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쓸 것인가 - 나의 글쓰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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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일시 : 2002년 5월 10일(금), 19:00∼20:40
이야기 손님 : 김화영, 오정희 |
- 본 강연-
유종호(이하 유) : 오늘은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두 분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훌륭한 글쓰기로 고명하신 두
분을 모셨습니다. 왼편에 계신 분이, 여러분들이 잘 아는 김화영 선생이십니다.(함께 박수) 불문학자이시고 현재 고려대에서 가르치고 계시며, 유려한 번역책을 많이 내셨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꽃과 뿌리}라는 비평집을 최근에 내셨고, 또 {프랑스 문학 산책} 등 많은 책을 내셨습니다.
오른 편에는 작가이신 오정희 선생께서 멀리 춘천에서 오셨습니다.(함께 박수)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에서 연무와 먼지가 많은 서울로
오셨는데, 제가 확인은안 해봤지만, 많은 소설 습작생들이 오정희 선생의 소설을 놓고 베끼면서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모셨으니까 나중에 질문할 것이 있으시면 서슴없이 질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불의 강}, {유년의 뜰} 이외에 훌륭하고 깨끗하면서도 정련된 작품들을 많이 쓰셨습니다. 오늘은 두 분께 특히 자유롭게 말씀을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먼저 어려서나 학생 때 어떠한 글쓰기 훈련을 받았는가, 또 최초의 글쓰기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김화영 선생부터 말씀을 해 주시지요.
김화영(이하 김) : 글쓰기 훈련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엄청난 일 같습니다. 저에게 특별히 무슨 훈련 같은 것이 있었나 싶습니다. 어쨌든 나중에 지나서 돌이켜 보면, 대개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저는 유치한 생각에 이름이 좀 어디에 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만, 최초로 글을 자발적으로 왜 썼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초등학교 3학년 때, 제가 되지도않는 희곡을 한 번 써 본 일이
있습니다.(함께 웃음) 나중에 보니까 그것을 희곡이라고 하더라구요.
두세 사람이 어울려서 말을 하는 글인데, 그것을 쓰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것이 우연히 한 번 있습니다. 사실은 전 글보다는 그림 그리는
쪽을 좋아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그림 그리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가 한국전쟁 직후라서 물감도 비싸고, 나중에 보니까 부잣집 애들은 캔버스에다가 유화 물감까지 해서 그렸는데, 도저히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으로 말하면 맨발로 뛰는
육상선수가 되는 것과 비슷한 것이 글 쓰는 것이 아닌가, 몽당연필하고 종이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쪽으로
두각을 나타내 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까 두각을 나타낸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서 좀 튀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예반이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원래 미술반에 있다가 무슨 전시회에 출품을 했는데,
옆 친구는 붙고 저는 떨어졌기 때문에 속이 상해서 '에라, 당적을 옮겨야겠다'고 해서 옮겼습니다.(함께 웃음) 처음 들어가서 뭘 해보려고 하다가, 중학교 때 '순간'이라고 해서 열흘에 한 번씩 내는 신문이 있었는데, 어느 날 교내 신문에 뭘 써 보라고 하더라구요, 같은 동네에 사니까 저를 봐준 거겠죠. 그래서 굉장히 좋은 기회가 왔다며, 내 이름이
활자화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잘 안 왔습니다.
그래서 뭘 끄적여서 시 몇 편을 써 갔더니, 한꺼번에 두 편을 실어 주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인생이 삐딱하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지만, 저는 그 두 편이 실린 것을 보고 그때 이후 지금까지, 제가 천재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시를 쓰게 되었는데, 그
바람에 학교 공부도 잘 안하고, 들락날락하면서 신문반에 들어갔습니다. 당시에는 신문 만드는 것이 상당히 합법화되어 있어서, 수업시간에 빠져도 안 빠진 걸로 해주고, 그래서 그 상태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게 아마 글쓰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처음에는
허영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언어라는 물건과 마주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경상북도 영주군 부석면 상성리라는 면소재지도 못 되는 리소재지에서 태어나서, 거기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대한민국하고도 서울에 탁 상경을 했더니, 그 당시가
1955년인데, 도대체 서울에서 저 같은 이상한 말을 쓰는 사람은 주변을 둘러봐도아무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다니던 학교가 화동 / 발판동에 있었는데, 토박이 서울말을 쓰는 아이들 속에서, 제가 산골 경상도 말을 쓰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다 놀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 이 불구 상태에서 해방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끊임없이 서울말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게 저와 언어와의 부딪히는 과정인데,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슬슬 서울말도 잘 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오면 경상도 말만 쓰는 식구들에게 완전히 놀림감이 되고, 학교 가서는 시원찮은 서울말 하다가
놀림감이 되고, 이런 힘든 과정 속에서 제가 은연중에 언어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것을 깨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 : 지금 화동 근처에서 많이 배회를 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마
젊은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화동이라고 하는 곳은 '뺑뺑이를 돌리기'
전에 경기 중학교가 있던 곳입니다. 아까 어릴 적에 천재라고 생각했다고 하셨는데, 경상도 산골에서 경기 중학교에 입학한 것을 보면, 천재 비슷한 재능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함께 웃음) 오
선생께서도 관계되는 이야기를 해 주시지요.
오정희(이하 오) : 저도 김화영 선생님처럼,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요. 저는 네 살 때 전쟁이 나서 충청도 홍성으로 피난을 가서,
거기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녔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충청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고, 그러다가 인천으로 이사를 왔는데, 우선 말도 '이랬시유, 저랬시유' 하는 식의 사투리를 쓰다 보니까 도시 아이들에게 주눅이 들어서, 저는 항상 입을 꼭 다물고 살고, 여러 가지로 눈에 띄는
아이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존재 없이 생활하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저희 담임 선생님이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신 문학 청년이셨는데, 작가가 될 생각을 하신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에게 매일
수업 시간에 제목을 주고(친구, 하늘, 구름 등이 기억납니다) 한 시간씩 작문 시간을 주셨습니다.
반공 글쓰기라든가 여러 가지 행사성의 글쓰기는 안 시켰던 것 같은데, 글을 쓰면 잘 쓰는 아이들을 뽑아서 읽히기도 하고, 방과 후에 따로 글짓기를 시키시곤 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 집안에서나 바깥에서도 한 번도 이름을 불리운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제비]라는
짧은 산문을 썼는데, 선생님 표현이 너무 깜짝 놀랬다고, 이걸 쓴 애가
누군가, 교무실에서도 다른 선생님들께 그걸 읽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불리우고,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고, 하여튼 여럿이 앉은 중에 일어서기라도 해본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글로 인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저를 드러낼 수 있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인가보다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글을 쓰면 항상 칭찬을 받았으니까요. 방과 후에 청소가
깨끗이 된 교실에 어떤 때는 선생님과 저하고 둘이 앉기도 하고, 선생님은 선생님 책상에 앉으시고, 저는 제 책상에 앉거나 또는 몇 명과 같이 앉아서 저녁에 석양빛이 들어오는 깨끗하고 조용한 교실에서 저는
글을 쓰고 선생님은 책을 보시고 그랬습니다. 그게 제가 문학에 대해
느끼는 느낌이랄지 분위기였고, 그러면서 제가 나중에 가서 해석을
해본 것이, 고독과 자유와 어떤 침묵의 세계 등의 것들을 제 것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는 막연하지만 그 분위기가 적막하면서도 충만하게 느껴져 왔습니다. 그래서 글쓰기 훈련을 선생님이
제목을 내주고 제가 쓰면서 했습니다. 그러면서 3학년 때백일장에 나가서 경기도내 특선을 했는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체에서 제가
도지사상을 특선으로 받았고, 6학년이 차상인가를 했다고 해서 굉장히 화제가 됐었습니다.
