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 교육방송 명화시리즈에서 우연히 '암흑가의 세 사람'이란 프랑스 영화를 봤다.아랑드롱과 이브몽땅 그리고 성명미상의 또 한 배우가 삼인의 범죄자로 나오는 범죄영화였다. 갱 영화라고 하는 게 더 낫겠다.원제는 확인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국내 제목은 아랑드롱이 쟝 가방과 함께 나온 '암흑가의 두사람'에서 따왔으리라고 짐작된다. 누군가는 '암흑가의 두 사람'에서 마지막 교수대로 끌려가며 한 차례 아랑드롱이 뒤돌아 보는 장면에서 서늘한 전율을 느꼈다고 했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휴머니즘은 싹수도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에누리 없이 프랑스의 어두운 리얼리즘의 비관주의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나의 흥미를 끈 것은 그 전형적인 결정론의 세계였다.
결정론적 숙명의 세계
열차로 수사반장에 의해 호송되던 범죄자가 탈출한다. 반장을 위시한 수사관들은 경찰력을 대거 동원하여 탈주범을 쫓고....또 한편에서는 수형기간을 마친 한 범죄자가 출옥한다. 그는 옛 동료를 찾아가 권총을 들이대고 채무를 돌려받는다. 그의 침묵의 대가로 밖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던 동료는 그의 여자까지 가로채서 살고 있다. 그는 품안에 간직하고 있던 여자의 사진을 미련없이 찢어 버린다.그는 동료에게서 갈취한 돈을 품안에 넣고 차를 몰고 파리로 향한다. 그 와중에 탈주범을 잡기 위한 경찰 바리케이드에
몇 번이나 방해를 받다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실에 잠시 들른 사이 그의 차의 트렁크를 열고 탈주범이 숨어든다.탈주범을 태운 채 달리다가 다시 검문에 걸리지만 그가 기지를 발휘하여 차의 뒷트렁크가 열리는 불상사를 피한다. 황량한 고속도로변 벌판에서 그는 차의 트렁크를 열고 탈주범과 담판을 벌인다.그는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밥을 먹다가 그의 차에 탈주범이 숨어드는 장면을 보았던 것이다. 탈주범은 총을 들이대고 그를 위협하지만 그는 태연히 담배를 권한다. 그 장소에서 거기까지 그를 추적해 온 옛 동료의 하수인들을 탈주범이 쏴죽인다.둘은
파리에 도착하고 그가 감방에서 들은 보석상 얘기를 하면서 한탕을 제의한다. 탈주범은 또 다른 유능한 공범을 소개해 주고 셋은 보석상을 턴다.제 삼의 공범은 전직 경찰 출신으로 뛰어난 사격 솜씨를 발휘해 보석상의 정교한 잠금장치를 무력화시킨다. 그는 알콜 중독자로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낭만적인 인물이다. 그는 탈주범을 쫓는 형사반장의 동기생이기도 하다. 그는 단지 알콜중독증에 의해 그를 괴롭히던 환상 속의 갑충들과 쥐떼에게 '복수하기 위해' 범죄의 모험을 택한 인물이다.셋은 보석상을 터는 데 성공하지만 장물을 처리하는 데 애를 먹는다. 형사반장은 탈주범을 잡기 위해 탈주범의 옛 친구인 장물아비의 주위에 덫을 놓는다. 반장은 나름대로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이지만 게임의 법칙에 충실한 직업인이다. 그는 '모든 인간은 유죄다'라는 지론을 강조하는 상관을 모시고 조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일개 하수인에 불과하다. 반장의 덫에 걸려 장물을 처리하러 아랑드롱과 이브 몽땅이 거래장소에 도착했을 때 뒤늦게 낌새를 알아차린 탈주범이 기습하여 그들을 구해내어 뿔뿔이 흩어진 채로 도주하지만 잠복해 있던 제 2, 제 3의 경찰력의 총에 맞아 셋 다 악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사살된다. 그들이 경찰의 포위망에 걸려 하나 하나 넘어지는 장면은 거의 물체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밤 장면 그대로 처리되어 짐작만 할 뿐이다. 이 모든 상황을 뒤에서 완벽히 통제한 인물은 반장의 상관인 총경이다. 아카데미 회원처럼 생긴 총경은 반장에게 또 한번 강조한다.
"모든 인간은 유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