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기록하고 후에 <변명Apology>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어느 날 내친구(개페폰)가 델피에 가서 예언자에게 신착을 청했다. 그는 나(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폴론의 예언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
예언자의 대답을 전해 들었을 때 나의 반응은 어러했다. "도대체 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 말의 숨겨진 의미가 뭘까? 나는 크건 작건 간에 내게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는 내가 그렇듯 지혜롭다고 말하니, 그의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래서 그는 예언자의 예언이 그릇되었음을 증명하기 결심하고 자신보다 현명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 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었다.
먼저 소크라테스의 예언자의 본거지와 영화 속의 예언자의 거주지는 다르다.
소크라테스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탁소는 아폴론의 신전이며,그 곳은 피나수스 산기슭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도시인 델피에 위치해 있다.
모피어스가 네오를 데려간 곳은 도시 빈민가의 아파트다.
델피의 아폴론 신탁소를 찾는 방문객은 적절한 산 제물과 금액을 지불한 후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묻곤 했다. 질문을 전해 들은 예언자는 삼각대 위에 앉아 아폴론의 호흡, 즉 지구의 갈라진 틈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을 들이마셨다.
영화속의 오라클은 삼각의자에 앉아 오븐에서 나오는 과자 굽는 연기를 행복하게 호흡하고 자신이 피우는 담배 연기를 들어마시면서 얘기한다.
그녀의 부엌 문 위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적혀져 있고. 델피의 아폴론 신탁소에도 같은 문구가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다.
왜 하필 소크라테스인가..
영화초반 트리니티는 네오에게 속삭인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 의문들이야"."It's the question that drives us".
플라톤의 대화편<유티프로 Euthyphro>에 기술된 대화들을 살펴보면, 소크라테스는 그의 친구 유티프로에게 묻는다. "신성하다는게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들의 행동을 신성하게 만드는가?" 유티프로는 이렇게 답변한다. "신성함은 모든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의 반대는 모든 신들이 증오하는 것, 즉 부정함이네" 나름대로 괜찮은 답변이다. 소크라테스가 더욱 어려운 다음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는
"신성한 것은 신들이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신성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신성하기 때문에 신들이 좋아하는 것인가?"이쯤되면 짜증스러워진다.
상대방이 스스로 모순된 말을 하거나 실수를 저지를 때까지 질문을 하는 이런 방식은 오늘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플라톤의 <국가Republic>에 보면 동굴의 알레고리로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보면 태어나자마자 동굴에 쇠사슬에 묶여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죄수를 지키는 사람이 만든 가짜 동물모습을 불빛에 비추어주는 그림자만을 보고 살다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풀려났다고 하자. 그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누군가로부터 "이전에 네가 보았던 것은 의미없는 환영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너는 실재에 접근하고 실물을 향하고 있으므로 사물에 대한 더욱 참된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의 알레고리에서 누가 그 수인을 풀어 주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해방시키는 인물은 모피어스다. 모피어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잠의 신으로 꿈을 통해 형태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번 네오와 소크라테스의 유사성에서 소크라테스란 인간에 대해서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이 알았고, 진실을 향한 탐구가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한다..
2.매트릭스는 데카르트를 반복한다.
데카르트의 회의론은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각,청각,후가,미각을 통해 수집한 정보도 자신을 속일수 있다고 말한다.
회의론에 관한 최근의 논쟁에서 사악한 과학자에의해 우리 모두가 속고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신경 전문가인 그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전자 충격을 산출한 다음 그것을 우리의 중앙 신경 체계의 적당한 곳들에 부착한 각 전극으로 전송하면 그 충격이 뇌를 자극하여 사실 세상엔 그런 것이 없는데도 의자와 책이 있다고 믿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나무를 보는 것은 빛이 태양으로부터 내려와 빛의 파장 일부는 나무에 의해 흡수되고 일부는 반사된다. 반사된 빛 일부가 눈에 들어오면 그 빛 속의 에너지가 눈의 망막에 있는 세포들을 자극한다.그 에너지는 계속 길(시신경)을 따라가서 뇌의 시각 중심에 도착한다. 그러면 몇 개의 신경세포가 특정한 양식으로 발화하고, 나무를 보게 된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사실 나무를 보는 것은 그저 일정한 자극이 야기되는 뇌의 상태라는 것이고 위와 같은 자극을 만들면 우리는 없는 나무도 느낄 것이다.