저는 그게 굉장히 자랑스러워서 상 받은 후에 집에 오면서, 저녁을 먹는 시간에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칭찬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화를 내시면서 저를 마주 보지도 않으시고 딴
데를 쳐다보시면서, 식사를 하시다가 숟가락을 탁 놓으시면서 어머니에게 '쓸데없는 짓 부추기지 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모멸감, 제가 상을 받을 때 저에게 상을 주신 분은 펜은 검보다도 더 강하고 영원한 것이다, 장차 너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작가가 되어라 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저녁에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이나 한다면서 야단을 마구 치셨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말할 수 없는 모멸감과 수치심 이런 것들이 훗날까지도 문학에 대해서 조금은 이중적인 생각을
갖게 된 근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님께서는 아마 청년 시절에 문학 청년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춘 문예에도 응모하시고, 아마 가작 정도도 하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같이 문학 공부를 했던 사람들의 퇴폐적인 생활 태도라든가 그 뒤에 변해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정말로 자식들은 문학을 시키지 않겠다, 당신도 물론 안 하시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학교에 가서도 굉장히 조그마했었습니다. 몸무게가 20kg도 안되게 작았고, 전교에서 제일 작았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라켓을 들려서 운동(정구) 선수를 하라고 해서 중학교
3년을 정구 선수로 지냈는데, 아버님의 나중 말씀은 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문학에 빠져 문학을 하게 될까봐 그랬답니다. 하지만, 아버님의 또 다른 이유는 먹고살기 힘든데, 자식도 많고 그러니까 문학
하니 뭐니 하면서 골치 아프게 속 썩일 게 아니라, 건강한 운동 선수가
되어서 졸업을 마치면, 은행 같은 곳에 취직을 해서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중학교 때 운동을 하면서도, 항상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오늘 얘기해야 하는 것 중에 글쓰기의 스승에 대한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신문 연재 소설을 굉장히 많이
읽었습니다. 박화성, 정비석 이런 분들의 신문 연재 소설을 보기 위해
신문을 기다리다가 학교를 안 가서 매 맞은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집에 {사상계}, {현대문학} 같은 잡지 뒤에 나오는 소설들을 굉장히 열심히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분들은, 물론 김동리, 황순원, 오영수 선생 같은 분들도 있지만, 대개 그 시절에
전후 작가라고 하는 손창섭 선생이라든가 이호철, 최인훈 선생 이런
분들의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소설을 제가 문학이 뭔지, 소설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재미가
있어서 읽어 댔고, 그러면서 저의 문장 연습이나 또 단편 소설의 기본
틀이라는 게 그대로 여과라든가 검증이 없이 제 속으로 그냥 들어와서, 그것을 흉내내면서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사춘기를 거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운동을 그만두고, 고등학교를 간신히 어떻게 진학을
하기는 했지만 오로지 문학만 하겠다, 글 쓰고, 글 읽고 그렇게만 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순수한 자발적인 글쓰기라면, 선생님이 어릴 때 작문 제목을 내줘서 썼던 것도 있지만, 제가 제일 처음
가졌던 책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안네 프랑크의 일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좋아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것을 흉내내서 저도 일기장을 하나, 두껍게 마분지를 댄 비밀 노트로 만들어서 '클라라'라는 이름을 붙여서 거기에 저의 얘기를 계속 썼습니다.
그러니까 저로서는 그 당시에 그냥 안네를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결국 제가 거기에 그렇게 집착을 하고 애착을 가졌던 것은 저 자신을 대상화해서 어떤 한 세계를, 저의 얘기를 객관화시켜서 할 수 있고, 또한 쓰기라는 것이 또 하나의 자기의 마음의 방을 갖는 일이다,
또 어떤 고해성서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죽기 살기로 비밀 일기를 썼던 것 같습니다. 순수한 자발적인 저의 글쓰기라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계속된 나를 대상으로 한 일기, 그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유 : 두 분께서 최초로 글쓰기를 시작했을 적의 경험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두 분 말씀을 들어보니까 두 분들이 글을 잘 쓰셨고, 또 거기에
상부하는 칭찬을 많이 받으셨어요. 칭찬을 많이 받고 그러다 보니까
점점 더 글을 잘 쓰게 된 게 아닐지요.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두 분들은 정말 어려서부터 글을 잘 쓰셨고, 거기에 또 응분의 평가를 받으시고, 그러다 보니까 점점
더 훌륭한 글을 쓰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분 얘기에 반해서, 저는 별로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남의 글을 알아보고, 좋은 글을 좋은 글이라고 알아보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제가 시골에서 시원찮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거기 선생님들이 글을 볼 줄 모른 겁니다.(함께 웃음) 저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글을 조금 쓰길래 여기 두 분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이겠는데, 한 번도 칭찬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함께 웃음) 그래서
역시 그때 칭찬을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았을 텐데, 아마 칭찬을 받지 못해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자녀들이나 조카들에게 얘기할 때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해야 정말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한번 칭찬을 받은 것이 있다면, 초등학교 2,3학년 때 일본 규슈에서 온 19살 처녀 선생이 담임 선생님으로
오셔서 공부를 했는데, 이 분이 방학이 되어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저희에게 숙제를 내 주셨습니다.
자기 집 주소를 적어 놓고, 반드시 엽서 한 장을 부쳐라 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은글쓰기 훈련을 과하기 위해서 이 분이 엽서 한 장을 꼭 보내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엽서를 잘 써서 보냈는데,
그 다음에 개학이 되어 와서는 글을 잘 썼다면서, 그것이 자랑스러워서 자기 이웃 사람, 친척들에게 보여줬더니, '야, 글 잘 쓴다'고 칭찬을
하길래 당신도 자랑스러웠다면서 조그만동화책을 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마지막 칭찬을 받은 날입니다.(함께 웃음) 제 일본 말이
유치한 일본말이었을 텐데, 칭찬해 준 이유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칭찬할만한 내용이 있었던 게 아니라, 역시 아이들은 칭찬을 해줘야 된다고 믿고 칭찬을 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실제 문학 비슷한 글을 쓴 동기와 같은 주변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시지요. 그리고 누구글을 좋아했고 누구를 또 전범으로 삼았는가에 대해 얘기해 주시지요.
김 : 지금 칭찬 말씀을 하셨지만, 그런 의미에서 저는 늘 행운아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아까 말씀드렸던 문예반에 들어갔더니, 고등학교 선배들까지 합쳐서 문예반이라는 곳이 아주 막강했습니다. 그때는 시 낭독회라는 것이 아주 유행을 했는데, 그 중에서 소위
서울 4개 공립고등학교 낭독회라는 것이 우리들 속에서는 막강했습니다. 그 시 낭독회라는 것이 늘 가슴 떨리고, 가슴 설레는 기회였는데,
어쨌든 저는 중학교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저희 국어 선생님이 소설가 장용학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분이 저희들을 지도해 주셨고, 중학교 3학년 때 문협에서 주최하는
전국 한글 시 백일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후보 선수로
나갔다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만, 어느 가을 날이었는데 비원에서 했습니다. 정말 백일장답게 모윤숙 선생 같은 분들이 나오셔서
제목이 적힌 방을 걸고는, 지금부터 흩어져서 숲 속에서 두 시간 동안
시 한 편을 써서 바치고, 몇 시간 뒤에 다시 오면 발표를 한다고 해서
써냈는데, 그때 중학교부의 제목이 [이끼]였습니다. 가을철이니까 숲
속에 이끼가 끼고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던 것 같습니다.
문예반에서 기득권을 자랑하는 여러 친구들과 선배들이 있어서 저야
뭐 수상이야 하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다 모여서 발표를
할 때 어떻게 하냐 하면, 가작 3석부터 시작했습니다. 3석, 2석, 1석,
3등, 2등, 1등을 부를 때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어서 '에이구, 헛방이구나' 그랬더니,장원 그러면서 제 이름을 불렀는데, 뒤에서 친구가 떠밀
때까지 그게 제 이름인 줄 몰랐습니다. 문인협회에서 칭찬을 크게 받은 셈이지요. 그리고 아마도 그 당시 제 기억으로는 한국일보에서 웬일인지 중학생 시 장원을 사회면 톱기사로 2단 짜리 사진도 실어서 냈던 행운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서 교내에 화동 문학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개 고등학교의 교내 문학상에 불과했는데도, 심사위원이 소설에 김동리 선생, 시에 서정주 선생 같은 분이었습니다. 제가 2학년,
3학년 때 시, 소설을 써서 연달아 또 상을 받게 됐으니까 아까 제가 농담 삼아 말씀 드렸던 기고만장인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듯 했겠죠. 칭찬을 받아서 여러 가지로 좋긴 했습니다만, 자기가 정말 천재인 줄 오해하고, 그 바람에 공부를 좀 덜 했습니다. 그 무렵에 하여튼 시를정말
많이 썼는데, 그 시를 쓰는 과정이 저에게는 참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말 때 유명한 선생님이 한 분 오셨는데, 그 분이 바로 평론가이고 나중에 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님이셨습니다.
중학교 때 장용학 선생님, 고등학교 때 이어령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모실 만큼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그때 제가 쓴 시(교내 상을 받은)를보고, 기성 문인보다 낫다는 겸손하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걸 진짜로 알았습니다.(함께 웃음) 그래서 어쨌든 칭찬이야말로 듬뿍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부모님들이 다 그렇듯이, 저에게 상과대학이나 법과대학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법과대학을 가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불문과를 가겠다 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뭐냐 라고
물으시길래 앙드레 지드가 제일 마음에 드는데, 앙드레 지드의 책을
불어 원서로 한 번 읽는게 꿈이다 그랬더니, 호되게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그날 저희 아버지께서 정 그렇다면 그렇게해라 라고 해서 저는 별 장애 없이 문학의 길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한 번도 반대에 부딪힌 일이 없습니다.
문학을 하면서, 그걸로 월급도 받고, 아이들도 키우고 그래서, 문학이야말로 저를 먹여 살린 것 중의 하나인데, 그 속에서 저는 지금까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문학 속에서 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살 수
있게 되고, 또 지금도 계속해서 그것을 하고 있으니까,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더욱이
문학임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유 : 지금 말씀 재미있게 들었는데요. 처음에 법과나 상과를 가야 된다고 하신 분이, 지드의 소설을 원어로 읽고 싶다고 하니까 그럼 좋다고
하셨다는데, 그 춘부장께서 좀 별나신 분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어떤
직종에 종사하셨습니까.
