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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그림과 김정란·조연호의 시
강 경 호
얼마 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된 클로드 모네의 작품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오르세미술관은 프랑스 3대 미술관의 하나로 주로 근대 작가 중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모네의 대표작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가슴이 떨리고 설레었다. 대학시절 화집에서 보던 작품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니,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대학시절 모네의 그림에 심취해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점묘식으로 칠한 붓질 하나하나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화집은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주로 근대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다. 나는 80년대 어려운 시절 ‘보리수시낭송모임’이라는 데서 간사 일을 보면서 시낭송집 소책자를 만들기 위해 가지고 있던 책들을 청계천 헌책방에 팔아먹어 버렸다. 그래도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현대세계미술대전집’ 12권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마네와 모네는 제1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모네편을 펼치면 물감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다. 야외 사생을 갈 때면 꼭 모네를 가지고 다니면서 책을 보다보니 물감이 묻은 탓이다.
클로드 모네(1840~1926)
모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주의를 고수했다. 바르비종파의 미술가들이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태양 아래에서 햇빛에 따라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처음 관찰한 마네와 더불어 인상주의를 창시한 화가가 모네이다. 모네는 빛과 색채를 탐구하여 일평생을 자연을 헤집고 다녔던 것이다.
오스카 클로드 모네는 1840년 11월 4일 파리에서 아돌프 루이스 쥐스틴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그의 집안이 노르망리 해변의 항구도시 르아브르로 이사했는데, 그는 그곳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특히 북구의 바람과 빛과 그림자의 변화무쌍한 유희를 관찰하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그의 환경은 훗날 그의 예술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학교 다니기를 싫어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캐리커처를 잘 그렸는데 고등학교 때 일찍이 예술적 자질을 인정받았다. 열아홉 살 때 그의 스승인 이젠 부댕을 만나 그로부터 예술적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고 화가로 입문하는 길을 안내받게 된다. 부댕은 모네에게 사물을 보는 법, 색을 다루는 법, 풍경을 묘사하는 법 등 화가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익히게 한다.
모네는 1863년에 바르비종에 갔다. 이 곳은 이미 프랑스 각처에서 모인 가난하지만 새로운 곳을 탐하는 젊은 작가들이 몰려들어 각기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쳤던 곳이다. 자연을 소재로 다루는 화가들 사이에서는 바르비종은 유명한 곳이 되어 있었다. 그를 화가로 눈뜨게 해준 부댕과 노동하는 참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던 밀레 등 신진작가들이 야외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모네는 이곳에서 전업작가로서의 길을 스타트 한 셈이다.
1867년, 모네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전격에 해당되는 살롱전에 「정원의 여인들」을 출품했으나 거부당한다. 마네가 1865년에 「풀밭위의 점심」과 「올랭피아」 등의 작품으로 굉장한 물의를 일으킨 직후였다. 풀밭 위에서 남자들과 함께 앉아있는 벌거벗은 여성을 그린 대담함은 물론 물감도 파레트의 원색만을 사용한 것 등이 기성 화단에 충격과 더불어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이처럼 새로운 화풍에 대해 당시 프랑스 화단이 능멸에 가까운 비판을 가하던 시절, 빛의 유희를 포착하고 튜브에서 짠 물감을 그대로 사용한 모네의 그림 역시 기성 화단은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내 공간에서 관념적으로 성경이나 문학작품,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이미지화시켰던 기존의 화단에 환멸을 느낀 모네는 햇빛 아래에서 빛의 양과 빛의 각도에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참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 때로는 빛의 양에 의해 손에 잡힐 듯한 대기의 질감과 흐름을 잡아내고 자연친화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데 그의 열정을 쏟는다.
초창기 모네의 그림의 모티브는 정원풍경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다보니 화면은 녹색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자연의 싱그러움과 생명의 아름다움이 그의 화면에서 빛나는데, 나뭇잎에 햇살이 반짝이고 밝은 드레스를 입은 우아한 여성들이 대비되어 인물의 모습에서 기품이 넘친다. 하늘은 대기의 느낌으로 가득하고 햇살은 나무 사이를 뚫고 나와 풀밭이나 땅 위에서 환해 햇빛과 그림자가 분명해진다. 이전까지의 기성 화단의 그림이 관념적으로 그려졌다면 마네와 모네의 그림에서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실제의 자연이 그려진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사물의 참모습을 형상화하기에 이른다.
