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저서 소개 신문 기사다.
무엇보다 그는 육이오전쟁을 미국의 조종을 받은 남한 군대가 북침해서 시작한 전쟁이라고 믿고 이후 공산주의 운동을 벌인 사상가로 유명하다.
기사에 나오는 인물들의 바이오코드를 보면서 마음의 행로를 짐작해보자.
장 폴 사르트르 0530
알베르 카뮈 0150
앙드레 지드 0555
모리스 메를로퐁티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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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 기사 중 '한국전쟁'은 '육이오전쟁'으로 고침.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육이오전쟁의 명칭은 'Korean War'이지만 우리나라 공식 명칭은 '육이오전쟁'이다. 번역할 때 우리말로 번역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Sea of Japan’을 보면 무심코 일본해로 번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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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이 책만 봐도 1950년 육이오전쟁의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사르트르를 포함한 철학자 메를로퐁티, 작가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등 한때 의기투합했던 동료지식인들이 반목했던 결정적 계기가 육이오전쟁에 대한 평가와, 소비에트 공산당에 대한 찬반 의견대립이었다.
책상물림 사르트르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부터 의심했다. 미국의 사주로 한국이 북한을 공격했다는, 당시 유럽을 떠돌던 괴소문인 ‘북침설’을 덜컥 믿었고, 때문에 이전까지의 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소비에트 체제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그 ‘좌파 개종’을 계기로 자신이 만들던 잡지 ‘현대’ 편집진이 갈라졌고, 메를로퐁티와도 사이가 틀어졌다.
카뮈·지드와도 그랬다. 메를로퐁티처럼 이들도 소비에트 체제를 비판하면서 좌파와 ‘거리두기’를 하자 사르트르는 그들을 공격했다. 메를로퐁티에게는 점잖게 타일렀다. 육이오전쟁·소비에트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혼자서 객관적인 척 하지 말라”며 메를로퐁티를 비판했다. 당대의 큰 화제였던 카뮈와의 논쟁에서는 잔뜩 가시가 돋쳐있다. “당신이 나를 아주 고의적으로, 그리고 몹시 불쾌한 어조로 비난했기 때문에 (내가)침묵을 지켰다가는 체면을 잃게 된다.”
1950년대 서구 지식인들은 이념을 놓고 갈등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육이오전쟁과 소비에트 문제였는데, 앙가주망(현실 참여)을 선언했던 사르트르의 말대로 “당파(黨派)가 없는 사람들조차 당파의 투사인양” 행동하던 시절이자, “내전으로 찢겨진 사회”였다.(물론 지식사회 내부의 일이다) 사르트르는 좌파로부터 발을 뽑은 카뮈 등을 공격했지만, 깍듯하게 금도(襟度)를 지키고 있다는 게 눈에 띈다. ‘우아한 철학 논쟁’이다.
“역사란 그것을 만드는 인간의 바깥에서 보면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합니다. 역사에 과연 초월적 가치가 있는지를 모릅니다. 따라서 인간은 영원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역사적이 되어야 합니다.”(154쪽 요약)
사르트르는 세상의 부조리와 무의미에 맞선 외로운 인간이자, 열혈 투사였다. 그래서 실존주의를 주창했고, 현실의 진흙탕에 뛰어들었다. 하도 나 홀로 악을 쓰다 보니 “공산주의 암세포”이자 “혼자만으로 내전을 일으키는 전쟁기계”라는 비판(앙리 레비의 『사르트르 평전』 85쪽)도 받았는데, 『시대의 초상』은 그런 흔적이 역력하다. 동료끼리의 논쟁과 우정이 함께 담겨있는 이 책은 그래서 반세기 세월을 지난 지금도 싱싱하게 읽힌다. 부조리·무의미를 넘어서기 위해 오버하는 사르트르의 지성의 모험이 귀엽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다.
단 읽을거리로서의 『시대의 초상』은 만만치 않다. 20세기 철학사와 지식풍토, 그것도 서구사회의 풍경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음악가 르네 라이보비치, 소설가 나탈리 사로트, 철학자 폴 니장 등 당시 서구의 지식인들에 관한 정보를 상세히 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조우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