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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의 영웅 양만춘
신동일
제 3차에 걸친 고구려 침략에서 참패한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 나라를 세운 당나라는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당나라 두 번째 임금인 태종 때에 이르러는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그 주변국들까지 차례로 정복하여 땅을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다.
“황제 님, 황제님께서는 이제 하늘아래 온 땅을 얻으셨습니다! 이제 온 세상의 주인은 황제님의 것이옵니다. 이제는 부디 편안히 만복을 누리소서!”
수나라 때부터 싸움에 지친 황실 안팍에서는 편히 살기를 희망했다.
그렇지만 권력을 가진 황제들의 생각은 거의 비슷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나라들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당태종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야, 아직은 천하의 주인이 아니야! ”
야욕이 강한 당태종의 욕심은 고구려가 있는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 요하 건너편에 있는 고구려를 삼켜야 천하를 얻는 거야!”
“그, 그렇지만 고구려는 워낙 강해서 수나라 백만 대군도......”
“그만!”
신하들의 말을 당태종이 얼굴을 찌푸렸다.
“우린 고구려에게 세 번이나 패한 수 나라와는 달라! 우린 이미 수 나라를 쓰러뜨리고 당을 세웠어. 수 나라가 쓰러뜨리지 못한 고구려를 우리는 반드시 이겨서 정복 할거야!”
당태종은 고구려를 침략할 적당한 구실을 찾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을 보냈다.
당나라 사신이 고구려에 전한 내용은 ‘고구려가 얼마 전 신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 주라’는 것이었다.
이때 고구려 임금은 보장왕이었지만 나라의 모든 권력은 대 막리지였던 연개소문이 쥐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신라의 땅을 돌려주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대신 당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시켜 보물을 보냈다.
“고구려가 감히 내 명령을 거절하다니. 그냥 둘 수 없다!”
원래부터 고구려를 침략할 꼬투리를 찾던 태종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한 고구려를 칠 결심을 굳히고 선물을 가지고 온 사신을 가두어버렸다.
당나라 황제는 곧 고구려를 침공할 계획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우리는 결코 수 나라처럼 허술하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패기에 넘치던 당태종은 수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침공 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수많은 전함이 만들어졌고 군사도 대대적으로 모집했다.
각종 전투에 필요한 장비들도 새로 제작하고 이런 장비를 사용할 군사 훈련도 밤낮으로 실시하였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만하면 수나라처럼 허망하게 물러서지는 않겠지. 기다려라! 연개소문!’
644년, 11월, 당태종의 명령이 떨어졌다.
“기다리던 고구려 정벌이다. 총 출동이다!”
고구려를 향한 당나라의 진격은 두 갈래로 편성되었다.
-장량이 거느린 4만 3천의 병사는 500여 척의 전함을 타고 내주에서 바다를 건너 직접 평양성으로 향한다. 이세적이 거느린 기병 6만과 보병들은 요동을 거쳐 평양으로 치고 들어간다.
구름 떼처럼 거대한 군대가 유주(베이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초까지 유주(베이징)에 집결한 군사들은 부대를 편성하고 각 부대에 필요한 충차, 화차,화포 등의 장비를 만들었다.
645년 3월 9일, 친히 갑옷에 활과 전통을 멘 당태종의 진군 명령에 따라 거대한 군대가 산이 움직이듯 고구려를 향했다.
당시 고구려 국경을 지키는 성은 현도성, 신성, 요동성, 안시성, 건안성 등이 북쪽에서부터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각 성에는 연개소문의 철저한 지시를 받는 성주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다.
당나라 군대들은 수나라의 공격을 굳건히 지켜낸 가까운 요동성 대신 비교적 허약한 북쪽의 신성부터 간단히 함락시켰다.
신성이 무너지자 당나라 군대들은 손쉽게 요동성을 에워싸고 포위망을 좁혀갔다.