김 : 저희 아버지는 처음에 한국 전쟁 전에는 제지 공장에서 사업을 하시다가, 공장이 정통으로 폭격을 맞아서 빈 터만 남게 되어서, 제가 그때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저희 아버지의 직업을 늘 '브로커'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맨날 다방에서 친구나 만나시고, 도무지 직장을 못 구하시다가, 이 분이 한문을 잘 하시고, 붓글씨를 잘 쓰셔서
어이없는 직장에 들어가셨습니다. 인연이라면 묘한 인연인데, 제가
봉직하고 있는 고려대학 도서관의 직원으로 발탁이 되셔서 말단 직원으로 계셨습니다. 그런데 붓글씨를 잘 쓰니까, 아마 고려대학을 당시에 졸업하신 분들의, 거의 대부분의 졸업장은 저희 아버지가 쓰셨을
겁니다.(함께 웃음)
그리고 고려대학 문과대학 앞에 손병희 선생 동상이 서 있는데, 그 밑에 새겨진 붓글씨가 저희 아버지 글씨라는 것은 저 혼자만 알고 있습니다.(함께 웃음) 왜냐하면, 이 분은 글씨를 참 잘 쓰시는분인데, 절대로 자기 자신의 낙관을 찍을 만큼 훌륭한 글씨가 아니라고 생각하셔서 절대로 낙관을찍지 않으셨는데, 아주 특이한 글씨체였기 때문에
저는 어디서든지 알아봅니다. 심지어는 학교 앞에 중국집에 한번 갔더니, '감사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데, 그게 감사는 한자로, 합니다는한글로 써 있는데, 분명히 저희 아버지 글씨였습니다. 아마 짜장면 값을 대신하지 않으셨나 싶습니다.(함께 웃음)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완고하신 분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돌연 확 터놓고 수긍을 해 주시는 분이었는데, 한번은 대학에 다닐 때, 술을 한
잔 걸치고 집에 들어오는데 담배가 떨어졌습니다. 담배를 어떻게 구할 데가 없나 생각하던 끝에 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있을 것 같아서 몰래 살금살금 가서 벽에 걸려 있는 주머니를 뒤지려다가 이불을 조금
건드렸습니다. 한참 있더니, 누구냐고도 묻지 않으시고, 왼쪽 주머니에 들었다 라고 하시더라구요.(함께 웃음) 뭐가요 그랬더니, 너 찾는
거 말이야 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호되게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제 용돈에 담뱃값이 보태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워낙 가난해서 다른 것은 잘 해주신 게 없지만, 제가 늘 아버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중요한 계기 때마다 늘 의외의 반응을 보여주셨다는 점입니다.
유 : 아까 혼자만 알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얘기를 하신 이상은
이제 한국에서 다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까 죄송하게 직종을 물은 것은 구체적인 직업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하신 분인가, 혹은 공무원이셨나 같은 것을 알고 싶어서 말씀드린 건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김화영 선생이 칭찬을 받으셨다는 것은 사실 김화영 선생 몫이 아니라 춘부장 되는 분의 몫이에요. 칭찬 받을 게 아무 것도 없어요.(함께 웃음) 아버님께서 다 물려 주신 겁니다. 자기가 잘한 게 아니잖아요. 재주를 물려받은 거니까.(함께 웃음)
아까 오 선생께서는 어떤 분들을 글 스승으로 모셔서 글을 썼는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니까, 화제를 바꿔서 좋은 글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시는가, 또 평소에 가령 심사 같은 것도 많이 하고 그러실 적에 어떤 것을 좋은 작품의 조건으로 보시는가, 등에 대해서 자유롭게 틀에 얽매이지 말고 말씀해 주시지요.
오 : 글쎄요. 저는 소설이나 문학의 이론적인 것은 모르는 사람이고요.
좋은 글, 나쁜 글을 제가 저의 잣대로 말씀을 드리기가 저어한 부분이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글 이러면 말씀드리기가 조금 편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 책을 많이 감췄습니다.
제가 읽은 책들을 아이들 눈에 띌까봐 딴 데 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의 좋은 책과 좋지 않은 책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게 그냥 성적인 묘사가 지나치다든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든가 뭐 그런 기준이 아니었고요, 제 식으로 말씀드리면 가짜 위안이랄까 가짜 환상 같은 것들을 심어주는 그런 글들, 달콤하고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글들이라고 할까요, 굉장히 포장을 그럴듯하게 해서 아스무리하기도 하고 뭔가 아련하기도 하고, 아름답지만 분칠한 것 같은
글들은 제가 아이들의 손에서 안 보이게 다 치우고 그랬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도식적이고 상투적인 결말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든가 이런 것들은 상당히 안 좋은 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흔히
말하듯이 그냥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조금은 골치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도 만들면서 느릿느릿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을 제 기준으로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글 속에 담겨 있는 날카로운
물음이라든가, 상투성을 벗어난 어떤 시선들, 그리고 이면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선들 앞에서는, 우리가 읽다가 발이 걸려서 멈칫하게
마련이니까 제가 느리게 읽는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글 속에서 작가가 너무 많은 전권을 장악하고서는
결론을 손에다 쥐고, 독자를 그 쪽으로 유도하고 이끌어가는 글들을
저는 별로 좋은 글이라고 생각을 안 합니다. 저는 그래서 심사를 할 경우에도 독자의 몫을 되도록 많이 남겨주는 것, 그러니까 작가의 목소리는 좀 숨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착하기만 하면, 진실하기만 하면,
사랑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의 해법이 이렇게 이렇게 있다는 식의 글들을 저는 싫어합니다. 어떤 글을 읽었을 때, 흔히들 얘기하는 생의 감각을 일깨워준다고 할까요, 잃어버렸던, 우리가 모호하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어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의식하게 하는 글들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 : 저도 좀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동요를 좋아했습니다. 또 노래도 좋아하고, 노랫말도 좋아하구요. 해방 직후에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라는 분이 {종달새}라는 동시집을 냈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말씀이 나왔던 박영종(박목월)의 {초록별} 같은 동요집을 읽고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그 다음에 시를 좋아했는데, 정지용의
시를 보면, 사실 동시가 많이 있습니다. [말], [산너머 저쪽], [무서운
시계], [해바라기 씨], [종달새] 이런 게 전부 다 동요입니다. 좋아해서 몇 번 읽으니까 자연히 다 외워지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어릴 적에 왼 동요는 지금도 다 머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에 시를 좋아하게 되고 나서 생긴 게, 통속 소설은 제목만 봐도
아주 싫증이 났습니다. 우리 때는 방인근의 소설이 많이 유행을 해서
동급생들이 수업 시간 중에도 몰래 펴보고 그랬는데, 제목을 보면,
{여학생의 정조}, {마도의 향불} 등 말을 듣기만 해도 뭔가 싫어졌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고 하는 통속 소설을 저는 거의
읽지를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커서 저는 외국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영어로 번역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 훨씬 쉬워집니다. 그래서 영어 공부도할 겸 소설을 많이 읽기도 했습니다만 사실은 시를 좋아했고, 시에서 배운 것은, 말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데
적절하게 쓰여져야 그것이 좋은 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이라기보다도 우리말로 옛날에 문리가 트인다 라고 했는데, 그것을 제가 자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 쓸 때에 여기에 과연
이 말이 와야 하는가, 적절한 자리에 적합한 말이 왔는가를 늘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적절한 자리에 적합한 말이 온 글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파격이나 일탈이 재미있는 경우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적절한 자리에 적합한 말이 와야 좋은 글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화영 선생께서도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지요.
김 : 좋은 글이 뭐다 하는 문제는 끊임없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질문입니다. 금방 두 분이 말씀하신 것 중에서 저도 늘 생각하는 것이 우선 좋지 않은 글이 뭐냐 라는 것에 대해서 오정희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자기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쪽으로 가고 있는 글, 그렇다면 글을
쓸 필요가 없죠. 또 하나 유종호 선생이 말씀하신,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의도로 표현된 글, 이런 말씀에 저도 늘 동감합니다. 저는 늘 좋은
글이 뭐냐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강한 갈등을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양쪽 중에서 어느 한 쪽이나 둘 다를 만족시켜야 되는데 그게
어느 면에서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글이라는 것은 역시 언어이니까, 언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입니다. 타인과 나 사이의
의사가 통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고 말도 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그런 뜻이 분명해야 된다는 요구 조건이 있습니다, 남에게 전달 가능해야 된다, 그래서 저는 사실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글을
제일 싫어합니다.