3.쾌락주의
매트릭스에서 사이퍼는 스미스요원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다.
"난 말이지. 이 스테이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내가 이걸 입 속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뇌에 이렇게 말하는 거지. 아주 부드럽고 맛있다고 말야. 9년동안 살면서 내가 깨달은 게 뭔지 알아? 모르는게 행복이라는 거야."
4.사회과학
사회과학의 목표는 인간의 욕망과 선택을 수학적인 법칙으로 정리하여 삶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행복과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누군지 모름)의 <악령Demons>에 등장하는 이론가 시갈료프가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간명하게 진술하고 있다. "나는 내가 수집한 자료에 휘쓸리고 말았어.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나의 의도와는 모순되지. 의도는 무제한의 자유였는데, 결론은 무제한의 독재 권력이 되어 말았거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자유를 제거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는 초창기 '사회 과학의 방법론'에 있다. 이것은 수학적이고 기계적이며 자연과학의 표준에 따라 실증할 수 있는 것만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한다. 또 다른 원천은 이론이 실천으로 쉽게 번역될 수 있다고 여기는 '계몽의 순진성'이다. 이 이론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을 수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쯤 되면 계몽 이론의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본질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5.운명론
모피어스가 평생을 다 바쳐 찾았던 '그'가 네오라는 사실을 언급할 때마다, 이 영화는 '운명은 일종의 섭리'라는 암시에 빠져든다.
네오는 "나는 내가 내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운명론에 대한 자신의 염오와 불신을 일찍이 밝혔다.
6.고통
스미스요원이 후반부에 "모든 것을 망각한 채 그저 살아가고 있는 수십 억의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스미스요원이 고통없는 인간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시도한 첫 번째 매트릭스를 인류가 거부했다는 사실을 공개할 때, 그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다. 스미스요원은 "인간이 고통을 통해서 현실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스미스요원과 그의 일당은 자연스런 인간의 삶을 고민거리. 심지어 병으로 보는 유토피아 이론가들의 관점을 공유한다. "인간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우리가 그 치료제다"
7.인간성
매트릭스의 인간들은 무개성적이고 일률적이며 서로 교환가능하다. (요원들을 보면 어느 누구라도 짜짠 하면서 변신한다. ㅡ.ㅡ;) 하지만, 네오,트리니티,모피어스의 성격이 각기 복잡하고 다르며 서로를 보완한다.
8.숟가락은 없다
붓다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사슬' 혹은 '장애'를 의미하는 '라훌라'로 지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불경의 고전인 중부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거울의 심상을 이용하여 자기 아들, 즉 '사슬에 묶인 자'를 가리치는 대목이 나온다.
-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훌라? 거울의 목적은 무엇이냐?
- 그것의 목적은 반영입니다. 세존이시여
- 그렇다 하더라도 라훌라야, 행위는 거듭된 반성후에야 몸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행위는 거듭된 반성 후에말로 행해지는 것이며 마음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붓다가 거울의 반영을 의도적으로 이중 해석하는 것을 주목하라. 우선 거울은 단순히 '반영'한다. 거울은 그 앞에 있는 사물을 명쾌하게 되비춘다. 이것은 거울은 단순히 그 앞에 오는 것을 비추고 차별하지 않으며, 자기의 영상에도 집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거울의 이미지가 가장 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장면은 네오가 빨간 약을 삼키고 난 직후에 등자한다. 흠뻑 젖어 있는 듯한 거울을 바라보던 네오는 그것에 이끌리듯 거울 가까이 손을 가져간다. 그러자 거울은 액체로 변해 그의 팔과 몸을 타고 흘러 올라온다. 네오는 곧 거울로 변하고 다음 순간 "토끼 구멍"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가 진실을 대면한다. 그리고는 알몸의 상태로 환상에서 깨어난다. 진실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lethia'는 '벌거벗은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것은 적나라한 진실의 개념을 암시한다. 그는 거울로 변신함으로써 최초로 진정한 각성을 경험하게 된다.