요동성은 꽤 강한 성이었지만 충차, 석포, 화포 등을 사용한 당나라군에 밀려 힘없이 함락되고 말았다.
“봐라! 우리는 수나라가 여섯 달 동안 공격했어도 떨어뜨리지 못했던 요동성을 단숨에 함락시켰다. 고구려의 운명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당태종은 크게 만족했다.
요동성이 함락되자 부근의 작은 성들도 겁에 질려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태종은 하늘의 별을 딴 듯 기뻐했다.
“하하하, 이제 안시성만 깨뜨리면 평양까지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거다! 제 장들은 모두 힘들을 내라!”
당태종이 기뻐하는 크기만큼 고구려와 안시성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기에 몰렸다.
이때 안시성을 지키는 장수는 양만춘이었다. 양만춘은 용맹과 슬기를 두루 갇춘 빼어난 장수였다
“이제 고구려의 운명은 안시성에 달려 있소. 죽음으로 안시성을 사수하시오!”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간곡한 부탁이 안시성 성주인 양만춘에게 전해졌다.
“물론이요. 이 양만춘은 안시성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요!”
성안의 모든 장수와 군사는 물론 일반 백성도 양만춘과 함께 똘똘 뭉쳐 당군을 무찌르려는 결의로 불타올랐다.
연개소문은 풍전등화 같은 안시성을 도우려고 15만 명의 지원군을 안시성으로 급파했다. 그러나 그 15만의 지원병들도 당나라 군대에게 단숨에 패하고 말았다.
양만춘은 매일 성내에 있는 장수들을 불러모아 작전 회의를 열었다.
“사정이 위급하오, 요동성는 물론, 비사성,백암성,신성 등도 모두 당군 손에 떨어졌소!”
“게다가 우리를 지원키 위해 평양에서 파견한 15만의 고연수 군도 궤멸되었다지 않소?”
“요동성에서는 파죽지세로 몰려든 당군 놈들이 성내 모든 군사는 물론 4만 명의 무고한 백성이 포로로 잡혔고 50만석의 군량미까지 싹 쓸어갔다 하오.”
“그래요, 이제 평양성의 원군도 기대하기 힘들고 이웃성의 도움도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오.”
안시성 내 군사들은 물론 용맹스럽던 장수들까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대담한 성주인 양만춘은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했소. 자, 죽기로 싸우면 살길이 열릴 것이오! 비겁하게 포로로 잡혀 비참하게 죽느니 고구려 인답게 당당히 싸워 고구려인의 장한 모습을 보여 주자는 게 나의 생각이요!“
양만춘의 씩씩한 모습에 성안을 지키는 모든 군사와 백성들은 용기 백배하여 전투 태세에 나섰다.
어느 날 성 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군사가 달려와 양만춘에게 고했다.
성 동문 쪽으로 금빛 찬란한 온량거를 탄 당태종이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그래?”
양만춘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금빛 찬란한 온량거에 높이 앉은 당태종은 당군 12만 명을 거느리고 천하를 통일하려는 황제답게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당당함이 엿보였다.
태종을 호위하는 장수들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육군 사령관 이세적을 비롯하여 설인귀, 계필하력, 아사나두이, 장손무, 우달진 등 이름만으로도 하늘을 찌를듯한 맹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당태종의 당당한 모습에 당군은 물론 이를 보는 고구려의 장수와 군사들까지 잠시 넋을 잃은 듯 했다.
이때 안시성 동문쪽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청색 갑옷에 은빛 투구를 갖춰 쓴 양만춘이 당태종에 맞서 성 위로 올라선 것이었다.
“와아! 양만춘 성주님이 나오셨다!”
양만춘이 당태종을 내려다 보았다.
태종이 젊은 패기를 지닌 황제라면 이에 맞설 양만춘은 경륜을 갖춘 역전의 맹장이었다.
당태종이 나타나자 안시성 안에서 교묘한 심리전이 펼쳐졌다.
