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열기가 이미 땅속 깊숙히 스며들고 검푸른 안개가 솜이불처럼 대지를
포근히 감싸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아침, 새로운 경험으로의 부푼 기대를
가득안고 4박5일간의 제주도 무전여행을 위해 야운형님과 새벽길을 떠납니다.
5시56분에 천안아산역을 출발한 고속전철은 불과 2시간30분만에 우리를 목포역에
데려다 놓습니다. 역앞에서 순두부찌개로 아침을 해결한 우리는 식당 주인아저씨
의 정보에 의지해 목포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목포해양축제가 열리는
해변가로 비싼 택시를 타고 찾아듭니다. 그곳에 가면 택시비는 물론이요. 오늘 저녁 숙식도
해결할 만큼의 모금은 되겠다 싶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아침 10시도 되지않은 시간에 그곳에 나와 있는 사람이라곤
쓰레기 줍는 알바생 몇몇과 아침 운동하는 몇몇 시민들 뿐입니다. 허탈한 마음에
복숭아 하나씩을 꺼내 어금니에 힘줘가며 깨물어 먹고는 우리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목포항으로 향합니다. 연안여객선터미널과 국제여객선터미널이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연안여객선에 여행객들이 많은 듯하여 입구에 자리를 잡고 첫공연을 시작합니다.
섬으로 떠나는 여행객들의 손마다엔 무슨 짐들이 그리도 많은지, 이고지고 들고끌고
흡사 피난민 같다는 생각마져 듭니다. 작년여름 무전여행땐 첫공연지가 해수욕장
이었는데 그때는 모두들 수영복차림인지라 모금이 잘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손마다에
짐들이 너무 많아서 모금이 잘되질 않습니다. 비슷하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경험의
첫공연입니다.
두어시간의 첫공연을 마친 우리는 여객선터미널 앞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해결하고
드디어 제주행 카페리호에 몸을 싣습니다.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한 배여행은 5시간이라는 긴 항해의 지루함과 끊임없이 북적되는
여행객들의 혼잡함 그리고 검은 연기를 쉴새없이 뿜어대며 돌아가는 엔진의 굉음소리에
그 환상이 산산히 깨어지고 맙니다. 어쩌면 붐비는 계절의 여행이 낳은 편견인지도 모르겠지요.
배는 예정시간보다 30분가량 연착하여 제주항에 도착하였고 승무원의 조언으로
제주항 가까운 곳에 밤마다 많은 시민들이 바람을 찾아 산책을 나온다는
탑동광장을 두번째 공연장으로 정합니다. 광장옆으로 닭장처럼 나란히 붙어있는
수많은 식당들의 한결같은 메뉴들은 어쩌면 그렇게 우리마음에 들지않는지...
각종 회종류들과 갈치조림,고등어조림등 온통 바다음식들 뿐입니다. 물론 이곳이 제주도임을
잊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좋아할 만한, 그리고 우리 경제형편상 적당한 메뉴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고민끝에 그중 저렴한 고등어조림을 저녁매뉴로
선택하여 무려 거금 2만원을 식대로 지출하는 사치를 감행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적당한 공연장소 물색을 위해 광장을 서성이는데 어디선가 기타소리와 피리 소리가 들려옵니다.
광장옆 계단에는 젊은 남학생 두명이 리드미컬하고도 생동감있는 가락을 그어느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듯 자유롭게 연주하고 있습니다. 피리라 생각한 악기는
멜로디언이었고 가까이 다가가 말을 붙여보니 신제주에서 온 고등학교 1년생의 남학생들
이었는데 자작곡까지 있을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었습니다. 근처에서
여자친구에게 통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또다른 남학생까지 합세하여 내친김에
자리를 펴고 공연을 시작합니다. 잠깐동안 이었지만 젊은 친구들과의 어울림은 여행의
색다른 역동감을 맛보게 합니다. 이곳 탑동광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와 롤러브레이드등
각종 탈거리들과 농구와 산책을 즐기며 더위를 식히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정이 넘도록
신나게 공연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하며 모금을 해주셨고 어느 남자분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는 착용하고 있던 귀거리 한짝을 던져줍니다. 황당하여 사양을 하니
자기의 마음이라며 기어코 형님손에 들려주네요. 그의 말로는 순금반돈이라는데... ㅎㅎ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질 즈음 우리는 그만 공연을 접기로 하고 간단한 장비를 챙겨 숙소를
찾아듭니다. 근처의 불이켜진 모텔로 무작정 들어가 하루 숙박료를 물으니 생각보다 훠얼씬
저렴한 2만5천원이라네요. 비록 그다지 깨끗하지 않고 낡은 숙소였지만 씻을수 있는 물이있고
잠을 편히 잘수있는 침대가 있으니 그것으로 우리는 OK입니다.
아직도 여행으로의 설레임이 식지않아 한참을 뒤척이다가 서서히 잠으로 빠져듭니다.
내일은 또 어떤 설레임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사람들이 우리와 공감을 나눌 수 있을까...
제주도의 밤은 낡은 에어컨 소리와 함께 깊어만 갑니다.
첫댓글 추억이 쌓이네요~ 저도 이번 휴가는 추억 만땅이요... 담엔 해외 가서 공연 하실 기회가 있었음 좋겠어요~
한마디로 부럽습니다..두분에 박수를..(짝짝짝) ....
즐거운추억들이 하나둘씩 묻어남니다,,ㅎㅎ
지난 주 서해와 남해 일대를 막내동서 내외와 저의 가족이 돌았는데 취침은 비싼 모텔보다는 6~7천원정도하는 찜질방이 더 좋더군요. 비용도 절감되고.. 혹시 다른 사정이 있나요?
ㅎㅎ 별다른 사정은 없었구요~ 찜질방이 시내권에만 있고 땀찬 옷들 세탁도 해야하고 그래서 아무래도 모텔이 편할 듯해서요~~ 아무튼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