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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K&i=295596&v=43
진천군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한 군. 동쪽은 괴산군, 서쪽은 충청남도 천안시, 남쪽은 청원군, 북서쪽은 경기도 안성시, 북동쪽은 음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17′∼127°36′, 북위 36°46′∼37°03′에 위치하며, 면적 406.14㎢, 인구 5만8979명(1999년 현재)이다. 1개 읍 6개 면 83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진천읍 읍내리이다.
자연환경남쪽은 태령산(胎靈山, 421m)ㆍ문안산(文安山, 415m)ㆍ봉화산(烽火山, 415m)ㆍ환희산(歡喜山, 402m)ㆍ덕유산(德裕山)ㆍ국사봉(國師峰, 360m)ㆍ양천산(凉泉山, 350m)ㆍ불당산(佛堂山, 246m) 등이 있다. 동쪽의 군계에는 두타산(頭陀山, 598m)ㆍ알봉 등이 있다.
미호천은 음성군 삼성면 마이산(馬耳山)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이월면에 이르러 칠장천(七長川)ㆍ회죽천(會竹川)과 합류한다. 덕산면에 이르러 한천천(閑川川)ㆍ백곡천(百谷川)과 합류하여 초평면과 문맥면의 경계를 이루고 남동류하여 초평면 남단에서 서남류하는 보강천(寶岡川)과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백곡천은 양백리 서쪽 서운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용덕리를 지나 석현리의 엽둔재에서 오는 물과 합류하여 진천읍 건송리에 이르러 백곡저수지(일명 진천저수지)를 이룬다. 초평면 경계 부근에서 미호천과 합류한다.
초평천(草坪川)은 음성군 음성읍에서 발원하여 초평면에 이르러 군자천(君子川)과 합류하여 초평면 중앙부를 남류한다. 연평균기온 11.2°C, 1월 평균기온 -4.1°C, 7월 평균기온 21.3°C이며, 연강수량은 1239.3㎜이다.
역사이 곳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진천읍 성석리의 고인돌 등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는 이미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믿어진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한 나라가 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삼국시대에는 먼저 백제의 땅이 되었으나,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진천은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이 되었다. 484년(소지왕 6) 모산성(母山城) 부근에서 신라가 고구려를 물리쳐 진천은 신라의 만노군(萬弩郡)이 되었다.
이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산성터가 군내 곳곳에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는 금현성(錦峴城)ㆍ원산향(圓山鄕)을 둘러싸고 삼국이 각축했음을 보여주는 기사가 많이 전하고 있다.
삼국통일에 큰공을 세운 김유신이 진천읍 상계리마을(일명 지랭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태를 뒷산에 묻었다고 하여 산 이름이 태령산(길상산)이라 불린다. 그 밖에 그가 몸과 마음을 닦았다는 이월면 사곡리의 장수굴, 그의 덕을 기려 세웠다는 진천읍의 송덕불상과 길상사, 그의 아버지 서현이 고구려부터 낭비성을 되찾았을 때 놓았다는 문백면 구곡리의 농다리〔籠橋〕 등이 그와 얽혀 전해 내려온다.
685년(신문왕 5) 전국이 9주로 나뉘었을 때, 진천은 흑양군(黑壤郡, 黃壤郡)으로 한산주에 속하였다. 흑양군에는 그 속현으로 도서현(都西縣 : 지금의 淸安)과 음성현이 있었다.
〔고 려〕고려 초에는 강주(降州)로 불리다가 뒤에 진주(鎭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 전국이 10도 12목으로 개편될 때 중원도에 속했고, 군사적 요충지로 자사(刺史)가 두어졌다가, 1005년(목종 8) 폐지되었다. 1018년(현종 9) 전국이 5도 양계로 개편되었을 때, 양광도 청주목의 속현이 되었고 감무가 설치되었다.
1259년(고종 46) 몽고의 침략 때 사력을 다하여 저항한 무인 임연(林衍)이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되었다. 1269년(원종 10) 다시 임연의 공으로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되어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었으나, 임연이 죽은 뒤에 진주현으로 강등되었다.
〔조 선〕조선 초 상산(常山)으로 불리다가 1413년(태종 13) 진천으로 개칭되면서 현감이 두어졌다. 1444년(세종 26) 왕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椒井)약수터까지 가던 도중 이 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하여 이 곳 지명이 성평(聖平)이라 불렸다고 한다.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중종초에 다시 충청도로 복원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 곳 사람 이영남(李英男)이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근 대〕1895년 진천군이라 불렸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죽산군 남면의 가척리(加尺里)와 동주리(東注里)가 만승면 광혜원리에 편입되었다. 1919년 4월 2일 이상직(李相稷)의 주도하에 수천 명이 읍내에서 만세운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군내 곳곳에서 3ㆍ1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만주 땅에서 일생을 조국 광복을 위하여 힘쓰고 독립군을 양성한 신팔균(申八均),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되었던 이상설(李相卨), 이 지역의 3ㆍ1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한 윤병한(尹炳漢) 등이 있다.
