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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맥도널드 |
판타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판타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두 인물 조지
맥도널드와 윌리엄 모리스라는 영국 작가의 작품부터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작가 조지 맥도널드는 1858년 세계 최초의 성인용 판타지 "판타스테스, 성인 남녀를 위한 요정 로맨스"를 발표했습니다. 현실세계의 청년 아도노스가 꿈을 통해 요정의 땅으로
모험을 나서는 이 이야기는 당시 활발하게 연구되던 요정 이야기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1850년에 나온 토머스 가이트리의 "요정의 탄생-요정신화학"은
민간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민담을 민속학으로 연구한 것으로, 요정이야기를 크게 유행시키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정을 다루는
아동문학이 연이어 나타났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삽화 |
루이스 캐롤 |
예를 들어 같은 해에 출판한 평론가 존 러스킨의 "황금강의 임금님",
찰스 킹슬리의 "물의 아이"(1864) 그리고 루이스 캐롤의 유명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맥도널드의 "판타스테스"는 수집한 요정이야기를 소설로 엮은
것이 아니라 순수한 창작이었습니다. 맥도널드는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할 만큼 독일의 창작 메르헨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물의 아이" |
찰스 킹슬리 |
"황금강의 임금님" |
존 러스킨 |
특히 노발리스의 미완성 메르헨인 "푸른 꽃"에 나오는 꽃이나 동물로
변신하는 요정들, 우주에 대한 장대한 비전, 환상적인 모티프 그리고
철학적인 세계관을 자신의 작품에 전개하고자 했습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판타지 작가 이전에 화가, 건축가, 실내장식 디자이너로서 폭넓은 명성을 얻고 있던 예술가였습니다. 모리스는 기본적으로 중세 취향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관여한 라파엘전파의 미술운동과 깊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라파엘전파는 아동문학을 쓴 존 러스킨의 후원 아래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미술의 허식 없는 우아함, 투명한 색채의 재생, 신화와 전설과 같은 복고적인 테마와 중세적인 분위기를 띠는 그림을 그리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모리스는 라파엘전파가 그림에서 그리려는 중세적 분위기의 유토피아를 작품으로
쓰고자 했습니다.
세계 저편의 숲 |
윌리엄 모리스 |
1894년에 발표한 "세계 저편의 숲"에는 영국의 평범한 마을 랭턴에 살고 있는 부유한 청년 월터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월터는 항구에서 우연히 마주친 정체 모를 귀부인과 시녀 그리고 드워프(난쟁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들을 쫓아갑니다. 월터는 배를 타고 온갖 항구를 거친 후에 이 세상 끝에 있는 숲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재회한 시녀로 부터 월터는 그 귀부인이 실은 숲의 여왕이며 여자 마법사임을 알게 됩니다. 잔인하고 사악한 숲의 여왕이
월터를 유혹하지만, 시녀와 함께 무사히 그곳을 탈출하여 평화로운
생활을 보냅니다. 이른바 중세의 기사이야기를 모방한 공상적인 탐색이야기 즉 quest story를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끝에 있는 우물" |
윌리엄 모리스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광대한 풍경으로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면모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미들어스라는 이차세계의 창조로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세상 끝에 있는 우물"(1896년)은 모리스 판타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중세 북서부 영국과 유사한 세계를 그리면서 14세기 중세산문처럼 보이는 복잡하고 숨이 긴 문장 표현, 매끄러운 고어체를 구사하여 그 우물물을 마시면 평화를 얻는다는 세상 끝에 있는 어터볼이라는 우물을 탐색하는 이야기를 내놓았습니다.
아일랜드의 켈틱 르네상스를 이끈 로드 던세니 |
맥도널드와 모리스와 함께 판타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국
작가가 로드 던세니입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던세니도
라파엘전파 운동과 연동하여 세기말 전환기에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켈틱 르네상스 문학운동에서 시인 예이츠와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켈틱 르네상스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과 맞물려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켈트문화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고 모국어인 게르어를 부활시키려던 운동이었습니다. 또한 켈트의 민담을 채집하여 정신적으로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했습니다.
