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김인환 역, 민음사, 2007, 세계문학전집.
열여섯 살의 소녀가 커다란 나룻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그녀는 커다란 남자용 모자를 쓰고 있으며 미색 원피스가 바람에 날리고 굵은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있지요. 뱃전에 서서 그녀는, 마치 지구가 기울어진 듯이 쏟아져내려가는 메콩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한 중국인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옵니다.
잘 알려진 영화 <연인>의 첫 신이죠. 영화처럼 원작인 소설도 그렇게 격류하는 메콩강 위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 <연인>입니다.
뒤라스는 1914년 사이공(지금은 호치민시) 근교인 지아딘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위고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와 함께 베트남에서 어린시절을 보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서 프랑스로 영구귀국합니다. 그 후 뒤라스는 정치,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40여권의 작품을 쓰는 등 왕성하게 창착활동하다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메콩강의 배 위에서 만난 두 남녀. 여자는 열여섯 살짜리 가난한 유렵 소녀이고, 남자는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돈많은 중국인이며, 나이가 서른살입니다.
전혀 어울릴수 없을 듯이 보이는 두 남녀는 급격하게 사랑에 빠져듭니다. 사랑이라고 했지만 아주 괴팍하고 지독히 동물적이며 광기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어린 여자의 집은 가난했고 폭력적이어서 황폐한데,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남자에 골몰하지요. 남자는 권위적이고 전통적인 가풍에서 벗어나고자 어린 유렵 여자아이를 욕망합니다.
둘은 만날 때마다 리무진을 타고 남자의 독신자 아파트로 갑니다. 시장통 한가운데 있는 아파트에는 온갖 소음을 들끓지요, 상인들이 고함지르는 소음 속에서 둘을 괴상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몰두합니다.
<그는 어린 소녀의 향기를 들어 마신다. 소녀의 육체는 점점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는 이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육체는 사물과 달리 무한하다. 침실 안에서 그녀의 육체는 무한하고, 이윽고 시야 너머로 퍼져나가 유희와 죽음으로 향해 확장된다.>
그들의 사랑은 유희이자 몸부림이며 고독이자 죽음입니다. 1년쯤 뒤, 남자는 중국인의 전통에 의해 결혼을 하고 여자는 베트남을 떠나 프랑스로 갑니다.
이 소설은 얼핏 보면 사랑의 서사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불규칙하게 되풀이되는 시간의 이동과 기억의 조각들, 훗날 주인공이 프랑스로 돌아온 뒤의 생활까지 뒤섞어서 혼란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원망과 폭력, 죽음에 대한 공포와 광기, 심적 불안이 곳곳에 깔려있지요. 이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소설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소설에도 연애의 미묘한 리듬과 감각이 곳곳에 울려나옵니다.
<연인>은 뒤라스가 70살이 되던 해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작가가 일흔 살이 되었을 때, 무엇을 회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했습니다. 기억은 꽃잎처럼, 아름답거나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작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남자의 아파트에서 침실에 뉘었던 어린 계집아이의 육체처럼, 침실의 바깥으로, 시야를 너머서 자신의 전생애를 휘감아도는 장려한 사건으로 변하는 모양입니다. <연인>의 작가 뒤라스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마 일흔 살쯤 되면 그럴 것 같습니다.
첫댓글 저는 중국인 남자의 '결혼'과 유럽 여자아이의 '이사'. 이런 극적인 '핑계거리'가 있는 이별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슬픈 영화이지요.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나이를 불문하고, 경계가 모호합니다. 나이는 숫자라는 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추억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지요.
집 어딘가에 이 책이 있는 거 봤는데 없네 큰 놈 집에 있는가. 영화는 선생님 글에 나타난 그런 느낌이 없어서요. 문자와 영상의 차이인가?
70살에 15살의 감성으로 '연인' 이라는 명작을 썼다는 게 놀라울따름입니다. 문장이 시냇물 흐르듯이 졸졸졸 잘 읽혀지던 작품으로도 기억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영화는 봤는데 책은 읽지 못햇습니다.
"마치 지구가 기울어진 듯이 쏟아져내려가는 메콩강을 바라보고..." 메콩강을 보며 지구가 기울어진 것을 연상하다니... 역시 소설가는 대단합니다.
서로 관점의 차이가 재미있군요. 저는 마지막 대목에 썼듯이, 나는 그 나이가 되면 무엇을 회상할까? 였어요.
몇 번인가 읽어야지 하면서 못 읽었는데 이번엔 정말 읽어야겠네요. 일흔의 작가가 15살의 감성은 어떤 것일까요?
<연인> 드디어 집에 도착 햇습니다. 처음 읽어보는 거라 ...책 추천 감사합니다. 잘 읽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