〔현 대〕1945년 청원군 북이면의 용기리ㆍ용산리ㆍ진암리ㆍ은암리가 초평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진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는 덕산면 중석리가 초평면에, 상신리ㆍ산척리와 이월면 송두리ㆍ가산리가 진천읍에, 만승면 내촌리ㆍ사당리가 이월면에 각각 편입되는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다. 2000년 1월 1일에는 만승면이 광혜원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유물ㆍ유적불교문화재로는 진천읍 연곡리 절터의 진천연곡리석비(보물 제404호)ㆍ삼층석탑ㆍ비로자나불상, 신정리의 진천용화사석불입상(鎭川龍華寺石佛立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과 석탑 부재(部材), 교성리의 금동미륵입상ㆍ연화대좌, 상계리의 백련암(白蓮庵)지와 천불전지(千佛殿址) 출토 불상이 있다.
문백면 옥성리에는 고려시대의 마애약사여래좌상과 삼층석탑, 이월면에는 진천사곡리마애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초평면 용정리에는 태화4년명마애불입상(太和四年銘磨崖佛立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1호)과 석조여래좌상, 영구리에는 진천영수암괘불(鎭川靈水庵掛佛,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과 관음전목조관음보살상이 있다.
진천읍 벽암리 도당산성 안에는 길상사(吉祥祠, 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 교성리에는 숭렬사(崇烈祠)가 있다. 숭렬사는 헤이그(Hague) 특사 이상설(李相卨)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1972년 건립되어 1979년에 중수되었다.
또한 이월면 노원리의 진천신헌고택(鎭川申櫶古宅,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호), 진천읍 산척리의 이상설생가(李相卨生家,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 문백면 구곡리의 진천농교(鎭川籠橋, 일명 농다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등이 보존되고 있다.
한편, 진천읍 상계리에는 김유신장군유허지(金庾信將軍遺墟址, 충청북도 기념물 제79호), 문백면 구곡리에는 세조가 지방 순행 때 물을 마셨다는 어수정(御水井), 이월면 노원리와 광혜원면 광혜원리에는 궁전터가 있다.
이 밖에도 유명인의 묘소와 비석이 많이 있다. 광혜원면 실원리의 홍우경ㆍ정인옹주묘소(洪友敬貞仁翁主墓所, 충청북도 기념물 제78호), 문백면 사양리의 이정부부묘와 묘표석(李挺夫婦墓―墓表石, 충청북도 기념물 제94호), 평산리의 충간공남지 묘소 및 신도비(忠簡公南智墓所―神道碑, 충청북도 기념물 제80호)가 있다.
또한 이월면 사곡리의 이즙묘소(李楫墓所, 충청북도 기념물 제104호), 노원리의 신화국묘지(申華國墓誌,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7호), 덕산면 두촌리의 송인묘소(宋仁墓所, 충청북도 기념물 제91호), 기전리의 이영남묘소(李英男墓所), 진천읍 상계리의 이거이묘소(李居易墓所, 충청북도 기념물 제95호)가 있다.
그 밖에 문백면 봉죽리에 송강정철신도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7호)ㆍ송강정철묘소(충청남도 기념물 제106호), 초평면 용정리의 이시발신도비(李時發神道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와 이대건(李大建)신도비, 백곡면 명암리의 남연년(南延年) 신도비 등이 있다.
또 이월면 노원리에 진천왜가리도래지(천연기념물 제13호), 삼룡리백제토기요지(三龍里百濟土器窯址, 사적 제344호)가 있고, 덕산면에는 진천산수리요지(사적 제325호)가 있다.
교육ㆍ문화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진천읍 교성리의 진천향교는 조선 태종 당시 전국에 향교를 설치하라는 전교가 있을 때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백원서원(百源書院)은 1597년(선조 30) 신잡이 설립했는데 1669년(현종 10) 사액되었으나 1871년에 철폐되었다.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지산서원(芝山書院)은 1722년(경종 2) 설립되어 그 이듬해에 사액되었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 이밖에 초평면 용기리 수의동에 수의동서원(守義洞書院)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5년 사립 문명학교(文明學校)가 지방유지인 이상직(李相稷)에 의해 진천읍내에 설립되었다. 1911년 진천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으며 현재의 상산초등학교의 전신이다.