빛을 빼고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모네는 칙칙한 화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빛의 유희에 변화하는 사물들을 그려내는데 오랫동안 몰두한다. 이러한 그의 그림 제작법은 만년에 눈이 아파 고생을 하다가 실명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원의 여인들(1866~1867년)
모네는 1872년 르아브르의 해돋이 풍경을 그렸다. 「해돋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인상」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작품은 1874년 인상주의 그룹의 제1회 전시회에 출품되었는데 모네의 출품작이 너무 많았다. 이때 작품도록을 만들던 르노와르의 형제인 에드몽이 비슷비슷한 작품 이름에 대해 투털거리자 모네가 즉석에서 「인상」이라고 제목을 지어주어 그룹의 이름이 <인상주의>로 불려지게 한 작품이다. 해돋이 때 강렬한 햇빛의 실루엣에 묻힌 배가 있는 바다 풍경을 그의 창가에서 그린 것이지만, 모네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렸다. 실제의 풍경이 아닌 느낌, 즉 ‘인상’을 이미지화 했기 때문에 제목을 즉석에서 「인상」이라고 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네의 그림 제작방법은 인상주의의 가장 큰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빛에 의해 발견된 고요하고 마술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이 그림은 사물들이 분간되지 않고 이로인해 양식적인 특성이 없다는 혹평을 받는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시대를 연 일군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살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낡은 예술적 관성에 젖은 기존의 프랑스 화단에서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인상(해돋이, 1982년)
모네는 빛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색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몰두하다보니 하나의 사물에 대해 여러 차례 그림을 그려낸다. 「포플러나무 가로수」 「생라자르역」 「르왕 대성당」 「수련」, 그리고 「짚가리」 등은 모네 회화세계의 진수이자 골수 인상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모네의 고집스러움은 강변의 멋있는 가로수를 그릴 때의 일화에서도 그의 집념이 엿보인다. 경매에 넘겨진 포플러나무에 붉은 헝겊이 매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입찰 희망자에게 경매 액수보다 많은 돈을 주고 기다리게 하여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빛의 사냥꾼 모네는 시간을 바꾸고, 날을 바꾸고, 날씨를 바꾸고, 장소를 바꾸고, 화포의 크기에 따른 형태를 바꾸며 빛의 변용을 화폭에 포착해낸다. 하늘과 물빛의 대화로까지 환원되어 있는 이 그림들 속의 포플러나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에게 빛의 마술을 부리기 위한 하나의 소품에 불과했다.
포플러(흰색과 노란색 효과, 1891년)
모네에게 빛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색채가 자율적으로 모네를 지배했다. 색채는 팔레트와 화면 위에서 제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음계처럼 하나의 조성을 설정하여 팔레트의 빛깔 수를 한정하고 그 결합에 의해 그림을 조립해 가곤 했는데, 즉 자연 속으로 옮겨가는 빛의 변환을 연동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것이 모네의 제작법이었던 셈이다. 빛을 색채로 번역할 때 빛만의 체계에 휘둘려지는 것이 아니다. 빛은 무한한 변화를 나타내지만, 물감에 의해 제작하는 화가에게는 자연음(自然音) 속에서 악음(樂音)을 선택해 내어 결합시키듯이 색채를 한정하여 착수하는 것이다.
만년의 모네는 지베르니의 정원에 연못을 판다. 연못에 수련을 심었는데 그 유명한 「수련」 연작이 탄생되는 모태가 된다. 연못을 거대한 거울로 삼기도 하고, 거꾸로 선 영상 등 수면의 평면과는 다른 공간을 동시에 표현하기도 한다. 이 무렵 모네는 파레트의 기본적인 색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화면 위에서 혼합시키는 것은 의도하지 않는다. 이때 힘찬 붓이 먼저 칠한 색을 뒤흔들지만, 거기에 우연히 생겨난 색조와 관련지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수련에 대한 그의 집중력으로 인해 1919년 그의 눈은 백내장으로 발전한다. 이후 그의 그림들은 사물의 형태가 흔들리게 나타나는데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그림이 추상회화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1923년 모네는 두 번에 걸쳐 눈 수술을 받고 노란 안경을 끼고 지내야 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몸은 늙고 눈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노화가는 열정을 멈추지 않고 그림을 그리다가 1926년 12월 5일 지베르니에서 파란만장한 영욕의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근대미술을 개척하고, 1900년대 역사적 아방가르의 중심에 섰던 한 예술가가 영원히 아픈 눈을 감은 것이다.
