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에서 렌즈(Lens)는 사람 몸에서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몸이 만 냥이면 눈이 구천 냥'이라는 옛말처럼 사진기에서도 렌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크다. 사진의 질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렌즈임에는 틀림없지만 렌즈는 그리 간단하게 얘기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렌즈가 사진기에 고정되어있어 교체해 쓸 수 없는 콤팩트 사진기를 제외하면 레인지 파인더 형식의 사진기든, 일안 반사 형식의 사진기든 필요에 따라 다양한 렌즈를 교환해가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렌즈는 피사체가 필름에 상을 맺게 해 주는 광학 유리로 라틴어 Linse(콩)에서 유래된 말이다. 사진기 렌즈는 한 장의 유리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어서 렌즈를 설계할 때는 유리 군(群), 유리 매수, 형태, 유리의 종류, 군(群)의 배열, 곡률, 분산률 등 매우 복잡한 광학적 방법이 요구된다. 그리고 광학 유리의 밀도와 순도가 균일하여야 상이 선명하고 형태가 정확하게 나온다. 또한 렌즈를 통과한 빛이 한 지점에 모일 수 있도록 렌즈의 구면이 정확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렌즈는 분산율과 굴절률이 다르고 두께와 곡률이 다른 광학 유리를 몇 장씩 조합해서 각기 정확한 위치에 고정시켜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고도의 정밀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진기 렌즈를 제대로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몇 개국에 불과하다.
렌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찍히는 사물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며, 찍히는 화면의 화각을 조절하는 일이다. 그리고 렌즈에 장착된 조리개로 심도를 조절하는 일이다. 렌즈에 대한 정보는 대개 렌즈의 정면 둘레에 표시되어 있다. 렌즈의 명칭, 초점거리, 최대 구경, 렌즈의 지름, 제조회사 이름 등이 정면에 새겨져 있고, 렌즈의 후면은 고유의 사진기에 결합될 수 있도록 사진기 제조 업체의 독특한 연결 마운트로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라이카 사진기에는 라이카 렌즈만이, 미놀타 사진기에는 미놀타 렌즈만이 장착될 수 있는 것이다.
렌즈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초점거리(Focal Length)와 렌즈의 최대 구경(Aperture : f/stop)이다. 50mm f/1.2, 또는 100mm f/2.8로 표시되는 렌즈에서 50, 100은 렌즈의 초점거리를 의미하며 f/1.2, f/2.8은 렌즈의 최대 구경을 나타낸다.
흔히 얘기되는 렌즈의 초점거리는 렌즈의 광학적 중심에서 사진기안의 필름 면(film plane)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즉 렌즈의 초점을 무한원에 맞추었을 때, 렌즈의 중심(제 2주점)에서 필름 면까지의 직선거리를 초점거리라 한다. 렌즈는 렌즈가 가지고 있는 곡률에 따라 굴절각이 달라지고 굴절각에 따라 초점거리가 변한다. 초점거리가 긴 렌즈는 망원 렌즈라 부르고 초점거리가 짧은 렌즈는 광각 렌즈라 말한다. 이때 길고, 짧은 것은 흔히 말하는 표준 렌즈, 즉 소형 사진기에서 50mm 렌즈를 중심으로 나눈 것이다. 표준 렌즈로 보면 사람의 눈과 비슷한 원근감을 갖지만 긴 렌즈는 원근감이 줄어들고, 짧은 렌즈는 원근감을 과장 시킨다
렌즈 초점거리의 종류는 220도의 시계각도를 지닌 6mm f/2.8 어안 니코르(Fisheye Nikkor)렌즈에서, 1도 이하의 시계각도를 갖는 2800mm f/16. 퀘스타(Questar) 렌즈와 같은 초망원 렌즈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그 가격과 크기, 무게 때문에 아주 특수한 것들은 주문에 의해서 생산된다.