또한, 1920년 장양공립학교(長陽公立學校)가 현재의 이월초등학교 자리에서 개교하였다. 1944년 수업연한 3년의 진천농업전수학교가 설립되었다가 1945년 4년제의 진천공립농업학교를 거쳐 오늘날의 진천농업고등학교가 되었다.
1997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6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1956년 개원한 진천문화원은 상산축전을 비롯한 각종 향토문화ㆍ예술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사찰 36개, 천주교교당 9개, 개신교교회 70개, 유교교당 1개, 기타 1개가 있다.
민속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1950년경까지 행해지던 소놀이를 들 수 있지만, 현재는 전승되지 않고 있다. 이 놀이는 추석날 밤에 일년 농사를 감사하는 추보제(秋報祭)의 일종으로 행하던 집단놀이인데 대체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추석날 밤이 되면 두 사람이 둥근 맷방석을 뒤집어쓴 채, 앞사람은 작대기에 둥구미를 씌워 만든 쇠머리를 들고 뒷사람은 허리춤에 새끼줄을 매어 쇠꼬리를 만들어 암소로 가장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 하나가 소쿠리를 뒤집어쓰고 작대기와 삼태기로 쇠머리를 삼고 새끼줄로 꼬리를 만들어 송아지로 꾸민다.
가장이 끝나면 질라애비(길라잡이)가 고삐를 쥐고 암소를 끌면 송아지는 그 옆을 따라다니는데 이 때 마을 농악대가 농기를 흔들고 풍장을 치면서 뒤를 따른다. 놀이패는 먼저 동네우물에 가서 샘굿을 한 뒤 질라애비가 이끄는 대로 집집마다 들러 덕담을 하고 그 집 마당에서 한판 놀며 떡과 술을 얻어먹는다. 진천의 소놀이는 경기도 양주의 소놀이와 비슷하지만 소를 농구로 꾸며 소박한 면을 보여주는 점에 특징이 있다.
〔동 제〕이 고장의 동제에는 산신제와 정주제(井主祭)가 있다. 백곡면 성대리의 산신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밤 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이 제주가 되어 돼지머리ㆍ술ㆍ메ㆍ3색과일 등을 차려놓고 마을의 진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유교식으로 제를 지낸다.
제 지내기 3일 전부터 마을 입구에 금줄을 치고 마을사람들 모두가 근신하며, 특히 제주는 매일 목욕을 하고 금주ㆍ금연ㆍ금색을 하는데 한 번 제주가 되면 운수가 대통한다고 한다. 만약 제기 동안 마을에 출산이나 사망 등 부정한 일이 생기면 제를 연기해야 하고, 모든 제비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부담한다.
초평면 용정리에서는 매년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마을 우물가에서 정주제를 지낸다. 생기복덕에 맞게 선정된 제주가 우물가에 촛불을 켜고 돼지머리ㆍ술ㆍ과일 등을 진설하고 절을 네 번 올리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한다. 제를 지내는 날은 우물가에 금줄을 쳐 우물물을 먹지 못하게 하고 제주는 하루 동안 엄격하게 금기를 지킨다.
설화ㆍ민요진천은 김유신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그에 얽힌 인물전설과 지명전설이 다수 전해오고 있다. 김서현이 만노군(萬弩郡 : 신라시대 진천의 지명) 태수로 있을 때 아내 만명부인(萬明夫人)이 김유신을 낳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잉태한 지 20개 월 만이라고 하고 그 태를 도서성(道西城)에 묻어 그 곳의 산 이름을 태령산 또는 장태산(藏胎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고려사≫에는 김유신의 태가 신이 되어 신라 때부터 사당을 세워 춘추로 제사하였고 고려 때에도 이를 지켰다고 전한다. 이 사당에는 김유신부부와 아들 원술(元述)부부의 목상(木像)이 모셔져 있어 누구나 이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 어느 충청감사가 말을 탄 채 사당 앞을 지나려 하자 말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에 노한 감사가 죄 없는 말을 죽여 목상에 그 피를 칠하였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급살을 당하였다 한다.
이 부근에는 김유신이 살았다는 장수터, 말 달리기를 익혔다는 질마재, 그의 송덕을 기려 세웠다는 석불(石佛)이 있는데, 이 석불이 임진왜란 때 장군으로 현신하여 왜병을 막았다고 한다.