우리나라 시작품 중에는 회화·무용·조각 등 미술작품 등의 근원적 의미를 언어공간인 시로 옮겨 쓴 경우가 가끔 있다. 1930년대에 모더니스트들이 종종 시도했는데 그 중에서 이상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영화·게임 등의 이미지와 의미가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과 만나 새로운 의미로 형상화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아르장퇴유의 다리(1872년)
특히 회화작품을 시언어로 이동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빚어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서양의 뭉크, 달리, 샤갈, 피카소, 고흐, 모딜리아니, 고갱 등의 작품은 매우 개성이 강하고 이미지가 강해 시로 변용되는 경우가 많다. 모네의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인데 채호기·김정란·조연호·정시마 등 여러 시인들이 모네의 「정원」 「수련」 등의 오브제에서 얻은 강렬한 이미지에서 착상하여 자신만의 언어로 상상력을 펼쳤다. 이들의 작품은 주로 ‘빛’ ‘색채’ 등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모네가 빛과 색채를 탐구한 인상주의 작가였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김정란의 「모네씨의 수련」과 조연호의 「모네의 저녁 산책」도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빛’과 ‘색채’ 이미지들이 시의 배면에 놓여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물가에 있다
영혼은 親水性이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우선 가늘게 눈을 뜨는 것부터
최초의 순수한 시선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
그 다음엔
투명한 베일처럼 펼쳐지는 신비와
영혼이라고 불리는 감미로운 안개
모든 연금술사들의 애무하는
탐미적인 쾌락의 붓같은 시선을
사물에 단 한번 멋지게 도달하기 위해
존재의 모든 골목길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그들의 사팔뜨기 영혼을 부를 것
그리하여 이윽고
청명한 대낮을 향해 일어서는
물의 無限으로 다가갈 것
모든 것이기도 하고 전혀 부재이기도 한 물
수련은
오랜 시선의 애무를 받은 물 속에서
어느 새벽 홀로 활짝 피어난다
난 수련이 벽이기라도 한 듯
기대고 싶어 그 작은 꽃의 고적함과
미세함에 그 위태한 연약함에 기대고 싶어
언제든 이윽고 물밑으로
가라앉고 싶어
깜깜한, 아주 보드라운
회귀의 물 밑으로
-김정란, 「모네 씨의 수련」 전문
모네는 가난하게 살다가 장만한 집에 연못을 파고 수련을 심었다. 또한 연못 위로 둥근 다리를 놓고 연못 주위에는 온갖 화초와 등나무를 심었다. 그 연못을 모네는 ‘물 위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이 연못은 모네의 일본미술에 대한 관심의 반영으로 둥근 다리도 일본풍의 다리였다.
처음에는 연못 주변 풍경에 관심이 많았지만 1914년 이후 연못 주위 풍경이 줄어들고 그의 화면엔 물 위에 뜬 수련과 물 위에 반영된 식물의 그림자, 그리고 둥근 다리를 그렸는데 물과 공기 사이를 잇는, 본질과 현상사이를 잇는, 그것들의 정체를,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는 존재를 탐색했다.
김정란의 「모네 씨의 수련」 역시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물의 정체를 빛의 움직임에 따라 찾아가듯이 모네풍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제목이 암시하듯 모네의 ‘수련’을 찬찬히, 그리고 내밀하게 바라보며 모네라는 인물의 내면을 투과하고 있다. 이러한 김정란의 이 작품은 그야말로 다의적(多義的)으로 읽힌다. 가령 “나는 언제나 물가에 있다/영혼은 親水性이지” 같은 경우 ‘수련’이 “언제나 물가에 있다”라고도 읽히지만 모네가 만년에 그의 연못 정원에서 그림을 그렸던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화자인 “나”를 모네 자신으로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랬을 경우 이 작품이 보다 통일되고 원활하게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화자를 모네라고 설정하고 들여다보면, 물의 정원인 연못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수련을 그리는 모네는 수련이 된 물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손에는 붓이 쥐어져 있고 수련을 그리는, 즉 수련이라는 존재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면/우선 가늘게 눈을 뜨는 것부터/최초의 순수한 시선을 확보하는 것부터/시작”해야 할 것이다. 화가들이 데생을 하거나 사생을 할 때 눈을 가늘게 뜨고 사물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데생을 할 때 지긋이 눈을 감고 석고상을 바라보는데 이는 석고상의 가장 빛나는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연은 모네가 물 위의 수련을 바라보는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가늘게 눈을 뜨는 것”은 사물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순수한 시선을 확보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순수한 시선”이란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정체, 혹은 사물의 진실을 보다 내밀하고 섬세하게 포착하려는 모네의 예술적 가치를 말하는데, 예술을 대하는 화자의 진지한 태도를 내포한다.