시인이 자기도 모르면서 썼다든지, 정말 멋있을 것 같아서 썼다든지,
혹은 시인은 그래도 덜 합니다, 시래서 그렇다고나 하지요. 하지만 산문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게 쓴 사람들, 그래 놓고 자기가 천재인 줄
아는 사람들을 저는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소통만 되면 다 되는 줄아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권세를 휘두르는
사람이 많았던 상황에,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서 민중들의 힘이 강해지니까 요즘에는 하향 평준화식의 사고 방식이 팽배해졌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개뿔도 아니면서 너무 어렵구나' 이러면서 자기는 아무런 노력도 안 하면서 자기 바닥까지 내려오라는 겁니다. 그런 식의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의사소통이 어떤 식으로는 되되, 그 높이가 높아지는 커뮤니케이션이어야 된다는 점에서 어쨌든 언어로 표현된 것인
만큼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이런 요구가 있습니다. 반면에, 너무 쉬운 글이나 하나마나한 소리, 특히 요즘은
민주화되어서 아무나 글을 씁니다. 아무나 글을 쓰고 발표해서, 우리나라처럼 문예 부흥기를 맞은 나라가 없습니다. 사보도 있고, 지방에서, 서울에서, 관공서 등등에서 내는 게 있고, 자기 혼자 컴퓨터에서
찍은 것도 있고, 인터넷에 올린 것도 있고, 정말 말로써 말이 많아서
정말 글쓰기가 싫어질 정도입니다.
이렇게 민주화가 된 가운데 글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가는데, 그런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모순이라고 한 것은 의사소통이 되어야 하되, 의사소통을 조금 방해하는 것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알면서 방해해야 되지, 자기도 모르면서 방해하는 것은 무의미하죠, 그런데 알면서 방해하는 무슨 작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명쾌한 글이기를
바라고, 한편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슬슬 통하는 것에 딴지를 거는 글이어야만 천천히 읽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술술 내려가면, 읽고 버립니다. '그 사람은 괜히 이렇구나'가 아니라
문학은 그 자체 속에서 사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 속에 일종의 강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이 물처럼 술술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 속에
일종의 자석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자장이 형성되는 그런 글이 좋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간의 어떤 울림이 있어야 되는데,
글 속에서 자기 자신이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그런 상황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의미 해석이 다양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좀 어려운 말이
되겠습니다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같은 사람은 '그것이 언어 체계인 만큼 딱 하나 어떤 것이다 라는 것이 아니라 읽을 때마다 의미가 재생산되는 살아서 움직이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체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도 이미 어떤 상태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관계가
재조정되는상황 속에서, 다시 말해서 불균형한 상태 속에 있습니다.
균형이 이미 잡혀져 버리면 그것은 이미 죽음입니다. 그래서 언어가
조합되어 있는 그 상황 전체가 하나의 자장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 어려운 말이겠습니다만, 하여튼 우선 행간의 울림이 있는 글, 그리고 해석의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글, 그래서 아까 오정희 선생님이 좀 불편하게 한다고 그러셨는데, 역시 우리로 하여금 낯설게 하는 그 무엇이, 괜히 낯선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낯설 수밖에 없는
것, 다시 말해서 평소에 우리가 표현하는 방식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표현했기 때문에 전혀 삶의 다른 면모가 드러나게 하니까, 이게 도대체 뭔가, 이상하다 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좋은 글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세트가 들어 있습니다.
글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 들어 있겠지, 그런데 그 속에 그렇지 않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상한 기분에 젖어들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아마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여기서 꼭 한 마디만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제가 프랑스 말로 된 문학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도 좀 해 봤고, 또 우리 작품을 프랑스 말로 번역도 좀 해 봤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작가들(글 쓰는 분들)의 글을 번역을 해보면 한 줄 한 줄 몇 번씩 읽게 되니까, 처음에 한 번 쓱 읽고 넘어간 것과는 태도가 다릅니다. 그런데 문학 작품을 번역하느라고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나라 작가들이 왜 그런지(물론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훌륭한 분들은 안 그렇지만), 독자를 좀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바보 같은 독자가 못 알아 들었을까봐, 아까 한
소리를 또 하고, 알아들었지 그러면서 또 하고, 아까 임금님께 가서 한
것을 또 친구에게 와서 다시 반복합니다. 이건 다시 말해서 독자를 저능아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언부언하는 글,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고,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글, 이런 것들은 글 자체의 품위를 늘 떨어뜨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결한 글, 그래서 저는 늘 앙드레 지드가
말했던 유명한 말, '고전적인 글쓰기란 무엇인가, 이것은 자기 속에 끓어오르는 불덩어리 같은 어마어마한 낭만주의를 잘 다스려서 글 속에서 불은 타오르고 있되, 그 불이 언어라는 감옥 속에 갇혀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되, 겉은 고요한 글', 이런 글이 가장 좋은 글이 아닌가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 : 그러니까 고전주의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제어된 낭만주의인데,
그런 고전적인 격조를 가지고 있는 글이 사실은 좋은 글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글재주가 있다는 말을 합니다. 옛날 한자말로 하면 문재(文才)가 있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글재주의 핵심이 뭐냐 하면, 저는 그걸 좋은 글을 알아보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틀림없이 그 사람은 좋은 글을 씁니다. 그런데,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의 공통적인 요소는(제가 젊은 신인들, 문학 지망자, 학생들을 많이 겪어 봤는데) 좋은
글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글을 알아보지 못하니까, 평범한 글, 좋지 않은 글을 모형으로 해서 자꾸 글을 쓰게 되고,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좋은 글을 못 쓰는 겁니다.
또 시를 쓰는데, 번역시 같은 것을 읽고 감동을 해서 번역시를 본따 시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인으로서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100%입니다. 번역시라는 것은 일단 내용만 적당히 전하는 것이지, 원래 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번역시를 읽고 감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고, 다만 우리 시를 잘 알고 있는데, 번역시를 통해서 어떤 기발한 이미지나 용법이나 생각을 받아서 활용할 수는 있지만, 번역시만 읽고서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글을 알아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것이 세상에서 얘기하는 글재주다 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골에 있을 때에 이른바 백일장이라는 곳에 심사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시골이니까 장학사들, 또 각급 학교의 교사들,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백일장을 하는데, 제목이 [어머니]예요. 그런 제목을 주고 글을 쓰라고 하니까, 거의 80%가 똑같습니다. 어머니가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신다, 그래서 주름살이 많이 진다, 그러니까 내가 자라서 어머니의 주름을 없애기 위해서 효도를 해야 되겠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야말로 효자 같은 얘기만 합니다. 너무나 뻔한 얘기이기 때문에, 글로써 아무 재미가 없는데, 나중에 심사를 할 때에 제가 놀란 것은 거기 장학사들이나 각급 학교 선생님들이 대개 아주 상투적인 것,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해서 주름살이 많다, 내가 빨리 커서 주름살을
없애줘야 되겠다는 스타일의 글에 상을 주자는 겁니다. 저는 이건 너무나 상투적이고 규격화된 것이어서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서 별다르게 이야기한 작품을 얘기했더니, 완전히 소수파예요. 그 다음부터저는 가급적 백일장이라는 곳에 심사를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완전히 옳다는 식으로, 독선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통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도 좋은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으면, 그
다음에 자연히 좋은 글을 흉내내게 되고, 또 좋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는 그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정희 선생께서 실제적인 글쓰기에 관한 충고라든가, 이렇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이런 것을 한번 해 보라든가에 대해 좀 보충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오 : 저는 지금 중앙대학교의 전신인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문예창작과가 거기밖에는 없었습니다. 저희 선생님이 돌아가신 김동리 선생님이신데, 그 분이 저희에게 항상읽는 것과
쓰는 것, 생각하는 것 셋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그때부터는 글을 못 쓰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글을 잘 쓰려면 삼다(다독/다작/다상량) 얘기를 중고등학교 때 많이 듣지 않습니까.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라는 선생님 말씀을 들었던 것이 실제로 글을 쓰면서 새롭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말로 절실하게 와 닿으며 좋은 글쓰기란 읽기와 쓰기와 생각하기가 정말 균형 있게 한 선상에 놓이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필사라는 것을 많이 한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많이 하는데, 저희 때는 필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남의 글을 필사를 해보면, 단번에 무슨 앰플주사를 맞는 것 같은 효과는
얻을 것 같습니다. 김화영 선생님께서 번역을 하시려면 한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것의 얼개 같은 것이 다 보이고, 사유의 흐름도 다
보이고, 그러니까 그냥 읽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되풀이 읽는 것과 실제로 또 쓰는 것과도 다르긴 한데, 저는 필사 경험은
없지만, 제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한 작가의 작품들을 자꾸 베끼다 보면, 어떤 틀 속에 갇혀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도 뭔가 한 번 입력이 되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참 힘들지 않나요. 그래서 섣부르게 너무 많은 필사의 습관을 들인다든가 하는 것은 당장 뭘 하나 만들어내는 데에는 효과가있을지 몰라도 자기가 대상으로 하는 그것을 뛰어넘기가 어렵고, 자칫하면 모방, 아류 이런 데에빠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흔히 하는 말로 저 역시 좋은 글을 쓰려면 경험이나 관찰, 상상력 이런 것들이, 무엇이 무엇보다 못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까 좋은 글에서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게, 글을 보면, 작가만의 눈, 비평가로서의 눈, 시인의 눈
등, 각자 각자마다의 눈들이 돌올하게 드러나는 그런 글들이 상당히
좋고, 저는 생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뭔가 남과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고 자기만의 시선을 갖는 것, 그래서 결국은 끝까지
작가로서의 눈을 잃지 않는 것이 좋은 글쓰기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 앙드레 모르와라고 하는 프랑스의 에세이스트가 있는데, 그 사람이 쓴 글을 보니까, 자기는 '하루에 한 줄도 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다' 라는 라틴 말의 속담 비슷한 것을 벽에 붙이고, 매일 썼다는 겁니다. 싸르트르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니까 꾸준히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쓰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쓴다는 것 역시, 오 선생도 말씀하셨지만, 단순히 기술이 아니고 생각이 있어야죠.