또한, 광혜원면에는 군사를 훈련시켰다는 화랑벌이 있고, 이월면에는 수도하였다는 장수굴이 있다. 이 굴은 나라에 난리가 있을 때면 울음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거북머리가 북쪽을 향해 중국을 보고 있어 명나라에 병란이 많다고 하여 이여송(李如松)이 그 머리를 남쪽으로 돌렸다는 〈거북바위전설〉이 있다. 그 밖에 고려의 임연이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았다는 〈농다리전설 籠橋傳說〉, 동냥온 중을 괄시했다가 망했다는 〈궁골전설〉, 큰 살구나무의 꽃잎이 술로 익어 아기가 없는 부인네가 마시면 아들을 낳고 과거보러 가는 선비가 마시면 급제하였다는 〈살구우물전설〉 등이 전해온다.
〔민 요〕이 고장은 평야지대로 논농사가 주업을 이룬다. 그런 까닭에 농업노동요가 전승되는데 〈모찌는 노래〉ㆍ〈모심기노래〉ㆍ〈논매는 노래〉가 있다. 이들의 가사와 가락은 경기도의 것과 비슷하다. 이는 진천군이 경기도와 인접해 있다는 지역적 특징의 반영인 것이다.
〈모찌는 노래〉는 느린 중중모리장단인 두 장단으로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쪘네 쪘네/나도 쪘네”라는 두 장단 뒷소리를 여럿이 받는다. “신농씨가 뿌린씨를/일추월장 자리날세/쪘네 쪘네/나도 쪘네//밤이 되며는 이슬을 맞고/낮이 되면 양기를 받어/쪘네 쪘네/나도 쪘네//속잎나고 겉잎자라/일추월장 자랐으니/쪘네 쪘네 나도 쪘네//……이 모자리를 얼른 쪄서/저논배미에 옮겨심어/쪘네 쪘네/나도 쪘네//김도매고 공들여서/일년영화를 다시 보세/쪘네 쪘네/나도 쪘네……”처럼 부른다.
〈모심기노래〉는 주로 〈아리랑〉을 부르는데 세 마치의 8장단으로 선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얼시구 아라리가 났네”라는 뒷소리를 받는다. 들어보면 “……일녘서산에 해떨어지면/월축은동녘 달솟아온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얼시구 아라리가 났네//이농사를 지어내서/호국충성 다한후에/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얼시구 아라리가 났네……”와 같다.
〈논매기노래〉는 〈방개소리〉를 부르는데 대개 중중모리장단인 두 장단으로 선소리를 메기면 “어기야 에헤야 방개가 논다”라고 뒷소리를 받는데 모두 메나리목으로 부른다.
이 밖에 〈팔자요〉가 있는데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의 풍모와 기상을 노래한 것이다. 들어보면 “박토에 심은넌출 무성히 올라가서/다썩은 지붕위에 청운이 서려있네/석로에 꽃이피고 조로에 열매맺혀……도요히 방년을 어이나 허송하리……곳곳이 다니나 척주빈골이 다썩어지는고나/갈곳이 어데메뇨 갈곳이 두업일세/벽상 고붕에 낙낙장송 되였든들……”과 같다.
산업ㆍ교통이 군의 토지이용을 보면, 총면적 406.23㎢ 중 임야는 242.23㎢(59.6%), 논은 66.85㎢(16.5%), 밭은 41.38㎢(10.2%), 기타는 55.75㎢(13.7%)를 나타내고 있어 논이 밭보다 많다. 백곡저수지ㆍ초평저수지ㆍ연곡저수지가 이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군의 중앙부는 진천들, 북부는 덕산들과 이월들 등이 있어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으며, 이 곳에서 생산된 쌀은 질이 좋기로 유명한 진천쌀이 되고 있다.
그 외 식량작물로는 약간의 겉보리가 생산되고 옥수수ㆍ콩ㆍ팥ㆍ고구마ㆍ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채소류로는 무ㆍ배추ㆍ파ㆍ오이ㆍ참외ㆍ수박ㆍ고추ㆍ마늘ㆍ시금치ㆍ딸기, 특용작물로는 땅콩ㆍ잎담배, 과실류로는 배ㆍ포도ㆍ복숭아ㆍ사과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 데, 특히, 잎담배의 재배가 활발하다.
가축으로는 닭ㆍ돼지ㆍ오리ㆍ사슴ㆍ개ㆍ산양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내수면 어업으로는 초평면에서 연간 77.9M/T의 어류가 생산되고 있다. 광산물로는 고령토가 연간 6만6850M/T 생산되고 있다. 관내에는 광혜원면의 만승공업단지와 만승농공단지, 덕산농공단지ㆍ초평농공단지ㆍ지천농공단지ㆍ문백농공단지 등이 있다.