페거너의 신 |
이 운동에서 던세니는 아일랜드의 민담, 구비전승, 요정이야기라는
환상적인 소재를 차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우주적인 장대한 스케일과 비전으로 시공을 초월한 독자적인 우주론을 작품으로 창조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1905년에 발표한 "페거너의 신들"입니다. 이 작품은 신과 인간의 투쟁을 환상의 세계에서 교착시켜 북구신화, 영웅들의 전설, 동양의 우화, 괴물과 악몽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소재로
한 모험과 활극을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엘프랜드의 왕녀 |
한편 던세니는 1924년에 "엘프랜드의 왕녀"와 같은 작품을 내놓아 톨킨이나 린 카터, 르귄과 같은 현대의 판타지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기서 주인공 오리온은 에를의 왕 앨버릭과 엘프랜드의 왕녀 리라젤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혼혈입니다. 어머니가 사라진 숲을 동경하여 오리온은 마을 사냥꾼들과 함께 숲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숲의 신비에 매료됩니다.
오리온이 숲을 떠날 때에는 이미 나무들과 놀이친구가 되어 있을 정도였지요. 이 작품은 숲을 신성한 장소로 여기는 켈틱 고유의 숲의 문화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특징은 현대의 판타지에도 그대로 이어져 상당수의 작품들이 숲이 주요한 배경으로 이야기를 엮고 있습니다.
C. 히로익 판타지 또는 검과 마법 이야기
맥도널드와 모리스 그리고 던세니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판타지의 주요한 틀을 만든 작가들이라 하겠습니다. 이 가운데 던세니의 작품은
1930년대 미국의 대중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작가 중 한 사람이
영국 판타지와 전혀 다른 유형의 판타지를 창조한 로버트 어윈 하워드입니다.
하워드는 코난이 살았던 하이보리아 시대를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한 장의 지도를 마련했습니다. 대륙의 한가운데 하이보리아 왕국이 자리잡고 주변의
여러 왕국들과 서로의 이익을 다툽니다.
하워드가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더 이상의 많은 작품을 내놓을 수 없게 되자 그를 기리는 독자들이 사후에도 코난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시작했습니다. 특히 판타지 작가들에게 주는 영향이 톨킨 이상으로 컸습니다. SF작가로서 고대사 연구에 정통하고 신화와 전설에 조예가 깊은 스프레이그 디 캠프는
1950년에 간행된 코난을 읽고 감명을 받은 나머지 코난을 흉내낸 모작을 썼습니다.
이 SAGA 모임에 뒤늦게 참가한 영국 작가 마이클 무어콕은 이에 앞서 1961년에 히로익 판타지와 같은 종류의 이야기들 즉 이차세계를 무대로 악한과 뒤엉켜
폭력적 투쟁인 난무하고 영웅이 크게 활약하는 판타지를 어떻게 이름하면 좋겠느냐고 미국의 작가 프리츠 라이버에게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코난은 1980년대에는 마블 코믹스에서 만화로도 제작됩니다. 그리고 아놀드 슈워츠네거가 주연한 2편의 영화가 제작되는 등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더욱더 유명세를 더했는데, 롤플레잉게임 "던전 앤드 드래곤" 또한 제작할 때 이 작품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D. 사이언스 판타지
프리츠 라이버 |
하워드의 코난을 히로익 판타지 또는 검과 마법 이야기라고 이름한
디 캠프와 라이버는 실은 SF작가로서 더 유명합니다. 라이버는 1939년에 "언노운" 잡지에 "화훼드와 그레이 마우저" 시리즈를 게재하여
50년 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무대는 모든 시대와 모든 땅으로 통하는 문들이 있는 이른바 열린 세계 네원입니다. 이 세계의 중심지인 랑크마는 복잡하고
기괴한 도시로서 모든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으며 도둑, 수도승, 마법사, 상인, 검사, 왕족 등의 온갖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북쪽의 추운 황야에서 온 거구의 화훼드와 남쪽에서 온 단구의 그레이 마우저가 모험과 부를 찾아 세상 끝까지 모험을 하는 이 시리즈 가운데 1970년에 발표한 "랑크마의 악운"은 SF와 판타지의 두 대상인
휴고와 네뷸러상을 동시에 받아 판타지와 SF가 결코 동떨어진 장르가
아님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흔히 보이는 현상입니다. 코난을 쓴 하워드도 "알무릭"이라는 모험SF를 발표할 정도입니다. 하워드의 유일한 SF인 "알무릭"은 현대인이 과학자의 새로운 발명을 이용하여 다른 혹성, 다른 시대로 전송 혹은 비행하여 그곳에서 수퍼 히로가 되어 대활약을 한다는 코난형 모험활극입니다. 무대가 단지 하이보리아에서 우주의 혹성으로 바뀐 것뿐이지요.