일본식 다리(1899년)
화자는 “그 다음엔/투명한 베일처럼 펼쳐지는 신비와/영혼이라고 불리는 감미로운 안개”를 읽어낸다. 이 모든 것이 “순수한 시선을 확보”했을 때 가능하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지만, 그 중에서 더욱 관심있게 풍경을 바라보았을 때 사물의 내밀한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풍경을 보았지만 건성으로 보았다면 보았으되 아무것도 보지 않음과 같은 것이 되고 만다. 화자는 물 위의 수련을 깊은 사색의 시선으로 수련이라는 존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지고 마침내 수련의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연금술사처럼 화자는 수련을 새롭고 진실되게 읽어내기 위해 베일에 가린 구석구석을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물에 단 한번 멋지게 도달하기 위해” ‘수련’이라는 “존재의 모든 골목길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야만 ‘수련’의 영혼을 만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섯 째 연에서는 “청명한 대낮을 향해 일어서는/물”은 수련이 꽃을 피워내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물”은 ‘수련’, 혹은 ‘연꽃’의 은유이다. 즉 물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수련은 물을 주요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식물이므로 물과 수련은 한 몸인 셈이다. 수련이나 연꽃이 되는 물의 본질은 형상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원소일 뿐이다. 그러니까 화자는 수련이나 연꽃을 바라보면서 물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수련을 바라보며 “모든 것이기도 하고 전혀 부재이기도 한 물”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마침내 “수련은” 수련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며 수련의 영혼이 깃든 ‘연꽃’ “어느 새벽 홀로 활짝 피어”나게 되는데, “물”로 부터 “오랜 시선의 애무를” 받은 수련이 새로운 영혼의 신생아인 ‘연꽃’을 피운다.
다른 시선으로 7연을 이해하게 되면 또다른 의미로 읽혀진다. 즉 화자이기도 한 화가의 “시선의 애무를 받은” “수련은” “어느 새벽” 화자의 사랑을 통해 새로운 생명인 ‘연꽃’을 “활짝 피어”낸다고 볼 수 있다.
화자는 활짝 꽃을 피워낸 수련에게서 “벽이기라도 한 듯/기대고 싶어” 한다. 꽃은 작고 고적하지만 “미세함에 그 위태한 연약함” 때문에 기대고 싶어하는 것이다. 수련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에 화자와 수련이 하나가 되고 싶어지는 것인데,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을 뛰어넘어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오히려 수련이 되고 싶어한다. 즉 “언제든 이윽고 물밑으로/가라앉고 싶어/깜깜한, 아주 보드라운/회귀의 물 밑으로” 가라앉아 수련으로 태어나고 싶어한다.
앞에서 살펴보아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란의 「모네 씨의 수련」은 화자가 수련의 참모습을 알아내기 위해 수련의 진면목을 내밀하게 살펴보는 태도를 형상화하고 있다. 베일처럼 드러나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진실한 만남으로 인해 결국 존재의 참된 영혼을 바라보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물 속에서 진실된 모습으로 꽃을 피워 올리는 존재와의 동일성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 작가인 모네의 삶을 그림으로 그려내듯이 시각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보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내고 있다고 하겠다.
김정란의 「모네 씨의 수련」은 모네의 ‘수련’ 관련 작품과 그것을 그리는 모네의 모습을 시의 언어로 형상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조연호의 「모네의 저녁 산책」은 구체적인 모네의 삶이나 작품을 바라보며 쓴 것이 아니다. 모네는 단지 지베르니에 정착하기 전까지 그림의 소재를 찾기 위해 여행했던 것 밖에 없다. 또한 모네의 그림 속에 나타난 하늘과 물의 질감, 그리고 그것들의 이미지가 조연호의 작품에 연상될 뿐이다. 아마 시인이 모네의 초창기 작품 속에 나타나는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는 정원과 만년의 수련이 있는 연못 정원의 이미지가 어떤 연상작용을 일으켜 시의 배경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모네의 저녁 산책」에서의 모네는 실제의 모네가 아닌, 시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어떤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산책이 시작되는 길 위에서 모든 아침은 세상 밖의 것이 된다.
응달 위에 내린 눈이 따뜻하게 익어갈 때 바람은 魂이 모인 쪽으로 날아가곤 했다.
나는 산기슭에 앉아 날이 저물도록 어둠의 입문서를 읽었다.
모든 산길의 나무는 浮力을 가진다.
나는 빨리 잊고 싶은 기억을 불러 여러 번 캐물었다.
아직도 불지 않겠는가, 배후는 누구냐.
날개 없는 나무가 새의 날개 속으로 날아간다.
집으로 가서 빨래들과 함께 잠들고 싶었다.
이방인들이 편히 쉬는 7일째의 날에
나는 옥수수알처럼 노릇노릇 굳어가는 저녁길을 걸었다.