만승공업단지는 총면적 72만3464㎢로 입주업체 19개가 있다. 만승농공단지는 총면적 8만9864㎢로 입주업체 7개가, 덕산농공단지는 총면적 93.670㎢로 입주업체 6개가, 초평농공단지는 총면적 10만3561㎢로 입주업체 4개가, 진천농공단지는 총면적 10만3561㎢로 입주업체 10개가 있다.
군의 농공단지는 충청북도 전체에 비해 고용ㆍ생산ㆍ판매 등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초평농공단지는 업체수가 적음에도 고용효과가 크고 생산과 판매실적도 가장 좋은 편이다.
상업활동은 6개의 정기시장이 있었으나 백곡장과 초평장은 1960년대 이후 농촌주민의 유통 근대화에 따른 정책적 이유로 없어지고 현재는 진천장ㆍ덕산장ㆍ만승장ㆍ이월장 등 4개의 정기시장이 있다.
진천장은 진천읍 읍내리에서 5ㆍ10일, 만승장은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3ㆍ8일, 덕산장은 덕산면 용몽리에서 4ㆍ9일, 이월장은 이월면 송림리에서 1ㆍ6일이 되고 있다.
진천장은 군내에서 가장 큰 중심시장으로 우시장도 열리고 있고 만승장ㆍ이월장ㆍ덕산장은 주변의 평야지대를 배후지로 하여 일찍부터 발달했으나 최근에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다.
이와 같이 정기시장은 시장면적과 이용인구의 측면에서 중심시장인 진천장과 소규모 시장인 만승장ㆍ이월장ㆍ덕산장 등으로 구분 되고 있다.
진천장은 주변의 이월장ㆍ덕산장ㆍ오창장ㆍ병천장 등이 보완하고 있으나 백곡장과 초평장은 인근의 고차시장인 안성장ㆍ진천장ㆍ중평장 등에 흡수되어 폐시되었다. 중심시장인 진천장의 개시일이 군내의 시장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소규모의 시장 개시일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시장권의 확보와 관계된다.
도로망은 중부고속도로가 진천 동쪽 4㎞ 지점부터 북방의 서울, 남방의 청주시와 연결되어 대동맥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남북으로 서울-만승-이월-진천-문백-청주시를 연결하는 국도 17호선과 동서로 성환-문백-진천-초평-중평읍을 연결하는 국도 34호선과 21호선이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한 편이다.
관광관광 휴양자원으로는 초평저수지, 백곡저수, 길상사, 김유신장군탄생지, 숭렬사, 정송강사, 노원리의 왜가리도래리,, 노은영당, 농다리 등이 유명하다.
초평저수지는 진천읍에서 중평읍 방면의 13㎞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저수지로 전국에서 낚시터로 유명한데,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호텔과 주차장 등의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백리내는 김유신장군의 탄생지로서 벽암리에는 장군을 모신 길상사가 있다.
이 농다리는 28간인데 현재는 양편에 2간씩 매설되어 24간만이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긴 다리이다. 축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혹은 고려 고종 때 권신 임연(林衍)장군이 세운 다리라고 한다.
이 외에도 진천읍 연곡리의 백비와 성석리의 대모산성, 덕산면 산수리의 백제요지, 광혜원면 실월리의 정인옹주와 홍우경의 묘소가 있다.
또한 계곡에서 반석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회안반석, 문백리 평산리의 충간공 남지(南智)신도비가 있다. 초평면에는 경치가 아름다운 피서대 등이 있고 그 외 많은 유형문화재ㆍ문화재자료ㆍ민속자료가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관광객들은 주로 초평저수지ㆍ백곡저수지 등을 찾고 있는데 양 저수지는 유명한 낚시터이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연중 고른 탐방을 내고 있는 데 비하여 길상사는 주로 4∼6월에 집중적으로 찾고 있다. 샘터농원은 최근에 청소년과 직장인들의 수련장 겸 쉼터로써 각광을 받고 있다.
읍ㆍ면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70.44㎢, 인구 2만5039명(1999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진천군의 남쪽이 되므로 남변면(南邊面)이라 하여 15개 이(里)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변면(北邊面)의 12개 이, 행정면(杏井面)의 20개 이, 성암면(聖巖面)의 32개 이, 덕문면(德文面)ㆍ월촌면(月村面)ㆍ백곡면 등 일부가 편입되어 군중면(郡中面)이라 불렸다가 1917년 진천면이 되었다.
1930년 명암리와 사송리가 백곡면에, 태락리가 문백면에 이속되었고 덕산면 삼덕리가 편입되어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이월면의 송두리, 가산리와 덕산면의 상진리ㆍ산척리가 편입되었다.