보통의 사진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렌즈들은 초점거리가 15mm f/2.8, 20mm f/2.8, 24mm. f/2.8 등인 초광각 렌즈, 28mm f/2.8, 35mm f/2.8 등인 광각 렌즈, 50mm f/1.2, f/1.4, f/1.7 등인 표준 렌즈, 85mm f/1.4, 90mm f/1.8, 105mm f/1.8 등인 장초점 렌즈(중망원 렌즈), 135mm f/2.8, 180mm f/3.5, 200mm f/4.0 등인 망원 렌즈, 300mm f/4.0, 500mm f/8.0 등인 초망원 렌즈이다.
렌즈의 최대 구경은 렌즈의 최대 밝기를 말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보통 렌즈의 최대 구경을 그 렌즈의 밝기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최대 구경이 렌즈의 품격을 얘기하는 주요 요소이다. 렌즈의 최대 구경과 직접 관련은 적지만 렌즈에는 사람 눈의 동공처럼 기능하는 조리개(Iris Diaphragm)가 장착되어 있다. 조리개는 렌즈의 일부로서 렌즈 경통에 장착된 링을 돌림으로써 조절이 된다.
조리개(Iris Diaphragm)는 돌아가는 쐐기 모양의 금속판들로 이루어져 있고 열려진 구멍의 크기로써 렌즈를 통해 필름으로 가는 빛의 양을 조절하게 된다. 구멍의 크기는 f/stops로 표시하여 f/1.2, f/1.4, f/2, f/2.8, f/4, f/5.6, f/8, f/11, f/16, f/22 등으로 나타낸다. f/stop은 조리개 구멍의 지름(렌즈의 유효 구경)으로 렌즈의 초점거리를 나누어서 나온 수치이다. 이 조리개는 렌즈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인 피사계 심도(Depth of Field)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 렌즈에서 제일 밝은 f/stop이 그 렌즈의 최대 구경이다.
렌즈는 최대 구경이 한 단 더 올라가면(f/2.8이 f/2.0이 되거나, f/4.0이 f/2.8이 되면) 그 가격이 크게 올라간다. 그런데도 최대 구경이 큰 것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 최대 구경이 크면 렌즈가 상대적으로 밝아 초점 맞추기에 편리한 점도 있지만, 더 커지고 무거워지는 단점도 있다.
렌즈를 다양하게 갖추면 사진을 찍는 목적이나 필요에 따라 선택해 쓸 수 있는 이점도 많지만, 비슷한 초점거리의 렌즈를 다 가지면 찍을 때마다 무엇을 가져가야 할 지 혼란스럽고 가방이 무거워지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렌즈를 구비할 때는 20mm f/2.8이나 24mm f/2.8에서 하나, 28mm f/2.8이나 35mm f/2.8에서 하나, 50mm f/1.4 표준 렌즈, 그리고 85mm f/1.8,이나 105mm f/1.8에서 하나, 180mm f/3.5나 200mm f/4.0에서 하나, 이렇게만 갖추면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구비하면 초광각 렌즈, 광각 렌즈, 표준 렌즈, 중망원 렌즈, 망원 렌즈로 구색을 다 갖춘 것이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여기에다가 16mm f/2.8 어안 렌즈, 그리고 50mm f/2.8 또는 100mm f/2.8 마크로 렌즈 중의 하나, 300mm f/4.0 초망원 렌즈 등을 더 구비하면 더욱 좋다.
초광각 렌즈(ultra wide angle lens)는 화각이 극단적으로 넓고, 원근감(perspective)이 강하며, 피사계 심도가 깊다는 특징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주관적 성격을 잘 들어낸다고 말한다. 초광각 렌즈를 사용하여, 찍히는 사물 아래에서 사진기를 위로 향하여(low angle) 찍은 사진은 극적으로 사물을 왜곡시켜 사람을 기형화시키며, 건축물의 선들이 꼭대기의 한 점으로 모이면서 하늘에 닿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광각 렌즈(wide angle lens)는 실내를 넓게 보이게 하고, 거리감을 늘리며, 앞의 물체가 뒤에 있는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즉 어린이 얼굴이 뒤에 있는 고층 빌딩보다 더 크게 되고, 클로즈업된 볼펜이 무척 확장되어 큰 건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찍히는 화각이 넓어 일반적 시야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24mm 초광각 렌즈나 28mm 광각 렌즈는 풍경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많이 이용되는 렌즈가 된다.