어슐라 르 귄의 "세상 끝의 섬" |
앞서 SF작가로 소개한 로저 젤라즈니와 어슐라 르귄과 같은 경우는
우주를 무대로 한 판타지 작품이 순연한 SF작품보다 더 유명한 작가들입니다.
르귄에게는 "어스시의 마법사"(1968), "아투안의 무덤"(1971), "세상
끝의 섬"(1972)라는 어스시 삼부작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스시라는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아키펠라고라는 해양세계에서 양치기 소년 게드가 마법과 그 마법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훈련이 이야기됩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물론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마법은 단순히 불가사의한 힘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시초에 말해진 참된 말에 뿌리를 내린 힘으로 나타납니다. 사물에 힘이 미칠 때 그 사물의 진짜 이름을 알고 그 이름으로 말을 건네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계입니다. 실로 판타지라고 해도 언어와 마법의 관계를 중시하는 작품입니다.
또한 여기서의 마법은 논리 정연한 원리로 설명되기 때문에 마치 과학처럼 보입니다. 마법은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는데, 특히 마법의 원리를 설명할 때의 이론은 실로 논리적으로 별종의 과학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주인공은 세 작품을 통해 각기 빛과 그림자, 자유와 노예,
생과 사라고 하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오래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자기 탐구의 여행을 계속하게 됩니다.
앰버(1999) 국내판 |
SF작가 젤라즈니 또한 검과 마법 이야기에 손을 댄 작가입니다. 젤라즈니에게는 "그림자의 잭"과 "앰버" 10부작이 판타지로서 유명합니다.
"그림자의 잭"은 자전이 정지하여 낮과 밤의 세계가 완전히 분리된 미래의 지구가 등장합니다. 낮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과학기술이고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마술로서 SF와 판타지가 하나로 잘 융합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평행우주라고 하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쓴 "앰버"에 가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우주의 원형이라고 하는 진정한 세계 앰버에서
주인공들의 모험을 다룬 이 시리즈는, 마법, 정치, 대체역사, 전쟁, 컴퓨터 그리고 수많은 왕족들 간의 복잡하고도 기괴한 관계를 그려 새로운 사이언스 판타지의 장의 열었습니다.
이렇듯 한 작가가 SF와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작품을 쓰는 경향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기 때문에 SF와 판타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더욱이 SF의 무대를 차용하는
판타지가 계속 늘어나면서 사이언스 판타지라는 용어마저 생기게 된
것입니다.
E. 톨킨의 반지의 제왕
J.R.R. 톨킨 |
옥스퍼드대학에서 결성된 잉크링스 멤버들 |
1930년대 하워드가 "코난"을 집필하고 있을 당시,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잉크링스라고 하는 비공식적인 문학애호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반지의 제왕"의 J.R.R.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S. 루이스가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지요. 이들은 중세의 문학이나 요정이야기, 북구신화에 공통된 흥미를 갖고 있었고, 또 자신들의 작품이나 논고를 서로 나누어 읽고는 평가해 주기도 했습니다.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
C.S. 루이스 |
대학에서 중세언어를 가리키던 톨킨은 어릴 적부터 언어에 깊은 관심이 있어 자신이 직접 개인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일생생활에
써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만든 엘프어를 만들고는 엘프어를 쓰는 엘프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신화를 구축하고자 1917년부터
"실마릴리온"이라는 개인신화를 구상하여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톨킨은 소설보다는 언어를 중시하는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리고 1937년에 발표한 "호비트의 모험"도 그러한 개인언어를 위한 하나의 결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쓴 이 동화에는
인간이 아니라 호비트족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톨킨의 |
주인공 빌보 배긴스는 안락한 생활을 좋아하는 평범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색 망토를 걸친 마법사 갠달프가 찾아오면서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갠달프와 함께 찾아온 13명의 드워프들은 악명 높은 용 스머그에게 빼앗긴 자신의 보물을 이야기하며
빌보에게 이것을 되찾아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빌보는 이들과 함께 보물을 되찾기 위한 여행에 나섭니다.