고구려 성문 쪽에서 갑자기 괴이한 곡소리가 나왔다.
“어이어이 애석하다. 양세민이 객사했도다!”
“어이어이, 여기가 당군의 공동묘지로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기이하게 여기던 당태종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 쥐새끼 같은 고구려 놈들이….”
옆에서 지켜보던 당나라 장수들도 황제보기가 민망하여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했다.
잠시 숨막히는 긴장이 이어졌다.
“으음!”
마침내 당태종의 불같은 분노가 폭발했다.
“당장, 지금 당장 저 손바닥 만한 안시성을 쓸어버려라! 사람은 물론 쥐새끼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도륙하여 불타는 구덩이에 쳐박아라! 성벽은 돌 하나 남김없이 성 허물어버리고 불탈 만한 것은 모조리 불태워 버려라!”
당태종의 명령이 떨어지자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한 당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석포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석포에서 쏘아대는 커다란 돌덩이가 안시성 안으로 우박처럼 쏟아졌다. 석포는 사정거리가 300보 이상이나 되는 위력적인 무기였다.
성 위에 있던 고구려 군사가 몸을 피하자 이번에는 충차 부대가 성 밑으로 바짝 달려들었다. 충차는 몇 아름이나 되는 나무의 끝을 연필심처럼 뾰족이 깍아 수레에 장치한 것으로 성문이나 흙으로 쌓은 성벽을 부수는 장비였다.
쿵,쿵 -
수십 대의 충차가 성문과 성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벽 뒤로 숨었던 고구려 군이 나타나 화살과 돌멩이를 퍼부었다.
“안되겠다! 화포를 발사하라!”
충차가 뒤로 물러나고 불화살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요동성과 달리 안시성은 철옹성처럼 단단했다.
아래에서 위를 보며 공격하는 당나라 군사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방어하는 고구려 군이 훨씬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안되겠다. 성 아래에서 성 위를 보며 공격해서는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당나라 군사들이 갑자기 흙을 파서 나르기 시작했다. 흙으로 높은 토산을 쌓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본 양만춘은 깜짝 놀랐다.
“큰일이다! 저 토성이 우리 성보다 더 높아지면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당나라군사들이 위를 내려다보며 공격하게 된다. 자 우리도 당나라에 맞서 토성을 쌓아라 !”
성안과 성밖에서 토산 높이 쌓기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성 안 보다는 성밖에서 성 쌓는 것이 더 유리했다.
한달 쯤 지난 뒤에는 당 나라 쪽 토성이 안시성보다 훨씬 높아졌다.
당태종이 초서우이에서 내려닫 보니 성안에서 움직이는 고구려 군사들의 움직임이 빤히 내려다 보였다.
“하하하, 이젠 됐다. 안시성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이제 곧 불시에 안시성을 공격하여 단숨에 쓸어버리는 거야!”
당태종은 부하들을 불러놓고 승리를 확신하는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막상 수만의 당나라 군사가 성 위에 올라 싸움을 시작하려하자 애써 쌓은 토성이 안시성 성벽 쪽으로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허약하게 쌓은 토성이 수 만 명 군사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으아악! 토성이 무너진다!”
성벽이 무너지자 비명을지르며 안시성 쪽으로 굴러 떨어진 당나라 군사들은 기다리고있던 고구려 군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흙더미에 묻혀 죽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토성이 안시성 한쪽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당나라 토성이 무너져 우리 성벽을 덮쳤다! 우리 성벽 한 귀퉁이도 이 허물어졌다!”
“뭐야? 우리 성이 무너져?”
깜짝 놀란 성주 양만춘이 무너진 성벽 쪽으로 뛰어나왔다.
“잠, 잠깐!”
성벽쪽으로 무너져 내린 당나라토성을 바라보던 양만춘이 갑자기 긴 칼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군사들은 내 뒤를 따르라! 어서어서 저 토성의 정상을 점령하라!”