초점거리가 짧은 렌즈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사진인이 촬영할 때에 뒤로 물러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럴 필요를 덜어주는 현실적인 편리함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잘 이용하면 특이한 구도의 사진이 가능하여, 광각 계열의 렌즈가 망원 렌즈에 비해 주관성이 강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소형 사진기에서 표준 렌즈(standard lens)라 불리는 50mm 렌즈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일반적 시각과 가장 가깝고, 육안에 가까운 효과를 가져 온 대서 사진기 제조업체마다 여러 기종을 내놓고 있다. 렌즈의 최대 구경이 f/1.2, f/1.4, f/1.7, f/2.0 등으로 다양하게 나오는 것은 그만큼 선택의 폭을 넓게 하려는 의도지만, f/stop이 한 단계가 올라가면 그 성능에 비해 가격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눈은 좌우 180도, 상하 140도를 대략적으로 볼 수는 있지만 모양이나 색체(色體)를 확실히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약 50도이다. 그래서 화면 대각선과 동등한 초점거리를 지닌 렌즈를 표준으로 삼는 것이다. 소형 사진기의 화면은 24 36mm로 대각선은 43.2mm, 긴 변으로 40도, 짧은 변으로 27도가 찍힌다. 그래서 35mm. 소형 사진기에서는 45mm에서 60mm사이의 렌즈가 보통 표준 렌즈로 인식되고 있고, 50mm를 기준으로 삼아 표준 렌즈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과 가장 가깝기는 약 63mm이나 렌즈 제조업체에서는 조금 더 넓은 50mm를 표준 렌즈로 권한다. 렌즈의 성능은 표준 렌즈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평범하여 생각보다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처음 사진기를 살 때에 꼭 따라오는 것이 이 표준 렌즈이다.
망원 렌즈 중, 표준 렌즈에 가까운 85mm∼105mm 급의 렌즈를 장초점 렌즈(long-focus lens) 또는 중망원 렌즈라고 부른다. 장초점 렌즈는 최대 구경(f/stop)이 크고(즉, 렌즈의 밝기가 밝고), 피사계 심도가 얕으며, 적당한 망원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장초점 렌즈의 이러한 특징은 무대 촬영, 야경, 인물 사진(portrait), 풍경, 스냅, 스포츠 사진 등 다방면에 걸쳐서 폭 넓게 사용된다. 특히 사진기와 찍히는 사물 사이에 편안한 거리를 허용하므로 인물 사진(portrait)에 아주 좋다. 적당한 원근 축소효과는 긴 코를 완화시키며 누드나 패션 사진에서 몸매의 선을 보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망원 렌즈(telephoto lens)는 상대적으로 좁은 시계(視界) 때문에 망원경처럼 먼 물체를 가깝게 끌어온다. 광각 렌즈의 상대어인 협각(狹角) 렌즈라 하지 않고 망원 렌즈라 부르는 것도 여기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망원 렌즈는 좁은 화면에 대상물을 크게 찍는 효과 이외에, 먼 곳에 있는 대상을 찍으면 그 상호간의 원근감을 단축시키는 중첩효과, 즉 오버랩(overlap)효과라고 하는 망원 렌즈 특유의 묘사를 한다. 긴 렌즈를 통해 축소된 원근감은 크기의 상대성을 줄여 준다는 점에서 망원 렌즈는 가치 있는 창작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망원 렌즈로 찍은 사진은 원근감이 줄어들고 압축되기 때문에, 사진에 나온 길거리의 자동차들은 교통이 마비된 것처럼 붙어 보인다. 먼 물체가 상대적으로 크게는 보이지만 원거리감은 유지되면서 접근이 어렵게 느껴진다. 그리고 초망원 렌즈로 찍은 사진은 보는 사람이 마치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처럼 사진 속에 찍힌 사물에서 분리된 느낌을 준다. 이렇게, 망원 렌즈는 객관적인 이미지의 창작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낸다.
