다.’라는 말이 주목된다.
또한 염상섭은 ‘횡보 문단 회상기’ (《사상계》, 1962.)에서《표본실의 청개구리》와 《삼대》가 가장 애착이 간다고 하면서, 특히《삼대》에 관련하여, ‘신, 구시대를 조손(祖孫)으로, 그 중간의 신구 환충 지대적인 시대 즉 흑백의 중간적이요, 흐릿한 회색적 존재로서 부친의 대를 개재시켜 세 시대상의 추이와 그 특징을 밝힌 작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은 작가의 설명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이 작품의 의도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세대간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놓고 당대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리려 했다는 점이요, 또 하나는 작가의 시각을 중산층 계급의 차원으로 놓고 시대상을 그리려 했다 는 점이다.
전자는 할아버지 조의관과 그의 아들 조상훈, 그의 손자인 조덕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족사 소설의 성격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후자는 중산층 계급을 택하여 사회상을 반영하였다는 것은 중산층 계급의 일상적인 생활 감각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삼대》는 ‘가족사를 통한 시대사의 재구성’(이재선)에다 목표를 둔 것이며, 조, 부, 손 삼대 사이의 갈등을 종축으로 하고, 사회주의자들과 식민 통치 당국 사이의 대립을 횡축으로 삼아 한 시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중심적인 이야기 축은 조덕기가 담당하고 있다. 조덕기는 봉건적인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할아버지 조의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개화기 지식인 아버지 조상훈 사이의 갈등 속에 있으면서 가족의 삶을 중심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또한 친구인 주의자 김병화 사이의 친소 관계를 통해서 이념적인 갈등을 보여 주고 있다. 홍경애, 필순, 필순 부친, 장훈 같은 사회 운동가들 사이에 있으면서 식민통치 체제에 어떤 세계관을 보여야 하는지 그 이념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심에 놓여 있기도 하다. 세대간의 문제와 이념적 축을 통한 수직, 수평적 인간 관계에서 조덕기가 중심축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소설의 구조적 측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삼대》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는데, 총 42장 중 1장에서 11장까지가 제1부로서 덕기가 서울에 있는 동안이며, 제 12장에서 24장까지는 제2부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덕기가 일본 경도에 가 있는 동안이다. 제3부는 덕기가 다시 서울에 온 제 25장에서 42장 끝까지이다.
그러니까 중심 무대는 서울이며 덕기가 서울에 있을 때는 세대간의 인간 관계와 갈등이 중심이 되고 덕기가 동경에 있을 떄는 덕기 ― 병화 또는 이념적 인물군들의 인간 관계가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삼대》는 덕기를 중심축으로 세대간의 갈등과 이념적 갈등을 중심 문제로 조선 사회의 모습을 그리려 한것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볼 때, 《삼대》는 덕기를 중심으로 조의관 ― 조상훈 등의 세대간의 수직적 인간 관계와 덕기 ― 병화를 중심으로 하는 이념적인 문제의 수평적 인간 관계로 나누어 그 갈등 구조를 살펴볼 수있다.
조의관 ― 조상훈 ― 조덕기 조, 부, 손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인간 관계는 세대간의 갈등이 중심이 된다. 여기서 중심되는 이야기는 조의관과 조상훈 사이의 갈등이다.
조의관은 평생 동안 가문, 재산, 족보, 종족주의 등의 개념에 얽매이는 봉건적 인물이다. 조의관의 가치관으로 대표되는 상징어 ‘사당’과 ‘열쇠’는 곧 ‘가문’과 ‘돈’의 문제이다. 반면에 조상훈은 개화기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보려는 야심이 근원적으로 봉쇄되자 자신의 올바른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하고 감상과 쾌락에 자족하는 삶으로 전락한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와 학교 사업에 투신하여 ‘도덕이니 구원이니 하면서도’ ‘제 자식 하나 못 가르치는’ 변변치 못한 위인으로 낙인이 찍혀 조씨 집안에서 설 땅을 찾지 못한다. 조의관은 조상도 모시지 않고 기독교에 빠져 있고, 늘 계집질과 노름 등으로 재산을 탕진한다는 이유로 조상훈을 금치산자로 묶기까지 한다.