"호비트의 모험"에 나오는 주인공은 비록 어른이지만 우리가 판타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웅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드워프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여행에 나섰지만 처음에는 그들의
힘이 되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만 되는 힘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마법의 반지를 줍게 됩니다. 이 반지는 이후 빌보 일행에게 위기를 타넘는 힘이 되어 목적지까지 무사하게 도착할 수 있게 해줍니다.
갠달프의 일러스트레이션 |
그러나 마법의 반지라고 해도 이것은 마법을 발휘하는 반지가 아니라
단지 반지를 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는 반지일 뿐, 위기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힘은 되지 않습니다. 빌보의 힘으로 위기를 뚫고 나갈 기회만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호비트의 모험"은 주인공의 성장 모험담인 것이지요.
또한 "호비트의 모험"에서는 드워프나 엘프, 고블린, 트롤과 같은 인간
이외의 종족들을 등장시켜 그 종족들의 장점과 단점을 그려 선명한
개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작품 도처에 시를 집어넣고 신화나 전설 등에서 이미지를 가져오는 서사시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훗날 톨킨의 판타지를 히로익 판타지에 대비되는 에픽
판타지라고 이름하는 근거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반지원정대」 |
「두개의 탑」 |
「왕의귀환」 |
국내번역판 |
호비트 종족을 새롭게 창조한 톨킨은 이번에는 어른을 위한 판타지를
쓰게 됩니다. 1939년에서 1949년에 걸쳐 집필한 "반지의 제왕"은 삼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삼부작은 빌보의 모험에서 수십 년이 지난 빌보의 생일날, 자신의 후계자인 프로도에게 마법의 반지만을 남기고 빌보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프로도를 찾아온 갠달프는 빌보의 반지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마법의
반지를 다스리는 유일한 절대반지임을 밝히지요.
그 반지를 소유한 자는 세계를 장악하는 힘을 갖게 되지만, 반지의 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반지의 소유자마저 정복하여 파괴하며, 더군다나 마왕의 손길이 그 반지의 행방을 쫓아 프로도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알립니다. 프로도는 어쩔 수 없이 그 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화산을 향해 동료 호비트, 인간, 엘프, 드워프 그리고 마법사
갠달프와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반지의 소지자인 프로도와 함께 여행하는 동료들은 명왕 사우론과 한패가 된 자들과의 싸움에서 서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전에 동료였던 포로미아의 죽음, 로한에서의 격렬한 싸움이라는 가혹한 여행
끝에 프로도 일행은 가까스로 모르도르의 문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사우론과의 최후의 싸움을 하고 드디어 마법의 반지를 없애는
데 성공합니다. 암흑의 탑은 붕괴되고 사우론은 소멸됩니다. 평화를
되찾은 미들어스에는 인간 왕이 통치를 선언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지만, 프로도는 요정들이 사라진 곳으로 다시 여행을 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랄프 박시 감독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
피터 잭슨 감독 제작의 영화 "반지의 제왕" 포스터 |
1천 쪽이 넘는 대하작품인 "반지의 제왕"은 보물찾기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호비트의 모험"과는 정반대로, 보물파괴의 모험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톨킨은 모든 폭군이 그러하듯이 마왕 사우론을 지배욕으로 인해 절대악으로 끊임없이 접근하려다가 타락한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어떤 악인이나 조직을 내세우거나 선인과
대립한다는 식의 단순한 구도로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습니다. 악은
악한 인간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달라붙은 그림자와
어둠과 같다고 봅니다. 따라서 반지의 힘에 물들은 프로도가 최후에
반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반지를 폐기하지 않으려는 행동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또한 "반지의 제왕"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주인공의 힘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히로익 판타지에서는 코난처럼 초인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이 위기를 해결하지만, 프로도는 보통 사람의 능력만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주변인물들에게 뒤떨어질 정도로 평범하다고 하겠습니다. 주인공이 평범한 만큼 주변인물들의 개성과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더 많아집니다.