135mm에서 200mm사이를 망원 렌즈라 하지만 망원 렌즈로서 가장 유용하고 널리 쓰이는 것은 200mm 렌즈이다. 200mm 렌즈는 망원 렌즈의 표준이라고까지 말할 만큼 많이 쓰인다. 이 렌즈의 화각은 약 12도로, 50mm 표준 렌즈의 1/16에 해당하는 화면 면적이어서 화각·원근감 과장·배경 처리의 어느 요소든 일상적인 시야를 훨씬 뛰어넘어 본격적인 망원 사진의 영상 세계를 묘사해서 보여준다. 최대 구경은 일반적으로 f/4.0과 f/2.8의 두 가지가 많이 쓰인다. 앞의 것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작고 가벼운 장점이 있고, 뒤의 것은 렌즈가 상대적으로 밝아 초점 맞추기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300mm이상의 초망원 렌즈는 일출·일몰, 새 사진 등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지만, 그 가격도 비싸고 일상에는 쓰임이 많지 않아 무리해가며 구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무겁고 부피가 커서 휴대할 때도 문제가 따른다.
이밖에 특이한 효과를 위해서 사용하는 특수한 렌즈로 마크로 렌즈(Macro Lens), 어안 렌즈(Fisheye Lens), 시프트 렌즈(shift Lens), 소프트 렌즈(soft Lens) 등이 있다.
마크로 렌즈는 정밀한 접사가 용이하기 때문에 꽃 사진, 곤충 사진 등을 찍을 때 사용하며, 어안 렌즈는 물고기가 물속에서 보는 시각을 본 떠 만든 것으로 180도의 화각이 사진으로 나타난다. 렌즈의 구조상 화면이 심하게 왜곡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잘 활용하면 재미있는 화면을 만들 수 있다. 시프트 렌즈는 광각 렌즈에서 나타나는 왜곡을 수정하기 위해 대형 사진기의 렌즈에서처럼 무브먼트 기능을 장착한 것이다. 건물 사진 등을 찍을 때 이 시프트 렌즈를 이용하면 왜곡을 수정할 수 있는 효과를 얻는다. 소프트 렌즈는 사진의 화면을 부드럽게 나타내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대략 85mm 정도의 초점거리를 가져 특히 인물 사진에 많이 이용한다.
렌즈를 평가하는 기준은 해상력(解傷力 : resolving power), 선예도(線銳度: sharpness), 색재현성(色再現性 : color balance), 계조(階照 : contrast) 등으로 얘기하지만, 이는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렌즈든 위의 사항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면이 우수하면 다른 한 면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어느 면을 더 강조할 것인가는 렌즈 제조업체의 방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해상력을 자랑하는 렌즈를 보면 색재현성이 떨어지고, 선예도를 자랑하는 렌즈를 보면 계조가 부족하고, 즉 완벽한 렌즈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틀림없다. 거기다가 이러한 것들은 렌즈만의 문제가 아니라 필름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지만, 렌즈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진에서의 심도(Depth of Field)란 상이 선명하게 맺히는 초점거리 앞뒤의 범위이다. 심도는 렌즈의 성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심도는 조리개를 많이 열면 열수록 얕아지고, 조이면 조일수록 깊어진다. 그리고 초점을 맞추는 거리(focusing distance)가 주어진 렌즈에서 찍히는 대상까지 멀면 멀수록 심도가 깊어진다. 또 심도는 사진의 확대 크기의 영향을 받는데 크기가 커질수록 심도는 얕아진다. 따라서 심도를 조절하는 방법은 세 가지인 셈인데 조리개(f/stop)의 선택, 찍히는 사물과의 거리, 파인더에 나타나는 크기이다.
