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마 제국의 멸망
235-285년을 ‘군인 황제 시대’라 불리우는 이유는 50년 동안 무려 26명의 군인 황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난세는 285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에 오르며 일단 안정을 찾았다.
그는 그동안 황제 싸움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황제를 넷으로 늘려 영토를 분할 다스리는 안을 내 놓았다. 물론 그중 대표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자신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가지 않아 다시금 황제들의 실력 다툼이 되고 말았다.
스스로 자신이 정통 황제, 오리지널 황제등 원조를 칭하고 나선 것이다.
한때는 로마에 6명의 황제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 중 콘스탄티누스란 황제가 있었다.
그는 로마의 기강을 잡고 국력을 일으키기 위해 황제의 단일화를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황제 정리 작업을 시작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지 5년만에 4명의 황제를 제압고 마지막 막센티우스 황제만 남겨 놓고 있었다.
311년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의 대 결전이 로마의 밀비오 다리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날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 십자가를 보여주며 이 기를 들고 나가면 승리할 것이란 예언적 꿈을 꾸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 기를 들고 전쟁에 나갔고 자신의 3배에 달하는 상대방에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역사상 영원히 기억될 기독교 공인을 한 장본이 되었다.
그의 꿈 이야기는 기독교를 공인한 배경을 위한 전승적 이야기이지만 어떻든 콘스탄티누스는 흐트러진 로마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큰 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정식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왜냐면 당시 크게 번져 있었던 그리스도교 세력을 바탕으로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인들을 계속하여 잡아 죽이느니 차라리 종교를 인정해 주고 커진 세력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것이다. (국교는 395년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선포했다)
당시 로마는 오랜 권력 다툼속에 폐허의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북방 야만족들의 끊임없는 침략에 안전성도 떨어지고 해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쟌티움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의 이스탐불이다.
그나마 수도가 콘스탄티노플로 이사가 버리니 로마는 그야말로 껍떼기만 남은 도시가 되었다.
이것은 서로마와 동로마로 갈라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는데 수도 이전에 로마인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오랑캐들의 침략과 군인들의 반란 속에 화려했던 대 로마는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서로마가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손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옛 영화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서로마는 북방 오랑캐의 계속적인 침략에 시달리다 결국 476년 천년의 역사의 장을 내리고 말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비오 다리 전투

십자가 깃발

로마의 황제들

첫댓글 계속되는 로마이야기 잘 보고 있습니다. 재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