낡은 책 속에서 읽은 밤의 이목구비가 내 앞에서 뚜렷이 깎이고
쉰소리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공중으로 떠오른 흙과 돌이 나무의 부레 속에서 함께 맴돌았다.
간선도로 끝에서 세상의 본을 뜨는 무딘 쇠망치질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결심이 수난史를 쓰고 낙엽이 땅보다 더 밑으로 걸어갔다.
오후는 공원과 도살장으로 가는 두 개의 길을 만들고, 밤은 그 위에 목탄가루를 뿌렸다.
나는 모래흙 위에 하늘과, 땅과, 집과, 집과 집이 모여 만드는
天地宇宙에 관한 쉬운 이국어의 뜻문자를 썼다. 모든 명료함은 아팠다.
나는 아프게 말했고 누구의 말도 읽지 못했다.
붉은, 푸른, 흰 바람이 먼저 순례하고 간 저녁 산책길은 아이들만 남아서
딱지와 고무줄을 흥정하는 흐린 풍경의 것이었다.
-조연호, 「모네의 저녁 산책」 전문
이 작품 속의 세상으로부터, 또는 누군가에게 잊고 싶은 상처를 입은 자이다. 화자는 “산책이 시작되는 길 위에서 모든 아침은 세상 밖의 것이 된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화자는 아침보다도 저녁무렵에 산책을 하는 자이다. 일반적으로 ‘아침’과 ‘저녁’은 상반된 의미를 띤다. ‘아침’은 활력이 넘치는 시간이며, 생명이 깨어나는 시간인데 반해 ‘저녁’은 소멸과 죽음, 또는 모두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거처로 회귀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화자는 겨울 저녁에 “산기슭에 앉아 날이 저물도록 어둠의 입문서를 읽는다.” 즉, 사물이 잘 분간되지 않은 시간에 어둠이 어떻게 오는지, 사물이 어떻게 어둠 속에 잠기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어둠의 입문서”가 말해주듯 “어둠”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어둠 속 “산길의 나무”가 “浮力을 가진” 것을 보게 되는데, 어둠 속에서 키가 훤칠한 나무가 마치 둥둥 뜨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때 화자는 가슴 속의 상처를 떠올린다. 그 상처는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그러나 자꾸만 도져온다. 구체적으로 화자의 상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 속에서는 자꾸만 “아직도 불지 않겠는가, 배후는 누구냐”고 상처의 의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아파한다. 이때 새가 나무에 앉는데, 화자도 새처럼 집으로 가서 “잠들고 싶”어 한다. 이는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것으로 새가 저녁에 나뭇가지에 앉아 휴식을 취하듯 화자도 쉬고 싶은 것이다.
야외인물습작(왼쪽에서, 1886년)
화자가 저녁에 산책하는 날은 “7일째의 날”로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저녁 산책을 하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다. 여기에서 “이방인”은 화자가 아닌 모든 사람들로 보아 무방할 것 같다. 그것은 화자가 타자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상태임을 유추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지만 홀로 “저녁길을” 걷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아마 저녁 산책을 자주 가는가 싶다. “낡은 책 속에서 읽은 밤”이 그것을 말해준다. “낡은 책 속에서 읽은 밤”은 자주 하는 저녁 산책이 이미 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녁 산책 길에 “쉰소리로 누군가 나를” 부르는데 그것은 화자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로 짐작된다. 그 목소리가 자주 나를 부르곤 했기 때문에 쉬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저녁 산책하는 시간 “간선도로 끝에서 세상의 본을 뜨는 무딘 쇠망치질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도로를 내는 망치질 소리인데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들로 그렇기 때문에 “수난史”를 쓰기도 하는 것이다. 그들은 “공원과 도살장으로 가는 두 개의 길을 만”드는데 화자의 상처와 관련된 듯하다. “공원과 도살장”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자들과 화자는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어디쯤에서 화자가 상처를 입었는가 싶다. 화자는 그들과 소통을 시도하지만 화자가 “누구의 말도 읽지 못했다”는 진술에서 짐작이 가듯 “이방인”들과 쉽게 소통이 되지 않는다.
조연호의 「모네의 저녁 산책」은 ‘모네’라는 상처 입은 존재가 “산책”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해보지만 “모든 아침은 세상밖의 것이 된다”는 말이 상징하듯이 소통을 암시하는 “아침”이 존재하지 못하는 “세상 밖의 것이” 되고 만다. 모네와 “이방인”과의 사이에는 “도살장”이라는 은유가 말해주듯 불통과 상처의 공간이 가로놓여 있어 모네의 산책은 행복하지가 않다.
카미유의 임종(18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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