'거울-반영'의 이미지를 가장 심오하게 사용하고 있는 장면은 예언자 아파트에서, 승복을 입고 결가부좌로 앉아 있던 소년은 염력을 이용해서 숟가락을 구부린다. 그가 네오를 향해 숟가락을 들어보이자 숟가락에는 네오의 영상이 비친다. 이것은 명쾌함과 진실을 대변한다. 그 진실은 소년과 네오가 공유하는 것이며 네오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숟가락은 없다"
널리 알려진 선불교의 우화 가운데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관찰하는 세 승려의 문답이 있다.
먼저 한 승려가 그 깃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야기한다. 다음 승려는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라고 응수한다. 세 번째 승려는 두 사람 모두를 꾸짖는다. 그는 깃발도 바람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움직이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오" 불교적 교훈은 명백하다. 움직이는 것은 숟가락이 아니다. 숟가락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제 붓다가 자기 아들을 가리치는 장면으로 돌아가 그가 거울에 부여한 두 번째 의미를 생각해 보자. 이때 거울은 '반성하고' 검토하고 시사숙고하는 정신적인 활동을 상징한다. 그는 아들 라훌라에게 행동에 앞서 신중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더 나아가 어떤 행동을 하든 자신의 행동이 다른 모든 것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라훌라야, 만약 네가 이렇듯 반성하여 네가 육체를 통해 행하기를 갈망하는 행위가 자신에게 해를 입히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양자 모두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라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 육체의 행위가 미숙하고 그것이 고뇌를 낳고 그것의 결과가 고뇌라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와 같은 육체의행위는 라훌라야, 너에 의해 절대 행해져서는 안 되느니라"
붓다의 이 가르침에는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밑바탕을 이루는 상의상대성 혹은 연기사상이 담겨 있다. 연기사상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모든 사물들 사이에는 자연적인 상호 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9.네오는 예수의 현대적 재현인가
매트릭스가 부활절 주간에 개봉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는 수많은 기독교적 주제들을 담고 있다.
성경에서 예수는 약속된 구세주이며 "앞으로 오실" 그이다. 네오는 '그 The One'이며 예언자가 예언한 메시아적 인물이다. '네오Neo'라는 이름의 철자는 '그One'의 철자를 변형한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어로 'neo'는 '새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이름은 이 영화의 기독교적 성격을 심화한다.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는 소식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제자인 "의심하는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네오 매트릭스의 비실재성, 자기 자신의 능력, 그리고 '그'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들로 괴로워한다. '앤더슨'은 '사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어근 'andr-'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어원적으로 앤더슨은 '사람의 아들'을 의미하는데 예수는 종종 자신을 가리켜 '사람의 아들'이라 칭하곤 했다. 영화 초반부에 네오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로 불려지기도 한다. 네오가 초이에게 불법 소프트웨어를 건네자 그는 "할레루야, 너는 내 구세주야. 나만의 에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매트릭스에서 구출되는 장면에서 네오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산모의 자궁처럼 생긴 통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여기서 그는 탯줄 같은 케이블을 뽑아내고, 나오는데 문자 그대로 '처녀 잉태'이다.
또 예수는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 이와 비슷하게 네오는 모피어스와 네브카드네자르의 대원들에 의해 인간 전지 페기 탱크에서 '세례'를 받는다.
예수가 죽은 뒤 3일만에 부활했듯이 네오가 트리니티의 키스를 받고 회생한는 곳은 어느 호텔의 303호실이다. 네오가 단순히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와의 유사성을 드러낸다.
예수가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승천했던 것"처럼 네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로 날아 오른다.
매트릭스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이름 역시 중요한 기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 육체를 입은 신의 아들인 예수는 아버지인 야훼와 삼위일체에 의해 부활한다. 트리니티(Trinity:삼위일체를 말함)의 사랑에 의해 네오가 소생하는 것과. 시온(Zion)은 최후의 인간의 도시이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다. 구약성서에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시적이고도 종교성이 충만한 이름이다.성서의 다니엘서에 따르면 네브카드네자르(한글 성경에는 느부갓네살)는 "기억할 수 없는 꿈의 해몽을 구하는 바빌로니아의 왕이다.