즉 주인공과 우정으로 맺어진 동료들과 함께 목표를 향하여 여행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판타지는 이전에 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면모로서, 이런 면이 "반지의 제왕"이 쉽사리 롤플레잉게임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F. 롤플레잉 게임이 된 반지의 제왕
반지의 제왕 게임 |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중세유럽을 연상하게 하는 배경 아래, 엘프어라는 새로운 언어와 미들어스라는 세계에 요정, 드워프, 갠달프, 드래곤과 같은 다양한 신화적인 종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인용 판타지입니다. 이 작품은 1957년에 세계SF상을 받기도 했지만, 발표 당시에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이 오늘날처럼 전 세계에 수많은 매니아를 만들면서 20세기가
낳은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페이퍼백의 간행에 도움이 컸습니다.
페이퍼백은 아주 싼 가격에 가벼운 무게의 작은 사이즈의 책을 말합니다.
1939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페이퍼백은 주로 명작을 간행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대중들의 책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1965년 페이퍼백으로 출판되는데, 당시 젊은 세대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닌 작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60년대 젊은이들은 전쟁을 반대하고 비정치적인 성향이 강했지요.
"반지의 제왕"은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전개와 중세라고 하는 과거 지향적인 배경에 현실과 동떨어진 이차세계에서의 모험을 다룸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 열중하던 이 시기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불만을 해소하는 적절한 도피처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인기는 70년대 들어서 컴퓨터게임이라는 뜻하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와 만남으로써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톨킨 자신은 공장에서 울리는 기계의 소음이나 테크놀로지를 싫어했습니다.
북구신화를 바탕으로 쓴 개인신화 「실마릴리온」 국내판 |
미들어스 지도 |
대신 인간에게 위안과 경이로움 그리고 즐거움을 주는 판타지의 유용함을 주장했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테크놀로지의 첨단이기인 컴퓨터가 만드는 사이버스페이스 속에서 꽃을 피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합은 우연하게 발생된 일이 아닙니다.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가상현실은 이른바 육체와 현실이 직접 관여하는 실질적인
감각의 세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만으로 움직이는 다양한 감각의 세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컴퓨터의 가상현실은 이용자로 하여금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효과를 주는데, 톨킨이 구축한 미들어스라는 이차세계는 어느 의미에서 이러한 가상현실과 맥이 닿고 있습니다.
실제로 "반지의 제왕"이 게임에서 집중적으로 수용되어 개발된 것은
톨킨이 만든 거대하면서 체계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됩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미들어스는 세계창조로부터 시작되는 실마릴리온이라는
연대기의 마지막 시기인 제3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신화는 세계를 창조한 신들의 이야기나 역사 그리고 인간, 엘프, 드워프 등에 관한 지식, 보석 실마릴에 얽힌 이야기 등이 체계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반지의 제왕"에는 각 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지리적인 위치 관계, 각 종족들의 인류학적 계보까지 상세하게 씌어지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이 세계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가상현실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게일리 가이거스 |
「던전 앤드 드래곤스」 플레이북 |
톨킨의 이차세계를 게임으로 체계화한 것이 컴퓨터를 쓰지 않는 롤플레잉 게임 "던전스 앤드 드래곤스"(1974)입니다. TPRG(Tabletalk
Role Playing Game)로 불리는 이 게임은 순전히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각 등장인물인 호비트, 드워프, 엘프, 고블린, 드래곤이라는 캐릭터가 되어 미들어스의 세계를 체험할 수 없을까 하는 동기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각 등장인물의 역할을
담당하고, 게임 마스터라고 하는 진행자가 설정하는 룰 또는 주사위의 눈 방향에 따라 용을 퇴치하거나 보물을 탈환한다는 목적을 향해
게임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진행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게임의
룰북이나 설정집은 톨킨의 세계관과 종족관을 절대적인 준거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초창기 TPRG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게임 마스터의 역할을 컴퓨터가 대신 맡게 된 것이지요.
그리하여 1975년에 나온 로그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게임자 혼자서 롤플레잉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여기서는 지하미궁 깊은 곳을 향해 게임자가 돈과 무기 등을 얻어 가면서 모험을 하는 식을 바뀌었습니다.