남서부는 환희산ㆍ덕곡산(德谷山, 409m)ㆍ봉화산(烽火山, 415m) 등을 중심으로 고도 200∼400m의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북동부는 미호천의 지류인 백곡천이 남동류하여 넓은 평야를 전개하고 있다.
건송리의 백곡저수지(일명 진천저수지)는 백곡천 중류를 막아 만든 텐타게이트식 저수지로서 3,079㏊의 몽리면적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백곡천 유역은 인근 덕산면ㆍ이월면과 함께 군내는 물론 도내의 주요한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어 많은 미곡을 생산하고 있다. 그 외의 식량작물로는 콩ㆍ들깨ㆍ참깨, 과실류로는 배ㆍ사과ㆍ복숭아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ㆍ닭ㆍ오리ㆍ개 등이 사육된다.
관내에는 금암공단과 진천농공단지가 있어 음료품, 섬유ㆍ의복제품, 종이ㆍ석유정제품, 화학제품, 고무ㆍ프라스틱제품, 비금속제품, 금속제품, 전기기계ㆍ기계장비제품, 통신ㆍ장비ㆍ의료기기ㆍ자동차부품 등이 생산되고 있는데, 진천농공단지는 단지 내의 현지인 고용비율이 군내에서 가장 높다.
읍을 중심으로 군내의 각 지역과 타군 방면으로 도로가 방사상으로 발달하고 있고 동단부에는 중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주행하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연곡리의 백비, 교성리의 진천향교ㆍ충렬사, 신정리의 용화사석불입상, 석성리의 대모산성, 벽암리의 도당산성ㆍ길상사, 상계리의 김유신장군탄생지, 건송리의 식파정, 산척리의 이상설생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3개교가 있다. 읍내(邑內)ㆍ성석(聖石)ㆍ송두(松斗)ㆍ가산(佳山)ㆍ상신(上新)ㆍ산척(山尺)ㆍ삼덕(三德)ㆍ신정(新井)ㆍ원덕(院德)ㆍ교성(校成)ㆍ벽암(碧巖)ㆍ행정(杏井)ㆍ장관(長管)ㆍ건송(建松)ㆍ연곡(蓮谷)ㆍ상계(上桂)ㆍ문봉(文鳳)ㆍ금암(錦巖)ㆍ사석(士石)ㆍ지암(芝巖) 등 20개 이가 있다.
〔광혜원면 廣惠院面〕군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29.84㎢, 인구 8,394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광혜원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만디(만승)의 이름을 따서 만승면이라 하여 36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남면 일부와 음성군 사다면(沙多面) 일부가 편입되었다.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촌리와 사당리가 이월면에 이속되었다. 2000년 광해원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서부는 차령산맥이 뻗어 있는 구릉성 산지이고 중앙부는 구암천(鳩巖川)이 구암리 덕성산에서 발원하여 구암리에서 구암저수지를 이루고 동남쪽으로 흘러 면의 중앙부를 지나 금곡리에 이르러 용소를 이루고 있으며, 내촌리 남쪽에서 미호천으로 흘러든다. 동쪽 면계는 칠장천(七長川)이 광혜원리를 지나 남류하고 있다. 동부는 이월면과 연속된 진천평야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ㆍ옥수수ㆍ콩ㆍ수수 등이며, 특용작물로는 땅콩ㆍ참깨ㆍ들깨, 과실류로는 사과ㆍ포도ㆍ복숭아 등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닭ㆍ개ㆍ사슴ㆍ젖소ㆍ한우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는데 특히, 사슴은 군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고 있다.
임산물로는 밤ㆍ도토리 등이 많이 생산된다. 관내에는 2단지로 된 만승공단과 만승농공단지가 있어 여러 가지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도로는 동부에 괴산읍과 음성읍, 안성간의 지방도가 있고 면 소재지 동쪽 1.7㎞ 지점에 중부고속도로 음성인터체인지가 있어 수도권과 1시간대의 생활권이 되고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실원리에 조선 선조의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홍우경(洪友敬)의 묘소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광혜원(廣惠院)ㆍ실원(實院)ㆍ구암(鳩巖)ㆍ회죽(會竹)ㆍ죽현(竹峴)ㆍ금곡(金谷)ㆍ월성(月城) 등 7개 이가 있다.
〔덕산면 德山面〕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00㎢, 인구 6,506(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몽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덕문면(德文面)이라 하여 13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방동면(方洞面)의 11개 이, 소답면(所畓面)의 13개 이, 산정면(山井面)의 23개 이, 북변면(北邊面)의 2개 이, 남변면(南邊面)의 일부와 음성군 맹동면의 6개 이가 편입되어 덕문면과 산정면의 이름을 따서 덕산면이 되었다. 1929년 삼덕리가 진천면에, 오갑리가 초평면에 귀속되었고 1983년 상신리ㆍ산척리가 진천읍에, 중석리가 초평면에 편입되었다.