영화는 해몽을 구하는 바빌로니아의 왕처럼 네오는 매트릭스에 관한 그의 막연한, 그러나 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10.소멸에 대한 두려움
예언자는 네오에게 두명중 한명은 죽게 될것이라고 말하고 네오는 모피어스의 생명을 구하고자 자신을 생명을 잃고 그리고 다음 생애에서 그가 되어 돌아온다.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예언이 성취되었었는가가 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다.
네오가 고의적으로 스미스요원과 대결할 때 이 영화에서는 극적인 전환점이 발생한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한것이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취하고 죽음을 받아 들일 것이다. 네오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에 도달해 이 운명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의 분리되고 취약한 육체로서의 존재를 보존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1.구세주는 초인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슈퍼맨처럼 날아오르지만 그의 마지막 대사는 다르게 들린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그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없는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규칙고 통제가 없는 세계, 경계나 한계가 없는 세계, 어떤것이든 가능한 세계" 예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교사로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들을 저도 할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위대한 일도 할 것이다"
12.주체와 선악판단의 관계
만약 주체가 없다면 매트릭스의 도덕성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한 종의 기계들이 다른 종의 기계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뿐이라면 여기에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만약 두 종 모두 전통적인 의미의 '주체'가 없다면 우리는 과연 매트릭스를 부도덕한 것으로 쉽게 규정할 수 있을까?
13.매트릭스, 마르크스 그리고 건전지의 생애
배달시간과 위치가 표시되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UPS 운자자들에서부터 분 단위로 자판 두드리는 수가 헤아려지는 자료 입력 사원, 그리고 전화를 받을 때마다 통화 태도가 감시되는 고객 서비스담당직원까지, 노동자에 대한 감시풍조가 갈수록 발전한다.
매트릭스에 관한 모피어스는 이렇게 얘기한다. "매트릭스가 뭐냐고? 통제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들어 낸 꿈의 세계지. 그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통제하기 위해서 건설된 거야. 인간을 바로 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면서 '듀라셀'건전지를 들어 보인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체제 하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과 그들이 생산하는 자본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노동의 현실들로부터 '소외되어 있기'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강제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노동을 자발적으로 파는 '자유'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그들이 사실은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작업 시간과 작업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고용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조건을 규정하는 것은 자본의 소유주들이다.
매트릭스는 기억에 남을 영화다. 그러나 그것은 관객들에게 "깨어 일어나"실재 세계에서 우리 대다수를 건전지로 만드는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라고 설득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는 그러한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인류가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동안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사실 두 종, 즉 인간과 기계가 공생적인 관계로 살고 있으며, 사이퍼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꿈의 세계도그다지 나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매트릭스안에서 인류는 기계들을 위한 에너지를를 생산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매트릭스에는 무제한의 대역폭이 있고 화려한 색깔들로 충만하다. 다시 말해. 매트릭스의 인류는 정확히 그들이 노동한 만큼 보상받는다.
14.매트릭스 현실과 시뮬레이션의 사라지는 경계
텔레비젼이라는 식단으로 꾸준하게 양육된 최초의 어린이 세대가 이 시기에 이르러 성년이 되었다.
디지털 정보를 필요로 하는 해커들이 네오의 아파트에 바운했을 때 네오는 책가운데를 파내어 감춰 두었던 디스크를 꺼낸다. 카메라에 잡힌 이 책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레이션과 시뮬라크라>이다. 이것은 위조된 이미지를 실재를 잠식하여 그것을 대체하는 상황을 다루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저작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그랜드캐니어를 보는 것보다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관람할 때, 실제같다고 느낄 것이다.
기계들은 이용 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증가시키기 위해 인간이 고통, 사고, 병, 전쟁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세계를 창조하고 보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15.이 영화는 닫힘 버튼?
우리는 누구나 승강기에 흔히 있는 '닫힘'단추가 실제로는 업어도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추는 그저 사람들에게 자기가 승강기 여행의 속도를 높이는데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고 기여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그곳에 있다. 우리가 이 단추를 누르면 문은 닫힌다. 그러나 그 때 문이 닫히는 속도는 우리가 굳이 '닫힘' 단추를 눌러 '속도를 높이는' 일 없이 그저 가고자 하는 층의 단추를 누르기만 했을 때와 똑같다. 이러한 거짓 참여는 개인들이 '포스트모던'적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은유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