좋은 렌즈는 사진의 중앙부분이나 주변부분이 일정한 심도를 유지한다. 어떤 렌즈들은 중앙은 선명하고 주변으로 갈수록 흐려지게 나오므로 사진을 인화할 때마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광각 렌즈에서 잘 드러난다고 하지만 좋은 렌즈는 이러한 차이가 거의 없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란 말이 실감이 나는 것이, 인터넷에 들어가면 수 많은 사진 관계 사이트에서 렌즈의 성능을 평가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특정 업체의 렌즈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나오는 렌즈는 거의 리스트에 올라 있어 관심만 가지면 찾아 볼 수 있다. 나도 가끔 들어가서 보는데 내가 가진 것이 좋다고 하면 기분이 매우 흐뭇하고, 좋지 않다는 평이 있으면 불쾌해진다. 이것은 사진을 찍는, 사진기와 렌즈를 가진 모든 사람의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렌즈 제조 업체들도 신경을 쓰겠지만 사실 이런 평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객관적이라 말하는 자료도 객관적일 수 없고 또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진인들은 자기가 가진 렌즈가 아주 좋은 렌즈라고 믿고 있으며 또 좋은 렌즈로 사진을 찍어야 사진이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이 좋다는 의미가 그리 단순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사진이란 어떤 사진을 의미하는지 누구도 쉽게 단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보다 더 잘 나오는 사진이 좋은 것인지(그것이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실제처럼 나와야 좋은 사진인지 그 기준을 어떻게 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실제의 80%만 나온다면 만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진인은 특정의 사진기와 렌즈만 써서 유명하기도 한데 에로히 잘로먼과 에르마 녹스, 까르띠에 브레숑과 라이카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에르마 녹스는 잘로먼 덕에 유명해졌고, 라이카에서는 특정의 사진기가 나오면 먼저 브레숑에게 그의 이름을 새겨 준다고 들었다. 브레숑은 평생 라이카만 썼다고 하는데 그의 사진이 라이카로 찍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브레숑은 그의 사진 대부분을 표준렌즈로 찍었을 뿐 망원렌즈나 광각렌즈를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라이카의 표준렌즈는 매우 비싸지만 그래도 광각렌즈나 고급 망원렌즈보다는 많이 저렴하다. 그런데도 표준렌즈로만 찍은 브레숑의 사진은 그보다 훨씬 비싼 고급 렌즈로 찍은 사진보다 더 알아주지 않던가? 몰론 남보다 더 좋은 렌즈를 사용하여 사진을 찍으면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렌즈와 사진기는 기계에 불과하므로 그 스스로가 좋은 사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진은 그 사진기와 렌즈를 가지고 조작하는 사진인의 몫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진은 사진이고 렌즈는 렌즈일 뿐이다.
좋은 렌즈란 어느 한 면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모든 면이 일정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좋은 물의 맛이 담담한 것처럼, 렌즈도 특별한 과장이 없이 자연스런 묘사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렌즈, 완벽한 렌즈를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지만, 좋은 렌즈란 사진인의 욕망 속에 존재할 뿐 완벽한 렌즈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인체의 표피에서도 삶의 모습은 충분히 들어 난다. 순간적으로 시간을 고정시키는 동안, 잠시 피곤한 미소를 필름에 담는 순간이나 태양이 구름 속으로 숨어 들어가려는 순간에 우리의 활기는 억제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처럼 복잡하고 순간적인 반응을 기록하고 그 존엄한 순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카메라가 아닌 다른 기구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마음은 상세한 부분들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구성된 많은 내용을 한순간에 정지시켜 구성하여 기록으로 담는 카메라처럼 그러한 순간 순간들을 계속해서 담아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앞서 언급했던 순간 순간의 상황을 무모하게 화면에 담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빛의 효과를 이용하여 순간의 진리를 표현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되는 빛의 경이로움을 화면에 고정시켜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빛은 화가들이 분주하게 분석하고 있는 동안에 잠시 효과를 보여 주었을 뿐 즉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이 표방했던 '인상(impression)'이라는 것도 대부분 서로 부여한 일련의 인상에 머물렀다. 인상파 화가들보다는 오히려 스티그릿츠가 인상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위해 필요한 수단을 강구했던 것이다.
-포올 로젠필드(Paul Rosenfe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