가령 마르크스가 1883년에 죽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동갑이자 동시에
같은 해에 죽는 사람들이 매우 드문데, 제가 조사를 해보니까 마르크스와 러시아의 작가인 투르게네프, 이 사람 둘이 1818년 같은 해에 태어나서 1883년 같은 해에 죽었습니다. 이런 인연도 많지 않죠. 마르크스가 죽었을 때, 엥겔스가 조문을 썼습니다. 첫 줄이 뭐냐 하면, '아무개 날,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생각하기를 그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까.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생각하기를 그쳤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말 이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역시 생각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화영 선생께서는 요즘 어떻게 글을 쓰고 계신지, 한 시간에 얼마나 쓰시는지요.(함께 웃음)
김 : 제 얘기를 하라면 여러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맨날 놀고 지내니까, 글을 쓰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제가 대학 교실에서 가르치고 있으니까, 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사람에 따라서는 어떤가 라는 것을 늘 생각했는데 일반적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우리나라에서 좋은 글을 썼는데, 출판사가 없어서 출판을 못했다,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서 발표를 못했다 이런 일은 없습니다. 이건 오히려 거꾸로입니다. 정말 조금만 쓰면 출판이 가능합니다.
더욱이 잘 팔려서 돈을 버는 경향이 큰 나라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상업주의입니다. 상업주의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인데, 상업주의 그 자체가 완전히 깔려 있어서 상업주의 아닌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새삼스럽게 상업주의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만, 어쨌든 그런 환경 속에서 자칫 잘못하면, 요런 생각을 쓰면 장사가 되겠다는 생각에 휩쓸리기가 쉽고 요런 것을 쓰면 인기가 있겠다는 생각에
휩쓸리기도 하는데, 이럴 것 같으면 글 쓰는 것을 접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체적으로는 매일매일 뭘 쓰고, 뭘 베끼고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근본적으로는 자기 자신 속에 무한한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뜻밖에도, 따분하고 꽉 막히면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나고 내 속에 아무
것도 안 들어 있는 것 같지만, 한 이틀만 이 세상을 살았어도 본 것, 느낀 것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 뭐 꼭 지식이 아니어도 됩니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면, 잘 이끌어내기만 하면, 그 속에 엄청난 가능성이 들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나를 표현한다, 사실은 나를 표현한다고 그랬는데, 언어의 기능 중에서 오늘날 여러 가지 해석이 많습니다. 미리 생각이 있어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에 내 생각이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설이 많습니다. 어쨌든
그 속에 미리 존재하든, 생각이 있어서 그것을 베껴내든, 또 쓰는 순간에 내 생각이 존재하든 간에 자기 속에 있는 자기다운 그 무엇이 나타날 때까지, 그걸 찾겠다는 맹렬한 생각이 없으면,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자기 발견의
과정이 어떤 의미에서는 글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셔서 남의 것을 맨날 본다는 생각은 하지말고 자기 발견의 과정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아까 오정희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남의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됩니다. 나쁜
글을 읽으면 점점 나빠집니다. 이건 참 딱한일입니다. 조금 우스운 얘기지만, 베스트셀러를 열심히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번 읽고 지나가는 것은 좋은데, 그걸 베끼거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좋은 글을 골라내는 능력이 생기는 과정은 참 지난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글을 골라내고, 또 그것을 열심히 읽고, 그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나를 표현하고 발견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표현한다고 하는데, 물론 그렇지만 글은 생각만이 아닙니다. 양면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것이 글인데, 글의 다른 한 면은 소리입니다. 그것이 목소리를 내서 나는 소리이건 마음 속으로 읽는 소리이건 간에 우리가 쓰는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소리의 특이한
리듬이 있습니다. 그 리듬이 꼭 무슨 실러블(syllable)이라든지 음절수라든지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글을 많이 대하다 보면 소리의 리듬이 있고 높낮이가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소리의 결을 모른 채로 글을 쓴다면 이것은 관공서 문서와 다를 게
없습니다. 문학 작품은 관공서 문서처럼 한 번 전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의미가 생산되는 것이니만큼 소리도 한 번 고려하면서 써야 합니다. 사실 남의 글을 소리를 내어서 많이 읽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가 그렇습니다. 또 아까 오정희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자기가 끌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고 자기가 주장하는 사상이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은 문학 작품을
쓰는 데에는 그렇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쓰기 시작할 때는
뭔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글이 가지고 가는 논리는 차츰차츰 발견됩니다. 자기 발견이라는 것은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너무 경향적인 어떤 주장쪽으로만 갈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늘 현실과 나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한국사람들이 쓴 글과 프랑스 사람들이 쓴글을 비교하면서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대로 매우
좋은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좀 아쉽다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글뿐만이 아니라 말하는 것도 그러한데 무언가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묘사하는 능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령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데 어디까지 와서 어떻게 해서 우리집을
찾아오라고 전화로 얘기할 때, '걸어 오다가 왼쪽으로 돌고 두 번째 골목에서 돌고' 그러다가 '아! 복덕방에서 물어봐, 파출소에서 물어봐'
이러고 맙니다.(함께 웃음) 이것이 다시 말해서 묘사능력의 포기입니다. 그런데, 하다못해 작은 공간에 대한 묘사, 또 내가 어제 본 어떤 광경에 대한 묘사, 내 감정이 좋다 나쁘다를 개입시키지 않고 이것이 어떻게 생겼다 라고 표현하는, 대상을 바로 보고 그것을 재현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아주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 글 속에서 이런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표현한다는 방식을 터득하게되는데, 이것은 옛날에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수사학 수업을 통해 몇 가지 정해진 방법을 열심히 훈련시켰던
부분입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연습시키다 보니 그 폐해가 깊어서
논란이 벌어지고있는 형편인데 우리는 그러한 교육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라도 그러한 훈련을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국어 사전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곤란함을 느끼는 매 순간에 있어서 국어 사전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실, 매일매일 우리가 겪는 여러 상황을 모두 나타낼 수 있을 만큼의
많은 표현들이 가득히 수록되어 있는 사전이 별로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의어, 반의어 등 이외에도 수많은 표현 가능성들이 사전에 내포되어 있는 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이라도 겸손한 자세로
매 순간 사전을 닳도록 찾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글을 쓰면서, 글을 읽으면서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 때, 내가 모르는 표현의 방식이 다양하게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전을 많이 활용하는 것을 습관들이면 좋은 글쓰기 훈련이 될
것입니다.
유 : 시인 말라르메가 평생동안 프랑스대사전을 매일 펼쳐보면서 그
말 한마디 한마디의 뉘앙스를모조리 탐독해서 훌륭한 시를 쓰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전을 잘 사용하지
않기에, 교과서에 나오는 '열없이'라는 단어의 뜻을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모릅니다. 그런데 교과서에 나오는 아주 기초적인 단어에 대해서 그 뜻을 모르면서도 적당히 해석해서 넘어가고 사전을 찾아 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열없이'는 '멋쩍어하다' 라는 뜻이라고 사전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모르는 표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경향이 많은데, 김화영 선생이 말씀하신 것 중에서 생각과 말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행동심리학에서는 생각은 소리
없이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말은 무엇이냐면 목소리를 내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이것은 생각과 말이라는 것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김화영 선생의 말씀처럼 대상을 깊이 관찰해야 생각이 깊어지고, 그에 대한 묘사를 뛰어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여러분들의 질문을받고, 두 분 선생님께 답변을 부탁드리는
시간을 계속 갖도록 하겠습니다.
-질의 응답-
유 : 김화영 선생께 이런 질문이 들어와 있습니다. '1. 나의 책이라고
생각되었던 책을 말씀해 주십시오. 2. 좋아하는 작가나 시인을 말씀해
주십시오.(국내/국외) 3. 1의 질문과 반복될지 모르나 크게 영향 받은
책은 무엇입니까 4. 선생님의 저서 중에 까뮈의 {안과 겉}처럼 여겨지는, 창조의 원천으로서 삼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네 가지입니다.