"울티마 온라인" 스크린샷 |
그리고 6년 후인 1981년 개인용 컴퓨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자 "울티마"와 "위저드리"라고 하는 대표적인 게임이 나왔으며, 이 두 게임을
바탕으로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드라곤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합세하면서 "반지의 제왕"을 응용한 롤플레잉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발흥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롤플레잉게임은 기본적으로 독자가 직접 참가하는 판타지의
응용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치밀하고 장대한 역사관, 논리적이면서 합리적인 설명, 다양한 관점을 보이는 세계관, 현실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완벽한 이차세계의 창조, 그리고 그룹을 구성하는 각 캐릭터의 독립적인 개성을 가진 "반지의 제왕"을 게임으로 경험한 게임자들은 이 작품의 열렬한 추종자로 만드는 독특한 문화 현상까지 만들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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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게임으로 그치지 않고 이 작품을 모방한 수많은 판타지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확산되면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SF를 밀어내고 가장 인기 있는 대중장르가 되었습니다.
G. 게임소설과 드래곤라자
우리 나라의 컴퓨터 통신망이 문학과 만나면서 가장 먼저 배출한 장르가 SF였다고 한다면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장르는 판타지입니다. 판타지는 90년대 이전에는 기존의 문학에는 거의 수용되지
못한 장르입니다.
톨킨의 작품은 1991년에 "반지전쟁"이라는 제목을 번역되어 출판되었을 뿐입니다. 우리의 판타지는 그러나 톨킨의 작품을 통해서 나오지
않고 롤플레잉게임과 판타지 애니메이션과 만화라는 인접미디어의
자극을 받아 창작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
일본 판타지대상을 받은 소설 「슬레이어즈」을 원전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는 통신망에 판타지와 TPRG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동호회가 등장하고 여기서 소수의 매니아들이 미국과 일본의
판타지 작품을 원서나 자작 번역본으로 돌려보는 수준이었습니다.
1992년에는 하이텔에 판타지 동호회가 결성되기도 했습니다. 판타지는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유행한 "울티마"와 "파이널 판타지", 미즈노 료의 게임소설 "로도스도전기"의 번역, 일본 판타지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슬레이어즈"가 국내의 텔레비전에 "마법소녀 리나"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면서 판타지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증폭되었습니다.
주로 십대들의 열렬한 관심 속에 1995년 김근우의 "바람의 마도사"가
통신망에 올려지고 다시 종이 책으로 출판되면서 국내 창작 판타지는
실질적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바람의 마도사 |
같은 해 통신망에 여러 판타지 작품들이 올라오면서 본격적인 국내
판타지의 장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또는 게임소설을 통해 판타지를 접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작품을 썼기 때문에 소년이나 젊은 기사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검과 마법으로 마왕과 싸우는 모험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험담은 거의 대부분이 미즈노 료의 "로도스도전기"의
세계관과 인물 설정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로도스도전기"는 1988년 출간되기 전에 이미 TRPG의 리플레이 내지는 그에 기반한 게임소설이었습니다. 게임소설로 성공한 것을 계기로 1990년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는데, 국내에는 소설에 앞서 먼저 수용되었습니다.
이 작품 첫머리에는 인간의 사악함과 탐욕이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들은 인간의 전쟁에 휘말리는데, 거기에는 두 개의 세계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평화, 빛, 창조, 희망, 탄생으로
대변되는 선한 신과 그 영역에 속하는 종족들. 그 반대쪽에는 전쟁, 죽음, 절망, 파괴를 일삼는 악한 신과 종족들로 양분되어 있으며, 선의
세력이 악의 세력을 물리친다는 단순한 구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톨킨이 "실마릴리온"에서 보여준 신의 의지를 배반하고 주위와의 조화를 깨뜨리면서까지 자신의 힘이나 능력 그리고 소유에 집착함으로써 일어나는 재앙에 비한다면 아주 단순한 내용입니다.
전형적인 게임소설 「드래곤랜스」 국내판 |
"로도스도전기"는 게임소설이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면모를 유난히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로도스섬에는 동맹의 성격이 강한 연맹체가 나오는가 하면,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국가, 종교국가, 상업도시국가, 악마의 기운이 모두 걷히지 않아 마물들이 모여 살게 된 나라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 국가들은 서로 전쟁과 정략으로 뒤얽혀 있어 마치 정치소설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는 마치 하워드가 설정한 하이보리아 세계와 거의 흡사합니다. 코난이 살고 있는 시대의 하이보리아 대륙 또한
동서남북으로 뚜렷한 인종적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여러 유형의 국가들이 주인공 코난이 모험하는 무대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마계마인전(1995)으로 번역된 |
다만 "로도스도전기"와 다른 점은 코난 혼자 모험한다는 것이지요. "로도스도전기"와 같은 게임소설에서 세계관을 설정하는 데 지형적인 배경을 중시하고 종족만을 중시하는 이유는 여러 명이 더불어 게임을
해야 하는 롤플레잉게임의 성격에서 비롯됩니다.