결국 손자 덕기에게 ‘사당’과 ‘열쇠’를 맡긴다. 조상훈과 조덕기의 관계는 조의관 사이처럼 ‘건널 수 없는 강’은 아니다. 조의관은 상훈에게 무턱대고 자기 생각을 따라오라고 강요한 것이라면, 조상훈은 자기 세대의 사상이 아들 세대에 의해 일부분만이라도 수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조덕기는 아버지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두면서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와 공감을 한다. 결국 덕기는 조부의 인습적 전통과 부친의 이상주의적 개화의식, 그리고 이 양자의 극렬한 대립을 해소하면서 민족 의식이나 사회 의식의 조응을 받아 양심이나 이성에 의해 대처하고자 한 중심적인 인물이다.
조덕기 ― 김병화 관계로 대표되는 수평적 인간 관계는 이념적인 관계와 갈등이 중심이 된다. 덕기와 병화는 젊은 지식인으로서 각기 다른 입장에 놓여 있고 다른 길을 가면서도 우정엔 변함이 없다. 아버지한텐 반항하고 집을 나와 동경 유학 중에 사회주의자가 되어 버린 김병화는 평소에 조덕기로부터 하숙비와 용돈을 지원 받는다. 그러면서도 병화는 덕기를 만나기만 하면 ‘부르주아’ ‘가진 자’ 운운하며 비꼰다.
이렇듯 서로 설득도 하고 비꼬기도 하고 밀고 당기는 친소 관계가 계속되면서 병화 ― 필순의 식료품상을 중심으로 활동 기밀비 운용의 문제, 피혁 ― 홍경애 ― 김병화로 이어지는 주의자에 대한 도움과 의기 투합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은 편견 없이 사회주의자의 내면 세계와 그 미묘한 변화 과정을 여실하게 추적하고 있다. ‘가진 자’에 대한 적대감과 비판을 하면서도 조덕기로부터 조건 없는 도움을 받는 병화나 필순, 기밀비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장렬하게 자결하는 장훈, 역사의 중심에서면서도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피혁 등의 주의자들의 모습이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면서 수직적, 수평적 인물 관계 속에 매개항으로서의 인물들을 설정함으로써, 당대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가치 중립적인 중산층 보수주의적 세계관을 보이는 염상섭은 소설적인 구성을 위해 매개적 인물들을 설정하고 있다. 매당집과 김의경, 최참봉, 수원집과 지주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 매당집은 세대와 이념의 축을 일상적인 삶의 감각으로 처리하게 한 독특한 소설적 장치이기도 하다.
《삼대》가 당대 사회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객관적인시점으로 관찰하면서 작가적 중립성을 유지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가치 중립적인 세계관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작가의 기분이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인물 형상화 방법과 인물을 중립적인 시각으로 끌고 가는 서술 양식은‘주와 객을 혼합해야만 진정한 사실주의가 형성된다.’는 염상섭 자신의 신념이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창작 방법은 이념적인 지향성 면에서도 어느 한쪽이 승리하고 다른 한쪽이 파국을 맞는 것을 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과 행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조덕기와 같은 ‘심퍼다이저’이다.
일제 하의 사회 운동 방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급진적이며, 무력 쟁도 불사하는 좌익 운동, 무산자 해방 운동 같은 단재 사상에 근간을 둔 투쟁론이요, 다른 하나는 점진적이며, 교육과 계몽 산업 진흥을 통해 실력을 쌓아 해방과 독립을 쟁취하자는 민족 개량주의 같은 도산 사상에 근간을 둔 준비론이다.
‘심퍼다이저’는 전자의 노선을 물질적ㆍ정신적 양면에서 지원함으로써 독립 운동의 대열에 자연스럽고도 은밀하게 가담하려는 태도를 말한다.《삼대》에서 보인 ‘심퍼다이저’ 논리는 단순히 동반자적 성격만으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조덕기의 세계관은 절대적인 긍정이나 부정도 아닌 극단적인 것을 피하면서, 현상 유지의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는 ‘심퍼다이저’이다. 그러므로 김병화나 필순에게 동조도 하고 지원도 하지만 끝내 조덕기일 뿐이다. 조덕기는 자신이 귀속되어 있는 사회를 분명 갈등의 현장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안정과 조화를 찾아 나가는 모색의 공간이라는 파악도 잊지 않고 있다.
조덕기는 할아버지 조의관으로부터 ‘열쇠’와 ‘사당’을 지키라는 유지를 받고 또 그것을 충실히 이행할 것처럼 보이는 존재이다. 이 사실은 조덕기가 오히려 이 세계를 변화와 논리보다, 조화와 안정의 논리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출처 : http://www.esokd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