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프라하까지
紀行文
Ⅰ.
南國의
휴양지 발리
6월
초순은
화창한 여름의 시작이다. 일단의 여행객들과 같이 유럽으로
가는 도중 세계적인 휴양지 발리에서
쉬었다 가기위해 인도네시아국적
여객기에 탑승했다. 아직 통성명을 할 기회가 없어서 서로를 잘 모르는 30여명의 일행이 타고 가는 항공기 동체에 제비모양의 큰새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는 영어로 ‘Garuda’라고
씌어져 있다. 나는 호기심과 기행문을 쓰기위해서 스튜어디스에게<가루다>라는 저 새가 무슨 새냐고 물었다. 객실 안내를 하면서 내게
음료수를 가져다주던 스튜어디스는 친절하게 “<가루다>는 인도네시아의
민속전설에 나오는 신비의 새 입니다.”라고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십여
년 전, 나는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면서 아침 8시에 김포공항을 떠나는 에어베트남여객기를 타고 호치민(사이공)에
갔다. 다음날 다시 베트남
국내선 여객기로 퀴논으로
가면서 가슴이 조이는 체험을 한바가 있기 때문에, 부득이 한 사정으로 동남아국적의
비행기를 탈 때에는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 때문에 기내에서 안내하는 방송 멘트는 물론 기장이 자기소개를 할 때는 더 관심 있게 듣는다. 모든
항공기 운항이 다 그렇겠지만 많은 승객을 태우고 높은 공간에 떠서가는 여객기의 경우는 기장의 경력과 능력이 더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일행이 처음 탑승해보는 가루다 여객기는 보잉 747 점보기로 내부의 객실 의자 배열의 간격이 우리국적의 어떤 여객기들 보다 훨씬 넓게 잘
되어있다. 승무원들은 물론 인도네시아
인들이지만 생각보다 세련되어 있고 기장이 유럽의
베테랑 조종사여서 안정감이 들어 괜찮은 비행이 될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에 기내를 둘러보니 300명이 넘는 승객의 절반정도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이고, 나머지는 발리로
휴가는 유럽인들과
인도네시아
인들과 구분이 잘 안 되는 동남아
사람들로 보인다.
언젠가
나는 남태평양
군도(群島)로
여행을 가면서 우리 국적기(國籍機)아시아나를
탔다. 지정받은 좌석이 한참 뒤쪽인데다가 좌석배열이 요즘 우등버스보다 못하게 비좁아서 불편하고, 기상악화로 기체의 뒤쪽이라 더 흔들려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오늘 Garuda여객기는 맑은 날씨에 기체가 이륙할 때 말고는 전혀 흔들림이 없이 한나절 남짓한 비행을 생각보다 아주 쾌적하게
하면서 세기의 유명휴양지 발리의 덴파사
국제공항에 사뿐하게 착륙했다.
여객기
문이 열리자 설레는 마음으로 길게 선줄을 따라 기내를 빠져나가 입국장으로 들어가는데 통로에서부터 후덥지근한 열기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입국수속을
간단하게 마치고 공항 대기실을 나서면서 시야에 선득 닥아 오는 것은 아열대의 상징 야자수 나무다. 바람에 너울너울 흔들리는 긴 가지들은 남국의
무희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은
동남아
어디를 가든지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인 가이드를 만나기 쉬운데, 오늘 우리를 안내하러 나온 현지인가이드도 예외가 아닌가 싶다. 가이드는 우리를
버스로 안내하고 나서 관례에 따라 자기소개 인사와 관광일정과 숙식 문제를 한국말로
잘해준다. 언제 한국말을
배웠는지 그럴싸한 재담을 석어가면서 하는 말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얼마나 언어연습을 하고 실습을 하였기에 이정도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나중에 팁을 좀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선
예약된 호텔로 가기위해 시가지를 벗어나 농촌 마을을 지나고 숲속 길로 한참을 들어가 밀림속의 장원 같은 곳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 밤
묵을 방을 배정받아 큰 가방을 놓고 휴대품과 작은 손가방들만 들고 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숲속을 빠져나와 가까운 곳부터 구경을 하기시작 했다.
어느덧 해가 지면서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동남아의 밤 문화는 이곳이라고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세계도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모여든 관광객들이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서 남국의 향기에 젖어들고, 거리에서 해변으로 해변에서 거리로 쏟아지는 무리들 속을 헤집고 오늘밤에 묵을 호텔로
돌아왔다.
시장기가
든다. 인도네시아
전통음식과 양식으로 적당하게 조화를 이루어 푸짐하게 차려진 호텔식당에서 다양한 고기와 생선 채소를 기본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밤을 낮과 같이
즐기는 남국의 휴양지이지에 왔지만 우리는 내일을 위하여 휴식을 갖기로 했다. 객실은 콘도형 2층집이 여러 동(棟)으로 떨어져 있어 가족 또는
서로 아는 남남 여여끼리 2인 1실로 배정을 받았다.
우리일행
중에 대전에서
온, 노신사 분은 얼마 전에 아내와 사별하고 쓸쓸하게 지네는 처지라 부부동반인 친척들이 위로를 해드리려고 모시고 여행을 왔다. 그분은 나와 같은
방을 쓰게 되자“당신 때문에 혼자서 방을 다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엉뚱하게 짜증을 부렸지만 좋아지겠지 하고 참고 지냈다.
날이
밝자 짐을 모두 버스에 실고 아침을 먹은 후 본격적인 발리섬
관광을 시작 했다. 먼저 바롱댄스 민속공연과 전통수공예마을에서 목각 은 세공품 그리고 수공면직물을 구경하고, 끼딴마니
화산지대에 올랐다. 발리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몇 배가 되는 넓고 큰 섬이다. 점심을 원주민 전통음식으로 먹고 오래된 힌두교 사원을 구경하고 마을 앞에서 힌두교식 장례행렬을
보았다. 한 무리가 흰옷을 입었지만 어떤 힘에 끌려가는 어둠의 행렬이었다.
발리는
하나님이 주신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의 보고(寶庫)다.
대서양에 접해 있어 태풍이 없고 해변이 좋아 세계적인
유명휴양지다. 하지만 신들의 나라라고 할 마큼 다양한 잡신들을 섬기는 우상의 나라다. 특히 인도의 힌두교를 섬기는 주민들의 영혼이 사탄에 눌려
피폐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어, 구원의 아쉬움을 금지 못하면서 발리를 떠나고 있다. (2002년 2월 4일 순담)
E-mail:
ckc@swsn.org (http://www.swsn.org) ☎ 031)271-1161, HP 010-9999-1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