개성이 강한 각 종족과 국가의 특성이 스토리를 전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마술사, 도둑, 성직자 등의 유형적인 캐릭터와 함께 각 장소 즉 게임에서의 필드로 나아가며 끝없는 영웅적 모험을 펼칩니다. 여기에는 보여주려고 했던 최소한의 문학적 메시지를
담기가 어렵지요.
"로도스도전기"와 같은 게임소설을 문학이라고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현재 창작되는 대부분의 판타지에도 적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용의 신전(1998) |
다만 몇몇 예외적인 작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예리의 "용의 신전"이나 이영도의 "드래곤라자"와 같은 작품들은 게임소설로서 판타지를 접근한다기보다는 순연한 문학의 입장에서 판타지를 접근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용의 신전"에서는 톨킨이 그러했듯이 작가가 직접 인간의 말 이외에
고대어, 드워프, 오크 등의 언어를 만들고 용과 인간의 혼혈종족을 설정하는 등 남다른 사전 준비를 치밀하게 하고 있으며, "드래곤라자"는
본격적으로 톨킨의 세계관과 종족 그리고 언어 구사를 차용하여 많은
매니아층을 만들면서 판타지 창작의 일대 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후치 네드발이라는 활달하지만 평범한 소년입니다. 마을에 재앙을 일으키는 블랙 드래곤 아무르타트를 처치하려고
떠난 원정대가 볼모로 잡히고 또 아무르타트가 엄청난 양의 보석을
요구해 오자 후치는 동료 일행들과 함께 보석을 구하고 또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고자 수도로 떠나게 됩니다.
「드래곤라자」 |
가는 길에 그들은 이웃한 자이펀국의 음모를 알게 되고 또 국왕의 형인 길시언과도 동료가 됩니다. 그러나 최강의 크림슨 드래곤으로 인해 보석의 생산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후치 일행은 크림슨 드래곤과 계약을 맺게 해줄 수 있는 드래곤라자를 찾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드래곤라자는 드래곤이라는 영물과 인간의 관계를 맺어 주는
사람입니다. 즉 드래곤이라는 마법이 영역에 속하는 하나의 상징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라자라는 독특한 장치의 설정은 관계라고 하는 물음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려는 작가의 전력을 엿보게 해줍니다.
즉 어떤 신도 섬기지 않는 가장 독립적인 종족 드래곤의 정반대에 위치하는 인간은 항상 주위의 존재들과 교류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전혀 다른 종족인 것입니다. 태양과 같으며 만물을 다스리는 지혜와
권능을 가진 위대한 존재 드래곤과 드래곤라자 그리고 타자와의 교류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설정은 이 작품이 게임소설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드래곤라자" 맵 |
게임소설의 경우, 적군과 아군의 명확한 구분, 연속적으로 사건이 발발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주인공의 영웅적인 행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드래곤라자"의 주인공 후치는 단지 음유시인이고
재담꾼에 불과하지요. 이 작품에서의 모험 또한 마을의 위기를 불러들이는 재앙의 근원 검은 드래곤이 요구하는 석방금을 얻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거기에는 선의 편에 서서 악의 마물들을 처치하는 "로도스도전기"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복수는 없지요.
더욱이 주인공 후치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드래곤라자"는 톨킨의 작품을 의식해서인지 유달리 고풍스러운 문체와 함께 곳곳에 랩소디 형식의 등장시켜 사건을 전환하고 긴장을 해소시킵니다. 동시에
의성어와 의태어, 구어체와 대화체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장면의 생동감을 더해 주기도 합니다.
자아 정체성의 분열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하나의 사건으로 표현한
"영원의 숲"이나, 신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기를 만든 인간들의 만행을 은유적으로 그린 "세이크리드 랜드"와 같은 부분에서는 이 작품을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읽을거리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