김 : 머리가 나빠서 다 못 외겠는데요.(함께 웃음) 첫 번째 질문은 다시
말하자면 제가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 같은데, 저에게 한 마디로 딱 부러지게 고르라는 것은 좀 곤란합니다. 워낙여러 가지 책들이 있지만 질문에 대한 구색을 갖춘다면, 저의 책은 시대별로 좀 다릅니다. 제가 처음에 좋아했던 책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대학에 들어가서 원서로 읽어 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대학입학의 동기가 된 앙드레
지드(Andre' Paul Guillaume Gide)의 {지상의 양식}이라는 유명한 책입니다.(지금 젊은이들은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시를 좋아해서, 사실은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의 시집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아주 간결함, 다이아몬드처럼 아주 단단해서 어디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그 광채가 좋아서 말라르메를 좋아했고, 그 다음에는 역시
제가 학위논문의 대상으로 삼았던 까뮈의 {이방인}, 그 책은 우선 짧아서 제가 좋아합니다. 저는 두꺼운 책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방인} 못지않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까뮈(Albert Camus)의 {결혼.여름}이라는 산문집 정도입니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가와 시인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면전에서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여기에 계신 오정희 선생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분입니다. 시인이라면 저의 가장 친구 중의하나인 정현종 시인, 그리고 뒤늦게 제가 발견했다고 할만한(잘 몰랐던) 젊은 시인, 김기택이라는시인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국외로 하면, 유종호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마담 보봐리}와 {감정 교육}을 쓴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입니다. 저는 영원히 몇 번을 두고 읽어도 수수께끼 같습니다. 어쩌면 글을 이렇게 태연하게 잘 쓸 수
있을까, 군더더기 없이 잘 쓸 수 있을까, 마치 자기와 아무 관계도 없는 듯한, 그 사람 표현을 빌자면, 글 자체가 글을 쓰고 있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실 제가 아무리 좋아했던 글도 여러 번 읽으면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좀 싫은데, 플로베르는 그 반대입니다. 예를 들면, 읽으면 읽을수록 그 냄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사람이 다 번역해 놓은 것을 또 번역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국외에 시인이라면, 역시 아직도 제가 잘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많은 말라르메와 또 다른 한편 폴 엘뤼아르(Paul Eluard)를 좋아합니다. 그 다음에, 크게 영향 받은 책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많습니다만 영향 받은 책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저에게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일련의 책들입니다.
이건 꼭 무슨 느낌이냐 하면, 바슐라르의 책을 읽으면서, 주제 넘은 생각이긴 하지만, 책을 읽고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은 마치 내가 썼다는
생각, 내가 미처 이만큼 쓰지 못했던 나의 생각과 느낌들을 어쩌면 이렇게 어렵게 감동적으로, 많은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런 경지에까지 쓸 수 있었을까 하는 느낌을 주는 책들이 바슐라르의 책들인데, 아마도 제가 은연중에 그 영향을 받을 소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나 자신을 만난 것 같은 느낌으로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책이 바슐라르의 책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저서 중의 창조적 원천으로서 삼을만한 책은 간단히 말해서 없습니다.
유 : 플로베르의 {마담 보봐리}를 말씀하셨는데, 이 장편 소설은 작가가 5년 반 동안 걸려서 쓴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처럼 낮에는 학교
가서 가르치고 밤에는 여기 와서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 5년 반을 쓴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설만 쓰면서 5년 반을 보냈습니다. 그 동안에
그 사람이 편지 쓴 것을 보면, 플로베르의 편지는 정말 걸작입니다. 정말 읽을만한데, 특히 꼴레라고 하는 정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맨날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앉아서 석 줄밖에 못 썼다, 지난 한 주일
꼬박 앉아서 1페이지밖에 못 썼다는 이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 뭣하러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런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괴테가 '천재라는 것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마담 보봐리} 같은 걸작이나올 때는 단순히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바쳐서 삶을 포기하고 글 쓰는 데에만 바쳐서 이런 작품이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장편 하나를 쓰는데 5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 다음에 '오정희 선생의 작품을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후배 문인이
될 신인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고, 또 실제 창작에 임할 때
금과옥조로 삼을만한 것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오 : 제가 글을 쓸 때 보면, 글쓰기가 결국은 자기와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면 조그만 것이라도 무언가 하나가 써지는 것이고, 결국 지면 아무 것도 생산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글을 구상할
때는 행복해서 뭔가 써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는 백지 상태가 되고, 용기는 너무도 없어지고, 그래서 제가 제 자신에게 늘 얘기하는 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고 '어쨌든 해보자'라면서 자기를 독려하곤 합니다.
제가 작품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산 지는 좀 오래됐는데, 계속 면역이 안 되는 것이, 결국 자기 재능에 대한 회의가
글을 낳는 것도 아니고 문학이 무엇인가 라는 고민이 소설을 쓰게 하는 것도 아닌데, 재능에 대한 회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실존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생각, 이런 것이 과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식의 회의를 하게 됩니다. 저는 아까 김화영 선생께서 말씀하신, 자기
안에 있는 무한한 자신감, 자신을 믿어라 이런 대목에서, 금방 영양 주사를 탁 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다
견뎌내야 하는데 거기에서 저는 번번이 지고 맙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어쨌든 자꾸 쓰라고, 자꾸 쓰는 중에 주옥편도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사실 우리가 말을 하기 전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아까 언어와 생각과의 관계에 대해서 유종호 선생께서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실지로 자기가 손으로 뭘 해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손에는 손의 몫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머리의 몫, 가슴의 몫이 있는 것처럼, 생각을할 때도 손에는 손의 몫이
있어서 막상 펜을 들고 뭘 하다 보면, 손이 가는 길이 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많은 글을 쓰지도 못하고 항상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그러는 게 어떤 글에 대한 주눅듦, 두려움 이게 그렇게 쉽게 극복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글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바로 글을 낳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러한 고민 속으로 제가 도피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후배 되는 분들은 정말 문학을 좋아하고 해야
되겠다 하시면 정말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가시고, 실패를 좀 하면 어떻습니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 : 이번엔 아주 재미있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어느 분이 되리라고 생각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함께 웃음) 1950년대에 백운학이라고 하는 관상쟁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김동리 씨가 노벨상 탄다고 그랬습니다. 주간지에 크게 나고, 그 얘기를 듣고 김동리 선생이 자기가 노벨상 수상
작가라고 생각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백운학이도 못 맞췄는데,
여기에 있는 저희가 어떻게 알아맞히겠습니까.(함께 웃음) 그러나 여러분들께서는 노벨문학상이라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1968년인가 일본의 가와바데 야스나리라고 하는 작가가 처음으로 동아시아쪽에서는 노벨상을 탔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본 사람들 중에
누구 하나를 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 전에 다니자께라고 하는
사람이 늘 후보에 올랐는데, 때마침 한 해 전엔가 작고했습니다. 그 다음에 가와바데 야스나리에게 간 겁니다. 이게 진짜로 간 것이 아니고,
사실은 로사라고 우리말로 번역이 되는 중국 사람에게 주려고 노벨상
위원회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당국에 로사(라이샤일 겁니다)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니까
그때 중국이 난리통이어서 대답해줄 사람도 없고, 자기네들도 모르니까 주소를 안 가르쳐줬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되겠다고 해서 기회가 일본 사람에게 가고, 다니자께가 살아 있었다면 수상했겠지만,
불행히도 죽어서 가와바데 야스나리가 타게 된 겁니다. 이 상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또 최근 얼마 전에 오에 겐자부로라고 하는 사람이 노벨상을 탔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나 프랑스와 사강은 저와 동갑인데,
이 사람들은 학생 작가로서 50년대부터 필명을 날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사람들을 굉장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에
대해서 원통하게 생각합니다. 왜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많은 재능을 주고, 나에게는 그런 재능을 안 주는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뭐 별거 아닌 것이 프랑스와 사강은 그 후에 마약 중독자가 되어서
TV에 나와서 얘기를 해도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답니다. 여하튼
오에 겐자부로가 상을 탈 때, 그때 누가 후보가 되었냐 하면, 쿤데라
같은 사람이 후보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쿤데라에게 갔어야
하는 것이 오에에게 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에 겐자부로의
수상작은 'Sirent Cry'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영어로 번역된
작품인데, 일본말 제목은 '만연원년(萬延元年)의 풋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작위적인 소설입니다.
그리고 이건 보나마나 쿤데라에게 미치지 못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에세이 하나를 보더라도 쿤데라가 훨씬 훌륭합니다. 그런데 왜 안줬냐 하면, 일본 사람들의 여러 가지 로비 활동이라든가, 또쿤데라가 프랑스에 가 있었는데 이게 자유 세계도 아니고 구소련 세계도 아니라든가 등 여러 가지이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누가 노벨상을탄다고 하더라도 오정희 선생 같은 분이 탈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함께 웃음) 여러분들은
그런것에 대해서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있지만,노벨상 수상자가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높아진 것도 없고, 아무렇지 않잖아요.(함께 웃음) 별거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 밖에 비가 오고 있을 것 같은데,
아까 김화영 선생님께서 인용하신 지드의 말과 같이 속은 타오르되,
겉은 고요한 벅찬 느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좋은 말씀들
덕분에 24시간을 72시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저녁이 크게 꿈틀거리며 깊어가고 있습니다. 뜻이 분명히 전달되어야 좋은 글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관점에서 이상의 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함께 웃음) 간단히 말씀해 주시지요.