대부분이 100m 이하의 평지로서 중앙부에 미호천의 지류들이 남류하고 있는데 일부 구릉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진천평야의 중심지로서 경지율이 매우 높아 군내에서 미곡이 가장 많이 생산되며 구릉지에서는 수수ㆍ옥수수ㆍ콩 등의 식량작물과 잎담배ㆍ고추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특용작물로는 참깨ㆍ땅콩ㆍ들깨, 과실류로는 사과ㆍ배ㆍ복숭아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닭ㆍ오리ㆍ돼지ㆍ개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덕산농공단지가 있고 관내에서는 여러 가지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면 소재지인 용몽리를 중심으로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 진천읍과 음성읍으로의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산수리에 백제묘지와 두촌리에 송인묘소, 기전리에 이영남묘소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용몽(龍夢)ㆍ신척(新尺)ㆍ한천(閑天)ㆍ합목(合牧)ㆍ산수(山水)ㆍ화상(花上)ㆍ인산(仁山)ㆍ구산(九山)ㆍ기전(璣田)ㆍ두촌(斗村)ㆍ석장(石帳)ㆍ옥동(玉洞) 등 12개 이가 있다.
〔문백면 文白面〕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0.32㎢, 인구 4,328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성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문방면(文方面)이라 하여 22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낙면(白洛面)의 15개 이, 덕문면(德文面)의 일부와 청안군 서면(西面) 일부가 병합되어 문방과 백락의 이름을 따서 문백면이 되었다. 1930년 연담리가 초평면에 귀속되는 동시에 진천면의 대락리가 편입되었다.
중앙부에 양천산(양천산, 350m)이 솟아 있으나 백곡천과 미호천의 합류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고도 200∼300m의 저산성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잡곡이며 땅콩ㆍ참깨ㆍ담배 등의 특용작물과 배ㆍ포도 등의 과살류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젖소ㆍ닭ㆍ오리ㆍ돼지가 사육되고 있는데 젖소는 군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다. 농공단지에서 여러 가지의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중앙부의 남북을 연결하는 지방도에 의해 동북쪽의 괴산읍과 서쪽의 천안시와 남쪽의 청주시에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봉죽리에 송강사, 장월리에 망북정, 구곡리에 농교, 평산리에 충간공 남지묘소 및 신도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구곡리의 열녀문과 효자문, 사양리의 이씨영당 등이 있다. 평산리 평사마을에서 미호천을 따라 소두머리에 이르는 곳은 맑은 물이 금모래 위로 흐르고 양쪽 기슭에 깍아세운 듯한 절경이 계곡마다 장관을 이루는 평사절경(平沙絶景)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옥성(玉城)ㆍ봉죽(鳳竹)ㆍ계산(溪山)ㆍ도하(道下)ㆍ은탄(銀灘)ㆍ장월(長月)ㆍ사양(思陽)ㆍ평산(平山)ㆍ구곡(九谷)ㆍ문덕(文德)ㆍ태락(台洛) 등 11개 이가 있다.
〔백곡면 栢谷面〕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80.08㎢, 인구 2,541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현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백곡면이라 하여 25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행정면(杏井面)의 명암리가 편입되었고 1930년 진천면의 사송리가 편입되었다.
미호천의 상류인 백곡천(栢谷川)이 남동류하여 하천유역에 좁은 곡저평야를 발달시키고 있다. 논 면적이 적어 쌀 생산량은 군내에서 가장 적은 대신에 밭농사가 성하여 고추ㆍ콩ㆍ포도ㆍ복숭아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산간지대의 완경사지를 이용하여 잎담배 재배가 활발하다. 가축으로는 돼지ㆍ닭 등이 많이 사육되고 특용작물로는 땅콩ㆍ들깨ㆍ참깨가 많이 생산된다. 공장으로는 토기공장과 도정공장이 각각 1개 있을 뿐이다.
남부에는 진천∼경기도 성환간의 국도가 있고 백곡∼경기도 안성간의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하고 있어 남부는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구수리의 장군봉은 신라의 김유신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산이라고 전해진다. 석현리에는 절정지(節亭址), 사송리에 경주이씨의 열녀문이 있다. 그리고 갈원리에 만뢰사ㆍ산성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석현(石峴)ㆍ구수(九水)ㆍ대문(大門)ㆍ갈월(葛月)ㆍ양백(兩白)ㆍ성대(城大)ㆍ용덕(龍德)ㆍ명암(明岩)ㆍ사송(沙松) 등 9개 이가 있다.