“와! 나가자!”
고구려 군사들이 번개처럼 토산의 정상을 차지한 다음 목책을 치고 몸을 숨길 참호까지 팠다.
“이런 이런 낭패를 보았나!”
뒤늦게 달려온 당태종이 펄펄뛰었다.
“이놈들아, 몇 달 쌓은 토성을 고스란히 고구려 놈들에게 내주다니, 네놈들은 무얼 했단 말이냐. 이젠 토성이고 뭐고 없다.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여라!”
또 다시 당나라 군사들의 총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당나라 군대의 전투 결과는 성을 쌓기 전보다 더 참담했다.
토성 위에서 손바닥 들여다보듯 빤히당군을 내려다보며 방어하는 고구려 군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연 3일 동안이나 밤낮없이 공격해 보았지만 안시성은 철벽처럼 단단했다.
오히려 당나라 군사들의 희생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자신감에 넘치던 당태종의 얼굴이 침통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식량도 점점 줄어들고 북쪽에서는 싸늘한 북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추위라도 밀려오면 우리 우리 군사들이….”
마침내 총대장인 이세적이 철수 할 것을 간하였다.
“으으, 분하다!”
당태종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철수한다!”
당태종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루루 흘러 내렸다.
“그 , 그렇지만 우리가 비록 물러가지만 황제와 당나라 군사의 당당한 모습은 잃지 않도록 하라!”
당군들이 질서있게 안시성 아래를 지날 때였다.
“지금 당태종이 성 밑을 지나고 있습니다!”
성 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군사가 달려와 양만춘에게 고했다.
“그래?”
양만춘이 성문 위로 달려갔다.
비록 안시성 공략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금빛 찬란한 온량거에 높이 앉은 당태종은 천하의 당나라 황제답게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당당함이 엿보였다.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태종을 호위하는 장수들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육군 사령관 이세적, 장손무기 등의 호위를 받는 모습은 당 군은 물론 이를 보는 고구려의 장수와 군사들까지 잠시 넋을 잃은 듯 했다.
이때 안시성 동문 쪽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양만춘 성주 님이 나오셨다!”
양만춘이 나타났다는 말에 당태종이 온량거 밖으로 고개를 돌려 성위쪽을 보았다.
“우리와 싸운 적장이지만 정말 잘 싸운 양만춘의 얼굴이라도 보고싶구나!”
당태종이 탄 수레가 잠시 멈춰 섰을 때였다. 양만춘 옆에 있던 장수 하나가 번개처럼 당태종의 얼굴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무슨 짓이냐?”
그러나 그보다 더 빠르게 양만춘의 손이 당겨지는 화살을 밀쳐 버렸다.
“저 쪽은 이미 싸움을 멈추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으냐!”
당태종이 이런 양만춘의 모습을 보았다.
청색 갑옷에 은빛 투구를 갖춰 쓰고 긴 장검을 짚은 양만춘의 당당하고 재빠른 모습!
“내가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요!”
양만춘이 작별 인사라도 하듯 우렁차게 소리치며 당태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당태종도 화답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온량거에 올랐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과연 당나라 황제를 꺾을 만한 영웅 호걸의 모습이로다! 내가 패하여 후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결코 깔보거나 야유하지 않는 높은 예절까지 갖추었구나! 동쪽 작은 나라 고구려에 저런 영웅이 숨어 있었다니.”
태종이 젊은 패기를 지닌 황제라면 이에 맞선 양만춘은 경륜을 갖춘 역전의 맹장이었다.
석 달 간의 안시성 싸움에서 당태종은 8만 명의 시체를 남기고 돌아갔다.
거대한 당나라의 국력을 한데 모은 공격을 통쾌하게 물리친 안시성 싸움은 우리 민족이 자랑할 만한 씩씩하고 강건한 고구려 정신의 승리였다. (4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