김 : 글쎄 저는 이상의 시 중에서 좋아하는 시도 있고,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는 것도 있고 그런데, 늘 상대적인 것 아닙니까. 이상의 시대에
그런 시를 쓸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일이라생각하고, 늘 저는
이상의 [오감도]라는 시를 보면서,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라고 생각해보곤 합니다. 대개 첫 줄 읽고, 마지막
줄 읽으면 대충 건너뛸 수 있습니다.우리로 하여금 그런 순서대로 가는 시를 그 시대에 읽도록 만들어준 사람이 얼마나 대담한 사람이었던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아까 잠깐 말씀 드렸듯이, 이상의 시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만큼 전달되느냐 하는 것은 아까 제가 가장 훌륭한 시인으로 꼽았던 말라르메와 유사한 경우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상당히 마음에 갈등을
느끼면서 항상 글을 쓴다고 했는데, 한편으로는 듣는 사람에게 잘 전달이 가능해야 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전달되는 것도 싫고, 쉬운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것이 쉽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면, 간단히 산문으로 쓰고 말지 시로 써야 될 이유가 없겠죠. 그러니까 그런 구조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는 필연성을 이해한다면, 이상의 시는 솔직히 깊이 연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이런 심증은 있습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한 작품 한 작품의 의미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해석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랜 독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내가 많은 시간을 바쳐서 이 사람이 쓴 모든 작품을 반복해서 자꾸만 읽으면, 이 전체 속에 반드시전체를 꿰뚫고 있는 어떤 구조가 있을 것입니다. 그 구조가 명백히 드러나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마치 지하수처럼 이어 이어져
흘러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그것이 저는 그 사람의 문학적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이어져 있는, 전체가 느껴지는 작가(시인)가 있고, 그런 것보다도 그때 그때 눈치를 보면서 요걸 쓰면
아이디어가 좋겠다, 요걸 쓰면 새롭고 기발하게 보이지 않을까 이런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쓰는 피상적인 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우리의 인생도 짧은데, 몇 번씩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개 한 번 읽고 버리기도 바쁩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이상의 시에 대해 저는 늘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이 사람이 장난으로 그렇게 쓴 것 같지는 않다, 이 사람의 전체 속에는 그 당시에 자기 자신이 느꼈던 어떤 필연성과 관련되어서 그 전체의 작품이 놓여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왜냐 하면, 이상의 시는 대단히 어려운 시들이 많지만, 이상의 주옥같은 산문들을 읽어보면, 이
사람이 괜히 어렵게 쓰려고 한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은 과연 이상이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유 : 저도 이상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저도 산문가 이상과 시인 이상은 완전히 구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날개]라든가 [봉별기]라든가 혹은, 수필 [권태] 이런 것은 30년대에 그런 작품이 나왔다고 하는 것이 하나의 경이로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작품입니다. [봉별기]만 하더라도 '스물세 살이다. 봄이다. 각혈이다' 해서 이게 글이 사람의 심장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사실 너무 일찍 등장해서 우리 시에 해독을 끼치면 끼쳤지 좋은 영향은 하나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시 가운데에도 여러분들이 잘 아는 [거울]
같은 것은 읽을만한 시입니다. 가령 또 [이런 시]를 보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돌이 없어졌는데, 돌이 없어진 것이 마치 여자가 없어진 것처럼 생각해서 유사 연애 편지 비슷하게, 애도사 비슷하게 쓴 것이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상이 굉장히 많은 시를 썼지만, 대부분이 의미가 없습니다.
가령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라고 시작하는 시가 있는데, 그게 물론 장난인데 장난이 나쁠 게 있습니까. 장난은 좋은 겁니다. 장난이란
것이 남한테 해를 안 끼치는 장난은 필요한 겁니다. 공자의 말씀에도
소인이 한가하면 위불선이라고 했습니다. 소인이 한가하게 지내면 나쁜 짓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상처럼 장난을 하면 그게 나쁜 짓을 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저는 장난하는 것을
좋게 보고, 또 말장난이라고 하는 것이 시의 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그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하는 것을 아무리 읽어보세요. 의미론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굳이 우리가 의미를 찾아보자면, 그 잡지가 카톨릭 청년이라고 하는
정지용 씨가 편집하던 잡지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잡지에 실렸는데,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성서에 대한 패러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에 보면 야곱이 뭘 낳고 뭘 낳고 하는 것이 나오니까 이상이 그걸
보고 야유를 했다고도 볼 수있고, 우리가 구태여 의미를 붙이면 얼마든지 붙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걸 읽고 감동할 게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오감도]도 보면요, 그것이 앞에 한 얘기를 전부 다 부정하고 있어요. 그것은 의미론적으로 넌센스라는 얘기입니다. 플러스
해놓고 마이너스 하면 결국 제로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시의 경우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했겠느냐고 하면,그것은 그 당시 일본에 {시와 시론}이라고 하는 잡지가 있어서 이상과 비슷하게 장난한 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상이 그걸
읽은 겁니다. 시를 쓰거나 글을 읽거나 반드시 선행 작품을 머릿속에
두고 선행 작품에다가 자기의 삶의 경험을 합쳐서 작품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작품을 전혀 읽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고생을 많이 했다,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다고 해도 소설 안 읽은 사람이 소설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읽은 사람이 쓰는 것입니다. 바다 구경을 안 하고도 바다에 관한 시를 읽으면
좋은 바다의 시를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시를 안 읽었으면 바다의 경험이 30년이 되든 40년이 되든 바다에 관한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이게 문학의 현실입니다. 이상의 경우 참고한 것이 뭐냐 하면,
그 사람은 한문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정지용이나 이태준 세대만 하더라도 대개 한문을 알고 있어서 한시에서 배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고전주의적인 훈련을 한문을 통해서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당시에 일본말 시를 조금 읽고, 장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의 시인이든지 훌륭한 시인이라고 하면 자기 나라의 모어를 굉장히 잘 활용하고, 모국어에 대해서 굉장한 기여를 합니다. 미당도 그렇고 정지용이나 김소월도 우리말을 잘 알고, 동시에 우리나라 말에 탄력성과 유연성을 부여해서
모국어의 가능성을 크게 신장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상의 시를 보면 그 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일본말의 번역된 말입니다. 잘 보세요. 그리고 한국어에 기여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한국말로 시를 쓰고, 한국말에 기여하지 않은 시인이 과연
시인일 수 있는가. 과연 한국말에 기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아지랑이를 많이 봤을 겁니다. 그런데 아지랑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정지용의 시를보면, '지붕마다 연기도 아니
뵈는 햇빛이 타고 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연기도 안 보이면서 타고 있는 햇빛, 이것이 아지랑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아지랑이에다가 새로운 표현을 함으로써 새로운 발명을 하는 겁니다.
미당의 시에 보면,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사랑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지귀라고 하는 사나이가 선덕여왕을 짝사랑해서 정신 이상이 됐다는 겁니다. 사실은 이 사람이 정신이상이었기 때문에 선덕여왕을
짝사랑한 겁니다. 보통 사람은 나한테는 안돼 라고 해서 생각을 안 하는데, 이 사람은 정신이 돌았기 때문에 여왕을 감히 짝사랑한 겁니다.
그런데, 이 짝사랑을 해서 병난 사람에게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살(肉體)에 일로서 살에 일로서 미친 사내'라고 합니다. 이건 아주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상사병에 걸려 정신이 돈 사람을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런 식으로 미당이나 정지용이나 김소월 등의 시인이 한국어에 대해서 기막힌 기여를 하는데, 이상의 경우는 기여한 게 뭐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서워하는 아이와 무서운 아이, 이건 무슨 기호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상에 대해서 별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나 빨리 나왔다, 그리고
우리나라 시인들에게 해독의 영향을 끼쳤지 좋은 영향을 끼친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1930년대라고 하는 것이, 그 전의 시인이라고 하는
것은 김소월, 만해, 정지용, 김영랑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때 와서 한국어를 파괴하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규범이 있어야 일탈이 가능하고 재미가 있는데, 아무런 규범도 없는 터전에 와서 부시기만 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기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청록파나 윤동주나 미당이나 오장환, 이용악 같은 시인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것은 이상과 전혀 다른 식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좋은 시인들이 나온 것입니다. 이상의 경우는 일탈적인 존재로서 재미는 있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에 관한 논문(석사/박사)이 지금 대학에서 제일 많이
나옵니다. 이건 어떤 현상이냐 하면, 대학에서 석사 논문, 박사 논문을
쓰는 사람들은 시의 애호가가 아닙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일단 들어왔서 뭔가 하나 적어내야 되겠다 하면,
이해하기 쉬운 시인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은 워낙 넌센스니까 뭐든 갖다 붙이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지금 흥행에 성공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만 역시 이상은 산문가로서는 기가 막힌 사람이다 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시의 경우, 일본말도 많이 쓰고, 낙서하듯이 너무 많이 썼습니다. 훌륭한 시인은 아무리 졸작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성취에 도달해서 그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요소가 있습니다.