〔이월면 梨月面〕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20㎢, 인구 7,683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송림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이곡리(梨谷里)의 이름을 따서 이곡면(梨谷面)이라 하여 25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촌면(月村面)의 26개 이, 만승면의 8개 이, 방동면(方洞面)의 매산리와 덕문면(德文面)의 중가리와 음성군 대조면(大鳥面)의 미곡리와 사다면(沙多面)의 사산리가 병합되어 이곡과 월촌의 이름을 따서 이월면이 되었다. 1983년 송두리와 가산리가 진천읍으로 귀속되었고 그 대신에 만승면의 사당리와 내촌리가 편입되었다.
서부면계에 무제봉(武帝峰, 573m)ㆍ옥녀봉(玉女峰, 456m)이 솟아 있고 북부면계에 옥정현(玉井峴, 335m)이 있으나 대부분은 구릉지이다. 미호천이 북부에서 남류하여 중앙부에서 남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덕산면, 진천읍과 더불어 진천평야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어 군내 미곡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서부의 완사면은 밭과 과수원 등으로 이용되고 잡곡ㆍ고추ㆍ잎담배의 재배도 활발하다. 과실로는 사과ㆍ배ㆍ복숭아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축산물로는 오리ㆍ돼지ㆍ한우ㆍ젖소 등인데 오리는 군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고 있다. 농공단지가 있어 여러 가지의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도로는 진천읍과 음성∼경기도 안성간의 지방도가 중앙부를 관통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삼룡리에 백제토기요지, 노원리에 왜가리 도래지ㆍ신집영정ㆍ신헌고택ㆍ신화국묘지, 사곡리에 마애여래입상ㆍ이즙묘소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송림(松林)ㆍ신계(新溪)ㆍ장양(長陽)ㆍ노원(老院)ㆍ사곡(沙谷)ㆍ중산(中山)ㆍ동성(東城)ㆍ삼룡(三龍)ㆍ신월(新月)ㆍ미잠(美蠶)ㆍ사당(沙堂)ㆍ내촌(內村) 등 12개 이가 있다.
〔초평면 草坪面〕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75.26㎢, 인구 4,488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정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초평면이라 하여 31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정면(山井面)의 3개 이, 문방면(文方面)의 일부가 편입되는 동시에 삼치리는 음성군 원남면에 귀속되었다. 1930년 덕사면의 오갑리와 문백면의 연담리, 청원군 북이면 외에 은암ㆍ진암ㆍ용산ㆍ용기리의 4개 이, 1983년 덕산면의 중석리 등이 편입되었다.
동부에 두타산(頭陀山, 598m)이 솟아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은 고도 200∼500m의 저산성 구릉지이며 초평천이 남류하고 있어 하류에는 초평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초평저수지는 내수면적 258㏊, 담수량 2,510만M/T, 몽리면적 3,078㏊의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낚시터로 유명한 저수지로서 몽리구역은 청원군이 되고 있다.
논은 초평천유역에 좁게 분포하여 미곡생산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산록 완사지의 밭에서는 콩ㆍ수수ㆍ옥수수 등의 식량작물과 참깨ㆍ들깨ㆍ땅콩 등의 특용작물, 사과ㆍ포도 등의 과실류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ㆍ닭ㆍ꿀벌 등이 사육되고 있다. 군내에서 내수면 어업이 가장 발달하여 연간 77.9M/T의 어류가 양식되고 있다. 초평공단과 초평농공단지가 있어 여러 가지의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도로는 진천읍∼증평읍간의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영구리에 두타산성ㆍ영수암괘불, 용정리에 마애불입상과 이시발신도비, 용기리에 금성대군사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용정(龍亭)ㆍ중석(中石)ㆍ오갑(五甲)ㆍ화산(畵山)ㆍ영구(永久)ㆍ금곡(琴谷)ㆍ신통(新通)ㆍ연담(蓮潭)ㆍ은암(隱巖)ㆍ진암(陳巖)ㆍ용산(龍山)ㆍ용기(龍基) 등 12개 이가 있다.
참고문헌新增東國輿地勝覽, 大東地志, 增補文獻備考, 常山志,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0), 鎭川郡誌(鎭川郡誌編纂委員會, 1974), 忠淸北道誌(忠淸北道誌編纂委員會, 1982), 내고장전통가꾸기(鎭川郡, 1982), 韓國地名要覽(建設部國立地理院, 1983), 韓國觀光資源總覽(韓國觀光公社, 1985), 地方行政區域要覽(行政自治部, 2000).
첫댓글 어디서 많은 자료를 발췌를 했나? 대단하이....