정지용이 아무리 못 쓴 시라 하더라도 그래도 역시 지용이다, 미당이
아무리 장난을 했다 하더라도 역시 미당이다 이런 게 있는데, 이상의
경우 못 쓴 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책임의사 이상, 아라비아 숫자
거꾸로 들어간 것도 아무 것도 아니고, 그런 시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으로서는 문제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시인으로서 숭상하는 것은 문학 외적인 요소로 숭상하는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상은 [황소와 두꺼비]라고 동화를 쓴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동화입니다. 산문가로서의 이상은 훌륭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개의 시인들이, 윤동주, 김소월, 정지용, 박목월 등이 다 좋은 동시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상은 좋은 동요를 남겨 놓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시인 이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동화는 남겨놓았지만 좋은 동시를 남겨놓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의 어떤 결함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소월의 경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같은 얼마나 좋은 동요를
썼습니까. 이게 김소월의 다른 시편보다 오래 갈 공산이 큰 동요입니다. 이상은 그런 게 없고, 괜히 엉덩이에 뿔이 나 가지고, 이상한 짓만
했는데,(함께 웃음) 그것은 별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꾸 얘기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실은 정지용이나 미당이나 김소월이 훌륭한 시인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은 이상한 소리를 많이 했으니까 거기에서 파생되는 이상한 소리를 계속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화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상에 대해서 좋다는 학생들과 싸웁니다. 여기에서 왜
남의 의견을 무시하느냐 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영국에 리비스라고
하는 케임브리즈 대학의 유명한 영문학 교수가 있었습니다. 현대 영문학 교수로서 일급의 교수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초원의 빛}이라고 하는 영화를 아실 텐데, 거기 나오는 안경 쓴 여선생이 워즈워드의
[불멸에 관한 오드]라는 시를 읽어서 나온 것입니다. '초원의 빛'이 워즈워드의 싯구의 일절입니다. 이 작품을 영문학의 걸작이라고 하는데, 리비스 박사는 그게 좋은 시가 아니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를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과는 말이 안된다고 늘 싸웁니다.
여태까지 난 너를 학생으로서 인정을 했는데, 이 시를 좋아하는 걸 보니까 넌 시를 모르는 녀석이구나 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제가 리비스
박사도 그랬는데, 내가 리비스 박사 흉내를 좀 내면 어떠냐 싶어, 이상은 안된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도 깊이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갔습니다.(함께 웃음) 이제 직접 질문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질문자 1 (주기선) : 소설에 있어서 어떤 소설은 형상화가 잘 됐다, 어떤 소설은 형상화가 좀미흡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소설에서
형상화를 할 때 좋은 형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하는 점과, 시에서도 형상화가 있는지, 시는 대체로 은유, 비유 특히 함축적인
성질을 갖고 있는데, 그 시를 형상화로 나타낼 수 있는지, 시에도 형상화를 적용시킬 수 있다면, 소설의 형상화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 : 말하기가 어렵네요. 글쎄요.
유 : 질문이 너무 일반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이지 않아서 명확한 답변을 듣기가 어려우실 겁니다.이것은 전화로 한번 문의를 하시면, 준비를 해두셨다가 답변을 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함께 웃음) 왜냐하면
질문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질문자 :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질문자 2 (조춘화) : 아까 이상 시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지만,
저는 여러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글, 아까 민주화 시대라서 글이
너무 난무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생활이 묻어 나오는 글의 가치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생각해야만 볼 수 있는, 질문지에는 이문구 선생의 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이문구 선생의 글에는 사어도 많이 들어가 있고, 주석을 붙여야만 읽을 수 있는 글들도 조금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글이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그런 글과,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쉬운 글, 예를 들면 조선시대의 경우 양반들이 향유했던 시조와 평민들이 향유했던 사설시조의 가치처럼, 쉬운 글에서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되는지가 궁금합니다.
유 : 이문구 선생의 글 같은 것은 아까 김화영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전을 찾아봐야 됩니다. 이문구 씨 소설의 어려움은 충청도 사투리를 너무 투박하게 써서 어려운데, 사실 그걸 조금만 넘기면 상당히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충청도 사투리를 좀 학습도 하시고, 사전도 찾아보고, 또 총기가 있으니까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이게 무슨 뜻인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 서적도 읽고, 외국말도 공부를 하는데, 인내심을 가지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국말에도사투리가 있습니다. {폭풍의 언덕}을 보면 첫 머리에 사투리가 나와서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책을 읽기 위해서 요크셔 방언이라고 하는 사투리를 공부합니다. 그만한 정도의열의를 조금만 발휘하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조금 하시면 될 겁니다. 아까 민주화,
하향 평준화 이런 얘기를 한 것은 딴 게 아니고, 글에도 여러 층이 있습니다. 정말로 공들인 글이라면 독자 편에서도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어느 정도의 교양을 쌓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자기 편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어렵다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라고 하는 영국의 작가가 있습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일 마지막의 작품이 {피네간의 경야}라고 하는 작품인데, 여기에는 16개 국어가 나옵니다. 그것이 1940년대에 발표가
되었는데, 그 소설을 이해하고 끝까지 읽은 사람은 유럽 전체에서도
열 손가락밖에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할 정도로 난해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연구하는 사람들은 읽는 사람이 있고, 전부 다 모른다고 해도
재미있게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당신 소설은 너무
어렵다고 하니까, 내가 그걸 쓰는데 십 몇 년이 걸렸다, 당신도 최소한
몇 해를 소비해야 되지 않겠나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자기
소설을 읽기 위해서 몇 해를 소비하라는 것은 지나친작가 측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작가가 15년이 걸렸다면, 우리는 한 150일 정도는 공을 들여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아까 하신 얘기는 공들여서, 많은 독서량과 세계에 대한 이해, 다양한 경험을 밑받침으로 해서 쓰여진 작품을 쉽게 읽을 수가 없는데, 독자 편에서 하등의 노력도 하지 않고, 독서 경험도 없고 안이하게 한 번 읽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이런 취지의 말씀이었을 겁니다.
김 : 한 마디만 제가 덧붙이면요, 제가 몇 번씩 입에 올렸던 스테판 말라르메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 시를 읽고 사람들이 어렵다
어렵다 그러는데, 음악회에 가서 음악을 듣고 어렵다고 비판하는 사람 별로 못 봤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많이 접해 보셨을 겁니다. 음악회에 갔다 나온다든지 미술 전람회에 가서는 거기 차려놓은
음식도 좀 먹고, 한 바퀴 쓱 돌아보고는 대개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푸른 색이 요즘 많이 짙어졌네 이 정도만 말해도 대단히 많이 말한 겁니다.음악회에 가서 듣고 와서는 프로들 이외에는 아 참 좋지 이 정도입니다. 거기 몇 군데 음이 틀렸다든지 거기를 느리게 쳤다든지 정도 하면 프로입니다. 그래서 다들 음악, 미술만 하더라도 자기가 전공을 해야 한 마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문학만은 전 국민이 한 마디씩 합니다. 사실좋은 면이기도 합니다.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 또 노력의 대가가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고, 좋게 보면 잘 팔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언어도, 문학이 예술의 경지까지 간다면, 우리가 좀 노력을 해야 되지 않겠나, 음악의 계명도 모르면서 어떻게 음악에 대한 평을 합니까,
그러니까 문학도 모국어로 되어 있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배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졸업했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마치 계명을 외우듯이, 음악을 끊임없이 많이 들었듯이, 문학도 노력을 해야,
많이 읽어본 노력 끝에야 겨우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문구 씨 글을 읽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렵다는 건 딴 게
아니라 다른 소설을 읽을 때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충청도 소리가 내 몸 속에 들어와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삐그덕거립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특히 소리를 내서 읽으면 아주 좋습니다. 충청도 사람이 아니더라도 소리를 한번 내서 읽어보면 불과 20,30 페이지만 넘겨도 그 다음부터 슬슬 이게 내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어렵다는 것은 조금 나태한 사람들이
하는 불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괜히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문구 씨 텍스트는 괜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유 : 여기 질문이 또 한 장 있는데요. 오정희 선생님, 김화영 선생님,
시, 산문, 동화, 소설 등 글을쓰실 때에 작품 구상 및 주제 등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이끌어 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큰 문제라서 단 시간 내에 대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 역시e-메일로 보내셔서 두 분께 답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함께 웃음) 여러분 장시간 동안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함께 박수)
.끝.
첫댓글 유종호 교수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서 무너지네.. 이상 너무 오바다.. 자기 의견이 너무 강하게 들어간 듯. 제대로 읽어본적 없다는 것 스스로 인정하시네 ㅡㅡ 내가 아버지의 아버지 그거 읽고 진짜 막 울뻔까지 했는데 그거에 대해 저런식으로 말하시다니 .. 너무 정형화 된 틀과 언어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시는 것 같다. 특히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은 무조건 틀린 것이다' 를 당연하게 말하는 건 스스로가 발전할 여지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짓일듯.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걸 배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